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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나의 자카르타
작가 : 히타히타
작품등록일 : 2019.9.2

도망치듯 떠나온 그곳에서 마법이 시작된다.

 
비가 와, 축축히
작성일 : 19-10-16 17:02     조회 : 302     추천 : 0     분량 : 44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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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드라, 알겠어?”

 “아뇨. 미스뜨르가 말하는 맛이 뭔지 잘 모르겠어요.”

 “멸치와 고기 육수가 들어갔어. 그건 알겠지?”

 “예. 물론이죠.”

 “한국 육개장은 그게 끝이야. 근데 여기엔 뭘 더 넣었단 말이야.”

 “더요?”

 “그래 더.”

 

 태평 육개장의 열쇠는 감칠맛이었다.

 뭔가가 그 감칠맛을 극대화시키고 있었다.

 

 인드라는 국물을 계속 먹었다.

 떠먹을 때마다 빈 숟가락을 든 채 한참 생각에 잠겼다.

 인드라의 온정신이 육개장 그릇에 빠져 있었다.

 

 “이제 알겠어?”

 “아뇨.”

 “인도네시아 음식에서 풍기는 냄새가 나. 그게 뭔지는 모르겠어.”

 “인도네시아?”

 “그래.”

 

 인드라가 숟가락을 떨어뜨렸다.

 덜그럭, 숟가락에 얻어맞은 탁자가 울었다.

 인드라가 활짝 웃었다.

 양 볼에 보조개가 옴폭 패었다.

 

 “뭐 좋은 일 있어?”

 “있어요.”

 “뭔데?”

 “이깐이에요.”

 “이깐?”

 “이깐 소스가 들어갔어요. 우리한테는 너무 익숙한 맛이라 미스뜨르가 지적할 때까진 몰랐어요.”

 “그래, 나는 이상하다고 느꼈지만 인드라는 익숙했겠지.”

 

 인도네시아어로 이깐은 생선이란 뜻이다.

 이깐 소스는 생선을 발효시킨 짭조름한 소스다.

 한국의 액젓과 비슷한 맛이지만 비린내는 덜하다.

 감칠맛이 좋기 때문에 인도네시아에선 다양한 음식에 널리 쓰이고 있다.

 태평은 그 이깐 소스를 육개장과 만나게 한 것이다.

 

 콜럼부스의 달걀이랄까.

 단순하면서도 기발한 아이디어였다.

 누가 흔한 인도네시아 이깐 소스를 육개장에 넣으려 하겠는가.

 

 “화교들이 좋아하겠군.”

 “미칠 거예요.”

 

 나는 팔짱을 꼈다.

 이제 인드라에게 엄포를 놓아야 할 시점이었다.

 

 “자, 나한테는 육개장 레시피가 있어. 인드라는 이깐 소스의 맛을 알지. 두 개를 조합할 수 있겠어?”

 “해보죠.”

 “내 레시피가 여기보다 훌륭하다는 건 장담할 수 있어. 한국에서도 인정받는 뛰어난 요리사가 만들었으니까. 인드라는 그걸 가지고 여기보다 훌륭한 육개장을 만들어야 돼.”

 “할 수 있습니다.”

 

 인드라는 자극하는 건 쉬웠다.

 음식에 대한 도전과제를 내놓으면 됐다.

 

 “탕을 해. 대신 잡채와 떡볶이는 국물을 줄여.”

 “문제없어요.”

 

 나는 한숨을 쉬었다.

 저 문제없다는 말이 이번엔 진심인지 알 길이 없었다.

 

 “제발 잡채와 떡볶이에게 국적을 돌려 줘.”

 

 **

 인드라가 만든 육개장은 한동안 열풍을 일으켰다.

 한국 나물을 대체할 재료가 없어 비싼 값에 내놓았지만 손님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소문을 듣고 중앙 자카르타에서 찾아오는 손님도 많았다.

 캐서린은 빨리 투자자를 구해 2호점을 내야 한다고 단언할 지경에 이르렀다.

 

 1월 둘째 주까지 나는 들떠 있었다.

 정신없이 바빴지만 힘든 줄도 몰랐다.

 

 모든 메뉴의 매출이 급증했다

 소갈비, 떡갈비, 돌솥비빔밥이 주메뉴로 중심을 든든히 잡았다.

 아내의 육수에 이깐 소스를 곁들인 육개장과 닭개장이 다크호스로 치고 나왔다.

 방오를 넣은 잡채도 인기 메뉴로 자리 잡았다.

