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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나의 자카르타
작가 : 히타히타
작품등록일 : 2019.9.2

도망치듯 떠나온 그곳에서 마법이 시작된다.

 
가족이란 뭘까
작성일 : 19-10-24 08:50     조회 : 298     추천 : 0     분량 : 48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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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도네시아에서 꼼빠스미디어그룹의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전국 최대 방송국, 최대 신문사, 최대 서점 체인과 출판사를 한 그룹이 다 갖고 있다.

 한국으로 치면 KBS와 조중동과 교보문고가 합쳐진 공룡인 셈이다.

 

 그중에서도 꼼빠스TV의 힘이 가장 세다.

 <월드푸드>는 꼼빠스TV가 황금 시간대에 방영하는 맛집 소개 프로그램으로, 출연 신청을 하는 식당이 줄을 설 정도로 유명하다.

 물론 나는 신청한 적이 없다.

 

 “그렇죠? 이 기회를 놓치면 우리는 죽어요. 반대로 이 기회를 잡으면 전국으로 뻗어나갈 수도 있어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고맙게 맞아야지.”

 “그래요. 제가 지금 달려갈게요. 매장 정리를 제가 할게요.”

 “응. 조심해서 와.”

 

 나는 전화를 끊었다.

 이제야 상황이 정리됐다.

 이 모든 사태를 기획한 사람이 누구인지 나는 뒤늦게 깨달았다.

 

 “이부 꾸앗(강하다). 이부 꾸앗이야.”

 

 나는 혼자 중얼거렸다.

 주린 할머니였다.

 그녀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손님이 하루 정도 갑자기 느는 건 우연으로 칠 수도 있다.

 하지만 꼼빠스TV를 움직여 뿌리인다의 허름한 한식당을 취재하도록 하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없다.

 

 나는 고맙기 이전에 놀랐다.

 주린 할머니의 힘이 이 정도일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녀가 최대의 힘을 발휘하면 무슨 일을 해낼지 궁금했다.

 할머니의 남편은 고위관료급이 아니라 유력 정치인일지도 몰랐다.

 

 몇 분 뒤 캐서린이 달려왔다.

 얼굴이 온통 땀에 젖은 채 숨을 헐떡이며 현관문을 열었다.

 그녀가 저렇게 당황하는 모습을 나는 한 번도 본 적 없었다.

 캐서린은 현관 앞에 서서 식당이 북적대는 모습을 보고 입을 벌렸다.

 

 “미스뜨르. 무료 쿠폰 뿌렸어요?”

 “난 그런 거 만들 줄도 몰라.”

 “근데 왜 이래요?”

 “난들 아나.”

 “큰일 났네. 시간이 없는데.”

 

 나는 캐서린과 홀을 정리했다.

 다행히 3시가 다가오자 손님들이 많이 빠져나갔다.

 꼼빠스TV 취재팀은 정확히 3시에 현관문을 열고 들어왔다.

 

 키 큰 리포터가 성큼성큼 앞장을 섰다.

 나는 저 리포터를 TV에서 여러 번 보았다.

 쇼핑몰이든 식당이든 모니터가 달린 곳이면 어디든 <월드푸드>라는 프로그램이 자주 흘러나왔기 때문이다.

 ‘자야’라는 애칭의 그 여성 리포터는 TV 화면 보다 키가 크고 화장도 더 진했다.

 

 “바빡. 젊은 나이에 성공하셨네요.”

 “아직 성공 안 했습니다.”

 “그럼 성공하실 거예요.”

 

 리포터는 단어들을 딱딱 끊어 정확히 발음했기 때문에 듣기 편했다.

 촬영 스태프들이 조명을 설치하는 동안 작가들이 내게 질문 목록을 읽어주고 간단한 분장을 시켰다.

 PD가 다가와 답변을 연습시켰다.

 작가들은 내 인도네시아어 발음을 듣더니 자막을 깔아야겠다고 수군댔다.

 

 점점 떨렸다.

 조명을 켜기도 전인데 이마에 땀이 맺혔다.

 얼굴의 근육이 로봇처럼 굳어갔다.

 리포터가 다가와 내 안색을 살피며 말했다.

 

 “당황하셨죠? 저희도 이렇게 급하게 진행하는 건 처음이에요.”

 “누가 돌담을 소개해주셨죠?”

 “소문 듣고 왔죠.”

 “그럴 리가요.”

 

 리포터가 웃었다.

 나는 그녀가 웃는 모습을 보며 소문 듣고 왔다는 말이 거짓말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카메라맨들이 인드라가 급히 만든 음식들을 찍었다.

