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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기타
대망 : 아마쿠사의 신
작가 : 한연화
작품등록일 : 2019.9.20

"제가 원하는 것은 전국을 일통하고 강한 군주가 되어 백성들을 덕으로 교화하는 것입니다. 그 길에는 지독한 피비린내와 가시밭길만이 있겠지요. 이런 저라도 받아주실 수 있겠습니까?" 끝없는 전란이 이어지는 전국시대의 일본. 천하를 무로 덮는 운명을 타고났으나 누나에 의해 사람이되 사람이 아닌 자, 히닌이 되어 쫓겨난 오와리국의 후계 유죠와 인간들의 전장에서 태어난 전쟁의 여신 아마쿠사미코토의 전국일통을 향한 일대기가 시작된다. 격랑의 역사 속, 그들의 삶과 사랑은 과연 어찌 될 것인가?

 
제12장 공명(共鳴)의 갈림길(2)
작성일 : 19-10-30 06:34     조회 : 230     추천 : 0     분량 : 7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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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지조사는 속전속결로 진행되었다. 토지조사를 담당한 관리들에게 뇌물을 주고 조사를 미루거나 수확량을 축소해 보고할 생각이었던 하타모토들은 황금빛 봉황이 새겨진 화려한 검정색 고소데를 아무런 무늬도 없는 검정색 고소데들 위에 걸치고 나타난 카이히메의 기세에 눌려 그저 몸을 낮추고 떨고 있을 뿐이었고, 이 기회를 틈 타 하타모토들이 주는 뇌물로 한 몫 두둑이 챙기려던 관리들도 이러한 분위기에 짓눌려 계획한 날짜에 정확한 조사를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

 

  “이상하지 않으냐.”

  “무엇이 말입니까.”

 

  관리들에게서 받은 보고서들을 하나하나 검토하던 카이히메가 이마를 짚으며 다 식은 찻잔에 손을 뻗었다. 옆에 앉은 스이즈키가 얼른, 철화로에 숯을 올리고 물이 담긴 주전자를 올려놓았다.

 

  “지금껏 올라온 보고서들을 보아하니 지난 십 년 간 관리들이 아버지에게 보고한 수확량은 모두 조작된 것이었다. 사실은 그보다 훨씬 많은 수확량을 기록하고 있었으면서 매년 수확량을 축소해 보고했던 것이지.”

  “그렇습니까.”

  “그뿐이냐. 매년 자연재해로 수확량이 감소하였다 보고하면서도 정작 어디에서 얼마나 감소하였는지에 대해서는 제대로 보고하지 않았다. 이것들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이겠느냐?”

  “하면…….”

 

  보고서를 다 읽은 카이히메가 아라츠보네를 불러들였다. 아라츠보네가 들어와 무릎을 꿇고 허리를 깊이 숙이자 카이히메의 손에 들린 봉투 하나가 그녀의 앞으로 툭 떨어졌다.

 

  “그 봉투에는 지난 십 년 간 하타모토들을 관리해온 자와 그 일족들의 명단이 들어 있다. 또한 쇼비타 성 내에서 하타모토들과 관리들과 내통해온 자와 그 일족들의 명단 또한 들어 있다. 나는 지금 즉시 쇼비타 성으로 돌아갈 테니, 너는 남아 명단에 있는 자들을 모두 잡아서 내 앞에 꿇리도록.”

 

  카이히메가 쇼비타 성으로 돌아온 지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아 명단에 적힌 이들이 모두 잡혀 들어왔다. 제각기 오랏줄에 묶여 무릎 꿇려진 이들은 삼봉행이 자리한 앞에 카이히메가 검을 들고 앉아 있는 것을 보고 자신들의 운명을 직감한 듯 눈을 감았다.

 

  “감히 하늘같은 주군을 기만하고 힘없는 백성들을 수탈한 이들이 무엇으로 그 죄를 갚을 수 있겠는가. 또한 그 자손들이 무엇을 보고 배우겠는가. 그러니 자손만대까지 베어버림이 마땅하며, 그 시신은 길거리에 내걸어 새로 만든 무기의 예리함을 시험해보는 것이 옳다.”

 

  말을 마친 카이히메가 자리에서 일어나 앞줄에서부터 차례로 한 사람씩 베어나가기 시작했다. 옷소매며 손끝, 그리고 목과 얼굴에 피가 튀었지만 카이히메는 아무런 표정의 변화도 없이 그저 칼날에 묻은 피와 살점, 기름을 털어내며 일렬로 무릎을 꿇고 앉은 이들 모두를 베어갈 뿐이었다.

