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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윤슬
작가 : 차운
작품등록일 : 2019.10.5

보통 청춘이라 하면 찬란한 혹은 빛나는 모습을 떠올린다. 마치 햇빛 또는 달빛을 받아 반짝반짝 빛나는 저기 저 앞 바다의 윤슬처럼. 하지만 현실에서의 청춘은 그리 반짝이지도 찬란하지도 않다. 되려 일찍 메말라 버린 꽃잎들처럼 생명력을 잃거나 무기력한 모습이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버린 혹은 버려진 청춘들은 다들 어디에 있는 것인가. 나는 그것이 궁금했다. 소설 윤슬을 통해 여러 청춘들의 얼굴을 그려보고 싶었다. 그 한없이 슬픈 얼굴들을...

 
제7화 백발의 노인
작성일 : 19-10-11 15:42     조회 : 216     추천 : 1     분량 : 4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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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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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꼬르륵.

 배가 고프다. 이렇게 한참 생각하는 시점에서 배는 고프다는 게 뭔가 우습다. 사람이 아무리 슬프고 힘든 일이 있어도 때 되면 배가 고프고 배가 고프면 뭔가를 채워 넣어야 한다. 엄마가 살아있었을 때 내가 밥투정을 하면 언제나 외할머니가 했다는 말을 들려주었다.

 “밥이 빌러 안 간다.”

 맞는 말이다. 어른들 말은 틀린 말이 하나도 없다. 그러므로 나는 지금 무언 갈 채워 넣어야 한다. 서점 지하 1층에 음식점이 있지만 가격만 비싸고 맛은 더럽게 없다. 밖으로 나가서 돌아다녀 보기로 한다. 오늘 운동화를 신고 나와서 다행이지 괜히 멋 부린다고 구두라도 신고 나왔으면 큰 일 날 뻔 했겠다. 월요일인데도 거리에 사람이 많다. 지나가다 팔 다리가 없는 사람이 바닥을 기며 찬송가를 틀어놓고 구걸하는 모습을 본다. 나는 애써 그 사람을 못 본 채 하며 지나간다. 찝찝한 기분이 든다. 저렇게 아픈 사람들을 나쁜 인간들이 이용해서 구걸을 시키고 어느 시간이 되면 봉고차 같은데 실어서 데려간다고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다. 물론 모인 푼돈도 그 나쁜 인간들이 다 가져간다고. 그 말을 들은 이후로 나는 불구의 사람들을 봐도 못 본 채 하고 지나친다. 갑자기 식욕이 사라진다. 눈에 띄는 카페에 가서 가볍게 커피랑 빵이나 먹자하는 기분으로 뚜벅뚜벅 걸어간다. 카페 안에 들어오니 고소하고 달콤한 빵 냄새와 향긋한 커피향이 가라앉은 기분을 조금은 풀어준다.

 “따뜻한 아메리카노 한잔이랑 모카빵 하나 주세요.”

 “네. 진동벨 드릴테니 가지러 오세요.”

 어째서인지 카페에서 일하시는 분들은 대개 말끝에 웃음을 살짝 얹은 듯하다. 하긴 나도 레스토랑에서 일할 때 영업용 미소를 짓긴 하지.

 드르륵 드르륵

 진동벨이 울린다. 진동벨 소리를 들으니 갑자기 또 급하게 허기가 진다. 얼른 일어나 커피와 빵을 가져온다. 자리에 앉아 뜨거운 커피를 한 모금 마신다. 역시 기분이 다운됐을 땐 커피가 최고다. 빵을 한입 베어 물고 자연스럽게 주변을 휘이 둘러본다. 대부분이 20대로 보이는 여자 손님인데 개 중에 뜨문뜨문 머리가 살짝 벗겨진 아저씨들도 보인다. 여자 손님들은 하나같이 성형을 한 건지 눈은 똥그랗고 코는 오똑하고 입술은 도톰하다. 그리고 거의가 턱이 뾰족하다. 우리나라가 성형으로는 세계 최고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여기가 강남역이라서 더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얼마나 다들 비슷하면 강남미인이라는 단어가 생겨났을까. 조금 안타까운 기분이 든다. 나는 개인적으로 쌍커풀 없는 눈에 인상이 조금 옅은 동양적인 얼굴을 좋아해서 그런지 판에 박은 듯한 아가씨들을 보면 하나도 예쁘다는 생각이 안 든다. 성형을 혐오 한다던가 그런 정도는 아니지만 원래 사람은 태어날 때 다 저마다 다른 얼굴로 태어나고 그 얼굴 생김 자체가 그 사람만의 매력인건데 다들 천편일률적인 미를 지향하고 얼굴에 칼을 댄 다는 게 어느 부분에서 조금 잔인하고 무섭게 느껴지기도 한다.

