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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나의 자카르타
작가 : 히타히타
작품등록일 : 2019.9.2

도망치듯 떠나온 그곳에서 마법이 시작된다.

 
다행이야, 여기라서
작성일 : 19-10-19 09:45     조회 : 282     추천 : 0     분량 : 4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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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우산을 잘 사용하지 않는다.

 비가 오면 아무데서나 비를 피하고, 비가 그쳐야 움직인다.

 굳이 빗속을 걸어야 하는 행인들을 위해 우산을 씌워주는 맨발의 아이들이 곳곳에 대기하고 있다.

 나는 한 아이에게 얼마냐고 물었다.

 

 “뜨르스라(알아서 주세요).”

 

 내가 다시 캐묻자 가까운 곳은 2천 루피(200원), 멀면 5천 루피(500원)라고 했다.

 어차피 기사 노빨이 대기하고 있어서 우산을 쓸 일은 없었다.

 나는 아이와 좀 더 얘기하고 싶었을 뿐이다.

 아이는 저녁까지 여기서 일하면 하루에 5만 루피(5천원)까지 벌 수 있다고 말했다.

 나는 깜짝 놀라는 표정을 지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 올려 주었다.

 

 식당으로 돌아올 때 나는 곳곳이 물에 잠긴 도로를 보았다.

 모든 고가도로와 굴다리 밑에 오토바이들이 줄지어 비를 피하고 있었다.

 오토바이들은 빗줄기가 가늘어질 때 움직이고 굵어지면 다시 굴다리 속으로 들어간다.

 오토바이 운전자들이 내뿜는 담배연기가 굴다리 위로, 빗줄기를 뚫고 피어올랐다.

 

 돌담은 손님 한 명 없이 텅텅 비었다.

 맞은 편 치킨 집은 이 빗속에도 손님을 꽤 많이 받고 있었다.

 나는 치킨집을 향해 중얼거렸다.

 

 “많이 파세요.”

 

 직원들 모두 힘이 빠진 모습이었다.

 디디는 집과 골목이 물어 잠겨 퇴근할 때 들어갈 수 없을지 모른다고 걱정했다.

 나는 직원들을 일찍 퇴근시켜야겠다고 생각했다.

 

 놀랍게도 리리가 쉬는 날인데 출근했다.

 그것도 몸살감기에 걸려 열이 펄펄 끓는데도 엉금엉금 기다시피 현관문을 열고 들어왔다.

 

 “장하다 리리. 근데 왜 왔어?”

 “오늘 쇼핑몰에서 이루씨 공연이 있어요.”

 

 리리가 카운터 앞에 털썩 주저앉아 숨을 몰아쉬었다.

 통통한 볼에 열꽃이 피어 있었다.

 

 “멋지다 리리. 근데 공연도 좋지만 먼저 살아야 하지 않겠어? 돌아가.”

 “안 돼요. 공연 때까지 기다릴 데가 없어서 여기로 왔어요. 조금 있다가 갈 거예요.”

 

 리리는 5월에 예정된 슈퍼주니어 공연을 위해 돈을 모으고 있었다.

 티켓 값이 70만 루피(7만원)이니 인도네시아 서민에겐 엄청난 돈이지만, 리리는 규현을 볼 수 있으면 집문서라도 들고 갈 여자다.

 그런 리리가 돌담 바로 옆에서 열리는 이루의 공연을 놓칠 리 없다.

 이루 역시 인도네시아에서는 슈주 못지않은 인기를 누리고 있었다.

 

 리리의 얘기를 듣고 나니 나도 호기심이 일었다.

 외국에 몇 달이라도 살면 한국 연예인 뒷모습이라도 보고 싶어지는 법이다.

 게다가 돌담은 파리만 날리고 있었다.

 

 나는 빗속을 뚫고 쇼핑몰로 갔다.

 아직 공연 시간이 아니어서 로비에 무대만 설치돼 있었다.

 플래카드를 읽어보니 이루 공연은 새로 들어오는 의류 브랜드의 홍보 행사였다.

 

 쇼핑몰은 한산했다.

 그냥 돌아가기도 멋쩍어 의류 숍으로 들어갔다.

