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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심장이 가출했다
작가 : 미애202
작품등록일 : 2019.10.2

새로운 도전을 위해 제주로 날라온 한서준은 도착한 그날 미친여자 빙의도 서슴치 않는 똘끼 충만한 유하을을 만나게 된다. 그런데 지지않고 따박따박 대꾸하는 계집애가 자꾸 생각이 난다. 또 시건방 제대로 장착한 놈이 자꾸 시비를 걸어대는 통에 미워 죽겠는데 자꾸 신경이 쓰인다. 그렇게 야구의 이응도 모르는 여자와 한평생 야구만 하며 살아온 야구선수가 제대로 붙었다!! (lollolaemi@naver.com)

 
네 생각이 났어
작성일 : 19-10-18 10:40     조회 : 248     추천 : 0     분량 : 50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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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신경이 쓰이네.”

 

 달아오른 얼굴로 하을이 퉁명스레 묻자 서준은 옅은 미소를 띤 얼굴로 툭 내뱉었다.

 

 이제 신경이 쓰이네. 이제 신경이 쓰이네.

 

 신경이 쓰이네. 신경이 쓰이네.

 

 그 말에 메아리처럼 들려왔다. 귓가에 맴도는 소리를 애써 무시하며 하을은 서준의 눈을 피했다.

 

 “어떻게 하지.”

 

 자신에게 닿는 서준의 눈길에 하을은 서준의 눈을 맞추지 못하고 중얼거렸다.

 

 “나한테 잠시 기대봐.”

 

 그런 하을을 올려보며 서준은 부드럽게 말했다. 그 말이 전에 없이 세상 다정할 수 없었다.

 

 “....싫어.”

 “그래야 내가 널 여기 침대에 앉히지. 난 일어서고.”

 

 그래도 하을이 버티고 뻣뻣하게 서있자 참다못한 서준은 하을을 한 팔로 감싸 안아 침대에 앉혔다. 다시금 서준의 체온이 느껴졌다. 일어선 서준이 바닥에 떨어진 목발을 집어 침대와 떨어진 벽에 세워 두었다. 하을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그. 거...이리 줘.”

 

 침대에 앉은 하을은 시선 둘 곳을 찾지 못하다 결국 서준과 눈이 마주쳤다.

 

 “가려고?”

 “그럼?”

 

 그럼 여기서 뭘 할 거냐. 샤워라도 시켜 주랴. 그거 19금이다. 너랑 나랑 절대 할 수 없는.

 

 하을은 정색하며 눈을 크게 떴다. 여전히 자신을 쳐다보는 서준의 눈길이 신경이 쓰였다.

 

 “볼일 다 끝났잖아.”

 “누구 볼일? 네 볼일?”

 “아니. 뭐, 해달라는 거 다해줬으니.”

 

 여전히 하을이 서준과 시선을 마주치지 못하며 중얼거리듯 말했다.

 

 “볼일 끝났지 뭐.”

 “네 볼 일은 끝났는지 모르겠지만, 내 볼 일은 아직 안 끝났다.”

 

 서준은 한 손으로 임시로 채우고 있던 반깁스를 풀더니 셔츠를 풀어헤친 채 하을이 앉아 있는 침대 앞으로 다가왔다.

 

 “이것도 마저 벗겨줘.”

 

 등을 보이며 서준이 돌아섰다. .

 

 이거 벗기면 19금인데. 나는 왜 지금 이 개나리가 하란 데로 하고 있는 지 모르겠네. 여긴 어디? 나는 누구?

 

 방으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밖에 없었다. 빨리 네 볼일 끝내 주고 돌아가리라 맘 먹었다. 말없이 서준을 올려보던 하을이 그렇게 마음을 다 잡았다.

