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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나의 자카르타
작가 : 히타히타
작품등록일 : 2019.9.2

도망치듯 떠나온 그곳에서 마법이 시작된다.

 
약속을 지켜요
작성일 : 19-10-14 09:05     조회 : 316     추천 : 0     분량 : 47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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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방오를 넣은 잡채를 맛보았다.

 면 색깔이 검어지긴 했지만 맛은 더 풍부했다.

 방오는 인도네시아인들이 좋아하는 국수요리에 딱 맞는 소스였다.

 

 그러나 나는 망설였다.

 무엇보다 아내의 레시피를 건드리기 싫었다.

 채소나 과일을 현지 식재료로 대체한 것은 가격 때문에 어쩔 수 없었지만, 멀쩡히 완성된 요리에 뭔가를 더 첨가하긴 싫었다.

 소금, 후추, 마늘, 참기름, 아내가 선택한 모든 재료에는 그 작은 그램 수마다 아내의 손길이 배어 있었다.

 나는 그것을 지키고 싶었다.

 

 “미스뜨르. 그럼 직원들에게 먹여 볼게요.”

 

 인드라가 잡채를 홀로 들고 나갔다.

 직원들이 몰려들어 포크로 잡채를 집어 먹었다.

 나는 그들더러 들으라고 큰 소리로 불평을 해댔다.

 

 “손님들은 면 색깔이 투명해서 잡채를 시키는 거야. 이렇게 검게 변하면 매력이 사라진다고.”

 

 면 색깔은 사실 구실에 지나지 않았다.

 방오를 넣은 잡채가 달콤한 면 요리를 좋아하는 인도네시아인 입맛에 맞다는 건 나도 속으로 인정하고 있었다.

 아무도 내 불평을 듣지 않았다.

 출출하기도 했는지 한 접시의 잡채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특히 리리는 누가 가져갈 새라 잡채를 입 안 가득 넣고 우물거렸다.

 

 “미스뜨르. 정말 맛있어요! 최고에요!”

 “다 먹고 말 해. 침 튄다.”

 

 리리가 인드라를 향해 엄지를 지켜들었다.

 인드라가 살짝 미소 짓자 양 볼에 깊은 보조개가 패었다.

 나는 주름이 자글자글한 늙은 인드라의 볼에 지금보다 훨씬 희미한 보조개가 피어나던 장면을 떠올렸다.

 

 직원들이 모두 박수를 쳤다.

 인도네시아 사람들 입맛에 딱 맞는다고 다들 난리였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피식 웃었다.

 

 그래, 그럴 수도 있겠다.

 요리에 영원불변한 것은 없다.

 아내의 레시피는 오염되는 것이 아니라 이곳과 새로 만나는 것이다.

 요리는 사람과 마찬가지로 만나고 헤어지며 성장한다.

 그래, 그런 것이다.

 나는 쓸쓸한 마음으로 방오를 허락했다.

 

 저녁 장사가 시작됐다.

 갓 들어온 인드라가 메인 셰프를 맡고 줄리가 보조를 맡았다.

 주방 보조를 한 명 더 구할 때까지는 나도 주방에서 도와야 했다.

 주로 회오리 감자를 깎고 고기를 굽는 게 내 역할이었다.

 

 시작부터 잡채가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손님이 적은데도 연말 잡채 매출보다 높았다.

 어떤 손님은 주방까지 들어와 당면을 어디서 살 수 있는지, 요리법은 어떤지 꼬치꼬치 캐묻고 팁을 남긴 채 돌아갔다.

 하지만 인드라는 잘난 체 하지 않고 자기 일만 했다.

 

 “줄리, 고기 좀 꺼내줘.”

 

 비빔밥을 준비하던 인드라가 말했다.

 그 순간 줄리도 나도 얼어붙었다.

 줄리가 머뭇거리자 인드라가 뒤를 돌아보았다.

 

 “왜 그래?”

 

 나는 인드라에게 줄리의 공포증에 대해 설명했다.

 주방을 지휘해야 할 인드라가 몰라선 안 되는 사실이었다.

 내 얘기를 듣는 순간 인드라의 표정이 굳었다.

 

 “죄송하지만 안 됩니다.”

 “인드라, 그러지 말고 이해해줄 부분은 이해해주자. 고기는 새로 올 주방보조가 다루면 되잖아.”

 “고기를 못 만지는 사람이 주방에서 일할 순 없습니다.”

 “인드라...”

 “안 됩니다. 주방은 그렇게 쉬운 자리가 아닙니다.”

 

 인드라는 단호했다.

 그의 말이 틀린 것도 아니어서 나는 입을 다물었다.

