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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나의 자카르타
작가 : 히타히타
작품등록일 : 2019.9.2

도망치듯 떠나온 그곳에서 마법이 시작된다.

 
깊은 사랑은 깊은 미움
작성일 : 19-10-21 08:47     조회 : 296     추천 : 0     분량 : 4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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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밤이다.

 1층에서 익숙한 소리가 들린다.

 누군가 홀을 돌아다니는 소리, 발을 질질 끄는 소리, 내 영혼을 흔드는 소리가 들린다.

 

 어떤 존재가 왔다.

 

 나는 이제 두렵지 않다.

 침대에서 눈을 뜨자마자 일어나, 가벼운 산보라도 가듯 1층 계단을 내려갔다.

 

 키 작은 할머니가 홀 한가운데 서 있었다.

 눈이 작고 피부가 하얀 동아시아 얼굴이었다.

 할머니는 나를 보자 살짝 웃었다.

 이곳을 방문한 유령들이 다 그렇듯, 나를 알고 있는 표정이었다.

 

 “앉으세요.”

 

 나는 한국어로 말했다.

 한국 교민인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할머니는 내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실라깐 두둑, 이라고 인도네시아어로 고쳐 말하자 그제야 자리에 앉았다.

 할머니는 최소한 한국 사람은 아니었다.

 

 “오랜만이에요. 권.”

 “저는 이부(부인)를 모릅니다.”

 “저를 모른다고요?”

 

 할머니가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나는 이제 그녀가 왜 나를 모르는지 알고 있다.

 

 “아마 저를 만나기 전일 겁니다.”

 “아, 그랬군요. 제가 먼저 찾아온 거군요.”

 “예. 이부가 먼저 저를 찾아왔고, 그래서 제가 찾아간 겁니다.”

 

 나는 할머니의 얼굴을 찬찬히 살폈다.

 노인의 얼굴만큼 사진에 담기 좋은 소재가 있을까.

 오랜 풍상을 겪은 얼굴에는 그 사람의 일생이 지나가게 마련이다.

 힘든 삶을 살아낸 사람에겐 고통이 깊게 새겨진 얼굴이 남는다.

 

 그러나 할머니의 얼굴은 잔잔한 바다 같았다.

 온화하고 인자했다.

 게다가 서민에게선 찾아보기 힘든 기품 같은 것이 있었다.

 누구나 그 앞에서 옷깃을 여미게 되는, 그런 귀부인의 얼굴이었다.

 

 “우리는 친구였습니까?”

 

 할머니는 나를 ‘바빡’이 아니라 ‘권’이라고 불렀다.

 그렇다면 우리는 친밀한 사이였을 것이다.

 

 “그래요. 우리는 친구였어요. 아주 잘 지냈죠. 나는 권을 좋아했어요. 당신은 솔직하거든요. 말을 치장할 줄 몰라요. 우울해보이지만 따뜻한 면도 있고.”

 “다행이군요.”

 “당신은 리따의 주소를 어떻게 알았죠?”

 

 할머니가 엉뚱한 질문을 했다.

 나는 리따라는 이름조차 들어본 적 없었다.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요. 그랬군요. 내가 말해준 거군요.”

 “이부는 누구십니까? 말씀해 주십시오.”

 

 나는 가만히 앉아 할머니의 이야기를 기다렸다.

 할머니는 입을 다시며 뭔가를 생각했다.

 

 “음... 어디서부터 얘기하면 좋을지 모르겠군요.”

 “괜찮습니다. 생각나는 대로 얘기해주세요.”

 “인연이란 참 묘한 거예요. 나무가 가지를 뻗듯 수없이 얽히게 되죠. 사람은 이렇게 죽어서까지 인연을 만들게 돼요.”

 

 할머니는 교양 있는 옛날 사람들이 그렇듯, 말을 이리저리 돌렸다.

 나는 조급해져서 다시 물었다.

 

 “어디 사셨습니까?”

 “저는 주린이라고 해요. 블록엠에서 리틀 홍콩이라는 술집을 했어요. 그리로 찾아오세요.”

 

 술집 주인이라는 말에 나는 조금 놀랐다.

