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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그리고 그 후
작가 : 전Yeah
작품등록일 : 2019.10.7

2014년, 갑작스레 일어난 사태 이 후 인류는 멸망하였다. 그로부터 1년 후, 사태에서 살아남은 이설전은 변해버린 환경과 그것에 적응해가는 자신에게 회의감을 가지면서도 꿋꿋하게 살아가는 자신의 모습에 괴리감을 느끼기 시작하다 우연히 한 여자를 만나게 되는데... 이미 멸망한 세계에서 살아남으려는 자들의 일상을 쓰는 아포칼립스 일상물.

 
10 - 동창회 (1)
작성일 : 19-10-21 20:44     조회 : 226     추천 : 0     분량 : 148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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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쳐라 얍!”

 

  “그런다고 그치겠어요?”

 

  “.....”

 

  하늘을 향해 손을 뻗은 채 민망한 표정을 짓고 있는 설전. 영혜가 한심한 듯 쳐다보자 더욱 부끄러운 모양이었다. 그런 설전을 바라보던 영혜가 설전이 부끄러워하지 않게 자신도 같이 하늘을 향해 손을 뻗으며 말했다.

 

  “그쳐라 얍!”

 

  “그런다고 그치겠냐.”

 

  “.....”

 

  3층 야외 주차장 난간에서 떨어지는 비를 보며 설전과 영혜가 각각 말을 주고받고 있었다. 비가 내리기 시작한지 9일째가 되는 날이었지만 비는 좀처럼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9일 동안 강수의 변화는 있었지만 비가 내리지 않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탄을 옮기다 괴물들과 조우한 지 9일, 대형 마트에 도착한 설전과 영혜는 대범과 권란에게 혼이 났다. 날씨가 이런데 무리를 했다, 괴물들을 피해 대형 마트로 와서 도움을 요청해야 했다. 그러다 죽으면 어쩌려고 그랬냐 등의 잔소리가 그것이었다.

 

  특히 권란의 경우 더욱 그 강도가 심했다. 자신의 걱정대로 설전이 위험했기 때문이었다. 설전의 고집이 그렇게나 원망스러워 본 적이 없었다. 그녀는 자신의 분이 풀릴 때 까지 설전을 닦달했다. 설전은 권란의 말이 대부분 맞았기 때문에 조용히 그 꾸중을 다 받아내고 있었다.

 

  하지만 권란은 그런 아들의 고집에 원망을 느끼고 있긴 했지만 더욱 그녀를 화나는 건 자기 자신이었다. 아들에게 도움을 주지 못한, 아니 아들을 자꾸 사지로 내몰 수밖에 없는 자신의 처지가 너무나 한탄스러웠다. 오히려 자신이 꾸중을 듣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 후, 권란은 설전과 며칠 간 냉전이었다. 냉전이라기보다는 권란의 감정이 누그러들기 까지 시간을 기다리는 거였지만. 그리고 얼마 전, 권란은 다시는 무리하지 말라면서 아들을 껴안는 것으로 모자간의 응어리는 해제된다.

 

  설전은 그때를 생각하면 여전히 죄송스럽다. 괜한 고집을 부려 부모님을 걱정시키게 한 것도 있지만 그 고집 때문에 정말로 죽어버릴 뻔했으니까. 그는 이제 무리를 하지 않아야겠다면서 비가 내리치는 밖을 쳐다본다.

 

  빗물에 떠밀려 백골들이 이리저리 춤을 춘다. 시체들은 빗물 덕분에 지키고 있던 자리에서 벗어나 거리 위를 활보하고 다닌다. 뼈가 물살에 휩쓸릴 정도로 엄청난 폭우다. 오늘따라 비는 유난히 더 세차게 내렸다. 태풍이 온 것인가 착각이 들 정도였다.

 

 빗물들에 이리저리 굴러다니는 뼈 조각들을 무심히 바라보던 설전이 하늘로 시선을 옮기며 입을 열었다.

 

  “이럴 땐 기상청이 살아 있었다면 하는 생각이 든다니까.”

 

  “언제쯤 끝나는지 알 수 있으니까 말이에요.”

 

  “그것뿐이겠냐. 기상청만 살아있는 게 아니라 군대나 높으신 분들도 좀 살아남아서 우리같이 아득바득 살아남은 사람들 좀 모은 다음 ‘같이 괴물들에게 대항하자능!’ 하면 얼마나 좋아.”

 

  “근데 1년 동안 조용한 거 보면 결국 사람들은 뿔뿔이 흩어져서 자기들만의 삶을 살고 있는가 보네요.”

 

  “하긴 누가 뭉치려 하겠어. 나에게 다가오는 상대가 괴물인지 아닌지 모르는데.”

 

  “근데 괴물인지 아닌지는 어떻게 알아봐요? 그냥 행동이 어색하기만 하면 되나?”

 

  “아, 그거? 열을 가하면 돼. 일정 온도의 열을 가하면 괴물의 신체는 그 열에 반응하거든. 그때 막 이상한 모습으로 변화하는데 아마 열이 가해지는 상황을 알맞게 대처하기 위한 보호본능인거 같아.”

