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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기타
대망 : 아마쿠사의 신
작가 : 한연화
작품등록일 : 2019.9.20

"제가 원하는 것은 전국을 일통하고 강한 군주가 되어 백성들을 덕으로 교화하는 것입니다. 그 길에는 지독한 피비린내와 가시밭길만이 있겠지요. 이런 저라도 받아주실 수 있겠습니까?" 끝없는 전란이 이어지는 전국시대의 일본. 천하를 무로 덮는 운명을 타고났으나 누나에 의해 사람이되 사람이 아닌 자, 히닌이 되어 쫓겨난 오와리국의 후계 유죠와 인간들의 전장에서 태어난 전쟁의 여신 아마쿠사미코토의 전국일통을 향한 일대기가 시작된다. 격랑의 역사 속, 그들의 삶과 사랑은 과연 어찌 될 것인가?

 
아마쿠사로(3)
작성일 : 19-10-13 07:59     조회 : 255     추천 : 0     분량 : 7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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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 살인의 희열 뒤에 찾아온 것은 두려움이었다. 처음으로 누군가의 생을 자신의 의지대로 거두었다는 희열은 오래 가지 않았고 대신, 두려움이 빠르게 그 자리를 메워와 유죠는 제자리에 우뚝 멈춰 섰다.

 

  “사람을 죽였다.”

 

  비록 자신의 것을 탐낸 놈들이지만 사람을 죽였다. 그 변하지 않는 사실 앞에서 유죠는 온몸에 번지는 전율을 느끼며 손을 떨었다. 챙강, 하는 소리와 함께 검이 땅바닥에 떨어졌으나 유죠는 한동안 검을 주울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 멍하니 서있었다. 한동안 멍하니 서 있던 유죠는 이윽고 자리에 주저앉아 제 손을 내려다보다 가슴께를 부여잡았다.

 

  “하, 하아.”

 

  그 와중에도 유죠는 한 손을 뻗어 금화와 은화가 든 주머니를 챙겼다. 사람을 죽였다. 정확히는 ‘히닌이 사람을 죽였다.’ 그 엄청난 사실 앞에서 유죠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하나였다. 살고 싶다. 유죠는 문득 든 생각에 옷소매로 피가 묻은 우치카타나를 닦았다. 구니마다 법이 다르다 하나 일본에서 살인범은 십자가형에 처해지는 것이 보통이었다. 자신의 몸이 십자 모양 형틀에 묶이고 날카로운 창날이 몸 안의 장기들 사이를 통과하는 것을 상상하던 유죠는 우욱, 하고 속에 든 것을 게워냈다.

 

  “살고 싶어.”

 

  누나 카이히메에 의해 반역자가 되었을 때에도 이렇게까지 살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건만. 막상 선택할 수 길이 사는 것밖에 남지 않았을 때에야 살고 싶어지는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하며 유죠는 서둘러 주머니를 품 속에 넣고, 우치카타나를 허리에 매고 있는 검집에 꽂았다. 마을 어귀를 벗어나기 전, 유죠는 마지막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히닌이 사람을 죽인 것은, 더구나 히닌이 평민을 죽인 것은 십자가형에 처해져 마땅할 대죄였다. 그러니 목격자가 있다면 지금 즉시 죽여서 입을 막아야 했다.

 

  “컹! 컹컹! 컹컹컹!”

 

  별안간, 어디선가 개 한 마리가 나타나 유죠를 향해 맹렬히 짖기 시작했다. 아마 이들 중 한 명이 키우던 개이리라. 유죠는 다시 우치카타나를 들어 개의 몸통을 정확히 내리쳤다. 행여나 개가 자신의 냄새를 기억한다면 큰 낭패가 아닐 수 없었다.

 

  “시신을 처리할 시간이 넉넉하다면 좋으련만.”

 

  그러나 자신은 혼자 땅을 팔 수 없는 어린아이였다. 유죠는 검날에 묻은 개피를 닦고 걸음을 옮겼다. 이제 당분간은 자신의 것을 쉽게 빼앗기지 않을 것이라는 희열과 사무라이로서의 쾌감이 다시 온몸을 휘감았다.

 

  “아마쿠사까지는 얼마나 남았지?”

 

  마을 어귀를 벗어나 아침까지 혼자 길을 걷던 유죠는 짚신 끈이 끊어졌음을 발견하고 잠시 주저앉았다. 근처에 장이나 가게가 있다면 짚신을 새로 사야겠다 생각하며 유죠는 임시방편이나마 끈을 다시 꿰어 묶었다.

