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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그리고 그 후
작가 : 전Yeah
작품등록일 : 2019.10.7

2014년, 갑작스레 일어난 사태 이 후 인류는 멸망하였다. 그로부터 1년 후, 사태에서 살아남은 이설전은 변해버린 환경과 그것에 적응해가는 자신에게 회의감을 가지면서도 꿋꿋하게 살아가는 자신의 모습에 괴리감을 느끼기 시작하다 우연히 한 여자를 만나게 되는데... 이미 멸망한 세계에서 살아남으려는 자들의 일상을 쓰는 아포칼립스 일상물.

 
07 - 비의 레퀴엠 (1)
작성일 : 19-10-16 21:46     조회 : 214     추천 : 0     분량 : 18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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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뭘 보고 계신 거예요?”

 

  아침 식사를 마치고 옥상에서 설거지를 하던 영혜가 만화책을 들고 누워있는 설전을 향해 질문했다. 총을 자신의 옆에 눕힌 채 만화책을 보던 설전은 영혜를 힐끗 한 번 쳐다보더니 이내 시선을 다시 만화책으로 옮겼다. 무시당한 게 기분 나빴는지 영혜는 볼멘소리를 내며 다시 질문했다.

 

  “뭘 보고 계.시.냐.고.요.”

 

  설전은 대답이 없었다. 그는 그저 자신의 손에 들려진 만화책을 두어 번 흔드는 것으로 그 질문에 대한 반응을 마무리했다. 영혜는 설거지를 멈추고 물기 묻은 손을 옷에 닦은 다음 설전에게 다가갔다. 그녀가 다가오는지 모르는지 그는 여전히 시선을 고정한 채 만화책 삼매경에 빠져있었다.

 

  “만화책 보고 있는 거 아는데 어떤 걸 보시냐고요.”

 

  “흔히들 학교 어디 다니냐, 어디 나왔냐, 하는 거 묻던데 난 그런 쓰잘대기 없는 질문을 왜 하는지 모르겠더라. 말해서 알면 좋은데 말해봤자 모를 거면 왜 물어보는 건지 이해가 안 되니까.”

 

  “그거야 궁금하니까 묻는 것들이죠. 알면 거기에 대해서 이야기 할 수도 있고, 모르면 모르는 대로 아, 그렇구나 하고 넘어가면 그만이니까. 그러니까 무슨 만화보시냐고요. 이번이 세 번째에요.”

 

  “여기까지 왔으면 그냥 만화책 제목 보면 될 것을 왜 끈질기게 내가 직접 말해주길 바라는 건데요, 아가씨?”

 

  말이 끝나자 영혜는 입을 샐쭉 내밀며 못마땅한 듯 설전을 바라보았다. 여기까지 왔음에도 그는 그녀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고 있었다. 결국 포기한 영혜는 설전이 어떤 만화책을 보고 있는지 대답을 기다리지 않기로 했다.

 

  영혜는 설전이 들고 있는 책의 표지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녀는 기겁을 하며 자리에서 두 발 물러섰다. 그녀는 설전을 경멸에 찬 눈초리로 매섭게 쏘아보았다. 그럼에도 충분치 않았는지 상기된 목소리로 그녀는 설전에게 따지듯 물었다.

 

  “뭐.. 뭐.. 뭐에요! 이 상스런 책은?!”

 

  “뭐긴 뭐야, 19금 만화책이지.”

 

  설전이 다시 만화책을 흔들어 보였다. 책의 표지에선 엄청나게 야한 포즈의 여자가 전라로 영혜를 항해 미소를 짓고 있었다.

 

  “왜... 왜 이런 걸 보고 계신 건데요!?”

 

  “어...음...”

 

  영혜의 질문에 선뜻 대답을 하지 못하던 설전은 눈알을 몇 번 굴리더니 다시 만화책을 보면서 대답했다.

 

  “음... 공부?”

 

  “네?”

 

  “공부.”

 

  “무..무슨 공부를 거기서 해요!”

 

  “인간의 번식과 생식활동에 대한 생물학과 사람과 사람의 심리를 면밀히 파헤쳐 나가는 심리학?”

 

  “파렴치해라! 잘도 그런 변명을!”

 

  “왜 그래. 아직 주인공이 상대를 덮치지도 않았어.”

 

  “왜 그걸 덮쳐요!”

 

  “몰라. 여자애의 마음을 내가 어떻게 알아. 남자애가 드럽게 못생겼는데도 덮치려고 하는 거 보면 엄청 좋아했나 보지 뭐.”

 

  “심지어 여자가 남자를 덮치는 만화였어요?!”

 

  “음.. 속마음 말풍선을 보니 어릴 적에 자신을 구해준 소꿉친구의 모습이 이상형이 되어버렸다나. 뚱뚱하고 키 작고 못생겼는데도 오히려 그런 인기 없는 모습에 내심 안도하고 있었나보네. 올, 부럽다.”

 

  “그런 거 부러워하지 마요!”

 

  “응? 어떤 거? 여자애가 이런 못난 남자애 좋아하는 거? 그것도 부럽지만 난 여자애가 남자를 덮치는 것도 부러운데?”

 

  “그러니까 그런 거 부러워하지 말라고요!”

 

  “하긴... 이것도 옛날 같았으면 성범죄였을 테니까. 범죄를 부러워할 순 없지.”

 

  설전이 고개를 끄덕거리며 책을 덮었다. 알 수 없는 감정이 영혜의 가슴 속에서 끓어오르고 있었다. 답답하면서도 낯이 뜨겁고 창피하고 민망한 감정. 감정의 잡탕이 그녀의 가슴에서 끓는지 모르는지 설전은 책 표지를 다시금 보더니 혼자 중얼거렸다.

 

  “공부라... 하긴 안 가르쳐 놓는 것 보다야 나으려나?”

 

  중얼거리던 설전의 관심이 잠시 책에서 멀어지자 순간 영혜가 그 책을 뺏어 들었다. 갑작스레 일어난 일에 설전은 황당하다는 듯 영혜를 바라보았다. 햇빛을 등져서 어두웠지만 어쩐지 그녀의 얼굴은 어느 때보다 더 반짝여 보였다.

 

  “이...이...이런 파렴치한 책은 압수예요! 금지예요!”

 

  “그걸 왜 네가 정해. 내 책인데.”

 

  “아... 아무튼! 전 이런 책 용납 못해요!”

