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1일간 안보이기 닫기
모바일페이지 바로가기 > 로그인  |  ID / PW찾기  |  회원가입  |  소셜로그인 
스토리야 로고
작품명 작가명
이미지로보기 한줄로보기
 1  2  3  4  5  6  7  8  9  10  >  >>
 1  2  3  4  5  6  7  8  9  10  >  >>
 
자유연재 > 기타
대망 : 아마쿠사의 신
작가 : 한연화
작품등록일 : 2019.9.20

"제가 원하는 것은 전국을 일통하고 강한 군주가 되어 백성들을 덕으로 교화하는 것입니다. 그 길에는 지독한 피비린내와 가시밭길만이 있겠지요. 이런 저라도 받아주실 수 있겠습니까?" 끝없는 전란이 이어지는 전국시대의 일본. 천하를 무로 덮는 운명을 타고났으나 누나에 의해 사람이되 사람이 아닌 자, 히닌이 되어 쫓겨난 오와리국의 후계 유죠와 인간들의 전장에서 태어난 전쟁의 여신 아마쿠사미코토의 전국일통을 향한 일대기가 시작된다. 격랑의 역사 속, 그들의 삶과 사랑은 과연 어찌 될 것인가?

 
시대를 초월한 마음(1)
작성일 : 19-10-15 07:58     조회 : 278     추천 : 0     분량 : 7382
뷰어설정 열기
뷰어 기본값으로 현재 설정 저장 (로그인시에만 가능)
글자체
글자크기
배경색
글자색
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아이가 처음 토리이를 들어섰을 때부터 아마쿠사미코토는 알 수 있었다. 아이는 절대 하루후사가 아니었고, 하루후사가 될 수 없었다. 아이는 하루후사와 전혀 닮지 않았고, 무엇보다 하루후사라고 하기에는 너무 어렸다. 아마 하루후사가 살아 있었다면 저 아이의 숙부뻘이나 아버지뻘이었지 생각하며 아마쿠사미코토는 어둠 속에 몸을 숨기고 오랜만에 신사에 찾아온 불청객을 한동안 바라보았다.

 

  “가미사마.”

 

  신상에 입을 맞추고 신상을 쓰다듬으며 자신을 부르는 아이의 앞에 아마쿠사미코토는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본래 신들은 새전을 받거나 자신을 부르는 소리를 들으면 직접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도 어떤 형태로든 응답을 해주기 마련이었지만 아마쿠사미코토는 그조차도 하지 않았다. 그것은 아이가 새전함에 돈을 넣지 않았기 때문도 아니었고, 자신을 부르지 않았기 때문도 아니었다. 그저 아파서, 너무 아파서, 가슴이 시릴 만큼 아파서 아마쿠사미코토는 아이의 부름에 응답할 수 없었다.

 

  “하루후사.”

 

  지금 아이의 눈에는 자신이 보이지 않을 터였고, 귀에는 자신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을 터였다. 아마쿠사미코토는 물기 어린 목소리로 하루후사를 불렀다. 하루후사의 이름을 부르는 아마쿠사미코토의 목소리가 한없이 떨리는가 싶더니 이내 허공에 흩어졌다. 아마쿠사미코토는 가슴께를 손으로 꼭 부여잡았다. 다시 보니 아이의 눈은 하루후사를 닮아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자신을 바라보던, 자신을 바라보며 아름답다 말해주던 그 눈동자와 닮아 있었다.

 

  “대체 왜…….”

 

  이제 겨우 하루후사를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 이제 더는 하루후사를 생각하며 아파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는데. 그리 생각했는데. 그런데 모두 자신의 착각이었던가. 고작 하루후사를 닮은 눈동자에 이렇게 가슴이 아려올 만큼. 아마쿠사미코토는 본전의 제단 위에 몸을 길게 뉘였다. 조금 전 신 하나와 인간 여럿을 베고 온 까닭에 심신이 피로하기 그지없었다.

