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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뱀파이어 로망스
작가 : 꽃님발
작품등록일 : 2019.9.3

내가 왔어. 너 찾으러 내가 여기까지 왔다고. 네가 발이 묶여 나한테 못 온다고 해도 어쩔 수 없어. 그 발목을 잘라내서라도 널 다시 내 옆에 둘 거야.

자신의 가장 친한 친구에게 사랑하는 사람을 빼앗겨 버린 뱀파이어 희선. 마지막 순간 돌아온다는 말을 남기고 홀연히 사라진 그를 찾으러 다시 한국을 찾아온다. 뱀파이어계 모든 사건 사고에 관여하는 그가 제발로 찾아오기를 바라며 인간 흡혈을 저지르는데….

영원을 살아가는 저주받은 존재, 뱀파이어와 인간 그리고 뱀파이어 헌터들 간의 엉켜버린 운명과 사랑이야기 옴니버스 형식으로 펼쳐집니다.

 
37화. 오래 기다리게 해서 미안해요
작성일 : 19-10-13 15:44     조회 : 247     추천 : 0     분량 : 37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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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월 31일. AM 00 : 50

 

 헌터를 보자마자 찢어죽이고 싶었지만 오늘은 그것보다 중요한 일이 있었다. 무성한 세월탓에 모든 감정은 잘 느껴지지 않았다. 친구의 죽음도 그래서 필요한 복수심도. 그래서 짜증나긴 하겠지만 조금 풀기 힘든 최면을 정수에게 걸어놨을 뿐이다. 더이상의 참견은 시간낭비였으니 도망갈 길을 확보하는 데에는 썩 훌륭한 선택이였지 않은가.

 

 시야를 멀리던저 주위를 살피던 희선은 갑작스런 무언가에 움직임을 읽은 채 하늘을 쳐다본다. 분명 무언가가 작동하는 소리였는데 희선을 둘러싼 모든 것들에게 변화따위 없었다. 그럼 도대체 뭐란 말인가? 하늘을 올려다 보던 희선은 그 하늘을 반으로 갈라놓을 것처럼 쳐져있는 보기 싫은 전기줄을 올려다본다.

 

 전깃줄…? 이어진 두개의 줄을 따라 눈을 돌리니 그 끝엔 빨간색 케이블카가 있었다. 케이블카는 이제 막 아래로 연결되어 있는 줄을 타고 이동하고 있다. 그렇다면 들렸던 소리는 환청이아니고 누군가가 케이블카를 움직이게 만들었더는 소리라는 건데, 다시말하면 저 위쪽에 누군가 있다는 소리다.

 

 더 생각할 겨를이 없었기에 그대로 뜀박질을 시작한 희선이 케이블카 건물 벽을 그대로 타고 올라가기 시작한다. 꽤 높은 높이였음에도 불구하고 탑으로 올라오는 동안 이상하게 쿵쾅쿵쾅 되는 마음을 도대체 숨길 수가 없었다. 참 이상한일이지, 그때 왜 갑자기, 정말 느닷 없이 니가 떠올랐을까.

 

 흑...흡. 희선이 턱하니 창문을 통해 건물안으로 들어섰을 때 누군가의 울음 소리가 들려왔다. 떨어지기 싫어하는 발을 조금 더 움직여 그 소리의 근원지를 찾아간 희선은 그자리에 그대로 멈출 수 밖에 없었다.

 

 그때, 바로 그때 째깍째깍 달려가던 시간이 한번 더 걸음을 멈추었다. 최영원, 김희선 그리고 유현경. 이 모든일의 근본이 되는 주축이 한 자리에 모이자 잠복했던 갈등이 활짝 꽃을 피웠다.

 

 발끝부터 화악 달아오르는 열기에 희선은 그 커다란 눈을 몇번이나 깜빡였는지 모른다. 정말 최영원, 그가 맞는지, 맞다면 그동안 잘지냈는지 궁금해서. 발끝부터 치솟은 열기는 결국 눈가에 머문다. 벌써 코끝이 찡해지며 눈가가 뜨거운 것이, 청승맞게 눈물이라도 흘릴 기세다.

 

 " 희… 희선아. "

 

 현경이 커다래진 눈으로 희선을 쳐다보았다. 그녀는 바닥에 주저앉아 울고 있었지만 마치 보아선 안될 것을 보았다는 듯이 희선을 보었다. 어이가 없었다. 그 순수하기 짝이 없는 눈빛에 대고 한바탕 욕을 퍼부어 주고 싶었다. 그랬다. 영원은 현경이 감추고 있었던 거다. 그를 숨겼던 게, 그가 사라졌던 건 다 그녀 때문이였다.

 

 희선이 그들에게로 한발자국 다가섰다. 주체없이 뛰던 심장이 촤악 가라앉는다. 자꾸 생각하려고 하는 사고를 멈추고 똑바로 일어나려는 정신을 다시 넘어뜨렸다. 이성따윈 필요없어. 상황은 브라운관에서 흔하게 나오는 불륜드라마 속 전개였다.

 

 " 크리스탈. "

 

 영원을 보면 할말이 되게 많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 준비된 말들은 다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먼저 입을 떼기도 전에 선수를 친 영원에게 주도권을 빼앗겨 버려서 그런지 아니면 그 다음말이 예측가능해서 그런지. 영원은 변한게 뭔지 눈씻고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같은 모습, 같은 목소리, 같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 여기서 다시 들을래요? "

 

 영원이 현경에게 물어보았다. 그것은 물음조였지만 절대 물음이 아니였다. 아까 전까지만 해도 죽을만큼 아프기만했던, 슬프기만 했던 현경은 자신의 마음이 순식간에 작아지는 것을 느꼈다. 희선의 등장으로 놀라우리 만치 감정이 작아졌다. 아마 그녀에게 남아있을 죄책감이 마음을 먹어버린 것 같다. 감히 그녀 앞에서 자신은 울 수 없었고 아플 수 없었다. 영원은 최면 때문이라고 치지만 자신은 100% 자신의 의지로 그를 사랑했다. 그리고 결국 빼앗았던 것이다. 자신은 그 자리에 있을 염치가 더이상 없었다. 그때 자신이 행복했었다면, 지금은 그녀가 행복할 차례였다.

