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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윤슬
작가 : 차운
작품등록일 : 2019.10.5

보통 청춘이라 하면 찬란한 혹은 빛나는 모습을 떠올린다. 마치 햇빛 또는 달빛을 받아 반짝반짝 빛나는 저기 저 앞 바다의 윤슬처럼. 하지만 현실에서의 청춘은 그리 반짝이지도 찬란하지도 않다. 되려 일찍 메말라 버린 꽃잎들처럼 생명력을 잃거나 무기력한 모습이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버린 혹은 버려진 청춘들은 다들 어디에 있는 것인가. 나는 그것이 궁금했다. 소설 윤슬을 통해 여러 청춘들의 얼굴을 그려보고 싶었다. 그 한없이 슬픈 얼굴들을...

 
제13화 긴 밤
작성일 : 19-10-23 18:32     조회 : 217     추천 : 1     분량 : 5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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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밖엔 하얀 눈이 내린다. 앙상한 나뭇가지 위로 흰 눈이 쌓여간다. 병원의 환자들은 제 각각 저마다의 방에서 흰 눈을 보며 왜인지 소곤소곤 담소를 나눈다. 나희와 문희도 방문을 닫고 창밖에 끊임없이 내리는 흰 눈을 보며 이야기를 나눈다.

 

 “나희씨. 내가 스스로 죽으려고 한 적 있다는 얘기했었나?”

 문희가 사뭇 진지해진 얼굴로 나희에게 묻는다.

 “아뇨. 그 얘긴 처음 듣는데요.”

 동그래진 나희의 눈을 보며 문희가 이야기를 시작한다.

 “나 어릴 때 스스로 죽으려고 한 적이 있었어. 내가 아마 나희씨 나이쯤 이였을 거야. 옷장 문고리에 목을 맸었지. 드라이기 전기선이었는데 불행인지 다행인지 내 목을 조른 전기선이 끊어졌고 나는 살아남았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해. 의식이 돌아오려고 할 때 내 귓속에서 어떤 여자의 날카로운 비명소리가 들렸던 게. 그건 마치 내 영혼이 내지르는 비명 같았지. 아마 그 선이 전기선이 아니라 굵은 밧줄이었다면 나는 살아서 이 세계로 돌아오지 못했을 거야. 나는 그 이후에 단 한 번도 자살을 시도한 적이 없었어.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 이였지. 왜냐하면 왠지 죽음이 모든 것을 제로로 만드는 게 아닐꺼라는 생각이 들었거든. 나는 무로 돌아가기 위해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건데 죽은 이후에도 또 다른 세계가 있고 절망을 안은 채로 그 속을 유령처럼 떠돌아다닐 걸 생각하면 견딜 수가 없는 거야.

 “왠지 어떤 마음인지 조금은 알 거 같아요. 저는 자살을 시도한 적은 없지만 가끔 저도 모든 걸 훌훌 털어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하거든요.”

 창밖으로 눈이 점점 더 많이 내리기 시작한다.

 “응..애초에 나는 사람이라는, 인간이라는 존재가 너무 불합리하다는 생각이 들어. 이 세상에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사람은 아무도 없잖아. 그런데 태어나면 이런 저런 짊을 스스로 짊어져야 하고. 그러지 못하면 도태되고. 뭔가 계속 쫓기고 있다는 기분이 들거든. 그게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언니 말이 맞아요. 저도 늘 무언가에 쫓기고 있다는 기분이 종종 들거든요. 근데 그게 실체가 없는 거예요. 눈에 보이는 게 아니고 뭐라고 말을 해야 좋을지 모르는 그런 거요. 저는 사람은 그 사람 개개인마다 작은 지옥을 끌어안고 살아간다고 생각해요. 죽어서 뭔가 다른. 예를 들면 천국이나 지옥이 있는 게 아니라 살아가는 과정 자체가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거라 구요. 그런데 이게 이상한 게 어느 순간부터는 어떤 게 천국이고 어떤 게 지옥인지 분간이 잘 안 된다는 거예요. 이상해요. 제가 사람들이 쉽게 내뱉는 말처럼 미쳐서 이런 생각을 하는 건지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요.”

 나희와 문희는 조용히 서로의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방문에 작게 나있는 창문으로 지나가는 다른 환자가 그 모습을 힐끗 쳐다보고는 창문에 입김을 불어 ‘바보들’ 이라는 글자를 삐뚤빼뚤하게 써놓고 지나간다.

 시간이 흘러 어느덧 봄이 됐다. 쌀쌀하던 날씨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창밖으론 따뜻한 봄바람이 불어온다. 병원에 심어져 있는 나무들도 막 꽃을 피우려는 듯 꽃 몽우리가 져 있다. 어깨까지 오는 긴 단발머리를 한 여의사가 복도를 걸어 나희가 있는 병실로 들어온다.

 “나희씨. 요즘은 어때요?”