 줄리가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나는 그녀가 안쓰러워, 그 작은 어깨가 슬픔에 젖는 게 싫어, 내가 생각해도 멍청한 말을 했다.

 

 “줄리, 핏물을 단풍이라고 생각해봐. 너 단풍 좋아하잖아.”

 “소용없어요.”

 

 줄리를 주방에서 내보내는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스무 해 동안 키워온 꿈을 내 손으로 꺾어야 했다.

 이룰 수 없는 꿈이라면 일찍 단념하는 게 나을 수도 있다.

 줄리가 고개를 들어 나를 보았다.

 

 “약속해 주세요. 그러면 해볼 게요.”

 “무슨 약속?”

 “쉬는 날에 영화 보여 주세요.”

 

 무슨 말을 해야 했을까.

 영화는 친구들과 보러 가라고, 영화표 값은 주겠다고, 혹은 나중에 생각해보자고 말해야 했을까.

 어쩌면 그래야 했을지 모른다.

 아니, 그래야 했다.

 여가를 보낼 데가 쇼핑몰 밖에 없는 자카르타에서, 영화관은 친구나 연인이 잠시 삶의 짐을 내려놓는 유일한 공간이었다.

 줄리는 그 개인적인 공간에 나를 초대하고 있었다.

 나는 그 초대에 응할 자격이 없었다.

 

 “알았어. 그러니까 해 봐.”

 

 줄리가 냉장고로 다가갔다.

 그 순간을 떠올리면 지금도 마음이 아리다.

 줄리는 이를 악물어 터져 나오는 신음을 삼키며, 냉장고 문을 힘겹게 열고, 랩으로 싼 돌솥비빔밥용 고기에 손을 뻗었다.

 손과 팔뚝이 덜덜 떨렸다.

 어깨와 목도 덩달아 떨렸다.

 

 나는 줄리의 보호자라도 되는 양 안절부절 못 했다.

 포비아 환자가 두려운 상황을 극복하려면 초인적인 인내가 필요하다.

 줄리는 젖 먹던 힘까지 끌어내 최선을 다해 견뎠다.

 줄리는 미라가 걷듯 천천히, 부자연스런 자세로 고기를 도마에 올려놓았다.

 

 “칼, 칼을 주세요.”

 

 인드라가 칼을 건네주었다.

 줄리는 손이 너무 떨려 고기를 써는 건 고사하고 칼을 드는 것조차 힘들어 보였다.

 하지만 그녀는 기어이 칼날을 고기 위에 놓았다.

 

 썩둑.

 

 첫 번째 고기 조각이 잘려 나왔다.

 줄리는 더 떨리는 손으로 두 번째 조각을 자르기 시작했다.

 눈에 힘을 잔뜩 주고 있었다.

 자꾸만 닫히려는 눈꺼풀을 억지로 밀어 올리는 것처럼 보였다.

 

 인드라는 줄리의 모습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주문지를 보며 바쁘게 손을 놀려 음식을 만들어댈 뿐이었다.

 그건 네 문제일 뿐이야, 라고 몸으로 말하고 있었다.

 

 썩둑 썩둑.

 

 고기 조각이 제법 늘어났다.

 떨리던 손도 조금 진정된 것 같았다.

 나는 고기를 구우러 갈 생각도 잊어버린 채 줄리를 보고 있었다.

 

 “아얏!”

 

 줄리가 비명을 질렀다.

 나는 황급히 그녀의 손을 낚아챘다.

 왼손 검지 살갗이 칼날에 1센티 정도 찢어졌다.

 얼마나 깊게 베였는지 피가 멈추지 않았다.

 고기의 핏물도 견디기 힘든 줄리는 손가락에서 철철 흐르는 피를 보고 창백해졌다.

 나는 다친 손가락에 밴드를 붙여 주었다.

 

 “이제 됐어. 그만 해도 돼.”

 “아뇨. 해야 될 일이잖아요.”

 

 줄리는 다시 칼을 잡았다.

 아까보다 떨림이 진정됐다. 줄리는 온 몸에 힘을 준 채 고기를 조금씩 썰어나가기 시작했다.

 친구의 아픔을 모르는 리리가 배식구에 입을 대고 소리쳤다.

 

 “떡갈비 두 개!”

 

 나는 그제야 고기를 굽기 위해 집게를 집어 들었다.

 썩둑 썩둑, 고기 자르는 소리가 조금씩 더 경쾌해 졌다.

 줄리는 그릴기로 가는 내 등에 대고 소리쳤다.

 

 “미스뜨르, 약속 지키세요.”

 “알았어.”

 

 인드라는 여전히 우리를 보지도, 우리의 대화를 듣지도 않았다.

 나는 그릴기로 가서 고기를 열심히 구웠다.

