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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추리/스릴러
몬스터클럽
작가 : 쇼센
작품등록일 : 2019.9.5

대선을 앞두고 전국에서 끔찍한 연쇄살인 사건이 벌어지고, 뇌신경정신과학자 데이빗 한 박사는 연구소 소장으로부터 뇌스캔을 통한 잠정적 사이코패스 범죄용의자 테스트(몬스터 테스트)의 개발을 종용받는다. 마침 그때 한 프로파일러가 사이코패스테스트의 의무실시를 주장해 대중의 큰 호응을 불러일으키자, 야당 대선후보 이중필은 이러한 분위기를 활용해 ‘몬스터 감별법’을 추진하겠다고 나서 표심을 얻기 시작한다.

한 편 데이빗 한의 장남이자 천재 사이코패스 고등학생인 한명석은 여당 대선후보와 결탁해 전략적으로 소년범죄를 저지르는 <몬스터 클럽>을 비밀리에 조직하고, 군중의 세뇌에 효과가 있는 약물 ‘마리오네트’를 은밀히 유포하는데, 사건성을 의심한 한수형 경위가 그의 뒤를 쫓기 시작하고….

 
#16. 괴물과의 조우
작성일 : 19-10-31 18:37     조회 : 232     추천 : 2     분량 : 94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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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녁 5시 40분. 수형은 노량진으로 가는 1호선 지하철에 몸을 실은 채 30분 째 깊은 생각에 빠져 있었다. 본격적인 퇴근길로 붐비기 전에 천천히 이동하면서 자신이 통화 중에 무심결에 흘린 ‘죽은 강사가 남긴 선물’을 뭐로 해야 할지 정해볼 심산이었다. 거짓말로 상대를 꼬여내는 데는 성공했으나 기왕 걸려들었다면 다음 수로 이어질 수 있어야 한다. 만나서 그냥 전화 통화 때처럼 서늘하게 거절하고 돌아선다면 여기서 수사의 끈은 끊어지고 만다. 일단은 이름과 연락처를 알아야 하고, 학교나 집주소를 알면 더욱 좋다. 나아가 먼저 수형에게 연락하게 하거나 수형을 믿고 무엇이든 털어놓게 만들 만한 계기를 만들 수 있다면 수형에게는 더 바랄 것이 없었다.

  애초에 왜 그는 환불처리도 거절했으면서,‘강사가 남긴 물건’이라는 말에는 예민하게 반응했을까. 물론 예민했다는 것은 수형의 감이었다. 자신도 모르게 내뱉은 그 말에 순간 상대가 날카롭게 곤두서는 듯한 느낌이 있었던 것이다. 왜지? 그 강사랑 따로 친해보이지는 않았다는데, 사실은 개인적인 관계가 있었나? 진짜로 죽음에 연관이 있거나 아님, 강사와 개인적인 친분이 있는데 그의 타살 가능성에 의심을 가진 인물인지도 몰랐다.

 “어느 쪽일까.... 헛다리를 짚으면 안 되는데.”

 일단은 강사의 죽음에 어떤 식으로든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면 그 사실을 수형이 의심한다는 것 자체를 드러내는 것은 좋지 않았다. 목소리만 들어도 차분하고 신중한 성격인 듯한 상대는 자신을 의심하는 것을 눈치채는 순간 철저히 마음의 문을 닫을 것이다. 그렇다면 뭔가 강사가 무엇인가에 고통을 받고 도움의 손길을 구했다는 일종의 SOS신호를 남겼다면 어떨까. 그리고 그것을 특정 상대에게 남겼다는 사실을 경찰이 알고 있다면. 그런데 경찰은 이미 다른 엉뚱한 상대를 가해 용의자로 특정 짓고 있다면? 그렇다면 그는 불안을 느끼는 동시에 적극적으로 자신이 아닌 다른 상대 쪽으로 혐의를 몰아가기 위해 자신에게 협조하지 않을까.

 “죽은 강사 자필편지는 위조할 수도 없고... 그럼 어떻게 해야...”

