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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용非어천가 - 하늘에 오르지 않는 노래 -
작가 : Namwoo
작품등록일 : 2019.9.3

먼 옛날 사람과 어울려 살았던 이무기, ‘치우’는 어떤 사건을 계기로 감정을 봉인하고 깊은 물로 들어가 여의주가 생길 천 번째 해만 기다리게 된다.
인연을 만들지 않기 위해서 어두운 물속에서만 지냈건만, 여의주를 얻은 날 마지막으로 옛 마을의 터를 찾았다가 ‘문종’과 마주치고 만다.
‘문종’과의 대화로 얼어붙었던 ‘치우’의 마음이 녹게 되고, 높은 산에 오른 ‘치우’는 승천하려던 순간에 들려온 한 소녀의 비명을 외면하지 못하고 마는데...
‘치우’를 하늘에 오르지 못하게 할 새로운 인연, ‘해랑’과 모종의 사건들이 그를 둘러싼다! <매주 화, 금 업로드>

 
16화. 재회(2)
작성일 : 19-10-25 22:58     조회 : 242     추천 : 0     분량 : 8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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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를 따라왔다면 모습을 드러내시오.”

 

 그녀의 말은 캄캄한 밤의 허공을 맴돌았다.

 해랑은 바싹 마른 입술로 목소리를 높였다.

 

 “이 산의 경계를 함부로 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 터. 그런데도 나를 따라온 것이라면! 그냥 보내줄 수 없으니 모습을 드러내시오!”

 

 적막 속에 해랑의 목소리만이 퍼져나갔다.

 잠깐의 정적이 흐르다가 풀숲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 쿵!

 

 “악!”

 

 외마디 비명과 함께 은오가 풀숲에서 거꾸러져 나왔다.

 해랑은 의아해하며 은오에게 다가가 그의 행색을 살폈다.

 

 ‘복식이나 목 뒤의 갓...으로 보아하니 양반이 틀림없는데...’

 “...거지가 따로 없군”

 

 해랑은 자기도 모르게 생각하던 말을 입 밖으로 내뱉었다.

 

 “뭐요?”

 

 해랑은 양반의 말에 대한 대답 대신에 헛기침을 한번 했다.

 

 “지금 뭐라고 하였소?”

 

 은오는 묵묵부답인 해랑을 향해 몸을 벌떡 일으키며 발끈했다.

 

 “됐고. 뉘시오?”

 

 해랑은 허리춤에서 빼 든 칼을 그의 목을 향해 치켜들었다.

 

 “어어어어! 이놈! 아. 아니! 이보게 도령, 그...그 손에 든 건, 좀 내려놓고. 내려놓고 이야기합시다.”

 

 은오는 눈앞에 시퍼런 칼날을 보고 기겁을 하며 다시 뒤로 자빠졌다.

 

 “누군지 묻지 않소? 왜 우리 마을 부근을 서성이고 있었던 것인지 밝히시오. 쥐도 새도 모르게 죽고 싶은 게 아니라면.”

 

 은오의 반응에는 개의치 않는 듯 해랑은 여전히 호랑이가 있을지도 모르는 주변을 계속 경계하며 은오에게 물었다.

 

 “마을 부근...? 근처에 마을이 있단 말이오?”

 

 은오는 해랑의 말을 듣고 냉정을 되찾았다.

 

 ‘도적놈같이 시커먼 옷을 입은 저 사내가, 도적이 아닌 자경단이란 말인가?’

 

 해랑은 은오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자신의 물음에 대답이 없는 은오를 향해 칼을 더 들이밀었다. 은오는 본능적으로 양 손을 들어 올리며 입을 열었다.

 

 “나는 거북마을이란 곳을 찾아왔습니다. 원래는 촌장과 만나기로 한 지점이 있었는데, 내가 약도를 잃어버리고 길을 헤매는 바람에...”

 

 은오는 시선을 칼끝에 놓은 채로 천천히 대답했다.