 

  “가미사마는 참으로 아름다우십니다. 만약 모습을 드러내신다면 그 아름다움에 세상 사람들의 눈이 멀고 말 거예요.”

 

  조금 전부터 이곳에 들어선 어린 불청객이 아마쿠사미코토의 휴식을 방해하고 있었다. 아마쿠사미코토는 하아, 하고 한숨을 내쉬며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자신이 이곳에서 신관들과 무녀들을 쫓아낸 이유가 무엇이었던가. 이곳에서나마 신이나 인간들의 꼴을 보지 않고 혼자서 조용히 쉬기 위함이 아니었던가. 이곳에서 신관들과 무녀들을 쫓아냈던 그때처럼 난동을 부려야 하나 생각하며 고개를 천천히 털어내는 찰나였다. 아이가 신상 앞에 무릎을 꿇고 쌍수례를 올렸다.

 

  “저 사실은 갈 곳이 없어요. 다이묘가의 후계였으면 무얼 하나요. 반역자 신세가 되어 얼굴에 히닌의 낙인이 찍히고 구니에서 쫓겨난 것을요.”

  “…….”

  “그러니 이곳에서 있게 해주세요. 부탁드립니다, 가미사마.”

 

  지금 이 버려진 신전을 집 삼아 살아가겠다는 것인가? 아무리 갈 곳이 없다지만 이곳에 대한 소문을 듣지 못하였나. 아마쿠사미코토는 별 미친 놈 다 보겠다는 표정으로 혀를 내둘렀다. 자신이 신관들과 무녀들을 쫓아낸 이후로 인간들 사이에서는 이곳에 대해 별 흉흉한 소문이 다 나돌고 있었다. 이곳의 주인인 전쟁신이 사람의 피와 죽음만을 먹고 산다느니, 사실은 이곳에 신이 아니라 사람을 잡아먹는 요괴가 살고 있다느니 하는 온갖 흉흉한 소문들이 나돌아 근처 마을에서 유랑무녀들을 불러 금줄까지 쳐둘 정도였거늘.

 

  “도대체 어디에서 온 놈이지?”

 

  아마쿠사미코토는 문득 호기심이 일었다. 그러고 보니 말투로 보아 아마쿠사나 인근의 시마바라, 나가사키 출신은 아닌 것 같았다. 아마쿠사미코토는 자세를 바로하고 앉아 아이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우선은 이것을 예물로 드릴게요. 제가 가진 것 중 저에게 가장 필요한 것들 중 하나에요. 이것이 없으면 얼굴의 낙인을 가릴 수 없으니까요.”

 

  아이가 진홍색 도우부쿠를 벗어 신상에 걸쳐주었다. 검붉은 옷과 하얀 눈표범, 그리고 검은 머리와 검은 눈동자와 진홍색 도우부쿠는 무척 잘 어울렸다.

 

  “이제 정식으로 문안을 여쭙겠습니다. 제 이름은 이시다 단조노추 유죠, 이시다가의 차기 당주이며 오와리국의 차기 다이묘였습니다. 이시다가의 선대 당주, 오와리국의 선대 다이묘인 이시다 단조노추 사이조노스케 마사토부의 아들이지요.”

 

  마사토부. 아이의 입에서 나온 이름에 아마쿠사미코토는 아이의 앞에 모습을 드러낼 뻔했다. 나고야 성에서 자신을 내보내고 죽음을 맞이한 하루후사가 떠올라 아마쿠사미코토는 자신도 모르게 두 손을 꼭 말아 쥐었다.

 

  “마사토부의 아들이라고……?”

 

  아마쿠사미코토는 문득, 자신의 검을 뽑아들었다. 형형하게 빛나는 검광을 바라보던 아마쿠사미코토는 칼을 높이 들어 올렸다 곧 아래로 내려놓았다. 신이 되어서 당사자인 마사토부도 아닌 그의 아들을, 더구나 어린아이를 상대로 분풀이를 한다면 다른 신들에게 면이 서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러니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가미사마.”

