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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그리고 그 후
작가 : 전Yeah
작품등록일 : 2019.10.7

2014년, 갑작스레 일어난 사태 이 후 인류는 멸망하였다. 그로부터 1년 후, 사태에서 살아남은 이설전은 변해버린 환경과 그것에 적응해가는 자신에게 회의감을 가지면서도 꿋꿋하게 살아가는 자신의 모습에 괴리감을 느끼기 시작하다 우연히 한 여자를 만나게 되는데... 이미 멸망한 세계에서 살아남으려는 자들의 일상을 쓰는 아포칼립스 일상물.

 
06 - 쏴야 할 곳을 봐라 (2)
작성일 : 19-10-14 23:36     조회 : 238     추천 : 0     분량 : 166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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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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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wo men look out the same prison bars:

  one sees mud and the other stars

 

 

 

  영혜는 눈을 뜨자 낯선 곳에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기억을 더듬거리며 어째서 이런 곳에 눈을 떴는지 잠시 머리를 굴린 그녀는 자신이 어제 지옥에서 막 건져 올려 졌다는 사실을 상기했다. 그녀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여름이었지만 추울지 모른다고 권란이 준비한 침낭 안에 자신이 들어가 있었고 시선을 옮기자 자신이 텐트 안에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텐트 밖 너머에는 헬스장에서 쓰일 법한 매트 위에 침낭 셋이 불규칙하게 널브러져 있었으며 그 중 두 개의 침낭 안에는 권란과 대범이 아직 잠에서 깨지 않은 모습이 보였다. 한 자리가 비네? 그녀는 부스스한 머리를 긁적이며 텐트 밖을 나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은은하게 비치는 전기램프를 제외하면 칠흑 같은 어둠이 사방에 덮여있었다.

 

  이 곳이 거대한 대형마트라는 인식이 없었다면 그녀는 자신이 어느 컴컴한 구덩이에 혼자 떨어져버렸다는 착각을 했을 것이다. 영혜는 빈 침낭에 가만히 손을 대어 보았다. 여름이었지만 자리는 차갑게 식어 있었다. 그제야 그녀는 으슬으슬한 찬 공기에 한기를 느껴 주섬주섬 텐트 안으로 다시 들어가 겉옷을 챙겨 입었다.

 

  어디로 갔지? 그녀는 다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시선을 이리저리 옮겼지만 램프 빛이 닿는 곳엔 그녀가 찾는 사람은 없었다. 영혜는 휴대용 손전등을 챙겨 불을 키고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주변을 밝히며 걸어 나갔다.

 

  겉옷을 입었지만, 추위가 느껴졌다. 몸이 으슬으슬하니 떨려오자 영혜는 겉옷을 더욱 감싸 맸다. 한여름이라 더워야 하는 시기지만 아침은 계절을 무시할 정도로 서늘했다.

 

  아마 어두운 곳이라 체감으로 느껴지는 추위도 더해진 걸 거야. 영혜는 그렇게 생각했다. 손전등을 비추며 1층과 2층 곳곳을 확인한 그녀였지만 그녀가 찾는 사람은 발견되지 않았다. 그녀는 3층으로 올라가 주차장으로 향했다.

 

  3층의 야외 주차장으로 나오자 안에서 느껴보지 못한 상쾌한 공기가 그녀의 코와 입을 헹궈냈다. 서늘하면서도 거북하지 않은 맑은 공기를 마시자 그녀는 가슴이 일렁거리는 느낌을 받았다. 설렘과는 다른 두근거림이 그녀의 가슴을 요동치게 했다.

 

  아침 공기를 마시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니. 깊게 들이 쉰 숨을 내뱉으며 그녀는 묘한 행복감에 젖었다. 마치 맑은 공기가 자신의 가슴 속에 있던 걱정과 부정적인 찌꺼기들을 죄다 긁어내 헹군 느낌이었다.

 

  단지 숨을 깊게 들이쉬고 내뱉었을 뿐인데 영혜는 몸이 가벼워진 듯 했다. 그녀의 맨 발이 주차장에 닿았다. 그녀는 사뿐사뿐 주차장을 거닐었다. 햇빛이 영혜까지 다가오지 못했지만 그녀는 상관하지 않았다.

 

  내가 그 쪽으로 가면 돼. 그녀의 발걸음이 가볍다.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걸음으로 햇빛을 향해 걸어간다. 마침내 그녀의 발끝이 햇빛에 닿았고 그 후 그녀의 몸 전체가 빛 안으로 들어갔다. 영혜는 그 안에 마치 봄날 같은 따스함을 느낄 수 있었다.

 

  살아있구나. 영혜는 살아있다는 것을 실감했다. 코로 입으로 피부로 자신이 지금 살아있다는 것을 체감하는 중이었다. 오지 않으리라 생각되었던 오늘이 왔다. 보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던 아침이 밝았다. 영혜의 가슴이 힘차게 뛰었다. 작지만 격하게 요동치는 심장의 고동에 영혜는 또 한 번 삶을 느끼며 다시 깊은숨을 들이마신 다음 내쉬었다.

 

  “뭐하냐?”

 

  익숙한 목소리가 그녀의 귀를 간지럽혔다. 화들짝 놀란 영혜가 목소리의 주인을 찾으려고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그녀는 난간그늘에 기대고 앉아있는 목소리의 주인을 발견하자 반가움을 뒤로 한 채 불만 섞인 목소리로 그의 행동을 나무랐다.

 

  “그렇게 놀래 키기 있어요?”

 

  “놀래 키긴 뭘 놀래 켜. 너 혼자 놀란 거지.”

 

  “어딨 었어요?”

 

  “아까부터 여기 있었는데?”

 

  “거짓말. 못 봤는데?”

 

  “여기 앞에 차 때문에 가려서 안보였나 보지.”

