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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기타
대망 : 아마쿠사의 신
작가 : 한연화
작품등록일 : 2019.9.20

"제가 원하는 것은 전국을 일통하고 강한 군주가 되어 백성들을 덕으로 교화하는 것입니다. 그 길에는 지독한 피비린내와 가시밭길만이 있겠지요. 이런 저라도 받아주실 수 있겠습니까?" 끝없는 전란이 이어지는 전국시대의 일본. 천하를 무로 덮는 운명을 타고났으나 누나에 의해 사람이되 사람이 아닌 자, 히닌이 되어 쫓겨난 오와리국의 후계 유죠와 인간들의 전장에서 태어난 전쟁의 여신 아마쿠사미코토의 전국일통을 향한 일대기가 시작된다. 격랑의 역사 속, 그들의 삶과 사랑은 과연 어찌 될 것인가?

 
제11장 공명(共鳴)의 갈림길(1)
작성일 : 19-10-28 05:20     조회 : 242     추천 : 0     분량 : 8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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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니 전역에 전염병이 창궐하고, 하타모토들이 농민들을 가혹하게 착취하고, 과중한 세금과 부역에 시달리다 못한 농민들이 집단으로 도망을 치거나 소장을 제출하러 다이묘의 성으로 상경하거나 무기를 들고 일어나 자신들을 착취한 관리들을 살해하는 것은 다이묘의 치세에 있어 가장 치명적인 일이라 할 수 있었다. 더구나 새로 등극한 다이묘가 여자인 지금은 말해 무얼 하겠는가. 세간에는 카이히메가 여자라서 정치에 대해 잘 모른다는 둥, 카이히메가 여자라서 하타모토들만을 지나치게 믿고 의지하다 이런 결과를 초래했다는 둥 그녀의 정치력을 의심하는 소문들에 이어, 카이히메가 여자라서 신불들께서 분노하셨다는 뜬소문까지 나돌고 있었다. 게다가 이런 소문들에 뒤이어 더 이상 신불들의 분노를 사지 않기 위해서라도 카이히메는 비구니가 되어 절로 출가하고 그녀의 숙부들 중 한 명이 이시다가의 가독을 잇는 것이 옳지 않겠느냐는 불경한 말까지 나돌기 시작하는 터라, 카이히메의 아래에서 요직을 맡게 된 유모 아라츠보네는 이곳저곳으로 사람을 보내 소문이 퍼져나가는 것을 엄히 단속하는데 혈안이 되어 있었다.

 

  생각해 보면 이 세상은 영원히 깃들 곳이 못 되기에

  마치 풀잎에 내린 백로(白 露)와도 같고, 물에 비친 달보다 덧없다네

  금빛 골짜기에서 꽃을 노래하던 영화는 앞서서 무상(無 相)한 바람에 이끌려가고,

  남쪽 누각의 달을 즐기던 사람들도 그 달보다 앞서서 세상의 구름 속에 숨었다네

  인간의 오십 년은 하천(下 天)의 세월에 비한다면 한낱 덧없는 꿈과 다르지 아니하니

  한 번 삶을 받아서, 멸하지 않을 자가 어디 있으랴

 

  그러나 상황이 이러함에도 카이히메는 며칠째 방 안에 틀어박혀 배우들과 남창들을 불러들여 노와 교겐(노는 일본의 전통 가면극으로, 노래와 춤이 중심이 된다. 교겐은 노의 중간에 상연되는 희극으로, 대사 위주의 풍자극이다.), 그리고 와카를 즐기며 주연을 벌이고 있었다.

 

  “아츠모리로구나.”

 

  한 배우의 공연을 보던 카이히메가 다다미석을 높인 바닥에 길게 드러누우며 중얼거렸다. 사무라이답게 교토의 귀족적인 문화를 좋아하는 카이히메는 사무라이들 사이에서 인기가 좋은 노와 교겐, 그리고 와카를 무척 즐겼고, 틈나는 대로 노와 교겐의 대사와 와카를 외웠기 때문에 웬만한 노와 교겐, 와카는 첫 구절만 듣고도 제목이 무엇이고 내용이 어떠한지 알 수 있었다.