 “괜찮은 거 같아요. 선생님 말대로 자기 전엔 늘 일기를 써요. 그런데 병원에서 생활하다보니 살이 너무 쪄서 걱정이에요. 저번에 몸무게 쟀을 때 보니까 병원에 들어오기 전보다 10kg이나 늘어서.”

 “나희씨가 먹는 약 성분 때문 일수도 있고 아무래도 병원 안에서는 움직임이 제한되니까 그런 것도 있을꺼예요. 퇴원하게 되고 원래 생활로 돌아가서 운동도 하고 먹는 것도 조절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빠질 거니까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나희는 퇴원이라는 말에 귀가 쫑긋 해진다.

 “선생님 저 곧 퇴원할 수 있는 건가요?”

 “네. 나희씨가 많이 좋아져서 짧게는 2주 길면 한 달 정도 후에는 퇴원이 가능할꺼 같아요. 그러니까 마음을 편하게 가져요. 아시겠죠?”

 의사의 말에 나희가 환하게 웃는다.

 “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의사가 나가고 난 후 나희는 문희를 찾아 소식을 전한다.

 “언니. 저 2주 후나 한 달 후면 퇴원할 수 있데요.”

 나희의 들뜬 음성에 문희도 덩달아 기뻐한다.

 “잘됐다. 나희씨. 좋겠다. 나도 나가고 싶다. 부러워..”

 “언니도 곧 나갈 수 있을 거예요. 저는 솔직히 저보다 언니가 더 빨리 퇴원하실 줄 알았는데..왠지 괜히 기분이 이상해지네요. 좋으면서도 뭔가 미안하기도 하고..”

 “나희씨. 미안해 할 필요 없어. 누구든 이 지긋지긋한 병원에서 나가면 축하할 일이지.”

 나희와 문희는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는 듯 따뜻하게 포옹한다. 병원엔 나희가 곧 퇴원할 거라는 소문이 퍼져 모두들 자기 일처럼 신난 분위기다. 어떤 환자는 병원에서 공동으로 모이는 거실 tv를 켜서 아이돌들이 나오는 음악 프로그램에 켜놓고 노래에 맞춰 춤을 추기도 하고 또 다른 환자는 나희에게 줄 이별 편지를 적기도 한다. 어딘가 붕 뜬 분위기 속에서 나희는 이상한 기분을 느낀다. 병원에 있는 동안 참 답답하고 이상한 사람들과 갇혀 있다는 생각에 절망하기도 했는데도 막상 퇴원을 한다고 생각하니 이 정신 나간 사람들이 있는 이곳이 그리워질 거 같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병원에 입원했다 안했다의 차이 뿐이지 이 세상에 제 정신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모두다 어딘가 한 군데 쯤은 일그러진 불량품이 아닐까..

 나희는 자기 방으로 돌아와 간이 책상을 펴고 침대 옆 서랍에서 노트와 펜을 꺼낸다. 그리고 창밖을 물끄러미 바라보곤 글을 끄적인다.

 ‘해돋이’라는 글자가 노트 맨 위에 조금 큰 글씨로 적혀진다.

 <해돋이>

 

 떠오르려는 태양을 향해 벌써부터 침을 튀기는 파도들의 함성 소리를 들었다.

 물 아래에서 그는 이름 모를 더러운 말들에 이리저리 걷어차인다.

 그 모습 마치 거친 방망이에 핑-하고 날려지는 허무의 도취와도 같다.

 피투성이 인 채로 해는 떠오를 때를 기다리며 거센 물속을 고요히 부유한다.

 어제와 또 다른 낯선 바람의 시간이 흐르고 마침내 해가 떠오른다.

 눈부시도록 붉은 빛

 차디찬 시선 속에서 견뎌온 기다림의 얼굴이다.

 바닷가를 거닐던 어린 아이는 그 모습을 보며 멍하니 헤-입을 벌린다.

 수평선 위로 덩그라니 놓인 해는 아이의 커다란 눈망울 속에 수많은 빛을 수놓는다.

 바람이 지나간다.

 해는 언제나 그곳에 꿈꾸듯 살아있다.

 

 시를 다 쓴 후 익숙한 동작으로 노트를 덮고 서랍 안에 볼펜과 함께 집어넣는다.

 