 

  유죠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아마쿠사미코토는 제단 위에 드러누워 몸을 홱 돌려버렸다. 어차피 이 신사에는 먹을 것도, 마땅한 가재도구도 없었다. 참배객이 끊긴 신사에 새전이 있을 리는 더더욱 없었다. 아마 며칠도 못 버티고 다른 곳으로 옮겨갈 것이라고 생각하며 아마쿠사미코토는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우리는 여기에 오봉(일본의 명절 중 하나로, 음력 7월 15일이다. 이날 조상이나 죽은 친지의 영혼이 돌아온다 여긴다.)까지만 오봉까지만

  오봉이 지나면 여기에 있지 않을 거야

  오봉이 빨리 와야 빨리 돌아갈 텐데

 

  우리는 가난뱅이 거지

  저 사람들은 잘 산다네

  부자라서 좋은 오비에 좋은 옷을 입겠지

 

  내가 죽는다 해도

  누가 슬피 울어줄 거나

  뒷산의 매미가 울어줄 거나

 

  매미뿐만이 아니고

  누이동생도 울어주겠지

  동생아 네가 울면 걱정스러우니 울지 말아라

 

  내가 죽는다면

  길가에 묻어주겠지

  길 가는 사람들이 여기에 꽃을 바쳐주겠지

 

  꽃은 무슨 꽃이냐면

  동 동 동백꽃

  물은 하늘에서 내린 낙숫물

 

  얼마나 잤을까. 한참 잠이 들어 있던 아마쿠사미코토는 아이의 낮은 자장가소리에 잠을 깨었다. 아무리 무가의 자식이라 하나 아이는 이제 겨우 열 살 남짓밖에 되어 보이지 않았다. 그러니 혼자 음산한 신사에서 밤을 지새우는 것이 얼마나 무섭겠는가. 마사토부의 아들이라는 것을 넘어 어린아이라는 사실에 동정심이 드는 것을 아마쿠사미코토는 어찌할 수 없었다. 아마쿠사미코토는 언령(言 靈)을 담아 입을 열었다.

 

  “잠들어라, 아가야. 잠들어라. 모든 근심걱정일랑 다 잊고 편히 잠들어라.”

 

  아무것도 깔려 있지 않은 맨바닥에 고소데 하나를 깔고 잠든 아이를 바라보던 아마쿠사미코토는 신관들이 쓰던 집으로 가 낡은 이불을 하나 찾았다. 이 정도면 너무 무겁지 않고 적당히 도톰하겠구나 싶은 이불을 고른 아마쿠사미코토는 손끝에서 불기운을 끌어내 이불의 더러움을 제거했다.

 

  “이러고 자다가 감기 걸리면 약도 없다.”

 

  누구에게 하는 말인지 모를 말을 중얼거리며 아마쿠사미코토는 아이의 몸에 이불을 덮어주었다. 잠결에 이불의 포근함을 느낀 것인지 아이가 으음, 하는 소리를 내며 이불 속으로 파고들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아마쿠사미코토는 아, 하는 소리와 함께 다시 본전을 나섰다.

 

  “베개를 가져다주는 걸 잊었군.”

 

  아마쿠사미코토는 이번에도 신관들이 쓰던 집에서 베개를 찾아내 불로 더러움을 제거하고 아이의 머리에 베어주었다. 이제 좀 사람같이 자는구나 싶어 아마쿠사미코토는 뿌듯한 표정으로 잠든 아이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열 살짜리 애가 무슨 반역을 저지른다는 거지? 대체 누가 일처리를 그따위로 했는지 얼굴 한 번 보고 싶군.”

 

  아까 아이가 했던 말을 떠올리던 아마쿠사미코토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자신이 그런 건 왜 궁금해 하단 말인가. 더구나 하루후사의 원수인 이시다가의 일을. 한동안 고개만 내젓던 아마쿠사미코토는 제단 위에 누워 다시 잠을 청했다. 내일은 꼭 피비린내가 묻은 몸을 씻어내야겠다 생각하며 아마쿠마시미코토는 이내 스르륵 잠이 들었다.

