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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나의 자카르타
작가 : 히타히타
작품등록일 : 2019.9.2

도망치듯 떠나온 그곳에서 마법이 시작된다.

 
맛은 마음이야
작성일 : 19-10-23 09:15     조회 : 321     추천 : 0     분량 : 44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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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때요?”

 “음, 냄새는 괜찮네.”

 

 인드라는 케이마트에서 사온 춘장으로 짜장면을 실험했다.

 다섯 번의 실험 중 오늘 냄새가 가장 짜장면다웠다.

 나는 짜장면 그릇에 코를 대고 킁킁거렸다.

 돼지기름 냄새와 섞인 춘장 냄새는, 내가 살던 사당동 아파트 상가 단골집에 대한 추억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나는 김이 무럭무럭 나는 면을 씹었다.

 이 면을 찾느라 얼마나 고생했는지 모른다.

 돌담은 수타로 면을 뽑거나 기계를 쓸 형편이 안 된다.

 어쩔 수 없이 기성 제품을 써야 했는데, 짜장면에 가까운 질감의 면을 찾기 어려웠다.

 처음엔 케이마트의 우동면으로 실험했지만 식감이 떨어지고 싱거웠다.

 

 나는 인근 마트를 샅샅이 뒤져 중국 생면을 찾아냈다.

 계란이 들어 약간 노란색을 띄는 면이었는데, 짜장면과 가장 비슷한 식감을 냈다.

 대신 생면이라 관리가 까다로웠다.

 

 나는 짜장면을 꿀꺽 삼켰다.

 사당동 단골 중국집에 대한 향수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이건 냄새만 짜장면이었다.

 

 “음...”

 “어때요?”

 “좀 아닌데. 돼지기름 하고 양파 충분히 넣은 거야?”

 “그럼요.”

 “이건 뭔가, 너무 달고, 어쨌든 뭔가가 좀 아니야.”

 

 맛이란 참 미묘한 감각이다.

 내가 기억하는 짜장면의 맛과 인드라가 상상하는 짜장면의 맛이 너무 달랐다.

 분명히 표준적인 레시피를 따라 했는데도 인드라의 손끝에서 만들어진 짜장면은 미고랭 느낌이 배어 있었다.

 위자야의 중국집을 함께 방문하기도 했는데도 소용없었다.

 맛은 만드는 사람의 마음에 따라 달라진다.

 

 “미스뜨르. 프라이팬으론 안 돼요. 웍을 써볼게요.”

 “그래. 불맛을 입히면 좀 낫겠지. 하지만...”

 

 나는 주방을 둘러보았다.

 주방팀에 웍을 다룰 수 있는 사람은 인드라밖에 없었다.

 자말은 주방 보조 일을 따라가기도 벅차고, 줄리는 훈련이 더 필요했다.

 

 “인드라가 너무 힘들어지지 않겠어?”

 

 인드라가 웃었다.

 아주 우스운 농담을 들었다는 듯 보조개를 드러내며 킥킥거렸다.

 나도 따라 웃었다.

 지금 주방은 힘든 일이 없어서 죽을 지경이었기 때문이다.

 

 짜장면 실험을 구태여 지금 할 필요는 없었다.

 메뉴를 맛볼 손님이 없으니 신메뉴 출시도 당분간 불가능했다.

 하지만 우리는 그거라도 해야 했다.

 

 나는 주방을 나왔다.

 모범생 디디가 칠판에 오늘의 할인 메뉴를 적고 있었다.

 노란색 분필로 ‘잡채’를 적고 그 밑에 빨간 분필로 김이 모락모락 나는 접시를 그렸다.

 제법 근사했다.

 

 “디디. 정말 잘 한다. 넌 재능을 주신 알라께 감사해야 돼.”

 “늘 감사하고 있어요.”

 “그래. 디디라면 1초마다 하고 있겠지.”

 

 우리는 할 수 있는 건 다 해보기로 했다.

 할 일이 없는 폭우 기간 동안 돌담 직원들을 모아 놓고 몇 번이나 회의를 거듭했다.

 

 대형 할인 이벤트 얘기가 나왔지만 받아들일 수 없었다.

 대기업과 가격 할인 경쟁을 벌이면 더 빨리 망하는 길밖에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승부해야 할 지점은 메뉴의 맛과 다양성이었다.

