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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나의 자카르타
작가 : 히타히타
작품등록일 : 2019.9.2

도망치듯 떠나온 그곳에서 마법이 시작된다.

 
당신은 어울리지 않아
작성일 : 19-10-30 10:14     조회 : 293     추천 : 0     분량 : 5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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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왜요? 한류가 유행인데요.”

 “유행은 유행일 뿐입니다.”

 

 캐서린이 또 눈치를 줬다.

 무조건 예, 예 하라는 그녀의 말을 나는 시작부터 어기고 있었다.

 그래도 할 말은 해야 했다.

 

 “한식당이 늘어날 뿐이지 수요가 늘어난 게 아닙니다. 새로 문을 여는 한식당 중 몇 개나 살아남을지 장담할 수 없습니다.”

 “바빡, 저는 수요도 늘어나고 있다고 보는데요.”

 “공급에 비하면 미미한 수준입니다. 문제는 제대로 된 시스템과 제대로 된 맛입니다. 두 가지를 다 끌어올려야 합니다.”

 

 대형 한식당들은 답답한 방식에 갇혀 있다.

 중국인들이 소유한 저가 한식 브랜드들은 조미료 맛만 낸 국적불명의 음식을 싼값에 쏟아내고 있다.

 우리는 둘 다 극복해야 한다.

 좋은 재료로 정성껏 만든 한식은 빠당 요리에 뒤떨어지지 않는 깊은 맛을 낸다.

 그 맛을 편리한 시스템에 담아내야 한다.

 나는 이렇게 더 자세히 설명하고 싶었지만, 느릿느릿한 인도네시아어로 문법을 연신 틀려가며 장광설을 늘어놓기 싫었다.

 대신 나는 질문을 던졌다.

 

 “바빡, 저희의 어떤 면을 보고 부르신 겁니까?”

 “꼼빠스TV를 봤습니다. 아주 인상적이었어요.”

 “쁘라위 가문 정도의 명문가라면 대형 브랜드와 손잡는 게 나을 텐데요.”

 

 우실로가 고개를 저었다.

 

 “쁘라위 가문과는 상관없습니다. 이 일은 전적으로 제가 벌이는 일입니다.”

 “하지만 소유주가...”

 “바빡 쁘라위는 사업에 집중하실 수 없습니다. 올해 중요한 선거가 있다는 건 아시죠? 그래서 바빡 쁘라위께서는 경영의 전권을 제게 주셨습니다.”

 “그럼 바빡 우실로께선 왜 저희를 고르셨습니까?”

 

 우실로가 난처한 듯 웃었다.

 나는 너무 단도직입적으로 묻고 있었다.

 그게 내 방식이지만, 인도네시아의 방식은 아니었다.

 접시에 코를 박고 있던 기자는 뭐가 궁금한지 고개를 쳐들고 우리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캐서린이 어색한 분위기를 녹이려 끼어들었다.

 

 “저희가 돌담에 대한 자료를 가지고 왔어요. 한번 읽어보세요.”

 

 캐서린이 깔끔하게 제본한 자료를 꺼냈다.

 돌담의 메뉴, 판매 방식, 영업 현황이 한 눈에 보기 쉽게 도표로 정리돼 있었다.

 우실로는 건성으로 읽는 척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훌륭하군요. 메뉴와 조리와 판매 방식 모두 마음에 듭니다.”

 “많이 부족합니다. 이제 시작 단계일 뿐입니다.”

 

 나는 정말 궁금했다.

 총선과 대선을 앞둔 쁘라위가 새 사업에 뛰어들 수 없으므로, 이건 전적으로 우실로가 벌이는 일이었다.

 그는 왜 우리를 선택했을까.

 꼼빠스TV에 한번 출연했다고 조무래기가 거물이 되는 건 아닌데 말이다.

 

 혹시?

 

 나는 잠시 주린 할머니를 의심했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주린 할머니는 함부로 말을 바꾸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바빡 권. 우리는 대형 브랜드를 원하지 않습니다. 귀찮은 일이 많으니까요.”

 “귀찮은 일이 어떤 건지요.”

 “대기업과 합작회사를 만들면 동등한 권리를 요구할 겁니다.”

 “그렇겠죠.”

 “저는 제 마음대로 사업을 펼치고 싶습니다. 작더라도 실력 있는 업체가 브랜드와 레시피를 제공하면 저는 전략을 세워 확장해나가는 거죠.”

 “아, 그렇군요.”

 

 나는 이제야 깨달았다.

 우실로는 ‘동등하지 않은’ 권리를 원했다.

 일부러 돈 없고 가능성만 있는 식당을 골라서 투자한 다음, 자기만의 전국 체인을 만들고 싶은 것이다.

 꼼빠스TV에 나와 브랜드 가치를 높인 돌담이라면 금상첨화다.