 

 ※

 

  사악사악. 다음날 아침, 아마쿠사미코토는 경내를 울리는 비질소리에 잠에서 깨어났다. 어디서 가져온 것인지 아이는가 낡은 싸리비를 들고 경내를 깨끗이 쓸고 있었다.

 

  “하?”

 

  아마쿠사미코토는 담뱃대에 담뱃잎을 채워 넣고 손가락을 퉁겨 불을 붙였다. 담배연기를 몸 속 깊숙이 한 모금 빨아들이고 내뱉으며 아마쿠사미코토는 아이가 청소하는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언제부터 청소를 한 것인지 경내에 어지럽게 널브러져 있던 방울이며 신장대들이 한곳에 모아져 있었다.

 

  “먼지가 많습니다. 거미줄도 많고요. 이곳이 정말 신이 좌정하는 곳이 맞는지가 의심스러울 지경입니다.”

 

  어제보다는 진중해진 말투가 아마쿠사미코토는 무척 마음에 들었다. 이제야 무가의 자식으로서의 말투로 돌아오는 것인가. 아마쿠사미코토는 연기를 내뿜으며 한숨을 쉬었다. 자신이 전쟁의 신이어서인지, 아니면 하루후사와 함께 한 세월 때문인지 무가의 말투를 참으로 좋아한다 생각하며 아마쿠사미코토는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미쳤지. 저 아이는 하루후사가 아니잖나.”

 

  그러나 아마쿠사미코토는 아이에게서 눈을 뗄 수 없었다. 한동안 싸리비를 들고 마당 곳곳을 청소하던 아이가 이번에는 어디선가 가져온 이가 나간 나무동이에 물을 떠와 다 찢어진 걸레를 적셔 배전과 본전의 곳곳을 닦아내기 시작했다. 허리를 쭉 펴고 엉덩이를 세운 채 끝에서 끝까지 단숨에 달리며 바닥을 닦고 새전함이며 제단이며 신상을 닦아내는 모습을 바라보던 아마쿠사미코토는 이내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입김을 불어 신관들이 머물던 집의 처마에 달려 있는 후링(유리풍경)을 흔들어주었다. 태풍 정도의 바람이 아니면 쉽게 울리지 않는 맑고 청아한 소리에 아이의 표정이 밝아지는 것을 보며 아마쿠사미코토는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쌀이 없습니다.”

 

  청소를 마친 아이가 걸레를 빨며 말했다. 그동안 쌓인 먼지의 두께를 말해주듯 시꺼먼 물을 여러 번 버리며 아이는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을 훔쳤다.

 

  “밥을 지어 가미사마께 공양하려 하였으나 쌀이 없습니다. 어찌해야 할까요?”

 

  한동안 걸레를 빨던 아이가 어디선가 새끼줄을 하나 가져와 나무 사이에 빨랫줄 삼아 걸고 걸레를 널었다. 무가의 자식이라면, 더구나 이시다가의 후계였다면 귀하게 자랐을 터인데 이런 일들을 알아서 척척 할 수 있다는 것이 어딘지 모르게 신기하기도 해 아마쿠사미코토는 담배를 끄고 호기심 어린 얼굴로 아이를 지켜보았다.

 

  “역시 쌀을 사러 다녀 와아 할까요?”

 

  아이는 돈주머니를 꺼내 금화와 은화를 세어보았다. 아마쿠사미코토는 바람을 불러 짤랑, 소리가 나게 돈을 흩어놓았다. 이곳에서 얼마나 살아야 할지, 그리고 무엇보다 앞으로 돈이 얼마나 들지, 또 어디에 돈을 쓰게 될지 알 수 없는데 고작 신에게 공양하기 위해 쌀을 산다는 것은 큰 낭비가 아닐 수 없었다. 아마쿠사미코토는 동전을 더욱 더 사방으로 흩어놓으며 쌀을 사지 말라는 무언의 뜻을 전했다.

 

  “저도 먹어야 해서 그럽니다.”