 

 “이쪽 길로 왔단 말이오...?”

 

 해랑에게 봇짐 하나를 가진 사내는 위협적으로 느껴지진 않았으나, ‘거북머리길’ 가까이에서 나타난 은오의 존재는 충분히 수상쩍었다.

 

 “내가 어찌 이 상황에서 거짓을 고하겠소? 촌장, 이든의 친필이 적힌 서신을 보여줄 수 있소.”

 

 해랑이 천천히 칼끝을 내리자, 은오는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봇짐에서 붉은 봉투를 꺼냈다.

 

 “정 수상쩍다면. 내, 여기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 촌장에게 확인하고 오면 어떻겠소?”

 

 촌장의 편지를 확인한 해랑은 고개를 끄덕였다.

 

 “실례가 많았습니다. 중간 지점에서 만나기로 했다면 저를 보내셨을 텐데...어찌 아무 말씀이 없으셨던....”

 

 해랑이 잠시 말을 멈췄다가 다시 이어나갔다.

 

 “마을의 상황이 좋지 않아서 그랬던 듯하니, 제가 마을까지 모셔다드리겠습니다. 마침 이곳에서 그리 멀지 않습니다.”

 갑자기 정중해진 해랑의 태도에 은오는 조금 의아해졌다.

 

 “음... 뭐, 굳이~ 그렇게 까지. 마침 가깝다고 하니 길을 알려주면 나 혼자 가도록 하겠소.”

 

 은오가 친절하게 말하자 해랑은 단박에 거절했다.

 

 “그건 안됩니다. 범이 있을지도 모르고.. 게다가,”

 

 은오는 말을 멈춘 해랑의 시선이 자신의 얼굴보다 한참 아래쪽에 머무는 것을 보고 시선을 아래로 내렸고, 그제야 자신의 바지에서 축축한 느낌이 든다는 것을 알아챘다.

 

 “사내가 이 정도 일로 바지 적삼을 적시고 있으니, 범이라도 만났다간. 크흡... 지체할 시간이 없으니 서두르시지요.”

 

 해랑은 말을 마치자마자 어버버하고있는 은오를 뒤로하고 걸어갔다.

 

 “이보시오! 이건 아까 그대가 칼을 목전에 대었을 때...! 허, 이것 참.”

 

 은오는 먼저 가는 해랑을 놓칠세라 봇짐을 집어 들고 소리치다가 어이가 없어서 말문이 막혔다.

 

 “귀하게 자라신 분이라, 그렇게 겁을 먹을 줄 모르고 결례를 범했습니다. 허나 이것도 제게 맡겨진 일이라...”

 

 해랑은 은오의 외침을 모른 척 하지 않고 뒤로 돌아서서 상투적인 태도로 고개를 한번 숙였다.

 

 “귀하긴...허?! 아니...! 이건 내가 겁을 먹은 것이 아니라, 목전에 칼을 들이댔을 때 뒤로 넘어진 곳에 고여있던 물이...!”

 

 해랑은 오랜 시간 긴장한 탓에 매우 지쳐 있었기 때문에 은오에게 대꾸도 하지 않았다.

 

 “아,이보시오! 사람이 말을 하면 들어야지!”

 

 해랑이 말없이 걸음의 속도를 높이자 은오는 허둥지둥 해랑을 쫓았다.

 

 “이보오! 아, 범이 나온다면서..같이 갑시다~!”

 

 

 **

 한편 해가 져 캄캄해진 거북마을에서 산다라가 뒷짐을 지고 ‘거북꼬리길’ 앞을 맴돌고 있었다.

 마을 가운데에 피워놓은 횃불에 생긴 그림자가 불이 흔들릴 때마다 일렁였다.

 

 -바스락바스락

 

 발소리가 들리자 산다라는 땅을 보던 고개를 들어 소리가 나는 쪽을 쳐다보았다.

 

 “어?”

 

 어둠 속에서 촌장이 걸어 들어 왔다.