 

 그리고는 하을이 천천히 셔츠의 반소매 끝을 양 손가락으로 잡아 내리자 서준은 어깨를 뒤로 젖혀 양팔을 살며시 옷 밖으로 빼냈다. 오른팔을 뺀 서준이 옆으로 돌아서자 하을은 다친 왼팔을 양손으로 잡아 셔츠 밖으로 꺼냈다. 얇은 붕대를 감고 있는 서준의 팔이 드러났다. 서준의 벗은 상체도.

 

 등판이 태평양보다도 더 넓었다. 얼굴이 작아서 잘 몰랐는데 벗겨놓고 보니 아주 그냥 상체의 자잘한 근육들이 화가 나있었다. 병원에 있는 내내 이러기도 싶지 않은데 하을은 밀려드는 민망함도 잊은 채 개나리가 병실에서 한팔로 남몰래 푸쉬업이라도 하나보다 라며 생각했다.

 

 “됐지? 이제 저거 줘.”

 

 정신을 차린 하을은 목발을 턱으로 가리키며 손을 뻗었다.

 

 “내 볼 일은 아직 안 끝났어.”

 

 서준은 중얼거리며 갈아입을 옷을 들고 욕실로 걸어갔다. 그러면서 하을의 목발을 더 먼 곳으로 이동시켰다.

 

 “또 뭘 시키려고.”

 

 서준의 뒷모습을 보며 하을은 괜히 미간을 좁히며 중얼거렸다. 그러나 곧 좁히고 있던 미간이 풀어졌다. 욕실로 향하는 서준의 호리호리한 상체가 너무 예뻤기 때문이다. 잠시 뒤 욕실에서 서준의 샤워하는 소리가 들려오자 또다시 밀려오는 민망함에 하을은 어두운 병실을 두리번거렸다. 침대 위 블랙 슈트 재킷과 아까 서준이 들고 있던 블랙 타이가 눈에 들어왔다.

 

 누가 돌아가셨나.

 

 잠시 뒤 환자복을 갈아입은 서준은 욕실 밖으로 나왔다.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서준과 눈을 맞췄다.

 

 “이제 줘.”

 

 표정 없이 하을은 목발을 가리켰다. 서준이 말없이 팔꿈치 보호대를 차곤 팔걸이를 목에 걸었다. 그리곤 의자를 끌어다 뒤집어 침대에 걸터앉은 하을 앞에 앉았다. 등받이위에 멀쩡한 팔을 올리더니 멍하니 그 위에 턱을 갖다 대며 하을을 물끄러미 올려봤다. 지친 표정이었다. 슬프기도 하고.

 

 “뭐하는 거야? 불이라도 좀 켜던가.”

 “.......”

 

 하을의 말에 아랑곳 않고 서준은 말없이 하을을 올려보았다. 그래서 물어봐야 할 것 같았다.

 

 “어딜.... 다녀온 거야?”

 

 계속되는 민망함에 하을은 뜸을 들이며 물었다.

 

 “나 지금 좀 힘든데 위로 좀 해줘라.”

 

 서준은 하을을 올려다보며 담담하게 말했다. 지치고 슬픈 표정과 상반되게.

 

 “위로? 누가....돌아가신 거야?”

 

 대답대신 서준은 눈을 내리깔곤 고개를 끄덕였다. 서준의 흔들리는 눈빛에 하을의 마음이 이상하게 쓰려왔다.

 

 “어떻게....해줘야 하는데?”

 

 하을은 쓰려오는 마음을 감추며 나직이 물었다

 

 “그냥 가만히 이렇게 옆에 있어줄래?”

 

 낮은 목소리로 말하며 서준은 하을을 다시 물끄러미 올려봤다.

 

 “알았어. 그런데 그만 쳐다봐.”

 

 병실의 온도가 후끈하고 달아오른 듯 했다. 하을이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있잖아.”

 

 그런 하을을 올려보며 서준이 입을 뗐다.

 

 “그냥... 네 생각이 났어.”

 

 이건 또 무슨 소린가요. 신경이 쓰인 것도 모자라 생각이 났다니. 이 개나리가 뭘 잘못 먹었나.

