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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추리/스릴러
몬스터클럽
작가 : 쇼센
작품등록일 : 2019.9.5

대선을 앞두고 전국에서 끔찍한 연쇄살인 사건이 벌어지고, 뇌신경정신과학자 데이빗 한 박사는 연구소 소장으로부터 뇌스캔을 통한 잠정적 사이코패스 범죄용의자 테스트(몬스터 테스트)의 개발을 종용받는다. 마침 그때 한 프로파일러가 사이코패스테스트의 의무실시를 주장해 대중의 큰 호응을 불러일으키자, 야당 대선후보 이중필은 이러한 분위기를 활용해 ‘몬스터 감별법’을 추진하겠다고 나서 표심을 얻기 시작한다.

한 편 데이빗 한의 장남이자 천재 사이코패스 고등학생인 한명석은 여당 대선후보와 결탁해 전략적으로 소년범죄를 저지르는 <몬스터 클럽>을 비밀리에 조직하고, 군중의 세뇌에 효과가 있는 약물 ‘마리오네트’를 은밀히 유포하는데, 사건성을 의심한 한수형 경위가 그의 뒤를 쫓기 시작하고….

 
#12. 뉴스보도
작성일 : 19-10-14 21:12     조회 : 260     추천 : 2     분량 : 7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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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날, 떠들썩하게 모든 일간지의 일면과 뉴스의 메인보도를 장식한 것은 전 국민이 기다렸던 연쇄살인범의 체포 소식이었다. 조동식의 이름으로 세상은 들끓었다. 여론이 분노로 잔뜩 달궈진 이 때를 놓치지 않고 이중필 후보는 수많은 매체를 통해 M테스트 의무화 법안의 지지를 강력히 호소했다. 이중필 후보는 또한 조동식의 과거 의료기록을 기반으로 M테스트를 시험테스트해볼 예정이라고 밝혀서 화제를 모았다. 정치인으로서는 형사사건에 대한 지나친 개입인데다 누가 봐도 관심을 끌려는 자극적인 발언이었지만 비난보다는 오히려 뜨거운 호응을 받았다. 한 박사는 모든 것이 이 후보와 오 전무의 호언장담대로 돌아가는 상황을 마치 기분 나쁜 호러영화를 보는 심정으로 지켜봐야 했다. 사건은 이미 벌어졌고 주사위는 던져졌다. 더 이상 한 박사도 물러설 곳이 없었다.

 

 한 박사는 연쇄살인범 조동식이 구속 수감되어 있는 곳으로 M테스트를 위한 면담을 요청하는 공식 문서를 발송했다. 그의 의료기록뿐 아니라 본인과의 인터뷰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하자, 해당 교도소장은 내키지 않아하면서도 가능한 날짜와 시간을 통보하듯 알려왔다. 조동식과 관련해 사소한 것 하나에도 여론이 주목하고 있는 것이 부담스러운 눈치였다.

 한 박사의 입장에서 피검사자와의 인터뷰는 M테스트 의심판정을 확정하기 전에 꼭 필요한 마지막 확인절차였다. 그러나 조동식의 M테스트 판정은 이미 결정되어 있는 것이나 다름없으니 실상은 단순한 절차일 뿐이었다. 대선을 코앞에 둔 상황에서 조동식은 이중필의 눈에 띈 아주 좋은 먹잇감이었고, 자신은 초빙된 요리사에 불과했다. 메뉴는 이미 정해져 있었다. 그를 지시 받은 레시피대로 요리하는 일이 남아 있을 뿐이다. 한 박사는 문득 어제 있었던 아들과의 일이 떠올랐다.

 

 “아버지, 조동식 M테스트 진행하신다면서요?”

 늦은 밤 집 현관에서 마주친 아들이 자신을 향해 그렇게 물었을 때, 한 박사는 왠지 모를 한기를 느껴서 몸을 굳혔다.

 “그걸…… 네가 어떻게.”

 “요즘 조동식 사건이 하도 유명해서 아버지도 유명해지신 거 몰라요? 학교에서도 다들 난리에요.”

 “그래? 너도 그 사건에 관심이 있는 거냐?”

 “조동식보다는 M테스트에 더 관심이 있어요. 아버지가 연구하시는 일이기도 하고.”

 “명석아, 너는 말이야… ….”

 “네.”

 “너는 M테스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니?”

 그러자 명석은 문득 차갑게 웃었다. 입만 웃고 있고 눈은 자신을 날카롭게 직시하는 묘한 웃음이었다.

 “아버지, 제가 어릴 때 영재테스트 받았던 거 기억하세요?”