 

 “눈도 밝으십니다. 어찌 등불도 없이 걸어오십니까?”

 

 촌장의 모습을 확인하고 가까이 다가가며 말을 건네는 산다라의 표정이 확 밝아졌다.

 

 “위험하게 아직 횃불을 켜 놓고 무엇 하는 게야? 불이라도 나면 어찌하려고...”

 

 촌장은 허탕을 치고 온 피로감에 지친 기색을 역력히 드러냈다.

 

 “우리 마을에 불나는 것 보셨습니까? 물론 불이 난 적은 있지만, 바로 비가 내리지 않았습니까~? 그것도 촌장님 솜씨인가?”

 

 산다라는 아무렇지 않게 생글생글 웃으며 어렵지 않게 촌장을 대했다.

 

 “허튼소리. 은가비가 혼자 집에 있겠구먼. 위험하다 했는데도 누이동생을 집에 혼자 두고 나와선 뭘 하고 섰는지. 쯧.”

 

 “뭘 하긴요. 촌장님을 기다렸지. 너무 늦게 다니시는 것 아닙니까? 우리에겐 위험하다고 나가지 말라고 하시더니...”

 

 키가 크고 몸집도 큰 산다라가 생글생글 웃는 얼굴로 자신을 내려다보자 촌장은 짜증이 치밀었다.

 

 “썩 집으로 돌아가.”

 

 “아, 이거.”

 

 산다라는 뒷짐을 풀고 손에 들고 있던 것을 촌장에게 내밀었다.

 그의 손엔 나무로 정교하게 깎아내린 꽃 한 송이가 들려있었다.

 

 “이게 무슨 짓이냐?”

 

 촌장은 바득 인상을 썼다.

 

 “꽃나무. 좋아하시잖아요. 꺾어오면 싫어할 것 같아서 깎아보았는데...”

 

 산다라는 촌장의 손을 펴서 자신이 깎은 꽃을 쥐여주었다.

 

 “너...!”

 

 촌장이 자신을 빤히 보고 있는 산다라에게 무언가 쏘아붙이려고 하는 순간, 치우가 걸어왔다.

 

 “늦게..오셨네. 산다라 형님은 왜 밖에 계시고...?”

 

 셋 사이에 미묘하고 어색한 기류가 흘렀다.

 

 “하하. 그럼 저는 이만 가 보겠습니다. 내일 아침부터 또 집터를 정리해야 해서.”

 

 “...수고했네.”

 

 산다라가 떠나자, 촌장은 손에 쥐고 있던 나무꽃을 잠시 바라보다가 수풀 쪽으로 홱 던졌고 치우는 그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왜 그렇게 화가 나셨을까? 아니면 이미 화가 난 채로 온 걸까? 어찌, 꾸미던 일이 잘 안 풀리시나? 양반이라든지...?”

 

 치우는 촌장을 보고 조소를 지었다.

 촌장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피차, 기분 나쁜 상태일 텐데... 여기서 이럴 것이 아니라 집으로 가서 말씀 나누시지요.”

 

 치우는 예상 밖의 촌장의 반응에 한발 물러섰다.

 

 “...그러지.”

 

 

 

 *

 집 앞에 다다른 촌장은 굽은 허리를 펴 치우를 한번 올려다보았다.

 

 “웬일로 저를 찾아왔는데 화를 안 내고 조용히 계십니까?”

 

 “그러게. 원래라면 분노해서 달려 왔을 텐데. 지금은, 하. 어쩐지 그럴 마음도 안 들고 기운도 없구나.”

 

 치우는 성큼성큼 들어가서 잽싸게 마루에 올라섰다.

 그리곤 고개를 돌려 아직 마당에 서 있는 촌장에게 피식 웃으며 말을 건넸다.

 

 “자네도 어서 들어오지 않고?”

 

 촌장은 그의 태도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부엌 쪽으로 발을 돌렸다.