 

  설전이 손가락으로 자신의 앞에 있는 유리창이 다 깨진 차를 가리키자 영혜의 시선도 그 쪽으로 향했다. 차 안은 피가 엉겨 붙은 채로 굳어 있어 상당히 섬뜩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뭐...뭐에요 이거?”

 

  “차. 차종은 몰라. 나 차에 관심이 없어서.”

 

  “아니.. 이거 피 아니에요?”

 

  “피 뿐만이 아니라 해골 가족들도 있었지.”

 

  무미건조한 말투였지만 그 내용은 상당히 섬뜩했다. 영혜도 그의 말에 공포를 느꼈다. 설전이 이 이야기에 살을 더 붙이지 않아도 그녀는 이 차안에 일어난 참극을 대충 상상할 수 있었다. 영혜는 차를 유심히 바라보다 설전에게 물었다.

 

  “근데 해골이 안 보이는데요?”

 

  “여기 정착하면서 다 장사지냈어. 산에 뿌리기엔 너무 멀어서 앞에 강에 다 뿌려줬지.”

 

  “화장...한 건가요?”

 

  “처음엔 한 명씩 하자고 아버지가 제의했는데 비효율적이더라고. 어차피 단체로 죽었으니 단체로 화장시켜서 단체로 부수고 단체로 가루로 내어 단체로 뿌려주는 게 낫다고 생각해서. 결국 단체로 한 방에 묶어서 해결 봤지.”

 

  “뭔가... 씁쓸하네요.”

 

  설전의 말에 영혜가 다소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설전은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다 이내 다시 고개를 돌렸다. 무슨 말을 한들 무슨 소용 있으랴. 설전은 묵묵히 자리에서 일어나 난간에 팔을 괴고 바깥풍경을 바라보았다.

 

  “고요하네요.”

 

  영혜도 설전과 똑같이 난간에 팔을 괸 채 밖을 바라보며 말했다. 설전은 그녀의 말에 대답하지 않은 채 묵묵히 바깥 풍경을 바라보았다. 영혜는 대답을 하지 않는 설전을 바라보았다.

 

  아침햇살이 영혜와 설전을 나란히 비추고 있었다. 아침햇살 때문인지 설전의 모습이 밝게 빛나고 있었다. 그녀는 고개를 돌려 다시 밖을 바라보았다. 햇살이 깨진 창문들을 반짝거리게 하고 있었으며 건물들은 액세서리를 걸친 듯 저마다 묘한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었다.

 

  “평화로워요.”

 

  “....?”

 

  “지금 제가 보는 모습의 단면들만 떼서 본다면 너무나 평화로운 날이에요.”

 

  영혜가 그윽한 눈으로 밖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러나 어쩐지 그 말 속에는 평화로움에 대한 애절한 감정보다는 쓸쓸하고 슬픈 깊고 어두운 무언가가 있었다. 설전은 영혜를 바라보았다. 평화롭다고 말한 그녀의 표정은 전혀 평화로워 보이지 않았다. 금방이라도 눈물을 떨어뜨릴 것 같은 그런 표정. 설전은 난간아래를 바라보았다. 수습되지 못한 백골들이 이리저리 굴러다니고 있었다.

 

  설전은 두개골 하나를 바라본다. 머리가 반은 부서진 두개골은 주변에 몸이라 생각되는 뼈 조각 하나 없이 거리 위에 버젓이 올려져있었다. 머리가 잘린 것일까, 아니면 죽고 나서 몸은 사라지고 머리만 남아버린 걸까.

 

  죽어버린 그는 이제 몸을 찾는다 해도 어디로 가지 못한다. 반대로 죽어서도 움직일 수 있다 해도 몸을 잃어버린 그는 어디로 가지 못한다. 설전은 머리를 만진다. 두개골이 바라보는 시선을 향해 설전이 고개를 돌리자 강이 보인다. 강물이 햇살에 비춰져 반짝거린다.

 

  “그래도 살아있어서 다행이에요.”

 

  영혜의 말에 강에서 하늘로 올라가있던 설전의 시선이 다시 그녀에게로 향한다. 그녀는 거리를 바라보며 말을 계속 이어갔다.

 

  “살아있으니. 이런 모순된 평화를 실감할 수 있으니까요.”

 

  그런 다음 영혜는 입을 닫았다. 그녀는 묵묵히 아래에 널브러져있는 백골들을 바라볼 뿐 이었다. 그녀는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설전은 궁금했지만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이런 광경을 보고도 저런 말이 나오다니. 설전은 영혜가 말을 마친 다음 얼마간의 정적 이후 입을 열었다.

 

  “살아있는 것만으론 안 돼.”

 

  “어젯밤에도 그 말 하셨죠?”

 

  질문에 대한 대답이 없었다. 영혜는 그가 입을 열 때까지 기다렸지만 설전은 여전히 아무런 말을 하지 않고 있었다. 왜 그런 말을 하는 걸까. 내심 그 말의 의미를 짐작하고 있는 그녀지만 자신의 짐작이 그가 하는 말의 의미와 맞으리란 보장은 없었다.

 

  영혜는 말을 잇지 않았다.

 

  설전도 마찬가지였다.

 

  둘의 침묵은 고요함에 묻혀가고 있었다.

 

 

 

  밥을 한 수저 뜬 후 입으로 가져가 먹은 영혜는 그야말로 지복[至福]의 표정을 지어보였다. 영혜는 밥을 씹는 와중에도 잘 구워서 따뜻해진 햄을 한 조각 집어 입에 가져다 넣었다.

 

  혀를 강타할 정도로 짜릿한 맛이 그녀의 입 안을 얼얼하게 만들었다. 맛의 충격은 입 면적을 초월할 정도였으며 영혜는 아주 잠깐 이었지만 정신을 놔버렸었다. 대범은 영혜가 먹는 모습을 바라보며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어구, 많이 배고팠나보네.”

