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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에밀리가 연애하지 않는 이유
작가 : 정민
작품등록일 : 2019.10.6

농땡이 하녀, 상식과 권위가 통하지 않는 붉은나무 저택에 입성하다. *표지 커미션 : 꽃 작가님(@flo_ai_wer)

 
팔푼이를 찾는 아가씨 (2)
작성일 : 19-10-28 22:11     조회 : 227     추천 : 0     분량 : 4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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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8 : 팔푼이를 찾는 아가씨

 

 

  여느 때처럼 에밀리는 심부름을 빙자하여 책방에서의 여가시간을 즐기는 중이었다. 마르크 씨에게 인사하고 나오는 그녀를 누군가가 막아섰다. 마치 볼일이라도 있는 듯. 그러더니 제 얼굴을 가린 후드를 슬쩍 젖혔다.

 

  “비, 비비안 아가씨?”

  “쉿.”

 

  장난스럽게 웃은 비비안은 뒤쪽에 대고 까딱 손짓을 했다. 언제부터 있었는지 모를 녹스가 커다란 로브 하나를 들어보였다. 어어, 하는 사이에 그는 로브를 에밀리에게 둘러씌웠다.

 

  “가만히.”

 

  속삭이는 녹스의 목소리에 에밀리는 홀린 듯 얌전해졌다. 로브가 너무 커서 축 늘어지자 그는 소매를 접어주었다. 에밀리는 영문을 모른 채 의식의 흐름대로 생각했다. 근무 중에 하녀복을 가리면 안 되는데….

 

  이후 사람들의 눈을 피해서 조금 걸었다. 골목을 돌아 인적 없는 거리에 접어들었을 때, 비로소 가장 앞장서던 비비안이 멈췄다. 그녀는 손을 조금 꼼질거리더니, 거추장스럽다는 듯 로브를 휙 벗어던졌다. 로브 밑으로는 놀랍게도 아주 수수하고 유행 지난 겨울옷이 드러났다. 서민들이나 평상복으로 입을 법한.

 

  비비안은 에밀리에게 물었다.

 

  “나 어때?”

  “예쁘세요.”

 

  냉큼 대답하는 에밀리를 보고 비비안은 웃음을 터뜨렸다. 대답한 내용보다는, 반짝이는 두 눈이 너무나도 진심 같아서 웃음이 터진 거였다.

 

  “너도 예뻐.”

 

  그 말에 에밀리가 토끼눈을 했다. 예쁘다고? 내가? 이 고귀한 아가씨의 눈에? 그녀의 경계심은 눈 녹듯이 풀어져버렸고, 어느새 하나의 결론만이 남았다. 이 아가씨 엄청 좋은 사람인가봐.

 

  “땡땡이 좀 쳐도 돼?”

  “네, 얼마든지요!”

 

  만족스러운 대답에 비비안은 또 한 번 웃었다. 에밀리도 따라서 헤헤 웃었다. 죽이 잘 맞는 둘을 보며 녹스는 뒤에서 근심어린 표정을 지었다. 악마들의 만남이군.

 

  비비안은 구시가지의 조금 조잡한 거리로 에밀리를 이끌었다. 그녀는 마치 에밀리를 전부터 알고 지낸 것처럼 스스럼없이 팔짱을 꼈고, 실제로 두 사람은 영락없는 친구 사이로 보였다.

 

  가끔 가다 노점상이라든지 재미난 게 보이면 꼭 멈춰 서서 구경했다. 구경만 하는 게 아니라 이것저것 사서는 에밀리에게도 덥석덥석 안겨줬다. 덕분에 에밀리는 평소에 구경만 했지 굳이 살 생각은 안 했던 잡다한 액세서리며 간식거리를 잔뜩 샀다. 짐은 둘을 뒤따르는 녹스에게로 다 떠넘겨졌다.

 

  그렇게 이것저것 주고, 먹이고, 그러다 에밀리가 ‘근데 여기서 뭐하고 계시는 거지?’ 하고 생각할 때쯤, 비비안은 대뜸 물었다.

 

  “이 동네 잘 알아?”

 

  에밀리도 곧바로 대답했다.

 

  “저만큼 잘 아는 사람 없을걸요.”

  “동네 사람들도?”

  “당연하죠. 저 얼마나 예쁨 받고 다니는데요.”

 

  자신감 넘치는 대답에 녹스는 옆에서 픽 웃고 말았다. 에밀리는 그를 슬쩍 째려보았다. 진짜거든요? 누가 뭐랬나. 그런 시선이 오갔다.