 

  “너무 하는군. 사람의 학구열을 그런 식으로 막아서면 안 돼. 인간은 끊임없이 지식을 탐닉하고 호기심을 연구하고 그걸 이용해 자연을 파괴하면서 살아가는 생명체라고.”

 

  설전의 불평에도 불구하고 영혜는 뜨거워진 얼굴을 뺏은 책으로 부쳐가며 그를 떠나갔다. 그는 그녀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녀는 책으로 얼굴을 부치던 중 자신이 무엇으로 바람을 부치고 있었는지 책을 보고 확인하더니 화들짝 놀라며 책을 등 뒤로 감췄다. 설전이 불평을 중얼거리는 영혜를 향해 말했다.

 

  “그럼 그 책 너 줄 테니까 잠시 나랑 공부 좀 하자.”

 

  그의 말에 영혜는 깜짝 놀라며 손사래를 쳤다.

 

  “무.. 무슨 공부요? 저는 괜찮아요! 그리고 이런 책 필요 없어요!”

 

  “너한테 필요한 거야. 그러니 문구코너에서 화이트보드랑 보드마카 색깔별로 들고 다시 여기로 와라. 대신 설거지는 내가 마무리 해놓을 테니까.”

 

  “아니, 저한테 필요 없다니깐요! 공부도! 이 책도!”

 

  무슨 개소리를 지껄이고 있는 거야 저 여자. 설전은 마음속으로 욕을 한바가지를 쏟아내고 있었지만 겉으론 내색하지 않았다. 그는 뒤통수를 긁적거리며 영혜의 반응을 못마땅해 하고 있을 뿐이었다.

 

  “책 말고 공부 말이다. 공부. 네가 생각하는 그런 공부 말고.”

 

  “네?”

 

  “알아들었으면 빨랑 문구코너 갔다 와.”

 

  설전은 손을 휘저으며 쉬이쉬이 소리를 내더니 영혜가 설거지를 하던 곳으로 걸어갔다. 영혜는 설전에게 뺏은 책을 보더니 얼굴이 빨개지면서 책을 내팽겨 친 다음 2층으로 내려갔다. 책 제목에는 ‘참을 수가 벗어’ 라고 적혀있었다.

 

  영혜가 2층으로 내려간 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화이트보드를 들고 설전 앞에 다시 나타났다. 설전이 잘했다면서 화이트보드를 받아들었지만 그는 순간 표정이 확 굳어버렸다. 영혜는 자신이 가져온 화이트보드가 마음에 퍽 든 모양이지만 설전은 생각이 좀 다른 듯 했다. 결국 설전이 미간을 주무르며 영혜에게 넌지시 말한다.

 

  “화이트보드는 이게 다냐?”

 

  “이쁘죠?”

 

  설전은 영혜가 가져다 준 여아용 화이트보드를 바라보았다. 앉아서 생글생글 웃고 있는 영혜를 바라보던 설전은 시선을 화이트보드로 옮겼다. 공주들이 화이트보드 테두리에 잔뜩 매달려 있었다. 그는 뒷면에 적힌 구구단을 묵묵히 바라보더니 미간을 잔뜩 찡그린 채 다시 영혜에게 물었다.

 

  “이쁘고 나발이고 다른 건 없었...”

 

  “오로라 공주라고 해요. 11명의 공주들과 그 애견이 죽어나가는 스토리로 여아용 국내 애니메이션인데 산뜻하고 충격적인 전개로 어른 아이 할 거 없이 즐겨 시청해서 최고의 인기를 누렸죠.”

 

  “.....”

 

  설전은 묵묵히 메고 있던 총을 화이트보드 옆에 세워놓고 검은색 보드마카의 뚜껑을 열었다. 더 이상 화이트보드에 매달려있는 공주들에 대한 이야기를 더 듣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는 열정정적으로 오로라 공주에 대해 이야기하려는 영혜의 입을 막기 위해 화이트보드를 벽에 기댄 다음 거기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설전의 생각대로 그가 화이트보드에 무언가를 그리기 시작하자 영혜도 입을 다물고 그의 행동을 주시했다. 화이트보드에 사람 하나와 낫잡이 하나가 그려졌다.

 

  설전은 자신이 그린 그림을 바라보며 뿌듯해 하더니 영혜를 바라보며 이것이 무엇인거 같으냐고 질문했다. 그녀는 사람과 괴물 아니냐고 대답하자 설전은 다시 그림을 바라보더니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영혜가 알아먹게 그린 것에 대해 만족한 듯 보인다.

 

  “맞아. 한쪽은 사람이고 다른 한쪽은 괴물이지. 우리가 상대하고 우리를 잡아먹고 감염시키는 괴물들.”

 

  그는 어느새 준비했는지 작은 쇠막대기를 들더니 화이트보드에 그려진 괴물들을 향해 동그라미를 쳤다.

 

  “너는 괴물에 대해 얼마만큼 알고 있지?”

 

  설전의 질문에 영혜는 당혹스러워 했다. 괴물에 대해 알고 있냐고? 궁금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알고 있을 리 없었다. 그제야 그녀는 설전이 말한 공부라는 것이 괴물에 대한 공부라는 걸 알아차렸다.

 

  “음... 사태에서 발생한 괴생명체 아닌가요? 사람을 감염시키고?”

 

  “맞아. 사태 때 발생한 괴생명체이고 사람을 감염시키지. 근데 중요한 건 이 괴물들에게도 특징이 있다는 것이다.”

 

  “특징이요?”

 

  그는 쇠막대기로 낫잡이를 가리켰다.

 

  “그래, 특징. 이 녀석들의 특이한 점. 약점, 강점, 종류, 행동양식 같은 것들 말이다.”

 

  영혜는 머리가 멍했다. 그냥 괴물들이 사람을 감염시키고 그 감염시킨 사람이 괴물이 된다. 그것만 알고 있었다. 그런데 괴물의 특징? 생각해 본 적 없었다. 그렇지 않은가? 괴물이 그냥 괴물이지 무슨 특징을 발견하려고 하겠는가. 더군다나 사람을 공격해오는 괴물을 언제 연구하고 누가 연구하고자 하겠는가.

 

  “모... 모르겠는데요.”

 

  “그러니 가르쳐 준다는 거다. 물론 이게 정확한 건지는 몰라. 신뢰성은 부족하고 객관적 근거도 거의 없지만 그래도 내가 경험한 것을 토대로 한 거니 너에게도 도움이 될 거다. 하나라도 적에 관해서 알아 두는 게 살 확률을 높이는 거 아니겠냐?”