 

  “음. 하긴 우주에서 떨어진 것으로 추측되는 놈들이니 대기권을 돌파할 때의 열을 견뎌내야 했겠죠. 그렇다 보니 불에 데면 막 이상하게 변하나 봐요? 어쩐지 저번에 마트에 돌아왔을 때 대범 아저씨가 미안하다면서 라이터를 켜고 내 몸에 대본 거구나. 그땐 정신이 없어서 왜 그러시는지 몰랐는데.”

 

  “이것도 우연히 알게 된 거야. 만약 몰랐다면 나도 갈고리 같은 거 달고 누군가의 총알에 대가리를 뚫렸을지도 모르지.”

 

  설전이 손가락으로 자신의 관자놀이를 가리켰다. 영혜는 그런 설전의 모습이 보기 싫은지 고개를 돌려버렸다. 영혜는 그렇게 변해버린 설전의 모습자체를 상상하기 싫은 모양이었다. 설전은 괜히 무안해져서 볼을 긁적거리다 다시 난간 아래를 바라보았다.

 

  거리는 이미 작은 강을 이루고 있었다. 뼈 조각들이 빗물의 강을 타고 흐르다 배수구 구멍에 다다른다. 그러나 그곳은 이미 다른 뼈들로 만원을 이루고 있었다. 굴러들어온 뼈는 아랑곳하지 않고 배수구 구멍 위에 안착했다. 뼈로 만들어진 댐은 빗물이 배수구로 들어오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결국 막힌 배수구를 뒤로 하고 빗물은 다른 곳으로 이동하기 위해 다시 강으로 합류한다. 뼈들에겐 종착역이었던 배수구가 빗물에겐 아직 아니었나보다. 죽어버린 해골들은 배수구에서 멈춰서고 아직 살아 움직이는 빗물들은 끝을 찾기 위해 끝없이 거리를 방황한다.

 

  설전이 가볍게 혀를 찬다. 설전의 혀 차는 소리에 영혜가 왜 그려나고 물어봤지만 설전은 그저 아니라며 신경 쓰지 말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그런 말을 하면 원래 더 궁금한 법.

 

  영혜가 설전의 곁에 가까이 다가가 집요하게 물었다. 왜 혀를 찼느냐, 무슨 기분 나쁜 게 생각났느냐, 자기랑 있어서 기분이 별로인거냐, 등등. 설전은 그녀의 질문에 아니라고 대답했지만 영혜의 질문은 멈추지 않았다.

 

  그녀의 끊임없는 질문에 설전이 영혜를 바라보며 그만하라고 윽박질렀다. 그러다 순간, 영혜와 설전의 시선이 마주친다.

 

  가슴 속에서 심장의 울림이 커진다. 설전이 갑자기 커진 심장의 고동소리에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았지만 크게 놀랐다. 눈만 마주쳤을 뿐인데 왜 이런 거지? 당황하는 설전이 황급히 영혜를 바라보던 눈동자를 회피했다.

 

  영혜는 싱긋 웃더니 묘한 눈웃음을 지어보였다. 고개를 갸웃거리던 그녀는 아주 조금이지만 설전의 얼굴을 향해 다가갔다. 비록 아주 조금밖에 안 움직였지만 설전의 눈에는 아주 큰 거리였다. 설전이 흠칫 거리며 다시 영혜를 바라보았다.

 

  또다. 또 다시 그녀의 얼굴이 빛나 보인다. 왜 이렇게 그녀의 얼굴은 빛나 보이지? 이상한 일이다. 하늘도 닫히고 날씨마저 이런데 그녀의 얼굴만큼은 전혀 그늘져 보이지 않았다.

 

  이런 생각을 하는 사이 다시 영혜의 얼굴이 다가온다. 당황하던 설전도 그녀의 행동에 뭔가 마음먹었는지 영혜의 얼굴로 다가간다. 점점 서로의 얼굴이 좁혀진다. 그리고 입술의 간격도 좁혀진다.

 

  두 사람의 숨결이 서로에게 닿을 정도로 좁아졌다. 뜨거운 입김이 서로의 얼굴에 맞부딪힌다. 설전의 얼굴에 열이 오르고 심장이 가슴 밖을 튀어 나올 정도로 요동친다. 설전은 눈을 감는다.

 

  눈을 감으니 영혜의 입김이 더욱 더 야릇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그 입김의 강도가 점점 강하게 느껴짐에 따라 그녀의 입술과 더욱 가까워짐을 예측했다. 이제 조금만 더 가면 된다.

 

  “뭐하냐?”

 

  영혜가 천둥이 칠 때보다 더 화들짝 놀라며 뒤로 물러선다. 설전도 정적을 깨는 한 마디에 영혜만큼 놀라며 뒤로 물러선다. 대범이 당황하는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며 말했다.

 

  “어우 둘이 뭐냐? 언제 그렇게나 가까워진 거야?”

 

  “아..아버지! 그... 그게 아니라.. 그게.. 저.. 어..”

 

  “아... 아저씨. 그건 저.. 그게.. 에.. 그러니까.. 설명 드리자면..”

 

  “어쩐지 요새 니들 계속 붙어 다닌다 싶더니 그런 거였냐?”

