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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매화의 난
작가 : 어항
작품등록일 : 2019.10.17

억울한 누명으로 인해 죽어간 자신의 종족들을 위해 복수하는 한 여인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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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9-10-26 19:17     조회 : 225     추천 : 0     분량 : 4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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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속감은 생각보다 치밀하고 무섭다. 누군가 무리에서 이탈했을 때, 그 감당은 오로지 자신이 해야 한다. 특히 힘에 의해 와해된 무리의 사람들은 더욱 그 가혹함과 잔인함을 감당해야 한다.

  나이야족에서 유일무이하게 살아남은 매화는 자신을 숨겼다. 자신이 나이야임을 숨겼고, 부모님 또한 자신이 나이야인지 모르게 하기 위해 처절한 노력을 했다.

 

 '이게 뭐에요?'

 '팔찌란다. 술수가 걸려있지.'

 '술수가 걸려있는 팔찌를 왜 제게….'

 

  말이 끝나기도 전에 대환은 그녀에게 팔찌를 채웠다. 그러자 순간 울렁이는 시야에 매화가 비틀거렸다. 대환은 조심스럽게 그녀를 안았다. 그리고 서호가 들고 있던 거울을 그녀에게 내밀었다. 매화는 자신의 얼굴을 보고 놀라 한참이나 거울을 봐야 했다.

  하얗던 머리가 서호와 닮은 옅은 붉은빛이 감돌았고, 눈동자는 자신의 오라비와 아버지를 꼭 닮은 검은색이었다. 어떻게 이런 게 가능하지. 신기해서 거울을 보고 있는데 대환이 말했다.

 

 '미안하다, 매화야. 하지만 넌 설매화야.'

 '…….'

 '우리들의 딸이다.'

 

  그건 대환 나름대로의 '소속감'을 만들어주는 과정이었다. 비록 그게 가짜라고 할지라도 그게 없으면 매화는 살아남을 수 없었다. 남들과 같아야 했다. 설령 다른 색이어도 최대한 그들에게 물들어야 했다. 매화는 그게 죽기보다 싫었지만, 부모의 눈물에 천천히 적응해야 했다.

  이게 사랑인가. 그러나 그에 대답은 매화도 해줄 수 없었다. 하지만 그들로 인해 매화는 살아남았다는 사실을 부정할 순 없었다. 그들의 신분 아래, 매화는 살아남았다. 그들의 소속 아래, 매화는 살아가고 있었다.

  아, 잔인했다. 나라를 잃은 자의 미래는 없는 것인가. 하얀 서신에 튄 먹물처럼 튀어버리고 마는 것일까.

 

 "어디서 말이야. 어? 망국민따위가!"

 

  아이는 이미 너무도 맞아 정신을 차리지 못 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자는 계속해서 때리고 있었다. 이 장면을 보면서도 상인들은 웃음이 나오는 걸까. 평화롭기 짝이 없었다. 매화야. 넌 우리들의 딸이다. 부모의 음성이 스쳐갔다. 매화야. 숨겨야 해.

  도대체 무얼 숨겨야 하는 거지. 나의 정체성? 매화는 천천히 그에게 다가갔다. 여전히 웃는 소리가 나왔다. 구역질이 났다.

 

 "그만 하세요."

 "뭐야. 당신."

 "아이가 정신을 못 차리고 있지 않습니까. 그만 하세요."

 

  남자는 아이에게서 발을 뗐다. 그리고 그녀에게 천천히 다가왔다. 그러나 그녀에게 다가오지 못하게 이안이 막아섰다. 그러자 남자가 이안과 나를 번갈아보며 히죽히죽 비웃었다.

 

 "뭐야, 얘 기둥서방이라도 돼?"

 

  차가운 시선들이 꽂힌다. 상인들에게 이건 '익숙한 풍경'일 것이고, 끼어든 우리는 '이방인', 아니면 '이단'. 매화는 차가운 시선을 무시하며 아이에게 다가갔다. 아이의 숨이 옅어지고 있었다. 천천히 안아올렸다.

