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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에밀리가 연애하지 않는 이유
작가 : 정민
작품등록일 : 2019.10.6

농땡이 하녀, 상식과 권위가 통하지 않는 붉은나무 저택에 입성하다. *표지 커미션 : 꽃 작가님(@flo_ai_wer)

 
수상한 손님맞이 (4)
작성일 : 19-10-15 17:08     조회 : 230     추천 : 0     분량 : 4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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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4 : 수상한 손님맞이

 

 

  상식적으로 새벽에 들이닥칠 리는 없다더니. 크리스토퍼 백작의 예상을 깨고 비비안 공녀는 밤 깊은 4시에 붉은나무 저택을 찾았다. 모두가 살짝 긴장한 와중에, 로크 씨가 그녀를 마중해서 저택 안으로 들였다.

 

  “레이디를 뵙습니다.”

 

  깨어있던 식솔들이 문간에 일렬로 서서 꾸벅 인사했다. 에밀리를 포함해서. 그녀는 다른 이들의 눈치를 보며 슬며시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저도 모르게 헛숨을 들이켰다. 눈앞에는 진정 아름다운 사람이 서있었다.

 

  큰 키에 맞춰 너무 마르지 않은 몸매가 늘씬하게 뻗어있고, 고급스런 외투 아래로 드러난 살결은 희고 고르다. 재빨리 다가가 외투를 벗겨주며, 에밀리는 어쩐지 죄짓는 듯한 기분으로 비비안을 훔쳐보았다. 허리께까지 풍성하게 굽이쳐 흐르는 백금발 고수머리, 거기에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청록색 눈동자가 정제된 보석처럼 빛난다.

 

  문득 에밀리는 기시감을 느꼈다. 저 눈동자는… 그러나 더 생각할 새도 없이 비비안과 눈이 마주쳤고, 비비안은 살풋 웃음을 흘렸다. 에밀리는 저도 모르게 얼굴을 붉혔다. 덕분에 비비안이 ‘귀여워라.’ 중얼거리는 것은 미처 못 듣고.

 

  “짐은 이리 맡겨주십시오. 방으로 안내드리겠습니다.”

  “그 다음에 목욕을 좀 해도 되겠어요?”

  “원하신다면 얼마든지.”

 

  아름답고 기품 있다. 자연스럽게 대접 받고, 또 요구하는 모습까지도. 에밀리는 로크 씨에게 당연하게 이것저것 맡기는 비비안을 보며 상념에 젖었다. 금발에 벽안을 지닌 공작가문 외동딸의 인생이란. 이 세계가 한 권의 소설 안이라면, 저 사람은 분명 주인공 역할이겠지?

 

  “저… 그리고 말씀 낮추십시오.”

  “음, 그건 집사님이 나랑 친해지면 차차.”

 

  비비안이 로크 씨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영 내키지 않는다는 듯 말했다. 하고 싶은 말만 하면서 살아왔을 법한 저 성품도 주인공감이라고 생각하며, 에밀리는 속으로 킥킥 웃었다.

 

  새삼 그녀는 창문에 비친 저를 흘끗 보았다. 하나로 땋아 늘어뜨린 담갈색 머리칼, 흔한 연두색 눈동자… 크지 않은 키에 마른 몸매. 크리스토퍼 백작의 주관을 쏙 빼닮은 아주 멋없고 고리타분한 하녀복. 에밀리는 고개를 홱 돌렸다.

 

  ‘뭐 어때. 주인공은 못해도 주인공 친구 정도는…’

  “야. 빨리 짐 안 들어?”

  “깜짝이야! 아, 알았어요.”

 

  옆에서 가넷이 쿡 찔러서 에밀리는 그제야 허둥지둥 발걸음을 옮겼다. 짐을 건네받으러 가면서 비로소 저 뒤에 우두커니 서있던 수행인의 존재를 알아차렸다. 무심코 올려다보았다가 그와 정면으로 눈이 마주친 에밀리는 흠칫해서 시선을 피했다.

 

  ‘어, 근데 어디선가…’

 

  본 적 있는 잘생김이다. 그러나 ‘본 적 있다’와 ‘잘생겼다’ 중 후자가 에밀리의 시신경을 더 강하게 자극했다.

 

  흑발에 짙은 고동색 눈. 직업 탓인지 적당히 다부진 체격과, 그보다는 조금 날렵해 보이는 얼굴. 거기다 짐을 건네받으며 본, 핏줄 선 손등까지.

 

  “그쪽은 녹스 헌더드. 내 경호원.”

