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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매화의 난
작가 : 어항
작품등록일 : 2019.10.17

억울한 누명으로 인해 죽어간 자신의 종족들을 위해 복수하는 한 여인의 이야기

 
9
작성일 : 19-10-24 16:00     조회 : 252     추천 : 0     분량 : 4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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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만간 천위제가 열릴 터였다. 매년 이 순간, 예언을 가져온 태후 마마를 기리기 위한 축제가 열린다. 하늘이 을련국을 위한다. 찬란한 의미를 담은 이 축제는 을련국에서 큰 행사 중 하나였다.

  자란은 벌써부터 머리가 아파왔다. 일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내명부에서는 또 자신에게 준비하라고 난리를 칠 것이다. 애초에 자신을 꾸미는 것 외에는 관심 없는 륜씨나 소심해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지 못하는 오씨는 하지도 못할 터였다. 자란의 머리가 지끈거렸다.

  후궁을 더 뽑아야 해. 그녀는 자신을 도와 총명하게 일을 꾸려나갈 후궁이 필요했다. 허나 지금 있는 두 후궁은 영 그쪽에는 소질이 없었다. 자신은 황후라지만 아무리 그래도 모든 일을 다 할 순 없었다.

  그리고 애초에 후궁이 너무 적었다. 후궁은 단순한 의미가 아니지 않는가. 힘의 결합과도 같은 거였다. 그런데 끽해야 세 가문 뿐이라니.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아마 관료들이 황제에게 여러 말을 올렸을 터였다. 하지만 미쳐가는 황제에게 겁 먹은 그들이 몇 마디를 할 수 있었을까. 아마 못 할 터였다.

 

 "옥녀야."

 "네, 마마."

 "이러다 과로사로 죽을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마마."

 "도대체 왜 폐하는 더 후궁을 뽑지 않으시는 걸까. 무엇보다 문제는 태후 마마야. 몰아 붙이신다면 언제든 후궁을 뽑을 수 있지 않으신가."

 

  폐하에 대해 생각하자 자란은 얼마 전 있던 길일이 떠올랐다. 기어코 길일을 쳐내신 폐하가 어떤 의미로는 대단하다고 느껴졌다. 점점 광증이 심해지는 황제. 그리고 죽어 나가는 사람들. 자란은 눈을 질끈 감았다. 지금이야 어떻게든 입 단속을 하고 있지만 곧 국민들에게 퍼져 나갈 것이다.

  옥녀는 힐끔 그녀를 보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폐하께서 광증이 돋으셨는데…."

 "……."

 "태후 마마께서 그걸 많은 분들께 알리려고 하시겠습니까."

 

  옥녀는 똑똑한 아이었다. 궁녀로 있으면서 빠른 눈치와 본능으로 살아남았다. 그래. 옥녀 말대로 태후가 자신의 약점인 그를 많은 자가 알게 냅둘 리 없었다. 하지만 자란은 이대로 가다간 과로사할 자신이 불쌍했다. 아무리 권력이 적은 황후라지만 황후. 자란은 벌떡 일어섰다.

 

 "옥녀야, 안 되겠다. 태후 마마를 뵈야겠어."

 "네에? 괜찮으시겠어요?"

 

  최대한 전면전은 피하고 싶지만 어쩔 수 없다. 애초에 보통 다른 나라에서 7명에서 8명 정도 있는 후궁들과 다르게 강대국 을련국이 겨우 3명이라니 말이 되는가. 자란은 이 점을 피력할 생각이었다. 그녀가 무서운 건 변하지 않지만, 이 정도의 '부탁'은 들어줄 수 있겠지. 자란은 입술을 깨물었다.

 

 

 *

 

 

 "태후 마마, 황후 마마가…."

 "들라하라."

 

  자란은 꿀꺽 침을 삼키고 천천히 안으로 들어섰다. 그녀가 인사하자마자 태후가 일어나라고 일렀다. 천천히 일어났다 앉자 서신을 보고 있던 태후가 말했다.

 

 "그래. 황후가 좀처럼 찾아오는 일이 없거늘 무슨 일입니까."

