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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나의 자카르타
작가 : 히타히타
작품등록일 : 2019.9.2

도망치듯 떠나온 그곳에서 마법이 시작된다.

 
이방인으로 산다는 것
작성일 : 19-10-29 08:54     조회 : 298     추천 : 0     분량 : 4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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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캐서린을 유심히 보았다.

 작은 코에 얹혀 있는 두꺼운 안경이 위태로워 보였다.

 캐서린은 그 안경을 손가락으로 쓱 올리고 다시 영어로 말했다.

 

 “어릴 때... 그러니까 그 일이 있은 뒤에... 밖에 나갈 때 항상 질밥을 쓰고 다녔어요. 우리는 크리스천이지만 무슬림처럼 보여야 했으니까.”

 

 ‘그 일’이란 화교학살을 말한다.

 화교는 인도네시아의 경제를 장악하고 있지만, 사회적으로 심한 차별을 받았다.

 수하르토 정권 때는 강제로 동화정책을 펼쳤고 그 이후로도 정계나 관계에 입문하기 어려웠다.

 반년 뒤 조코위 대통령이 화교를 자카르타 주지사에 임명했을 때 세계적인 화제가 되기도 했다.

 

 캐서린은 싱가포르 교육청이 주는 장학금을 받았다.

 인도네시아에서 싱가포르 장학금을 받는다는 건 최상위권 수재라는 뜻이다.

 캐서린은 싱가포르에서 회계를 전공한 뒤 캐나다에서 호텔경영학을 전공했다.

 그래서 영어를 네이티브 수준으로 구사한다.

 언젠가 캐서린은 캐나다 영주권을 받으려다가 포기했다는 말을 흘리기도 했다.

 나는 문득 그녀가 왜 캐나다를 떠났는지 궁금해졌다.

 

 “캐서린. 왜 캐나다 영주권 안 받았어?”

 “음... 캐나다에 살아도 마이너리티에요. 우리는 어디서나 그래요. 어디서든 비주류죠.”

 “인도네시아보다는 낫지 않아?”

 “그래도 여긴 내 능력을 알아주기라도 하니까. 우리가 회계를 잘하는 건 그것밖에 할 수 없어서 그래요.”

 

 나는 캐서린이 영업 결산을 할 때마다 감탄했다.

 장부를 보며 계산기를 두드리는 그녀의 손놀림은 놀라움을 넘어 초능력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내가 밤 새워 해야 할 일을 캐서린은 단 몇 십분 만에 해치웠다.

 캐서린은 그 능력으로 자카르타에서 살아남았다.

 

 한 사회의 이방인으로 산다는 것.

 나는 한국을 떠날 때까지 그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 자카르타를 돌아다니다가 ‘강한 인도네시아’라는 구호와 마주치면 섬뜩하다.

 그 강함은 그들만의 강함이기 때문이다.

 

 캐서린이 나를 보며 웃었다.

 캐서린답게 어색한 웃음이었지만 나는 마음에 들었다.

 

 “남들은 우릴 냉정하다고 욕해요. 하지만 우린 친구가 되겠다는 사람을 만나면 진심으로 고마워해요.”

 

 그것은 캐서린이 던질 수 있는 가장 다정한 말이었다.

 그 순간만큼은 화교에 대한 수많은 논란들, 돈 앞에서 보이는 냉혹함, 가사도우미나 경비를 함부로 부리는 행태, 시장에 가면 현지인을 보내 값을 깎는 약삭빠름 등을 잊었다.

 나는 처음으로 캐서린과 사람으로 만나고 있었다.

 

 우리는 고속도로 휴게소를 지나쳤다.

 한 아주머니가 노란 물이 든 비닐봉투를 들고 차에서 내렸다.

 아이가 차에서 싼 오줌을 버리려는 것 같았다.

 나는 아주머니를 가리키며 캐서린에게 말했다.

 

 “어디나 엄마는 똑같아.”

 “아 참, 미스뜨르한테 물어볼 게 있어요.”

 

 캐서린이 가방에서 작은 상자를 꺼냈다.

 인삼 모양의 식물이 조잡하게 그려진 상자였다.

 

 “엄마가 얼마 전에 한국 여행 갔던 거 얘기했나요?”

 “안 했어.”

 “이걸 사왔는데 좋은 건지 봐 주세요.”

 

 딱 봐도 유통기한 지나 말라비틀어진 홍삼이었다.

 홍삼의 붉은 빛이 남아 있지 않아 잿빛에 가까웠다.

 상자 겉면에는 제조일이나 유통기한 표시도 없이 천룡사라는 웃기는 회사 이름만 적혀 있었다.

 

 “이걸 누가 팔았대?”

 “가이드가 권했대요. 좋은 거라고.”

 “이거 많이 사셨어?”

 “예. 온가족이 오래 먹을 만큼.”