 그 때 수형의 머릿속에 스쳐지나가는 것이 있었다. 소송문제로까지 번졌던 문제의 그 게시판 글이었다. 학생들이 그의 갑작스럽게 변한 강의 스타일에 각종 루머를 쏟아대며 비난하던 그 게시판 글을 죽은 강사가 캡쳐해두었다면? 실제로 강사의 몸에는 약물 반응이 남아 있었다. 어떤 약물이든 복용하고 있었다면 그런 게시판 글에 강사는 두려움을 느꼈을 것이고, 자신의 주변 사람들에게 호소하거나 대처방안을 찾기 위해 그 글을 캡처해두었다고 해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요즘은 누구나 통화를 녹음하거나 인터넷상의 글을 캡처해서 자기방어를 하는 법을 아는 시대니까. 수형은 재빨리 손목시계로 시간을 확인했다. 아직 6시 10분. 시간은 충분했다. 그는 노량진역에 내리자마자 빠르게 개찰구를 빠져나갔다. 그의 눈이 역사 주변의 상가를 빠르게 훑었다. 그리고 멀리서 보이는 PC방 간판에 그는 주저 없이 몸을 움직였다. 오늘 저녁, 왠지 그동안 바라마지 않던 큰 단서가 어떻게든 잡힐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대물을 낚는 큰 낚시에는 미끼부터 공들여야 하는 법이다. 큰 사건을 수사할 때의 예의 습관처럼 주먹을 쥐었다폈다 하자 긴장감에 축축해진 수형의 손바닥이 밤공기에 차갑게 마르기 시작했다.

 

 정확히 7시가 되자 키가 훤칠하고 군청색 캡모자를 깊게 눌러쓴 젊은 남자가 학원 앞에 나타났다.

 “OOO강사님이 맡긴 물건을 찾으러 왔는데요.”

 “이름이 어떻게 되시죠?”

 “한명희입니다.”

 “네, 확인했습니다. 환불처리부터 해 드릴게요.”

 “그보다 질문이 있습니다만, 저한테 전화하신 직원분은 누구시죠? 남자…분이시던데요.”

 여직원은 그 말에 일순 당황한 표정을 하다가 웃으며 말했다.

 “아아, 그 직원분은 오늘 개인 사정이 있어서 먼저 퇴근하셨구요, 저한테 대신 부탁하셨어요.”

 “그렇군요. 그런데 저한테 무슨… 물건을 남기셨다구요.”

 “아, 네... 드릴까요?”

 “네. 그런데요. 정확히 저한테 남기신 물건이… 맞습니까?”

 “저는 잘 모르겠어요. 저는 그냥 그 남자직원 분께 한명희 씨가 오시면 환불처리 해드리고 물건을 전해주라고 부탁받았을 뿐이라서요. 왜 그러시죠?”

 “이상…해서요. 그 강사분이 제 이름을 알 리가 없거든요.”

 “그...래요? 다른 데스크 직원분 통해서 물어봤는지도 모르죠. 그 강사님이 직원분들이랑도 사이도 좋았거든요. 워낙 친절하셔서.”

 “그렇다고, 학생 개인 정보를 그렇게 쉽게 알려주나요?”

 “하하... 수업하시는 강사님이신데요, 특정 학생 이름 정도야 알려드릴 수도 있죠. 그래도 저희 직원이 함부로 그러지는 않는데 부탁을 하셨나...? 저는 잘… 모르겠네요.”

 여자는 눈에 띄게 어쩔 줄 모르겠다는 표정을 하며 허둥대고 있었다. 그리고 데스크에서 3미터쯤 떨어진 소파에서 이 모든 대화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30대 중반의 남자가 있었다. 위화감이 없도록 캐주얼한 차림에 두툼한 책에 시선을 두고 있었지만 그는 젊은 학생들 틈에서 튀어보였다. 박수형 경위는 그렇게 몸을 숨기고는 남학생이 학원 문을 열고 들어오는 순간부터 모든 것에 주의를 기울이며 자신이 자연스럽게 나설 타이밍을 신중하게 재고 있었다.