 

 “기왕 마음대로 올라가신 것, 먼저 들어가 계시지요. 광에서 술이라도 내어 갈 터이니.”

 

 “나와는 맨정신으로 못 있겠다? 뭐… 좋다.”

 

 치우가 큰 소리로 대답하자 촌장은 담장 나무를 한번 쓱 둘러보고는 주의를 주듯 손으로 입을 가리는 시늉을 했다.

 촌장이 부엌으로 들어가고 치우가 방문을 닫자 사부작거리는 발소리 하나가 촌장의 집에서 멀어졌다.

 

 

 *

 은오와 해랑은 가던 걸음을 잠시 멈추고 쉬고 있었다.

 멍하니 앞만 바라보고 있는 해랑을 은오는 연신 흘긋거렸다.

 

 “헌데, 마을 인근의 산에 호랑이가 있다니. 도령을 만나지 않았다면 호랑이 밥이 될 뻔했소?”

 

 “글쎄, 모르지요. 이렇게 앉아있다가 호랑이 밥이 될지도.”

 

 은오는 자신의 옆에서 나무에 기대어 앉아있는 해랑 쪽으로 고개를 휙 돌렸다.

 

 “무슨 그런 섬뜩한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시오?”

 

 해랑은 아무 대꾸 없이 온 신경을 주변에 집중하고 있었다.

 은오는 시선을 자신의 발치로 떨어뜨리며 한숨을 쉬었다.

 

 “미안하오. 내가 몸이 약하여...얼마 걷지도 못하고 이러고 있으니, 폐를 끼치게 되었소.”

 

 “미안 할 것 없습니다. 그쪽인들 그리 불편한 몸으로 태어나고 싶었겠습니까”

 

 은오는 해랑의 말에 씨익 웃었다.

 

 “이제 한마을에 살게 될 텐데, 통성명이나 합시다.”

 

 “신해랑입니다.”

 

 “아?!”

 

 놀라 일어서는 은오를 해랑이 물끄러미 올려다 보았다.

 

 “왜 그러십니까?”

 

 “아..아니오. 이름이 아주 잘 어울립니다. 사내답고...”

 

 자신의 복장이 사내 같긴 했지만, 해랑은 괜히 기분이 상해서 벌떡 일어났다.

 

 “기운을 차리신 듯하니, 이제 서둘러 갑시다.”

 

 “내 이름은...”

 

 “그쪽의 함자는 살아서 마을에 들어가면 듣도록 하지요.”

 

 해랑은 다시 마을을 향해 걸었고 은오는 서둘러 봇짐을 들고 해랑의 뒤를 따라 걸었다.

 

 “수염도 없고, 나이도 어린 듯한데 어찌 이리 무뚝뚝한 것이오, 해랑도령?”

 

 은오는 넉살 좋게 다시 해랑에게 말을 걸었다.

 

 “도령이 아닙니다.”

 

 “아, 그럼 그냥 해랑이라 부를 테니 형님이라 부르거라! 난 그다지 신분 같은 것에 구애받는 사람이 아니라서! 동생이...없었는데, 남동생이 생기니 좋구나~.”

 

 은오는 넉살좋게 해랑에게 다가갔다.

 

 길을 잃고 헤매다가 자신에게 칼로 위협까지 받았던 양반이 뭐 이리 친근하게 구는 것인지, 해랑은 그만 어이없는 웃음을 터뜨렸다.

 

 “어? 지금 웃었어? 어디 형님, 한번 해 보아라~.”

 

 해랑은 도령이 아니라고 하는데도 자신을 사내로 여기는 은오를 일단은 그냥 내버려 두기로 마음먹었다.

 

 “옜다. 형님.”

 

 ‘이름이 같아서일까?’

 

 은오는 해랑이 웃는 얼굴을 보자 덩달아 얼굴에 웃음이 났다.

 

 그는 더욱 넉살을 부리며 그녀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순간 당황한 해랑의 얼굴이 굳어졌지만 은오는 알아채지 못하고 계속해서 농담을 던졌다.