 

 인도네시아인들은 한국 인삼을 좋아한다.

 특히 나이 든 남자들은 인삼이 최고의 정력제라고 믿는다.

 가이드가 사기 치기 딱 좋은 사람들인 셈이다.

 

 “홍삼 중에 최하급 홍삼이야. 이거 봐. 말라비틀어졌잖아.”

 “그래요? 하하. 속았네. 하하.”

 

 캐서린이 어린애처럼 웃었다.

 똑똑한 척은 혼자 다 하는 캐서린이 인삼 앞에선 허당이 되었다.

 우리는 그렇게 천천히 반둥으로 흘러갔다.

 

 아름다운, 캐서린에 대한 아름다운 추억들.

 

 **

 반둥의 거리는 깔끔했지만, 도로는 깔끔하지 못했다.

 노빨이 좁은 도로를 헤치며 힘겹게 반둥 북쪽으로 차를 몰았다.

 하늘은 아직 우기 끝물이라는 것을 잊은 듯 햇볕을 쨍쨍 내리쬐고 있었다.

 

 반둥 북쪽엔 유럽식 저택들이 모여 있다.

 우리는 화려한 저택들을 지나쳐 북쪽으로 계속 올라갔다.

 

 우리는 간신히 점심시간에 맞춰 도착했다.

 노빨이 집을 못 찾을까 걱정되는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러나 그럴 걱정은 없었다.

 우리는 이내 이 일대에서 가장 큰 저택의 정문과 마주쳤다.

 정복을 입은 삿빰(경비원) 두 명이 정문을 지키고 있었다.

 

 캐서린이 차창을 내리고 우리의 신원을 밝혔다.

 경비원들이 무전기로 연락을 주고받더니 정문을 작동시켰다.

 거대한 철문이 웅웅 소리를 내며 둘로 갈라졌다.

 이제 우리 눈앞에는 저택 본관으로 가는 널따란 도로가 펼쳐졌다.

 말 한 마디 없던 노빨이 저택으로 차를 몰며 계속 중얼거렸다.

 

 “브사르, 브사르야(크다 커).”

 

 노빨만이 아니었다.

 우리 모두 저택의 규모에 압도됐다.

 쭉 뻗은 도로 양옆으로 축구장을 몇 개 들여놔도 될 만한 정원이 펼쳐졌다.

 나는 저 망할 정원수들을 다 베어 내고 축구 꿈나무들을 위한 축구장을 만드는 게 어떨까 생각했다.

 시원한 반둥에서 축구하면 성적이 더 나올지도 모르니까.

 

 우리는 저택 정문 앞에 도착했다.

 점잖은 얼굴의 집사가 나와 우리를 별채의 식당으로 안내했다.

 넓은 정원을 바라보게 지어진 야외식당이었다.

 인도네시아 전통가옥처럼 짚으로 된 지붕을 얹혀 테이블에 그늘을 드리웠다.

 

 반둥이 아무리 시원해도 적도는 적도였다.

 쨍쨍 내리쬐는 햇볕에 내 바띡 겨드랑이가 벌써 축축해졌다.

 

 식당엔 중년 남자 두 명이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그 중 한 남자가 우릴 보고 일어서서 악수를 청했다.

 첫눈에 봐도 고급인 걸 알 수 있는, 내가 입은 포장지와 비교되는 바띡을 입었다.

 남자가 명함을 내밀었다.

 

 ‘PT 수리야나 CEO 우실로.’

 

 그가 바로 우리가 만나기로 한 쁘라위의 측근이었다.

 귀밑머리가 희끗희끗한 50대 남자였는데, 볼 살이 축 늘어져 있었다.

 

 “반둥까지 오시라고 해 죄송합니다. 차가 많이 막혔죠?”

 “아닙니다. 즐겁게 왔습니다.”

 “오, 인도네시아어를 잘하시네요?”

 “욕도 잘합니다. 하하.”

 

 캐서린이 쓸데없는 소리 말라는 눈짓을 했다.

 나는 의자에 앉아 있는 남자를 보았다.

 마르고 검은 남자였는데 우실로와 달리 낡은 트렌치코트를 입었다.

 소매 끝이 닳아서 반질반질했다.

 

 그는 인사도 하지 않은 채 향이 강한 인도네시아 담배를 피웠다.

 인도네시아는 세계 최대 담배 생산국이지만, 화이트칼라들은 대부분 수입 담배를 피운다.

 국산담배가 너무 독하기 때문이다.

 남자가 피우는 저 담배는, 과장을 좋아하는 박 사장의 말을 빌면 ‘망치로 머리를 때리고 죽은 지 사흘 된 사람도 발기시키는’ 물건이었다.

 우실로가 남자에게 말했다.

 

 “손님이 왔으니 자넨 이만 가게.”

 “밥은 먹고 가야지. 나도 배고파.”