 

  “사람을 베던 무사가 인생의 무상함을 깨닫고 불문에 귀의한다는 내용이 아니냐.”

  “그렇습니다, 전하.”

  “이 세상이 풀잎에 내린 이슬과도 같고, 물에 비친 달보다 덧없다니. 참으로 우습지 아니하냐.”

 

  카이히메의 옆에서 술을 따라주던 남창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술병을 기울이는 손을 멈췄다. 카이히메는 그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러고 보니 꽤 대단한 미동(美 童)이로구나. 너, 이름이 무엇이냐?”

  “스이즈키라고 합니다, 전하.”

 

  자신의 이름을 스이즈키라고 밝힌 남창이 허리를 깊이 숙였다. 다이묘가 이름을 묻는 순간부터 자신은 다이묘의 것이 되는 것임을 그는 매우 잘 알고 있었다.

 

  “그래. 스이즈키, 너는 이 손에 얼마나 많은 피가 묻었는지 아느냐?”

  “…….”

  “세상에는 말이다. 늘 누군가를 죽여 누군가의 피를 손에 묻히고 결국은 자신의 피를 남의 손에 묻힘으로써 죽음을 맞이해야만 하는 운명을 가진 이들이 있다. 사람들은 그들을 일컬어 싸우는 사람들, 다시 말해 사무라이(武 士)라 부르더구나.”

  “…….”

  “그리고 지금 너의 앞에 있는 이 이시다 단조노추 카이 또한 사무라이의 피를 타고난 자. 그러니 지금껏 손에 묻힌 피가 얼마이겠으며, 또 앞으로 손에 묻힐 피가 얼마이겠느냐. 또 언젠가 남의 손에 묻을 나의 피는 또 얼마이겠느냐.”

 

  스이즈키가 서둘러 카이히메의 빈 잔에 술을 채워주었다. 카이히메는 한 손으로 스이즈키의 어깨를 끌어안고 술잔을 단숨에 들이켰다.

 

  “그런데 인생이 무상한 것이라고? 하, 그런 소리는 어디 지옥에 가서 염라대왕 앞에서나 지껄이라지.”

  “…….”

  “평생을 싸우다 죽을 운명을 타고난 이들에게 이 세상은 전혀 무상한 것이 아니거늘, 그런 운명을 가진 자를 내세워 인생의 무상함을 논하는 거짓을 예술이라 포장하며 세상을 기만하다니. 그러니 교토의 귀족들이 그 모양인 것이다. 그리 나약해빠졌으니 미나모토씨에게 정권을 빼앗길 수밖에.”

 

  갑자기 무엇이 그리 기분이 상한 것인지 카이히메가 술상을 발로 걷어차며 배우와 악사, 그리고 다른 남창들을 물렸다. 시녀들이 서둘러 들어와 다다미바닥에 뒹굴고 있는 술병이며 술잔, 안주접시를 치우고 걸레로 닦아냈다. 시녀들이 어질러진 방을 정리하는 사이, 카이히메는 스이즈키의 긴 머리카락을 풀며 붉은 입술에 입을 맞췄다.

 

  “입술이 참 달구나.”

  “…….”

  “피부도 하얗고.”

 

  카이히메의 손이 자꾸만 눈을 아래로 내리까는 스이즈키의 턱을 붙잡아 올렸다. 스이즈키의 옆얼굴을 손가락으로 훑는 카이히메의 눈은 어딘지 모르게 가라앉아 있었다.

 

  “나는 노와 교겐, 와카뿐만 아니라 저 멀리 중원의 시도 좋아한다. 혹시 중원의 시 중에 아는 것이 있느냐?”

