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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나의 자카르타
작가 : 히타히타
작품등록일 : 2019.9.2

도망치듯 떠나온 그곳에서 마법이 시작된다.

 
그 말을 놓지 마
작성일 : 19-10-15 08:47     조회 : 303     추천 : 0     분량 : 45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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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말없이 팝콘만 씹어 먹었다.

 줄리의 팝콘까지 다 뺏어먹어 배가 부를 지경에 이르자 영화가 끝났다.

 어쨌든 인류가 구원을 받은 것 같으니 다행이었다.

 

 우리는 영화관을 나섰다.

 그냥 헤어지기도 뭣해서 나는 커피숍에 가자고 했다.

 

 “미스뜨르는 저녁 장사해야 되잖아요.”

 “아직 한참 남았어.”

 

 우리 3층에 있는 로컬 커피숍으로 갔다.

 구정물 맛 커피를 도너츠와 함께 파는 저가 브랜드 ‘제이코’를 제외하면, 인도네시아 로컬 브랜드 커피는 맛이 놀랍도록 좋다.

 자바산 아라비카 종의 품질은 에티오피아에 못지않다.

 나는 왜 인도네시아 사람들이 그 맛있는 로컬 커피숍을 놔두고 스타벅스에 몰려가 북적대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우리는 창가 자리에 앉았다.

 나는 롱 블랙을 시켰고 줄리는 라떼를 시켰다.

 커피 잔 위에 내려앉은 부드러운 크림이 영화 때문에 복잡해진 머리를 달래주었다.

 

 “영화를 보여 달라고 한 건 이유를 만들기 위해서에요.”

 “무슨 이유?”

 “고기를 잘라야 될 이유요. 그땐 너무 겁이 났어요. 곧 재밌는 영화를 본다고 생각하면 덜 겁이 날 것 같았어요.”

 “잘했어.”

 

 구름 사이로 한 줄기 햇살이 비쳐 들었다.

 오랜 만에 보는 우기의 햇살이 창문을 뚫고 우리 테이블 위에 부서졌다.

 햇살을 따라 수많은 먼지들이 춤추었다.

 나는 줄리에게 평소 궁금했던 것을 물었다.

 

 “줄리. 돌담이 맘에 들어?”

 “네. 친구들도 좋아해요.”

 “왜?”

 “돌담은 우리 첫 직장이잖아요. 미스뜨르도 친절하고.”

 

 나는 안도했다.

 외국에서 사업을 할 때 가장 힘든 건 직원을 다루는 일이다.

 현지의 까다로운 법규와 세무는 그 다음 일이다.

 줄리의 말은 직원들이 내게 믿음을 갖고 있다는 뜻으로 들렸다.

 

 “저번에 내가 운 건 잊어줘.”

 

 줄리는 별 거 아니라는 듯 웃었다.

 통통한 귓불과 귀걸이가 흔들렸다.

 

 “슬프면 울어야죠.”

 “나는 나이가 많잖아.”

 “나이가 많아도 울어야 돼요.”

 

 줄리가 입을 다물고 뭔가를 생각했다.

 다시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그게... 도망치는 것보다 나아요.”

 “도망치다니?”

 “슬퍼서 도망치는 거보단 그냥 우는 게 낫다고요.”

 

 나는 롱 블랙을 마셨다.

 산미가 강하지 않고 고소해 한국인들이 좋아할 만 한 맛이었다.

 줄리가 물었다.

 

 “미스뜨르는 인도네시아에 왜 왔어요?”

 “식당 하려고 왔지.”

 “도망쳤어요?”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줄리가 무심하게 창밖을 보며 말을 이었다.

 

 “앞으론 도망치지 마세요.”

 

 그 오후, 햇살에 비친 줄리의 옆모습을 기억한다.

 내 맘이 녹아들던 그 말도 기억한다.

 테이블 위에서 함부로 까불던 먼지의 궤적도 기억한다.

 머그컵을 내려 놓을 때 들리던 작은 소리와 우리의 잔잔한 숨소리도 기억한다.

 

 인도네시아에 살면서 한 순간도 그 말을 놓지 않았다.

 줄리에게 다 그만두자고 소리칠 때조차, 나는 그말을 품고 있었다.

 도망치지 마.

 

 우리는 조용히 앉아 있었다.

 침묵이 어색해 나는 엉뚱한 말을 했다.

 

 “남산.”

 “그게 뭐에요?”

 “남산이 단풍이 예뻐.”