 

  “그러고 보니 나는 아마쿠사에 가서 무얼 하려는 거지? 거기 가봐야 무슨 뾰족한 수가 있다고.”

 

  불현듯 떠오른 생각에 유죠는 하하, 하고 큰소리로 웃었다. 뒤이어 떠오르는 생각들이 너무 우스워 유죠는 도저히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대체 자신은 왜 가문으로 돌아가려는 것일까. 대체 자신은 왜 카이히메를 권좌에서 끌어내리고 오와리국의 다이묘, 이시다가의 당주가 되고자 하는 것일까. 대체 무엇 때문에? 또 무엇 때문에 그렇게 악착같이 금화와 은화를 손에서 놓지 않으려 한 것일까. 대체 무엇 때문에 금화와 은화를 빼앗기지 않으려 사람을 죽인 것일까.

 

  “따지고 보면 가문으로 돌아가도, 오와리국의 다이묘, 이시다가의 당주가 되어도 딱히 할 건 없잖아. 그저 영지를 지키고 늙은이들이 중얼거리는 말이나 들으면서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건 거의 없을 테고. 보나마나 내가 뭘 하려고만 하면 이건 이래서 안 된다, 저건 저래서 안 된다 할 거 아냐. 그리고 나는 왜 그렇게 금화와 은화를 빼앗기지 않으려 안달이 난 걸까. 까딱 잘못했으면 히닌이 평민을 죽였다고 십자가형에 처해질 판이었는데. 대체 돈 가지고 뭘 하겠다고. 돈이 있어봐야 당장 그렇게 많이는 필요 없고, 쓸 데도 없는데.”

 

  한참을 중얼거리던 유죠는 자신의 말투가 길거리에 지나다니는 평민들이나 에타, 히닌들과 다름없는 말투로 변했음을 알고 한숨을 내쉬었다. 쇼비타 성에서 쫓겨난 지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 천한 이들의 생활에 익숙해졌단 말인가. 유죠는 땅이 꺼져라 깊은 한숨을 몰아쉬며 한시를 읊었다.

 

  나라가 깨어지고 산과 강만이 남아

  성 안에 봄이 와 초목이 무성하네

  시절을 슬퍼하니 꽃까지 눈물을 흘리게 하고

  이별을 슬퍼하니 새 소리에도 마음이 놀라네

  봉화는 석 달이나 계속 오르고

  집에서 온 서신은 만금보다 값지네

  흰머리는 긁으니 더욱 짧아져

  다 모아도 비녀를 이기지 못하는구나

 

  당나라의 시인 두보가 지었다는 ‘춘망’이라는 시를 읊은 유죠는 잠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나라가 망하고 가족의 소식도 모른 채 세월만 흘려보내는 시 속의 화자나, 사람이되 사람이 아닌 히닌이 된 것으로 모자라 사람까지 죽이게 된 자신이나 다를 게 무엇이란 말인가. 문득 밀려오는 서러움에 유죠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그러나 유죠는 곧 손가락으로 눈물을 훔치고 길을 걷기 시작했다. 고작 이런 일로 운다는 것은 무가의 자식에게 있어서 커다란 수치가 아닐 수 없었다.

 

  한참을 걸어 유죠는 짚신을 새로 살 수 있었다. 끊어진 짚신을 버리고 새로 산 짚신의 값을 치르고 돌아서던 유죠의 손에서 누군가가 돈주머니를 낚아채갔다. 유죠는 돈주머니를 낚아채간 사람을 쫓아 달리기 시작했다. 한참을 달리던 유죠는 와키자시를 던졌다. 일단은 더 이상 달리지 못하게 다리를 못 쓰게 만들려는 생각이었다.

 

  “아! 아파! 아파! 끄으으.”

 

  유죠는 오른쪽 정강이에 와키자시가 꽂힌 채 쓰러진 소매치기에게 다가갔다. 소매치기는 고작해야 일곱 살도 되어 보이지 않는 어린아이였다.

 

  “하. 제길.”