 

  카이히메의 물음에 스이즈키의 눈이 반짝거리며 빛났다. 스이즈키가 입을 열어 시를 외기 시작했다.

 

  소군이 옥안장을 떨치며

  말 위에 오르니 붉은 두 뺨에 흐르는 눈물

  오늘은 한나라의 궁인이지만

  내일은 오랑캐의 첩이 되는구나

  한나라 시절 옛 진나라 땅에 떠 있던 달은

  그림자를 내려 명비를 비추네

  한 번 옥관도에 올라

  멀리 떠나간 뒤 다시 돌아오지 않네

  한나라 달은 다시 돌아와 동해에 떠오르건만

  명비는 서쪽으로 시집가 돌아올 줄 모르네

  연지산은 늘 추워 눈꽃을 만들고

  미인은 초췌해져 오랑캐 모래에 사라지도다

  살아서는 황금이 없어 초상화를 잘못 그리게 하더니

  죽어서는 청총을 남겨 사람으로 하여금 탄식케 하네

 

  “이백의 소군원이구나,”

 

  중원의 4대 미녀 중 한 사람인 왕소군의 불행한 일대기를 다룬 시를 들으며 카이히메는 스이즈키의 오비를 풀고 옷깃을 풀어헤쳤다. 그래도 왕소군은 세인들의 말과는 달리 한나라 황실의 보잘것없는 궁녀에서 흉노족 선우의 연지가 되어 신분상승을 하고 타고난 재색으로 총애를 받아 아들까지 낳지 않았던가. 게다가 그 아들이 차기 선우가 되어 그녀는 죽을 때까지 더할 나위 없는 호강을 누렸다. 그러나 무가의 여자들은 그렇지 않았다. 한 번 무가로 시집온 여자는 언제 남편이 전쟁에서 패할까 전전긍긍해야 했고, 항상 남편을 따라 죽을 수 있도록 칼을 소지하고 있어야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무가의 여자들을 불행하게 만드는 것은 누구의 아들이 가독을 상속하는 것이냐 하는 문제였다. 가독을 상속받지 못한 아들을 둔 여자나 아들을 두지 못하고 딸만 둔 여자, 혹은 자식이 없는 여자는 남편이 죽으면 출가해 머리를 깎고 비구니가 되는 것이 관례가 아니던가. 그렇게 평생을 팔자에도 없는 비구니로 살아가는 것이 어찌 사람이 사는 것이라 할 수 있겠는가. 한동안 스이즈키의 목덜미에 입술을 묻고 있던 카이히메의 눈이 어느새 정욕으로 가득 찼다. 스이즈키를 쓰러뜨리며 카이히메는 물었다.

 

  “스이즈키, 무가의 측실이 얼마나 불행한 존재인지 알고 있느냐?”

 

  스이즈키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 모습이 마치 자신처럼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안기는 남창보다야 무가의 측실이 훨씬 나은 신세가 아니냐 항변하는 것 같아 카이히메는 푸흐흐, 하고 웃고 말았다.

 

  “내 어머니도 너처럼 유녀 출신이셨다.”

  “……!”

  “아버지가 그저 연회의 흥을 돋우기 위해 부른 최고급 유녀. 그것이 내 어머니셨다.”

  “전하.”

  “어머니의 미모와 춤과 노래에 넘어간 아버지는 그날 밤 침실에서 어머니를 안았고, 그 길로 측실로 삼아 이 쇼비타 성에 방 한 칸을 내주어 살게 하였지. 그리고 그렇게 내 어머니는 빛을 잃고 쇠해 갔다.”

  “…….”

  “그렇다고 해서 내가 좋은 딸인 것은 아니었다. 내 목표는 어디까지나 다이묘가 되어 일본을 재패하고 전국일통의 초석을 놓는 것이었으니까.”

  “…….”

