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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기타
대망 : 아마쿠사의 신
작가 : 한연화
작품등록일 : 2019.9.20

"제가 원하는 것은 전국을 일통하고 강한 군주가 되어 백성들을 덕으로 교화하는 것입니다. 그 길에는 지독한 피비린내와 가시밭길만이 있겠지요. 이런 저라도 받아주실 수 있겠습니까?" 끝없는 전란이 이어지는 전국시대의 일본. 천하를 무로 덮는 운명을 타고났으나 누나에 의해 사람이되 사람이 아닌 자, 히닌이 되어 쫓겨난 오와리국의 후계 유죠와 인간들의 전장에서 태어난 전쟁의 여신 아마쿠사미코토의 전국일통을 향한 일대기가 시작된다. 격랑의 역사 속, 그들의 삶과 사랑은 과연 어찌 될 것인가?

 
시대를 초월한 마음(2)
작성일 : 19-10-21 07:09     조회 : 223     추천 : 0     분량 : 7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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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는 하루후사와 닮아 있었다. 자신을 위해 신사를 청소하는 것도 그러했고, 어디선가 음식을 구해와 신상 앞에 바치는 것도 그러했다. 마치 하루후사가 늘 자신을 바라보며 아름답다 이야기하고, 자신에게 잘해주려 애썼던 것처럼 아이도 자신에게 진심을 내보이고 있음을 아마쿠사미코토는 알고 있었다.

 

  “너는 하루후사가 아니다.”

 

  그러나 아이는 하루후사가 아니었고, 하루후사가 될 수 없었다. 그렇기에 아마쿠사미코토는 아이에게 특별한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려 했다. 아마쿠사미코토는 아이가 구해오는 음식을 흠향하지도 않았고, 아이가 신사를 청소할 때마다 고개를 돌리고 귀를 막으며 사악사악 하는 싸리비소리를 듣지 않으려 애썼다.

 

  “너는 하루후사가 아니다.”

 

  하지만 눈에 보이면 마음에도 가까워지는 법. 아마쿠사미코토는 아이가 어디에서 음식을 구해오는지 알고 있었다. 날이 갈수록 아이의 얼굴에는 멍자국과 상처가 늘어만 갔고, 낡은 옷은 항상 여기저기 찢어지고 곳곳에 발자국과 진흙이 묻어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마쿠사미코토가 아이의 상처를 치료해주지 않는 것은 아이가 하루후사가 아니기 때문이었다. 아마쿠사미코토는 하루후사가 아닌 존재에게 특별한 관심을 기울일 마음도 없었고, 하루후사가 아닌 존재를 눈에 담아볼 마음은 더더욱 없었다.

 

  “그런데 대체 왜 그런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거냐. 너는 하루후사가 아니지 않느냐. 그런데 왜 그 사람을 닮은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거냐, 이시다 단조노추 사이조스케 마사토부의 아들 이시다 단조노추 유죠.”

 

  눈에 담는다는 것은 곧 마음에도 담는다는 것이니 아마쿠사미코토는 아이를 외면하려 했다. 눈에 담기지 않으면 마음에도 담기지 않을 테니 아마쿠사미코토는 아이의 얼굴에 늘어가는 상처를 외면하며 하루후사와 나눴던 와카만을 종일 떠올렸다. 그렇게 여러 날이 지난 어느 날, 아마쿠사미코토는 아이의 얼굴에 전보다 더 깊이 파인 상처가 있는 것을 보고 말았다. 어디서 무엇으로 어떻게 맞은 것인지 얼굴의 살점이 떨어져나간 자리에 피가 굳은 상처를 보는 아마쿠사미코토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아무리 아이를 마음에 담고 싶지 않다 해도 어린아이에게 생긴 저 정도의 상처를 외면할 수는 없었다.

 

  “너희 인간들은 참 잔인하다.”