 

  “뭐... 뭐가 그런 거예요! 아니에요, 아버지!”

 

  “맞아요! 저희 아저씨가 생각하시는 그런 관계가...”

 

  대범이 능글 맞는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그런 관계가 무얼끄아? 아이고 궁금해라.”

 

  귀까지 새빨개진 영혜와 설전이 어쩔 줄 몰라 하며 당혹스러워하는 모습을 보이자 대범은 킬킬 거리며 웃었다. 설전이 아까보다 말을 더 심하게 더듬으며 대범에게 따졌다.

 

  “뭐..뭐가 웃겨요! 아버지가 갑자기 여긴 무슨 일로...”

 

  “얌마. 내가 가고 싶은 데가 있으면 그냥 가는 거지. 너한테 일일이 보고하고 가야 되냐? 행보관같은 새끼네 이거.”

 

  “아니, 그게 아니라.”

 

  “아무튼 달콤한 시간 뺏어서 미안하다. 하던 거들 계속 하세요.”

 

  대범이 선심 쓴다는 듯 자리를 비켰다. 다시 둘만 남게 되자 아까와는 달리 어색한 침묵이 이어졌다. 그제야 설전의 귀에 아까 들리지 않았던 억수와 같이 쏟아지는 빗줄기 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멋쩍은 듯 코를 긁적거리던 설전이 어색함을 달래기 위해 영혜를 바라보았다.

 

  영혜는 귀까지 빨개져선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표정은 내가 왜 그랬지 라기 보단 아쉽고 창피하단 느낌이 가득했다. 영혜의 표정을 읽은 설전은 못 말리겠다는 듯 가볍게 코웃음을 쳤다. 그러자 영혜가 째릿 하며 매섭게 설전을 노려본다. 무언의 항의. 빨리 하지 않고 머뭇거린 것에 대한 항의처럼 보였다. 설전이 영혜의 눈을 피해 다시 고개를 돌린다.

 

  그리고 순간, 익숙하면서도 낯선 소리가 빗소리를 가른다. 설전과 영혜가 동시에 난간에서 소리가 난 곳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둘 다 모두 난간 아래로 몸을 낮추고 시선을 소리가 나는 거리로 옮겼다.

 

  난간 아래에는 자동차 한 대가 다급하게 빗속을 해치며 맹렬히 거리를 질주하고 있었다. 자동차는 대형 마트 옆 도로를 지나 다리를 건너더니 이윽고 설전과 영혜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너무나 갑작스레 벌어진 사태. 영혜와 설전은 서로를 바라보며 불길한 상상을 했다.

 

  둘은 다급히 대범과 권란을 찾는다. 대범은 2층에서 공구들을 살펴보고 있었고, 권란은 1층에서 낮잠을 자고 있었다. 영혜와 설전에 의해 다급히 3층 주차장으로 끌려 온 두 사람. 무슨 일이냐고 묻자 설전이 진지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방금 마트 옆으로 자동차 한 대가 지나갔어요.”

 

  “뭐?”

 

  “어떤 놈들인지 모르겠지만 살펴보러 나갔다 오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안 돼.”

 

  권란이 단번에 반대표를 던진다. 그녀의 눈에는 벌써 걱정이 한 가득이다. 권란의 반응은 예상했으나 막상 닥치니 설전은 조금 답답했다. 이해가 가긴 했다. 자칫 잘못해서 죽을 뻔한 아들이 다시 사지로 가겠다니 누가 좋아하겠는가. 하지만 설득해야 했다.

 

  “비록 살아남은 사람들이 살 곳을 찾아다니는 것일 수 있지만, 녀석들은 영혜를 잡았던 인간 사냥꾼들일지도 몰라요. 그래서 아군을 찾으려다 여기까지 왔을 수도 있고요. 지금 저놈들을 그대로 놔두면 놈들이 우리가 사는 곳을 알아차릴 지도 모르는 일이에요. 그렇게 되면 더욱 심각한 사태가 벌어질 여지가 있어요.”

 

  “우리를 눈치 채지 못하고 그냥 갈 수도 있겠지. 괜히 긁어 부스럼을 만들 가능성이 있다곤 생각 안해봤니?”

 

  “긁어 부스럼일지 아닐지는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중의 안전을 위해서라면 지금의 위험은 감수하는 게 전 옳다고 봐요. 그리고 일말의 가능성으로 놈들이 아닐 경우도 있고요.”

 

  “놈들이 아닐 가능성이 있다고?”

 

  “자동차가 정찰을 하는 것 치곤 이 빗속에서 꽤 속력을 냈으니까요. 다급했다고 해야 할까. 좀 위험하다고 싶을 정도로 밟더군요. 전의 놈들이 아군을 찾기 위해서 온 거라면 여기 오는데 저리 밟을 이유가 없죠.”

 

  “그래서 혹시 모르니 갔다 와 보겠다고? 차라리 그런 거라면 안에 안전하게 있는 편이 더 낫지 않겠어? 그냥 지나치는 놈들인데 뭐하러 정체를 까발리겠다고 이런 날씨에 나가려는 거야.”