 

  녹스의 의심이 합리적이긴 했으나 에밀리의 대답이 거짓말은 아니었다. 펜버에 정착한 지 얼마 안 됐을 때 그녀는 붙임성 좋고 잘 웃고 예쁘장해서 뜻밖에도 여러 사내 홀리고 다녔다. 하지만 거기에 빠져 섣불리 들이댔다가 대부분은 좋은 꼴 보지 못했다.

 

  ‘내 이상형 알죠?’

  ‘…….’

  ‘잘생겼어요? 돈 많아요? 앞으로 3년 이내에 대머리 가능성은?’

  ‘…….’

  ‘대체 무슨 자신감으로 나처럼 귀엽고 영리하고 성격 좋은 미녀에게 고백한 거예요?’

  ‘…….’

  ‘내가 당신과 연애해야 할 이유가 정녕…’

  ‘…그, 그만!’

 

  순진한 얼굴로 자존심을 바닥까지 자근자근 밟아놓는다는 소문이 펜버 뒷골목에 가닿을 때쯤 더 이상 고백해오는 얼뜨기는 없었다.

 

  아무튼 그런 사실이 중요치 않은 비비안은 화색이 되었다.

 

  “그럼 나 좀 도와줄래?”

 

  드디어 나온 그녀의 본론이었다. 아직 내용을 듣지도 않았는데 뒤에서 녹스가 무조건 거절하라는 듯 고개를 저었다. 에밀리는 본 체도 않고 혀를 쏙 내밀었다.

 

  아가씨가 원하신다면요, 하며 고개를 끄덕이니 또 화답처럼 예쁜 웃음이 날아왔다. 에밀리는 생각했다. 수도에는 저 웃음을 보기 위해서 영혼이라도 바칠 사람이 줄을 섰을지도 몰라. 꼼짝없이 그중 한 사람이 되어버리려는 순간에 비비안이 말했다.

 

  “무능한 팔푼이 새끼 하나가 필요해.”

 

  네?

 

  “결혼해야 하거든.”

 

  그 무능한 팔푼이 새끼랑요?

 

  “날 위해 찾아줄 수 있니?”

 

  그야 물론 할 수 있었다. 팔푼이 같은 남자쯤이야 펜버에 널렸으니까. 하지만 왜?

 

  녹스는 그저 이마를 짚고 있었다. 부연설명을 요하는 에밀리의 눈빛에 비비안은 조금 더 친절해지기로 했다. 그녀는 자신의 가출경위부터, 조금 뒤늦게 정한 가출목표까지 에밀리에게 하나하나 말해주었다. 꽤나 길게.

 

  “…해서, 대충 이렇게 된 얘기야. 따분하지?”

 

  에밀리는 입을 떡 벌렸다. 아니, 완전 흥미진진했다.

 

  원치 않는 결혼, 가출, 위장연애, 가문의 반대, 이런 건 모두 에밀리가 읽는 연애소설에서나 등장하는 단어였다. 그게 현실에, 그것도 한 사람의 인생에 이렇게나 다 때려 박혔다니! 에밀리는 어떻게든 이 소설 속 주인공 같은 여인을 돕고 싶었다.

 

  ‘근데 문제는…’

 

  지금 이 순간 너무나도 적절하지만 하필 그래서는 안 되는 후보 하나가 강력히 떠오른다는 거였다. 친구의 애인, 크리스토퍼 백작이.

 

 ***

 

  크리스토퍼 백작은 어쩐지 오한이 들어 창문을 닫았다.

 

  “추워? 약해빠져 가지고.”

 

  그레이 백작이 혀를 쯧 찼다. 그는 그렉 크리스토퍼의 이종사촌이자, 유일하게 붉은나무 저택을 드나드는 친구였다. 풀네임은 빅터 G. 그레이. 저택과 3마일쯤 떨어진 펜버의 신시가지에 살았다.

 

  “넌 잔소리할 거면 그만 찾아와라.”

  “어, 그래.”

 

  빅터는 가볍게 무시하고 신문을 집어 들었다. 사회성 떨어지는 주제에 세상 소식은 듣고 사는군. 놀리듯이 말하자 그렉은 진심으로 짜증난다는 표정이 되었다.

 

  “아직도 자선사업에만 몰두하나?”

  “네가 상관할 바 아냐.”

  “말릴 생각은 없어. 다만 본인 몸 건사해가며 하라는 거지.”

 

  귀족치고 상당히 되는 대로 사는 그렉을 빅터는 주기적으로 찾아왔다. 와서 별다른 일은 하지 않고, 그저 생사여부를 확인한다는 명목으로 그렉의 속을 뒤집어놓고 떠나곤 했다.

 

  “그게 안 되면 다 때려치우고. 내가 늘 말하잖아.”

  “좀 닥쳐.”

  “형은 무능하고 믿을 건 얼굴밖에 없으니 장가나 잘 가면 장땡이라고.”