 

  그의 말에 영혜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영혜에게서 공부에 대한 의지를 받아들인 설전은 본격적으로 괴물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일단 괴물의 공격성과 목적에 대해 이야기 해보자. 너는 여태까지 괴물과 만나면서 뭔가 이상하단 걸 못 느꼈니?”

 

  “이상한 거요? 음...생김새?”

 

  순진무구한 영혜의 대답에 설전은 잠시 멍한 표정을 지었지만 다시 자아를 되찾은 다음 말을 이어 나갔다.

 

  “괴물에게 공격당해도 감염당한 사람은 따로 있고 먹히는 사람은 따로 있잖아.”

 

  설전의 말에 영혜는 그제야 아 하고 짧은 감탄사를 내뱉었다.

 

  “그 이유는 아무래도 녀석들의 목적과 방어에서 나오는 듯하다.”

 

  "목적과 방어?"

 

  중요한 말이라 생각이 들자 영혜는 자기도 모르게 설전이 한 말을 따라했다. 영혜의 수업태도가 의외로 좋자 설전이 안도감을 느끼며 설명을 이어갔다.

 

  “그럼, 여기서 목적이란 과연 뭘까?”

 

  “목적이라면... 감염?”

 

  “감염. 맞아. 바로 감염이지.”

 

  설전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게 놈들의 목적이다. 지구상의 생명체가 번식을 하듯 이 녀석들은 인간을 통해 감염 개체수를 늘리려 하는 거지.”

 

  “아....”

 

  영혜는 말을 하지 못했다. 괴물에게 목적이 있다니... 물론, 이건 내 추측일 뿐이지만 그렇다고 치고 넘어가보자고. 설전이 말을 덧붙인 다음 말을 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괴물에게 죽는 사람이 생긴다. 감염이 목적인 녀석들이 공격성을 보이는 거야. 그 이유가 뭘까?”

 

  “방어라고 했으니... 생명에 위협을 가하는 적에 대한 보호 반응인건가요?”

 

  “그래, 이 녀석들은 감염을 최초의 목적으로 하지만 반대로 자신들의 목숨에 대한 보호 반응도 가지고 있지. 그렇기 때문에 위협을 가하는 순간 최초의 목적은 사라지고 보호반응이 발동해서 위협대상을 제거하려고 하지. 그런데 그 말은 말이야, 반대로 말하자면.”

 

  설전이 낫잡이 그림을 향해 쇠막대기를 여러 번 두드렸다.

 

  “이 녀석들은 지능을 가지고 있다는 거다. 적에 대한 위협은 본능만으로는 알아차리기 힘들지. 이 녀석들은 자신들에게 가하는 위협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을 정도의 지능을 가지고 있다는 소리다.”

 

  설전이 말을 마치자 영혜는 충격에 빠졌다. 괴물이 지능을 가지고 있다고? 보통 좀비물에 나오는 좀비들은 그저 본능적으로 사람들을 공격하는 것처럼 묘사되어 왔다. 그런데 이 괴물들은 그런 좀비들과 틀리게 지능을 가지고 있다고? 맙소사.

 

  “그 증거로 이 녀석들은 사냥하기 쉽도록 무리를 지어 다니기도 하지. 그리고 사냥 이후에 감염체가 생기면 그 감염체를 무리에 넣어 다니는 걸 목격할 수 있었다. 마치 동물 같지?”

 

  설전의 말에도 영혜는 충격에 빠진 채 쉽게 아직 현실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설전은 그런 그녀를 무시한 채 설명을 계속 이어갔다.

 

  “허면 여기서 또 궁금한 점이 발생하지. 왜 죽은 사람이 발생할까?”

 

  “죽은 사람이요?”

 

  충격에서 벗어나기 시작한 영혜의 질문에 설전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보통 감염이라 한다면 좀비 같은 걸 떠올리는 게 상식이잖아. 시체가 움직이는 좀비. 좀비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돌아다니는 인간들. 좀비에게 먹히면 그 시체나 사람도 좀비가 되는 것이 일종의 클리셰이자 암묵의 룰이잖아. 근데 이놈들에게 죽은 사람은 그냥 죽어. 괴물이 되지 않은 채 그냥 죽어버리지. 즉, 놈들은 시체를 괴물로 만들 수는 없어.”

 

  “에...? 그래요?”

 

  “그것뿐만이 아니야. 넌 괴물들을 볼 때 뭔가 이질적인 걸 못 느꼈냐?”

 

  “그냥 생긴 게 이질적이잖아요... 게다가 괴물을 보면 도망치기 바빠서...”

 

  설전은 이 여자애가 한 때 장학금까지 노릴 정도의 수재라는 말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본인이 장학금을 탈 정도로 똑똑했다고 했는데 도대체 이 멍청스러움은 뭐지. 순진무구한 강아지와 대화하는 느낌이야. 설전은 애써 마음을 진정시키고 이야기를 진행했다.

 

  “괴물들의 모습은 인간이 변한 모습으로만 이루어져있지.”

 

  “그게 왜요?”

 

  “이 말뜻이 뭔지 모르겠냐? 이 괴물들은 다른 동물들을 숙주로 안 삼는다는 거다.”

 

  “네?”

 

  “이 괴물들은 다른 동물들을 감염시키려고 한 것을 본 적이 없어. 그리고 괴물들의 생김새는 대체로 인간이 변형된 모습이었지. 그렇다면 그게 무엇을 의미할까? 그 해답은 다른 동물들은 이 괴물에게 감염이 안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잘 생각해봐. 괴물들 중 동물의 모습을 한 괴물이 있었니?”

 

  영혜는 기억을 헤집어 보았다. 그리고 소름이 돋았다. 놀랍게도 설전의 말 그대로였다. 적어도 영혜가 봐온 괴물들 중에 동물이 변한 모습은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오히려 사람이 동물 같은 모습으로 변한 모습만 있었을 뿐이다.

 

  “이 놈들은 인간에게만 반응하고 인간에게만 달려들고 있다는 거다.”

 

  헛기침을 두어 번 내뱉은 후 말은 계속 이어졌다.

 

  “그렇다면 녀석들은 어떻게 인간을 감염시킬까?”

 

  설전은 쇠막대기를 들어 낫잡이의 등을 가리켰다.