 

  “이대로 보내면 알 수 없는 시한폭탄을 놔두는 꼴이라고 생각해요. 안 터지면 다행이지만 터질 경우 누가 다칠지 아무도 모르죠. 그러니 적어도 저게 폭탄인지 아닌지 정도는 확인하고 오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권란과 설전의 의견이 팽팽하다. 영혜는 솔직히 반은 권란에게, 반은 설전의 말에 맞장구를 치고 있었다. 두 사람 다 일리 있는 의견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결국 두 사람의 의견을 결정할 수 있는 건 이 가족의 가장인 대범의 손에 달려 있었다. 대범은 머리를 긁적거리고 턱을 만지더니 말을 꺼낸다.

 

  “설전아, 가서 보고 와라.”

 

  “여보! 당신...!”

 

  “이번엔 설전의 말에 조금 무게를 실어주고 싶어. 확인해둬서 나쁠 건 없다고 봐. 설전이 저번에 말 한대로 괴물들만 피해 다닐 상황은 아닌 것 같아. 좀 더 경계를 강화하고 적극적으로 방어에 나서도록 하는 게 중요하겠지. 그렇기에 이번에 우리를 지나친 놈들에 대한 정보를 알아내는 것도 좋다고 봐. 적인지, 아닌지.”

 

  그렇게 말하더니 대범은 설전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평소엔 그래도 장난기 가득한 얼굴인 아버지가 이번에는 근엄하고 진중한 모습이 되자 설전은 잠시 움찔거렸다. 대범의 눈빛은 마치 그것만으로도 크게 호통을 치는 것과 마찬가지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교전은 안 된다. 최대한 싸움은 피하되 놈들의 정체만 알아내서 돌아와. 만약 적의 숫자가 적고 제압이 가능하다면 제압을 해도 괜찮지만 수적으로 불리할 경우 그냥 돌아올 수 있도록 해라. 최대한 목숨을 우선시하면서 행동할 수 있도록.”

 

  설전은 고개를 끄덕거린다. 영혜도 얼떨결에 마찬가지로 고개를 두어 번 끄덕인다. 권란은 그런 결정을 내린 대범을 탓하고 싶었지만 더는 만류하지 않았다. 여기서 더 매달려 봐야 감정싸움으로 번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녀는 입을 다문 채 대범의 결정을 존중했다.

 

  이 후 영혜와 설전은 전투조끼, 소총 등을 챙기며 준비를 한다. 이번엔 굳이 따라 나올 필요 없다고 일렀지만 영혜는 인간 사냥꾼의 얼굴을 대충 알고 있으니 가면 도움이 될 거라고 말했다. 두 사람은 부모님의 배웅을 받으며 정문을 나선다.

 

  다행히도 대형 마트를 나오던 때에는 빗줄기가 제법 약해져 있었다. 덕분에 두 사람은 수월하게 다리를 건넌다. 하지만 곧 지나지 않아 다시 빗줄기는 굵어지기 시작했고 두 사람이 자신들이 봤던 승용차를 발견할 즈음에는 다시 굵은 빗줄기가 사정없이 내리치게 된다.

 

  거세게 비가 내리는데다가 설전은 자동차의 모습이 가물가물해 애를 먹었지만 영혜가 자동차의 모습과 종류를 기억해 낸 덕분에 찾을 수 있었다. 자동차는 어느 산부인과 병원 앞에 주차되어 있었다. 자동차를 발견한 두 사람은 건물에 바짝 붙어 자동차의 사각에서 벗어나 조금씩 움직인다. 영혜는 차 안에 누가 있는 것 같다고 말한다. 설전은 그 말을 듣고 가까운 건물에 엄폐하기로 결정한다.

 

  그렇게 천천히 움직이며 산부인과 옆 약국 안에 도착한 설전이 젖은 머리를 털며 자리에 앉았다. 영혜도 곧 뒤따라 들어가 젖은 머리를 뒤로 넘기더니 소총 노리쇠에 묻은 물기들을 제거하고 있었다. 설전이 영혜를 한 번 보고 자리를 옮겨 유리벽 너머의 거리를 바라보았다. 아까 발견한 차번호와 일치한 검은색 승용차 한 대가 산부인과 앞에 주차되어 있었다.

 

  안에는 잘 보이지 않지만 사람으로 추정되는 실루엣이 얼핏 보인다. 설전은 한 숨을 낮게 쉬더니 자동차 주변을 둘러보았다. 폭우 속이라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자동차 너머의 다른 건물 안에는 어떤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일행은 없는 건가? 아니면 일행이 잠시 어디론가 가있는 건가? 설전이 눈을 가늘게 뜨며 자동차를 노려보았다.

 

  “오빠, 어때요? 움직임은 있어요?”

 

  “역시, 네 말대로 차 안에 한 명? 있는 것 같다.”

 

  “역시 짱짱. 아직 내 눈을 젊어! 죽지 않았스.”

 

  영혜가 손가락으로 양쪽 눈을 크게 만들며 말했다. 설전이 영혜를 안쓰러운 눈빛으로 쳐다보자 영혜가 무안한지 혀를 살짝 내밀며 자동차 쪽을 바라보았다.

 

  “근데, 우리가 여기까지 오는 것을 몰랐나 봐요? 이렇게나 가까이 근접했는데. 움직임이 없네.”