 

  대범이 젓가락을 집어 햄 조각 하나를 영혜의 밥 위에 얹어주었다. 영혜는 뒤늦게 정신을 차린 뒤 대범을 향해 연신 감사하다고 머리를 조아리며 밥을 넘겼다.

 

  권란은 그녀의 모습을 보며 통조림 햄을 한 캔 더 까더니 햄을 꺼내서 썬 다음 달궈진 프라이팬 위에 올렸다. 햄과 기름이 열을 받아 지글거리는 소리와 함께 기름진 햄 냄새가 주변을 감싸 안았다. 영혜는 그 냄새를 맡으며 황홀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거, 잘도 먹네. 그대로 먹으면 여기 있는 식량 전부 거덜 내겠어.”

 

  라면을 후루룩 거리던 설전이 영혜에게 타박을 줬다. 영혜는 설전의 시비에 눈길 한 번 주지 않은 채 햄을 맛보는데 집중하고 있었지만 대범과 권란은 설전을 째려보며 한 마디씩 쏘아붙였다.

 

  “넌 임마, 밥을 먹지 뭔 1년이나 된 라면을 쳐먹고 있냐. 맛도 이상하더만.”

 

  “아침부터 라면이 목구멍으로 넘어가? 그것도 오래된 라면이?”

 

  으르렁거리는 부모님의 꾸지람에도 설전은 묵묵히 라면을 힘차게 흡입했다. 후룩후룩거리는 면발을 끊지 않고 다 빨아드린 설전은 그제야 대범과 권란의 말에 대답할 수 있었다.

 

  “맛만 좋은데 왜요. 탈 안 나면 된 거지. 그리고 그렇게 치면 그 밥도 1년 다된 쌀로 지은 밥이잖아요. 아니지, 추수한 기간을 생각해보면 1년은 더 넘었네. 라면보다 그게 더 꺼려지지 않나? 차라리 인스턴트 밥을 먹는 게 낫겠다.”

 

  “어휴, 저런 걸 내 배 아파서 낳았으니...”

 

  퉁명스럽게 대답하는 설전이 못마땅한지 권란은 투덜거리며 프라이팬 위의 햄을 뒤집었다. 설전도 기분이 살짝 나쁜 듯 묵묵히 라면을 후룩거렸다. 영혜는 그런 설전을 보며 어제 먹은 라면을 떠올렸다. 그게 1년 된 라면이었구나. 하긴... 라면이 그동안 만들어지고 있을 리 없지. 영혜는 햄을 한 조각 집어서 우물거렸다. 그래도 맛있었는데.

 

  설전이 라면 국물을 들이키다 멈칫거리더니 권란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권란은 설전이 바라보는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짐짓 모르는 척 그저 수저를 들었다. 설전은 고개를 숙여 라면국물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다시 시선을 권란에게로 옮기자 권란은 그제야 설전을 향해 왜 바라보냐며 역정을 내었다.

 

  “밥 좀 달라고요. 말아 먹게요.”

 

  깊게 한 숨을 쉰 권란은 밥주걱으로 압력솥 안의 밥을 퍼 설전의 냄비에 거칠게 떨어뜨렸다. 설전이 국물 튄다며 짜증을 내자 권란은 바로 시끄럽다며 설전의 불만을 일갈했다. 밥을 다 먹은 영혜는 그런 설전을 보며 고개를 살짝 절레절레 흔들었다. 엄청 험한 아저씨인줄 알았는데 애구나. 그녀는 자리를 정리하더니 권란에게 다가가 자신이 할 일이 없는지 물었다.

 

  라면 국물에 말은 밥을 크게 한 수저 떠서 입으로 가져가 우물거리던 설전은 권란과 함께 자리를 정리하는 영혜를 바라보았다. 그는 시선을 햄으로 옮겼다가 다시 영혜를 바라보았다.

 

  용케도 먹는 구나 이걸. 설전이 라면국물을 들이키며 생각했다. 역시 그런 일을 겪어도 고기 맛은 포기 못하는 건가. 그런 일을 겪었다면 고기는 입에도 갖다대기 싫을 것 같은데. 라면을 다 먹고 배를 두드리던 설전은 햄을 하나 집어 입에 넣었다. 고소하고 짭짤한 햄 맛이 입 안을 가득 메우는 느낌이었다. 한참을 우물거리던 설전은 햄을 꿀꺽 삼키며 말했다.

 

  “맛있네.”

 

 

 

  “설거지를 다 하시네요?”

 

  “어?”

 

  마트 옥상 주차장에서 설거지를 하던 설전 옆에 어느새 영혜가 다가와 말을 걸고 있었다. 설전은 뭐야 이 년은 또 왜 여기 온 거야 하면서 속으로 짜증을 냈지만 겉으론 표현하지 않았다. 영혜는 생글생글 웃으며 설거지를 하는 설전의 손을 바라보며 말했다.

 

  “신기해서요. 아무것도 안 하고 그냥 빈둥빈둥 있을 거라 생각했거든요.”

 

  “왜 그런 생각을 하는 거지?”

 

  “음... 그냥 느낌?”

 

  “별 거지같은 느낌 다 보겠네.”

 

  그릇을 닦는 설전의 손놀림이 거칠어졌다. 하지만 영혜는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해서 설전의 옆에 앉아 그에게 말을 걸었다.

 

  “접시도 많은데 그냥 나중에 하면 안 되나요? 물도 아껴야 된다면서요. 모아놨다가 비가 올 때 한꺼번에 설거지를 하는 게 이득 아닌가요?”

 

  “내가 그 방법을 생각 안 해봤을 거 같냐?”

 

  “네.”