 “네가 어릴 때?”

 “KAGE 영재교육학술원에 데려가 주셨잖아요. 제가 6살 때.”

 “아아… 그런 일도 있었지.”

 “제가 그때 왜 아버지께 그 테스트를 받아보고 싶다고 했는 줄 아세요?”

 “글쎄다. 친구가 테스트를 받고 자랑을 했다든가?”

 “확실히 그때 영재테스트가 유행이었긴 했지만요. 아니에요.”

 “그럼 왜?”

 “저는요, 궁금했던 거예요.”

 “뭐가?”

 “정말로 테스트가 나를 평가할 수 있을까. 나는 테스트의 의도를 배반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니까 너는, 테스트를 테스트하고 싶었다는 거냐?”

 “네.”

 “넌 그때 고작 여섯 살이었어. 아니 만으로는 다섯 살이었지. 그런 어린애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단 말이냐.”

 “네. 그때 상담을 했던 교수님도 놀라시더라구요. 그래서 좀 놀려줬었는데. 지금 생각하니 어린애의 유치한 짓이었죠.”

 한 박사는 그것까지는 기억나지 않아서 눈을 가늘게 떴다. 확실히 테스트를 진행한 담당자와 간단한 얘기를 나눴던 것 같기도 했다.

 “그래서 테스트를 해보고 어떤 느낌을 받았는데? 테스트를 믿지 않게 됐니?”

 “적어도 저는요. 그 어떤 테스트도 완벽할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바꿔 말하면, 어떤 특별한 사람은 그 어떤 테스트도 빠져나갈 수 있다고 보거든요.”

 그게 너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으려다 한 교수는 입을 다물었다. 왠지 돌아올 답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알고 계시겠죠. 지금 M테스트가 정치적으로 철저히 이용되고 있다는 것을요.”

 “역시 너도… … 그렇게 생각했니.”

 한 박사는 문득 허탈하고 민망한 기분이 들었다. 평소 정치 얘기나 자신의 일에는 관심이 없는 것 같았지만 똑똑한 아들이 그 정도의 통찰력이 없을 리 없었다.

 “이상하다고 생각했어요. 아버지는 정치 쪽엔 관심이 없으셨는데 갑자기 이중필 의원의 핵심 세력처럼 활동하시고 핵심 공약에 관여하시다니요. 정치에는 늘 중립적인 입장이셨잖아요.”

 “그랬지. 하지만 늘 원하는 입장만 선택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 사회생활이라는 게 그렇단다.”

 “저는 M테스트 따위 어찌 되든 상관없어요. 다만 아버지께서 혹시 원치 않는 일을 강요받고 있으신 게 아닌가 해서 그게 걱정될 뿐이에요.”

 평소 살뜰하고 다정한 아들은 아니었다. 그런데 그의 말은 한 박사를 크게 위로해주었다. 사실 이 모든 압박을 견디며 자신의 가치관에 반하는 테스트 개발에 뛰어든 것은 눈앞의 아들을 지키기 위함이 아니었던가.

 “그렇구나. 너한테까지 걱정을 끼쳐서 미안하다.”

 감동한 눈빛을 한 아버지를 마주하고서도 아들 명석의 무표정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다만 지금까지의 대화가 마치 다음 말을 하기 위한 도입부에 불과하다는 것처럼 갑자기 명석이 목소리 톤을 바꾸었다. 그러나 한 박사는 아직 감동에 젖어 그 미묘한 변화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아버지, 이중필 후보는 대단한 수완가인가 보죠? 정치에 관심이 없던 아버지까지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다니.”

 이중필 후보를 싫어하는 건가. 한 박사는 문득 그런 의심이 들었다. 젊은 이십 대 지지율은 인권 침해라는 이유로 이중필보다 강민국이 우세하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아들과의 정치적 의견 차가 시작되는 건가. 한 박사는 불편한 기분으로 입을 뗐다.

 “편은 무슨. 우연히 시기가 맞았고, 서로의 목적이 합치했을 뿐이지.”

 “하지만 아버지. 방심하지 마세요. 강민국 후보도 만만한 사람은 아닐 거예요.”

 한 박사는 아들의 심중을 파악하기 어려웠다. 자신과 이중필을 응원하는 것인지, 아니면 강민국 후보를 추켜세우려는 것인지 알 수 없는 말투였다.

 “네가 강민국 후보를 어떻게 알고? 그를 지지하니?”

 “저는 선거권도 없는 걸요.”

 아들 명석의 말은 자신의 의견 따위 실효성이 없다는 것을 비관하는 듯했다. 민석의 입꼬리에서 희미한 조소가 묻어났다. 한 박사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할 때, 민석의 말이 곧바로 이어졌다.