 

  “녀석들은 몸에 돋아난 촉수를 이용해 감염을 시도한다. 촉수는 몸의 어느 부분이든 꽂기만 하면 감염을 시킬 수 있는 듯하다. 촉수에서 어떤 작용이 일어나 인간을 감염시키고 인간이 괴물로 변이하는지는 아직 몰라. 연구를 해 본 것도 아니고 직접 맞아볼 수도 없으니까. 그리고 일단 촉수에 꽂히면 그 사람은 끝났다고 봐야한다. 촉수에 맞은 순간 그건 이제 사람이 아닌 거야. 바로 OUT. 감염체 완성인 거지.”

 

  쇠막대기가 사람과 낫잡이 사이를 왔다 갔다 했다. 영혜가 사람 그림에서 낫잡이 그림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렇다면 이 괴물들은 어떻게 제압해야 할까?”

 

  막대기가 낫잡이의 몸통을 가리킨다.

 

  “일단 몸통을 쏘는 건 굉장히 무다무다한 지거리다. 이 괴물들은 맷집도 장난이 아닌데다가 몸에 큰 상해를 입는다고 해도 어느 정도 움직일 수 있을 정도의 터프함을 자랑하지. 특히나 놈들의 재생력은 굉장히 뛰어나다. 몸을 갈갈이 찢는다고 해도 하루 정도 지나면 몸이 원상복구가 돼서 다시 우리를 공격하려 들지.”

 

  “그럼 어떻게 쓰러뜨려야 하죠?”

 

  막대기가 설전의 머리를 향한다.

 

  “여기.”

 

  “머리?”

 

  “그래. 머리다. 놈들은 몸의 어느 부위든 다 도륙을 내도 머리만 있으면 재생이 완료되지만 머리, 뇌를 날려버리면 괴물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아. 마치 본체를 파괴시킨 컴퓨터 같다고 할까?”

 

  “그럼 일단 싸움에 임할 땐 머리만 노리고 싸워야겠네요.”

 

  “일단은 그게 최선이긴 하지. 하지만 그리 쉬운 것도 아니야. 머리를 공격해도 괴물의 뇌가 아직 제 기능을 하고 있으면 괴물은 움직이니까.”

 

  “머리를 공격해도 놈들이 움직인다고요?”

 

  “뇌기능을 완전히 정지시키지 못하면 녀석들은 계속 살아서 움직여. 그러니 머리를 노리기 힘들다면 다리나 척추부위를 공격해서 움직임을 둔하게 만드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지. 상처를 입은 곳이 재생은 하지만 그렇다고 멀쩡하진 않거든.”

 

  “그렇게 뇌를 쏘면 어떻게 되나요? 죽나요?”

 

  “어. 죽어. 죽은 감염체들은 가루 같은 거로 바스라지면서 사라지지. 물론 괴물마다 시간차가 있긴 하지만. 어떤 건 죽자마자 곧 사라지는 것도 있지만 어떤 녀석은 한 달 내도록 썩지 않은 채 그대로 방치된 적도 있었거든.”

 

  “네? 가루요? 가루로 변한다고요?”

 

  “응. 너 설마 괴물이 죽는 거 한 번도 못 봤냐?”

 

  “네... 도망가기 바빴다니까요. 싸움도 제가 안하고 다른 사람들이 다 해서...”

 

  설전이 영혜를 한심한 눈초리로 쳐다보았다. 영혜는 설전을 의식했는지 고개를 숙인 채 그의 시선을 회피했다. 왠지 이 여자는 머리를 날려도 잘 살아서 돌아다닐 거 같다, 설전은 영혜를 바라보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대충 괴물의 공격성, 목적, 약점 등을 파악해 봤지?”

 

  설전이 막대기로 낫잡이 그림 주변을 동그라미 쳤다. 영혜가 고개를 끄덕거리자 설전이 말을 이었다.

 

  “자, 그럼 이제 이 괴물들의 종류를 알아볼까?”

 

  화이트보드에 두 가지의 그림이 더 그려졌다. 하나는 네 발로 기는 동물 형체에 등과 목에 갈고리 같은 게 돋아 있었고 다른 하나는 목이 없고 어깨와 얼굴이 하나로 이어진 기괴한 모습의 사람 그림이었다. 설전은 막대기로 낫잡이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 데O 스페이스의 슬래셔처럼 생긴 놈을 나는 낫잡이라고 부른다. 일반적으로 가장 많이 발견되는 개체이지.”

 

  “에...데드... 뭐요? 슬러시?”

 

  “...사실 슬래셔라고 부르려고 했는데 네가 우리 엄빠랑 같은 반응을 보여서 쉽게 이해 가기 위해 낫잡이라고 부르는 거야. 낫잡이라고 불러.”

 

  “아하... 손이나 등에 낫 같은 갈고리가 달려있어서 그렇게 부르는 건가요?”

 

  “그렇지. 이놈들의 특징은 손이나 등에서 튀어나오는 낫모양의 갈고리로 공격한다는 거다.”

 

  설전은 막대기로 갈고리에 동그라미를 치더니 옆의 그림으로 막대기를 옮기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그 옆에 있는 놈은 네가 며칠 전 본 괴물이다. 스O크래프트 게임에 나오는 저글링이라는 유닛과 흡사해서 저글링이라고 부르고 있지. 이 녀석의 특징이라면 낫잡이보다 더 무서운 건데 그건 바로 속도라는 점이다. 이 녀석은 순간 적으로 자전거보다 더 빠른 속도를 내며 달려든다. 순간적인 속도는 자동차와 맞먹는다고 봐도 돼. 엄청난 속도로 상대를 덮치기 때문에 이 녀석과 마주치면 되도록 넓은 지역에서 싸우지 말고 밀폐된 공간으로 유도해서 싸우는 게 이득이야. 그리고 공격할 때는 낫잡이와 마찬가지로 등에 돋아난 갈고리로 덤비지. 이 녀석들의 손은 앞발 개념인데다 신속하게 움직이기 위해 변화한 건지 낫잡이와 달리 손에 갈고리가 돋아 있지 않아.”

 

  막대기가 그림의 앞발과 등에 난 갈고리를 한 번 씩 가리키더니 이윽고 다음 그림으로 이동했다.

 

  “이 놈은 그때 너랑 같이 온 인육사냥꾼들이 저글링에 의해 감염 되서 변이된 괴물이다. 떡대가 장난 아니지?”