 "마마, 무례를 용서하시옵소서."

 "무슨 말입니까."

 "엄연히 아랫 사람인 제가 이런 말을 한다는 자체가 무례한 건 압니다. 허나."

 

  무슨 말을 하기에 저리 질질 끄는지. 태후는 마음에 들지 않아 눈썹을 꿈틀였다. 자란은 그녀의 모습을 보고 마른 침을 삼켰다. 불편해한다. 불편해해. 하지만 얘기해야 했다.

 

 "후궁, 을 뽑으면 어떨까 합니다."

 "후궁이요?"

 

  언짢은 얼굴을 보며 자란은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이럴 줄 알았어. 자란은 방어하듯 자신의 이야기를 술술 풀어나갔다.

 

 "죄송스럽지만 마마, 이제 곧 천위제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그래요. 안 그래도 화비에게 들었습니다."

 

  화비에게 들어? 자란은 황당한 마음을 애써 감췄다. 도대체 하는 일도 없는 화비가 그 말을 먼저 꺼낸 이유가 무엇인지, 원.

 

 "을련국의 크고 성대한 축제 아닙니까. 마마의 위대한 업적을 기리는 축제이기도 합니다."

 

  태후가 가지고 있던 붉은 부채를 쫙 펴 입을 가렸다. 자기 칭찬이라 기분이 좋아진 것이다. 좋아. 기분이 좀 나아지셨군. 자란은 천천히 말을 이었다.

 

 "허나 부족한 황후인 저만으로 성대하고 아름다운 축제를 준비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마마의 하해와 같은 은총을 내려주시옵소서."

 

  자란은 절을 하며 그녀에게 말했다. 이렇게까지 하지 않으면 분명 후궁을 뽑는 일에 동의하지 않을 사람이다. 해줄까. 해주려나. 걱정이 되었으나 거절해도 어떻게든 할 수는 있을 것이다.

 

 "좋습니다."

 "……!"

 "황후께서 알아서 잘 하리라 믿어요. 어차피 원자 생산에도 필요한 일. 길일마저 넘겼으니 내명부 사람을 늘리는 것도 좋겠죠."

 

  자란은 그 말에 더욱 깊이 고개를 숙였다. 마마님의 하해와 같은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몇 번이고 그 말을 반복하자 태후가 짧게 웃는다.

 

 "됐습니다. 황후는 정말 이 늙은이를 기분 좋게 해주는 군요."

 "아닙니다. 다 마마의 은혜 덕분입니다."

 "알아서 하실 거라 믿습니다. 이만 물러가세요."

 "네, 마마."

 

  인사를 한 후, 천천히 밖으로 빠져나갔다. 후- 깊이 한숨을 쉰 자란은 앞에서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화비에 깜짝 놀라 눈을 크게 떴다. 아니, 지금 앞에서 뭐 하는 거람. 게다가 고하지도 않고 가만히 있다니. 무례한 모습에 자란이 인상을 썼다.

 

 "화비? 어찌 마마께 알리지 않고 이러고 있습니까."

 "후궁을 더 뽑겠다구요?"

 

  아차, 들은 모양이었다. 그걸 듣고 차마 분노가 치밀어오르는 자신을 주체하지 못 해 분명 궁인에게 알리지 말라고 이른 것이 분명했다. 오씨나 자신과 다르게 폐하의 사랑을 누구보다 갈구하는 화비로써는 참을 수 없으리라. 자란은 머리 아프게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쩔 수 없습니다. 정 싫으시면 화비가 이번 천위제를 위해 저와 같이 정무를 보시던지요."

 "뭐라구요?"

 "제가 알기로 화비는 그에 관련된 지식이 하나도 없는 걸로 압니다만. 아닙니까?"

 

  륜씨 가문의 어화둥둥 늦둥이로 태어난 화비는 자신의 아버지를 뒤에 두고 온갖 것들을 누려왔다. 귀찮은 일, 싫은 일은 죽어도 하지 않았던 그녀가 정무에 대해 논할 수 있을 리 없다. 태후의 눈에 들고 싶어 예의는 열심히 차리는 모양인데, 글쎄. 자란은 자색 눈을 차갑게 띄며 말했다.