 우실로의 그늘 밑으로 들어가면 나는 경영권 없이 적은 지분만 챙겨야 한다.

 

 나는 캐서린에게서 처음 소식을 들었을 때 쁘라위 가문 쪽이 쇼핑몰 입점을 권유할 것으로만 생각했다.

 쁘라위 가문이 입점에 편의를 봐주고 투자까지 해준다면, 나는 한국 아파트를 팔아치우고 그 돈을 합쳐 하나씩 만들어가려고 했다.

 하지만 우실로의 의도는 한꺼번에 크게, 자기 마음대로 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나는 이런 문제에 봉착했다.

 돌담을 팔아먹을 것인가.

 

 “바빡에게 나쁜 제안이 아닙니다. 고생하지 않고 큰돈을 벌 수 있는 기회에요.”

 “얼마나 크게... 벌이실 계획 입니까?”

 “돌담이 인도네시아를 넘어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에 진출하는 광경도 보실 겁니다. 장관이겠지요.”

 

 맞는 말이다.

 우실로의 제안을 받아들이면 아침마다 장을 보거나 홀을 닦지 않아도 돈이 들어온다.

 고문 직함이나 하나 받아서 뒷전에 물러나 있으면 될 것이다.

 게다가 돌담은 자본의 날개를 달고 국경을 넘는다.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는 단일한 언어를 쓰는 시장이다.

 싱가포르 역시 일상적으로 영어를 많이 쓰지만 법적인 공용어는 인도네시아어다.

 인도네시아만 해도 인구 2억6천에, 내해까지 합친 면적이 유럽 대륙과 맞먹는다.

 여기에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를 더하면 어마어마한 시장이다.

 

 절호의 기회였다.

 하지만 나는 계속 우물쭈물 거렸다.

 

 “천천히 생각해보십시오. 급하지 않습니다.”

 “감사합니다.”

 

 인도네시아인들은 사업을 느긋하게 진행한다.

 당장 오늘 합의를 봐야 하는 자리가 거의 없다.

 내게는 그 점이 오히려 다행이었다.

 

 접시들이 치워지고 디저트가 나왔다.

 과일 설탕절임에 얼음을 갈아 넣은 동남아식 빙수였다.

 

 이제 사업 얘기는 끝났다.

 조용히 앉아 있던 기자가 다시 담배를 피워 물었다.

 매캐한 담배향이 모두의 콧속으로 밀려들었다.

 

 “우실로. 바빡 쁘라위가 민주항쟁당 당사를 들락거리는 이유가 뭐야? 민주당하고 틀어졌어?”

 “모른다고 했잖아. 난 사업만 하는 사람이야.”

 “바빡 쁘라위 지금 어디 계시지?”

 “자카르타에 계시지.”

 “그러니까 자카르타 어디에?”

 “몰라.”

 

 우실로와 기자는 정치 얘기를 하고 있었다.

 서로 이름을 부르는 걸 보니 친밀한 사이 같았다.

 캐서린과 나는 두 사람이 대화에 끼지 못하고 얼음만 축냈다.

 갑자기 기자가 나를 돌아보며 물었다.

 

 “인도네시아 정치인 아는 분 있어요?”

 “저는 와히드 대통령을 존경합니다.”

 

 내 말을 듣자마자 캐서린은 사레들렸다.

 캑캑대는 캐서린의 입에서 반쯤 씹은 석류가 튀어나오는 것을 보고 나는 아차 싶었다.

 기자는 테이블을 치며 웃어댔다.

 

 “맞아요. 하하. 좋은 분이죠. 하하.”

 

 와히드 전 대통령은 수하르토 독재정권과 싸운 사람이다.

 골카르당 소속 우실로에게는 숙적이었던 셈이다.

 

 굳이 그 자리에서 와히드 얘기를 꺼낼 생각은 없었다.

 기자가 갑자기 물어보는 바람에 그 이름이 툭 튀어나온 것이다.

 어쨌든 와히드 대통령이 종교 개혁을 주도해 세계에서 가장 온건하고 개방적인 이슬람을 만든 건 사실이니까.

 

 우실로는 사업가답게 와히드 얘기를 듣고도 웃음을 흘렸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명함 하나 주세요. 저도 한식 좀 먹어보게.”

 

 기자는 자기 명함은 주지도 않고 내 명함만 받아 챙겼다.

 나는 와히드 얘기를 잘못 꺼낸 뒤부터 애꿎은 얼음만 씹어댔다.

 

 **

 우리는 저택을 나왔다.

 캐서린은 우실로에게 공손히 인사한 뒤 차에 올라타자마자 끓어올랐다.

 그녀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는 건 보기 힘든 광경이었다.

 

 “미스뜨르. 내가 말 조심하랬잖아요!”