 

  아니면 공작부인의 트로피 같은 걸 해도 괜찮고. 그렉은 그 말은 아예 무시해버렸다.

 

  빅터가 집어든 신문에는 대체로 혁명조직의 프로파간다 따위가 실려 있었다. 몇 부 팔리지 않는 신문의 1면을 차지해서는 대중에게 그다지 영향을 미치지도 못할 것들. 빅터는 감흥 없는 표정으로 그것을 휙휙 넘기다가 문득 하나의 기사에 머물렀다.

 

  “마법이 더 규제되는군.”

 

  법률의 개정을 알리는 짧은 기사였다. 시네프리드 공작가문에서 마법을 인간사회에 편입시키려는 조짐을 보인 뒤로, 이렇게 구렁이 담 넘듯 은근슬쩍 개정되는 법률이 많아졌다.

 

  이유는 뻔했다. 기득권에 위협이 되니까. 마법은 기술력을 대체할 힘을 지녔고, 자본가들은 기술을 독점함으로써 누려올 수 있었던 호사를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 마법의 힘을 어떻게든 이용해보려는 움직임도 있었으나, 마법사 집단은 오직 시네프리드에만 손 내밀었다. 그래서 그들은 차라리 체계적이고 지속적으로 마법을 사회에서 배제시키는 중이었다.

 

  “시네프리드 쪽에서 속이 좀 쓰리겠어.”

 

  빅터의 중얼거림에 그렉은 혼자서 움찔했다. 그 시네프리드의 외동딸이 이 저택에 머무르는 중이었으니.

 

  “너 가. 꺼져.”

  “갑자기 왜 또 히스테리야?”

 

  별 이유는 없고 찔려서였다. 공녀의 방문 사실은 아직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그렉이 가차 없이 현관을 가리키자, 빅터는 한숨을 쉬며 외투를 챙겼다.

 

  “겨우내 굶어죽지나 말고, 오늘 제안은 잘 생각해봐.”

 

  그도 그렇게나 한가한 사람은 아니었다. 오늘은 방문 목적이 따로 있었다. 누군가의 제안을 직접 전하는 것. 그 목적을 달성한 그는 미련 없이 붉은나무 저택을 떠났다.

 

 ***

 

  한편 에밀리의 표정이 심각해진 걸 아는지 모르는지, 비비안은 계속해서 폭탄을 던졌다.

 

  “그래도 얼굴은 좀 반반해야 돼. 작위는 상관없지만 머리에 든 게 있었으면 좋겠어. 돈은 나한테 있으니까 괜찮아.”

 

  어째 팔푼이를 구한다는 것치고는 조건이 많았다. 에밀리의 얼굴에 드리워진 수심도 깊어졌다. 부와 명예는 필요 없고, 얼굴과 교육 수준을 보겠다는 걸까? 들으면 들을수록 크리스토퍼 백작이 1순위 타겟이었다. 끈 떨어진 귀족이면서 얼굴만은 잘났고, 대학도 나왔으니.

 

  “아. 그리고 포부가 너무 큰 남자는 실격.”

 

  이것마저도 합격점. 끙.

 

  에밀리가 저도 모르게 고민에 찬 신음을 흘리자, 비비안은 자신이 건넨 과제의 난이도가 너무 높아서 그렇다고 생각했는지 에밀리의 손을 꼭 맞잡았다.

 

  “어렵게 생각 마. 이왕이면 내가 사랑할 수 있는 남자였으면 좋겠다는 거야.”

  “사랑할 수 있는 남자요…?”

  “응. 어차피 일 벌이는 거라면 퇴로를 닫아두고 싶거든.”

 

  그 말에 연애소설 중독자 에밀리는 또 한 번 감동하고 말았다. 아버지를 엿 먹이려고 데려간 남자를 아예 사랑해버리겠다는, 탈출구 없는 나락으로 스스로를 내던져버리는 저 담대함이란. 정말 멋있지만, 그래도, 그렇지만 백작님은…

 

  그 순간, 에밀리의 어깨 너머로 익숙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에밀리는 고개를 휙 틀었다. 아주 익숙한 금발머리가 골목 저 멀리서 살랑거렸다. 그 밑으로 제 것과 똑같은 하녀복도.

 

  ‘빌어먹을, 한나가 왜 여기 있는 거야?!’

 

  아직 한나는 이쪽을 보지 못했다. 누군가와 밀회를 즐기듯 귓속말을 주고받느라. 상대방은 이쪽에서 안 보였지만, 에밀리는 대강 짐작하고 침을 꼴깍 삼켰다.

 

  미치겠다. 쟤 지금 백작님이랑 데이트하나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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