 

  “아마 폭우 때문에 그렇겠지. 차에서 내리지 않으면 차 안에서 보는 밖은 가시거리가 꽤 짧거든.”

 

  설전이 잠시 뜸을 들이다 영혜를 향해 말했다.

 

  “근데 과연 놈들일까?”

 

  “그러니 알아 봐야죠. 놈들인지 아닌지. 만약 놈들이라면 우리가 움직이기 더 힘들지 않겠어요? 괴물과 달리 상대하기 엄청 까다로우니까요. 만에 하나 놈들이 여기에 정찰하러 온 거라면 더욱 빨리 제거하는 것이 도움이 되겠죠, 아마?”

 

  “괜찮겠어?”

 

  설전이 걱정스러운 듯 영혜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녀가 과연 공포와 맞닥뜨렸을 때 잘 싸울 수 있을까 걱정이 된 설전이었다. 영혜는 설전의 행동에 잠시 흠칫 놀라는 듯 보였지만 이내 싱긋 웃으며 설전을 안심시켰다.

 

  “네. 괜찮아요.”

 

  “무리하지 마. 그냥 어떤 놈들인지 정찰만 하고 가도 돼.”

 

  “아뇨, 그게 더 위험하죠. 어떤 놈들인지 모르니 저희가 발이 묶이게 될지 모르잖아요. 지금 확실히 처리하자고요.”

 

  영혜가 결의에 찬 듯 소총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무슨 처리까지 할 필요가 있나. 거기다 그렇게 되면 최악의 경우 살인까지 가게 된다. 인간 사냥꾼이 아닌 이상 최대한으로 살생을 피하고 싶었다. 설전이 그렇게 말하자 영혜는 고개를 끄덕거리며 알겠다고 한다. 안 그래도 대범이 최대한 목숨을 중시 하란 말을 떠올린 영혜였다.

 

  “후, 그래 그럼 어떻게 할까? 놈들이 나올 때 까지 기다릴까?”

 

  “그렇게 기다리다 어두워지게 되면 괜히 우리가 더 힘들어지게 되잖아요. 게다가 괜히 아저씨, 아주머니들에게 걱정을 끼쳐드릴 필요는 없지요.”

 

  설전이 영혜를 바라보았다. 아까 영혜는 괜찮다고 말했지만 역시 걱정이 되었다.

 

  “보통 자동차라면 가까운 목적지에 차를 갖다 대겠죠? 자동차와 가장 가까운 곳이 산부인과 앞이니 분명 녀석들의 목적은 산부인과에 있을 거예요.”

 

  “근데 왜 산부인과지? 누가 애라도 낳나?”

 

  “모르죠, 약품이 필요한데 여기에 필요한 게 있을지도 모르니 들른 걸지도. 뭐, 이게 첫 번째 가설이고 두 번째는 혼자 와서 잠시 정차하고 있는 중일지도 모르고요.”

 

  “음... 그래서?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 영혜쨩?”

 

  영혜가 쨩은 붙이지 말라며 타박한 뒤 설전의 질문에 대답했다.

 

  “역시 둘로 갈라지는 게 좋겠어요. 한쪽은 저 자동차를 감시하고 다른 한쪽은 산부인과로 돌입해서 일행이 있는지 없는지 살펴보는 거죠.”

 

  “...만약 변수가 있다면?”

 

  “일행이 다른 곳에 출몰할 경우. 일행의 숫자. 그리고 괴물들의 난입. 정도가 되겠네요.”

 

  설전이 영혜의 말을 듣고 잠시 곰곰이 생각하더니 말을 이었다.

 

  “그래서 네가 여기에 남겠다는 거냐?”

 

  “아뇨. 제가 올라가겠어요.”

 

  하마터면 설전은 영혜를 향해 큰소리로 소리를 지를 뻔 했다. 아슬아슬하게 설전은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소수를 세었다. 2, 3, 5, 7, 11, 13, 17, 19, 23... 겨우 자신을 진정시킨 그는 영혜를 향해 낮고 공격적인 어투로 그녀를 나무랐다.

 

  “무슨 헛소리야. 당연히 네가 여기 남아있어야지.”

 

  “이런 빗속에서 건물 뒤편으로 잠입하려면 체구가 큰 남자보다 체구가 작은 여자가 낫지 않을까요. 그리고 건물 안은 밀폐되어 있어서 설사 들킨다고 해도 방어하기 용이하지만 여기는 들키기도 쉽고 돌발 상황이 발생하면 대처하기가 매우 난처해요. 만약 그렇다면 경험이 많고 저보다 몇 수 위인 오빠가 여기를 지키는 게 타당하다고 보는데요.”

 

  “얌마 그래도 혼자서...”

 

  “알아요, 오빠. 걱정하시는 거. 그래도 지금은 이게 최선의 방책이에요.”

 

  영혜는 단호하게 말했다. 설전이 좀 더 뭐라고 항의했지만 영혜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그는 화가 치밀었지만 참았다. 답답하고 신경질이 났지만 가슴 깊이 그 감정들을 억눌렀다. 영혜가 이렇게 단호할 경우에는 어떠한 말도 잘 듣지 않는 다는 걸 짧지 기간이었지만 어느 정도 같이 생활해 알 수 있었다.