 

  말이 끝나기도 전에 영혜가 대답해버리자 그릇을 헹구는 설전의 손놀림이 더욱 거칠어졌다. 그는 밥그릇이 뽀득뽀득 잘 헹궈졌는지 확인한 뒤 이미 다 헹군 밥그릇 위에 잘 포개어 놓았다. 대야에 있는 바가지로 물을 퍼내 손을 헹군 그는 그제야 영혜의 질문에 대답을 할 수 있었다.

 

  “그 방법은 꽤나 물 소비에 이득처럼 보이지만 실제론 그다지 좋은 방법이 아니야. 특히 위생적인 면에서는 취약하지.”

 

  “아., 위생이요?”

 

  “그래. 위생. 식중독이나 잔병이 생기면 답이 없어. 그러다가 쥐나 바퀴벌레 같은 게 꼬여서 큰 병이라도 얻게 되면 그야말로 응급상황이지.”

 

  “그래도 일일이 이렇게 물을 써가면서 하기보단 일단 쌓아놓고 하는 게 좋지 않나요?”

 

  “거 집요한 아가씨일세. 그렇게 하는 게 이득이긴 하지만 건강이 직결되는 문제만큼은 허투루 보면 안 된단 말이다. 가뜩이나 우리는 유통기한 지난 것들 팍팍 먹고 있는데, 이런 거까지 신경 안 쓰면 어찌 되겠냐. 알아듣겠어?”

 

  설전이 물기가 묻은 손을 마저 옷에 닦으며 말을 마쳤다. 영혜 또한 설전의 마지막 말이 가지는 의미를 바로 알아차렸다.

 

  아프면 안 된다. 그 말은 지금 이 상황에선 그야말로 절망적인 말이었다. 함부로 아플 수 없는 상황. 그녀와 그가 있는 이 현실은 아픈 것조차 제대로 허락되지 않는 세상이었다. 영혜는 그릇을 바라보았다. 물기가 묻어있긴 하지만 아주 깨끗하게 잘 닦인 식기들이었다.

 

  설거지를 마친 설전은 바닥에 드러누워 하늘을 바라보았다. 구름이 몇 끼어있었지만 역시 제법 맑은 하늘이었다. 햇살은 아침보다 더욱 강해져 따갑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뜨거웠다. 옥상도 뜨겁게 달궈져 있었지만 정작 누운 설전은 그런 것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맑고 고요하다. 설전은 하늘이 빙글빙글 도는 착각을 느꼈다. 빨려 들어갈 것 같지만 결국 하늘에 닿지 않는다. 설전은 손을 뻗어 하늘을 향해 손바닥을 펼쳐보았지만 역시 닿지 않는다. 그리고 그 순간 설전의 손 위로 구름이 지나간다.

 

  설전은 구름을 움켜쥐는 시늉을 하지만 구름은 그의 손을 빠져나간다. 깊게 숨을 들이셨다 내쉰다. 그러나 그의 입김에도 떠있는 구름은 좀처럼 흩어지지 않는다. 설전은 팔을 내리고 떠다니는 구름을 그저 멍하니 바라본다. 그런데 구름이 가려지더니 영혜의 얼굴이 보인다. 그늘 진 영혜의 얼굴, 그녀의 눈에도 설전의 얼굴이 보인다. 두 얼굴이 서로를 바라본다.

 

  설전이 영혜의 얼굴을 바라본다. 못 먹고 지내서 그런지 갸름한 얼굴이네. 얼굴에 고생한 흔적이 보이고. 얼마나 힘들었을까? 얼마나 괴로웠을까? 갑작스러운 죽음보다 더욱 두려운, 예견된 죽음의 시간을 기다리던 그녀. 인간에게 인간다운 대접을 못 받으며 가축 취급을 당하며 살아온 그녀.

 

  얼굴의 주름 틈마다 그녀의 고생이 새어 나오는 듯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저럴 수 있을까. 저리 환하게 웃을 수 있던 걸까? 동생을 잃고 죽음의 늪에서 헤어 나온 여자의 얼굴에서 어떻게 그런 미소가 나올 수 있을까?

 

  영혜가 설전의 얼굴을 바라본다. 나만큼 고생한 얼굴이다. 덥수룩한 수염과 헝클어진 머리. 이 곳 생활이 녹록치 않음을 보여주는 것 같다. 무뚝뚝하고 퉁명스러운 표정.

 

  하지만 그의 표정을 한 꺼풀 벗겨보면 알 수 없는 깊은 슬픔과 절망이 그를 옭아매고 있는 것이 보인다. 나보다 더 나은 환경에서 살고 있음에도 그는 전혀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무엇이 그를 이렇게 내몬 것일까? 그는 어째서 이렇게 힘들어하고 괴로워하는 것일까?

 

  “뭐야? 할 말 있어?”

 

  “아뇨.”

 

  “근데 왜?”

 

  “그냥... 뭐 하나 싶어서요.”

 

  “뭐 하는 걸로 보여?”

 

  영혜는 입을 다물었다. 설전은 영혜가 입을 열 때까지 기다렸다. 그는 영혜의 눈을 바라보았다. 영혜도 설전의 눈을 바라보았다. 둘의 시선이 마주쳤지만 그 누구도 먼저 입을 열지 않았다. 햇빛을 등져 얼굴에 그늘이 졌지만 어째서인지 그녀의 얼굴은 빛이 난다. 설전은 그녀를 바라보며 그런 생각을 했다.

 

  “모르니까 왔겠죠, 뭐하나 싶으니까?”

 

  “누워있지.”

 

  퉁명스러운 설전의 태도에도 영혜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마트 내 식당가 안, 대풍이라고 적힌 중화요리 전문점 카운터에 설전은 깡통 셋을 넓은 간격으로 올려놓았다. 깡통은 바로 위에서 비추는 전자램프에 의해 희미하게나마 반짝거리고 있었다.

