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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그리고 그 후
작가 : 전Yeah
작품등록일 : 2019.10.7

2014년, 갑작스레 일어난 사태 이 후 인류는 멸망하였다. 그로부터 1년 후, 사태에서 살아남은 이설전은 변해버린 환경과 그것에 적응해가는 자신에게 회의감을 가지면서도 꿋꿋하게 살아가는 자신의 모습에 괴리감을 느끼기 시작하다 우연히 한 여자를 만나게 되는데... 이미 멸망한 세계에서 살아남으려는 자들의 일상을 쓰는 아포칼립스 일상물.

 
03 - 이렇게 파란 하늘 아래에서 (2)
작성일 : 19-10-10 23:44     조회 : 210     추천 : 0     분량 : 14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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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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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맙소사. 설마 정말? 설전은 자신의 머릿속에 떠오른 가설의 결론을 부정했다. 아닐 것이다. 다른 방법도 있을 텐데 일부러 그런 선택을 한다는 건 정상적인 판단, 아니 인간으로써는 절대 나올 수 없는 판단이었다. 아무리 힘들다지만 그건 선택지에서 제외했어야만 하는, 절대로 선택해서는 안 되는 그런 끔찍하면서도 살벌한 결론이었다.

 

  그러나 머릿속 한 구석에는 그의 혼란을 나무라는 울림이 뇌를 흔들었다. 정상적인 판단이라고? 지금 네가 봐왔던 상황들은 정상으로 보였는가? 정신 차려. 이미 너는 답을 찾아냈어. 이미 결론에 손을 뻗었고 그것을 움켜쥐었지. 근데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지? 어떻게 행동할 지를 판단하지 않고 저게 정말 옳은 지 아닌 지의 가치관을 탐구하고 있나?

 

  설전의 눈빛이 바뀌었다. 흔들렸던 동공은 차갑게 식었으며 크게 심호흡을 하자 숨소리도 차분해져갔다. 내뱉는 숨이 유독 길었다. 설전은 소총을 매만졌다. 그래, 결론은 이미 나왔다. 저 녀석들이 어떤 놈들인지, 왜 여기까지 왔는지.

 

  이미 내놓은 대답을 애써 부정하려 했을 뿐.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가, 어떻게 그런 짓을 할 수가 있는가, 그런 질문과 대답은 자신이 낸다고 해서 어떻게 변하는 건 아니다. 가치관이란 그래, 한 장의 휴지조각에 불과하다. 필요할 때 뜯어 쓰지만 결국은 휴지통으로 떨어지지. 지금의 문제는 그 버려지는 휴지 조각이 어디로 향하고 있냐는 것이다. 그들이 버린 휴지 조각의 내용물과 방향은 위험하다. 그렇기에 설전은 지금부터 저들을 ‘적’으로 간주하기로 결정했다.

 

  설전은 자신의 가슴 쪽에 위치한 수류탄 주머니에 손을 얹었다. 만약 적들을 확실히 제압하려 한다면 이걸 사용하는 것이 가장 실용적일 것이다. 들고 온 수류탄의 개수는 2개. 수류탄의 살상력을 생각한다면 하나를 사용해도 크게 손해를 볼 개수는 아니다. 허나 2개 밖에 없는 수류탄을 여기서 쓴다고? 설전은 머뭇거렸다.

 

  그는 다른 방도를 생각해 보았다. 수류탄을 사용하지 않고 소총으로 제압하려 한다면? 기습으로 2명 까지는 제압이 가능할지 모른다. 그러나 인원수는 저 쪽이 압도적으로 많다. 기습적으로 연발을 쏜다고 해도 적이 확실하게 죽을 지는 미지수다.

 

  다시금 손이 수류탄 주머니로 올라간다. 이걸 쓰는 것이 ‘현재 가장 실용적인 방법’이긴 하다. 그러나 사용하고 난 후를 책임 질 수 있는가. 설전의 마른 침이 목구멍을 넘어간다. 만약 이것을 사용한 이후 괴물들과 맞닥뜨린다면? 소수라면 싸워 볼 만 하지만 떼로 몰려올 경우에는 그야말로 최악의 경우, 사망. 죽음에 이른다. 가장 강력한 카드를 써버렸다는 건 그만큼 리스크가 크다는 걸 의미한다.