 “얼마 전에 TV토론회를 봤거든요. 대단한 야심가에 달변이던데요. 분명 이대로 당하진 않을 거예요, 강민국 후보.”

 “TV토론회를 봤다고? 네가 그렇게 정치에 관심이 있는지는 몰랐는데.”

 “뭔가 재밌잖아요, 지금 선거 구도가. 반 친구들도 내기하고 있어요. 누가 이기고, 누가 질지.”

 “아버지는 선거 결과는 신경쓰지 않는다. 어떤 결과가 나오든 아버지는 그저 학자로서 연구를 계속할 뿐이야.”

 “과연 그럴까요. 그게 아닌 건 아버지도 아시잖아요. 강민국 후보가 당선되면 M테스트 연구는 끝난다는 거.”

 “… ….”

 “아버지, 근데 말이에요. 혹시… ….”

 “혹시 뭐냐.”

 “M테스트 결과 상 제가 몬스터 판정을 받으면 어쩌실래요?”

 “뭐?!!”

 한 박사가 저도 모르게 화들짝 놀라 비명처럼 소리를 질렀다. 곧 과민한 반응을 했다는 후회가 빌려와 놀란 마음을 진정하려 애썼다. 기민한 장남이 눈치 채기 전에 평정을 가장해야 했다.

 “사람 일은 모르는 거잖아요. 그 몬스터감별법이라는 거 전 국민 대상으로 미성년 때 실시할 거라면서요. 그러면 평범한 학생인 저 같은 애들이 갑자기 몬스터 판정을 받을 수도 있는 거잖아요.”

 “넌 그냥 평범한 애가 아니야! 상위 0.1%의 영재라고! 손꼽히는 명문고의 학생회장을 평범하다고 해선 안 되지.”

 그러자 명석이 씨익 웃었다. 이번에는 눈도 즐겁다는 듯 웃고 있었다. 대체 이 대화의 무엇이 즐겁다는 걸까. 한 박사는 아들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상위 0.1%의 영재든, 명문고 학생회장이든, 상관없이 M테스트를 실시한다는 게 이중필 씨 주장이잖아요. 제가 운 나쁘게 걸리지 않으리란 법 있나요?”

 “내가 그렇게 안 둬. 넌 몬스터가 아니니까.”

 “하하하…….”

 “왜 웃는 거냐.”

 “아버지가 이렇게 감정적이신 모습 처음 봐요. 평소엔 늘 침착하고 냉정하시면서.”

 자신의 속내를 읽으려는 듯한 날카로운 아들의 시선에 한 박사는 무심코 고개를 돌려버렸다. 명석의 테스트 결과는 아직도 아버지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사실로, 한 박사 자신의 아킬레스 건과도 같았다.

 “넌 내 자랑스러운 아들이야. 그러니 그런 기분 나쁜 농담은 다시는 하지 마라.”

 한 박사가 어깨를 떨어뜨린 지친 말투로 그렇게 말했다. 혹시나 알아챌까 싶어서 아들을 쳐다볼 수가 없었다.

 “네. 죄송해요. 제가 괜한 말을 했네요. 피곤해보이시는데 어서 들어가 쉬세요.”

 “그래. 그리고… … 친구들한테는 M테스트 개발자가 아버지라고 함부로 말하지 마. 자칫 반대파한테 언제 어떻게 해코지를 당할지 모른다. 대선은 예민한 시기니까, 알겠니?”

 “네.”

 명석은 평소보다 예민한 모습을 보였던 아버지의 뒷모습을 그가 방에 들어갈 때까지 가만히 시선으로 좇고 있었다. 그리고 방문이 닫히자 명석은 이로써 한 가지 의심하고 있던 것을 확실히 알았다는 표정을 했다.

 “아버지의 약점은 그러니까… … 저였군요.”

 달빛이 얕게 가라앉은 어둔 거실 복판에 선 명석의 눈빛이 순간 어둠 속에서 반짝하고 빛을 냈다.

 

 다음 날. 이른 아침부터 명희의 목소리가 거실에 날카롭게 울려 퍼졌다.

 “오빠! 얼른 나와 봐. TV에 아빠 나온다! 우와 진짜 아빠야!”