 “미안해... 와히드 얘기가 갑자기 튀어나와서... 내가 의도한 건 아닌데...”

 “와히드 얘기만 문제인줄 알아요?”

 “또 뭐가 있지?”

 “다 문제라고요! 다! 다!”

 

 캐서린이 등받이에 어깨를 기대고 심호흡을 했다.

 이럴 땐 아무 말도 해선 안 된다.

 어떤 자그마한 손짓 하나도 해서는 안 된다.

 나는 부동자세로 앉아서 두 손을 무릎 위에 올려놓고 정면을 주시했다.

 한참 뒤 캐서린이 입을 열었다.

 

 “미스뜨르는, 아무래도 사업과 안 맞아요.”

 “그건 맞아.”

 “사업하는 사람은 입에서 나온다고 다 말해선 안 돼요. 유연해야 하고요.”

 “맞아.”

 

 캐서린이 한숨을 푹 쉬었다.

 

 “캐서린. 하지만... 하지만 말이야. 나는 내 방식으로 끝까지 한번 가보고 싶어.”

 “절대 안 돼요.”

 “왜 안 돼?”

 “돌담에 들어온 스무 살 애들 생각해 보세요. 걔들한텐 돌담이 전부에요. 미스뜨르가 실패하면 걔들은 일자리 찾아서 떠돌아야 돼요.”

 

 나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캐서린이 옳았다.

 사업을 시작한 이상 나 혼자 살아갈 수 없다.

 내 어깨 위에는 나만 바라보고 있는 삶들이 얹혀 있었다.

 나는 우실로라는 권력자 앞에서 묻고 싶은 것을 참고 말하고 싶은 것을 참아야 했다.

 내가 틀렸다.

 

 “우실로 제안은 어떡할 거예요? 다행히 기분 상해 보이진 않았어요.”

 “좀 더 생각해보자.”

 “우리가 헤엄칠 필요 없어요. 헤엄은 고래가 헤엄칠 거예요. 우리는 고래 등 위에 타기만 하면 돼요.”

 “근데 그 제안이란 게 말이야, 나한테는 우리가 먹은 설탕조림 같아.”

 “무슨 뜻이에요?”

 “시들시들 하고 아무 생명력 없다는 뜻이야.”

 “경영권은 과감히 포기해도 돼요.”

 “좀 더 생각해 보자.”

 

 캐서린이 차창 밖을 보았다.

 우리는 고지대의 저택촌을 천천히 내려가고 있었다.

 우리를 스쳐 지나가는 저 거대한 철문 뒤에 어떤 권력자들이 웅크리고 있을지 나는 궁금해졌다.

 캐서린이 뭔가 생각났다는 듯 나를 돌아보았다.

 

 “우실로 제안이 정 마음에 안 들면 그분한테 투자를 부탁해보지 그래요?”

 “그분이라니?”

 “꼼빠스TV 움직인 분이요. 내가 모를 줄 알았어요?”

 

 나는 고개를 흔들었다.

 

 “안 돼. 그분은 이제 절대 도와주지 않아.”

 “세상에 절대 안 되는 건 없어요.”

 “그분은 절대 안 돼.”

 “대체 미스뜨르가 어떻게 그런 사람을 알게 됐는지 불가사의해요.”

 

 자카르타 교민사회 인맥을 넓힐 주변머리도 없는 주제에, 어떻게 권력자에게 줄을 댔냐는 뜻이었다.

 물론 나는 설명해줄 수 없었다.

 

 “그건 말 못 해.”

 “음...”

 

 캐서린이 안경을 고쳐 쓰고 생각에 잠겼다.

 권창우라는 인간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교육시켜야 할지 난감한 표정이었다.

 

 “젊은 외국인 남자들이 중앙 자카르타 워커힐 수영장에 모인다는 소문이 있어요.”

 “집에도 수영장 있는데 왜 거길 가?”

 

 자카르타는 외국인이 사는 집이라면 대부분 마당에 수영장이 있다.

 한국 교민들이 모여 사는 남자카르타의 모든 아파트에도 수영장이 있다.

 집안에 들어가지 않더라도 수영장이 얼마나 화려한지 살피면 집값을 짐작할 수 있다.

 

 “워커힐 수영장에 인도네시아 귀부인들이 자주 가요. 그 여자들한테 몸매 과시 하고 잘 보이면 연줄을 얻을 수도 있어요.”

 “그래?”

 “사실인지 아닌지는 몰라요. 어쨌든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사업가는 그렇게 해서라도 사업을 살린다는 거예요. 사업가는 공무원이나 학자가 아니잖아요. 실패하면 바로 벼랑 끝이에요.”

 “나도 수영장 한번 가볼까?”

 

 캐서린이 내 몸을 위아래로 흝었다.

 

 “참아요. 미스뜨르는 불가능해요.”

 “알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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