 

  비비안의 목소리가 에밀리의 일방적인 감상을 중단시켰다. 에밀리는 핫, 하고는 고개를 숙였다. 그녀는 다 안다는 표정으로 에밀리에게 싱긋 웃어주고는, 더 이상의 첨언 없이 로크 씨를 따라 계단을 올라갔다.

 

  다른 식솔들과 짐을 나눠든 에밀리도 맨 끝에서 허둥지둥 따라 올라갔다. 어쩐지 저 우아한 여인이 저한테 자주 웃어주는 거 같다는 착각 아닌 착각을 느끼며.

 

 ***

 

  비비안 공녀에게 침실을 안내하고 돌아온 가넷은 고민에 잠겼다. 사실, 그녀는 공작가문쯤 되는 사람이라면 온갖 수행인을 주렁주렁 달고 올 줄 알았다. 그래서 이들을 한 데 몰아넣을 다인실을 비워뒀는데… 뜻밖에도 수행인은 단 한 명이었으며, 로크 씨에게 다음과 같은 귀띔까지 받았다.

 

  “공녀와 짧게 얘기해보니, 저 남자 아버지가 젠트리( : 작위가 없는 상층 계급으로, 귀족과 부르주아 사이. 신분체계가 요동치고 있는 아스타인에서는 그 권위가 예전만 못해졌다.) 출신이라더군. 사정이 있어 공작가문에 매여 있다던데….”

 

  하층 젠트리였대도 대우 받으며 살아왔을 터. 그러니 아무 방에나 함부로 재울 수 없는 노릇이었다. 다인실은 침대가 많아 비좁았고, 일꾼들 자는 공간이라 어둡기도 했다. 가넷은 마땅한 방을 고민했다. 그러다 문득 떠오르는 바가 있어 에밀리에게 손짓했다.

 

  “야, 에밀리.”

  “왜요? …아 잠깐만요. 싫어요. 안 돼요.”

  “뭘 싫대. 니가 집주인이야?”

 

  그리고는 열쇠 가져오라고 까딱 고갯짓을 했다. 에밀리는 절망스러운 표정이 되었다.

 

  가넷이 말하는 건 3년 전까지 붉은나무 저택의 잡동사니 저장고로 쓰이던 방이었다. 본래는 침실이었으나 안주인의 사망 이후 저택에 많은 사람이 필요치 않게 되면서 쭉 비어있었다. 에밀리는 일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을 때부터 이곳을 몇 번 기웃거리더니, 뭐가 그리 마음에 들었는지 사흘에 걸려 청소를 싹 해놓았다.

 

  그 뒤로 에밀리는 거기서 책을 읽고 글을 썼다. 그러니까, 창고에서 몰래 쓰는 소설보다는 좀 더 밝고 합법적인 그런 글들. 저택 식구들도 에밀리의 소소한 취미를 대강은 알기 때문에, 일 없는 날이면 그녀가 밖에서 나대다가 사고를 치고 오느니 거기 처박혀 있는 걸 선호했다. 그렇게 서로에게 평화를 가져다주는 방이었는데…

 

  에밀리는 억울해 죽겠다는 얼굴로 가넷에게 매달렸다.

 

  “그 방은 지켜주기로 했잖아요!”

  “내가 언제? 꼬우면 돈 모아서 방세 내든지!”

  “아아아! 가넷 마르틸라 진짜 싫어!”

 

  떼쓴다고 가넷을 이겨먹을 리 없었다. 결국 에밀리는 녹스에게 제 방을 직접 내어주게 되었다. 아니, 굳이 따지자면 그 방이 애초에 에밀리 것은 아니었지만.

 

  한편 녹스는 두 사람이 실랑이를 하는 동안 가만히 서서 저택을 둘러보고 있었다. 이곳에 처음 들어온 모든 사람이 느꼈듯이 저택 내부는 의외로 넓었다. 하지만 그에게 중요한 것은 과연 여기선 비비안이 며칠이나 변덕 부리지 않고 있을지였다.

 

  ‘조용히 지내다가 떠날 수 있기를.’

 

  그런 생각에 빠져있는 녹스를 향해 에밀리가 뚱하니 고갯짓했다.

 

  “들었지? 나 따라와.”

 

  가넷이 대번에 에밀리의 머리를 쥐어박았다. 그리고는 차분하게 녹스에게 변명했다.

 

  “이 애가 지능이 좀 낮아서요.”

  “…저는 괜찮습니다.”

  “앞으로 얘가 내뱉는 말 절반쯤은 흘려들으시고, 사고를 치거든 무조건 절 부르세요.”

  “아… 네. 새겨듣겠습니다.”