 

 "이안, 돌아가요."

 "매화."

 "그와 씨름할 시간 없습니다. 아이가 더 중요해요."

 

  천천히 걸어 아이를 옮기려고 했지만 남자가 더 빨랐다. 그녀의 앞을 막아선 남자가 껄렁하게 말했다.

 

 "어딜 가시려고?"

 "……."

 "그 애가 뭔 짓을 했는지 알아?"

 

  아니, 지 부모가 죽어간다고 남의 돈을 훔치려고 드는 게 말이 돼? 그렇잖아. 망국민이면 입 닥치고 조용히 있어야지. 그의 말을 듣던 매화는 가만히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다시 그를 올려다 봤다. 차가운 검은 눈에 이채가 서린다.

 

 "어쩌라고."

 "뭐?"

 "비켜. 아이를 치료해야 하니까."

 

  그는 사나운 매화의 눈빛에 움찔하며 뒤로 멈춰섰다. 그러나 자존심만 강한 남자가 그런 자신의 모습에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 씩씩거리던 그는 곧장 팔을 들어 그녀를 향해 휘둘렀다.

  하지만 그보다 매화가 더 빨랐다. 가볍고 빠른 다리가 그를 넘어트렸다.

 

 "컥!"

 "한 번 더 휘둘러 봐. 이번엔 다리가 아닌 그곳을 망가트릴 거야."

 

  거짓말인지 아닌지 실험해볼래? 매화가 노려보며 물었다. 남자는 일어나려고 했으나 쉽사리 몸을 일으키지 못 했다. 어라? 어라. 이상하다. 다리가 이상했다. 그냥 한 대 맞은 거 뿐인데 왜 힘이 안 들어가지. 남자는 놀라 자신의 다리를 바라봤다.

  기형적으로 돌아있는 자신의 다리. 남자는 식은땀을 흘렸다. 매화는 그를 지나쳐 다시 안으로 들어갔다.

 

 "이번 일은 조용히 묻으세요."

 "……."

 "아니면 정말 죽을 테니까."

 

  이안은 천천히 앉아 그에게 돈주머니를 던졌다. 잠겨있는 주머니는 얼핏 봐도 꽤 많은 수의 돈이 들어가 있었다. 이걸로 입막음은 되겠지. 아무래도 다리를 보니 평생 못 쓸 수도 있겠다. 이안은 그리 생각하며 몸을 일으켰다. 주위를 살피니 상인들과 국민들은 그들을 보고 있지 않았다. 애초에 관심도 두지 않는 모양이었다.

  참으로 안타까운 광경이었다. 자신이 아니라고 묵인하는 방관자들과 약자라고 물어 뜯는 가해자. 이안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 떴다.

 

 "어라. 우정국 간다고 하지 않으셨…."

 "혹시 치료 가능할까요."

 "눕혀보세요."

 

  서나리는 한참 이런저런 서류를 정리 중이었다. 정확히 말해서 전국에 널려있는 금국의 사람들에게 보낼 서신들을 정리 중이었다. 그런데 굳은 표정으로 매화가 들어오자 놀랐고, 그녀의 품 안에 안겨있는 아이를 보고 또 놀랐다. 서나리는 헐레벌떡 일어나 방 문을 열었다. 매화는 천천히 그 아이를 침대에 눕혔다.

  아이를 살펴 보는 서나리의 표정이 천천히 굳어갔다. 그리고 고개를 저었다. 매화는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봤다.

 

 "급소를 심하게 맞은 모양이에요. 거의 죽어가고 있어요. 의식조차 없어요."

 "……."

 "괜찮아요?"

 

  서나리의 말에 매화는 대답하지 않았다. 천천히 아이의 이마를 쓸어줄 뿐이었다. 아이는 곧 죽을 것이다. 서나리나 매화나 그걸 모르는 바는 아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니길 바란다. 한 생명이 꺼지지 않기를 바란다. 깊이 나오려는 숨을 삼켰다.

 

 "의원을 불러도 괜찮을까요."