 이 옷 저 옷 건성으로 구경하고 있는데 노란 양복 재킷을 입은 사내가 눈에 들어왔다.

 

 뿌리인다에 저런 요란한 재킷을 입고 돌아다니는 사람은 없었다.

 나는 남자의 뒷모습을 유심히 보았다.

 풍성한 머리에 왁스를 바른 남자는 이리저리 고개를 돌리더니 가죽패션 코너 앞에 섰다.

 그가 점퍼를 들추며 몸을 틀자 옆얼굴이 보였다.

 

 태진아였다.

 패션숍의 노란 조명에 비친 그의 얼굴은 TV보다 더 보기 좋았다.

 

 한국에서 나는 연예인에 관심이 없었다.

 인기를 끄는 여자 아이돌 그룹 멤버의 이름을 하나도 외우지 못했다.

 서울이었다면 태진아가 옆에서 말을 걸어와도 외면하고 지나쳤을 것이다.

 그러나 이곳은 자카르타였다.

 나는 카운터에서 펜을 빌리고 종이를 찾기 시작했다.

 사인 받을 종이라곤 입구에 쌓여 있는 전단지밖에 없었다.

 

 “태진아 선생님. 팬입니다. 사인 좀 해주세요.”

 

 태진아가 나를 흘낏 봤다.

 나는 전단지를 두 손으로 공손히 들고, 신의 부름을 받는 어린 사제처럼 기다렸다.

 

 “교민이세요?”

 “네. 근처에 삽니다. 만나 뵙게 돼서 영광입니다.”

 

 태진아가 사인을 하고 돌아섰다.

 그가 뒤돌아보지 않는데도 나는 연신 허리를 굽히고 쇼핑몰을 나섰다.

 

 “리리, 사인 받아왔어!”

 

 나는 전단지를 흔들며 돌담으로 들어왔다.

 감기약을 먹던 리리가 벌떡 일어섰다.

 

 “이루씨 사인이요?”

 

 리리의 입에서 알약이 튀어 나왔다.

 리리는 바닥에 떨어진 약을 주워 꿀꺽 삼키고 다시 물었다.

 

 “정말 이루씨 사인을 받았어요?”

 “아니. 태진아.”

 

 리리가 다 죽어가는 표정으로 돌아갔다.

 전단지를 받으려고 올린 팔이 힘없이 떨어졌다.

 

 “태진아가 누군데요?”

 “이루 아빠야. 더 유명한 가수라고.”

 “나이가 몇 살인데요?”

 “글쎄, 환갑은 넘었을까 싶네.”

 “아두...”

 “직접 보니까 미남이야. 나이 든 미남.”

 “아두...”

 

 리리가 한숨을 쉬었다.

 나는 그제야 태진아가 한국에서만 유명한 가수라는 사실을 떠올렸다.

 리리는 내가 내민 전단지를 받으려 하지도 않았다.

 

 “공연이 언제야? 이루는 오지도 않았던데.”

 “30분 뒤에요.”

 “이렇게 비가 오는데 사람들이 많이 올까?”

 “난리가 날 거예요.”

 

 20분 뒤 리리가 공연장에 갈 채비를 했다.

 줄리와 디디가 리리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카운터에 서 있는 꺽다리 캐셔 나스리도 리리를 부러워하는 눈치였다.

 

 공연에 관심 없는 건 인드라뿐이었다.

 그는 주방 배식구 앞에 앉아 돌담 창문 밖에 펼쳐진 잿빛 하늘을 보고 있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가끔 인상을 찌푸리거나 미소를 지었다.

 

 “다들 가자.”

 “어디요?”

 “공연 보러 가자고. 손님도 없는데 뭘.”

 

 나는 핸드폰으로 기사 노빨을 불렀다.

 홀 직원들이 식당차에 올라탔다.

 인드라는 혼자 가게를 지켜야 하는데도 미소만 짓고 있었다.

 

 리리의 말대로 쇼핑몰 로비에 난장판이 벌어졌다.

 20분 전만 해도 보이지 않던 색색의 풍선이 로비 곳곳에 걸렸다.

