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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포르피린의 그녀
작가 : 멜로윙
작품등록일 : 2019.10.4

나는 어느 날 병원에서 '포르피린증'이라는 병을 앓고 있는 설유리라는 소녀에게 습격당하게 된다.
포르피린증이란 병은 뱀파이어와 비슷한 증세를 보이는 병이며, 그녀는 조금 더 특별한 증세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무엇이 그녀의 마음에 상처를 낸 걸까, 나는 그녀를 위로하고 변화를 주었다.
그리고, 그녀 못지않게 나 또한 변해가고 있었다.

 
포르피린의 그녀_8화
작성일 : 19-10-13 00:12     조회 : 250     추천 : 0     분량 : 4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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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인생에서 이성과의 첫 데이트 약속을 잡은 난 긴장되는 마음을 꾹 참고 자리에 앉아 있었다.

 

  아직 학교는 1교시도 시작하지 않은 조회시간인데 벌써 이렇게 멍하다니……. 날 이렇게까지 긴장시키는 그녀, 유리는 지금 무얼 하고 있을까?

 

  나처럼 긴장하고 있을까? 아니면 아직 자고 있을까? 어쩌면…….

 

  어쩌면 내 생각을 하고 있을까?

 

  그러다 문득 나 자신에게도 질문이 던져졌다.

 

  나는 유리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 걸까?

 

  가슴 혹은 머리에서 답을 산출해내려 했지만, 애써 생각하지 않고 덮어두었다. 아직은 부끄러웠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하고, 그 감정을 아직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이기도 한 것 같았다.

 

  분명히 이 감정을 인정하게 된다면 나는 유리를 지금까지와 똑같이 대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혼자 그런 마음을 품어버리기엔 아직 빠르다고 생각됐다.

 

  오늘은 눈이 빨리 떠지는 바람에 일찍 준비하고 학교에 나올 수 있었다. 현재 반에는 나밖에 없었지만, 슬슬 한두 명씩 등교할 시간이었다.

 

  “일찍 왔네?”

 

  그 소리는 느닷없이 뒤에서 들려왔다. 말한 이가 뒷자리에 가방을 걸고 착석하는 소리가 들렸다. 목소리로 봐도 자리로 봐도 진하영임을 알 수 있었다.

 

  “응. 안녕.”

 

  “안녕~.”

 

  슬쩍 고개만 돌려서 인사를 주고받고 다시 앞을 보려고 했다. 그녀와는 몸까지 돌려 천연덕스럽게 대화를 할 정도로 친분이 깊지는 않다.

 

  “선물……은 잘 줬어?”

 

  하지만 진하영은 또다시 대화를 시도했다.

 

  앞을 보고 대답하는 것은 묻는 이에게 예의가 아니고, 고개를 돌려 짧게 대답할지라도 진하영이 다시 대화를 시도한다면 그때는 어쩔 것인가. 또 고개만 슬쩍 돌려 대답하기에는 내 쪽에서 힘이 든다.

 

  그렇다고 대화를 끊는 것은 도리에 맞지 않는다. 그녀는 어제 선물 구매에 도움을 줬다.

 

  유리의 웃음은 분명히 진하영의 덕도 있었다.

 

  나는 몸을 조금 돌려 그녀를 보았다.

 

  “응. 덕분에.”

 

  “상대방은, 좋아했어?”

 

  그녀는 책상 위에 턱을 괴고 말했다. 입가는 옅은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눈은 나를 시험하듯 어딘가 진지해 보였다.

 

  “응. 고맙데.”

 

  나는 간결하게 그 정도로만 대답했다. 유리의 행동을 하나하나 꺼내 가면서까지 설명할 필요는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흐응~.”

 

  그녀는 ‘그랬구나.’라는 뜻을 담은 것 같은 저렴한 소리를 냈다. 그 뒤로 침묵이 이어지고 다시 몸을 앞으로 돌리려 했을, 그때였다.

 

  “오늘!”

 

  그녀가 아직 말 안 끝났다는 듯 약간 큰 소리를 내어 내 주의를 끌었다. 그리곤 이렇게 덧붙였다.