 호늘갑을 떠는 명희의 목소리에 명석이 자신의 방문께에서 비스듬히 보이는 TV화면에 시선을 돌렸다. 정말로 그 곳엔 아버지 한 박사의 얼굴이 정중앙에 가득 비춰지고 있었다. 요즘 들어 자주 신문이나 뉴스에서 아버지의 이름이 언급됐었다. 그런데 이렇게 아버지가 직접 TV에 얼굴을 드러낸 것은 처음이었다. 등장할 타이밍을 재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본의가 아니라는 듯이 어딘가 어두운 그림자가 잔뜩 드리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결벽적이고 고지식한 그가 얼마나 이런 상황이 불편할지 익히 짐작이 됐다. 명석은 그것이 우스웠다.

 [연쇄살인의 혐의를 받고 있는 용의자 조동식의 과거 의료기록으로 M테스트를 실시한 결과 강력범죄자 의심군이라 할 수 있는 몬스터 확정 판정을 받은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지금 M테스트 개발자인 데이빗 한 박사의 기자회견 현장에 나와 있습니다.]

 TV화면에는 아버지인 한 박사가 기자들의 플래시 세례를 받으며 자신의 입장문을 긴장한 목소리로 읽고 있었다.

 “이번 연쇄살인사건 용의자 조동식의 과거 의료기록과 뇌스캔 자료, 직접 면담을 토대로 M테스트를 진행한 결과 용의자가 가장 위험한 집단에 해당하는 강력범죄자 의심군에 해당하는 것으로 판명되었습니다. 이는 매체에서 흔히 말씀하시는 몬스터 판정에 해당되며 최근 논의 중인 ‘M테스트 의무화 법안’에서 가장 필수적으로 우선 판별해 내야할 집단이기도 합니다.”

 

 “오빠! 역시 그 살인마는 사이코패스였어! M테스트로 진작 없애버렸어야 하는데! 근데 왜 아빠가 저기 나가있지?”

 “몰랐어? 아버지가 M테스트 개발자잖아.”

 “진짜? 아빠가?? 몰랐어! 오빠는 그걸 어떻게 알았는데?”

 “넌 신문도 안 보지? 요새 아빠 이름 여기저기서 나왔어.”

  명석은 정말 놀란 듯이 어벙벙해 있는 명희를 거실에 둔 채 TV화면을 슬쩍 보고는 제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곧 정신을 차린 명희가 아빠가 TV에 나온 것을 친구들한테 자랑을 해야겠다고 혼잣말로 호들갑을 떨었다.

  조용히 방에 들어온 명석은 평소의 차분함보다도 한층 더 싸늘한 분위기로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이런 사태를 충분히 예상했기에 위쪽에서 연락이 오기 전에 먼저 움직여야겠다고 결심했다. 생각보다 이중필 쪽의 움직임이 빨랐다. 타이밍은 매우 중요했다. 지금 가장 염려되는 것은 M테스트도, 아버지도, 비밀리에 추진 중인 마리오네뜨 실험도 아니었다. 명석이 지금 신경 쓰는 유일한 변수는 바로 강민국 후보였다. 강민국은 대선이 가까워올수록 조급하고 예민하게 굴고 있었다. 아버지가 TV에서 자극적인 패를 요란하게 흔들었으니, 강민국이 또 길길이 날뛸 것이었다. 그것이 명석은 신경에 거슬렸다.

 “여보세요, 실장님. 오림입니다. 후보님을 급히 오늘 밤에 좀 뵙고 싶은데요. 바쁘시면 후보님이 직접 안 오시고 선본측 대리인이 오셔도 됩니다. 만날 수 있는 장소 시간 알려주시면 제가 그리로 가겠습니다.”

 - 안 그래도 연락하려던 참입니다. 중요한 사안이 터져서 후보님이 예민하십니다. 물론 직접 이동하실 거고, 늘 만나던 곳에 6시까지 오시면 될 것 같습니다.

  역시나 뉴스보도에 흥분해서 즉각 반응을 했음이 분명했다. 그렇지 않으면 비서실장 입에서 이렇게 준비된 답이 술술 나올까. 명석은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예상대로군.

 -그런데 말입니다. 오림군.

 “네. 말씀하세요.”

 -후보님이 당장 오늘 오후에는 대응을 어떻게 해야 할지 물으십니다.

 아니 선본의 수족들은 멍청이들뿐인 건가. 물론 명석도 자신의 판단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강민국의 태도는 만족스러웠다. 하지만 대통령 유력 후보라는 인간이 겨우 이만한 위기에도 스스로 대처하지 못해서 고등학생에게 의견을 묻는다는 현실은 한심하기 짝이 없는 것이었다. 물론 자신이 평범한 고등학생이 아니라는 전제는 붙어 있었지만. 명석의 눈에 정치란 알면 알수록 멍청한 집단의 치졸하고 비열한 패거리 싸움 그 이상이 아니었다.