 

  소매치기의 모습을 확인한 유죠는 머리를 뒤로 쓸어 넘기며 욕지기를 내뱉었다. 일곱 살 이전의 어린아이들은 신불의 아이들이라 하여 부모의 죄에도 연루시키지 않는 것이 이곳 일본의 오래된 법도였다. 그러니 이 소매치기 아이를 잡아 관아에 넘겨봐야 오히려 자신이 아이에게 상해를 입힌 죄로 처벌받게 될 가능성만 높아질 뿐이었다. 유죠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사람들이 저마다 가게에서 물건을 고르고 흥정하느라 정신이 없는 지금이 기회였다.

 

  “그나마 카이히메는 내 것을 가져갈 자격이 있어. 그러나 너는 아니야. 그러니 감히 가질 수 없는 것을 탐한 너의 잘못이라 생각해.”

 

  유죠는 그대로 와키자시를 빼내 아이의 심장에 꽂았다. 와키자시를 뽑은 심장에서 피가 불컥, 하고 솟아올랐다. 와키자시를 허리에 꽂고 돈주머니를 챙긴 유죠는 아무 일도 없었던 듯이 자리를 피하려 했다. 그러나…….

 

  “제길.”

 

  유죠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언제부터 보고 있었던 것인지 사람들이 유죠를 혐오감 어린 눈길로 바라보고 있었다. 유죠는 서둘러 진홍색 도우부쿠로 얼굴의 낙인을 가렸다. 그러나 이미 히닌의 낙인을 본 사람들의 눈빛은 적개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

 

  “히닌이다!”

  “히닌이 사람을 죽였다!”

  “어서 부교(재판을 담당하는 관리)님께 데려가!”

 

  순식간에 혐오와 적개심이 어린 목소리들이 유죠를 향해 날아와 꽂히기 시작했다. 부교라고? 유죠는 이를 악 물고 고개를 저었다. 지금 자신은 절대 재판을 받아서는 안 되었다. 그렇지 않으면 다시는 이시다가로 돌아갈 수 없었다.

 

  “비켜!”

 

  유죠는 괴성을 지르며 우치카타나를 빼들고 곁에 있던 사내 중 하나의 명치부터 배꼽까지를 일직선으로 갈랐다. 사내가 피를 뿜으며 쓰러졌다. 유죠는 다시 곁에 있던 여인 중 하나의 복부를 갈랐다. 붉은 명주옷을 입은 여인이 배를 감싸며 엎어졌다.

 

  “공포는 최고의 무기다.”

 

  아버지는 생전에 늘 유죠에게 공포는 인간을 쉽게 다룰 수 있는 최고의 무기라고 가르쳤다. 인간은 한 번 두려움을 맛보면 그 두려움을 준 상대에게 복종하게 된다고. 유죠는 사람들의 표정을 둘러보았다.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일들에 사람들의 눈에는 어느덧 공포가 선명하게 드러나 있었다.

 

  “한 놈 더 나올래?”

 

  유죠가 웃으며 물었다. 그 모습이 지나치게 섬뜩한지 사람들이 주춤거리며 물러났다. 유죠는 칼을 집어넣지 않고 뒷걸음질로 서서히 사람들 틈에서 사라졌다. 이렇게 된 이상 좀 더 빨리 아마쿠사를 향해 도망쳐야 했다.

 

  ‘그런데 만약 저들이 나를 신고해서 아마쿠사에까지 나의 존재가 알려진다면?’

 

  한참을 걷다 든 생각에 유죠는 고개를 애써 털어버리며 안 좋은 생각들을 지워버렸다. 그러나 사람 일은 모르는 법. 거듭 떠오르는 안 좋은 생각들에 유죠는 그만 자리에 주저앉아 양손에 얼굴을 파묻어버렸다.

 

  “신세 한 번 참.”

 

  이제 자신을 뒤쫓는 이들은 없었다. 아무도 자신을 뒤쫓지 않았고, 히닌이 사람을 죽였다고 소리치지도 않았다. 그러나 유죠는 피 묻은 우치카타나를 검집에 꽂을 수 없었다. 유죠는 자조적인 미소를 지었다. 이시다가의 후계에서 사람을 죽인 히닌이 되어 쫓기게 된 지금이 꿈만 같다면 꿈만 같았다. 그러나 지금 이것은 엄연한 현실이 아니던가. 유죠는 피 묻은 칼에서 느껴지는 무게에 검을 떨어뜨릴 뻔했다.

 

  “이것이 검의 무게라는 것인가.”

 

  유죠는 진검을 처음 쥐게 된 날, 사흘 간 진검을 안정적으로 휘두르는 연습을 하느라 손바닥이며 손가락이 뼈가 드러나 보일 정도로 터지고 진물과 고름이 흘렀던 기억을 떠올렸다. 그때도 아버지는 검의 무게라는 것을 강조했다.