 

  어떻게 할까? 불확실한 미래를 위해 현재를 내던질 수 있는가. 안 올지도 모르는 최악의 상황을 스스로 정해 놓고 목에 올가미를 채우는 모습이 설전의 상상 속에 그려져 나갔다. 으득. 이를 가는 소리가 예민한 설전의 귀를 자극하며 그를 더욱 신경질적으로 만들었다.

 

  안쪽이 부산스럽다. 새어나오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아무래도 저 쪽 일행 중 여자 두 명이 담배를 피러 나가는 듯 보였다. 설전은 문 입구에 살짝 고개를 내밀어 안쪽의 동태를 살핀다. 단발머리의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여자애가 담배 한 갑을 꺼낸다. 머리를 뒤로 묶은 포니테일의 여자가 담배 한 대를 받아 들고선 밖으로 나선다.

 

  남자 한 명이 신경질을 내며 얼른 나가라고 성화를 부렸다. 단비라고 불린 단발머리 여자아이는 알았다고 하곤 욕을 지껄이며 밖을 나선다. 아무래도 지희와 단비라는 여자는 저 두 명인 듯 보였다. 아무렇지 않게 담배를 태우며 담소를 나누는 그녀들의 뒷모습을 보니 설전은 자신도 모르게 헛구역질이 나올 뻔 했다.

 

  “얌마. 사람으로 고기도 굽는 새끼가 타르랑 니코틴이 싫어서 레이디를 내쫓냐?”

 

  “시X아 생각해봐라. 고기는 먹는 거고, 담배는 먹으면 안 되는 거고.”

 

  “지랄이 풍작이네. 클클. 임마, 원래 사람 고기도 먹으면 안 되거든?”

 

  “기름장 찍어서 먹는 놈이 말은 드럽게 많네.”

 

  남자 하나가 고기를 집어 그릇에 만들어진 기름장을 두른다. 고기는 남자의 입으로 들어가고 남자는 우물우물 씹으며 맛을 음미하는 듯 보였다. 설전의 총구가 가볍게 떨렸다.

 

  “근데 보스는 어지간히도 쟤네 둘을 믿나 보네. 도시락 하나 딸려 보내주고.”

 

  “임마, 보스 깔들 아니냐. 어지간하면 배신도 안하고 신뢰하고 있으니까 여기 먼데까지 보내지.”

 

  “근데 좀 웃긴 게 반대 아니냐? 보통 못 믿을 새끼를 멀리 보내고 아끼는 놈 가까운데 보낼 텐데?”

 

  “그래서 멀리 보낸 그 새끼가 도망치면 어쩌려고? 그러면 식량으로도 못써.”

 

  “아니, 그 믿은 새끼도 도망쳐버리면 어쩌려고?”

 

  “몰라, 알 바냐? 그런 거 까지 일일이 생각 하지마. 머리 아퍼. 그냥 있는 그대로 살 면 되는 거야.”

 

  킬킬거리는 웃음소리가 식당 안을 울렸다. 설전의 총구는 서서히 고기를 우물거리는 남자의 머리로 향했다. 소총을 견착하고 한 쪽 눈을 감는다. 조정간을 단발에서 연발로 조정한다. 가늠쇠가 남자의 머리로 향하고 설전의 눈앞에서 정조준 된다. 검지가 방아쇠 고리 안쪽으로 들어오고 살포시 방아쇠의 안쪽을 어루만진다.

 

  설전은 머릿속에서 연발 사격의 동선을 그린다. 고기를 우물거리는 남자는 설전의 시선을 중심으로 가장 오른 쪽에 위치해 있다. 그 왼 편에는 설전을 등지고 다른 남자가 앉아 있으며 또 그 왼편에는 단비에게 신경질을 냈던 남자가 못마땅한 듯 여자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설전은 방아쇠를 당기며 총구를 왼 쪽 방향으로 옮기는 상상을 해본다.

 

  남자들이 피를 흘리며 쓰러진다. 몇몇은 중상을 입었어도 움직이는 게 가능하다. 그러나 바로 반격은 불가능. 오히려 소리를 듣고 들어오는 여자 두 명이 더 위험하다. 공격 이 후 재빨리 몸을 숨긴다고 해도 자신의 위치는 머지않아 노출 된다. 함부로 이동했다간 오히려 자신의 위치를 빠르게 제공하는 멍청한 짓 밖에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틈을 노린다. 저 쪽이 무슨 일인지 어리둥절해 하며 상황을 파악하려는 그 순간을 노려 저격한다. 먼저 나이가 있어 보이는 포니테일, 지희라는 여자 쪽을 노린다. 머리에 정조준. 방아쇠를 당기자 뇌수가 튀며 지희의 뒤통수가 박살이 난다.