 

  그날 밤, 아마쿠사미코토는 잠든 아이의 상처를 몰래 치료해주었다. 손바닥으로 상처를 한 번 쓸자 곧 상처가 아마쿠사미코토의 얼굴로 옮아왔다. 잠시 동안 고통을 참아낸 아마쿠사미코토는 상처가 완전히 사라지자 으윽, 하는 소리를 내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이제 보니 무엇으로 맞은 것이 아니라 칼이나 낫 같은 것으로 살점을 조금씩 파낸 것 같았다. 아마쿠사미코토는 자신도 모르게 주먹으로 제단을 세게 내리쳤다. 아무리 얼굴에 죄인의 낙인이 찍힌 히닌이라 하나 아직 어린아이가 아니던가. 아니, 어린아이이기 이전에 같은 사람이 아니던가. 그런데 어찌 이리 잔인할 수 있단 말인가.

 

  “조만간 그것들을 손봐야 하나.”

 

  근처의 마을에 사는 인간들을 떠올리며 아마쿠사미코토는 이를 으득, 갈았다. 본래, 신은 인간사에 깊이 개입해서는 안 된다고, 그것이 세상의 질서라고 아마츠카미들이 귀가 따갑도록 말을 했지만 그런 것 따위가 무슨 상관이랴. 당장 눈앞에서 이런 일이 벌이지고 있는데. 하지만 검을 챙겨들던 아마쿠사미코토는 곧 생각을 바꾸고 제단 위에 드러누웠다. 신이 인간사에 깊이 개입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는 것도 금지되어 있는 것이지만, 무엇보다 아이는 하루후사가 아니었다. 하루후사의 일이 아닌 일에 이토록 분노하는 자신을 이해할 수 없어 아마쿠사미코토는 그대로 눈을 감았다.

 

  “하루후사.”

 

  눈을 감으며 아마쿠사미코토는 하루후사의 이름을 불렀다. 자신과 함께 가레산스이식 정원을 바라보며 와카를 나누던 그의 모습이 떠올라 아마쿠사미코토는 주르륵 눈물을 흘렸다. 이제는 보고 싶어도 볼 수 없게 된 그의 모습이, 만지고 싶어도 만질 수 없게 된 그의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려 도저히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아마쿠사미코토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신관들이 쓰던 집에서 신관들의 옷을 한 벌 꺼내와 아이의 옆에 개켜놓았다. 하얀 고소데에 붉은색 히토에, 하얀 우치기누, 하얀 카리기누, 하얀 하카마를 차례로 개켜놓으며 아마쿠사미코토는 연신 눈물을 훔쳤다.

 

  “아버지.”

 

  한참을 울며 옷을 개켜놓다 돌아서는데 아이의 목소리가 아마쿠사미코토의 발목을 잡았다. 아마쿠사미코토는 뒤를 돌아보았다. 잠이 든 아이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아버지, 저예요. 저라고요. 아버지 아들 유죠에요. 아버지의 하나뿐인 아들 이시다 단조노추 유죠라고요.”

 

  꿈에서 아버지를 만나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꿈에서 아버지가 히닌이 된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일까. 아이는 무언가를 붙잡으려는 듯이 연신 허공에 손을 내저으며 아버지를 불렀다.

 

  “아버지, 왜 저를 못 알아보시는 거예요? 네? 왜 저를 못 알아보세요?”

  “…….”

  “아버지, 저 맞아요. 아버지 아들 이시다 단조노추 유죠 맞아요. 그러니까 저를 좀 봐주세요, 네? 아버지. 아버지.”

 

  아마쿠사미코토는 자신도 모르게 아이의 손을 잡아주었다. 아무리 원수인 마사토부라 하더라도 이 아이에게만은 좋은 아버지였으리라. 이 모순을 어찌 세상의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생각하며 아마쿠사미코토는 마치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듯 가만히 아이의 얼굴을 내려다보다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나도 이따금 하루후사의 꿈을 꾼다. 너의 아버지가 그 사람을 죽이던 날의 꿈이지. 나를 도망시키던 모습이 그 사람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그러니 나는 그 사람이 어떻게 죽었는지도 모른다. 그 사람이 전투 중 죽은 것인지, 아니면 자살한 것인지조차 모른다. 최소한 그것만이라도 알고 싶은데.”

  “아버지.”

  “아느냐?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나를 처음으로 받아들여준 사람을, 내 삶의 모든 것을, 내 삶의 모든 의미를, 내가 살아가는 이유를 앗아간 게 너의 아버지다. 그런데 그런 원수의 아들인 네가 왜 하루후사 그 사람을 닮은 것이냐?”