 

  “검이 무거운 것은 검을 쥔 자가 자신이 거두는 생명의 무게를 느끼기 때문이다. 검은 어디까지나 살인무기이고, 검을 쥔 자는 아무리 좋게 포장한다 해도 결국 살인자인 법. 그러나 어찌하겠느냐. 그 속에서 생명의 무게를 느끼고 의미를 찾아가는 것이 우리 사무라이들의 숙명인 것을.”

 

  그러나 자신이 어제부터 죽인 이들의 생명이 지닌 의미는 과연 무엇일까. 자신은 과연 그 의미를 찾을 수나 있을까. 무엇보다…… 이래서야 자신을 사무라이라고 할 수 있을까. 유죠는 손으로 칼날을 쓸었다. 피가 굳어진 칼날에 유죠의 피가 섞여들어 더욱더 검붉은빛이 되었다.

 

  “대체 나는 뭐지? 살인에서 의미를 발견할 수 없는 나는 사무라이가 아닌 건가. 그러면 사무라이가 아닌 나는 도대체 뭐지? 그냥 사람을 죽인 히닌에 불과한 건가? 정말 그런 걸까?”

 

  이미 사무라이의 신분을 잃고 히닌이 되기는 하였지만 이시다가의 이름을 버리지 않는 이상은 사무라이라 여기고 있었는데. 그러나 이제는 자신을 사무라이라 여길 수조차 없으리라는 생각에 유죠는 한참을 머리를 감싸고 주저앉아 있었다.

 

  “가자.”

 

  한동안 머리를 감싸고 주저앉아 있던 유죠는 자리에서 일어나 걸음을 옮겼다. 우선은 아마쿠사를 향해 걸어야 했다. 다시 아마쿠사를 향해 걷는 내내 유죠는 자신의 신세에 대해 생각했다. 이시다가의 후계가 이런 꼴이 될 줄 세상 그 누가 알았으랴. 아마 신불들조차 알지 못하였으리라. 유죠는 한숨을 내쉬었다. 세간에서 여인네들의 기구한 팔자를 일컬어 ‘계집 팔자 뒤웅박 신세’라 부른다더니 이제 보니 뒤웅박 신세인 것은 자신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든 까닭이었다.

 

  “이제 보니 계집 팔자가 뒤웅박인 것이 아니라 내 팔자가 뒤웅박이었구나. 내 신세가 바로 뒤웅박 신세였어.”

 

  길을 걸으며 유죠는 끊임없이 칼을 허공에 휘둘렀다. 이미 굳은 피를 떼어내려는 듯 의미 없는 동작을 계속하며 유죠는 자꾸만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어쩌다 자신이 일곱 살도 되지 않은 어린아이까지 죽여야 했단 말인가. 유죠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탄식했다.

 

 ※

 

  그렇게 유죠는 며칠을 걷고 또 걸어 사츠마의 선착장에 도착해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갔다. 배를 타기 위해 선착장으로 가는 며칠 동안 유죠는 혹시 사람들이 자신이 사람을 죽였다는 사실을 알아볼까봐 먹을 것을 사먹거나 얻어먹을 생각을 하지 못하고 버려진 음식을 몰래 훔쳐 먹었다. 개중에는 제법 먹을 만한 것들도 있었지만 도저히 먹지 못할 음식들도 있었고, 그때마다 유죠는 저절로 올라오는 구역질을 참으며 꾸역꾸역 음식을 위장 속으로 밀어 넣었다.

 

  “달이 밝네.”

 

  그러나 그러한 비참한 상황 속에서도 달이 나날이 빛을 더해가는 것은 눈에 들어왔다. 보름이 지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달은 하현이 되기까지 시간이 조금은 남았다는 듯, 아니, 하현이 되기가 아쉽다는 듯 밝은 빛을 잃지 않았고, 유죠는 매일 밝은 달을 보며 위안을 삼았다.

 

  “아마쿠사가 어디인지 아십니까? 아니, 아마쿠사에 다 오기는 한 것입니까?”