 

  설전은 대풍의 반대방향으로 향하던 중 멈춰서 다시 카운터에 올려놓은 깡통들을 바라보았다. 간격이 잘 맞는지 확인한 그는 깡통을 놔둔 반대편에 전자 램프를 켜 놓은 식탁까지 걸어와 영혜 옆 자리에 앉은 채 깊은 숨을 내쉬었다.

 

  “저기...”

 

  설전이 돌아오자 영혜는 머뭇거리다 입을 열었다. 설전은 영혜 쪽은 돌아보지도 않고 퉁명스럽게 왜 라고 대답했다. 영혜는 설전의 그런 대답에 짜증났지만 그래도 무엇을 하러 여기로 데려왔는지 알아야했다.

 

  “여긴 왜 온 건가요?”

 

  “자, 추측해 봅시다. 왜 온 거 같냐?”

 

  설전은 철로 된 박스 하나를 들어 식탁위에 올려놓으면서 반문했다.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았지만 설전이 올려놓은 박스 안에는 알 수 없는 천들이 말려져 담겨있는 듯 했다. 뭐지 저건? 영혜의 궁금증이 증폭되려는 찰나 설전이 익숙한 듯 박스 안의 천을 꺼냈다. 그는 영혜의 얼굴을 살피더니 싱긋 웃어보였다. 왜 웃는 거지 저 사람? 영혜는 불길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어두워서 천처럼 보이는 물체였지만 설전이 꺼낸 것은 벤돌리어, 즉 탄포라고 불리는 것이다. 그는 탄포 주머니에서 골판지를 하나 꺼내더니 다시 그 안에 총알, 탄들이 끼워져 있는 클립을 꺼냈다.

 

  설전은 탄의 끝 부분, 총알 부분을 첫 번째부터 마지막까지 손가락으로 만져보더니 이윽고 자신의 주머니에서 탄창하나를 꺼내 들었다. 마찬가지로 주머니에서 이상한 모양의 쇠 부품을 꺼내 탄창에 연결한 다음 탄 클립을 끼워 넣더니 능숙하게 탄을 탄창 안으로 밀어 넣으며 탄창을 채워갔다.

 

  영혜가 멍하니 그 장면을 구경하고 있자 설전은 10발을 다 채워 넣은 탄창에서 연결된 쇠와 클립을 제거하며 웃었다. 로딩툴이라는 거다. 처음보지? 이걸 탄창에 연결시키고 다시 탄 클립을 연결하면 이렇게 부드럽게 탄창에 들어가지. 그는 로딩툴이라고 부르는 쇠와 클립을 주머니에 넣은 다음 의자 아래에 있던 K-2 소총 2정 중 한 정을 잡고 들어 올렸다.

 

  “이제 여기 왜 온 건지 감이 잡히나?”

 

  탄창을 K-2 소총에 결합시킨 설전이 웃으며 영혜에게 말했다. 그는 조정간이 안정이 되어 있는지 매달려 있는 램프의 빛을 통해 확인 한 후 노리쇠를 전진시켰다. 영혜에게 익숙하지 않은 쇳소리가 그녀의 귀를 자극했다.

 

  뭐지? 영혜는 애써 자신의 예상을 부정한 채 설전의 행동과 자신의 상황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설마 쏘라는 건가? 총을? 말도 안 돼. 설마 진짜로? 어안이 벙벙해 있는 영혜의 표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설전은 탄창이 결합된 곳을 유심히 살펴보더니 825482인가 라며 혼자 중얼거렸다.

 

  “자, 825482. 이제 네 총이다.”

 

  “네?”

 

  “네 총이라고. 825482. 네 꺼.”

 

  설전이 총구를 위로 향한 총을 영혜에게 건네주는 시늉을 하였다. 그러나 영혜는 멍하니 그런 설전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설전이 미간을 잠시 찡그리더니 영혜의 품에 총을 안기며 말했다.

 

  “뭘 보고만 있어. 무거운데 빨랑 가져가지.”

 

  “네? 저기.. 지금 뭐하시는...거..?”

 

  “일부러 모른 척 하지 마. 총알이 있고 총이 있고 깡통이 있으면 뭐겠냐?”

 

  손가락을 들어 깡통이 있는 곳을 가리키며 설전은 말을 이었다.

 

  “쏘는 거지.”

 

  영혜는 멍하니 총을 바라보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니 설전을 바라보며 말했다.

 

  “제가요?”

 

  “엉.”

 

  “왜요?”

 

  “왜라니.”

 

  “전 못 쏴요.”

 

  이미 그녀의 반응을 예상했지만 막상 상황이 닥치니 설전은 기분이 나쁘고 짜증이 밀려왔다. 순순히 말을 알아들을 리 없고 무엇보다 총을 쏴 본적도 없는 여자에게 다짜고짜 총을 쏘라고 하다니 거부반응을 보이는 것은 당연했다.

 

  그러나 설전은 그녀가 자신이 처한 상황을 납득하리라 믿었었다. 지금 상황에서 그녀가 해야 할 일이 어떤 것인지 잘 알 것이리라. 그녀 스스로 납득하리라 그리 믿은 것이다. 그러나 지금 이 반응으로 그 기대는 산산조각 나버렸고 더불어 실망감이 크게 밀려왔으니 그의 입장에선 짜증이 날 만도 했다.

 

  머리를 긁적거리며 설전은 감정을 추슬렀다. 그때 조교 새끼들이 나한테 느낀 감정이 이런 것이었을까? 살아있을지 모르지만 예전에 입대했을 때 자신의 사로 사격 담당이었던 조교에게 설전은 미안한 감정을 느끼며 입을 열었다.

 

  “왜 못 쏘는데?”

 

  “그야...”

 

  “타당한 이유를 대 봐.”