  “아버지. 아버지.”

  “제발 그런 눈으로 나를 보지 마라. 그 사람을 닮은 눈으로 나를 보지 마라.”

  “아버지, 가지 마세요.”

  “그 사람을 잃고 단 하루도 마음이 찢어지지 않은 날이 없다. 그 사람이 살아달라고 해서, 기억해달라고 해서 살아 있는 것일 뿐, 나는 지금 살아 있어도 살아 있는 게 아니다. 아느냐?”

  “아버지.”

  “어떨 때는 차라리 누군가가 나를 죽여줬으면 좋겠다. 그 사람이 없는 세상 따위, 내가 살아갈 이유가 없으니까.”

  “…….”

  “하지만 막상 누군가 나를 죽이려 하면 나도 모르게 최선을 다해 싸우게 된다. 왜인 줄 아느냐? 그가 살아달라고 해서다. 그가 기억해달라고 해서다.”

  “…….”

  “그러니 내 삶은 그 사람의 장례식이다. 내가 그 사람의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서 살아 있는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다. 그러니 제발 그런 눈으로 나를 보지 마라!”

 

  아마쿠사미코토의 목소리가 점점 격해졌다. 아마쿠사미코토는 마침내 절규하듯 온몸으로 소리치며 손으로 바닥을 움켜쥐었다. 그때였다. 항상 억눌러 오던 슬픔이 터져 나온 아마쿠사미코토를 아이의 작은 손이 감싸 안은 것은.

 

  폐사당 우물가에서

  신에게 춤을 바치며

  사랑을 보냈네

 

  초록빛 나뭇가지 높이높이 흔들며

  하늘 위로 사랑을 보냈네

 

  신의 음악소리에 맞춰

  나의 사랑은 하늘 위로 올라가고

  초록빛 나뭇가지 높이높이 흔드는

  신에게 바치는 춤사위가 무르익어감에

  나의 사랑은 내 눈에서 서서히 멀어졌네

 

  하늘 위로 사랑을 보내려니

  어느새 신의 음악도 들리지 않고

  초록빛 나뭇가지도 흔들 수 없어

  신에게 춤을 바칠 수 없었지만

  초록빛 나뭇가지 다시 흔들며

  신에게 춤을 바쳤네

 

  신의 음악소리는 끊겼지만

  나의 사랑은 하늘 위로 올라가

  초록빛 나뭇가지 든 손이 떨려와

  신에게 춤을 바칠 수 없었지만

  나의 사랑은 내 눈에서 서서히 멀어져

  어느새 하늘 위로 올라간

  나의 사랑은 내 눈에서 보이지 않았네

 

  잘가요,

  나의 사랑

  잘가요

  다시는 내게 돌아오지 마요

  그대가 내게 돌아오면

  나는 그대를 보내지 못할 테니……

 

  아이가 부르는 노래를 듣던 아마쿠사미코토는 아이의 품에 안겨 미진한 울음을 토해냈다. 아이가 자신의 존재를 느끼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아이가 부르는 노래에 기대어 울고 싶었다.

 

  “고맙다, 유죠.”

 

  울음을 토해내며 아마쿠사미코토는 처음으로 아이의 이름을 불렀다. 이 노래가 자신을 위한 것이든, 아니면 하루후사를 위한 진혼곡이든 유일하게 자신을 울게 하는 노래라는 것이 마음에 사무쳐 고마움이 저절로 우러난 까닭이었다.

 

 ※

 

  다음날 밤, 아마쿠사미코토는 또다시 신을 베었다. 아니, 정확히는 인간들 사이에서 신불(神 佛)로 여겨지던 하찮은 요괴 하나를 베었다. 다이텐구라고 했던가. 술이라도 한 잔 걸친 듯 붉은 얼굴에 서양인처럼 높은 코를 한 요괴의 모습은 참으로 기괴해서 웬만한 이들은 보는 것만으로도 위압감이 느껴질 지경이었다.

 

  “나는 다이텐구 나리하리라고 하오. 그대의 이름은 무엇이오?”

  “요괴 주제에 건방하기 그지없구나. 나는 타카마기하라(천상계)의 전쟁신 아마쿠사미코토다.”

