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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나의 자카르타
작가 : 히타히타
작품등록일 : 2019.9.2

도망치듯 떠나온 그곳에서 마법이 시작된다.

 
난 인도네시아인이야
작성일 : 19-10-22 08:29     조회 : 309     추천 : 0     분량 : 4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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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린 할머니는 1943년 11월 홍콩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의사인 집안의 맏딸이었다.

 유복한 환경에서 자라 좋은 대학에 들어갔지만 1962년 대학생 댄스파티가 그녀의 운명을 바꿔놓았다.

 거기서 할머니는 홍콩에 유학중이던 인도네시아국립대학(UI) 공학도를 만나 사랑에 빠졌다.

 열애 끝에 부모님 몰래 자카르타로 가서 이슬람으로 개종까지 하고 결혼식을 올렸다.

 

 “치파오를 입고 결혼식을 치렀어요. 인도네시아 사람들이 눈을 둥그렇게 뜨고 보더군요.”

 

 결혼한 뒤에도 할머니는 집안의 만류 때문에 8년이나 홍콩에 살았다.

 그러다 아이가 생기자 자카르타로 이주하기로 결심했다.

 

 “아이에겐 아빠가 필요했어요. 가끔 찾아오는 아빠 말고요. 부모님이 많이 슬퍼하셨죠. 자꾸 인도네시아와 인도를 헷갈리셨어요.”

 

 1972년 자카르타로 간 할머니는 힘들게 새로운 삶에 적응했다.

 초기에는 남편이 자리 잡을 때까지 호텔과 하숙집을 전전해야 했다.

 간신히 안정을 찾을 무렵, 엘리트인 남편의 인맥을 활용해 특혜를 따달라는 영국과 중국 기업들의 유혹이 시작됐다.

 

 인도네시아는 외국 로비스트들의 천국이다.

 일본만 해도 여성 로비스트의 유명한 전례가 있다.

 국부로 추앙받는 수카르노 하타 대통령의 네 번째 부인이 나오코(인도네시아 이름 데위)라는 이름의 일본인이었는데, 인도네시아의 기간산업을 일본에 넘겨준 로비스트이기도 했다.

 나오코의 남동생은 누나가 수카르노의 ‘첩’이 된 치욕을 견디지 못하고 자살했다.

 사실 이 결혼은 일본의 치밀한 작전이기도 했다.

 

 주린 할머니는 제안을 받고 고민을 거듭했다.

 그러나 거액의 보상금이 약속된 로비스트의 길을 수락할 순 없었다.

 그런 짓을 하면 행복하지 않을 것 같았다.

 

 대신 그녀는 블록엠에 술집을 차렸다.

 인도네시아의 국부를 빼돌리는 대신, 갈 데 없는 홍콩인과 중국인들의 밤을 위로했다.

 이 술집은 30년이 지나도록 타임캡슐처럼 구닥다리 스타일을 유지했다.

 단골들은 머리가 벗겨지고 주름이 깊어져도 이곳을 버리지 않았다.

 

 “나는 우리 술집에서 사람들이 위로받는 게 좋아요. 그렇다고 홍콩을 그리워하는 건 아니에요. 한 번도 내 선택을 후회한 적 없어요. 나는 인도네시아인이고 여기 자카르타에서 죽을 거에요.”

 

 주린 할머니는 그렇게 말을 맺었다.

 지난밤에도 할머니는 자신이 홍콩인이 아니라 인도네시아인이라고 못 박았다.

 그만큼 인도네시아에 대한 애정이 깊었다.

 남편이 인도네시아 최고의 명문대학인 UI에 다니고 유학까지 다녀왔다면 지금쯤 고위관료 이상의 지위에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의 부인은 허름한 술집 주인이다.

 나는 할머니의 삶이 기구한 건지, 행복한 건지 헷갈렸다.

 

 나는 할머니의 얘기를 듣느라 술을 거의 마시지 않았다.

 그러나 옆자리의 박 사장은 이미 만취상태였다.

 고개를 가누지도 못해 머리를 끄덕이며 할머니에게 물었다.