 “알겠습니다. 일단 그 ‘물건’이라는 걸 주시죠.”

 “아, 네.”

 여자 직원이 침착치 못한 동작으로 서둘러 내민 것은 겉이 봉해진 누런 빛깔의 서류봉투였다. 두툼한 두께로 보아 책이나 서류 뭉치 같은 것이 들어있는 것처럼 보였다. 젊은 남자는 아무 것도 적혀 있지 않은 봉투의 겉면을 앞뒤로 한 번 살펴보더니 그대로 자신의 옆구리에 집어넣었다.

 “한명희 씨, 계좌를 불러주시면 바로 그쪽으로 환불처리도 해드리겠습니다.”

 “환불은 됐습니다. 이만 가보겠습니다.”

 “네?”

 여직원이 미처 붙잡기도 전에 빠르게 돌아선 젊은 남자는 긴 다리로 성큼성큼 학원을 빠져나갔다. 그리고 이 때를 기다렸던 박수형 경위도 조용히 몸을 일으켜 뒤를 따랐다.

 그리고 100미터쯤 뒤를 따랐을까. 역으로 바로 향하지 않고 학원가의 점점 더 깊은 골목으로 빠르게 걷던 젊은 남자는 갑자기 골목이 좁아지기가 무섭게 뒤를 돌아다보았다. 그리고 좁은 골목에는 그를 뒤쫓던 수형 외에는 다른 사람이 한 명도 없었기에 둘은 자연스레 눈이 마주쳤다. 수형은 속으로는 흠칫 했지만 최대한 태연을 가장하며 빠르게 따라 걷던 속도를 조금 늦춰서 계속 그에게로 걸어갔다. 젊은 남자는 수형을 마치 기다리는 것처럼 그 자리에 멈춰서서 수형이 다가오는 것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수형이 자신의 옆을 지나쳐가는 순간 젊은 남자가 어두운 캡모자 속의 번뜩이는 눈매를 드러내며 말을 걸었다.

 “저한테… 무슨 볼일이시죠?”

 “네?”

 “저 따라오셨잖아요. 학원에서부터 쭉.”

 “제가…요?”

 “네. 저한테 용건이 있으시면 말씀하시죠. 당신이 어제, 저한테 전화한 사람인가요?”

 수형은 이쯤 되면 더 이상 발뺌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상대가 무섭도록 예리했다. 8년 경력 형사의 조용한 미행을 100미터 만에 바로 알아채다니. 게다가 이 남자는 사람 많은 대로를 벗어나 일부러 좁은 골목으로 자신을 이끌었다. 주변의 시선을 차단하고 자신의 미행을 확실히 확인하기 위해서. 수형은 점점 더 눈앞의 젊은 남자가 만만한 부류가 아니라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손끝이 긴장으로 뻣뻣해졌다.

 “아, 뭐. 맞습니다. 제가 어제 전화 드린 사람입니다.”

 순순히 수형이 시인을 했는데도 젊은 남자는 별 반응이 없었다. 가까이서 보니 큰 키와 다부진 체형에 비해서 얼굴은 꽤 어려 보였다. 그가 그 고등학생인지도 모른다고 수형은 직감했다.

 “무슨 일로 절 따라오셨죠? 여직원 분은 그쪽이 먼저 퇴근하셨다고 하던데요.”

 “어떤 분인지 궁금해서요. 갑자기 모르는 사람이 들이대면 피할 수도 있잖아요? 그쪽에 대해 알고 싶은 생각에 별 생각 없이 무작정 뒤를 따라왔습니다.”

 수형은 자신이 경찰이라는 사실을 일부러 밝히지 않았다. 상대가 자신을 학원 직원으로 알고 있다면 그렇게 오해하게 두는 편이 나았다. 경찰임을 밝혀서 경계심을 부추길 필요는 없었다.

 “왜 저에 대해 알고 싶으신 건데요? 저를 아세요?”