 

 줄리가 다시 웃었다.

 

 헤어질 때 나는 줄리를 1층 식품관으로 데려갔다.

 맨손으로 보내기 싫어 과일이라도 사줄 생각이었다.

 

 식품관을 둘러보다 노란 멜론 앞에서 멈췄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과일이었다.

 샛노란 농구공처럼 생겼는데, 그 하얀 속살은 참외보다 달았다.

 나는 줄리에게 노란 멜론을 하나 건넸다.

 줄리가 또 불평을 시작했다.

 

 “이 무거운 걸 들고 가라고요? 옷 구겨져요.”

 “맛있잖아.”

 “맛없어요. 몰에서 파는 건 비싸기만 하고 맛이 하나도 없어요.”

 “그럼 그걸 황금알이라고 생각해 봐.”

 “황금알이요?”

 “그래. 사장이 영화도 보여주고 황금알도 사준 거야.”

 

 줄리가 멜론을 안고 돌아갔다.

 이날을 위해 고르고 골랐을 진홍색 블라우스에 뜬금없는 노란 멜론을 받치고.

 

 **

 이른 저녁인데 식당이 붐볐다.

 새해 휴일이 끝나자 손님이 끝없이 몰려들었다.

 아침에 캐서린은 이런 추세라면 올해 수익을 남길 것 같다고 말했다.

 식당 사업이란 게 3년 안에 본전을 찾기도 어려운 것인데, 돌담은 쾌속으로 달리고 있었다.

 

 나는 북적대는 테이블을 돌아다녔다.

 한 손님이 갈색 국물에 잠긴 투명한 면을 포크로 건져 먹고 있었다.

 그것이 잡채라는 걸 깨닫는 데 꽤 긴 시간이 걸렸다.

 나는 허겁지겁 주방으로 달려갔다.

 

 “인드라! 잡채에 국물이 너무 많아!”

 

 채소를 자르던 인드라가 고개를 돌렸다.

 나를 보면서도 손을 멈추지 않아 착착착착, 경쾌한 도마소리가 들렸다.

 

 “미스뜨르. 여긴 화교가 많아요. 화교들은 국물을 좋아한다고요.”

 “그렇다고 마음대로 요리를 바꾸면 안 돼.”

 “네. 문제없어요.”

 

 나는 이제 인도네시아인의 말버릇에 속지 않는다.

 문제없다는 말은 자기 일에 참견 말라는 뜻이다.

 나는 주방을 떠나지 않고 인드라가 음식을 만드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돌담의 새 메뉴인 떡볶이 주문이 들어왔다.

 인드라는 부글거리는 들통에서 육수를 듬뿍 떠 프라이팬에 부었다.

 나는 즉시 소리쳤다.

 

 “인드라! 육수가 너무 많아! 그건 떡볶이가 아니라 빨간 떡국이잖아!”

 

 인드라가 그제야 손을 멈췄다.

 내 발음을 알아듣기 위해 인드라는 줄리처럼 미간을 찌푸리는 습관이 생겼다.

 내가 제대로 된 발음을 구사하지 않으면 저 매끈한 이마에 주름이 질 것 같았다.

 

 “미스뜨르는 중국인을 이해하지 못해요.”

 “그래도 이건 한식이야. 국적 없는 음식을 만들 순 없어.”

 

 인드라가 뭔가 말을 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그의 등 뒤에선 새로 뽑은 주방 보조 자말이 설거지를 하며 우리 눈치를 보았다.

 자말은 수마트라섬 람풍에서 요리사가 되기 위해 자바섬으로 건너 왔다.

 그러나 요리에 대한 재능은 줄리보다 한참 떨어졌다.

 싱크대에 빈 식기와 함께 식칼을 집어넣어 인드라를 경악하게 만든 적도 있다.

 자말은 요리사의 기본도 잘 지키지 못했다.

 

 그러나 인드라는 불평하지 않았다.

 주방보조가 어떤 사고를 치든 잘 수습해가며 자기 일을 해냈다.

 그런 점은 높이 살 만 했다.

 인드라는 말 그대로 ‘바른 생활 사나이’였다.

 

 나는 인드라를 물끄러미 보았다.

 인드라는 서자카르타의 타나방에서 태어나, 그 지역 SMK(실업고)에서 회계를 전공했다.

 요리사가 되고 싶어 서자카르타에 있는 중식당 ‘임페리얼 셰프’에서 접시를 닦았다.

 1년 뒤 북자카르타의 중식당 ‘마에스터’에서 채소를 잘랐다.