 

  질문을 받은 영혜는 그림을 보더니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 놈은 자미라라고 부른다. 울트라맨에 나오는 괴물 자미라와 비슷하게 생겨먹어서 그렇게 붙였지. 사실 가장 흔하게 볼 수 있으면서도 가장 무서운 놈이라면 바로 이 놈이다.”

 

  설전이 혀를 한번 차더니 말을 이었다.

 

  “자미라의 특징은 무지막지한 방어력과 완력이라 볼 수 있지. 변이한 피부는 총알이 뚫리지 않을 정도로 강력하고 덩치는 일반 사람의 2배 가까이 커진다. 거기다 완력도 장난 아니게 강해져서 한 번 휘두르면 웬만한 집 한 채는 자미라 한 마리면 아작을 낼 수 있어.”

 

  “그런데 오빠는 용케도 저런 괴물을 두 마리나 이겼다면서요?”

 

  그녀의 말에 설전은 내심 우쭐해졌지만 겉으론 티를 내지 않았다. 영혜는 그 날 어떤 상황이었는지 설전에게 대충은 들어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 괴물의 정체는 오늘 처음 알게 된 것이다. 그러니 영혜 입장에선 그런 괴물을 둘씩이나 처리한 설전이 새삼 다르게 보이는 것도 당연했다.

 

  “운이 좋았던 거야. 처음 아버지와 내가 맞닥뜨렸을 땐 고작 한 마리에 얼마나 애를 먹었다고.”

 

  그는 그렇게 말을 하더니 화이트보드에 그려진 괴물 그림 옆에 그림 세 개를 더 그리기 시작했다. 하나는 사람 둘이 반 씩 이어져 있는 그림, 또 하나는 거대한 얼굴과 몸뚱이에 오징어 다리 같은 게 달려있는 그림, 마지막은 기다란 벌레 다리가 등에서 뻗어 나온 사람모양의 그림이었다.

 

  “각각 샴, 해파리, 거미라고 부른다.”

 

  설전은 쇠막대기를 샴이라고 이름 붙인 괴물의 그림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건 어떻게 생겨먹은 괴물처럼 보이냐?”

 

  “으음... 샴이니까..으음.. 합체?”

 

  갸웃거리는 영혜를 보던 설전은 순간 강아지를 떠올렸지만 이내 고개를 휘저으며 망상을 떨쳐냈다.

 

  “합체는 맞다. 근데 왜 두 명이나 붙어 있을까?”

 

  그의 질문에 영혜는 대답을 하지 못하고 입모양만 우물쭈물하며 옹알거렸다. 설전은 대충 예상하고 있던 반응인 듯 영혜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말을 이었다.

 

  “간단해. 이 샴이란 놈은 감염시킨 대상을 자신의 신체로 사용한다. 즉, 샴은 2명 이상의 사람이 모여져서 만든 합성유기체인 거지.”

 

  합성유기체? 영혜는 그게 맞는 말인지는 잘 몰랐으나 설전이 그냥 저렇게 자신만만하게 말하는 것을 보고 맞는가싶어 그러려니 했다. 사실 설전도 막 방금 지어낸 말이기 때문에 본인도 이 표현이 맞는지도 잘 모르고 있었다.

 

  “이 녀석의 특징이라면 무서운 맷집이다. 녀석의 신체기관은 다른 사람들의 신체를 흡수해서 그것을 자신의 신체로 사용하기 때문에 머리를 노린다고 해도 총으론 한 번에 제압하기 굉장히 힘든 놈이야. 운 좋게 2마리나 3마리 정도가 합쳐져 있으면 그나마 괜찮은데 8명씩 엮어져있으면 골 때리지.”

 

  “하긴 사용할 머리가 많으니 하나 없앤다고 해서 쓰러지거나 그럴 일은 없겠네요.”

 

  “그러니 이놈을 만나면 바로 해야 될 것은 수류탄 투척이거나 차로 들이미는 것뿐이다.”

 

  “약점 같은 건 없나요? 설명만 듣자면 최강인데.”

 

  막대기가 샴의 머리 두 개 사이를 왔다갔다 반복하며 움직였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고 했던가. 이놈은 머리 하나가 모든 신체를 총괄하는 것 같지 않아. 각 감염체의 머리에 의식이 따로 공존하는 듯 보인다. 그러니 의식이 통일 되지 않는 경우도 발생하겠지. 그래서인지 이 녀석의 행동은 산만해. 게다가 신체를 흡수하면 흡수할수록 덩치도 커지기 때문에 속도도 느려지지. 의식이 통일이 안 되는데 느린 속도에 의견충돌까지 더한다고 생각해봐.”

 

  “말 그대로 멍청한 탱커로군요.”

 

  “음...?”

 

  “아니에요, 그 옆에 있는 이상한 아저씨는 뭐죠?”

 

  “이상한 아저씨가 아니라 해피라다.”

 

  “다른 것들은 그나마 인간의 형태를 비슷하게나마 하고 있는데 이건 진짜 인간을 탈피한 모습이네요.”

 

  “그나마 순화해서 그린 거다. 이 녀석의 실체는 직접 경험하게 된다면 그야말로 공포니까.”

 

  “생긴 게 엄청 끔찍한가 봐요.”

 

  영혜의 질문에 설전은 대놓고 역겨운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의 표정에서 영혜는 수많은 괴물들과 싸워왔을 그가 이런 표정까지 지어보일 정도면 도대체 얼마나 끔찍한 걸까 생각했다.

 

  “생긴 것도 끔찍하지만 이 녀석의 존재 의미도 끔찍하지. 일단 여기 보이는 수많은 다리들 보이냐?”

 

  “네. 해저도 아닌데 왜 이렇게 불편하게 변했을까요?”

 

  “다리가 아니다. 전부 촉수다.”

 

  “네?”

 

  “전부 촉수라고.”

 

  “촉... 촉수요?”

 

  “그래. 팔이며 다리며 전부 촉수로 변할 뿐만 아니라 온 몸에서 촉수가 돋아나서 양파 뿌리 같은 형태를 하고 다닌단 말이야. 거기다 이동할 땐 그 촉수를 이용해서 기어 다니지. 이 얼마나 끔찍하고 무시무시한 모습이니. 그러나 단순히 보행수단으로 여겨지는 이 촉수가 실제론 사람을 감염시키기 위한 촉수로도 사용된다니 더욱 끔찍하지.”

 

  “.....”