 그래도 일단은 매일 할인 메뉴를 정하고 가게 앞에 알림판을 세워 놓기로 했다.

 덕분에 모범생 디디가 손 글씨 실력을 발휘했다.

 

 쇼핑몰에서 시식 행사를 열자는 얘기도 나왔다.

 지역 고아원 아이들을 불러 점심을 제공하자는 얘기도, 뿌리인다 주부들을 초청해 한식 요리 강습을 열자는 얘기도 나왔다.

 캐서린은 쇼셜커머스를 활용하자는 아이디어를 꺼냈다.

 인도네시아에서도 SNS를 통해 할인쿠폰을 받는 마케팅이 한창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교민신문에 광고를 내기로 했다.

 뿌리인다엔 한국 교민이 많이 살지 않지만, 교민이 하나 둘 찾으면 현지인들의 호기심이 살아날 것 같았다.

 

 우리는 이 모든 아이디어를 차근차근 실행해가기로 했다.

 그러나 나는 알고 있었다.

 캐서린도, 인드라도, 줄리도, 직원들 모두 알고 있었다.

 우리의 몸부림이 30% 할인된 닭튀김의 바삭바삭한 껍질 앞에선 무력하다는 것을.

 

 치킨 집은 지역 유선방송국 광고까지 때리고 있었다.

 그 광고엔 치킨뿐 아니라 다양한 한식 메뉴를 맛볼 수 있다는 멘트가 깔렸다.

 물량을 퍼붓기로 작정한 것 같았다.

 

 오전 11시경.

 카운터의 리리가 소리쳤다.

 

 “미스뜨르! 밖을 보세요!”

 

 나는 현관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내 눈으로 확인한 광경을 믿을 수 없어서 몇 번이나 눈을 껌벅였다.

 

 이른 시간에 손님들이 줄지어 들어왔다.

 주로 옷을 곱게 차려 입은 화교 부인들이었다.

 앞서 들어온 손님들이 순식간에 테이블을 차지했고, 뒤에 남은 손님들이 현관문 앞에서 차례를 기다리며 웃고 떠들었다.

 개업 날을 떠올리게 만드는 숫자였다.

 

 “미스뜨르! 도와줘요!”

 

 오랜만에 듣는 소리였다.

 나는 홀 직원들을 도와 테이블 사이를 정신없이 뛰어다니며 소리쳐 물었다.

 

 “오늘 행사 있어?”

 

 화교 부인들을 위한 행사가 있는 것 같았다.

 회관 강당을 통째로 빌려 뿌리인다 아주머니들을 다 모으는 그런 행사일 것 같았다.

 그러나 리리와 디디는 고개를 저었다.

 이 동네 터줏대감인 리리와 디디가 모른다면 행사는 없는 것이다.

 

 나는 주방을 점검했다.

 개업일 같은 우왕좌왕은 없었다.

 인드라는 재료가 충분한지 계속 눈으로 확인하면서 채소를 경쾌하게 썰었다.

 다닥다닥다닥, 도마 소리가 주방에 울려 퍼졌다.

 줄리와 자말은 교대로 그릴에 나가 고기를 구웠다.

 

 낮 12시경.

 바띡을 입은 중년 남자들이 하나 둘 들어왔다.

 이 동네에서 처음 보는 손님들이었다.

 비슷한 바띡에 비슷한 얼굴이라 구분이 가지 않는 남자들이 아주머니들의 수다를 뚫고 드문드문 생긴 빈자리에 앉아 심각한 표정으로 뭔가를 논의하기 시작했다.

 뭐가 그리 심각한지 주문을 할 때조차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리리, 저 손님들 알아?”

 “쉿! 조용히 하세요.”

 

 나는 손님들 눈치를 보는 리리가 의아했다.

 리리는 국가기밀이라도 된다는 듯 손을 내 귀에 대고 작게 속삭였다.

 

 “공무원이요. 공무원.”

 

 근처 서자카르타 시청에서 일하는 공무원들이었다.

 그제야 손님들이 맞춘 듯 비슷한 바띡을 입고 입는 게 이해됐다.

 

 바띡은 남성용 전통의상이다.

 남방과 비슷한 형태에 다양한 무늬를 새긴 옷인데, 정장보다 편해 공무원들이 많이 입는다.