 뭐 남의 얼굴에 감놔라 배놔라 하는 건 아니지만 안타까운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한입 두입 빵을 우적우적 먹다보니 어느새 빈 접시만 덩그러니 놓여있다. 한 모금 정도 남은 커피를 마저 마시고 이제 어디를 가볼까 생각한다.

 생각한다. 생각한다. 갈데가 없구나...

 이럴 땐 특별한 취미 하나 없는 내가 조금은 한심하게 느껴진다. 아르바이트를 할 때를 제외하곤 하는 일이란 자기 전에 맥주를 한 캔씩 한다는 것, 쉬는 날 서점에 들러 책 구경을 하는 것. 그리고 틈 날 때마다 짬짬이 그 책들을 읽는 것. 그리고 공모전에 응모할 소설을 쓰는 것. 이게 전부다. 간단히 말하면 소설 쓰고 책 읽고 맥주마시고 그게 전부란 얘기. 이렇게 재미없는 일상에서 쓸모 있는 글이 나 올수 있을까 하는 의문마저 든다. 하지만 딱히 내 간소한(평범한) 생활에 불만은 없다. 나는 맥주를 조금 마시고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내 삶이 무의미 하지만은 않다는 체감을 스스로 한다. 그나저나 이제 어디 가서 뭐하지? 월요일이라 몇안되는 친구들한테 문자를 해봐도 다들 일하고 있겠지? 그래도 혹시 모르니 제일 친한 은희한테 문자라도 해 봐야겠다. 문자를 보낸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바쁨’ 이라는 답장이..그래 바쁘구나 바쁘겠지. 물어본 내가 바보구나. 그래도 나는 굴하지 않고 한마디 더 적어 보낸다. ‘모처럼 쉬는 날인데 할 일이 없다. 서점은 이미 다녀옴. 카페도.’

 또 얼마 지나지 않아 문자가 온다. 이번엔 그나마 좀 긴 문장.

 ‘오랜만에 등산은 어때? 글 쓰려면 체력도 중요하니까. 너 산도 좋아하잖아.’

 은희한테 문자 보내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 오랜만에 등산을 하자. 은희말대로 작가에겐 체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흔히 사람들이 생각할 때 작가는 편하게 앉아서 글만 끄적이면 다 된다고 생각하는데 그건 정말 잘못된 생각이다. 오랜 시간 글을 쓰려면 무엇보다 체력이 뒷받침돼야 가능하니까. 오죽하면 하루키는 매일 달리기를 한다고 까지 말하겠는가. 그게 아무 이유도 없이 하는 말이 아니라는 걸 보통의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이해해줬으면 좋겠다. 어쨌든 오늘은 산을 타자. 강남역에서 가까운 곳이면 아차산이 좋겠다. 전에도 한번 가본 적이 있으니 길 잃을 위험도 없고. 13정거장이면 도착이니 거리도 적당하다. 아차산으로 가는 전철 안에서 나는 여느 때처럼 음악을 들으며 사람들을 관찰한다. 내 상상력만으로는 부족한 부분을 실제의 살아있는 인간들을 통해서 얻는다. 일종의 캐릭터 수집이라고나 할까? 글을 쓰기로 마음먹은 이후로 나는 무의식중에 무엇이든 관찰하는 습관이 생겼다. 실제로 이런 습관이 소설을 쓸 때 꽤 유용하다는 것을 체감했기 때문에 계속 이런 습관이 몸에 배도록 했지만 처음에는 꽤나 애를 먹으며 익혔다. 하지만 이때 조심해야 할게 한 가지 있다. 물건이나 풍경은 뚫어지게 쳐다봐도 문제가 없지만 사람을 볼 때는 최대한 무심하게 별 관심 없다는 듯 휘익 쳐다봐야한다는 것. 그러지 않다가는 자칫하다 이상한 사람으로 오해를 받기 일쑤다. 특히 엄마들과 함께 있는 예쁜 어린아이라면 더 더욱 조심할 것. 잘못하다가는 유괴범으로 오해 받을 수도 있으니까.

 지금은 월요일 오후 1시.

 평일 점심시간 치곤 전철 안에 사람이 꽤 있는 편이긴 하지만 특별히 눈에 띄는 매력적인 캐릭터는 아직 없다. 겨울이라 그런지 대부분 패딩점퍼 차림인데 드문드문 보이는 여자분들만 어디 중요한 약속에라도 가는 건지 그리 두껍지 않은 갈색코트차림에 예쁜구두까지 신고 빨간 목도리를 두르고 있다. 어린아이들은 마치 인형옷을 입혀 놓은 것처럼 알록달록 색색의 상하의를 입고 귀여운 털모자까지 쓰고 있다. 털장갑도. 그때 내가 앉은 자리 오른편에서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유유히 백발의 한 할아버지가 의기양양하게 걸어와 내 앞에 선다. 내가 자리를 양보하려 일어서려고 하자 할아버지가 말씀하시길.