 

 이상한 남자였다.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소탈하지만 예의를 중시한다.

 우실로와 친구처럼 얘기할 수 있는 상류층이라면 더욱 그렇다.

 하지만 남자는 손님이 와도 자리를 비켜주지 않고 멀뚱멀뚱 눈알만 굴렸다.

 인도네시아에 와서 이런 유의 사람을 만난 적이 없었다.

 

 우리는 우실로 맞은편에 앉았다.

 우실로 옆 자리엔 남자가 앉아 턱을 괸 채 우리에게 눈웃음을 치고 있었다.

 

 “이 사람은 <뗌뽀> 기자 이브누입니다. 우리 일과 아무 관계도 없는데 안 나가고 버티네요. 어쩔 수 없죠.”

 

 <뗌뽀>라면 인도네시아에서 두 번째로 큰 신문사다.

 최대신문인 <꼼빠스>보다 진보적인 성향이라 지식인들이 많이 읽는다.

 나는 우실로의 소개를 듣고 기자라서 저렇게 천연덕스러운 거라고 생각했다.

 우실로는 기자를 투명인간 취급하기로 한 듯, 우리 쪽만 보고 말했다.

 

 “바띡을 입으셨군요. 잘 어울립니다.”

 “아, 이거요? 이거 마트에서 10만 루피 주고 산겁니다. 하하.”

 

 캐서린이 있는 힘껏 인상을 썼다.

 제발 그 입 좀 다물라는 신호였다.

 기자는 풉, 하고 웃음을 참다가 손이 흔들려 턱을 놓칠 뻔했다.

 

 하얀 유니폼을 입은 쁨반뚜(가사도우미)들이 음식을 날라 왔다.

 하나, 둘, 셋, 우리 테이블은 이내 수십 개의 접시로 가득 찼다.

 접시를 더 놓을 데가 없자, 이미 놓인 접시 위에 포개 놓았다.

 서울의 큰 한정식 집도 이렇게 가짓수가 많진 않다.

 나는 눈앞에서 펼쳐지는 접시들의 향연에 어리둥절했다.

 

 “빠당을 준비했습니다. 제대로 된 빠당은 드셔본 적 없을 것 같아서요.”

 

 나는 자카르타 쇼핑몰에서 빠당을 먹어본 적 있다.

 이렇게 정찬으로 차려진 빠당이 아니라, 유리 진열장에 접시들을 늘어놓고 맘에 드는 음식만 골라 값을 치르는 방식이었다.

 그때 먹은 빠당은 인상적이지 않았다.

 재료 본연의 깊은 맛 대신 소금, 설탕, 조미료가 활개 치는 맛이었다.

 

 나는 일단 밥을 펐다.

 빠당은 원래 맨손으로 먹는 음식이지만, 우실로는 우리를 배려해 숟가락과 포크를 준비해 두었다.

 나는 밥 옆에 삼발(매운 소스)을 조금 담았다.

 자카르타 푸드코트들이 내놓는 칠리소스 식의 분홍색 삼발이 아니라, 짜베(고추)를 곱게 갈아 만든 초록색 삼발이었다.

 나는 제일 먼저 른당을 집어먹기로 했다.

 

 른당.

 CNN이 세계 최고의 요리로 뽑은 인도네시아의 자랑.

 쇠고기를 각종 향신료와 코코넛 밀크에 조려 천상의 향을 풍긴다는 음식.

 

 하지만 자카르타에서 먹었을 땐 기대보다 별로였다.

 그저 한국식 장조림에 향신료 몇 개를 첨가한 요리였을 뿐이다.

 

 나는 른당을 삼발에 살짝 찍어 입에 넣었다.

 다양한 맛이 입안에 들어왔다.

 그 맛들이 서로 충돌하는 게 아니라, 조화를 이루며 은은하게 퍼졌다.

 고기는 육즙과 향이 살아 있고, 향신료들은 잘난 체 하지 않고 그 맛을 보좌하면서 여운을 남겼다.

 나는 진심을 담아 소리쳤다.

 

 “맛있습니다. 에낙! 에낙!”

 

 우리는 정신없이 음식들을 먹어 치웠다.

 트렌치코트를 입은 기자는 자기가 불청객인 걸 아는지 모르는지 제일 게걸스럽게 먹었다.

 우실로가 입가를 훔치며 말했다.

 

 “한식 잠재력이 엄청나죠?”

 

 나는 그제야 우실로가 우리를 반둥으로 부른 이유를 알아챘다.

 그는 뽐내고 싶었던 것이다.

 

 이 화려한 저택을 봐.

 그리고 무엇보다 이 빠당의 맛을 좀 봐.

 너희 조무래기들의 음식은 대국 인도네시아의 요리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야.

 이런 느낌이었다.

 나는 우실로의 의도대로 기가 살짝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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