 

  영혜는 충격을 받은 표정으로 해파리라 불린 그림을 바라보았다. 그림은 꽤나 귀엽게 그러져있다. 그러나 저 귀여운 실체는 다른 괴물들 보다 더욱 끔찍한 모습이었다.

 

  “오로지 감염만을 위해 변형된 녀석이라고 할까? 사실 아까 말한 샴이나 이놈이나 사람을 공격해서 죽이는 그런 능력은 없어. 하지만 어찌 보면 다른 놈들보다 더 끔찍하지. 각각 목적은 다르지만 감염을 위해 존재한다고 볼수 있으니까. 한 쪽은 자신을 위해, 다른 한 쪽은 동료를 늘리기 위해.”

 

  “그럼 저기 있는 저 거미라 불린 괴물도 감염을 목적으로 하는 괴물인가요?”

 

  “아니, 이 녀석은 틀려. 이 녀석은 샴이나 해파리와 달리 그 전 놈들이랑 비슷한 부류지.”

 

  “아하...”

 

  설전의 말에 영혜는 왠지 안심이 되었다. 사람들을 감염시키기 위해서만 존재하는, 그런 괴물이 한 마리 더 있다는 것 자체가 인류에겐 얼마나 악몽인걸까. 저 다리가 전부 촉수라고 한다면 해파리라고 불린 괴물만큼이나 끔찍했을 것이다. 그러나 조금 안심하고 있는 영혜와는 달리 설전의 표정은 이 괴물의 설명차례가 되자 얼굴이 굳어 있었다.

 

  “하지만 현재 나타난다면 가장 위험한 놈은 아마 이놈이 아닐까?”

 

  막대기의 끝이 거미라고 불린 그림을 향해 날아갔다. 막대기의 끝이 둔탁한 소리를 내며 거미의 몸에 부딪혔다.

 

  “이 녀석은 속도가 엄청나. 저글링 보단 느리지만 보통 사람이 전력 질주하는 정도의 속도를 낼 수 있어.”

 

  “저글링처럼 속도로 덮치기 때문에 위험한건가요?”

 

  “...뭐라고 해야 할까. 위험하다는 의미는 저글링과는 좀 달라. 그래, 그때는 나 혼자 좀 멀리 수색을 나갔을 때였지.”

 

  영혜의 질문에 설전은 뜬금없이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너무 멀리 왔다 싶어서 돌아가려는 찰나였어. 괴물이나 사람의 흔적을 찾아보려고 나섰는데 정작 지나가는 고양이나 개조차도 안보이더라. 그래서 한숨을 푹푹 쉬면서 길을 걷고 있는데...”

 

  설전은 잠시 뜸을 들이더니 다음 말을 이었다.

 

  “뭔가 느낌이 이상하더라고. 고요한데 꺼림칙한 적막함. 속을 울리는 위화감. 그리고 그때 난 녀석을 발견한 거야. 이 거미라는 괴물 녀석을.”

 

  막대기가 다시 거미의 그림으로 향한다.

 

  “그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본 거미의 모습이었지. 근데 이 녀석을 처음 발견한 게 어딘 줄 알아?”

 

  당연하게도 설전이 던진 질문의 정답을 영혜가 알리 만무했다. 영혜는 고개를 젓는 것으로 그의 질문에 대한 대답을 대신했다. 설전이 머리 위를 가리키며 말했다.

 

  “내 머리 위. 아파트 3층 높이의 벽에서 발견했어.”

 

  잠시 정적이 흘렀다. 영혜가 이해 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설전은 그 표정의 의미를 잡아내 그녀가 듣고자 하는 말을 해주었다.

 

  “그래. 창문 같은데서 날 보고 있던 게 아니야. 벽에 붙어있었어. 마치 거미처럼. 벌레처럼. 등에 난 다리 같은 걸로 벽에 붙은 채 입에서 촉수를 내밀며 나를 보고 있었지.”

 

  설전이 마른 침을 삼켰다.

 

  “난 바로 반응을 했어. 총을 쐈지만 녀석은 피했지. 그 벽면에서 어떻게 피했을까? 그 답은 바로 다음에 들리던 쿵 하는 뭐가 떨어지는 소리로 알아차렸지.”

 

  막대기가 아래에서 위로 올라갔다 다시 내려온다.

 

  “점프한 거야, 점프. 그냥 총알을 피할 궁여지책으로 떨어진 게 아니라 착지까지 완벽하게 해냈지. 그리고 나에게 엄청난 속도로 달려오더군. 당연히 난 그 놈을 향해 총을 쏴 갈겼어.”

 

  설전은 심각한 표정으로 이야기하고 있었지만 영혜는 왠지 이 이야기가 흥미진진했다. 이래서 사람들이 무용담을 좋아하는구나. 그녀는 경험담이 이렇게 재밌는 줄 미처 몰랐다. 그런 그녀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설전은 그 때를 회상하기에만 바빴다.

 

  “저글링보단 느려. 거리도 있으니 안심하고 뒤로 빠지면서 총을 갈겼지. 거리를 두고 견제하면서 침착하게 제압할 수 있겠구나 싶었는데. 그랬더니 말야. 또 하더라고. 점프를. 총을 갈기고 있는 내 앞에 뛰었어. 그러더니 내 뒤로 착지하는 소리가 들렸지.”

 

  “그.. 그래서요? 결국 설전 오빠는 죽었나요? 빨리 가르쳐주세요! 현기증난단 말이에요!”

 

  “죽긴 뭐가 죽어 이 년아.”

 

  막대기가 영혜의 머리에 부딪힌다. 가볍게 탁 소리가 나더니 영혜가 아포 거리며 울상을 지었다. 사람을 함부로 죽이지 마, 여기 버젓이 살아 있잖아 라며 설전은 영혜의 불평을 미리 멈추었다.

 

  “뒤를 돌아보자마자 촉수가 가늠쇠 너머 내 눈 앞까지 와있더라고. 끔찍한 광경이었어. 나를 향해 혀를 날름거리는 모습처럼 보였으니까. 침착하게 방아쇠를 당겨서 머리를 날렸지. 그걸로 끝. 거미는 움직이지 않게 되었고 난 움직일 수 있어서 집에 무사히 도착! 해피엔딩!”

 

  “에이 시시하다..”

 

  “미안 하군, 살아남아서.”

 

  아쉬워하는 영혜를 향해 설전이 입을 비죽 내밀었다. 못생긴 게 더 못생겨졌네. 영혜는 이 말을 밖으로 내뱉고 싶었지만 참았다.