 젊은 남자는 이 상황에도 침착한 목소리로 물었다. 목소리에서 경계심은 느껴지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친근감도 느껴지지 않았다. 많은 용의자를 취조해봤던 수형은 그 목소리의 무감정함이 기이하다고 느꼈다. 그 어떤 불안이나 두려움도 느껴지지 않는 목소리. 마치 인간의 것이 아닌 것 같은.

 “안다고 할 정도는 아니죠. 하지만 OOO강사님께… 그쪽 이야기를 들었거든요.”

 “그럼, 강사님께 제 이름을 알려준 것도 당신인가요? 그 분이 제 이름으로 이 물건을 남겼다던데요.”

 “아, 네. 그건 제가 알려드렸어요. 강사님이 학생 이름을 꼭 알고 싶다고 해서.”

 “강사님과 굉장히 친하셨나봐요? 수강생 개인정보를 척하니 알려줄 정도로? 그거 불법인거 아시죠?”

 비아냥거리는 내용이었지만 신기하게 말투만은 정중했다. 수형은 영성외고가 아무나 갈 수 없는 명문고라는 사실을 떠올렸다. 수준 높은 교육을 받은 우아한 녀석이란 건가. 이쪽을 말끄러미 바라보는 감정이 실리지 않은 두 눈동자와 냉정하리만치 침착한 그 목소리에 수형은 왠지 소름이 돋았다. 아까부터 직감이 뭔가 눈앞의 상대가 위험하다는 경고를 보내고 있었다. 수형은 태연을 가장하기 위해 목에 힘을 주어 말했다.

 “학생이야말로 강사님과 친하셨던 거 아닌가요? 학생은 이상하지 않아요? 강사님이 갑자기 자살을 하셨다는 게. 돌아가시기 이틀 전만 해도 열정적으로 수업을 하셨는데요.”

 “강사님 죽음이 이상한 것과… 제가 무슨 상관이죠?”

 “많은 수강생들 중 그쪽한테만 물건을 남겼으니까요. 저한테 궁금하다고 이름을 알려달라고 하신 것도 그렇고요.”

 수형은 한 시간쯤 자신이 직접 봉하고 여직원에게 건네줬던 서류봉투를 흘끗 쳐다보면서 태연히 말했다. 다행히 적당한 거짓말이 술술 나왔다. 이것은 미끼였다. 미끼를 물게 해야만 했다. 표정이 읽히지 않는 젊은 남자의 시선을 담담하게 마주하며 수형은 애써 초조함을 감췄다.

 “흐음... 그러는 그쪽은 이 봉투 안에 뭐가 들었는지 알아요?”

 “네...?”

 젊은 남자는 갑자기 들고 있던 서류 봉투를 느리게 흔들어 보였다. 이상한 것은 그 표정이 마치 방금 받아서 뜯지도 않은 봉투의 내용물을 이미 알고 있는 것 같다는 것이었다. 아니면 수형의 손을 거쳐 조작된 유품임을 눈치라도 챈 것일까. 뭐든지 다 알고 있다는 듯한 그의 차분한 말투와 여유로운 태도때문에 수형은 점점 애가 타고 있었다. 수형은 형사 특유의 직감으로 눈앞의 남자가 뭔가를 숨기고 있지만 절대 들키지 않으리라는 자신감에 차 있다는 것을 알았다.

 “저야… 모르죠. 강사님께 받아서 보관만 해뒀을 뿐이니까요. 거기 뭐가 들었습니까?”

 되레 수형이 묻자, 젊은 남자는 “흐음...”하며 입을 다문 채 나지막이 성대를 울렸다. 행동은 여유롭지만 눈빛은 날카롭고, 목소리에는 듣는 쪽의 신경을 곤두서게 하는 음산한 울림이 담겨 있었다. 수형은 눈앞의 젊은 남자가 범죄자의 유형이라면 어떤 유형인지를 조용히 생각했다. 그는 필시 공범을 두지 않는 단독범의 유형이다. 이용당하거나 먹히는 쪽이 아니라 철저히 덫을 놓아 사냥하는 쪽, 수형은 눈앞의 남자가 잔혹한 포식자임을 확신했다.