 

  게다가 만약 일행이 없다면 산부인과 쪽으로 잠입하는 것이 여러모로 안전하다. 설전 혼자서 왔다면 당연히 자동차는 신경을 끄고 산부인과 쪽으로 잠입을 시도했을 것이다.

 

  어떻게 보아도 산부인과 쪽으로 사람을 보내는 것이 지금으로썬 설전이 내리기에는 현명한 처사였다. 다만 그 일을 지원한 상대가 설전의 마음에 들지 않은 것 뿐.

 

  “걱정 마시라고 했잖아요. 저 이제 그렇게 약한 애 아니에요.”

 

  “하지만...”

 

  “괜찮아요. 오빠.”

 

  영혜가 설전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그녀의 동공은 불안과 공포로 흔들리고 있었지만 확고한 무언가가 중심을 잡고 있었다. 설전이 다시 뭐라 말하려 했지만 영혜가 그 말을 가로막고 다시 말했다.

 

  “괜찮아요.”

 

  미소를 지으며 말하는 영혜를 바라보던 설전은 자신의 고집을 꺾기로 결심했다. 믿어달라는 건가. 어린 아이가 혼자서 심부름을 나갈 수 있다며 대문 밖을 나서려고 하는 것을 보는 부모님의 심정 같았다. 설전은 영혜의 머리를 쓰다듬더니 한 숨을 깊게 내쉬며 말했다.

 

  “무리 하지 마.”

 

  설전의 말에 영혜가 방긋 웃으며 대답했다.

 

  “네!”

 

 

 

  영혜가 폭우 속으로 사라진다. 약국을 나와 건물 뒤로 움직이던 영혜는 무사히 자동차의 반대쪽에 있는 산부인과 뒷문에 도착하여 그 안으로 들어갔다. 설전은 멍하니 그 광경을 지켜보다 영혜가 무사히 산부인과 안으로 들어가고 나서도 10분정도를 더 기다린다. 산부인과가 잠잠한 것을 느낀 설전은 자리에 주저앉았다.

 

  자동차를 등지고 유리벽에 기대앉은 설전의 입에서 다시 깊은 한숨이 터져 나왔다. 여러 가지 복잡한 심경들이 한숨에 섞여 토해졌다. 설전은 친구가 해주던 말이 생각났다.

 

  담배 필 때는 자신의 한숨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 수 있어서 좋아. 그 한숨을 보며 여러 가지 생각할 수 있거든. 설전이 개소리라며 타박하던 그 때 그 말이 지금은 왜 이리 와닿는 걸까.

 

  그러나 아쉽게도 설전은 담배를 피우지 않는 사람이었다. 설전은 주머니에서 손바닥보다 작은 철통을 하나 꺼냈다. 언뜻 작은 필통이나 담뱃갑처럼 보이는 그곳에서 설전은 껌을 하나 꺼냈다. 자일리톨 껌이었다. 껌을 씹으니 산뜻하고 시원한 맛이 입안 가득 풍겨 나왔다.

 

  다시 한숨을 쉬자 상쾌한 바람이 입을 가득 적셨다. 산들바람이 한숨과 섞여 나온다. 아까와는 다른 느낌의 한숨이 되어 나오자 설전이 잠시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고작 껌 하나 씹었다고 아까 내쉰 한숨이랑 지금 내쉰 한숨이랑 느낌이 이렇게 달라지다니.

 

  설전은 계속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뒤를 돌아보았다. 자동차는 아까와 마찬가지로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하긴 폭우 속에서 함부로 움직일 리 없지. 혼자라면 더더욱.

 

  근데 계속 저리 있는 거 보면 정말 일행이 있는 거 아냐? 여러 가지 생각이 설전의 머리를 스치던 와중에 그의 눈에 자동차 뒷문이 눈에 들어왔다.

 

  뭐지? 조금 열려있다. 잘 보이지 않았지만, 역시 약간 이지만 조금 열려있었다. 설전이 자동차 뒷문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불길하다. 뭔가 이상하다. 설전의 불안함이 가슴에서 머리 위까지 진동했다. 서늘한 무언가가 허리에서 등줄기를 타고 뒤통수까지 얼려왔다. 설전이 다급히 몸을 옆으로 피했다.

 

  총성과 더불어 유리벽이 깨지는 소리가 설전의 옆에서 들려왔다. 유리 파편들이 설전이 방금 있던 곳으로 우수수 떨어졌다. 설전이 이를 갈았다. 욕설을 내뱉었다. 젠장. 이 총성의 의미를 설전은 빠르게 파악했다. 들켰다.

 

  설전이 자동차와 산부인과를 번갈아 바라본다. 그는 아까 미소를 지으며 대답하던 영혜를 떠올린다.

 

 

 

  총성이 건물 안을 울리자 영혜는 계단에서 멈칫 거렸다. 그녀는 계단 아래를 바라보았다. 잠잠해졌지만 영혜는 오히려 그 정적이 더 불안하게 느껴졌다. 1층을 수색하던 그녀는 어떠한 낌새도 느껴지지 않자 2층으로 올라가던 중이였다.