 

 현경이 조심스럽게 일어난다. 눈을 훔치고 무표정으로 고친다. 그리고 천천한 발걸음으로 그들을 등지고 떠난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희선은 지금 돌아가는 상황이 파악 안돼 제법 멍청한 얼굴로 그 모습을 보고 있었지만 그녀의 등에 슬픔이 그득한걸 읽었다.

 

 " 안녕. "

 

 이제 막 줄을 돌아 출발하려는 케이블카 속으로 몸을 밀어 넣는 현경이 바람에 날리듯이 그 말만을 남겼다. 그건 희선에게도, 영원에게도 주는 말이였다. 이제 다시 말을 섞을 날이 올 수나 있을지 모르겠지만 지금 사랑도, 우정도 한번에 잃은 그녀가 할 수 있는 말이라고는 그것밖에 없었다.

 

 그녀가 몸을 실은케이블카가 아주 천천히 그들과 멀어진다. 둘 사이엔 아무런 말도 없었다. 적막이 가슴을 후벼파 견딜수가 없다. 하지만 어느 말도 할 수 없다.

 

 " ……. "

 

 그들은 꿈쩍도 없이 달빛에 비친 서로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저 눈에 그대로 서로를 담고 있었다. 그때 희선이 갑자기 눈을 불은 빛으로 물들였고 그에 따라 영원의 눈도 노란 빛으로 변했다.

 

  " …그냥…. "

  " ……. "

  " 진짜…너 인가해서. "

 

 영원과 마주친 그 눈동자에는 아주 많은 원망들이 어려있어서 순간 그조차 가슴이 아팠다. 자신이 사라진 그 시간 속에 힘들었음이 담겨있었다. 자신이 떠났을 그 시간동안 그녀가 얼마나 힘들었을지 그는 감히 상상할 수도 없었다.

 

 그리고 이어진 또 다른 침묵. 대체 어디서 부터 말을 꺼내야 할지 몰랐다. 현경에게는 술술 잘도 이야기 했지만 희선을 발견한 순간부터 쿵쿵거리는 심장 때문에 아무말도 떠오르지 않았다.

 

 희선은 그런 그를 빤히 바라본다. 그의 눈동자는 이상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대체 무슨 말을 꺼내려고 이렇게 뜸을 들이는 걸까. 현경이 저렇게 울며 떠나는 것을 봐서는 자신에게 좋을 상황일지도 몰랐다.

 

 " 돌아온다고 한게 지금이야? "

 

 보다 못한 희선이 그에게 물었다. 조금은 퉁명스러운 그 말에 영원이 웃을 상황이 아님에도 웃었다. 너무도 그녀 다운 물음이였다.

 

 " 네. 지금. "

  " ……. "

 " 돌아왔어요, 당신한테. "

 

 희선의 눈이 더이상 커질 수 없을 정도로 확장된다. 지금 흘러나와 귀를 타고 들어간 그 말을 도저히 믿지 못하겠다는 크게 떠진 눈안에 갑자기 눈물이 덮힌다. 그건 정말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였다. 그녀를 쳐다보며 영원이 아주, 아주 환하게 웃는다.

 

 " 오래 기다리게 해서 미안해요. "

 

 웃음 섞인 목소리가 봄바람을 타고 귓가에 스며든다. 그 따뜻함이 귀에 다 스며들기 이전에 영원의 따뜻한 온기가 희선의 차가운 몸을 으스러질 듯 껴안아버린다.

 

 희선은 아직도 이 전개가 믿기지 않았지만 어찌 할 도리가 없었다. 그 와중에 드는 너무나 근본적인 물음.

 

 " …왜…그랬어…? "

 

 이야기 하자면 너무나 긴데. 들어줄래요? 영원의 입에서 나온 모든 종류의 이야기는 전혀 추측도, 예측도 하지 못했던 말이다. 잭의 독재 정치라기도 뭐한 악행들, 그의 세력을 엎기위해 그동안 자신이 했던 것들. 결국 그가 이기게 되었고 자신의 눈앞에 있다는 것. 그리고 그가 자신에게 걸었던 최면, 그래서 그 상황에서 자신이 할 수 밖에 없던 일. 그들을 모두 떠나 있을 수 밖에 없었던 일.

 

 희선에게 이 이야기를 미주알, 고주알 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건 그녀의 목숨도 위험해 질 수 있음을 뜻했다. 그리고 그녀는 잭의 가장 총애를 받는 뱀파이어가 아니였던가. 그에게 반대의 마음을 갖는 순간 들통나 버렸을지 모른다. 가장 중요한건 그녀를 그런 위험에 내몰 수 없었다는 것. 목숨을 걸어야 하는 위험한 일에는 자신 하나로 족했다.

 

 " 진짜 예쁘다. "

 " …입에 침 안발랐지? "

 " 어, 어떻게 알았어요? 얼른 발라야 겠다. "

 

 달빛을 받으며 빛나는 서로를 껴안고 있는 그들은 세상 누구보다 행복해보였다. 귀찮을 만큼 서로를 사랑하는 마음이 흘러넘치는 것을 느끼며 입을 맞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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