 

  그럼 단비 쪽은? 당황할까, 아니면 침착하게 이쪽을 노릴까. 전자라면 수월하겠지만 후자라면 위험하다. 역시 재빨리 사각지대로 몸을 숨긴다. 이제 저 쓰러진 3명 쪽에서도 무엇인가 기별이 올 것이다. 그렇다면...

 

  갑자기 허공을 찢으며 들리는 날카로운 비명소리에 상상이 멈춘다. 무슨 사태인지 파별하기도 전에 별안간 총성이 들린다. 그것도 여러 발. 남자들이 벌떡 일어나며 설전의 조준점에서 사라진다. 동시에 설전은 총을 거두며 벽 뒤편으로 몸을 숨긴다. 무슨 일이지? 비명소리는 여성의 것이었다. 비명의 주인은 밖으로 나간 여자들 중 하나일 것. 가슴 깊숙한 곳에서 불길한 긴장감과 묘한 불안함이 설전의 발밑에서 기어 올라왔다.

 

  싸늘한 무언가가 설전의 가슴에 꽂힌다. 가슴에서부터 차가운 무언가가 점차 퍼져나가며 설전의 몸을 얼어붙게 만들었다. 높은 언성과 욕설이 들려오더니 곧이어 익숙한 총성이 다시 여러 발 울린다. 그의 머릿속에서 최악의 상황이 떠오른다.

 

 

 

  단비가 눈물을 흘리며 괴로워하고 있다. 괴물에게 깔려있는 그녀의 모습은 사자에게 먹히기 직전인 가젤의 모습과 같았다. 비정상적으로 굵은 팔과 다리를 이용해 마치 4족 보행하듯 엎드려서 다니는 괴물들이 도로 위를 점령하고 있었다.

 

  지희와 단비가 저항하기 위해 쏜 총에 맞아 쓰러져 있는 괴물 2마리, 지희를 향해 서서히 다가오는 3마리. 쓰러진 단비를 깔고 앉아있는 한 마리. 합해 총 6마리였다. 그 중 단비를 깔고 앉은 한 마리는 등에 난 4개의 갈고리 팔 중 2개를 이용해 그녀의 팔을 꿰뚫고 있었으며 턱이 빠진 듯 커다란 입에서 나온 기다란 혀는 그 끝을 그녀의 목에 사정없이 찌르고 있었다.

 

  그녀의 눈자위는 하얗게 뒤집어졌고 입에선 하얀 거품을 물고 있었다. 괴로워하는 듯 보이지만 어찌 보면 정신이 나간 듯 이상한 소리를 내는 단비. 지희는 그런 단비를 구하기 위해 총을 쏘아대지만 총알이 몸통을 정확히 꿰뚫어도 괴물은 끄덕도 하지 않은 채 자신이 할 일을 계속했다.

 

  비명소리를 듣고 남자 일행이 달려 나왔다. 그들은 괴물을 보자마자 욕설을 한 바가지 쏟아 부은 다음 지희에게 무슨 일이냐며 다그쳤다. 그들은 지희가 입을 열기도 전에 괴물들을 향해 일제히 사격을 개시했다. 마구 난사되는 총알이 괴물들의 몸 곳곳에 박혔지만 괴물들은 꼼짝 하지 않았다.

 

  괴물 한 마리가 남자에게 달려들었다. 남자의 총이 괴물의 복부를 향해 총알을 뱉어냈지만 괴물의 갈고리가 남자의 눈에 정확히 명중했다. 남자는 비명을 지르며 갈고리와 괴물의 머리를 향해 총을 쏴 갈겼다. 갈고리에서 피가 터지더니 괴물의 몸에서 떨어져나갔다.

 

  그와 동시에 머리에 총을 맞은 괴물이 앞으로 쓰러지면서 갈고리로 남자의 복부를 찢어버렸다. 남자는 배에서 멈춘 갈고리를 매만지다 찢어진 복부의 상처에 피를 왈칵 뿜어대며 앞으로 쓰러졌다.