 할머니의 표정, 말투, 태도 어느 곳에서도 장사꾼의 냄새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리틀 홍콩이라면, 홍콩 분이십니까?”

 “오래 전 자카르타로 왔어요. 나는 나 자신을 홍콩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난 인도네시아 사람이에요.”

 “우리 인연은 왜 시작된 걸까요?”

 “그야 모르죠. 아무도 모를 거예요. 어쨌든 권은 나한테 중요한 정보를 줘야 해요.”

 

 나는 아까 부인이 한 질문을 떠올렸다.

 ‘리따의 주소’라는 게 그 중요한 정보일 것이다.

 

 “리따라는 분을 찾고 싶으십니까?”

 “그래요.”

 

 할머니가 허공을 바라보았다.

 박 사장의 유령처럼, 인드라의 유령처럼, 할머니도 지난 삶에 대한 회한에 젖었다.

 

 “리따는 처음 술집을 열 때 채용한 직원이었어요. 그땐 인도네시아에 적응하기 힘들었죠. 어디 마음 둘 데도 없었어요. 리따는 그런 저를 따뜻하게 대해줬어요. 직원이지만 보호자처럼 절 챙겼죠.”

 “많이 좋아하셨군요.”

 “그럼요. 저는 리따를 딸처럼 아꼈어요. 아니, 딸보다 더 사랑했어요. 우리는 친구였고 동업자였고 모녀였어요.”

 

 할머니는 목소리가 가늘고 카랑카랑했다.

 점잖은 태도와 어울리지 않는 목소리였다.

 술집을 하다 보니 목소리를 높일 일이 많아서 그렇게 된 걸지도 몰랐다.

 

 “그런데 리따라는 분과 왜 헤어지셨습니까?”

 “우리 술집에 자주 드나들던 일본인이 있었어요. 살충제 사업을 하는 놈이었는데 블록엠 여자들을 다 후리고 다닌다는 소문이 있었어요. 그 놈이 리따를 낚은 거예요.”

 

 할머니는 일본인을 가리켜 ‘자핫(악당)’이라는 말을 썼다.

 접두사를 생략하지 않고 문법을 정확히 지키는 상류층 말투를 듣다가 ‘자핫’이라는 말이 튀어나오니 어색했다.

 그만큼 원한이 깊은 것 같았다.

 

 “물론 저는 뜯어말렸죠. 모진 소리도 많이 했어요. 그게 리따에게 상처가 된 모양이에요. 어느 날 연락도 없이 사라져 버렸어요.”

 “왜 그땐 찾지 않으셨습니까?”

 “리따가 미웠어요.”

 “사랑이 깊으면 미움도 깊죠.”

 

 할머니가 웃었다.

 목소리보다 더 카랑카랑한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나는 권이 그런 식으로 말할 때가 좋아요. 왠진 모르겠지만.”

 “나중에 리따의 주소를 알아내신 겁니까?”

 “네. 권 덕분에 리따가 데뽁에 산다는 걸 알았어요. 리따는 몇 년 뒤에 암으로 죽어요. 권이 없었더라도 언젠가는 리따를 수소문하긴 했을 거예요. 주소를 알아내는 건 쉬운 일이에요. 하지만 그땐 리따가 죽고난 뒤였겠죠.”

 

 나는 마침내 주린이라는 할머니의 의도를 파악했다.

 할머니는 리따가 아직 살아있을 때 찾아가고 싶은 것이다.

 

 “권이 없었다면 어땠을까요? 리따가 죽었다는 소식을 다른 사람에게 들었겠죠. 그리고 그 애를 잊었다고 생각하며 살았을 거예요. 하지만 눈을 감을 때 리따의 얼굴이 떠올랐을 거예요. 눈물이 그렁그렁한 얼굴이요. 리따를 만나지 않은 게 한이 되고 말았겠죠. 권 덕분에 리따에 대한 행복한 기억을 갖고 떠날 수 있었어요.”

 “알겠습니다. 제가 내일 찾아뵙고 리따의 주소를 알려 드리겠습니다.”

 

 할머니가 리따의 주소를 불렀다.

 나는 카운터에서 메모지를 떼 내 그 주소를 적었다.