 

  그런데 돌연 울리는 총성. 그것은 내부에서 발사한 총의 소리가 아니었다. 분명 밖에서 들려왔다. 영혜는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던 설전을 떠올렸다. 그의 시선은 계단 아래로 고정이 되어 있었다.

 

  그녀는 혼란스러웠다. 누가 쏜 걸까? 자동차 안에 있는 사람? 아니면 오빠? 아니면 갑자기 괴물이라도 나타났나? 영혜의 머릿속에서 생각의 실타래가 마구 엮이기 시작했다.

 

  다시 내려가야 하나. 아니면 올라가야 하나. 영혜의 눈가에 설전의 모습이 계속 아른거렸다. 총성이 다시 들리지는 않았지만 영혜의 불안감은 그 적막이 더욱 거슬렸다. 이윽고 영혜가 느끼는 적막을 깨며 다시 총성이 울려온다.

 

  영혜는 계단을 한 발작 내려왔다가 다시 올라갔다. 그녀는 시선을 계단 아래에서 계단 위로 옮겼다. 계단 안쪽으로 몸을 밀착시킨 다음 조심스레 한 발자국씩 걸음을 옮긴다. 영혜는 아까 약국에서 산부인과로 출발하기 전 설전이 해주었던 말을 떠올렸다.

 

  “만약 밖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 총성 같은 게 울린다면 너는 나오지 말고 산부인과 어디 안에 쳐 박혀서 숨어있어. 절대 나오지 말고. 내가 싸그리 다 정리하고 널 데리러 올라 갈 테니까.”

 

  영혜가 그러다 잘못되기라도 한다면 어떻게 하냐고 반문하자 설전은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그녀를 향해 말했었다.

 

  “나도 널 믿고 저리로 보내는 거니 너도 날 믿어. 나도 내 고집을 꺾으면서 널 저기로 보내는 거니까 이번엔 너도 네 고집을 꺾어야 될 차례야.”

 

  그런 다음 설전은 영혜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 영혜는 설전이 손을 잡았을 때 느낀 촉감을 기억했다. 그리고 손을 잡았을 때 느낀 설전의 불안함과 자신에 대한 신뢰를 느꼈다. 영혜는 자신의 손을 바라보더니 이윽고 어두운 계단을 다시 올라가기 시작했다.

 

  이제 몇 계단만 오르면 2층이다. 영혜는 조심스레 한쪽 발을 다음 계단을 밟기 위해 들어 올린다. 그러나 순간 멈칫 거리며 다시 발을 제자리로 복귀시킨다. 그녀는 최대한으로 숨을 죽이더니 그대로 멈췄다. 총성이 울리지 않자 비가 떨어지는 소리만 건물 안을 울리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뒤, 낮지만 떨리는 숨소리가 영혜의 앞 쪽에서 느껴졌다. 정확히는 2층에서 3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첫 부근에서 들려왔다.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았지만 그 쪽에 이질감이 느껴지는 묘한 형체가 눈에 밟혔다.

 

  영혜는 그 자리에서 멈췄다. 확실히 그 곳에 무언가가 있었다. 자신과의 거리는 고작 1m 남짓이었다. 사람 같아 보이는 그 형태는 긴장을 하고 있는지 점점 숨소리가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영혜는 침착하게 생각했다. 어떻게 저 상대를 제압할 수 있을까. 영혜가 머리를 굴리며 수를 짜고 있을 때였다.

 

  다시 밖에서 총성이 울렸다. 상대는 깜짝 놀라며 잠시 움츠리는 듯 했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영혜가 빠르게 계단 안쪽에서 벽 쪽으로 몸을 옮기며 올라갔다. 깜짝 놀란 상대는 손에 들고 있는 것으로 영혜를 향해 내리쳤다.

 

  그러나 물체는 허공을 갈랐고 영혜는 상대의 얼굴로 의심 되는 곳을 향해 한쪽 손에 쥔 손전등을 비추었다. 아까 벽 쪽으로 몸을 옮길 때 주머니에서 꺼내 놓은 것이었다. 강렬한 빛이 상대의 얼굴을 비추자 상대는 눈이 멀었는지 뒤로 쓰러졌다. 손에 들고 있는 것은 쇠막대기로 보이는 물건이었다. 영혜는 손전등을 쥔 채 상대를 겨냥하며 말했다.

 

  “저항하면 쏘겠어. 그대로 멈춰.”

 

  상대는 눈물을 훌쩍이더니 덜덜 떨며 손을 들었다. 눈물범벅이 된 상대는 이제 갓 어린 아이 티를 벗어난 청소년이었다. 중학생 정도로 보이는 그 남자 아이는 억울함과 공포심이 가득한 표정으로 영혜를 바라보고 있었다. 소년은 거친 숨소리로 흐느끼며 자신의 실패를 자책하는 듯 보였다.

 

  그러나 영혜는 소년을 향해 더 이상 말을 하지 못했다. 그녀는 너무나 큰 충격에 빠진 듯 보였다. 그녀는 총을 든 손을 덜덜 떨며 계속해서 소년의 얼굴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다시 총성이 밖에서 울렸지만 움찔거리는 것은 소년 혼자 뿐 이었다. 영혜는 미동도 하지 않은 채 소년에게 시선을 떼지 않았다.