 

  “끝나고 시간 있어? 야자 끝나고 시간 있으면 잠깐 시내 안 들를래? 나도 마침 향수가 다 떨어져서 새로 사야 하는데…….”

 

  그러고 보니 그녀에게서 매일 나던 달콤한 향기가 오늘은 나지 않음을 이제야 알아챘다.

 

  그녀는 어제 시간을 내어 약간 억지스러운 내 부탁을 들어주었다. 그렇기에 나도 동행 부탁을 한 번쯤은 들어줄 필요는 있었다.

 

  하지만,

 

  “미안하다. 오늘은 선약이 있어서.”

 

  나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오늘은 유리와의 약속이 있다. 진하영에게는 미안하지만, 선약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내 거절을 들은 그녀의 표정이 잠시 멈춘 느낌이 있었다. 그러더니 눈을 살짝 감고 얕게 웃었다.

 

  “아쉽네. 어제 떡볶이 맛있었는데.”

 

  그것은 한 번 더 먹고 싶었다는 뜻이었을까? 진심으로 아쉬워하는 목소리였다.

 

  이때 옆에서 그늘이 진 것을 느꼈다.

 

  “둘이 어제 떡볶이 먹었어?”

 

  곰이었, 아니, 강지석이었다. 녀석은 더블 팩을 책상에 걸지 않고 내려놓은 뒤, 앉기 위해 의자를 뺏다. 가방을 걸지 않은 이유는 안에 든 덤벨 탓에 책상이 기울기 때문이다.

 

  여기서 잠깐, 뭔가 번뜩였다.

 

  나는 어제 진하영에게 강지석을 팔아 거짓말을 했다.

 

  만약 여기서 그가 ‘나한텐 말도 없더니.’ 라던가, 몰랐다는 것을 밝히는 발언을 해버린다면 그녀는 내가 거짓말을 했음을 알아차릴 것이다.

 

  나는 대화의 화제를 돌릴까, 하고 생각했지만…….

 

  “넌 근 손실 때문에 안 먹는다고 했다면서, 하하, 무슨 보디빌더냐?”

 

  그만 그녀가 선수를 쳐버렸다.

 

  “……? 뭔 소리야? 나 떡볶이 좋아하는데.”

 

  아…….

 

  강지석은 앉으면서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나는 이를 악물고, 진하영의 표정을 천천히 살폈다.

 

  입술을 살짝 벌리고 누구에게도 초점을 두고 있지 않았다.

 

  역시 내 거짓말을 눈치챈 것일까?

 

  아마 여기서 그녀가 생각할 수 있는 상황은 두 가지로 나뉜다.

 

  첫째. 내가 그녀의 입장을 배려해 대충 둘러댔다는 것. 즉, 본인은 정말 향수의 구매에만 필요했을 뿐이라는 것.

 

  둘째. 자신과 동행하고 싶어 그럴싸한 거짓말을 만들어냈다는 것.

 

  ……하지만 후자는 가능성이 없었다. 나는 진하영이 아닌 다른 이의 선물을 사버렸기 때문이다.

 

  이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제 와서 거짓말에 대해 사과하는 행위조차도 그녀에게는 무례한 행동이라고 생각됐다.

 

  나는 사과할 수 없었고, 진하영 또한 무엇도 묻지 않았다.

 

  그녀는 그저 묵인하고 눈을 감았다. 그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눈꺼풀이 조금 떨리고 있었다.

 

  강지석도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인지한 듯 내게 뭔 상황이냐는 눈빛을 보내왔다.

 

  미안하다. 네겐 잘못이 없다.

 

  “진~하~영~!”

 

  그때, 누군가 진하영의 이름을 요란하고 길게 부르며 달려왔다. 진하영과 같이 다니는 것을 몇 번인가 본 적 있는 다른 반 여학생이었다.

 

  “너 어제 육상 연습 왜 빠졌어? 코치님이 과자 파티도 한다고 했었잖아! ……뭐야, 너 왜 그래? 야! 어디가?!”

 

  “화장실.”

 

  진하영은 고개를 푹 숙인 채 교실을 빠르게 나갔다.