 

 “꼭 리따를 만나라고 해주세요. 아주 강하게. 리따를 못 만나면 죽어서도 안식하지 못한다고 말이에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할머니가 흐뭇하게 나를 보았다.

 자식을 보는 눈빛 같다고 나는 생각했다.

 

 “권. 우리는 자주 만나게 될 거예요.”

 “이부의 술집이라면 저도 자주 찾아갈 것 같습니다.”

 “권이 날 도우면 나도 권을 도울 거예요.”

 “저를요?”

 “날 만났을 때 권은 어려움에 처해 있었어요. 난 힘센 사람들을 아주 많이 알아요. 돌담을 일으켜 세울 만큼 아주 많이.”

 

 아침에 눈을 뜨자 카운터로 달려갔다.

 카운터 포스기 위에 내가 쓴 메모지가 놓여 있었다.

 그 위에는 내 필체로 리따가 사는 데뽁의 주소가 적혀 있었다.

 

 **

 남자카르타 블록엠은 해가 지면 생기를 띠는 유흥가다.

 일식당과 일본식 선술집이 모여 있는 일본인 거리이기도 하다.

 일본 슈퍼마켓 ‘파파야’ 모퉁이를 돌면 ‘리틀 홍콩’라는 작은 술집이 나온다.

 일본인 거리에 외롭게 떠 있는 중국 섬 같다.

 

 이 술집에선 항상 대머리 화교 노인들이 바둑을 두고 있다.

 술집 뒷방이 기원이기 때문이다.

 현관 앞에는 긴 바가 있고 그 위에 낡은 브라운관 모니터가 하나 있다.

 거기선 찍은 지 30년은 됨직한 뮤직비디오와 낡은 중국 노래 반주가 흘러나온다.

 늙수그레한 손님들이 바에 앉아 마이크로 노래를 부른다.

 

 “자네가 이런 델 어떻게 알았어? 여긴 늙은 짱깨들만 오는 곳인데.”

 “말조심하세요. 여기 다 화교나 중국 사람들이잖아요.”

 

 나는 박 사장을 꼬여 이곳에 왔다.

 한국인 손님은 우리 둘밖에 없었다.

 쉰 살의 박 사장이 이곳에선 젊은 손님 축에 속했다.

 

 주린 할머니는 계속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어젯밤 내가 본 모습보다 약간 젊어보였다.

 사실 어느 정도 나이가 들면 지금 모습이나 10년 뒤 모습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주린 할머니는 서너 곡을 연달아 불렀다.

 나는 듣기 곤혹스러웠다.

 할머니는 음치에 가까운데다 목소리마저 어젯밤처럼 카랑카랑 했다.

 원래 목소리가 저런 건지, 노래를 너무 많이 불러 저렇게 된 건지 알 수 없었다.

 박 사장은 독한 화주를 안주도 없이 계속 들이켰다.

 

 “형님, 천천히 드세요.”

 “빨리 취해서 고막을 마비시키려고. 저 할멈 노래 듣다가 귀가 터지겠어.”

 

 드디어 노래가 끝났다.

 할머니가 마이크를 내려놓고 손님들에게 노래를 청했다.

 바에 앉아 있던 대머리 중국인이 굵은 저음으로 중국 전통가요를 불렀다.

 이제야 좀 살 것 같았다.

 나는 할머니의 이름을 부르며 손짓했다.

 

 “이부 주린.”

 “호, 제 이름을 아세요?”

 

 할머니가 다가왔다.

 나는 할머니의 인생 얘기부터 듣고 싶었다.

 지난밤에는 경황이 없어서 홍콩 할머니가 왜 자카르타에서 술집을 열었는지 듣지 못했다.

 

 “홍콩 분이시죠?”

 “어떻게 아셨어요?”

 “술집 이름이 리틀 홍콩이니까요.”

 “아, 그렇군요.”

 “저는 권이라는 한국 사람입니다. 왜 여기로 오셨는지 물어봐도 될까요?”

 “흠...”

 

 다행히 주린 할머니는 얘기하길 좋아했다.

 지난밤에는 말을 많이 아낀 편이었다.

 할머니는 술집에 어울리지 않는 점잖은 인도네시아어로 장황하게 자신의 인생을 털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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