 

 “해랑아, 이 형님만큼 크려면 많이 먹어야겠다. 어깨가 생각보다 아담...”

 

 해랑은 그대로 은오의 팔을 잡아챘다.

 

 “형님은 힘을 더 기르셔야 하겠습니다? 허우대만 크니... 아담한 저를 마주 보고도 바지 적삼을 적시는 것 아니겠습니까?”

 

 “뭐…?!”

 

 얼굴이 새빨개져 멈춰선 은오를 두고 해랑은 의기양양한 얼굴로 걸어갔고, 그는 마을 입구에 도착할 때까지 입을 꾹 다물고 조용히 올 수밖에 없었다.

 

 

 

 *

 치우는 바깥에 비해 좀 더 차가운 공기가 감도는 촌장의 집 방 안에 앉아 있었다.

 

 “방이 주인을 닮았어.”

 

 방문이 벌컥 열렸다.

 

 “뭐라고 하시었습니까?”

 

 촌장이 백자에 담긴 술 두 병과 호박전이 놓인 상을 들고 들어왔다.

 

 “방구석이 쌀쌀한 게 주인을 닮았다고 했다.”

 

 촌장은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허! 이젠 별것으로 다 뭐라 하십니다. 문은 열어 놓겠습니다.”

 

 치우는 상을 받아들며 대답했다.

 

 “우리가 남녀 사이도 아니고 무슨... 문까지 열어놓으려 하는가? 늙은이들끼리 무엇을 은밀히 하겠다고.”

 

 치우의 말은 촌장은 미간을 찌푸리며 문을 쾅 닫았다.

 

 “늙은이라... 이런 모습으로 둔갑하였을 뿐이지, 제가 산 세월은 당신에 비할 바가 못 된다는 걸 잊으신겁니까? 수많은 사람을 겪고 망국과 개국을 몇 번이나 겪으셨을 터인데?”

 

 촌장은 치우의 얼굴은 쳐다보지도 않고 그의 잔에 술을 따르며 말했다.

 

 “자네는 꼭 아픈 부분을 찌르는 습성이 있어. 남의 상처를 그리 콕 찍어 말하다니... 거북은 다 자네 같은가?”

 

 치우는 가득 채워진 잔을 내려놓고, 스스로 술을 따르려고 하는 촌장의 손에서 술병을 빼앗았다.

 

 “웃는 얼굴로 무심하게 실언하는 그쪽만 하겠습니까? 이런 모습으로 둔갑하였다고 해서, 저를 늙은 인간 사내로 대하고 있지 않습니까.”

 

 촌장은 공손히 잔을 들어 술을 받았지만 말은 지지 않고 쏘아붙였다.

 치우는 그 말을 듣고 잠시 생각하다가 무언가 생각난 듯 목소리를 과장하며 말했다.

 

 “내가 어찌! 자네를 인간으로 보겠나?! 참으로 그대가 내게 인간으로 보인 적이 단 한 순간도 없네만?”

 

 촌장은 자신 앞에서 웃고 있는 치우를 보며 술잔을 들었다.

 

 “제 말뜻을 다 알아듣고도 놀리시니, 제가 뭐라 할 말이 있겠습니까.”

 

 치우는 비어버린 촌장의 잔에 다시 자신의 손으로 술을 부었다.

 

 "조금은 재미있는 반응을 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무뚝뚝하구나. 영락없이 오랜 세월을 살아 무뎌진 인간 사내 같지 않은가.”

 

 촌장은 말없이 술잔만 비웠고 치우도 단숨에 잔을 들이켰다.

 

 “그래. 너를 처음 만났을 때도 퍽 무뚝뚝하고 겁이 없는 모습이었지. 네 앞에서 이렇게 소탈하게 웃는 날이 올 줄은 꿈에도 몰랐는데. 뭐, 여전히 짜증이 나는 놈이지만.”