 한국에서는 주로 반찬용으로 먹지만, 여기선 식사용으로 먹기 때문에 양을 늘렸다.

 

 간식용 메뉴들도 선전했다.

 나는 아예 뷔페식 스트릿푸드 코너를 만들어 떡볶이, 회오리 감자, 김말이 튀김 등을 팔았다.

 대부분 자말이 그 코너를 지켰다.

 떡볶이가 가장 많이 팔렸고 김말이 튀김은 호불호가 갈렸다.

 

 아내의 레시피와 인드라의 헌신 덕분이었다.

 누구나 들어가면 망한다고 생각한 허름한 뿌리인다 골목에서 기적이 연출되고 있었다.

 이제는 직원들도 2호점 이야기를 떠들어댔다.

 

 하지만.

 

 셋째 주 첫날 아침이 돼서야 나는 겸손을 되찾았다.

 그날 아침, 나는 캐서린과 현관 앞에 서 있었다.

 치킨 집 개업을 알리는 대형 현수막이 건너편 골목에 걸렸다.

 한국 대형 브랜드의 치킨 집이 뿌리인다의 누추한 루꼬에 입성한 것이다.

 

 한국 치킨집이 문을 연다는 소문은 몇 주 전부터 있었다.

 그 얘기를 듣고 나는 대형 브랜드가 뭘 찾아먹을 게 있다고 여기까지 들어오는지 의아해 했었는데, 며칠 전에야 그 의문이 풀렸다.

 

 “제우스가 또 왔네요.”

 

 캐서린이 중얼거렸다.

 나는 골목 건너편을 노려보았다.

 제우스가 대머리에 흥건한 땀을 닦으며 치킨집 앞에서 누군가와 얘기를 하고 있었다.

 그는 며칠 전부터 이 골목을 뻔질나게 드나들었다.

 

 제우스가 호구를 멋지게 낚은 것이다.

 그는 돌담이 잘된다는 소문이 퍼지자마자 대형 브랜드를 찾아 갔을 것이다..

 덩치 큰 호구를 낚아서 몇 달 전에 낚은 조무래기 호구 옆에 들어앉힌 것이다.

 나는 새삼 제우스의 능력에 탄복했다.

 그는 어수룩한 외모 뒤에 돈만 보면 고속으로 돌아가는 두뇌를 감추고 있었다.

 

 제우스가 우리 쪽을 돌아봤다.

 나는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망설였다.

 제우스는 웃는 쪽을 선택했다.

 땀을 닦던 손수건을 주머니에 넣고 우리에게 씩씩하게 걸어왔다.

 

 “권 사장님, 잘 지내십니까?”

 “예, 덕분에요.”

 “걱정을 많이 했는데 성공하셨군요.”

 “그것도 덕분이죠.”

 

 제우스가 지킨 집을 손으로 가리켰다.

 

 “저 가게가 사장님네 장사에 도움이 될 겁니다. 치킨 손님과 비빔밥 손님은 다르니까요. 오히려 사람들이 더 많이 몰려올 거예요.”

 “아이고, 고맙습니다. 그런데 치킨집에서 왜 떡볶이와 잡채를 팝니까? 좀 있으면 비빔밥도 팔겠는데요?”

 “현지화를 해야 하니까요. 너무 걱정 마십쇼. 그럼 이만.”

 

 제우스는 메뉴 얘기가 나오자 황급히 자리를 떴다.

 나는 손에 든 치킨 집 전단을 다시 읽었다.

 치킨 말고도 한국 길거리 음식 대부분을 취급하고 있었다.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치킨에 밥을 곁들여 먹는다.

 KFC조차 밥을 판다.

 따라서 비빔밥도 곧 메뉴에 추가될 가능성이 컸다.

 나는 전단을 던져버리고 현관문에 기대 팔짱을 꼈다.

 

 “캐서린, 마케팅을 멋지게 하는데?”

 “대기업이니까요.”

 

 곰 인형 탈을 쓴 직원들이 전단과 쿠폰을 나눠주었다.

 새 치킨집은 개업 이벤트로 치킨 값을 한 달 간 30% 할인하고, SNS에 일정 수 이상 게시물을 올리면 공짜로 줬다.

 현관문 위에는 대형 스크린이 설치됐다.

 거기서 한국 치킨이 조리되는 과정과 한국 아이돌이 출연하는 광고 동영상이 흘러나왔다.

 

 “진짜 전쟁이 시작되는 거예요.”

 “지면?”

 “올 여름엔 한국에 계시겠죠.”

 

 캐서린이 출근하기 위해 택시를 탔다.