 “글쎄요. 저도 이게 뭔지는 모르지만 제가 그쪽한테 이걸 보여드릴 의무는 없을 것 같네요. 그리고 개인정보를 막 흘려주는 사람에게 뭘 믿고 강사님의 유품을 보여드리겠습니까.”

 역시 경계를 하고 있었나. 수형은 속으로 혀를 찼다. 쉽지 않은 이 남자를 눈앞에서 놓치기 전에 마지막 수단을 쓰기로 했다.

 “아마 보여주셔야 할 텐데요. 저요, 사실은 학원 직원이 아니라 이런 사람입니다.”

 수형은 자신의 신분증을 눈앞에 들어 보여주었다. 하지만 상대의 반응은 전혀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아, 역시. 경찰이셨군요.”

 조금도 놀라지 않는 젊은 남자의 반응. 원래 감정표현이 없는 부류인걸까. 아니면 전혀 꺼리는 구석이 없어서 당당한 걸까. 순진한 걸까, 순진한 척 하려는 걸까. 수형은 복잡한 심정에 미간을 슬쩍 찌푸리며 말했다.

 “네, 먼저 신분을 밝혔어야 하는데 미안합니다. 조심스러운 사건이라서요. 이번 사건 담당 팀의 박수형 경위입니다. 사건 수사에 협력해 주실 수… 있을까요?”

 “그러죠. 뭐든 물어보세요.”

 남자의 눈빛이 슬쩍 가늘어졌다. 마치 흥미롭다는 듯이. 살짝 입술 끝에 조소가 걸려 있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러니까 이름이 한명희 씨… 맞나요? 젊어 보이는데 대학생인가요? 아니면 고등학생?”

 “한명희는 제 동생 이름이에요. 제 이름은 한명석이고, 현재 고3입니다.”

 “왜, 동생 이름으로 등록했죠?”

 “원래 동생에게 듣게 하려고 등록했던 거든요. 그런데 등록하고 교재를 보니까 흥미가 좀 생겨서 제가 수업을 대신 듣게 됐습니다.”

 그 말은 이상한 데가 있었다. 흥미로운 수업이었다면 끝까지 듣지 않고 30분만 앉아 있다가 간다는 것은 이해가 되질 않았다. 수형은 질문을 이어나갔다.

 “강사님과는 특별히 친분이 있었나요?”

 “다른 수강생과 별다를 게 없었어요. 질문이 있으면 하고, 학원에서 만나면 인사하고, 뭐 그 정도였죠.”

 “학생도 강사님의 죽음이… 자살이라고 생각하나요?”

 “글쎄요. 다들 그렇다고 하니까 그런가보다 하는 거죠. 제가 강사님 속사정이야 알 수 없는 거니까.”

 애매한 답변이었지만 수상한 답변도 아니었다. 갑자기 자살한 사람의 경우 가족들조차도 그 원인을 짐작하지 못하는 경우가 흔히 있었다.

 “아까 강사님께 질문을 하기도 했다고 했죠? 강사님과 수업시간 말고 따로 만난 적도 있나요?”

 “수업 전후에 강사님께 질문을 하러 수업준비실에 간 적은 있어요. 제가 질문을 곧잘 하니까 나중에는 전화번호도 알려주시더라구요. 언제든 전화나 문자로 질문하라면서. 하지만 학원 밖에서는 따로 만난 적이 없어요.”

 “왜 당신에게만… 물건을 남겼다고 생각해요? 이 물건이 뭔지 대략 짐작이 가나요?”

 수형은 일부러 의심하는 듯한 투로 물었다. 남자에게 겁을 주려는 의도였지만 상대는 태연하기만 했다.

 “글쎄요. 제가 질문이 많은 수강생이었으니 돌아가시기 전에 잠깐 마음이 쓰이셨을까요, 수업과 관련한 교재나 자료를 남겨주신 게 아닐까 싶은데요.”

