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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나의 자카르타
작가 : 히타히타
작품등록일 : 2019.9.2

도망치듯 떠나온 그곳에서 마법이 시작된다.

 
도와주지 마세요
작성일 : 19-10-25 08:54     조회 : 310     추천 : 0     분량 : 4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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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 사장님. 인도네시아엔 법이 없어요.”

 

 나는 제우스의 엉뚱한 말에 대꾸할 가치를 못 느꼈다.

 제우스는 여전히 날 노려보면서, 느릿느릿 특유의 어눌한 말투로 말을 이었다.

 

 “인도네시아엔 법이 없고 강자와 약자만 있어요. 강자가 곧 법이에요. 강자는 뇌물 몇 푼으로 안 되는 일도 되게 만들고 약자는 되는 일도 안 되죠. 그게 인도네시아에요.”

 “무슨 소립니까?”

 

 제우스가 내게 한 걸음 다가와 속삭였다.

 나는 그의 입김이 싫어 목을 움츠렸다.

 

 “권 사장님. 저는 분명히 뇌물을 먹였단 말입니다. 인도네시아에서 그게 안 통하는 일은 없어요. 그런데 안 통했어요. 왜일까요?”

 “저야 모르죠.”

 “누군가 제가 잡은 동아줄보다 더 굵은 동아줄을 잡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내 줄이 안 통하는 거예요. 참 신기한 일이죠?”

 “그러네요.”

 

 제우스가 다시 뒤로 물러섰다.

 이제야 그가 감춰둔 질문이 나왔다.

 

 “누굽니까? 누굴 통해서 누굴 잡은 거죠?”

 

 나는 슬슬 부아가 치밀었다.

 제우스가 인도네시아에 법이 없다고 말할 때 내가 모욕당한 느낌이 들었다.

 인도네시아 관료들의 부패가 심각하다는 데 동의하지만 그 말까지 동의할 순 없었다.

 

 나는 그의 인도네시아가 맘에 들지 않았다.

 그의 한국 역시 그럴 것이다.

 그가 한국에 붙어 있었다면 한국엔 법이 없고 약자와 강자만 있다고 소리쳤을 것이다.

 제우스는 그런 인간이었다.

 그래서 나는 제우스의 눈을 똑바로 노려보며 쏘아붙였다.

 

 “그러게 법을 지켰어야죠. 관광비자 뺑뺑이 돌리면서 대행료 더 받아 챙길 생각 하지 말고.”

 

 제우스가 코웃음 쳤다.

 

 “흥. 법이요? 권 사장님은 법을 지켰습니까?”

 “어긴 것도 없죠.”

 “어긴 게 없다고요? 캐서린 이름 빌려서 편법으로 식당 열게 도와준 게 누굽니까? 저 아닙니까?”

 

 갑자기 할 말이 없어졌다.

 제우스는 한 마디를 더 남기고 돌아섰다.

 

 “무슨 수를 썼는지 모르겠지만 그만 합시다. 안 그러면 저도 가만히 안 있어요.”

 

 나는 멍청히 치킨 집으로 들어가는 제우스를 바라보았다.

 뭔가 계속 마음에 걸렸다.

 내가 제우스의 세계에 한 발 걸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게 계속 마음에 걸렸다.

 

 **

 이날도 손님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손님이 없어서 연기했던 신 메뉴 출시를 이제는 바빠서 연기해야 할 지경이었다.

 

 주린 할머니는 손님이 잦아든 오후 3시에 왔다.

 할머니 옆에는 처음 보는 30대 여자가 있었다.

 

 디디보다 더 여리게 생긴 여자였다.

 화교의 이목구비는 아니었으나 화교보다 더 얼굴이 하얬다.

 아니, 창백함에 가까웠다.

 주린 할머니는 그녀를 어미 닭처럼 품고 제일 앞자리 테이블에 앉았다.

 

 “만나셨군요.”

 

 나는 할머니와 리따에게 생수잔을 내밀었다.

 할머니는 목이 말랐는지 물 잔을 단번에 비우고 입맛을 다셨다.

 

 “돌담에 한번 와 보고 싶었어요. 점심 때 오려고 했는데 차가 막혀서 이제 왔네요.”

 

 할머니는 메뉴판을 보지도 않고 돌솥비빔밥과 육개장을 시켰다.

 나는 들고 있던 메뉴판을 머쓱하게 내려놓았다.

 

 “여기 숩이 맛있다던데요.”

 “벌써 다 알아보셨군요.”