 나는 가게로 돌아왔다.

 리리가 홀 바닥 청소를 하다가 날 보고 달려 나왔다.

 

 “미스뜨르, 미스뜨르.”

 “왜 그래? 누가 죽었어?”

 “중대 사건이 일어났어요.”

 “뭔데?”

 “아침에 출근하는데 치킨 집 매니저가 날 잡았어요. 저기서요.”

 

 리리가 골목이 굽어지는 건너편을 가리켰다.

 

 “왜 잡았어?”

 “거긴 월급이 얼마냐, 한국 메뉴 얼마나 아냐, 꼬치꼬치 캐물었어요.”

 “그래서 대답해줬어?”

 “물어보는데 대답해야죠.”

 “이런 멋진 리리 같으니라고.”

 “그러고 나서는 치킨집에서 일할 생각 있냐고 물어봤어요. 월급이 더 많대요.”

 

 키친 집 입장에선 그럴 만도 했다.

 한식 메뉴를 아는 직원이 있으면 교육시키는 데 힘이 덜 들 테니까.

 하지만 그건 상도의를 저버리는 짓이었다.

 이 바닥에 그런 게 있다면 말이다.

 

 “그래서 우리 멋진 리리는 거기 갈 거야?”

 “저는 돌담이 더 좋아요. 미스뜨르가 이민호한테 콧수염만 안 그리면요.”

 “알았어. 아침마다 이민호 사진 닦을게.”

 “닦으면 헤져요.”

 

 나는 웃으며 주방으로 향했다.

 리리가 내 등에 대고 소리쳤다.

 

 “미스뜨르! 우리 싸워요!”

 “그럼. 그래야지.”

 

 하지만 싸움은 내가 세상에서 가장 자신 없는 일이었다.

 치킨집이 할인 행사를 하는 동안 돌담의 손님은 반 이상 줄었다.

 게다가 1월 중순부터 집중호우가 쏟아졌다.

 폭우가 심해 손님이 하루에 서너 명에 그치는 날도 있었다.

 그 많던 손님이 하루아침에 사라지는 건 참 신기한 경험이었다.

 

 나는 추락에 대비하지 못했다.

 이상하게도 마음이 편했다.

 중력에 몸을 맡기고 있는 동안에는 중력이 느껴지지 않는다.

 중력에 저항할 때부터 몸이 무거워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나는 무기력하게 손을 놓고 떨어지면서 어느 날 갑자기 기적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만 했다.

 개업하고 몇 주 만에 맛집으로 알려진 그때처럼.

 

 **

 자카르타의 우기가 절정을 지나고 있었다.

 지난밤부터 천둥과 비가 쏟아졌다.

 새벽녘까지 빗줄기는 조금도 가늘어지지 않았고 그 날카롭던 아잔마저 눅눅해졌다.

 

 아침에 나는 창밖으로 물에 잠긴 집과 루꼬와 골목을 보았다.

 도시 인프라가 엉망인 자카르타는 하룻밤의 폭우로도 저지대의 수많은 집들이 물에 잠긴다.

 이제 오후가 되면 저 흙탕물에 잠긴 골목에서 아이들이 물장구를 치며 놀 것이다.

 자카르타 아이들은 저렇게 더러운 물에서 놀아도 아프지 않느냐고 줄리에게 물어본 적 있다.

 

 “가끔은 아파요. 배도 아프고 설사도 하고. 하지만 자카르타엔 놀 곳이 별로 없잖아요.”

 

 줄리가 ‘뿌뿝’(설사, 혹은 대변의 속어)을 발음할 때마다 우스웠다.

 뿌뿝이라니.

 정말 말 그대로 설사 아닌가.

 

 아침을 빵으로 때우고 직원들의 출근을 걱정했다.

 지금쯤 그들의 집 현관에도 물이 찰랑거릴 것이다.

 자카르타 사람들은 우기에 비가 쏟아지면 물이 빠질 때까지 집에 갇혀 지내는데, 하루가 될지 일주일이 될지 하늘만이 안다.

 다행히 주방 보조 자말만 출근할 수 없다고 연락했다.

 

 “괜찮아요. 문제없어요. 내일은 출근할 거에요.”

 

 그는 씩씩하게 말했지만, 내일의 출근은 역시 하늘만이 결정할 것이다.

 나는 비가 그친 틈을 타 장을 보러 갔다.

 시장 문을 나서자 폭우가 다시 시작됐다.

 행인에게 우산을 씌워주고 돈을 받는 아이들이 내게 몰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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