 

  짧지만 길고 긴 정적 끝에 영혜가 소년을 향해 말했다.

 

  “영..우야?”

 

  영혜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리고 그 떨리는 목소리를 알아차린 소년이 어둠에 가려진 영혜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의심과 기대감으로 잔뜩 떨려 있었다.

 

  “누...나? 영혜.. 누나야?”

 

 

 

  설전은 화가 가득 나있었다. 몇 발씩이나 이쪽을 향해 총알이 날아들어 설전은 어느새 약국 깊숙한 곳까지 들어와 있었다. 여기서는 산부인과가 보이지 않아. 제길. 설전이 이를 악물며 자신의 과오를 자책했다.

 

  “잠시, 뒤를 돌아 본 사이에 공격하다니. 반칙이잖아.”

 

  상대를 향해 욕설을 내뱉었지만 거기에 반응이라도 한 듯 다시 총알 하나가 거칠게 약국 내부를 강타했다.

 

  “X발. 공격하는 꼬라지 봐라. 막 쏘다 보면 어쩌다 한 발 정도는 맞겠지냐, 아니면 여기로 오지 마 견제 샷이냐. 아무튼 짜증나네. 저거.”

 

  자동차가 있는 방향을 노려보던 설전이 무슨 결심이라도 한 듯 주머니에서 수류탄 하나를 꺼내들었다. 그는 조심스레 포복으로 약국 바닥을 기어가더니 유리벽에 멈췄다. 수류탄의 안전핀을 제거한 설전이 있는 근육을 모조리 끌어 모아 수류탄을 깨진 유리벽 너머로 던졌다. 비가 거세게 몰아치고 있었지만 수류탄은 꽤 먼 거리를 날아갔다.

 

  탄착점을 확인도 하지 않고 설전은 재빨리 총을 들어 조정간을 단발에 맞춘 다음 자동차의 바퀴를 겨냥했다. 그리고 일순 망설임 없이 방아쇠를 당겼고 총알은 큰 소리를 내며 타이어와 바퀴를 뚫었다. 그는 재빠르게 다시 약국 안 깊숙이 들어갔다. 그는 귀를 막는다. 곧 자동차로부터 멀리 떨어진 방향에서 수류탄이 터지더니 엄청난 폭음과 동시에 물보라가 거리를 휩쌌다.

 

  살상반경 밖이지만 수류탄 파편들이 자동차 뒤 유리창을 깨며 날아들었다. 다행스럽게도 자동차안의 상대는 다급히 문을 닫고 고개를 숙인 덕분에 상해는 모면했다. 아까 위협사격을 가하던 중 자동차 바퀴를 공격당하자 재빠르게 문을 닫고 고개를 숙인 덕분이었다.

 

  자동차 유리파편들이 안에 있던 사람의 등 위로 떨어진다. 상대는 폭음이 가라앉을 때를 기다렸다 다시 몸을 일으켜 약국을 향해 조준하려 했으나 어느새 차의 뒷문은 열려있었고 밖에서 총구 하나가 자신의 머리를 겨냥하고 있었다.

 

  “헉..헉.. 존나 비싼 새끼야. 헉..헉 ..수류탄 하나 헉..헉.. 쓰면서 너 헉..헉..후우.. 잡으러 왔다.”

 

  상대가 총을 들려하자 설전이 먼저 그의 총을 가로채더니 밖에다 던져버렸다.

 

  “어지간히도 놀랐나봐? 총을 몸에서 떨어뜨리다니. 총을 들고 싸울 때는 뒤지더라도 총을 안고 뒤지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

 

  “X발.”

 

  굵고 낮은 남자의 목소리가 욕설을 지껄였다. 설전이 그 소리를 듣고 코웃음을 치더니 총구를 아예 머리에 갖다 대었다.

 

  “어디서 욕질이야. 얼른 나와. 나오기 싫으면 이 자동차를 네 관으로 만들어 줄까?”

 

  설전이 자기가 한 말에 스스로 감탄하며 멋지다고 생각하는 사이 상대는 차 밖으로 천천히 걸어 나왔다. 그는 알아서 손을 들며 설전을 바라보았다. 설전이 차 밖으로 나온 상대를 보며 무슨 목적으로 왔냐고 묻기도 전에 그의 얼굴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차 안에 있을 때는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았지만 밖으로 나오니 그 얼굴이 확연히 드러났다.

 

  담배 필 때는 자신의 한숨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 수 있고 그 한숨을 보며 여러 가지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좋다고 하던 친구. 설전은 그 친구의 이름을 아직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윤두호! 유두?!”

 

  설전이 놀라움을 금치 못하며 상대를 바라보자 상대도 그제야 설전의 얼굴을 제대로 보더니 놀라며 말했다.

 

  “다이설전? 다이새끼냐?”

 

  두 사람이 얼빠진 표정으로 서로를 응시하더니 이윽고 서로를 향해 동시에 외쳤다.

 

  “야 X발! 너 여기서 뭐하는 거야?”

 
작가의 말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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