 

 “안 도망갈 거니까 저건 여기 가져다줘.”

 

 들릴 듯 말듯 말하는 서준의 말을 못 들은 척 하을은 목발을 향해 턱을 살짝 들었다.

 

 “.......”

 “저것이 옆에 없으면 불안해. 내가 의지하는 거야. 그러니 가져다줘.”

 

 불안한 듯 하을의 목소리가 살짝 떨리자 서준은 하을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왜 자꾸 쳐다봐?”

 

 하을은 애써 떨리는 목소리를 감추며 물었다.

 

 “네 생각이 났다니까.”

 

 낮게 말하는 서준의 목소리도 떨려왔다.

 

 “됐고, 가져다줘.”

 “넌, 내가 옆에 있는데도 불안해?”

 

 하을이 서준의 시선을 피하며 중얼거리자 서준은 나직이 물었다.

 

 “.......”

 “나한테....한번 의지해봐.”

 

 대답 없는 하을을 바라보며 서준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무...슨... 뜻이야?”

 

 하을은 애써 담담한척 물었다.

 

 “내가 있는데 뭐가 불안해?”

 “전에도 말했지만 네 존재가 날 더 불안하게 해.”

 

 서준의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에 하을은 당황했다. 떨리는 목소리를 감추며 퉁명스레 받아치자.

 

 “정말 그렇게 생각하냐?”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야? 자꾸 헛소리 할 거면 갈 거야.”

 

 진지하게 서준이 쳐다보자 하을은 앉은 채로 침대 위에 양손을 지탱하며 멀쩡한 발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이틀 전 밤에.”

 

 서준은 뜸을 들이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처음 내게 야구를 가르쳐 주셨던 코치님이 돌아가셨어.”

 

 하을이 멈칫하며 서준을 내려 보았다.

 

 “어제 새벽에 후배 놈이 와서 함께 공항으로 가는 길에 비행기에서... 장례식장에서도.... 슬프고 힘든데... 네 생각이 났어.”

 “........”

 

 눈을 내리깔고 나직이 말하는 서준을 하을은 아무 말 없이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왜 그랬을까?”

 

 서준은 얼굴을 들어 하을을 바라봤다.

 

 “그걸... 왜 나한테 물어?”

 

 당황한 하을은 시선 둘 곳을 찾지 못하고 어두운 방을 두리번거렸다.

 

 “넌 내가 안보였던 오늘.... 내 생각 안 났어?”

 “여기 함께 못 있겠다. 저것 좀 가져다 줘.”

 

 서준이 진지한 표정으로 하을을 쳐다보자 하을은 눈동자를 굴리며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더이상의 말을 차단하려는 듯.

 

 

 * * *

 

 

 “오빠 어디가?”

 

 초등학교 1학년 하을은 웃음기 가득한 반달눈으로 지훈을 쳐다봤다.

 

 “승범이네 갈건데...우리 하을이도 같이 갈래? 서준이도 있을 텐데.”

 

 서준의 얘기에 하을의 얼굴이 붉어졌다. 서준을 두 번째 만났던 그날 옷을 갈아입고 있던 자신의 방문을 벌컥 연 서준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리고는 도망갔더랬지.

 

 “싫어.”

 

 하을은 눈을 가늘게 뜨고 입을 삐쭉 내밀었다.

 

 “왜? 우리 잘생긴 서준이 생각 안나?”

 “내가 왜?”

 

 지훈이 웃으며 묻자 하을은 크게 당황했는지 눈을 크게 떴다. 하을의 표정에 지훈은 의미심장하게 옅은 미소를 지었다.

 

 

 * * *

 

 실은 말이야. 나 그때 네 생각이 났어.

 

 “저것 빨리 이리 줘.”

 

 잠시 생각에 잠겼던 하을은 고개를 가로 젓곤 나직이 말했다.

 

 “갈 거냐?”

 “........”

 

 서준은 자리에서 일어나 하을을 다시 침대에 앉혔다.