 “제가 친구들한테 물어본다고 했잖아요. 호호.”

 

 나는 인드라에게 메뉴를 만들어달라고 부탁하고 테이블로 돌아왔다.

 주문을 포스기에 입력하지는 않았다.

 

 “뭘 더 시켜야 하나요? 팔아 드리고 싶은데.”

 “더 드시고 싶은 게 있으면 말씀 하세요. 오늘은 제가 내겠습니다.”

 “아뇨, 아뇨. 그러면 안 되죠.”

 

 할머니가 손사래를 치며 목소리를 높였다.

 카랑카랑한 목소리에 귀가 아파서 나는 빨리 그녀를 진압해야 했다.

 

 “제 마음을 거절하지 말아 주십시오. 그건 그렇고 친구 분들이 돌담을 어떻게 평가하던가요? 그게 듣고 싶습니다.”

 “다들 좋은 평 일색이었어요. 솔직히 놀랐죠. 젊은 남자 사장님이 아줌마들한테 좋은 평 듣기가 쉽진 않으니까요.”

 “어떤 좋은 평을 하시던가요?”

 “음식도 맛있고 사장님도 친절하다고요.”

 “제가 그렇게 친절하진 않을 텐데요.”

 “음... 어색하긴 하지만 최선을 다해 친절하다고.”

 

 할머니가 웃었다.

 나도 뭔가 정곡을 찌르는 평가 같아서 함께 웃었다.

 

 “어떨 땐 어색한 게 나은 거예요. 진심이 담겨 있으니까.”

 

 나는 주린과 리따,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창가로 역광이 들어와 그들의 뒤통수를 비추었다.

 내게는 그것이 후광처럼 보였다.

 

 우기가 끝나가고 있었다.

 물의 장막을 만들 정도로 쏟아지는 빗줄기는 이제 보이지 않는다.

 먹구름 사이로 간간히 햇살이 쏟아져 젖은 야자수 잎들을 말렸다.

 

 만나야 할 사람은 반드시 만난다.

 나는 두 사람을 보며 이런 닳고 닳은 격언을 떠올렸다.

 그 말이 옳다는 증거가 바로 내 앞에 있었다.

 시간의 골이 얼마나 깊든, 만나야 할 사람은 언젠가는 만나게 돼 있었다.

 

 “참 보기 좋군요.”

 “다 바빡 덕분이죠.”

 “권이라고 불러주십시오. 제발.”

 

 할머니는 한참 망설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성은이라도 입은 것 같았다.

 

 리리가 음식을 들고 왔다.

 할머니와 리따는 접시를 청해 비빔밥과 육개장을 나눠먹었다.

 리따가 뜨거운 밥과 국물을 후후 불자 창백했던 얼굴이 조금 붉어졌다.

 

 “그릇이 뜨거우니까 조심하십시오.”

 “한국 음식은 다 이렇게 뜨겁나요?”

 “대부분 그렇죠. 인도네시아 분들도 요즘 따뜻한 밥 좋아하시잖아요.”

 

 인도네시아 전통 음식은 차가운 밥을 기본으로 한다.

 그러나 최근 자카르타 주부들 사이에서 한국 전기밥솥이 불티나게 팔리고 있었다.

 인도네시아인들도 갓 지어 고슬고슬한 밥맛에 길들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주린 할머니에게 할 말이 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아주 중요한 말인데 이제야 생각났다.

 

 “이부.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네. 언제든.”

 “더 이상 절 돕지 말아 주십시오.”

 

 할머니가 냅킨으로 입을 닦았다.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눈을 크게 떴지만 나는 그게 가장된 표정이라고 생각했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네요.”

 “아실 겁니다.”

 

 할머니가 눈을 가늘게 뜨고 뭔가를 한참 생각했다.

 

 “좋아요. 만약 제가 권을 도왔다고 해도 그걸 왜 거절해야 하죠? 호의로 받아들을 수 있을 텐데요. 방금 권이 우리한테 음식을 대접한 것처럼.”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자존심 때문인가요?”

 “아마 그럴 겁니다.”

 

 할머니가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내가 생각해도 내가 어이없었다.

 

 아침에 제우스와 대화한 뒤부터 뭔가가 계속 마음에 걸렸다.

 뭔가 소화되지 않고 풀어지지 않은 덩어리가 위장에 걸려 내려가지 않았다.

 할머니의 도움을 받는 것이 내 속을 그렇게 불편하게 했는데, 그 이유가 뭔지 알 수 없었다.