 유리벽을 두른 그릴기 앞에서 인드라가 고기를 굽는 모습도 찍었다.

 떡갈비에서 불꽃이 확 일어나는 장면을 찍을 땐 그림이 제법 근사하겠다 싶었다.

 

 마침내 인터뷰가 시작됐다.

 사방에서 조명이 터지고 리포터가 마이크를 들었다.

 카메라가 돌자 리포터는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했다.

 아까의 차분한 태도는 사라지고 두꺼운 화장으로 덮인 안면근육들을 출렁이면서, 파마를 한 탐스런 머리도 함께 출렁이면서, 서자카르타에서 가장 유명한 한식집 사장이 뜻밖에도 젊은 남자인데 슈퍼주니어를 닮지는 않았다고 농담까지 곁들여 소개했다.

 

 반면에 나는 굳어갔다.

 직원들에겐 술술 나오던 인도네시아어 단어들이 목구멍 중간에 걸려 나오지 않았다.

 전국의 시청자들이 내 인도네시아어를 듣는다고 생각하니 더 움츠러들었다.

 최악의 상황에선 익숙한 언어가 튀어나오게 마련이다.

 

 “저, 저는...”

 

 나는 나도 모르게 한국어로 말했다.

 피디가 촬영을 중단시키고 다가와 나를 달랬다.

 

 “긴장하지 마시고 평소 말하던 대로 하세요. 인도네시아어가 조금 서툴러도 괜찮습니다.”

 “아, 알겠습니다.”

 “바빡, 영어로 할까요? 그게 더 편하겠어요?”

 “아, 아뇨. 인도네시아어가 더 낫습니다. 할 수 있습니다.”

 

 어설픈 영어보다는 매일 사용하는 인도네시아어가 더 편했다.

 영어로 바꾸면 더 말이 나오지 않을 것 같았다.

 카운터에서 지켜보던 캐서린이 내 등 뒤로 다가와 속삭였다.

 

 “미스뜨르. 잘 해야 돼요. 여기에 돌담의 운명이 걸렸어요.”

 “알았어. 걱정 마.”

 

 보지 않아도 캐서린의 표정이 짐작됐다.

 그녀는 지금 학예회 무대에 서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울고 있는 아이를 보는 표정일 것이다.

 피디가 팔짱을 끼고 내 얼굴을 한참 살피더니 안 되겠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작가가 다가와 피디에게 속삭였다.

 

 “한국어로 대답하고 자막을 넣죠.”

 “그럴까? 그게 낫겠네.”

 

 화장을 고치던 리포터가 다시 머리를 찰랑이며 다가왔다.

 

 “안 돼요! 바빡이 어색한 인도네시아어로 말해야 더 극적이에요. 시청자들은 그런 걸 원한다고요.”

 “그래? 그럼 다시 해보자.”

 

 인도네시아어냐, 영어냐, 한국어냐.

 취재팀이 내 입을 놓고 실랑이를 벌이자 나는 더 긴장되었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내 주위에 둘러선 촬영 스태프, PD, 작가들이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목덜미에 땀이 쏟아졌다.

 내 목구멍에 고인 인도네시아어는 조금도 기어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카메라가 돌아가고 리포터가 다시 멘트를 쳤다.

 나는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인도네시아어가 위장 속으로 우수수 떨어지는 것 같았다.

 

 그때 현관문 앞에 선 리리가 눈에 들어왔다.

 아무도 안 보이는데 리리만 보였다.

 그녀가 지구상에 남아 있는 내 유일한 가족 같았다.

 리리는 평소와 다름없이 태평하게 하품까지 하며 현관문에 기댄 채 날 노려보고 있었다.

 

 갑자기 리리가 개다리춤을 추었다.

 여전히 아무 표정도 짓지 않고, 통통한 상체는 고정시킨 채, 다리만 프로펠러처럼 빠르게 움직였다.

 한국 드라마에서 배운 건지 아니면 인도네시아 전통가무에 개다리 춤이 있는 건지 알 수 없었다.

 

 풉.

 나는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았다.

 신기한 일이었다.

 그 순간에 웃음이 나오는 것도 신기했지만, 인도네시아어 단어들이 웃음에 실려 흘러나오는 건 더 신기했다.

 

 리리가 개다리춤을 멈춘 뒤에도 실없는 웃음이 멈추지 않았다.

 나는 웃음을 꾹 참으며 리포터의 질문에 답변했다.

 한식의 매력과 현지화에 대한 그렇고 그런 말들이었다.

 

 말할수록 자신감이 올라 더 빨리 말했다.

 말문이 터지자 신이 나 제스처도 취했다.