 

 “할머니, 여기 아이스크림 있어요? 꺼억.”

 

 할머니는 원하면 옆 건물 마트에서 사오겠다고 말했다.

 나는 손을 내둘러 그녀를 만류했다.

 이제 본론을 꺼내야 할 시간이었다.

 

 “이부. 리따라는 분을 찾고 계시죠? 여기서 일했던 직원 말입니다.”

 

 할머니가 잔을 닦던 손을 멈췄다.

 나는 그녀의 나뭇가지 같은 손가락이 매화가 그려진 자기 술잔 위에서 걸려 있는 모습을 보았다.

 할머니의 흔들림은 딱 그 정도였다.

 대단한 양반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할머니가 고개를 휙 돌려 내 얼굴을 살피기 시작했다.

 혹시나 만난 적 있는 사람인지 기억의 갈피를 뒤적이는 할머니의 시선이 매서웠다.

 내가 아는 누구의 눈빛보다 매섭고 날카로웠다.

 

 “리따를 알고는 있지만 찾고 싶진 않아요.”

 

 나는 주소가 적힌 쪽지를 내밀었다.

 할머니가 천천히 잔을 내려놓았다.

 깨지기 쉬운 유리조각인 양 술잔을 조심조심 바에 내려놓은 할머니는, 그보다 더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내 쪽지를 받았다.

 그러고는 쪽지의 글자들을 집어삼킬 듯 노려보았다.

 

 “리따의 주소입니다. 찾아가십시오.”

 “바빡은 누구신가요? 리따와 아는 분인가요? 그러니까 제 말은...”

 

 할머니가 쪽지를 선반에 던졌다.

 리따에게 별 관심이 없다는 태도를 보여주기 위해 의식적으로 휙, 선반 아무데나 쪽지를 날려 보냈다.

 나는 검은 술병 사이에 구겨진 하얀 종이를 보았다.

 왠지 할머니는 적으로 두었다간 낭패를 보게 될 그런 유형의 사람인 것 같았다.

 

 “그러니까 제 말은 리따의 부탁을 받았냐는 겁니다.”

 “아닙니다. 저는 리따를 모릅니다.”

 “그럼 어떻게 주소를 아셨죠?”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냥 우연히 알았다고 해두죠. 사실 설명을 못 드리겠습니다.”

 

 할머니가 미소를 보였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주린 할머니가 누군가의 얼굴을 보며 실없이 웃을 땐, 그 사람에게 호기심이 생겼다는 뜻이다.

 

 “어디서 뭐 하는 분인지만 가르쳐 주세요.”

 

 나는 할머니에게 식당 명함을 내밀었다.

 할머니는 돋보기안경을 꺼내 쓰고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명함을 한 자 한 자 읽었다.

 

 돌담.

 돌담 돌담.

 할머니가 식당 이름을 어색한 발음으로 자꾸 되뇌었다.

 

 “뿌리인다에서 코리안 레스토랑을 하시는군요. 거기서 식당하기가 쉽지 않을 텐데요.”

 “네. 어렵습니다.”

 “왜 세노파티가 아니라 뿌리인다에 내셨어요?”

 “브로커한테 속았습니다.”

 

 할머니가 웃음을 터뜨렸다.

 내 말이 뭐가 그렇게 웃긴지 눈물까지 훔치며 웃었다.

 

 “하하. 그래요. 브로커들이 많죠. 한국인들이 돈을 싸들고 들어오는 시기니까. 하하.”

 “뭐, 제가 멍청했습니다.”

 “하하. 솔직하시네요.”

 

 한국인들의 인도네시아 투자가 절정에 다다른 때였다.

 인도네시아국립대 비파(인도네시아어 강좌) 과정은 취업이 잘된다는 소문을 듣고 몰려온 한국인 학생들로 북적댔다.

 시장조사도 제대로 하지 않고 돈을 퍼붓는 투자자들도 많았다.

 나처럼 말이다.

 

 할머니는 내가 한국을 왜 떠나왔는지 물었다.

 할머니의 매서운 눈빛 앞에선 거짓말을 둘러댈 수 없었다.