 천장에서 이루의 전신사진이 천천히 내려왔다.

 

 소녀 팬들이 줄줄이 들어왔다.

 그들은 의류 숍 직원들이 나눠주는 풍선을 흔들며 공연장 앞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기 싸움을 벌였다.

 인도네시아 최대 방송국 <꼼빠스TV> 카메라까지 등장했다.

 고작 의류 브랜드 홍보 이벤트에 기자들까지 몰려온 걸 보니 이루의 인기가 실감됐다.

 

 홀 직원들은 어느새 사라졌다.

 주위를 둘러보니 소녀 팬들 틈에 끼어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리리는 양손에 풍선을 들고 맨 앞자리로 나아가려고 기를 썼다.

 감기 기운이 날아가 버린 모양이었다.

 

 마침내 이루의 벤이 도착했다.

 뒷자리의 소녀 팬들이 괴성을 지르며 현관으로 달려 나갔다.

 벤이 열리고 이루가 나타나자 소란은 더 커졌다.

 경호원들은 밀려드는 소녀들을 막느라 진땀을 흘렸다.

 이루가 무대로 올라가는 동안 카메라 플래시가 수없이 터지고, 괴성은 더 커지고, 풍선은 거대한 물결을 만들었다.

 

 나는 2층으로 올라갔다.

 더 이상 소녀들에 휩쓸리며 로비에 서 있을 자신이 없었다.

 나는 2층 난간에 기대 로비의 공연을 내려다보았다.

 

 기자회견이 시작됐다.

 이루는 기자들의 질문에 유창한 영어로 답했다.

 태진아처럼 실물이 더 잘생긴 남자였다.

 체격도 건장해서 긴팔 티셔츠 사이로 드러난 팔뚝과 가슴 근육이 단단했다.

 

 이루가 회견을 마치고 팝송을 불렀다.

 정신없이 노래를 듣고 있는데 옆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줄리였다.

 그녀도 나처럼 난간에 팔꿈치를 괴고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공연 안 봐?”

 “여기가 더 잘 보여요.”

 

 우리는 함께 이루의 미성을 들었다.

 1층에 깔린 소녀 팬들은 전부 멍한 표정이었다.

 그들 중에서 간신히 리리의 얼굴을 찾아냈는데, 그렇게 행복한 얼굴을 전엔 본 적이 없었다.

 

 “리리가 먼 나라에 가 있군.”

 “미스뜨르. 우리가 이러고 있어도 돼요?”

 “그럼 뭘 어떻게 해?”

 “가게가 망하게 생겼는데 싸워야죠.”

 

 나는 난간에서 팔을 떼 기지개를 켰다.

 며칠째 비만 보다 보니 몸이 나른했다.

 

 “기적 같은 일이 생길지도 몰라.”

 “기적은 없어요.”

 “누가 알아? 갑자기 모든 일이 잘 풀릴지.”

 “우린 내일부터 할인도 하고 이벤트도 해야 돼요.”

 “그만 하자.”

 “그만 못 해요. 우린 싸워야 된다고요.”

 “얘길 그만 하자고. 이 노래 다 들을 때까지만.”

 

 이루가 ‘까만 안경’을 한국어로 불렀다.

 놀랍게도 소녀들이 떼창을 했다.

 소녀들의 발음이 너무 정확해 한국 공연장에 온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나는 눈을 감고 노래를 들었다.

 

 ‘까만 안경을 써요. 아주 까만 밤인데 말이죠. 앞이 보이지 않아도 괜찮아요.’

 

 나는 눈을 떴다.

 줄리도 눈을 감은 채 노래를 듣고 있었다.

 머리칼처럼 검고 윤기 나는 속눈썹이 가늘게 떨렸다.

 

 “줄리, 이 노래 좋아해?”

 “별로요.”

 “난 지금부터 좋아하기로 했어.”

 

 인도네시아에 오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가한 생각을 할 때가 아니지만, 그렇지만, 그런 생각이 자꾸 들었다.

 어떻게 싸워야 할진 모른다.

 하지만 싸우자고 말해주는 사람들이 내 옆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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