 

  “하지만 확실히 위험하네요. 그 괴물. 점프에 벽까지 탄다면...”

 

  “그래. 만약 한 마리라도 나타난다면 여긴 위험해.”

 

  설전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영혜는 옥상 문을 바라보았다. 철문임에도 다 찌그러지고 찢어져있어 문이라고 부르기에 너무 무색할 정도였다.

 

  “하지만 옥상 문은 열어 놓잖아요. 괜찮은 거예요?”

 

  “아직 한 마리밖에 발견하지 못했고 옥상이나 야외 주차장을 폐쇄하면 물 공급이나 주변 지형을 알아보는데 차질이 생기니까. 아버지랑 같이 문을 달려고 해봤는데 단단한 철문 같은 거 구하기가 힘들더라. 철물점을 둘러보고는 있는데 사이즈며 규격이며 옥상이나 3층 주차장 문에 달만한 것들은 없어서. 사실, 아버지는 만들고 싶어 하지만 내가 그 재료들을 들고 오는 게 귀찮아.”

 

  얼마 전 목숨과 관련해선 어떤 것도 허투루 보면 안 된다고 말하던 그의 모습이 떠오른 영혜였지만 여기서 태클을 걸면 또 머리를 맞을까봐 그런 소리는 하지 않았다.

 

  “으... 그래도 여긴 안전하다 여기고 있었는데...”

 

  영혜가 실망스런 표정과 억양으로 설전을 바라보았다. 설전은 왠지 마음에 찔렸는지 그녀의 시선을 회피했다. 그는 헛기침을 몇 번 하더니 말했다.

 

  “그럼 이제 불완전 감염체에 대한 설명을 끝내지.”

 

  불완전 감염체? 영혜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불완전 감염체라니. 여태까지 설명한 것이 괴물, 불완전 감염체에 대한 설명이란 건가? 불완전. 그것이 영혜의 기분을 매우 안 좋게 만들고 있었다.

 

  “불완전이요?”

 

  “그래 불완전.”

 

  “불완전이라고요?”

 

  “그럼 불X전이겠냐.”

 

  “그런 저질 농담하고 있는 게 아니잖아요! 불완전이면! 완전 감염체도 있다는 거예요?”

 

  “응.”

 

  영혜는 놀랐다. 완전 감염체는 또 뭐야!

 

  “그게 뭔데요? 이놈들이랑은 차원이 다른 괴물인건가요?”

 

  “음, 차원이 다르긴 하지.”

 

  “어... 어떻게요?”

 

  설전이 막대기로 여태까지 그린 괴물들이 다 안에 들어올 수 있도록 동그라미를 쳤다. 그런 다음 그것만으론 부족했는지 보드마카를 꺼내 아예 괴물들이 다 들어올 수 있도록 동그라미를 그렸다. 동그라미 안에는 괴물, 밖에는 사람이 있었다. 그런데 설전은 그 동그라미에서 화살표를 그렸다. 그 화살표 방향은 사람 그림을 향해 있었다.

 

  “뭐...예요?”

 

  “이게 완전 감염체.”

 

  설전의 막대기가 사람을 가리켰다. 영혜는 그 막대기가 다른 곳으로 움직이길 바랐다. 그러나 그런 영혜의 기대와는 달리 막대기는 사람 그림에서 미동도 하지 않고 있었다.

 

  “네?”

 

  영혜의 반문에 설전이 싸늘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인간의 모습을 한 괴물. 이게 완전 감염체다.”

 

 

  설전이 말을 마친 지 10분이 지났다. 그러나 그동안 누구 하나 다시 입을 여는 이가 없어 영혜와 설전 두 사람 사이에는 정적만이 존재했다. 영혜는 혼란에 빠져있었다.

 

  인간의 모습을 한 괴물이라니? 여태까지 자신을 공격해 왔던 괴물은 언제나 괴물의 모습만을 하고 있었다. 사람의 모습을 한 괴물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인간의 모습을 한 괴물이 있고 그 괴물이 완전 감염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영혜는 머리가 복잡해졌다.

 

  설전도 그런 영혜를 이해한다는 듯 머리가 정리될 때까지 기다려주고 있었다. 그래, 처음엔 믿기지 않겠지. 인간이 괴물로 변한다고 믿고 싶었을 테니까. 나도 괴물을 처음 본 순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으니. 하지만 이게 진실이다. 더러운 현실이자 진실.

 

  “그럼... 괴물이 인간의 형태를 하고 있다는... 거예요?”

 

  긴 침묵을 깨고 영혜가 설전을 바라보며 말했다. 설전은 기다렸다는 듯 영혜의 질문에 바로 대답했다.

 

  “더 정확히는 의태라고 해야 할까.”

 

  “의태요?”

 

  “그래, 의태. 천적의 공격을 피하거나 역으로 먹이를 잡기 위해 특수한 색을 띄는 행동이나 모습.”

 

  설전의 말에 영혜는 머리가 더욱 복잡해졌다.

 

  “의태...라니요?”

 

  “두 가지 의미지. 인간을 손쉽게 사냥하기 위한 모습. 그걸 위한 의태. 그리고 그게 갖는 또 다른 의미는 인간에서 언제든지...”

 

  설전이 사람그림에 화살표를 그었다. 그 화살표의 방향은 괴물들이 들어있는 동그라미로 향했다.

 

  “이 괴물들로 변할 수 있다는 사실.”

 

  영혜의 동공이 커졌다.

 

  “그...그게 무슨...”

 

  “물론 내가 생각하는, 완전한 추측의 영역이며 소설에 불과할지 모르지만, 불완전 감염체는 완전 감염체로 변하지 못한 괴물들. 즉, 인간으로 변하지 못하고 지능조차 없어진 변이에 실패한 괴물들일 거라는 소리야. 그리고 이 인간으로 변할 수 있는 괴물들은 괴물에서 인간, 인간에서 괴물로 변할 수 있는 완전한 존재라는 거지.”

 

  “그럴 수가.”

 

  영혜가 고개를 저었다. 믿을 수 없다. 인간이 괴물로, 괴물이 인간으로 변한다니. 그럴 리 없다고 대답하는 영혜를 향해 설전이 단호하게 말했다.

 

  “실제로 봤다. 괴물의 정체를 말이지.”

 

  설전이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가 내쉰다. 설전의 가슴 속에 응어리진 무언가가 한숨과 함께 튀어나왔지만 영혜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다.