 

  요괴가 깃털부채를 부치자 곧 사방에서 불길이 일어나 아마쿠사미코토를 향해 다가왔다. 도대체 무슨 수를 쓰는 것인지 금세 주위의 공기마저 사라져 아마쿠사미코토는 숨을 쉴 수 없었다.

 

  “제길!”

 

  아마쿠사미코토는 정신이 혼미해져 가는 와중에도 검을 휘둘러 허공을 내리그었다. 숨을 쉴 수 없었던 것은 결계가 만든 허상이었던 것인지 곧 불길이 아까보다 더 어마어마한 기세로 아마쿠사미코토를 덮쳐왔다. 그러나 아마쿠사미코토는 수많은 권능을 지닌 천상계의 신이었다. 검을 몇 번 아래에서 위로, 위에서 아래로 내리그어 푸른 검광을 뿜어내 물로 바꾸어 불길을 제압한 아마쿠사미코토의 검이 곧 요괴의 몸을 향해 일직선으로 내리꽂혔다. 요괴의 머리에서 배꼽까지를 단숨에 가른 아마쿠사미코토는 하, 하고 비웃는 듯한 미소를 지으며 요괴의 몸을 찢고 또 찢었다. 어제 하루후사를 위해 울어서일까. 평소보다 더 잔인해진, 그리고 필요 이상으로 잔인해진 자신의 모습에 아마쿠사미코토는 그만 하하하, 하고 큰소리로 웃고 말았다.

 

  “하루후사, 보고 있나? 보고 있냐고. 당신이 없는 지금 내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죽은 자는 말이 없다 했던가. 결계가 쳐진 신사 근처의 숲 속에는 아마쿠사미코토의 슬픈 중얼거림과 스쳐지나가는 바람소리만이 들릴 뿐이었다.

 

  “나 말이다. 살아 있어도 살아 있는 것 같지가 않다.”

  “…….”

  “솔직히 나도 내가 왜 살아 있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당신이 살아달라고 했으니까, 기억해달라고 했으니까 살고는 있지만 글쎄. 그것 말고는 왜 살아 있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

  “하루후사, 이럴 때는 내가 신인 것이 정말 싫다. 아나? 아냐고. 내가 신이 아니었다면, 내가 인간이었다면 당신을 따라 죽을 수도 있었을 테고, 다시 태어나 연인이나 부부의 연을 맺기를 바랄 수도 있었을 텐데.”

  “…….”

  “하지만 나는 신이라서 죽을 수가 없다. 그리고 설령, 죽는다 해도 그것은 곧 소멸이니 다시 태어나 당신을 만나기를 바랄 수도 없다.”

  “…….”

  “참 잔인하다. 당신 말이다. 내게 참 잔인하다. 내게 너무 잔인하다. 내 삶을 당신의 장례식으로 만들다니 정말 잔인하다. 당신이 생각해도 그렇지 않나?”

 

  한동안 혼자 넋두리를 늘어놓던 아마쿠사미코토는 숲을 나와 한없이 걷고 또 걸었다. 피 묻은 칼을 들고 붉은 얼룩이 잘 드러나지 않는 검정색 고소데를 입은 아마쿠사미코토는 어느 강가 앞에 이르렀다. 강물에는 붉은 등을 밝힌 놀잇배가 여러 척 떠 있었고, 그중 가장 화려한 배에는 비단으로 만든 승복을 입은 젊은 승려 하나가 화려하게 치장한 유녀들에게 둘러싸여 술잔을 받고 있었다.

 

  “역겹구나.”

 

  아마쿠사미코토는 승려의 행동을 역겹다 여기면서도 사공을 불러 그의 배를 향해 다가갔다. 이렇게 손에 피를 묻힌 날에는 누군가와 몸을 섞지 않으면 견딜 수 없었다.

 

  “하아.”