 

  목 긋는 시늉을 한 뒤에야 에밀리는 헛기침을 하고 다시 말했다.

 

  “흠흠. 들었지, 요? 나 따라와요.”

 

  비교적 공손해진 태도에 가넷은 한시름 놓은 표정이 되었고, 녹스는 아까와 크게 달라진 점을 알 수 없었지만 굳이 따져 묻지는 않기로 했다. 조용히 지내다가 떠날 가능성에 대해서도… 재고해보기로 했다.

 

  아무튼 에밀리는 인상을 잔뜩 구긴 채 램프를 들고 앞장섰다. 가넷은 하녀들의 침실로 돌아갔다. 복도에 두 사람의 발소리만 울렸다.

 

  “그런데요.”

 

  뜻밖에도 에밀리가 먼저 말을 걸었다. 제 방을 빼앗아간 주범에게 세상 냉랭할 것 같더니. 묵묵히 뒷말을 기다리는 녹스의 눈치를 한 번 살피고, 그녀는 지나가는 투로 물었다.

 

  “나 아까 본 적 없어요?”

  “…!”

 

  녹스는 저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가, 다시 닫았다. 그리고 대답 대신 침묵했다. 솔직히, 모르는 줄 알았는데. 안일했다고 생각했다.

 

  에밀리가 눈치가 없을지언정 바보는 아니었다. 아무리 그래도 몇 시간 전에 본 남자를 못 알아볼 리 없었다. 그것도 눈에 띄는 미인을.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녀가 긴가민가할 만도 했다.

 

  일단 낮에 본 그 남자는 너무 꽁꽁 싸매고 있었다. 두 눈과 콧대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전체 인상을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게다가 그 눈은 분명 청록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하지만 녹스는 그냥 흔하디흔한 갈색 눈의 사내일 뿐이었다. 머리는 가발을 쓰고 옷은 바꿔 입을 수 있다지만, 눈동자는 무슨 수로?

 

  “오늘 오후라든지, 뒷골목에서라든지, 진짜 없어요?”

 

  녹스는 계속해서 침묵했다. 대답을 기다리던 에밀리는 어쩐지 무안해졌다. 진짜로 아닌가? 아닌가봐. 상황을 무마하기 위해서 그녀는 아무 얘기나 떠들기 시작했다.

 

  “아니, 재수 없는 새끼가 하나 있었거든요.”

  “깡패들한테 날 버리고 튀어가지고.”

  “시비는 지가 다 털어놓고 나보고 뒤처리 하라는 거야 뭐야?”

 

  듣던 녹스가 억울할 정도로 역사를 한껏 왜곡하던 에밀리는 어느새 2층 끝방에 다다랐다. 드디어 방을 빼앗기는 순간인가. 그녀는 아쉬움에 가득 찬 손길로 느릿느릿 열쇠를 끼워 맞췄다.

 

  방문을 열기 직전에, 에밀리는 예고 없이 휙 뒤돌았다. 그 탓에 성큼 들어서려던 녹스의 가슴팍에 얼굴을 부딪쳤다. 뒤로 휘청이는 그녀를 그가 놀라서 붙들었다.

 

  “아. 미안해요.”

  “…….”

  “…혹시 너무 세게 부딪혔다면,”

  “아, 아니에요. 밖에서 잠깐 기다려줄래요? 1시간쯤?”

  “네?”

  “참을성 없긴. 그럼 10분만요.”

 

  녹스는 ‘내뱉는 말 절반쯤 흘려’들으라던 가넷의 말을 상기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에밀리는 녹스를 두고 잽싸게 방 안으로 들어갔다. 휴. 그녀는 몰래 숨을 뱉었다.

 

  방은 아늑하고 정갈했다. 에밀리가 침대와 책걸상에 어질러둔 종이더미 외에는. 에밀리는 그것들을 잽싸게 주워 모으고, 제 물건 몇 개를 함께 챙긴 다음, 마지막으로 작별의 키스를 날린 뒤 녹스에게 말했다.

 

  “이제 들어와도 돼요.”

 

  녹스는 바로 들어와 짐을 풀었다. 그 동안에 에밀리는 방에 남아서 침대의 흐트러진 매무새를 만져주었다. 창틀의 먼지도 좀 털고, 그의 옷가지도…. 그러다가 그가 이제 되었다고 사양하기에, 그녀는 평소의 그녀답게 ‘뭐, 그러면 알아서 하세요.’ 하고 쌩하니 나와 버렸다.

 

  하지만 닫힌 문에 기대서서, 에밀리는 딱 한 가지만을 생각했다.

 

  ‘아까 그 시나몬 향이 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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