 그곳에서 지금의 애인을 만났지만 재계약을 받지는 못했다.

 그러던 중 술라웨시에 중식당을 연다는 사장을 만나 난생 처음 비행기를 타고 자바섬을 떠났다.

 술라웨시의 식당이 경영난을 겪자 자카르타로 돌아와 일자리를 구했다.

 

 인드라의 20대는 유랑의 연속이었다.

 그가 한식당의 메인 셰프로 성공할 수 있을까.

 그러려면 저놈의 황소고집을 버려야 했다.

 

 “인드라, 이번엔 네가 양보해.”

 

 인드라가 자바족 특유의 겸손한 미소를 지었다.

 나는 그 미소가 좋았지만 인드라가 승복한 게 아니라는 걸 알았다.

 

 우리는 짜장면 출시를 앞두고 있었다.

 짜장면에 검은 국물이 대접 가득 찰랑거릴 생각을 하면 벌써부터 머리가 아팠다.

 

 “좋아. 탕(숩:Sup)을 하고 싶은 거지? 그럼 진짜 탕을 하자.”

 “한식에 숩도 있어요?”

 “그럼 있지. 아주 많아. 내일 점심 장사 끝나면 나랑 나가자.”

 “어딜 가요?”

 “글쎄 그런 데가 있어.”

 

 나는 씩씩대며 주방을 나섰다.

 

 **

 땅그랑은 서자카르타와 가까운 위성도시다.

 공장 사장이나 자영업자 교민들이 꽤 많이 모여 산다.

 

 ‘태평’은 땅그랑에서 가장 유명한 설렁탕집이었다.

 땅그랑뿐 아니라 자카르타주 전체 교민사회에서 정평이 나 있었다.

 현지인들의 반응도 아주 좋았다.

 특히 화교들에게는 땅그랑에 오면 꼭 들러야 할 성지 같은 곳이었다.

 

 인드라와 나는 점심 장사가 끝나자마자 ‘태평’으로 갔다.

 오후 3시가 넘었는데 손님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우리는 간신히 자리를 찾아 메뉴를 살펴보았다.

 

 설렁탕이 베스트셀러였지만 돌담에서 다룰 자신은 없었다.

 나는 육개장만 시켰다.

 아내의 레시피 목록에 육개장이 있기 때문에 식재료만 구하면 만들 수 있었다.

 

 조금 뒤 음식과 깍두기 반찬이 나왔다.

 육개장은 보온이 잘 되고 놋그릇처름 은은한 빛이 나는 이중 스테인리스 그릇에 담겨 있었다.

 글로독 그릇 시장을 다 뒤져도 이런 그릇을 사기 어려웠다.

 외국에서 식당을 하면 좋은 식기를 구하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다.

 

 우리는 육개장을 나눠 먹었다.

 소문대로 국물이 진했다.

 고기 누린내나 잡내가 나지도 않았다.

 

 “응? 이건 뭐지?”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태평’의 육개장에는 한국과 다른 맛이 살짝 섞여 있었다.

 분명 고기와 멸치 육수 베이스의 국물이었다.

 그런데 그 담백한 맛에 더해 뭔가 구린 감칠맛이 느껴졌다.

 인도네시아인들이 흔히 먹는 음식에 많이 배어 있는 냄새가 났다.

 

 첫 숟갈을 넣을 때는 거부감이 들었다.

 하지만 먹으면 먹을수록 계속 먹고 싶어지는 맛이었다.

 

 “인드라, 맛이 어때?”

 “좋아요. 제가 찾는 맛이에요.”

 

 인드라의 표정이 밝았다.

 망망대해를 헤매다 보물섬을 찾은 얼굴이었다.

 그렇게 천진난만한 얼굴을 보고서야 나는 인드라의 나이가 젊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맵진 않아?”

 “이 정도는 괜찮아요.”

 

 인도네시아인들은 의외로 매운 맛에 적응을 잘 했다.

 대부분의 음식에 매운 소스를 곁들여 먹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미스뜨르, 육개장 레시피 있어요?”

 “있어. 그런데 이거랑 달라.”

 “그래도 비슷하겠죠.”

 “아냐. 이건 한국 육개장이 아니야.”

 “무슨 뜻이에요?”

 “한국 육개장과 다른 뭔가가 있어.”

 

 인드라가 국물을 한 숟갈 입에 넣고 쩝쩝거렸다.

 뭐가 이상한지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다시 한 숟갈을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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