 

  팔짱을 낀 채 우악스럽게 쳐다보는 설전의 시선을 피하며 영혜는 작게 중얼거렸다.

 

  “하... 한 번도 쏴보지도 못했고...”

 

  “남자새끼들은 태어나자마자 총을 다 쏴봐서 군대 가서 총질하나?”

 

  “그.. 그거야..”

 

  “뭐. 남자니까? 여군들은 그럼 뭔데. 성차별적 발언할 생각 말고 타당한 이유를 대라니까.”

 

  말문이 막힌 영혜는 설전을 바라보았다. 그의 표정은 장승처럼 투박하고 무표정했으며 눈빛에는 단호한 의지가 엿보였다. 그녀는 총을 만지작거렸다. 차갑고 묵직한 그리고 섬뜩한 느낌이 총을 잡은 손에서 느껴졌다. 왠지 모를 꺼림칙한 기분을 쉽게 떨칠 수 없었던 그녀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할 말 없지? 총 집어. 견착 자세부터 가르쳐 줄 테니까.”

 

  설전이 의자 아래에 있는 나머지 총 한 정을 집더니 식탁에 총을 올린 다음 사격 자세를 취했다. 그는 영혜에게 어떻게 쏘는 지 이런 저런 설명을 해주고 있었지만 영혜는 듣지 않았다.

 

  설전이 흰 쥐가 전방인 것을 확인하라, 너무 강하게 견착하면 오히려 시야가 흐려질 수 있으니 개머리판에 견착 할 수 있는 적당한 위치의 편한 자세를 찾아라, 조준선 정렬이나 정조준은 잘 모를 테니 그냥 총의 가늠쇠를 깡통이 있는 곳에만 놔둬라, 등등의 말을 했지만 영혜는 이미 정신이 반 쯤 나간 상태라 제대로 듣고 있지 않았다.

 

  이윽고 설전이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자세를 풀었다. 그는 군대 조교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나름 잘 설명했다며 자신의 가르침에 뿌듯함을 느끼고 있었다. 이 정도면 개미똥구멍도 뇌가 있다면 알아듣겠지. 설전의 그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영혜는 그저 지금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난감해 하고 있을 뿐 이었다.

 

  “표적을 맞추는 건 기대 안 해. 맞추면 좋겠지만 영점도 안 잡은 네가 깡통을 맞추기는 힘드니까. 오늘은 그냥 총을 쏘는 느낌이 어떤 건지 맛만 보는 정도로 끝내자고.”

 

  10발이 장전 되어 있으니 10발 다 쏴 보자. 설전의 마지막 말을 듣고 아직 마음의 준비도 하지 않은 영혜는 화들짝 놀랐다.

 

  정말 쏘라는 건가? 진짜로? 왜 갑자기 총 쏘는걸 가르쳐 주는 거지? 왜? 아직 정리되지 않은 생각들이 머릿속에서 범람하고 있는 영혜인데 설전이 너무 빨리 사태를 진행 시키는 것 같아 그녀는 매우 당혹스러웠다. 혼란스러운 머리를 진정시키고 영혜는 설전에게 말했다.

 

  “저기... 아직 그... 마음의 준비가..”

 

  “마음의 준비?”

 

  설전의 어투가 비꼬는 어투같이 억양이 올라갔다. 역시 기분 나빠 하는구나. 설전의 억양에서 영혜는 그의 기분을 단번에 잡아 낼 수 있었다. 그래도 갑작스럽게 총이라니. 내 기분은 생각도 안 해주고. 배려심이라곤 정말 없구나, 이 사람.

 

  마음 속 에선 불만이 들끓었지만 겉으론 내색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미 그 말을 꺼낸 시점부터 설전은 영혜의 생각과 마음속을 훤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눈을 지그시 감고 깊은 한숨을 내 쉰 설전은 곰곰이 몇 초 동안 생각에 잠기더니 이윽고 눈을 떠서 골판지 안에 탄이 끼워진 클립을 하나 더 꺼냈다. 클립에서 탄을 5발정도 빼낸 그는 주머니에서 탄창 하나를 더 꺼내어 클립에서 빼낸 탄알을 집어넣었다.

 

  K-2소총의 노리쇠를 후퇴 고정시킨 다음 조정간을 안전에 맞춘 그는 탄창을 결합시킨 후 노리쇠를 전진시켰다. 영혜에게 뒤로 물러서라고 말한 그는 식탁에 총을 올려놓고 아까와 똑같은 사격자세를 취했다. 영혜가 뒤로 엉거주춤 물러서자 설전이 그녀를 향해 말을 덧붙였다.

 

  “총구는 위를 향하게 하고 있어라. 놀라더라도 절대 떨어뜨리거나 하지 말고.”

 

  “에...에? 총구요? 그게 뭐죠?”

 

  “총구가 어디겠냐. 총알이 나가는 곳이지.”

 

  영혜가 총구를 보며 깨달았는지 작은 탄성을 내지르며 총구를 확인하려 했다. 그러자 설전이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총구가 어딘지 위험하게 확인하지 말고 그냥 내가 하는 거 지켜봐 라고 말을 하자 그녀는 움찔거리며 다시 자세를 고쳐 잡았다.

 

  견착을 한 채 깡통을 향해 총을 겨냥한 설전이 깊게 숨을 들이 마신 다음 얼마 지나지 않아 강렬한 파열음이 어두운 마트 내부를 강타했다. 파열음은 3번 연속으로 울렸으며 동시에 진한 화약 냄새가 영혜의 코를 간지럽혔다.

 

  영혜가 설전의 총구가 향한 방향을 향해 시선을 옮기자 그 곳에는 있어야 할 깡통 3개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있었다. 설전은 아무렇지 않은 듯 총을 들어 노리쇠를 후퇴시켜 장전되어 있던 탄을 빼내고 탄창을 총에서 제거한 뒤 탄창에 있던 총알 1발을 마저 빼냈다. 5발을 장전시켜서 3발을 쏴 깡통 3개를 다 맞춘 것이다. 영혜는 그런 설전을 보고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대...대단해요..”