 

 "후궁이 단순히 폐하의 부인이라고만 생각하는 건 아니겠죠, 화비."

 "……."

 "내명부의 일을 하며 폐하의 고충을 덜어드리는 일도 저희가 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꾸미고 예뻐 보인다고 다가 아니에요. 차갑게 일갈한 자란은 그녀를 지나쳐 걸어갔다. 분노를 참지 못해 쾅쾅 발을 구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옥녀는 걱정스러운지 힐끔 화비를 보며 말했다.

 

 "막무가내인 후궁입니다. 마마께 해가 될까 두렵습니다."

 "되었다. 그녀가 해가 된다고 해도 유치한 장난이겠지. 일일이 대응할 필요 없다."

 

  자란은 곧바로 후궁을 뽑겠다는 서신을 전국에 뿌렸다. 그리고 전국의 여인들에 대한 서신이 그녀에게로 올라왔다. 졸부인 가문의 딸도 있었고, 이름만 들어도 아는 대귀족의 딸도 있었다. 하지만 자란은 자신이 부릴 수 있는, 도움이 되는 여인을 뽑으려고 한다. 직위가 높지 않고, 적당히 도울 수 있는 협력 관계가 될 여인.

  하지만 서신만 봐서는 자란도 누굴 뽑아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이것도 일이구나. 지끈거리는 머리를 붙잡고 자란은 천천히 살폈다. 우선 몇 명을 뽑아놓긴 했다. 이 중에서 총명하면서도 흔들림이 없고, 입이 무거우며 아름다운 여인을 찾아야 한다.

  자란은 붓을 들어 서신을 써내려갔다. 그리고 옥녀에게 넘겼다.

 

 "옥녀야, 이 서신을 내가 뽑아놓은 가문들에게 보내도록 해라."

 "이 6명 말입니까?"

 "그래. 이 중에서 뽑을 것이다."

 

  가문에 속속들이 서신이 도착했다. 그리고 며칠 후, 황궁 안으로 은밀하게 여섯 가문의 딸들이 도착했다. 천천히 가마 안에서 내리는 사람들 중 옅은 붉은 머리와 검은 눈동자의 여인이 보였다.

  옥녀는 큼큼 목을 가다듬으며 그들에게 말했다.

 

 "곧 황후 마마를 뵙게 될 것입니다. 그때는 꼭 여러분이 가진 예의와 절개를 보여주시길 바랍니다."

 

  옥녀의 말에 긴장으로 휩싸인 여인들이 보였다. 반면 붉은 머리 여인은 아무렇지 않게 힐끔 옥녀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옥녀의 뒤를 따라 여인들이 안으로 들어섰다.

  화려하고 웅장한 푸른 빛의 궁을 보며 모두들 감탄을 금치 못 했다.

 

 "먼 길 오느라 수고했다."

 

  그리고 그들은 가장 화려한 장식의 문 앞에 섰다. 천천히 문이 열리고 자애로운 미소를 짓고 있는 자란황후가 보였다. 부드러운 보랏빛 머리카락을 틀어올리고 우아하게 앉아 있는 그녀는 자색 눈을 느리게 감았다 뜨며 그들에게 인사했다.

 

 "마마를 뵙습니다."

 "일어나시게. 오늘 여기까지 오느라 수고했네."

 

  황후의 인자한 말에 그녀들의 표정은 천천히 풀려갔다. 몸을 일으킨 그녀들이 줄에 맞춰 천천히 자리에 앉았다. 한 명씩 자기 소개를 시작했다.

 

 "소가문의 예리라 하옵니다."

 

  맨 앞에 앉은 하늘빛 머리칼의 여인네를 필두로 한 명씩 자기소개를 했다. 이윽고 끝에 앉은 여인에게까지 다다랐다. 옅은 붉은 머리의 여인이 몸을 숙이며 자기소개했다.

 

 "설가문의 매화라 하옵니다. 마마."

 

  검은 눈이 이채를 띠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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