 

  “우리가 이 괴물은 본 게 언제인 줄 아냐? 그 불덩어리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던 날, 그래서 괴물들을 피해 근처 식품점에 몸을 의탁하던 날. 인간인 줄 알고 들여보낸 이 존재가 우리 가족 외에 거기 있던 사람들 전원을 괴물로 만들어 버렸어. 그때 본거야. 진짜 괴물을.”

 

  “.....”

 

  “무슨 뜻인지 알겠어? 우리가 인간인 줄 알았다. 그래서 들여보냈다. 이 말의 의미를.”

 

  “지능. 그것도 지식이 있다는 건가요? 사람들을 속일 수 있을 정도의. 앞에서 설명했던 괴물들과는 전혀 다른.”

 

  “그래.”

 

  누군가가 긍정을 뜻하는 대답이 누군가에게는 절망적으로 들릴 수 있구나. 영혜는 대답을 듣고 그리 생각했다.

 

  “녀석들은 인간의 언어를 사용해. 그리고 인간처럼 보행하고, 인간처럼 행동하지. 사냥하기 쉽게.”

 

  “.....”

 

  “거기다가 감염된 사람의 기억까지 이용할 수 있어.”

 

  “기..억이요?”

 

  “그래. 마치 저장된 뇌의 자료들을 훑어본 것 마냥. 감염된 자신이 누구고 어떤 사람이고 어떻게 살아왔는지 [알게 된다]는 거다. 그리고 그걸 이용해 자신이 어떤 인물이고 어떤 사람이고 어떻게 살아왔는지 [다른 사냥감들에게 어필] 할 수 있는 거지.”

 

  영혜는 여름인데도 불구하고 오싹하게 느껴지는 게 날씨 때문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이건 분명 내 몸에서 나오는 반응이지. 그 정도로 설전의 말은 영혜에게 있어 끔찍하고 무섭게 들려왔다.

 

  “하지만 말했지. 의태라고. 녀석들은 언어를 알고 사람의 행동을 알지만 정작 이게 무슨 의미인지는 잘 모르는 것 같다. 사람이 강아지가 멍멍 짖는 것에 그 울음소리를 파악하고 어떤 상황에 쓰는 울음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는 알지만 영역표시라던가 강아지가 서로가 서로를 향해 짖는 내용은 모르는 것처럼.”

 

  “말의 의미가 어려운데요.”

 

  “내용의 의미는 틀려지지만 간단하게 말해서 앵무새를 떠올려봐. 앵무새는 우리말을 따라하지만 앵무새는 그 말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 채 따라할 뿐이야. 녀석들이 그렇단 거다. 지식과 지능을 이용해 앵무새보다 더 유용하게 따라하지만 녀석들도 타 생명체에 관해서는 문외하다는 뜻이지.”

 

  “즉, 이 완전히 감염된 괴물들은 지식과 지능, 사람의 기억까지 이용해 우리를 감염시키려고 하지만 정작 자신들은 이것들의 의미와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이거네요.”

 

  “그래, 그래서 때론 어색한 행동을 할 때도 있지.”

 

  “예를 들면요?”

 

  설전이 옆에 세워둔 K-2소총을 흔들어 보이며 말했다.

 

  “이 상황에서 어떠한 자기 방어기재도 없이 혼자 돌아다니는 사람이 있을까?”

 

  “미치지 않고서야 그럴 리 없죠.”

 

  “하지만 녀석들은 그걸 잘 이해하지 못해. 총이 위험하다는 건 알고 있고 그것이 위협목적 및 방어수단이 될 수 있다는 것도 인지하지만 정작 자신이 그걸 들고 다녀야 되는 이유까진 생각하지 않는 다는 거지.”

 

  “치밀한 사고까지는 불가능하단건가요?”

 

  “글쎄. 아마 그런 건가?”

 

  “근데 지금까지 한 말... 전부 신뢰할 수 있는 건가요?”

 

  “대체로 내 추측들뿐이지만 신뢰성은 1할 이상이다. 특히 완전 감염체의 경우는 내 상상이 매우 깃들어 있긴 해. 하지만 그러지 않고선 설명이 안 되는 부분도 존재하니까.”

 

  1할이면 거의 신뢰성이 없는 수준 아닌가? 영혜가 실눈을 뜨며 불신의 눈빛으로 설전을 쳐다본다. 설전은 막대기를 내려놓더니 기지개를 폈다. 여름바람이 살랑거리며 그의 몸을 지나쳐갔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제법 구름이 꽤 많아졌다. 하늘이 부끄러운 자신을 감추려는 듯 구름을 긁어모으고 있는 모습 같아 보였다. 그는 그런 하늘을 보며 살짝 입꼬리를 올렸다.

 

  “괴물에 대해선 끝인가요?”

 

  영혜의 질문에 설전의 고개가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왔다. 영혜는 화이트보드와 설전을 번갈아보고 있었다. 그는 고개를 끄덕거리더니 말했다.

 

  “뭐, 대충 내가 알고 있는 선에서는 끝났지. 더 설명할거리가 있던가? 할 거 없으면 그 괴물들 모습 잘 봐두면서 복습하도록 해. 잊어버리지 말고.”

 

  말을 마친 설전은 세워둔 소총을 들더니 자리를 떠나 근처 바닥 위에 널브러졌다. 햇살이 아직 뜨거움에도 그는 신경 쓰지 않는 듯 했다. 영혜는 그렇게 쓰레기처럼 뒹굴거리고 있는 설전을 바라보다 시선을 화이트보드로 옮겼다.

 

  동그라미 밖의 사람. 동그라미 안의 괴물. 그리고 서로가 같다는 표시의 화살표 방향. 영혜는 화이트보드 지우개를 들더니 사람을 지워버리고는 자리를 떴다.

 

  화이트보드 안에는 동그라미에 갇힌 괴물들만 남아있었다.

 

  영혜가 종종걸음으로 자리를 뜨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설전의 자리가 그늘진다. 설전은 하늘을 가린 구름을 바라본다. 검은 빛이 도는 구름. 코에 닿는 습한 냄새가 설전의 마음을 싱숭생숭하게 만든다. 이윽고 그 구름 뒤로 수많은 먹구름들이 몰려오기 시작한다.

 

  “비가... 올려나?”

 

  설전이 자리에서 일어나 총을 집어든다.

 
작가의 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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