 

  “뭐가 대단해. 밥 먹고 하는 짓이 이거여서 그런 거뿐이야. 게다가 살아남기 위해서 쓸 수 있는 게 이거뿐이니까 이거라도 잘해야 되지 않겠냐?”

 

  영혜는 고개를 끄덕거리더니 총을 들었다. 무겁다. 그리고 차갑다. 묵직하다. 무기. 영혜에게 있어선 누군가를 죽이기 위해 만들어진 무기는 처음 들어 보는 것이었다. 순전히 살해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무기. 그 무기가 지금 영혜의 손에 들려있다. 무겁다. 그리고 차갑다.

 

  “자, 이제 쏴 봐.”

 

  설전이 뭐라고 말했지만 영혜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무기. 영혜는 이것으로 부하들을 쏴 죽인 군인을 떠올렸다. 그리고 이것으로 어제까지 함께 웃었던 언니의 머리를 날려버린 여자를 떠올렸다. 그리고 이것으로 사람들을 사냥하며 그 시체를 구워 먹는 사람들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녀는 무심코 총을 놓고 말았다. 둔탁한 소리가 마트 안을 울렸다. 그와 동시에 설전의 입에서도 고함이 터져 나왔다.

 

  “무슨 짓이야!”

 

  설전이 총을 들며 그녀를 향해 매몰차게 몰아붙였다.

 

  “시X! 지금 탄 들어 있는 거 안 보여? 총알이 있으면 어떤 곳이든 이유를 불문하고 총을 함부로 다루지마! 만약 갑자기 발사되었으면 어떻게 할 뻔 했어!”

 

  “모... 못해요...”

 

  “뭐?”

 

  매섭게 몰아치는 설전의 다그침과는 전혀 별개의 말이 영혜의 입에서 나왔다.

 

  “못해요... 못 쏴요.. 전 못해요.. 무서워요.. 총 쏘는 게... 총... 총은...”

 

  그녀는 떨기 시작했다. 총으로 시작된 무자비한 폭력을 그녀는 계속해서 봐왔다. 그리고 그 폭력의 끝은 파멸이란 것도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손에서 놓친 검은 총을 다시는 만지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설전은 그런 그녀의 마음 따위는 헤아릴 생각조차 없었다. 그는 영혜가 떨어뜨린 총을 들고 거칠게 그녀에게 건네주려 했다. 영혜는 완강하게 거부했고 설전은 그런 그녀를 힘으로 누르며 억지로 총을 쥐게 했다.

 

  “잡아!”

 

  “못해요!”

 

  “잡으라고!”

 

  “못한다고요!”

 

  눈물까지 흘리는 영혜를 만약 다른 남자들이 봤다면 그만두려 했을지도 모른다. 애절하게 울면서 버티는 여자를 누가 뭐라고 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설전은 단호했다. 그는 거친 숨소리를 내며 영혜를 매섭게 꾸짖고 있었다.

 

  “잡아! 잡고 쏴! 쏘라고!”

 

  “못 쏴요! 전 못한다고요...!”

 

  “시X! 못하면 어쩔 건데! 그럼 누가 지켜주길 생각하고 있는 거냐!? 그런 병신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거냐고!”

 

  설전의 고함이 영혜의 흐느낌을 누르고 어두운 마트에 울려 퍼졌다.

 

  “잘 들어! 난 널 지켜줄 생각 없어. 그리고 그건 앞으로도 안 변할 거다. 똑똑히 알아둬. 네가 지금 못 쏘겠다고 하는 총. 그게 지금 너를 지킬 유일한 발톱이다. 모든 생명은 말이지. 각자 자신을 지킬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어. 약해빠진 토끼도 튼튼하고 날렵한 뒷다리로 적을 피하고 다니며 아프리카의 호구, 가젤도 실제론 엄청나게 빨라서 맹수들도 제대로 사냥하기 힘들어하지. 근데 넌 뭐냐. 넌 뭘 할 수 있지? 천적인 괴물이 나타나면 울기만 할 건가? 다른 사람들이 도와 줄 때까지 기다릴 건가? 정신 차려! 자기 자신을 지키지 못하는 생명은 죽어. 죽는 길 밖에 없어! 약육강식이라는 인간이 지어낸 병신 같은 논리가 아니다. 자연은 강자가 살아남는 게 아니라 살아남으려는 자가 강해지는 거라고. 천적에서 살아남고 싶으면! 괴물에게서 살아남고 싶으면! 쏴! 쏘라고!”

 

  그는 거칠게 영혜에게 총을 쥐었다. 영혜는 온 몸을 떨며 총을 받았다. 영혜가 떨고 있으니 총도 덩달아서 심하게 요동을 쳤다. 설전이 영혜의 어깨를 잡으며 말했다.

 

  “내일을 살고 싶으면, 그 총을 향해 쏴야 할 곳을 봐라. 그게 네가 살아갈 내일이다.”

 

  설전이 거칠게 영혜를 식탁으로 밀쳐냈다. 그는 흐느끼는 영혜를 아랑곳하지 않으며 억지로 사격자세를 취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게 현실이다. 피하지도 즐기지도 못하는 더러운 현실.”

 

  그는 영혜의 등 뒤에서 영혜를 안더니 영혜와 손을 마주잡았다. 그는 영혜의 왼손을 총열덮개에, 오른손을 방아쇠 고리에 넣은 다음 조정간을 단발로 맞추더니 억지로 영혜의 손가락으로 방아쇠를 당기게 했다.