 “오늘 오후는 그냥 가만히 있으시면 됩니다. 흥분하실 것 하나도 없다고 하세요.”

 - 그렇지만 한 박사가 기자회견을 저렇게 시끌벅적하게 해버린 마당이라서요. 후보님이 걱정이 많으십니다.

 M테스트를 인권 침해라는 이유로 강력히 반대해왔던 강민국이 이러한 상대편의 강력한 퍼포먼스에 대해 잠자코 있다가 타격을 받을까봐 전전긍긍하는 것일 테지. 명석에게는 강 후보의 의중이 훤히 읽혔다.

 “그렇게 정 마음이 쓰이신다면 SNS에서 늘 취하시던 스탠스로 ‘인간은 누구나 통제와 억압으로부터 자유롭게 살 권리가 있습니다. 역사를 후퇴시키는 억압의 도구에 저는 반대합니다.’라고만 쓰라고 하세요. 방금 멘트 적으셨습니까?”

 - 네, 물론입니다.

 그렇게 갑자기 빠르게 뱉은 멘트를 적을 수 있을 리가 없다. 명석은 역시나 자신과의 통화가 모두 녹음되고 있다는 것을 다시금 확인한 셈이다. 강민국의 개들은 모두 태도는 얌전했지만 이런 쪽 방면으로는 꽤 추잡했다.

 - 그리고 오림군, ‘예술인의 밤’ 축제는 날짜가 잡혔나요?

 “네, 대략 출연진과 장소 섭외를 마쳤으니, 날짜도 곧 확정될 것 같습니다.”

 - 행사 홍보할 때 ‘자유, 평화, 인권’이라는 타이틀을 앞에 내세우라고 꼭 지시하세요.

 “물론입니다. 제가 낸 타이틀 아닙니까.”

 -그럼 날짜 나오는 대로 행사 전반 내용 보내주세요. 오림군, 늦지 않게 서둘러 주시구요.

 “알겠습니다. 걱정 마시라고 전하세요.”

 그렇게 당부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의심도 많고 겁도 많은 강민국 밑에서 보좌하느라 충성스런 개들이 고생하고 있다는 생각에 명석은 쓴웃음이 흘렀다. 오림이란 이름도 가명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을 테지. 강민국을 비롯해 그의 최측근은 자신에 관해 철저히 조사한 정보를 공유하고 있을 터였다. 하지만 강민국은 그에 대해 직접 캐묻지 않았다. 그런 강민국의 지나친 자신감과 과신이 명석은 꽤 마음에 들었다.

  직접 가까이 접해 본 강민국은 본인 자신의 능력은 많이 부족하고 다혈질인 인물이었지만, 정확히 자신의 편인 인재를 고를 줄 알고, 무엇보다 자기보다 뛰어난 수하들을 다룰 줄 알았다. 정치라는 것은 본질적으로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장기말이 되는 것은 자기편의 눈에 띄는 인재들이고, 정작 나라를 움켜진 일인자는 그런 장기말들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움직일 뿐이다.

 명석은 상대 진영이 오늘 저지른 회심의 한 수를 머릿속에 그려봤다. 현재 이중필 측은 자신의 아버지를 앞세워 제대로 강수를 뒀다고 기세등등해 있을 터였다. 그런 생각을 하니 명석은 오히려 유쾌한 기분이 되었다. 원래 진정한 게임의 묘미는 상대편이 다 이겼다고 믿게 만들었을 때 몰아치는 반격에서 오는 쾌감이 아니던가. 명석은 최종적으로 자신이 졌다는 것을 믿기 힘들 정도로 진짜로 지기 직전까지 상대를 이기게 만들어주고 싶었다. 상대가 앞선 승리의 도취되어 있을 때 뒤통수를 치고 목을 자르는 것은 극렬한 쾌감을 안겨 줄 것이었다.

 “지금은 실컷들 좋아하시죠. 그리고 아버지도 마음껏 춤추게 해 주세요. 어디까지나 춤 출 수 있을 때까지만 말입니다.”

 
작가의 말
 

 짧은 감상평이나 댓글은 언제나 큰 힘이 됩니다.^^

 
 
자신만의 이미지를 등록해보세요
-323 19-11-10 17:01
 
프롤로그부터 정주행 ㅡ남은건 다시시간내서 읽을게요.
시간가는줄 모르고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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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센 19-11-12 15:15
 
정말 감사합니다ㅠ 독자님 덕에 힘이 나고 열심히 써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재미있게 읽어주시고 언제든 댓글로 감상 남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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