 

  “응애애응애애.”

 

  그때였다. 맨 뒷줄에 앉아있던 여인의 품 속에서 갓난아기가 자지러지게 울어대기 시작했다. 여인은 어떻게든 아기를 달래려했으나 아기는 더욱더 발버둥을 치며 성이 떠나가라 울어댈 뿐이었고, 그 순간 카이히메와 여인의 눈이 마주쳤다.

 

  “전하!”

 

  여인이 땅바닥에 엎드렸다. 여인은 아이만은 살려달라며 울부짖기 시작했다. 갓난아기가 무슨 죄가 있겠느냐 읍소하며 한참을 울던 여인은 은전을 베풀어 아이를 살려주신다면 전하의 덕망이 더욱 더 높아지지 않겠느냐는 말로 카이히메를 설득하며 빌고 또 빌었다. 그러나 카이히메는 차가운 표정으로 여인을 노려볼 뿐이었다.

 

  “한 구니의 다이묘는 한 입으로 두 말을 하지 않는다. 법과 명령이라는 것은 철저히 지켜질 때에만 그 의미가 있는 법. 그리고 그것은 법을 만들고 명령을 내리는 자에게도 마찬가지다. 한데, 예외를 두어 갓난아기라고 해서 살려준다면 그 누가 있어 법을 지키고 명령을 따르겠느냐.”

 

  마침내 맨 뒷줄까지 다가온 카이히메의 칼날이 가장 먼저 아이의 몸통을 반으로 갈랐다. 아이의 울음이 멎고 이번에는 여인의 차례가 되었고, 마침내 처형이 끝나자 카이히메는 또다시 명령을 내렸다.

 

  “일전에 작성한 명단에 적힌 하타모토와 그 일족들을 잡아들여라. 내 오늘처럼 직접 처형할 것이다. 하늘같은 주군을 기만하고 힘없는 백성들을 수탈한 죄를 내 친히 물을 것이니 다들 그리 알라.”

  “예, 전하.”

 

  삼봉행이 일제히 깊이 허리를 숙이며 명령에 따르겠다는 의지를 표했다. 카이히메는 무뎌진 칼을 던지고 자신의 처소로 돌아가며 스이즈키에게 말했다.

 

  “견딜 만 하겠느냐?”

  “무엇이 말입니까?”

  “앞으로는 그런 광경을 수도 없이 봐야 할 것이다. 그래도 견딜 수 있겠느냐 이 말이다.”

  “전하.”

 

  카이히메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돌렸다. 고개를 돌리는 카이히메의 허리께에 매어져 있는 수수한 검정색 머리끈이 헐렁해져 있었다. 스이즈키는 카이히메의 뒤로 돌아가 머리를 다시 묶어주었다.

 

  “견딜 수 없다면 지금이라도 떠나거라. 잡지 않을 테니.”

  “전하.”

 

  스이즈키가 카이히메를 마주보았다. 다시 카이히메의 앞으로 돌아온 그는 카이히메를 끌어안으며 말했다.

 

  “저는 전하께서 지옥을 지키는 야차가 되신다면 기꺼이 지옥으로의 여정을 함께 할 것이고, 촌부가 되신다면 농군이 되어 모를 심을 것입니다.”

  “스이즈키……?”

  “그러니 제게 가라 하지 마십시오. 얼마든지 견디고 또 견딜 터이니 가라 하지 마십시오.”

 

  카이히메와 스이즈키는 그 자리에 서서 오랫동안 서로를 바라보았다. 카이히메는 자신도 모르게 피 묻은 손을 뻗어 스이즈키의 뺨을 쓰다듬었다.

 

  “전하께서는 이미 저의 해와 달이고, 빛과 숨이십니다. 꿈과 별이십니다. 그런데 그런 전하를 두고 제가 어디를 갈 수 있겠습니까.”