 

  급작스러운 상황에 휩쓸려 아연한 그녀의 친구도 황급히 따라 나갔다.

 

  ……진하영은 육상 연습을 빠져 혼날 것을 각오하면서까지 나를 따라와 준 것인가.

 

  자신의 친구들과 과자 파티를 포기하면서까지 시간을 내서 내 억지스럽고 갑작스러운 부탁을 받아준 것인가.

 

  나는 이를 세게 무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나 자신이 너무 한심스러웠다.

 

  그렇게 서로에게 저질러버린 서툰 거짓말은, 서로의 앞에서 너무나도 온도가 다른 모습으로 드러났다.

 

  그날 수업시간에 자도 진하영이 날 깨우는 일은 없었다.

 

  쉬는 시간에 한 번 그녀에게 사과를 했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다시는 나한테 그런 거짓말 하지 말아줘.”

 

  나는 미안하다는 말밖에 할 수 없었다.

 

 

 5

 

  어쩌면 오늘 하루 정도는 진하영과 동행해주는 것이 이치에 맞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 와서 그녀에게 뭐라고 말한단 말인가. 어쩔 수 없이 유리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다음날 혼날 것을 각오하고 학교를 나왔다.

 

  학생들이 야간 자율학습 시간을 도망치는 일은 날마다 흔하게 있는 일이다.

 

  하지만 선생님들도 부모님께 매번 전화를 걸기가 부담되고, 눈치 또한 상당히 봐야 할 것이다.

 

  그래서 도망쳐도 다음날 약간의 체벌이 있을 뿐 집에 알려지는 일은 없다고 알고 있다.

 

  버스를 타니 어제 진하영과 앉았던 자리만이 비어있었다.

 

  나는 그곳에 앉지 않고 서서 시내까지 이동했다. 입에 침도 안 바르고 거짓말을 한 자신에게 주는 벌이었다.

 

  오늘은 어제보다 차가 좀 밀리는 감이 있었다. 지나가다 보니 충돌 사고가 일어난 현장이 보였다.

 

  꽤 지연된 탓에 어제보다 두 배 이상의 시간이 걸려 시내에 도착했다.

 

  시간을 보니 6시 반이 넘어 있었고, 하늘은 완전히 꺼지진 않았지만, 햇빛은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어쩌면 유리는 이미 도착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문자는 와있지 않았다.

 

  빠른 걸음으로 큰길에 가까워지자 입구 주위에 놓인 벤치에 앉아 있던 사람이 일어나 머리 위로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나는 처음에 그녀가 유리가 맞는지 구별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 시선은 분명 나를 향하고 있었기에 그곳으로 갔다.

 

  멀리서 유리라고 단숨에 구별하지 못한 이유는 그녀가 검은 마스크와 모자를 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좀 늦었네?”

 

  “미안. 오는 길에 사고가 나 있어서 좀 막혔어.”

 

  먼저 약속을 권해놓고 늦는 꼴이라니, 최악이었다. 다행히 그녀는 별로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다.

 

  “헉, 많이 다쳤을까?”

 

  그녀는 마스크 위에 손을 얹으며 사고에 대해 진심으로 걱정하는 눈빛을 했다. 정말 행동 하나하나에서 착한 마음씨가 전해져왔다.

 

  “그보다 너 사실 좀 유명하다던가, 그런 거야? 못 알아봤잖아.”

 

  “응? 아…… 모자랑 마스크 때문에? 이건, 음…….”

 

  진지하게 어떤 대답을 할까 고민하는 그녀. 근데 그 시점에서 이미 핑계라는 게 밝혀진 것 같지 않니?

 

  뭐, 그녀 나름의 숨기고 싶은 무언가가 있는 거겠지.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그녀와 지내다 보면 언젠가 알게 되지 않을까, 하고 지금은 억지로 궁금해하지 않기로 했다.

 

  “됐어. 나중에 말해줘. ……우선, 갈까?”

 

  “어, 응!”

 

  손이 스치는 간격으로 발걸음을 맞춰 우리는 대로를 가로질렀다.

 
작가의 말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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