 

  설전에겐 낯익은 영혜에겐 낯선 파열음이 총에서 울리더니 설전에겐 익숙한 영혜에겐 거친 총의 반동이 그녀의 어깨를 덮쳤다. 그녀가 흐느끼면서 비명을 질렀다. 설전은 아랑곳하지 않고 다음 총을 발사했다.

 

  그렇게 3발까지 발사한 다음 설전은 그녀를 놔둔 채 뒤를 돌아 가버렸다. 영혜는 사격자세를 풀지 않은 채 흐느껴 울고만 있었다. 복잡하고 서러운 감각이 그녀의 가슴 언저리에서 터져 나왔다. 억울함과 서운함이 섞인 복잡한 감정들이 그녀의 눈물샘과 가슴속을 자극했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꽤 시간이 지났지만 영혜는 여전히 자세를 유지한 채 흐느끼고 있었다. 그것은 방황의 모습이었다. 도망치지도 쏘지도 못하는. 그러다 잠시 흐느낌이 줄어드는 순간 영혜는 아까 설전이 가르쳐 준 자세를 잡더니 침착하게 방아쇠를 당겼다.

 

  그녀는 이 후로 7발을 모두 쐈다. 비록 맞춘 캔이 고작 하나 뿐 이었지만 영혜는 신경 쓰지 않았다. 영혜는 다짐했다. 괴물에게도, 설전에게도 지지 않겠다고. 그런 다짐을 한 영혜는 흐느끼며 총을 놓더니 엎드려서 울기 시작했다.

 

  그렇게 우는 그녀를 설전은 멀리서 몰래 지켜보고 있었다. 7발을 다 쏜 영혜에게 다가간 설전은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영혜는 훌쩍거리더니 거칠게 설전의 손을 뿌리쳤다. 설전은 아무 말 없이 다시 영혜의 머리에 손을 올린 다음 쓰다듬었다. 영혜는 이번엔 뿌리치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흐느끼는 소리를 죽일 뿐이었다.

 

 

 

  어느 건물의 지하실 내부, 전등 아래에 한 남자가 침대에 누워서 책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가 책을 한 장 넘길 때마다 침대 옆에서 무릎을 꿇고 앉아있는 사람들은 마른 침을 삼켜야 했다. 무거운 침묵 속, 책을 넘기는 소리가 멎고 침대 위 남자의 낮고 쉰 소리가 그들의 귀에 걸렸다.

 

  “지희와 단비 일행이 안돌아온다 이거지?”

 

  남자의 질문에 그를 둘러싸고 있던 무리들 중 한 사내가 대답했다.

 

  “네... 꽤 시간이 지났는데, 일행이 아무도 안 돌아옵니다. 아무래도...”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사내는 다음 말을 하기가 두려웠다. 그 말이 가지는 의미가 지금 저 사람에게 어떠한 형태로 돌아올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다시금 사람들의 마른침을 넘기는 소리가 조용히 퍼진다. 침대 위의 남자는 머리를 긁적거리더니 말했다.

 

  “난 지희랑 단비랑 각각 2번씩 밖에 안자봤단 말이야. 3번은 채워야 된다고 생각했는데.”

 

  “그래도 주혁 대장... 거기는 아직 애들이 한 번도 안 가본 곳이라서 위험하다고 여겨지는 곳이었어요. 아무래도 애들은 괴물에게 당한 것 같...”

 

  주혁의 말에 대답하던 여자는 말을 다 끝맺지 못했다. 주혁이 던진 책에 얼굴을 맞아 뒤로 쓰러졌기 때문이었다. [나의 투쟁]이라고 적혀있는 책 위로 여자의 찢어진 머리에서 흐르는 피가 몇 방울 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주혁은 그런 여자에게 다가가 발로 여자를 짓밟더니 그녀를 향해 말했다.

 

  “정말 죽었는지 도망쳤는지는 알아봐야 할 거 아냐. 도망 친 거면 잡아오겠습니다. 죽었다고 생각되면 확인하고 오겠습니다. 이런 말이 먼저 튀어나와야 정상 아니냐? 응?”

 

  분노도 화난 기색도 없는 무미건조한 어투의 말이었지만 오히려 이런 음색이 주변의 사람들을 더욱 오싹하게 만들었다. 그의 말에 다른 여자가 기다렸다는 듯 대답했다.

 

  “그럼 애들을 풀어서 찾아보고 오겠습니다. 되도록 많이 보내도록 하...”

 

  “됐어.”

 

  주혁은 여자의 말을 잘라먹더니 다시 침대 위로 올라갔다. 전등 아래에 비춰진 그의 눈은 사람의 눈이 아닌 것처럼 붉었다. 마치 흰자위가 원래 없었던 듯, 새빨간 바다에 검은 섬이 떠다니는 형상. 그게 주혁의 눈이었다. 주혁은 그런 붉은 안광을 내뿜으며 무심한 듯 말을 이었다.

 

  “어차피 곧 장마철이야. 비가 오면 제대로 수색도 안 되고 시체도 잘 못 찾지. 거기다 괴물을 만나면 괜히 인력만 손실이잖아. 그러니 장마가 끝날 때 까지 기다리자고.”

 

  주혁은 손을 까딱거렸다. 그게 무슨 의미인지 사람들은 바로 알아차렸고 곧 그가 내던졌던 책은 다시 주혁의 품으로 돌아왔다. 주혁은 책을 펴며 말했다.

 

  “진주야, 네 피 묻은 거 나중에 네가 다 닦아라.”

 

  “네...”

 

  진주라고 불린 여자는 피가 나는 부분을 손으로 막으면서 대답했다. 주혁은 책에 시선을 고정한 채 손을 까딱거렸다. 사람들은 그제야 하나 둘 씩 침대에서 물러나기 시작했다. 주혁은 책을 바라보며 나직이 중얼거렸다.

 

  “재밌네.”

 
작가의 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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