 

 “너 왜 그러냐?”

 

 더 이상 못 참겠는지 떨려오는 목소리를 감추며 하을이 물었다.

 

 “네 생각이 났어.”

 “알았어.”

 

 서준의 굳은 목소리에 하을은 목소리를 가다듬고 덤덤하게 답했다.

 

 “그게 답이냐?”

 “그럼 무슨 말을 기대하는 거야?”

 

 서준이 황당함에 피식 웃자 하을은 애써 아무렇지 않은 목소리를 냈다.

 

 “네 생각이 났다고.”

 

 하을을 올려보는 서준의 표정이 다시금 진지했다.

 

 “그럼, 생각이 날수도 있는 거 아니야? 옆방에 원수 같은 여자 생각 날수도 있는 거지. 왜 그렇게 예민하게 반응해?”

 

 하을은 억지스런 웃음을 보이며 서준을 쳐다봤다.

 

 “내가 예민한 거냐?”

 “그럼 네가 날 좋아하기라도 한다는 거야 뭐야?”

 

 여전히 서준의 진지한 표정에 하을은 정색하며 물었다. 자신도 모르게 흘러나온 말에 흠짓 놀랐다.

 

 “아무래도.”

 “아! 됐어. 넌 네 은사님이 돌아가셨다는데 옆방 웬수 생각이나 하고. 돌아가신 은사님이 아시면 속상하시겠다.”

 “........”

 “저거나 이리 줘.”

 

 코치님 생각에 서준은 하을을 말없이 바라보더니 벽 쪽으로 걸어가 목발을 들고 왔다.

 

 내가 그렇게까지 말하는데.

 

 “이게 그렇게 중요해?”

 

 목발타령만 하는 하을을 서준은 원망스러운지 짜증서린 표정으로 쳐다봤다.

 

 “너... 사람이 의지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는 게 얼마나 안도감이 드는지 모르지? 이거 하나면 지금 난 지구 끝이라도 갈수 있는 심정이야. 알아?”

 

 사뭇 진지하게 말한 하을은 목발을 짚으며 병실을 서둘러 나갔다.

 

 

 * * *

 

 

 “안녕하세요.”

 

 다음날, 목발에 의지한 채 복도 끝 창밖을 보고 서있는 하을에게 누군가 다가왔다. 기억을 더듬으려 하을의 미간이 좁혀졌다. 그리고 이내 기억을 해내고선.

 

 “아네...안녕하세요.”

 

 하을은 성진을 보고 눈을 크게 떴다. 그리고 어색하게 미소 지었다.

 

 “서준이 보러 온 김에 하을 씨가 보이시 길래.”

 

 성진은 선한 웃음을 지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아아..네.”

 “그런데 이 녀석 병실에 없네요. 아마 재활하러 갔나 봐요.”

 

 멋쩍은 듯 하을이 대답하자 성진은 함박웃음을 지었다.

 

 “그런가 보네요.”

 “답답하지 않으세요?”

 

 그리고는 다시 창밖으로 고개를 돌리려는데 성진이 하을의 맘을 꿰뚫기라도 한 듯 질문했다.

 

 “네?”

 “아니, 병원에 지내는 게 답답하지 않나 해서요.”

 “답답하죠.”

 

 창밖을 보며 담담하게 말한 하을은 무언가 생각하듯 피식 웃음을 띠곤 다시 덧붙였다.

 

 “그런데 나름 소소한 재미도 있네요.”

 “소소한 재미요?”

 “네, 여기도 사람 사는 공간이에요. 아프고 힘들어도 재미도 있고 웃음도 있고 희망도 있죠.”

 

 하을이 창밖에서 시선을 떼고 성신과 눈을 마주쳤다. 그리고 다시 창밖으로 시선을 돌리며 중얼거리듯 입을 열었다.

 

 “또 모르죠. 어느 누구한테는 설레고 떨리는 사랑도 있을지?”

 
작가의 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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