 태환은 책상위에 놓인 탁상 달력을 한 장 넘긴다. ‘3’이라는 숫자가 크게 적혀 있는 걸 보고는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쉰다. 작년12월부터 올 2월까지 화가로써 처음으로 가진 전시회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왠지 모르게 맥이 빠진 모양이다. 여기저기서 인터뷰 요청이 들어왔고 사진도 여러 번 찍혔다. 언론에선 젊고 잘생긴 화가에 대해 호의적인 감상평들을 늘어놓았고 그가 그린 그림에 대한 평도 상당히 긍정적이었다. 태환은 일련의 일들이 기쁘면서도 한편으론 여전히 병실에 누워 깊은 잠을 자고 있는 모두에 대한 생각과 정신병원에 갇혀 지내는 나희를 생각하면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래도 얼마 전 나희가 있는 병원에 찾아갔을 때 나희가 곧 퇴원을 하게 될 거라는 얘기를 듣고 조금 기분이 나아졌다. 의사와 개인 면담 시간을 가졌을 때 나희를 담당하는 여의사는 가족들이 주의해야 될 점에 대해서 상세히 알려주었다. 그 얘기 중 중요한 포인트는 나희가 소설을 쓰지 못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상태가 많이 좋아져서 본인이 최나희이고 쌍둥이 오빠 최태환이 자신의 가족인 것은 인정하는데도 모두에게 일어났던 사건만은 기억을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일은 나희 자신에게도 큰 충격이었기 때문에 무의식중에 방어기제로써 나희의 기억 속에서 그 일부만 지워졌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만약 나희가 다시 소설을 써서 새로운 인물들을 만들고 그 이야기 속에 빠져든다면 병이 재발할 확률도 높고 병이 재발할 경우 나희의 뇌에 큰 손상을 입을 위험이 있다는 것이었다. 태환은 의사가 하는 얘기들을 꼼꼼하게 휴대폰 메모장에 적어 놓았다. 태환은 나희의 퇴원이 한편으론 기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언제쯤 가슴 언저리에 뭔가 막혀있는 듯한 이 기분이 사라질까. 그런 날이 오기는 하는 걸까. 태환은 큰 손으로 얼굴을 세수하듯 비빈다.

 2020년 3월 28일

 병원 창문 너머엔 꽃들이 만발해 있다. 눈에 익은 진달래도 보이고 색색의 꽃들이 저마다 제 모양을 한껏 드러내고 있다. 나희는 퇴원을 하루 앞두고 있다.

 “나희씨 퇴원하면 뭐 제일 먼저 하고 싶어?”

 문희가 들뜬 표정으로 나희에게 묻는다.

 “글쎄요. 일단 맛있는 거 많이 먹고 싶어요.”

 “나희씨 다이어트 할 거라고 하지 않았어?”

 문희가 장난스러운 말투로 나희를 놀린다.

 “다이어트 해야죠. 근데 일주일 정도만 그동안 못 먹었던 거 먹구요.”

 문희와 나희가 병실 침대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중 백여사와 머리가 많이 자라 뿌리부분만 시커먼 금발머리의 화영이 방으로 들어오며 “담배!”하고 외치고 간다. 문희와 나희는 그녀들을 따라 흡연실로 향한다.

 “나희씨. 문희한테 듣자하니 병원에서 나가면 담배도 끊을 거라면서?”

 백여사가 담뱃재를 털어내며 묻자

 “네. 담배도 끊으려 구요. 손에 냄새 배는 것도 싫고.”

 그 말에 화영이 대꾸한다.

 “그런데 이놈의 담배가 그리 쉽게 끊어지겠어? 힘들텐데..”

 “노력해야죠. 뭐”

 가만히 듣고 있던 문희는 나희 편을 들며

 “그래. 못할게 뭐있어. 나희씨 다이어트도 하고 담배도 끊고 완전 새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

 “네. 그럴게요. 새사람!”

 희뿌연 연기에 가려 잘 보이진 않지만 모두들 입가에 미소를 띠고 있다.

 “근데 나희씨. 나희씨가 쓴 시들 퇴원하면 공모전 같은데 낼 거야?”

 문희의 물음에 나희는 잠깐 생각에 잠긴다.

 “아...뇨. 시는 공모전에 안 낼 거예요.”

 “왜? 그냥 썩히기 아깝잖아. 나는 나희씨 시 좋던데. 그죠 언니들?”

 문희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인다.

 “제 시는 어차피 공모전에 내도 당선될 가능성이 없어요. 그리고 저는 예전부터 소설은 공모전에 내도 시만큼은 그렇게 안되더라구요. 뭔가 제 시를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가 평가 한다는 것도 기분이 안 좋고 ‘시’라는 게 그런 평가로 좋은 시 나쁜 시 나눌 수 있는 건가 하는 회의감도 들구요.”

 문희와 화영, 백여사는 뭔가 알다가도 모를 말에 그저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구나. 뭐 나희씨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어차피 나희씨 글이니까 본인이 알아서 하는 거지 뭐”

 나희는 씁쓸한 웃음을 짓는다. 창밖엔 어느덧 어둠이 깔리고 노란 별들이 총총 박혀있다. 긴 밤이 될 거 같다.

 
작가의 말
 

 보통 청춘이라 하면 찬란한 혹은 빛나는 모습을 떠올린다. 마치 햇빛 또는 달빛을 받아 반짝반짝 빛나는 저기 저 앞 바다의 윤슬처럼. 하지만 현실에서의 청춘은 그리 반짝이지도 찬란하지도 않다. 되려 일찍 메말라 버린 꽃잎들처럼 생명력을 잃거나 무기력한 모습이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버린 혹은 버려진 청춘들은 다들 어디에 있는 것인가. 나는 그것이 궁금했다. 소설 윤슬을 통해 여러 청춘들의 얼굴을 그려보고 싶었다. 그 한없이 슬픈 얼굴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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