 "제가 불러 올게요."

 

  서나리가 벌떡 일어서며 말했다. 고맙다고 대답한 후, 그녀는 아이에게 집중했다. 물수건을 가져와 천천히 그의 이마를 닦아내렸다. 피투성이가 된 얼굴과 몸을 닦아낸 후, 깨끗한 옷 하나를 가져와 입혔다. 아이에게는 너무 컸다. 맞지 않는 옷이었다.

 

 "매화."

 "……."

 

  방 문이 열리고 이안이 천천히 들어왔다. 매화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저 아이의 온기가 조금 남아있는 손을 잡았다. 숨소리가 점점 옅어지는 걸 느낀다. 아. 매화는 눈을 질끈 감았다.

 

 "똑같아요."

 "……."

 "아이나 나나."

 

  설 가문 밑에서 행복한 삶을 살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자신이 느꼈던 잔혹함이 마음 속에서 사라질까. 죽어가는 부모님, 멸시 받는 종족들, 외면하는 자들의 눈동자. 모두 다 느꼈다. 7년. 딱 7년을 그들 품에서 자랐다. 짧은 시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느껴지는 환멸과 경시, 그리고 그들이 겪은 고통들. 그래도 서로가 있다며 버티고 있던 지난 시절들이 스쳐갔다.

  하지만 그녀 혼자 남아 있어보니 알았다. 다 부질 없었다. 애초에 그들의 인식부터가 잘못 되어있는데, 자신들이 행복하게 살 수 없었다. 아무리 아닌 척 해봐도 꽂히는 시선들은 자잘한 상처를 남긴다.

  그걸 알고 있기에 매화는 자신의 정체성이 사라지는 팔찌가 싫으면서도 꼭 가지고 있었다. 애초에 그런 차별이 없었으면 좋았을 걸. 나이야족이라고 받았던 수많은 시선들이 지워지지 않는다. 그 시선을 받고 싶지 않아. 깊은 마음 속에서 그리 생각했을 거다. 그래서 숨겼다. 그리고 부모에게로 자신의 이유를 떠넘겼다. 부모님이 하라고 했으니까. 부모님이 자신은 '설매화'라고 했으니까.

  눈꽃으로 불리며 사랑 받던 시절을 잊은 듯 굴었다. 아이는 자신이었다. 매화는 감은 눈을 뜨지 않았다.

 

 "아이나 저나 똑같은 사람입니다. 경멸 받고 환시 받는 게 당연해진 우리는."

 "……."

 "그게 아프지 않은 건 아니에요. 하지만 익숙해집니다."

 

  익숙함은 상처가 안 아픈 척, 덮어버리는 일을 했다. 나는 상처 받은 적이 없어. 나는 아팠던 적이 없어. 그리 덮어버리는 익숙함에 속아 자신의 피눈물을 보지 않고 있었다. 매화는 한숨을 쉬었다.

  그때 부드러운 손길이 그녀의 손등에 닿았다. 이안의 커다란 손이 그녀의 손등을 덮었다.

 

 "맞습니다. 우리는 익숙해져요."

 "……."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아프잖아요. 잘못 되었습니다, 분명."

 "그렇죠."

 

  이안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에게로 그의 시선이 닿았다. 매화는 어딘가 그의 시선이 간지럽다고 생각했다. 이 상황과 어울리지 않는 눈빛. 그러나 저 눈빛의 의미는 안다. 모든 걸 포용하려는 눈빛.

 

 "바뀔 겁니다."

 "……."

 "지금 당장 이 아이는 구하지 못 했지만."

 

  이 부당한 세상은 분명 바뀔 겁니다. 이안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손을 뗐다. 그리고 그 손은 조심스럽게 아이의 머리카락을 만졌다. 아이의 온기가 점점 사라지고 있었다.

  서나리가 의원을 데리고 왔을 때, 아이의 온기와 숨은 완전히 사라져 있었다. 이 아이가 기적처럼 살아날 확률은 없었다. 매화는 이 차가운 현실을 받아드려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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