 

  그렇게 카이히메와 스이즈키가 진정한 부부로서 서로를 바라보게 된 그날이 지나고 며칠 후, 쇼비타 성 내에서는 다시 한 번 피바람이 일었다. 그동안 전횡을 일삼고 수확량을 축소해 보고하고 토지의 상태를 엉터리로 보고해 선대 다이묘를 속였다는 죄목으로 끌려온 하타모토와 그 일족들은 카이히메의 손에 직접 처형되었고, 그 시신은 길거리에 내걸렸다. 그리고 그날 이후로 카이히메는 대대적인 인사개혁을 단행해, 쇼비타 성 내의 시종장과 시녀장들을 포함해 안팎으로 수많은 인물들을 새로이 천거하도록 했다. 특히, 카이히메의 개혁에서 주목할 만 한 점은 신분에 관계없이 인재를 추천하도록 한 것이었는데 그로 인해 오와리국에서는 아시가루들과 농민들에게도 출세의 길이 열리게 되었다. 종래의 신분질서를 해치는 이와 같은 일에 가신들은 우려를 표했으나, 이미 공포의 군주, 절대의 군주, 피의 군주로 불리기 시작한 카이히메의 의지를 꺾을 수는 없었다.

 

  “지금 내게는 나와 함께 천하 통일의 초석을 놓을 인재들이 필요하다. 지금의 고급 사무라이들 중에 그런 인재가 얼마나 되겠는가?”

  “…….”

  “호랑이 같은 아비 밑에 개 같은 자식이 나올 수 있는 법이듯 아무리 고급 사무라이라 해도 천하 통일의 초석을 놓는데 일조할 만한 그릇이 아닐 수 있을진데, 그렇다 하더라도 내가 굳이 그런 자들을 기용해야 한단 말인가? 단순히 그들이 고급 사무라이라는 이유로?”

  “…….”

  “그러니 이번 인사에서는 반드시 신분에 관계없이 인재들을 고루 뽑아 등용하도록. 다들 알겠는가?”

  “예, 전하.”

 

  아시가루와 농민 출신도 상당수 섞여 있는 인사개편이 끝나고 새로운 하타모토들과 관리들이 임명되자 카이히메는 잇키를 일으켰던 지도자들을 쇼비타 성으로 잡아오도록 조치했다. 마을을 버리고 도망친 곳의 지도자와 그 일족들에게는 가벼운 책형이, 쇼비타 성에 소장을 전하기 위해 상경한 곳의 지도자와 그 일족들에게는 얼굴에 낙인을 찍어 히닌으로 만드는 낙형이, 그리고 무기를 들고 관리들을 공격한 곳의 지도자와 그 일족들에게는 사형이 내려졌다. 사형은 이번에도 역시 카이히메가 직접 집행하였으며, 이번에는 성 내의 백성들 모두가 볼 수 있는 곳에서 공개적으로 집행되었다. 이로써 아무도 카이히메의 권위에 도전하지 못하게 되었고, 카이히메는 명실상부한 이시다가와 오와리국의 진정한 주인이 되었다.

 

  “구니 내의 전염병이 창궐하는 곳마다 무료진료소를 짓도록.”

 

  그런가 하면, 카이히메는 오와리국 내에 창궐하는 전염병에 시달리는 백성들을 위해 곳곳에 무료진료소를 짓도록 하였다. 의사와 약재, 그리고 필요한 모든 물품과 식량을 아낌없이 지원하는 카이히메의 노력에 오와리국 내의 전염병은 어느 정도 소강상태로 접어들었고, 그저 카이히메를 두려워하기만 하던 백성들도 이제 카이히메를 차츰차츰 존경하고 따르게 되었다.

 

 ※

 

  “역시 마사토부의 딸인가.”

 

  한편, 아마쿠사미코토는 오와리국의 소식에 귀를 기울이며 이 모든 일들을 전해 듣고 있었다. 신들과 인간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이야기들을 전해 듣던 아마쿠사미코토는 자신의 예상이 맞았구나 하며 담뱃대에 불을 붙였다. 이로써 카이히메 그녀는 잔혹하고도 자애로운 군주로 오와리국의 백성들에게 각인되었고, 과단성 있고 추진력 강한 다이묘로 전국의 이목을 끌기 시작하였다. 그런 그녀가 자신의 존재를 확실히 각인하는 방법은 이제 전쟁만이 남아 있는 상태였다. 그러니……

 

  “이제 그녀의 자리를 넘볼 수 있는 존재는 아무도 없게 되었군.”

 

  그녀가 여자라서 신불들이 분노하였다는 소문을 퍼뜨린 것은 아마도 호시탐탐 그녀의 자리를 노리고 있는 그녀의 숙부들일 터였다. 그러나 전쟁을 앞둔 상태에서 과단성과 추진력을 갖춘, 그리고 가신들과 하타모토들, 백성들을 모두 장악할 수 있는 군주에게 흠집을 낼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닌가. 그러니 이제 그녀의 숙부들은 자연히 뒷방에서 세월이나 보낼 수밖에 없게 되었을 것이었다.