  “자, 이제 내 이야기는 여기까지다.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는 모두 다 하였으니 이제 스이즈키 네가 선택하거라. 내 이야기를 모두 듣고도 너는 내 측실이 될 수 있겠느냐? 무가의 측실이 될 수 있겠느냐 이 말이다.”

  “…….”

  “만약, 네가 내 측실이 된다면 이것 하나만은 약속하마. 나는 너 이외에 다른 측실을 들이지 않을 것이다. 또한 내 어머니처럼 방 한 칸에 갇혀 시들어가는 일도 없게 할 것이다. 너는 내 아이의, 이시다가의 차기 당주의, 오와리국의 차기 다이묘의, 일본을 재패하고 전국을 통일할 전설적인 무장(武 將)의 아버지가 되는 것이다. 어떠하냐?”

  “왜 하필 저입니까?”

 

  카이히메의 아래에 누운 스이즈키가 그녀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카이히메는 잠자코 그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단순히 저의 아름다움에 취해 저를 측실로 삼고자 하시는 것이라면 설령, 전하께서 이 목숨을 거두신다 해도 따르지 않을 것입니다. 한때의 아름다움으로 사람을 현혹하는 이들은 저 말고도 많을 테니까요. 그러니 대답해주십시오, 전하. 왜 하필 저를 선택하신 것입니까?”

 

  조금 전까지의 수동적인 태도는 어디 가고 이리도 당당하고 주체적인 존재가 눈앞에 있는 것인지. 스이즈키의 물음에 카이히메는 그의 입술을 손가락으로 한 번 쓸었다. 카이히메는 자신의 오비를 풀며 말했다.

 

  “작금의 일본은 칼이 대접받는 세상이다. 그러나 세상이 어디 칼로만 다스릴 수 있는 것이더냐? 세상을 다스리는 데에는 문(文)이 필요한 법. 그러니 중원의 시를 외울 정도로 학문이 뛰어난 너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라면 통일된 일본을 안정적으로 다스릴 수 있지 않겠느냐.”

 

 ※

 

  그 후로 며칠 간 카이히메는 스이즈키를 데리고 방 안에 칩거하며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방 밖으로 한 걸음도 나서지 않고 오직 시녀 한두 사람만을 들이는 그녀의 태도에 쇼비타 성 전체가 술렁거렸으나,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고 문을 닫아걸고 스이즈키와 함께 할 뿐이었다. 카이히메가 사무라이의 딸로서 배운 춤을 선보일 때마다 스이즈키는 중원의 시를 읊으며 노래를 불렀고, 그럴 때마다 카이히메는 스이즈키에게 앞으로 태어날 아이의 이야기를 하며 꿈꾸는 듯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스이즈키, 나는 사랑이 무엇인지 모른다. 단 한 번도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고 사랑을 줘본 적은 더더욱 없다. 내 어머니는 아버지의 정실 메구미히메가 낳은 장남을 저주해 죽였다는 누명을 쓰고 처형되었다. 물론, 나는 아버지의 딸이었기에 죽음을 면했지만 그 일로 내 어머니는 일족까지 모두 처형당했지. 그때였다. 내가 권력을 얻기 위해 몸부림치기 시작한 것은.”

  “…….”

  “권력이 없으면 죽는다는 것을 그때만큼 뼈저리게 느낀 적이 없었다. 스이즈키, 나는 지금도 끝까지 자신이 한 일이 아니라고 결백을 주장하며 울부짖던 내 어머니의 목소리가 귓가에 생생하게 들린다. 그때 어머니를 살려달라 빌던 내게 아버지라는 작자가 무엇이라고 말했는지 아느냐? “측실이 분수를 모르면 이리 되는 것이다. 더구나 이년은 천한 유녀가 아니더냐. 천하에 둘도 없는 배은망덕한 년. 연회에서 흥이나 돋우고 사내들에게 몸이나 팔던 천한 년을 거두어 측실로 삼아 이시다가의 자식을 낳는 영광까지 주었더니 감히 정실의 자식을 죽여!” 그래서 그날 나는 어머니와 어머니의 일족이 처형당하는 모습을 하나도 빠짐없이 지켜보았다. 나는 저런 꼴을 당하지 않으리라, 어머니처럼 힘없이 죽지 않으리라 결심하며 그 모든 광경을 내 눈에 새기고 또 새겼다.“