 

  아마쿠사미코토는 한숨을 내쉬었다. 누군가가 그랬던가. 성애(性 愛)와 죽음은 한끝 차이라고. 그러니 누군가를 죽이고 나면 누군가와 몸을 섞고 싶어 견딜 수 없고, 누군가와 몸을 섞고 나면 누군가를 죽이고 싶어 견딜 수 없으니 그 얼마나 슬프고도 아름다운 일이냐고. 또 그야말로 인간이, 아니, 모든 존재가 추구해야할 궁극적인 방향이 아니겠느냐고. 그러나 아마쿠사미코토가 손에 피를 묻히고 나서 누군가와 몸을 섞는 것은 굳이 그런 이유 때문은 아니었다. 아마쿠사미코토는 누군가를 죽이고 나서 또다른 누군가와 몸을 섞을 때마다 하루후사와의 첫 만남과 그와의 정사가 떠올라 모든 것을 잊을 수 있었다.

 

  “지옥의 지붕 위에서 꽃구경을 하고 있구나.”

 

  아마쿠사미코토의 아련한 목소리에 승려와 유녀들이 고개를 돌렸다. 달빛이 밝게 쏟아져 내리며 아마쿠사미코토의 하얀 얼굴과 붉은 입술, 그리고 붉은 상사화가 수놓인 검정색 고소데와 아무런 무늬가 없는 검정색 머리끈을 비추었다. 승려가 자신의 아름다운 얼굴에 정신을 빼앗긴 것을 안 아마쿠사미코토는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달빛이 이울면

  달이 내 손에 잡힐 듯 다가오고

  달그림자가 이지러지네

 

  내 마음을 사로잡는 달빛은

  달의 환영일까

  달의 그림자일까

 

  아마쿠사미코토는 나기소데(끝이 둥근 소매)를 펄럭이며 춤을 췄다. 하루후사가 죽은 날부터 남자의 옷을 벗고 여자의 옷을 입은 까닭에 그녀의 모습은 더욱더 아름다워 보였다. 펄럭이는 화려한 옷소매와 머리끈, 그리고 손에 들린 칼날이 발하는 은빛 섬광은 그녀가 이 세상 사람이 아님을 알려주듯이 달빛 아래에서 화려하게 빛을 발했다. 이윽고 승려가 입을 열었다.

 

  “놀랄 만큼 아름다운 지옥이로구나.”

  “산 사람도 빠질 만큼이니까요.”

 

  두 사람은 와카를 한 수씩 나누며 눈빛을 교환했다. 이윽고 유녀들이 배에서 내리자 승려가 아마쿠사미코토를 향해 화려한 비단부채를 내밀었다. 아마쿠사미코토는 승려가 내민 부채를 잡고 뱃전 위로 올랐다.

 

  “참으로 월하가인이로구나.”

 

  승려가 아마쿠사미코토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입을 맞춰왔다. 아마쿠사미코토는 승려의 입 속에 혀를 얽어 넣으며 그를 안고 비단 보료 위로 누웠다.

 

  “나는 엔랴쿠지의 케이안이라고 한다. 너의 이름은 무엇이냐?”

  “하룻밤 운우에 이름을 알 필요는 없지 않나.”

 

  말을 마치며 아마쿠사미코토는 고소데를 묶고 있는 호소오비(폭이 좁은 오비)를 스스로 풀어헤쳤다. 오비를 풀어헤치고 고소데를 차례차례 벗는 모습에 끓어오르는 욕정을 더 이상 참지 못하겠는지 승려가 그대로 자신의 옷을 벗고 아마쿠사미코토의 몸 안에 자신의 몸을 밀어 넣었다.

 

  “하. 꽤 급하기도 하구나.”

 

  이리 급하게 굴면 상대가 아무리 신이어도 힘들 수밖에 없는 법이거늘 잠자리 배려 따위는 배우지 못한 남자가 아닌가. 아마쿠사미코토는 승려의 거친 몸놀림을 받아내려 애쓰며 들숨날숨을 번갈아 내뱉었다. 달빛 아래에서 하얀 나신으로 하루후사가 아닌 다른 이의 몸을 받아 안으며 아마쿠사미코토는 눈을 감고 소리 없는 눈물을 흘렸다. 이것은 모두 하루후사가 잔인하게 자신을 떠난 탓이었다.

 
작가의 말
 

 당신의 장례식을 치를 수 없어 살아 있는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습니다.... 하루후사의 장례식이 된 아마쿠사미코토의 삶에, 그리고 마음에 유죠가 서서히 들어오기 시작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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