 “씻-다운 플리즈. 마이 프린세스.”

 순간 나는 흠칫하고. 백발 할아버지의 의외로 강한 팔힘을 느끼며 나도 모르는 사이 마이 프린세스가 되어 살며시 자리에 앉았다. 드디어 발견!

 나는 자리에 앉은 김에 최대한 무심한 눈으로 할아버지를 휘익(순간포착이 중요하다)훑는다. 백발의 머리에 검은 썬글라스, 분홍 고무장갑을 떠올리게하는 핑크색 정장세트에 흰색 백구두. 이 모든 것들의 화룡정점은 할아버지의 쪼글쪼글한 두 귀에 달린 나비모양의 귀걸이 한 쌍. 옷과 장신구에 너무 시선이 팔려 깜박하고 넘어갈 뻔 했지만 할아버지의 얼굴을 자세히(빠르게)보니 약간 분칠을 한 듯 목과 얼굴색이 확연히 다르고 입술도 살짝 분홍빛을 띤다. 할아버지는 요즘말로 핑크색 덕후인 것인가.

 나이는 60대 후반 정도로 밖에 안 보이는데 머리는 한 올도 빠짐없이 하얗다. 아직 젊음의 기운이 가시지 않은 얼굴과 흰 머리가 묘한 조화를 이룬다. 주름진 오른손엔 샐러리맨들이 들 법한 새까맣고 네모난 가방이 들려져 있는데 그 안에 도대체 뭐가 들어있는지 너무 궁금하다. 할아버지한테 넋을 잃고 있다가 보니 어느새 건대입구 환승역이 돼서 내릴 준비를 하려고 일어서는데 할아버지도 내릴 참인지 문 쪽으로 가서 가만히 선다.

 “지금 내리실 역은 건대입구. 건대입구역입니다...”

 안내멘트가 나오자마자 지하철이 천천히 서고 사람들이 우르르 빠져나간다. 그 틈에 끼어 겨우 나가다 두리번거리고 보니 할아버지는 언제 사라진 건지 모습을 감췄다. 아쉬운 마음에 가는 내내 두리번거렸는데도 어디에도 할아버지의 모습은 없다.

 “아쉽다..”

 나도 모르게 혼잣말을 중얼거리고 7호선 군자역으로 가서 1정거장을 지나 드디어 아차산역 도착. 단체모임에서 등산을 오신건지 아주머니 한 무리가 왁자지껄 수다를 떨며 산 초입으로 향한다. 아차산은 한번 온 경험이 있던 터라 나도 무리 없이(사실 등산복 입은 분들만 잘 따라가면 길 잃을 위험은 전혀 없다.)천천히 산을 오른다. 온통 초록으로 뒤덮인 산이면 좋겠지만 겨울이라 대부분 가지만 남은 황량한 풍경이 왠지 모르게 스산하기 까지 하다. 그래도 소나무만은 푸른 잎을 뽐내며 표표히 서있다. 역에서 사온 생수 한 병을 조금씩 나눠 마시며 산을 타는데 군데군데 쉼터에 앉아 이런저런 음식들을 펼쳐놓고 하나하나 해치우고 있는 아주머니들을 보니 덩달아 식욕이 돋는다. ‘이럴 줄 알았으면 김밥이라도 한 줄 사올걸...’

 애써 외면하고 산을 오르는데 갑자기 길이 두 갈래로 나뉜다. 기억 속엔 분명 이런 길이 없었던 것 같은데 어느새 혼자가 된 나는 오른쪽으로 가야할지 왼쪽으로 가야할지 망설이다 ‘오늘은 무조건 오른쪽이다!’하는 심정으로 조금 울퉁불퉁한 산길을 걷는다. 쭉 가다보니 저 멀리로 핑크색 컨테이너 박스가 하나 보였다. 그리고 정면에 보라색 페인트로 ‘인생타로’라는 네 글자가 버젓이 적혀져 있었다.

 
작가의 말
 

 보통 청춘이라 하면 찬란한 혹은 빛나는 모습을 떠올린다. 마치 햇빛 또는 달빛을 받아 반짝반짝 빛나는 저기 저 앞 바다의 윤슬처럼. 하지만 현실에서의 청춘은 그리 반짝이지도 찬란하지도 않다. 되려 일찍 메말라 버린 꽃잎들처럼 생명력을 잃거나 무기력한 모습이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버린 혹은 버려진 청춘들은 다들 어디에 있는 것인가. 나는 그것이 궁금했다. 소설 윤슬을 통해 여러 청춘들의 얼굴을 그려보고 싶었다. 그 한없이 슬픈 얼굴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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