 

  카이히메의 말에 스이즈키가 그녀의 어깨를 꼭 감싸 안았다. 본래 사랑을 주는 것이 유녀나 남창의 역할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그녀는 이제 자신의 아내였다. 그러니 그녀의 아픔에 공감하고 사랑을 주는 것이 남편으로서의 가장 중요한 일이 아니겠는가.

 

  “전하, 아라츠보네입니다.”

 

  몇날며칠을 남창을 데리고 방 안에만 칩거하는 카이히메의 행태를 보다 못한 아라츠보네가 그녀를 찾아와 문 밖에서 알현을 청했다. 그녀는 문을 열지 않고 아라츠보네의 말을 들었다.

 

  “전하께서 천한 남창을 데리고 방 안에 칩거하신 지가 오늘로 벌써 며칠 째인지 아십니까. 지금 이 순간에도 전염병은 무서운 기세로 오와리국 곳곳으로 퍼져가고 있고, 하타모토들의 학정을 견디다 못한 농민들은 마을을 버리고 집단으로 도망치고, 소장을 들고 이곳 쇼비타 성으로 몰려오고, 무기를 들고 관리들을 습격하고 있습니다. 한데, 오와리국의 다이묘이신 전하께서 이리 태평하시다니요.”

  “…….”

  “게다가 전하께서 여자라서 신불들이 분노하셨다는 뜬소문마저 퍼지고 있는 마당에 천한 남창과 동침하심은 전하의 위명을 더욱 더 땅바닥에 떨어뜨리는…….”

  “아라츠보네!”

 

  문이 열리고 카이히메가 모습을 드러냈다. 카이히메는 문 앞에 꿇어앉은 아라츠보네를 매섭게 내려다보며 말했다.

 

  “내 아무리 너를 요직에 앉혔다 하나, 너는 그저 나를 돌봐준 유모요, 일개 하인에 불과하다. 그런 네가 감히 너의 상전을 능멸하는 것이냐!”

  “당치도 않습니다. 제가 어찌 전하를…….”

  “내가 아니라 스이즈키 말이다. 스이즈키는 내 측실이 된 이로, 너의 상전이다. 한데, 일개 하인인 네가 감히 상전을 일컬어 천한 남창이라 하다니 이 무슨 망발이냐! 네 정녕 매질을 당해야 정신을 차릴 것이냐!”

  “전하, 측실이라니요! 여인이 어찌 측실을 들일 수 있단 말입니까! 제발 거두어주시옵소서!”

 

  아라츠보네가 도게자(일본의 예법 중 가장 큰 예법에 해당한다. 주로 곤란한 부탁을 할 때나 죽을 죄를 지었을 때 하는 절이기도 하지만, 에도시대에는 농민이나 초닌(상인)이 다이묘 일행을 만났을 때에 의무적으로 해야 했다. 매우 굴욕적인 절이기도 하므로 현대 일본에서는 남에게 함부로 도게자를 강요하면 형사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를 올리며 이마를 바닥에 쿵쿵 찧었다. 카이히메는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라츠보네, 참으로 이상하지 않으냐? 사내들은 원하는 만큼 측실을 거느리고 유녀와 놀아나는데 여인들은 일부종사(一 夫 從 事)만 하라니, 사내들은 대체 그 무슨 도둑놈 심보란 말이냐?”

  “전하!”

  “앞으로 내가 몇 명을 측실로 삼든, 몇 명의 남창과 놀아나든 그것은 내가 선택할 문제이지 네가 왈가왈부할 문제가 아니며, 세상이 이러쿵저러쿵 떠들 일은 더더욱 아니다. 그러니 이 일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라.”