 

  아이가 마치 변명하듯이 말했다. 아마쿠사미코토는 아이를 가만히 바라보다 다시 바람을 불러 흩어진 돈을 모아주었다. 아이가 하아, 하고 한숨을 쉬다 입을 열었다.

 

  “맞습니다. 앞으로 돈이 어디에 얼마나 들지 모르니 아껴 써야겠지요. 더구나 히닌이 어디에 가서 고용살이를 할 수도 없을 테니까요.”

 

  아마쿠사미코토는 제단 위에 옆으로 드러누워 버렸다. 무가의 자식이 고용살이가 무엇인지, 얼마나 고된지나 알고 저런 말을 하는 것인가 싶은 까닭이었다.

 

  “더구나 이 돈은 나중에 제 자리를 되찾는데 보태야겠지요. 좋은 가르침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가미사마.”

 

  아이가 신상에 쌍수례를 올리고 신사를 나서는 모습을 아마쿠사미코토는 가만히 바라보았다. 돈주머니를 배전의 새전함에 숨기고 가는 것을 보면 구걸을 하러 가는 것이거나 아니면 돈을 훔치러 가는 것인가 싶어 아마쿠사미코토는 풉,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하긴, 나도 한때는 인간들에게 주먹밥을 얻어먹고 다녔으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빼앗든 훔치든 그것이 무슨 상관이야. 어차피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고 훔치는 것, 그것이 전쟁이고 사무라이인데.”

 

  신사를 나선 아이는 그날 저녁이 되어서야 토리이를 들어섰다. 본전까지 단숨에 걸어온 아이가 신상 앞에 주먹밥 한 덩이를 정성스러운 손길로 내려놓았다.

 

  “하루 종일 음식을 구걸했는데 겨우 이것밖에 주지 않았습니다. 히닌새끼가 재수 없게 구걸을 한다며 욕을 하더니 더럽다고 몸을 벅벅 문지르고 우물물을 퍼서 자기 몸에 끼얹기까지 하더군요. 이것은 그나마 저를 불쌍히 여긴 웬 노파가 준 것입니다. 우선은 가미사마께 바치고 저도 먹을 것이니 이 초라한 음식이나마 기쁘게 흠향(歆 饗)해주셨으면 합니다.”

 

  아마쿠사미코토는 아이가 내려놓은 주먹밥의 냄새를 들이마셨다. 퍽퍽한 좁쌀에 소금을 넣은 주먹밥의 고소한 냄새를 들이마신 아마쿠사미코토는 곧 포만감을 느끼며 다리를 꼬고 앉아 담뱃대를 입에 물었다.

 

  “가미사마께서는 이 신사에 좌정하신지 얼마나 되신 것입니까?”

 

  자신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텐데도 열심히 말을 거는 아이의 모습에 아마쿠사미코토는 대답 대신 주먹밥의 밥알을 흩어서 보여주었다. 아이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리 오래 되지는 않으셨나 봅니다.”

  “…….”

  “이곳에 계신 것을 보아하니 가미사마께서는 쿠니츠카미(국진신이라 번역되나 천진신(천상신)인 아마츠카미에 대비해 지상신이라는 뜻으로 쓰이기도 한다.)이신 듯합니다. 혹시 우지가미(어느 한 지역을 지키는 신)이십니까?”

 

  내가 쿠니츠카미라고? 이 아마쿠사미코토가? 아마쿠사미코토는 순간, 미친 듯이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마치 발작하듯이 웃고 또 웃었다. 자신은 선대를 죽이고, 수많은 신들을 죽인 끝에 천상계에 오른 상급신이었다. 그런데 그런 자신에게 쿠니츠카미라니.

 

  “게다가 우지가미라…….”

 

  세상에 어느 우지가미가 자신의 신관들과 무녀들을 쫓아내고 근방의 마을에서 악명을 떨친단 말인가. 이것을 순진하다 해야 할지, 생각이 없다 해야 할지, 아니면 머리가 나쁘다 해야 할지 몰라 아마쿠사미코토는 콜록거리는 해소기침소리를 내며 간신히 웃음을 그쳤다.