 “그래요? 혹시 괜찮다면 지금 그 봉투 속 내용물을 제게 보여주실 수 있을까요?”

 “괜찮지 않다고 해도 보실 거잖아요? 수사에 협조하라면서.”

 한명석은 씨익 알 수 없는 웃음을 띄우면서 순순히 들고 있던 봉투를 봉투째로 수형에게 내밀었다. 수형은 장갑을 꺼내 손에 끼고, 봉투를 신중하게 뜯었다. 물론 자신이 준비한 것이니 모두 그를 향한 연기일 뿐이다. 봉투 속을 더듬어 조심스레 내용물을 꺼내자 명석의 시선이 그것으로 향했다.

 “그게… 뭔가요?”

 “프린트물인데요? 학원 홈페이지의 게시판… 글 같네요. 죄다 강사님에 대해 안 좋게 얘기한 것들뿐이에요. 그리고... 핸드폰 문자메시지를 캡처한 내용도 있고. 이것도 안 좋은 내용이에요. 흠... 아마 협박을 받고 있었나 봐요.”

 수형은 자신의 휴대폰 문자를 조작해 만든 조악한 캡쳐본은 얼른 뒤로 넘겨 숨겼다. 시간이 없었기에 죽은 강사 핸드폰과 같은 기종이나 폰트 크기를 대조해서 맞춰볼 시간이 없었다. 혹시 어딘가 이상한 점을 남자가 조금이라도 발견할까 싶어 수형은 실제 홈페이지 게시판 글을 캡처한 부분에만 시선을 길게 두고 유심히 들여다보는 척을 했다.

  게시판 글에 대한 이야기는 노량진에서 우연히 만난 학생에게서 들어 알고 있었지만, 수형이 노량진 PC방에서 해당 글을 직접 읽었을 때는 적잖은 충격을 받아야 했다. 익명으로 쓴 것이라고는 해도 게시판에는 욕설과 비방, 비아냥거리는 말들이 넘쳐났다. 글에는 근거 없이 이런 글을 쓰면 안 된다고 지적하는 댓글도 달려 있었지만 대부분은 동조하거나 함께 비방을 즐기는 듯한 댓글들이 끝없이 달려 있었다. 수형은 그것만으로는 미끼로 삼기에 부족하다고 생각해 협박문자의 내용을 만들어 끼워 넣었다. 진지한 협박이라기보다는 ‘강의도 못 하면서 미련 떨지 말고 그만 노량진을 떠나라, 꼴 보기 싫다’와 같이 게시판의 글을 적당히 각색한 것들이었다.

 “왜 이걸 학생 앞으로 남겼을까요?”

 “이런 걸 다 모아둔 걸 보면 고소하려고 한 게 아닐까요. 학원 직원도 일이 커지는 건 싫어할 테니까 그나마 믿을만한 저한테 맡겨두려고 했나보죠.”

 “변호사를 선임했다거나 주변에 법적 자문을 구했다든가 한 흔적은 없었어요. 소송을 준비했는지 어떤지는 알 수 없지만 학생에게 도움을 청하려고 했는지도 모르죠. 하지만 다른 가능성도 있겠군요.”

 “그게 뭐죠?”

 “만약 자살이 아니라 타살이라면, 죽임을 당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서 자신의 상황을 알리려고 했는지도 모릅니다. 당신말대로 믿을 만한 학생에게, 자신의 생명을 위협하는 누군가가 이 안에 있다고 전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요?”

 “왜 형사님은, 타살로 의심하시죠? 이렇게 심한 말을 들으면서 모욕감에 자살했다는 게 더 자연스럽지 않나요?”

 “자세히 말씀드릴 수 없지만 타살로 의심되는 흔적이 몸 안에서 발견됐어요.”

 “흔적… 이요?”

 수형은 처음으로 눈앞의 사내가 자신의 말에 흥미를 보인 듯한 느낌이 들었다.

 “현재 수사 중이니 자세히 말씀은 못 드립니다만, 만약 타살이라면 용의자들 중에 범인을 찾는데 그게 결정적 증거가 될 겁니다.”