 바띡 하나만 걸치면 와이셔츠에 넥타이를 매지 않아도 충분히 예의를 갖춘 것으로 인정받기 때문이다.

 

 의문은 하나였다.

 입맛이 보수적인 시청 공무원들이 왜 대로를 건너 15분쯤 걸어야 하는 외국 식당까지 온 걸까.

 뿌리인다 부인들과 공무원들이 단합해 정신이 나간 걸까.

 

 어쨌든 우리는 열심히 뛰어 다녔다.

 오랜만에 바쁘게 일하니 몸이 풀리는 기분이었다.

 

 오후 1시경.

 백팩을 맨 학생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번엔 누군지 물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내가 초급 인도네시아어 과정을 수강했던 수리아 외국어대학 학생들이었다.

 그들 뒤에 들어오는 바띡과 질밥 부대는 교수들이 분명했다.

 인도네시아 대학교수들은 공무원처럼 엄격한 복장을 고수한다.

 

 손님은 손님을 부른다.

 목적지를 뚜렷이 정하지 않은 손님들은 북적이는 곳으로 가지, 절대로 한산한 가게로 가지 않는다.

 치킨 집으로 향하던 학생들이 북적대는 돌담을 보고 발길을 돌린 것이다.

 

 “미스뜨르. 치킨 집 닭이 상한 거 아녜요?”

 

 리리의 말에 나는 치킨 집 쪽을 기웃거렸다.

 손님이 확연히 줄어 있었다.

 오후 시간대에도 꽉 들어차던 테이블이 절반가량 비었다.

 

 “미스뜨르. 재 놓은 고기가 떨어져가요.”

 

 리리가 주방문을 열고 소리쳤다.

 철두철미한 인드라도 이런 뜬금없는 날을 대비해 많은 양을 재놓지는 못했다.

 나는 고기 메뉴를 팔지 말라고 지시했다.

 설명을 듣고 육개장을 주문한 공무원이 내게 다가왔다.

 

 “여기가 돌담인가요?”

 “네. 맞습니다.”

 “오, 그렇군요.”

 

 나는 조금 긴장했다.

 꼬투리를 잡아 뇌물을 요구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인도네시아 공무원의 뇌물 사랑은 이 분야에 일가견이 있는 동남아에서도 두각을 드러냈다.

 손님은 인도네시아 공무원 특유의 거드름 피우는 자세로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가 유명한 돌담이군요.”

 “그렇게 유명하지는 않습니다.”

 “아닙니다. 아주 유명해요. 아주.”

 

 손님이 뒷짐을 지고 자리로 돌아갔다.

 공무원 손님을 거의 받아본 적도 없는데 왜 유명하다고 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오후 2시경.

 우리는 여전히 바빴다.

 아줌마 부대와 바띡 부대의 후발대가 남아 있는 와중에 학생들이 계속 들어왔다.

 자말을 도와 설거지를 하는데 캐서린에게서 전화가 왔다.

 

 “어디에요?”

 “어디긴. 식당이지.”

 “한 시간 뒤에 꼼빠스TV가 갈 거예요.”

 “방송국? 방송국이 왜 와?”

 “한식 특집 만들려고 취재한대요. <월드푸드>라고 유명한 프로그램 있잖아요.”

 “뭐라고?”

 

 나는 홀을 둘러보았다.

 손님을 치르느라 홀 풍경이 엉망이었다.

 손님이 없다면 한 시간 동안 쓸고 닦고라도 해볼 텐데, 그럴 겨를이 없었다.

 

 “왜 연락도 없이 취재를 오지?”

 “나한테 연락 했잖아요.”

 “한 시간 전에 연락하는 게 어디 있어? 예의 없는 사람들이네.”

 “미스뜨르...”

 

 캐서린이 목소리를 낮췄다.

 나는 긴장했다.

 캐서린이 말을 빨리하면 짜증이 났다는 뜻이고, 목소리를 갑자기 낮추면 굉장히 화가 났다는 뜻이다.

 캐서린이 그렇게 화가 나면 촘촘한 논리의 그물망으로 나를 묶어서, 무간지옥에 떨어질 대역죄인으로 만들 수도 있다.

 

 “꼼빠스TV는 전국 최대 방송국이에요. 지역 방송국과 급이 달라요. 맞죠?”

 “맞아.”

 “그중에서도 인기프로가 우리를 띄워준대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고마운 일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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