 

  “하긴, 가미사마께서 어떠한 신이시든 저는 상관없을 것 같습니다.”

 

  방금 전까지 자신을 향해 쿠니츠카미니 우지가미니 해놓고 이제는 자신이 어떤 신이든 상관없을 것 같다니. 점점 알아들을 수 없는 말만 하는 아이의 입가를 바라보다 말고 아마쿠사미코토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곳에 머물게 해주시는 것만으로도 제게는 충분히 자애로운 신이시니까요.”

 

  아이의 입에서 나온 말에 아마쿠사미코토는 허리를 움켜쥐고 웃고 말았다. 자신이 자애롭다니. 항상 피와 죽음만을 몰고 다니며, 비탄과 탄식과 절망과 비애만을 먹고 사는 자신이 자애로운 신이라니. 늘 무기를 들고 인간들의 전장을 떠돌아다니며 수많은 인간들의 목숨을 거두고, 때로는 신들의 목숨을 거두는 자신이 자애로운 신이라니. 여태껏 들어본 말 중 가장 말이 안 되는 소리라고 생각하며 아마쿠사미코토는 몸을 뒤집어가며 미친 듯이 웃고 또 웃었다.

 

 

 

 
작가의 말
 

 신사에 들어온 아이가 하필 하루후사의 원수의 아들이라니 아마쿠사미코토로서는 아마 가장 복잡한 순간이었을 것입니다.

 
 

NO 제목 날짜 조회 추천 글자
20 제20장 미노의 살모사(1) 2019 / 11 / 9 222 0 7596   
19 제19장 천지인(天地人)(3) 2019 / 11 / 9 233 0 7839   
18 제18장 천지인(天地人)(2) 2019 / 11 / 9 234 0 8433   
17 제17장 천지인(天地人)(1) 2019 / 11 / 8 234 0 7867   
16 제16장 풍림화산(風林火山)(3) 2019 / 11 / 8 235 0 7617   
15 제15장 풍림화산(風林火山)(2) 2019 / 11 / 8 248 0 8199   
14 제14장 풍림화산(風林火山)(1) 2019 / 11 / 8 226 0 8255   
13 제13장 공명(共鳴)의 갈림길(3) 2019 / 11 / 3 228 0 8549   
12 제12장 공명(共鳴)의 갈림길(2) 2019 / 10 / 30 230 0 7942   
11 제11장 공명(共鳴)의 갈림길(1) 2019 / 10 / 28 238 0 8338   
10 시대를 초월한 마음(3) 2019 / 10 / 24 235 0 6802   
9 시대를 초월한 마음(2) 2019 / 10 / 21 224 0 7432   
8 시대를 초월한 마음(1) 2019 / 10 / 15 279 0 7382   
7 아마쿠사로(3) 2019 / 10 / 13 255 0 7750   
6 아마쿠사로(2) 2019 / 10 / 10 263 0 7402   
5 아마쿠사로(1) 2019 / 10 / 3 264 0 7642   
4 아마쿠사의 신(2) 2019 / 9 / 28 265 0 7592   
3 아마쿠사의 신(1) 2019 / 9 / 27 269 0 7718   
2 쇼비타 성의 도련님(2) 2019 / 9 / 23 263 0 7603   
1 쇼비타 성의 도련님(1) 2019 / 9 / 20 448 0 7805   
이 작가의 다른 연재 작품
등록된 다른 작품이 없습니다.

    이용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메일주소 무단수집거부   |   신고/의견    
※ 스토리야에 등록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 본사이트는 구글 크롬 / 익스플로러 10이상에 최적화 되어 있습니다.
(주)스토리야 | 대표이사: 성인규 | 사업자번호: 304-87-00261 | 대표전화 : 02-2615-0406 | FAX : 02-2615-0066
주소 : 서울 구로구 부일로 1길 26-13 (온수동) 2F
Copyright 2016. (사)한국창작스토리작가협회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