  “…….”

  “아참.”

 

  방문을 닫고 뒤돌아선 카이히메가 다시 방문을 열었다. 다시금 아라츠보네를 내려다보는 카이히메의 눈에는 어떠한 결의가 가득 담겨 있었다.

 

  “오와리국의 전염병과 하타모토들의 전횡, 그리고 농민들의 잇키 문제는 내가 알아서 처리할 것이다. 그러니 너 또한 그리 알고 물러가 삼봉행에게 전하거라. 지금 즉시 전횡을 일일삼은 하타모토와 그 일족들의 명단을 작성해 내게 보고하라고.”

  “전하……!”

  “한 번 전횡을 일삼은 자들이 두 번인, 세 번 전횡을 일삼지 못하겠는가. 또 그 자손들이 무엇을 보고 배우겠는가. 그 자손만대까지 베어버리는 것이 옳겠지. 그렇지 아니하냐.”

 

  그 길로 아라츠보네는 삼봉행에게 달려가 카이히메의 말을 전했다. 삼봉행은 모두 카이히메의 전언에 경악하며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전횡을 일삼은 하타모토들을 당사자는 물론이고, 그 일족까지 모두 처형하겠다는 의지를 담은 카이히메의 말은 대대적인 인사교체를 의미하고 있었고, 그것은 어쩌면 고급 사무라이들뿐만 아니라 최하급 사무라이인 아시가루들이나 평범한 농민들까지 하타모토가 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대체 무슨 생각을 하시는 건지…….”

 

  타다토미는 한숨을 내쉬었다. 삼봉행 중 나머지 다른 두 사람, 제쿠와 아오키도 제각기 한숨을 내쉬거나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자신들이 아는 카이히메는 뱀과 같고 호랑이와도 같은 인물이었다. 그런 그녀가 신분제의 존립을 뒤흔들 수 있는 길을 열려 한다는 것에는 분명 무슨 의도가 있을 터였다. 무엇보다……

 

  “전하께서는 모든 상황을 자신을 위한 기회로 만드는 분이 아니시오. 위기는 곧 기회라는 말이 그분처럼 어울리는 인물도 보기 드물 것이오. 그렇지 않소?”

 

  그녀는 지금 오와리국에 창궐하는 전염병도, 하타모토들의 전횡도, 농민들의 잇키도 모두 자신의 입지를 다지고 일본 내에서 이시다가의, 오와리국의 영향력을 늘리기 위한 기회로 삼을 것이 분명했다. 세 명의 봉행은 고개를 숙이며 미소를 지었다. 이번 카이히메 대에서 이시다가는 크게 번영할 것이었고, 어쩌면 일본 통일의 초석을 놓을 수도 있을 것이었다.

 

  “전횡을 일삼은 하타모토와 그 일족들에 대해서는 모두 알아보았다. 이제는 내가 직접 모든 하타모토들의 지행지로 가 지난 십 년 간의 평균 수확량과 매년 일어난 자연재해, 그리고 그에 따른 수확량이나 토지의 변동사항을 조사할 것이다. 당장 조사단을 꾸리도록!”

 

  지행지에서 전횡을 일삼은 하타모토와 그 일족들의 명단이 카이히메의 손에 들어가고 며칠이 지나, 카이히메가 내린 명령이 오와리국 전체를 뒤흔들었다. 토지조사를 담당할 관리들을 대동하고 가마에 오른 카이히메의 검은 눈이 이글거리며 빛나고 있음을 옆에 앉은 스이즈키는 가만히 바라볼 뿐이었다.

 

 

 
작가의 말
 

 사실, 카이히메는 개혁형 군주이나 때로는 보수적인 인물이기도 합니다. 카이히메가 나중에 어떻게 묘사되어야 하는지까지 고민하느라 한동안 카이히메를 구상하는 것에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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