 아마 알량한 자존심 때문일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만약 내가 권을 도왔다고 쳐요. 그렇다 해도 권이 나를 도운 것과 내가 권을 도운 것 중 어떤 게 더 인생에 큰 의미를 줬을까요?”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다르겠죠.”

 

 주린 할머니의 말투가 조금씩 차가워졌다.

 조금 전의 온화했던 표정이 사라지고, 엄격한 귀부인의 표정이 얼굴에 걸렸다.

 할머니가 차가워지면 내뿜는 한기에 소름이 돋는다.

 

 “권. 다시 한 번 물어볼게요. 리따의 주소를 누구한테 받은 거죠? 제가 리따를 찾고 있다는 걸 어떻게 알았죠?”

 “저번에도 말씀 드렸지만 그걸 어떻게 설명할 방법이 없네요.”

 

 나는 한숨을 쉬었다.

 주린 할머니는 말 한 해도 안 다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누구에게 받았든 그건 중요하지 않아요. 권이 중요한 것을 줬으니 저도 뭔가를 줘야 겠죠. 나는 권이 그 메모를 줬을 때 거래를 제안한다고 생각했어요.”

 

 거래.

 그래, 바로 그것이었다.

 할머니의 과한 도움을 받을 때 마음이 불편했던 이유는 그것이 거래였기 때문이었다.

 누군가에게 정보를 캐내서 갖다 바치고 그 대가로 연줄을 얻는 거래는 제우스의 세계에서 번성하는 방식이었다.

 

 나는 할머니처럼 살고 싶었다.

 지금은 아니지만, 언젠가는 할머니처럼 자신만의 방식으로 자카르타를 헤엄치며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고 싶었다.

 그러려면 할머니의 그늘 밑으로 들어가면 안 되었다.

 나는 할머니의 매서운 눈빛을 똑바로 받아내며 말했다.

 

 “저는 이부처럼 살고 싶습니다. 그래서 도움을 받으면 안 됩니다.”

 

 할머니의 표정이 조금 풀렸다.

 나를 보며 실실 웃기 시작했는데, 그건 내게 다시 호기심이 생겼다는 뜻이었다.

 

 “진심인가요?”

 “진심입니다.”

 “알겠어요. 도운 적도 없지만 앞으로도 안 도울 게요.”

 

 옆 자리의 리따도 미소를 띠었다.

 할머니의 저 난해한 속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인지, 할머니의 기분에 따라 표정이 변했다.

 나는 리따에게 물었다.

 

 “이부 리따는 이부 주린과 영원히 연락을 끊을 생각이셨나요?”

 “늘 망설였어요. 그렇게 죽을 때까지 망설였을지 모르겠어요.”

 "아니요. 저는 그렇게 생각 안 합니다. 언젠가는 연락 하셨을 겁니다."

 

 나는 리따가 몇 년 뒤 죽는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이날 이후 리따를 만난 적 없다.

 할머니를 만날 때마다 리따의 건강을 체크하라고 종용했지만 미래를 바꿀 순 없었다.

 이날 내가 의무감에 한 말은 리따에게 남기는 마지막 말이 되고 말았다.

 

 “건강 조심하십시오.”

 

 나는 할머니와 리따를 문밖까지 배웅했다

 할머니는 연신 음식이 맛있다고 고개를 끄덕였는데, 예의로 하는 말 같진 않았다.

 할머니와 리따가 밴을 타고 떠난 뒤에도 나는 한참동안 현관 문 앞에 서 있었다.

 

 할머니의 도움을 거절한 것이 잘한 일인지 확신이 들지 않았다.

 나는 조금 아쉬웠지만 후회하진 않았다.

 솔직히 말하면 후회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3년 뒤 리따는 죽었다.

 내가 리틀 홍콩에서 술을 마시고 있을 때 할머니는 전화로 부음을 들었다.

 나는 주린 할머니가 무너지는 모습을 처음 보았다.

 저 도도한 할머니가 저렇게 처절하게 무너지리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할머니는 며칠 만에 다시 일어섰다.

 일주일 뒤 리틀 홍콩을 찾아갔을 때 할머니는 또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내가 주소를 전해주지 않았어도 할머니는 그렇게 빨리 이겨냈을까.

 아마 아니었을 것이다.

 

 할머니를 배웅하던 나는 3년 뒤의 일까지 생각하진 못했다.

 하지만 사람들의 만남과 헤어짐에 대해 복잡한 감정을 느꼈던 것 같다.

 그것은 기쁘고도 슬픈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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