 

 치우는 옛 기억을 더듬으며 술잔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그의 입가에 잔잔한 미소가 퍼졌다.

 

 “해랑이라도 그땐 아주 어렸는데.”

 

 

 

 그렇게 서로 술잔을 기울이는 시간이 길어지자, 취기가 오른 치우가 연거푸 한숨을 내쉬었다.

 

 “답답하십니까?”

 

 촌장은 담담한 어투로 물었고 치우는 고개를 뒤로 젖히며 대답했다.

 

 “답답하다...”

 

 “문을 좀 열까요?”

 

 창문으로 손을 뻗는 촌장의 팔을 치우가 잡아채 넘어뜨렸다.

 

 “너는 답답하지도 않아? 윤슬...”

 

 “이든입니다. 이거 놓으십시오.”

 

 치우는 그대로 촌장을 잡고 있는 손에 힘을 주었다.

 

 “윽...”

 

 촌장의 한순간에 검은 안개를 내뿜으며 치우를 밀쳐냈다.

 치우는 방 벽으로 날아가 부딪혔고 촌장은 급히 겉옷을 집어 덮어썼지만, 바닥까지 닿은 길고 검은 머리카락을 감추지는 못했다.

 

 “윤슬. 왜 답답하게 거동도 불편한 모습으로 둔갑하고 사는 거냐?”

 

 “촌장으로서는 그 모습이 편하니까요.”

 

 겉옷을 뒤집어쓴 촌장에게서 여인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넌 무슨 짓을 했길래 본래 모습이 아닌 다른 모습으로도 둔갑을 할 수 있게 된 거냐.”

 

 “...”

 

 윤슬은 대답이 없었다.

 

 “본모습을 숨기지 않나... 나 몰래 감히 내 누이와 둘만의 비밀을 만들지를 않나... 게다가 양반을 마을에 들이면서 내게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지. 털어놓기로 했던 해랑이를 해치려 했던 자들에 대해서는 일언반구조차 없으면서, 이 마을에 나를 묶어놓은 지가 벌써 5년이다.”

 

 치우는 다시 걸어가서 촌장의 겉옷을 걷어냈다.

 

 “말해보아라. 네놈이 원하는 게 뭔지. 대체 뭘 하려는 건지, 언제까지 혼자서만 알고 있을 작정이야?”

 

 윤슬은 고개를 들어 치우의 눈을 마주 보았다.

 

 “기다려주십시오.”

 

 “그 말도 ...!”

 

 “곧! 이제 곧 입니다.”

 

 윤슬은 늘 냉정했던 평소와 다르게 치우의 앞섶을 두 손으로 꼭 쥐며 간절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치우는 익숙하지 않은 시선에 고개를 돌려 피했다.

 

 “알았다... 내가 뭐라도 할 수 있었다면 애초에 네 녀석 말대로 지금까지 기다리진 않았겠지...”

 

 치우는 윤슬의 시선을 피한채로 그녀의 손을 잡아떼어놓고 술상 앞에 다시 앉았다.

 

 “제가 많이 미우십니까?”

 

 “너를 믿지 못할 뿐이다. 그래도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 해랑이가 이렇게 클 수 있었던 건 이 마을에서 자랐기 때문이겠지…. 하. 내가 누구와 해랑이의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겠나. 미워도 너 말고는 내 이야기를 들어 줄 이도 없으니.”

 

 윤슬은 조용히 웃었다.

 그런 윤슬을 치우는 가만히 바라보았다.

 

 “웃으니 얼마나 좋으냐. 네가 내게 뭘 숨기고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그냥 그 모습으로 사는 게 좋을 것 같은데.”

 

 “당신은 뭐가 그리 답답하십니까?”

 

 윤슬은 말을 돌렸다.

 

 “나는 여전히 모르겠어. 지금도 이렇게 술이나 마실 때가 아니라, 해랑이한테 가야 할 것 같은데.”

 

 “가시면 되지 않습니까?”