 

  “마사토부도 평생 동안 하지 못했던 일을 그의 딸이 하는구나. 그도 동생들을 다스리는 일에 어려움을 겪었건만 그 딸은 일거에 숙부들의 사지를 잘라 창살 없는 감옥에 가두다니.”

 

  아마쿠사미코토는 담뱃재를 탁탁 털다 말고 포물선을 그리며 하늘을 날아가는 새를 바라보았다. 하얀 배에 검은 날개를 가진 까치가 깍깍, 하는 울음소리를 내며 평화로이 날아가는 하늘이 오늘따라 무척 푸르러보였다.

 

  “정말 이시다가의 놈들은 대단하지 않은 놈들이 없군. 호부(虎 父)밑에 견자(犬 子) 없다더니 그 말에 잘 들어맞는 부녀지간이 아닌가.”

 

  이시다가가 하루후사를 죽인 원수의 가문이기는 했지만 이시다가 부녀의 능력만은 인정해줄 수밖에 없다 생각하던 아마쿠사미코토의 생각이 문득, 이 신사에 머무르는 마사토부의 아들에게 닿았다. 유죠라는 그 아이에 대해 생각하다 말고 아마쿠사미코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아이가 아들이라는 것만 빼고는 그녀에게 크게 위협이 되는 것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 까닭이었다. 아이는 아직 나이도 어렸고, 그렇게 능력이 뛰어난 것 같지도 않았다. 그런데 그런 아이가 그리 큰 위협이라고 굳이 히닌의 낙인까지 찍어가며 구니에서 추방해야 했을까.

 

  “뭐, 모르지. 나이가 어린 만큼 배움이 짧아 능력이 드러나지 않는 걸지도.”

 

  여기까지 생각하다 말고 아마쿠사미코토는 자신이 지금 아이를 애써 비호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입을 틀어막았다. 자신이 지금 굳이 그 아이를 비호하는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그저 하루후사를 떠올리게 한다는 이유만으로 그 아이를 비호하는 것이라면 자신은 멀어도 한참 멀었구나 생각하며 아마쿠사미코토는 경내의 마당 한가운데에 드러누워 버렸다.

 

  “그래도 하루후사는…….”

 

  그러고 보니 하루후사가 능력이 있었던가. 와카와 한시에 뛰어나기는 했지만 그것이 곧 정치적, 군사적 능력은 아니지 않은가. 만약 그가 능력이 있었다면 그렇게 쉽게 나고야 성이 함락될 리도 없었을 테고, 그랬다면 자신과 헤어지는 일도 없었을 터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을 처음 만난 그날, 패색이 짙어가는 전장에서 자결하려 했을 리도 없었을 터였다.

 

  “그만 생각하자.”

 

  여태껏 그리워만 하던 하루후사를 상대로 드는 생각들을 견딜 수 없어 아마쿠사미코토는 몸을 웅크리고 머리를 무릎 사이로 집어넣었다. 왜 갑자기 이런 생각들이 드는지 알 수 없어 혼란스러워하는 아마쿠사미코토의 몸 위로 어디선가 바람에 실려 온 벚꽃잎들이 하롱하롱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지금은 절정에 달한 봄이 서서히 시들어가고 여름이라는 새로운 계절에 자리를 내줄 준비를 하는 시기였다. 그런데 이렇게 늦게까지 벚꽃이 피어 있었다니. 참 이상도 하다는 생각을 하며 아마쿠사미코토는 노래를 불렀다.

 

  생각해 보면 이 세상은 영원히 깃들 곳이 못 되기에

  마치 풀잎에 내린 백로와도 같고, 물에 비친 달보다 덧없다네

  금빛 골짜기에서 꽃을 노래하던 영화는 앞서서 무상한 바람에 이끌려가고,

  남쪽 누각의 달을 즐기던 사람들도 그 달보다 앞서서 세상의 구름 속에 숨었다네

  인간의 오십 년은 하천의 세월에 비한다면 한낱 덧없는 꿈과 다르지 아니하니

  한 번 삶을 받아서, 멸하지 않을 자가 어디 있으랴

 

  그러고 보니 자신은 영원을 사는 존재가 아니던가. 그런 자신이 필멸의 삶을 사는 인간이 삶의 무상함을 느끼고 불문에 귀의하는 내용을 담은 노래를 부른다는 것이 어딘지 모르게 어색하게 느껴져 아마쿠사미코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따지고 보면 인간의 삶도 그리 무상하지만은 않지. 특히, 사무라이들의 삶이 그러하지 않나. 누군가를 끊임없이 죽이고 또 죽이다 자기 자신마저 누군가의 손에 죽어야 하는 그런 삶. 그런 삶을 어찌 무상하다 할 수 있을까. 그렇지, 하루후사?”