 나는 죽은 아내가 식당을 했으며, 그녀의 레시피를 버릴 수 없어서 한류가 강한 인도네시아로 오게 됐다고 간략히 설명했다.

 

 “돌담. 돌담. 발음이 이상한데 아내가 운영하던 식당 이름인가요?”

 “맞습니다.”

 “무슨 뜻이죠?”

 “돌로 된 담이라는 뜻입니다.”

 “예쁘네요. 이제야 예쁘게 들려요.”

 

 할머니가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뿌리인다에는 친구들이 많아요. 거긴 화교 동네니까.”

 “예. 많이들 사시죠.”

 “친구들에게 돌담에 대해 물어봐도 될까요? 그 친구들이 한식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해요.”

 “뜨르스라.”

 

 나는 할머니가 점점 좋아졌다.

 할머니는 어떨 땐 차갑고, 또 어떨 땐 몸에 밴 듯 자연스럽게 예의가 흘러나왔다.

 그 모든 태도에 기품이 서려 있었다.

 

 어쩌면 할머니가 부러운 건지도 몰랐다.

 할머니는 나처럼 방황하지 않고, 이곳에서 자신만의 세상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돌담보다 더 중요한 게 있습니다.”

 “뭔데요?”

 

 나는 손가락으로 선반에 처박힌 쪽지를 가리켰다.

 한동안 나는 할머니 앞에서 취조를 당하는 기분이 들었다.

 이제 내가 공격할 차례였다.

 

 “리따를 찾으셔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않으면?”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성적이고 냉철한 할머니에게 지난밤의 만남에 대해 설명할 재간이 없었다.

 

 “저는 인생을 많이 살지 않았지만 한 가지는 압니다.”

 “뭔데요?”

 “평생 후회할 일을 만들지 말아야 한다는 겁니다. 그런 위기가 몇 번쯤 찾아오죠.”

 “와 주신 건 고맙지만 제 문제는 제가 알아서 하고 싶군요.”

 

 더는 할 말이 없었다.

 나는 애꿎은 술잔만 기울였다.

 이 와중에 박 사장은 고개를 꾸벅이며 졸다가 깨어나면 아이스크림 타령을 했다.

 

 할머니가 고개를 돌려 술잔을 다시 닦았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할머니는 반드시 리따를 찾아갈 것이다.

 내가 쪽지를 건넬 때도 흔들리지 않던 눈동자가 술잔을 들여다보며 이리저리 흔들렸다.

 이 술집에서 할머니가 속으로 울고 있다는 것을 알아챈 사람은 나뿐이었다.

 나는 할머니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할머니도 나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 무언의 대화가 끝난 뒤 할머니는 다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손님들이 노래를 따라 불렀다.

 그건 할머니의 목소리가 듣기 괴로워 자기 목소리로 덮어버리려는 것처럼 들렸다.

 할머니의 앵콜곡이 시작되자 나는 박 사장을 두드려 깨워 술집을 빠져나왔다.

 

 **

 일주일이나 계속되던 폭우가 수그러들었다.

 뿌리인다의 골목엔 가랑비가 거미줄처럼 걸렸다.

 

 주린 할머니를 만난 지 이틀이 지났다.

 나는 이따금 창밖을 보며 할머니가 리따를 만나는 장면을 상상했다.

 

 할머니는 눈물을 보일까.

 아니다.

 할머니는 어제 만난 사람을 보는 표정으로, 리따에게 밥은 먹었냐고 물어볼 것이다.

 

 “미스뜨르! 인드라가 짜장면 만들어본대요.”

 

 줄리의 목소리가 내 상상을 흩어 놓았다.

 나는 주방으로 갔다.

 바쁠 것도 없는데 빠른 걸음으로, 주방 앞에 이르러선 뛰다시피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즈음 나는 일부러 바쁜 척을 했다.

 아침에 쓸고 닦은 곳을 다시 닦고, 정리한 곳을 다시 정리하고, 누가 부르면 허겁지겁 달려갔다.

 직원들도 덩달아 손님 없는 홀을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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