 

 치우는 술을 따랐다.

 

 “왜 나더러 마음대로 하느냐고 묻는데, 진짜 오라버니도 아니지 않냐고 하는데. 틀린 말이 하나도 없잖아. 위험하니까 따라오지 말라고 했어도 따라가야 했는데,도저히 발이 떨어지지 않았어.”

 

 “신통력이라도 쓰덥니까? 어찌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고..”

 

 “그 말을 다시 들을까 봐. 그 말을 다시 듣기가 무서웠던 것 같다.”

 

 치우는 담담한 어조로 감정을 꾹 누르며 말했다.

 

 “내가 지키던 마을이, 모두 불에 타 버릴 때 나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어. 그래서 몇백 년이나 지난 후였지만, 우연히 듣게 된 해랑이의 목소리를 지나칠 수가 없었다. '이번에는, 이번에야말로 눈앞에서 잃지 않으리라’하는 내 욕심 때문에...”

 

 윤슬이 다시 치우의 술잔에 술을 따르며 말을 끊었다.

 

 “마음대로 여의주를 주고 이 마을에 데리고 왔지만, 그게 잘못한 건 아니지 않습니까. 해랑이를 위해서였고 당신이 해랑이를 얼마나 위하는지는 그 아이도 잘 알고 있습니다. 해랑이가 평소에 당신을 얼마나 좋아하고 따르는지 아시잖습니까. 그저...사람의 아이들은 독립하는 과정에서 그런 시기를 겪더군요. 진심으로 한 말은 아닐 겁니다.”

 

 “그럴까...? 생명이 꺼질까 봐 두려워서 살려내고. 살려내면 또다시 잃게 될 것을 두려워하면서... 실은 해랑이와 나 둘 다 후회하고 있는 거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어. 이렇게 갈팡질팡하며 내가 앞으로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하하...하하. 취한 것인가. 별 이야길 다 하는군.”

 

 치우는 말 없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윤슬에게서 눈을 돌려, 방문 밖으로 뜬 달을 보며 실없이 웃었다.

 

 “‘이번에야말로...’라. 잃는 것의 두려움을 알아버린 자는 쉽게 용기를 낼 수가 없지요. 하지만 쉽게 포기할 수도 없어서 얄궂은 듯합니다.”

 

 윤슬은 자신의 잔에 술을 채우려다가 술병이 거의 비어있음을 깨닫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술을 더 내어오겠습니다.”

 

 그녀는 문으로 향하던 발을 멈추고 돌연 입을 열었다.

 

 “아니면, 해랑이도 혼기가 거의 찼으니...혼사를 통해 평범한 삶을 살아가도록 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이젠 여의주도 거두려면 거둘 수 있지 않습니까?”

 

 윤슬은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인간은, 인간과 살아야지요.”

 
작가의 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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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3화. 각자의 사정(3) 2019 / 10 / 15 240 0 6368   
12 12화. 각자의 사정(2) 2019 / 10 / 11 220 0 6195   
11 11화. 각자의 사정(1) 2019 / 10 / 8 213 0 6447   
10 10화. 그들의 일 2019 / 10 / 4 214 0 7004   
9 9화. 질투가 품는 소망 2019 / 10 / 1 228 0 8856   
8 8화. 움트다 2019 / 9 / 27 212 0 6616   
7 7화. 만남 뒤에 따라오는 2019 / 9 / 24 228 0 4815   
6 6화. 마음이 기울어지는 곳 2019 / 9 / 20 223 0 5086   
5 5화. 호의와 적의 2019 / 9 / 17 213 0 6886   
4 4화. 어디선가 들려오는 목소리 2019 / 9 / 13 231 1 7584   
3 3화. 두 쌍의 오누이 2019 / 9 / 10 223 1 5870   
2 2화. 악몽의 끝, 두번째 이름 2019 / 9 / 6 242 1 6150   
1 1화. 천년, 딱 하루만 더 2019 / 9 / 3 355 1 7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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