 

  아마쿠사미코토는 하릴없이 제단에 앉아 아이가 이곳에 오고 나서 처음으로 아이를 기다렸다. 지금쯤 아이는 근처의 마을에서 음식을 구걸하며 무수한 매질을 견뎌내고 있을 터였다. 그런 그 아이도 제 누나의, 제가 떠나온 오와리국의 소식을 들었을까.

 

  “가미사마.”

 

  한참을 기다린 끝에 아이가 본전 안으로 들어섰다. 신상의 발치에 댓잎에 싼 주먹밥 두 덩이를 내려놓는 아이의 얼굴에는 오늘도 멍자국이 가득했다.

 

  “오와리국의 소식을 들었습니다. 제 누나인 카이히메가 백성들을 수탈하던 하타모토와 그 일족들을 베었다지요. 또 그들과 결탁해 그간 수확량과 토지 상태를 거짓으로 보고해온 관리와 그 일족들도 모두 베었고요.”

  “…….”

  “또 대대적인 인사개혁을 단행해 아시가루와 농민들에게도 하타모토나 관리가 될 수 있는 출세길이 열렸다지요.”

  “…….”

  “그리고 잇키를 일으킨 지도자들과 그 일족들을 처벌했다지요. 집단으로 도망친 마을의 지도자들과 그 일족들은 책형, 소장을 들고 쇼비타 성으로 간 마을의 지도자들과 그 일족들은 낙형에 쳐하고, 무기를 들고 관리들을 공격한 마을의 지도자들과 그 일족들은 직접 처형했다고요.”

 

  아이는 오와리국의 소식을 알고 있었다. 아마 이곳에까지 퍼진 오와리국의 소식을 사람들의 어깨너머로 전해 들었으리라. 아마쿠사미코토는 아이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역시 카이히메입니다. 카이히메라면 능히 그럴 줄 알았어요. 항상 그렇게 뱀 같이 치밀하고 철두철미한 사람이니까요. 그리고 적당한 기회를 잡을 줄 아는 직감 또한 타고난 인물이지요.”

 

  아이는 자신의 자리를 빼앗고 자신을 히닌으로 만들어 추방한 누나를 인정하고 있었다. 적을 인정하기가 쉬운 일이 아닐 진데도 그리 하는 아이의 모습을 보며 아마쿠사미코토는 마음에 무엇인지 모를 잔잔한 파문이 번져가는 것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꼭 그렇게 해야만 했을까요?”

  “……?”

  “군주의 권위에 도전하는 죄를 지은 것은 군주의 권위에 도전하는 자들이지, 그 일족들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런데 왜 그 일족들까지 죽여야 했을까요?”

  “……!”

  “죄를 지은 자가 아닌 자를 죽이는 것은 무고한 이의 생명을 빼앗는 일. 그러나 죄를 지은 자의 일족을 죽이는 것은 무고한 이의 생명을 빼앗는 일이 아닙니다. 대체 둘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죄를 지은 자의 일족을 죽이는 것과 무고한 이의 생명을 빼앗는 일은 본질적으로 무슨 차이가 있단 말입니까?”

 

  아이의 눈이 처형된 마을의 지도자들의 일족들에 대한 연민과 함께 새로운 의문과 총기로 빛나고 있음을 아마쿠사미코토는 알아볼 수 있었다. 아이는 지금 종래의 일본 사회를, 그리고 수많은 다른 사회를 지배해온 질서인 연좌제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는 것이었다. 무고한 이의 생명을 빼앗는 일은 금하면서 죄를 지은 자의 일족을 죽이는 것은 당연시 여기는 수많은 사회에 대한 의문을 던지는 아이의 눈을 바라보다 말고 아마쿠사미코토는 고개를 돌렸다. 아이의 눈을 보면 볼수록 점점 더 거세져만 가는 파문을 견딜 수 없어진 까닭이었다.

 

 

 

 

 
작가의 말
 

 드디어 유죠가 기존의 질서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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