 줄리처럼 온몸에 힘을 주고 최선을 다해 구웠다.

 

 1월2일의 저녁 장사가 끝났다.

 직원들이 옷을 갈아입고 총총히 사라졌지만, 돌담의 주방엔 아직 불이 켜져 있었다.

 나는 주방으로 들어갔다.

 인드라가 나무젓가락을 들고 이것저것 집는 연습을 하고 있었다.

 

 “인드라, 퇴근 안 해?”

 “젓가락 연습 조금만 더 하고요.”

 “그건 해서 뭐해?”

 “한식당 셰프가 젓가락질도 못하면 안 되잖아요.”

 

 꼬우추쟈앙, 그안장, 주압최이.

 인드라는 젓가락질 연습을 하면서도 입을 우물거리며 재료와 메뉴의 이름을 외웠다.

 연습을 거듭할수록 발음이 제자리를 찾았다.

 ‘주압최이’는 조금씩 ‘좝최이’로, 그 다음엔 ‘좝최’로 변해갔다.

 

 뜨르스라, 맘대로 해.

 나는 주방문을 닫았다.

 하얀 조리복을 입고 젓가락을 든 인드라의 모습은 생명공학 실험실에서 현미경을 들여다보는 연구원 같았다.

 인드라는 정말, 구제불능이었다.

 

 **

 줄리의 휴일은 수요일이었다.

 나는 점심 장사를 마치고 쇼핑몰 4층에 있는 영화관으로 갔다.

 

 평일 오후의 영화관은 사람이 많지 않았다.

 예매를 하지 않아 마음을 졸였는데, 그럴 필요가 전혀 없었다.

 줄리는 혼자 로비를 서성였다.

 나는 그녀를 보자마자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아야 했다.

 

 줄리가 치장을 했다.

 늘 꽂고 다니는 노란 머리핀 대신 은색 머리핀을 하고, 귓불에는 수정 같은 귀걸이를 차고, 진홍색 블라우스와 곱게 워싱된 스키니진을 입었다.

 팔목엔 은실로 된 팔찌까지 찼다.

 줄리는 손등에 핸드크림을 정성스럽게 발랐다.

 음식에 냄새가 밸까봐 손에 아무 것도 바르지 못하는 식당 직원의 한을 거기서 푸는 것 같았다.

 

 “줄리, 여기서 뭐해?”

 “영화 보러 왔잖아요.”

 “아, 그렇지.”

 

 나는 <인터스텔라> 표 두 장을 샀다.

 비슷한 시각에 인도네시아 로맨틱 코미디 영화도 상영했지만 볼 자신이 없었다.

 아직 속어가 많이 나오는 코미디 영화의 대사를 알아들을 실력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차라리 인도네시아어 자막이 깔리는 할리우드 영화를 보는 게 편했다.

 줄리와 로맨스 영화를 보는 게 마음에 걸리기도 했다.

 

 “이거 재밌어요?”

 “나도 안 봐서 몰라. 우주 영화 싫어해?”

 “영화는 다 좋아해요.”

 

 우리는 팝콘 통을 들고 좌석에 앉았다.

 상영관에는 우리 말고 서너 명밖에 없었다.

 영화가 시작되자 줄리는 금테 안경을 꺼내 썼다.

 

 “원래 안경 썼어?”

 “이럴 때만 써요.”

 

 줄리의 안경에 스크린 영상이 비쳤다.

 줄리는 작고 도톰한 입술로 팝콘을 잠시 물고 있다가 아삭아삭 씹어 먹었다.

 드러난 귓불에는 솜털이 나 있었다.

 

 영화는 시작부터 이해하기 어려웠다.

 영어 대사를 듣다가 이해가 안 되면 인도네시아어 자막을 보고, 자막에 어려운 단어가 많으면 대사에 귀 기울였다.

 그러다보니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대사를 듣고 있으면 자막이 끼어들어 방해하고, 자막에 집중하면 대사가 귀에 맴돌았다.

 

 이런 젠장.

 영화를 잘못 골랐다.

 한국어 자막으로 봐도 과학용어를 이해하기 어려운데 인도네시아 극장에서 내가 뭘 어쩌겠는가.

 나는 줄리에게 질문을 계속 속삭였다.

 

 “줄리, 주인공은 왜 안 늙어?”

 “우주선이 빨리 가니까 시간이 느려지는 거예요.”

 “블랙홀로 왜 들어가?”

 “다른 차원으로 가려는 것 같아요.”

 

 줄리는 참다못해 나를 노려보았다.

 

 “미스뜨르, 그만 좀 물어요. 시끄러워요.”

 “사람도 별로 없는데 뭘.”

 “내가 시끄럽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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