 수형은 강사의 몸 안에서 발견된 약물의 독특한 성분을 떠올리며 그렇게 말했다.

 “아, 그러고 보니 저도 비방글을 직접 남기진 않았지만 그런 글에 댓글을 남긴 적은 있어요. 그럼 저도 용의자가 되는 건가요?”

 용의자가 될까 두려워하는 표정은 아니었다. 오히려 호기심에 찬 얼굴. ‘타살 흔적’이라는 말에 걸려든 것 같은데 그 구체적인 내용을 알고 싶어서 그러는 걸까.

 “일단 게시판 글과 관련된 사람들은 모두 형식적인 조사를 한번씩 받을 겁니다. 하지만 그쪽은 강사님이 직접 이런 유품을 남겼을 정도니 깊은 의심을 할 필요는 없겠어요. 안심하세요.”

 수형은 서류를 다시 봉투에 집어넣고는 미리 준비해온 비닐에 봉투를 통째로 넣었다. 중요한 증거물인척 다뤘지만 사실은 집에 가져가 몰래 폐기할 작정이었다. 다행인 것은 그가 게시판 글에 댓글을 남겼다는 사실을 심문의 근거로 삼을 수 있게 됐다는 점이다. 대화의 내용은 아까부터 녹음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정도로 이 남자를 오래 붙잡고 조사할 수는 없을 것이었다. 사망 추정 시간에 그의 알리바이를 확인하는 것이 고작이겠지. 수형은 뭔가 더 이 남자에게서 알아내야만 해싿.

 “한명석 씨는.... 강사님 죽음이 타살이라면 의심 가는 학생이 혹시 있나요?”

 “글쎄요.”

 “왜 그 학생들 사이에서 말이 많았다면서요. 약 빨았다고.”

 “설마요.”

 “그렇겠죠?”

 “수업에 좀 열정적이 되셨다고 해서 그런 말을 듣는 건… 좀 그렇네요.”

 “그러게요. 혹시 모르니 학생 연락처 좀 알려줄래요? 내가 더 물어볼 게 있으면 연락할게요.”

 수형이 휴대폰을 내밀자 명석은 빠르게 버튼을 입력하고는 통화버튼을 눌렀다. 지잉 하는 진동음이 그의 바지 주머니 속에서 몇 번 들렸다가 꺼졌다. 형사의 번호를 잊지 않고 챙기는 그 대범하고도 재빠른 행동에 수형은 다시 한 번 놀랐다.

 “형사님 성함이… 뭐라고 하셨죠?

 “박수형 경위입니다.”

 “기억할게요. 그럼 안녕히 가세요.”

 “언제든 강사님 죽음에 관해 제보할 게 있으면 연락해요, 알겠죠?”

 “그럼요. 그래야지요.”

 명석은 수형보다 먼저 몸을 돌려 느릿느릿 골목을 빠져 나갔다. 수형은 그가 역 쪽으로 향하는 것을 끝까지 지켜본 후 명석이 눌러준 번호를 찾아 서둘러 저장했다. 그런 그를 돌아보면서 명석의 짓이기는 듯한 나지막한 일갈을 작게 잇새로 내뱉은 것을 수형은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

 “머저리 새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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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6. 소년, 용이 (2) 2019 / 9 / 24 287 4 7362   
6 #5. 악마의 냄새를 맡다 (4) 2019 / 9 / 24 269 4 6371   
5 #4. 레퀴엠, 죽음을 부르는 노래 (4) 2019 / 9 / 10 280 4 4855   
4 #3. 어린 몬스터들의 아지트-2 2019 / 9 / 9 261 4 5032   
3 #2. 어린 몬스터들의 아지트-1 (2) 2019 / 9 / 9 270 3 7883   
2 #1. 마트료시카 (2) 2019 / 9 / 6 311 5 6366   
1 #프롤로그 - 어린 괴물과의 조우 (6) 2019 / 9 / 5 467 4 4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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