 질문이 들어오면 돌담 이곳저곳을 손으로 가리키고, 리포터가 칭찬하면 어깨를 으쓱 하며 웃었다.

 

 나는 <월드푸드> 영상을 다시 보지 않는다.

 그 영상에는 내가 식당의 흥행에 기뻐 죽겠다는 표정으로 웃음을 실실 흘리며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한 마디로 순진무구한 바보의 표정이다.

 엉터리 발음으로 빨리 말하는 통에 무슨 소린지 이해하려면 자막을 봐야 하고, 말끝마다 원숭이처럼 팔을 버둥거린다.

 그게 다 리리의 작품이다.

 취재팀이 돌아간 뒤 나는 리리에게 물었다.

 

 “그 춤 어디서 배웠어?”

 “우유 광고에 나와요. 유명해요.”

 

 그 뒤로 나는 틈날 때마다 개다리춤을 춰 달라고 부탁했지만, 리리는 한 번도 들어주지 않았다.

 그때 누군가 리리를 찍어 놨어야 했다.

 

 **

 다음날 아침, 인드라가 치킨집 앞을 서성였다.

 아직 출근 전이었는데, 오토바이를 치킨집 앞에 세워놓고 직원 한 명과 대화하고 있었다.

 나는 돌담 유리창 너머로 인드라를 보며 불안에 젖었다.

 인드라가 저 직원의 달콤한 말에 무너지면, 돌담도 함께 무너질 것이다.

 

 대화는 금방 끝났다

 나는 돌담 문을 열고 들어오는 인드라에게 일부러 크게 인사했다.

 

 “인드라, 슬라맛 빠기!(아침인사)”

 “슬라맛 빠기, 미스뜨르.”

 “별 일 없지?”

 “별 일 있어요.”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인드라에게 다가갔다.

 별 일이 있다던 인드라는 그냥 태평스런 표정이었다.

 

 “뭔데?”

 “저기 치킨집이요.”

 

 인드라가 길 건너 치킨집을 손으로 가리켰다.

 

 “치킨집이?”

 “영업정지 당했대요.”

 “뭐?”

 

 나는 고개를 돌려 치킨집을 살폈다.

 그러고 보니 치킨집 앞 풍경이 너무 조용했다.

 아침마다 모니터에서 흘러나오던 아이돌 영상, 힘차게 흔들리며 돌담 직원들의 기를 죽였던 대형 풍선도 보이지 않았다.

 직원들이 치킨집 안에 틀어박혀 대책을 논의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왜 그랬대?”

 “어제 이민국 직원들이 단속 나왔대요. 거기 한국인 매니저가 관광비자로 일했거든요. 걸려서 한 달 정지 먹는답니다.”

 

 나는 고개를 갸우뚱 했다.

 이민국 직원들이 큰 외국 식당을 뒤지는 건 흔한 풍경이다.

 보통 불법 외국인노동자 단속팀 용돈이 떨어질 때쯤 나온다고 보면 된다.

 대부분의 경우 노동부에 신고 된 노동자 명단과 현장 직원을 대조하고, 미등록 노동자가 있는지 물어보는 것으로 끝난다.

 취업비자가 없는 한국인은 미리 피신시키거나 화장실에 숨겨 놓는다.

 그런데 어제 나온 단속팀은 피신한 한국인을 콕 집어 찾아냈다는 얘기다.

 

 치킨 집 문이 열렸다.

 하와이안 셔츠를 입은 제우스가 늘 그렇듯 대머리의 땀을 닦으며 나왔다.

 그의 표정에서 곤혹스러움이 배어 나왔다.

 본사와 현지 투자자한테 비자 문제까지 해결해주겠다고 큰 소리를 뻥뻥 쳐놨을 텐데 이민국 단속으로 궁지에 몰렸을 것이다.

 

 제우스는 돌담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왔다.

 그가 왜 이리로 오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했다.

 나는 현관문을 열고 나가 그를 맞았다.

 

 “어제 일이 있었다면서요?”

 “아, 그거요? 별 거 아닙니다. 이민국 단속이 떴는데 애들이 대처를 잘 못했나 봅니다. 곧 해결됩니다. 행정소송까지 갈 필요도 없어요.”

 

 그럴 리 없었다.

 단속 현장에서 무마시켰다면 모를까, 이미 단속이 끝나고 행정명령만 남은 시점에 없던 일로 하는 건 불가능했다.

 

 “근데 어쩐 일로 오셨어요?”

 

 제우스가 나를 노려보았다.

 네가 감춘 패를 어서 꺼내놓으라고 윽박지르는 표정이었다.

 나는 입을 다물고 딴청을 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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