 

  유죠의 계산으로는 지금쯤이면 아마쿠사에 도착했어야 했다. 유죠는 마치 달의 신 츠쿠요미미코토에게 묻듯 조심스레 달을 향해 말을 걸었다. 어느새 달이 이지러질 듯 배 옆으로 다가와 짐승 같은 숨소리를 그르렁대며 내뿜기 시작했다. 그것이 마치 이곳이 아마쿠사가 맞다고 말해주는 것 같아 유죠는 뱃전에서 손뼉을 쳐 소리를 내고 절을 올렸다.

 

  “여기는 어디지?”

 

  어느덧 유죠는 배에서 내려 험한 산길을 걷고 있었다. 이 산의 이름이 무엇인지, 얼마나 더 가야 마을이 나올지는 몰랐지만 유죠는 그저 산길을 걷고 또 걸었다. 나무가 지나치게 울창해서인지 달빛이 잘 들어오지 않는 숲은 검은빛을 띠고 있었다. 유죠는 검은 숲 속을 오직 앞만 보고 걸으며 방향을 구분하려 애썼다. 그때였다. 유죠의 눈에 두 개의 토리이(신사의 대문 양 옆에 세워놓은 기둥)가 들어온 것은. 유죠는 서둘러 토리이의 앞으로 다가가 보았다. 언제부터 이곳에 있었던 신사였는지 토리이는 한 눈에 보기에도 무척 낡아보였고, 토리이의 앞에 쳐놓은 금줄도 삭아서 너덜거리고 있었다.

 

  “대체 금줄은 왜 쳐둔 거지?”

 

  금줄은 사람의 출입을, 특히, 부정한 사람의 출입을 막기 위해 쳐놓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이 금줄의 방향은 마치 안에 있는 부정한 것이 밖으로 나오는 것을 막기 위한 것처럼 안에서 밖을 향해 쳐져 있었다.

 

  “설마 무슨 대단한 귀신이라도 봉인해둔 신사인 건가?”

 

  스스로에게도 들릴 듯 말 듯 중얼거리며 유죠는 금줄에 손을 대어보았다. 얼마나 오래된 것인지 유죠의 손이 닿자마자 금줄이 뚝, 하고 끊어져버렸다. 유죠는 토리이를 지나 신사로 들어가 보았다. 작지만 아담한 경내에는 방울들과 신장대, 그리고 신관과 무녀의 옷들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무슨 신사가 이렇게…….”

 

  유죠는 방치된 석등이 늘어서 있는 길을 지나 한 쌍의 고마이누(신전 건물 양옆에 있는 사자상)를 지나쳐 데미즈야(신 앞에 나아가기 전에 몸과 마음의 때를 씻는 곳)로 향했다. 유죠는 데미즈야에서 히샤쿠(대나무로 만든 물푸개. 마치 국자처럼 생겼다.)로 물을 펐다. 폐허가 된 신사답지 않게 물은 깨끗했다. 양손과 입을 씻은 유죠는 배전(참배자들이 손뼉을 치며 복을 기원하는 곳. 새전을 넣는 상자 같은 것이 있는 곳이다.)을 지나 가장 뒤에 있는 본전(제신(신사에서 모시는 신)과 신체(신을 상징하는 대상물)를 모시는 곳)으로 향했다. 본전에 들어선 유죠는 제단 앞에 있는 한 신의 신상을 볼 수 있었다. 나무로 만든 그 신상은 검붉은 옷을 입고 하얀 눈표범을 한쪽 발로 밟고 있었다.

 

  “……!”

 

  유죠는 자신도 모르게 홀린 듯이 다가가 신상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다면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울 얼굴을 한 신은 가늘고 길면서도 휘어진 눈꼬리며 강인해 보이는 눈동자로 주위의 분위기를 압도하고 있었다. 유죠는 자신도 모르게 신상의 앞에 무릎을 꿇고 차례로 손등과 발등에 입을 맞췄다. 자리에서 일어나 신상의 입술에 입술을 가져가며 유죠는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툼벙툼벙 떨구었다. 지금까지의 모든 일들이 오직 이 신을 만나기 위한 일이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로 아름다운 신상을 보며 유죠는 하염없이 울고 또 울었다.

 

  “가미사마.”

 

  유죠는 조용히 신을 불렀다. 대답이 있을 리는 없지만 유죠는 신을 부르고 또 불렀다. 아름다워서. 너무 아름다워서. 차마 눈을 뗄 수 없는 신상을 바라보던 유죠는 끝내 신상을 끌어안으며 미진한 울음을 토해내고 말았다.

 

 
작가의 말
 

 드디어 우리의 두 주인공이 만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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