 

  단비를 깔고 앉은 괴물을 제외한 나머지 괴물 두 마리도 각각 남자 두 명에게 달려들었다. 둘은 침착하게 괴물의 머리를 조준했고 괴물이 갈고리를 휘두르기 직전 그들의 머리에 총알을 여러 개 박아 넣었다. 총을 맞은 괴물들은 처음엔 비틀거리며 버텼으나 계속 되는 사격에 네 발로 기다 결국 쓰러졌다.

 

  이제 남은 건 단비를 공격하는 한 마리. 괴물의 시선이 단비에게서 벗어나 자신에게 총을 겨눈 남자 둘에게 향한다. 괴물이 단비를 찌르고 있던 혀와 갈고리를 거둬들이며 임전태세를 취한다. 그러나 괴물의 움직임보다 방아쇠를 당기는 것이 더 빨랐다. 총알은 괴물의 머리를 관통하고 괴물은 단비의 몸에 자신의 피를 흩뿌리더니 이내 단비 위로 쓰러졌다.

 

  이런 다급하게 일어난 격전을 틈타 설전은 어느새 식당 안으로 들어와 주방 안쪽에서 바깥상황을 살피고 있었다.

 

  “의외로 저글링들을 빠르게 처리하는군. 처음 당한 새끼는 당황해서 제대로 대처하지 못해 사망했지만 이 후엔 다른 녀석들은 확실하게 머리를 노려 괴물들을 완벽히 제거했어. 녀석들 확실히 산전수전 다 겪은 새끼들이다. 만약 내가 난입해서 어설프게 실수라도 저질렀다면 자칫 잘못했다간 내가 당했을 수도 있었겠는 걸? 이럴 때 때마침 나타나다니 괴물들이 쓸모가 있을 때도 다 있군.”

 

  그리고 만약, 저 녀석들이 없었다면 저 괴물들의 타깃은 바로 나였겠지. 설전은 이 말을 내뱉지 않고 목구멍 뒤로 꿀꺽 삼켰다. 저글링. 설전은 저 괴물들을 그렇게 불렀다. 생김새와 행동이 게임에 나오는 저글링이란 몬스터와 너무도 흡사했기 때문이었다.

 

  특히나 인간의 신체를 베이스로 했음에도 저글링이란 괴물들의 신속한 기동성은 정말 엄청났다. 자동차보단 느리지만 추측으론 시속이 20km이상 까지 나오는 놈들이다. 만약 복귀 중에 저 녀석들과 만났다면? 설전은 고개를 가볍게 저었다.

 

  쓰러져있는 저글링들은 총 6마리. 그 중 남자 하나를 죽인 저글링 한 마리는 쓰러진 채로 꿈틀거리다가 방금 확인 사살을 위해 쏜 총을 머리에 맞은 뒤 그대로 움직이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지희와 단비에게 먼저 쓰러진 저글링 2마리도 확인 사살을 위해 총을 맞았다. 이로써 저글링 6마리는 전부 전투불능, 죽음이 확실해졌다.

 

  남자들이 다시 한 번 괴물들에게 총을 쏘며 욕설을 토해낸다. 지희라는 여자는 울면서 단비를 향해 달려간다. 그런 그녀를 보자 설전은 입을 가렸다. 속이 부글거렸다. 더러운 무언가가 배와 가슴 사이에서 심하게 격동하는 느낌이었다. 역겹군. 사람고기를 먹으면서 사람을 걱정 한다는 건가? 설전의 목구멍으로 시큼한 무언가가 올라왔다가 내려간다.

 

  지금이 기회다. 설전의 눈이 다시 반짝인다. 저들이 사태가 종결되었는가, 아닌가에 정신이 팔려있을 때 처리한다. 그들의 주의는 완전히 괴물들과 단비 쪽으로 가있다. 급습을 하려면 지금이다. 어차피 죽이려고 했던 자들이다. 살려둬 봤자 자신에게 있어서 위험요소밖에 되지 않는다.

 

  생각해보면 저들이 행하는 짓은 인간에게는 어찌 보면 가장 끔찍한 죽음일지도 모른다. 괴물에게 먹히지 않고 인간이게 먹히는 죽음.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더 이상의 망설임은 없다. 결의를 마친 설전은 조용히 총을 들어 우왕좌왕하는 남자 중 하나의 머리에 조준점을 잡는다.

 

  괴물들에게 정신이 팔려 있기 때문에 저들이 식당 안을 돌아볼 여유는 없다. 일단 남자들을 처리하고 여자 쪽을 노린다. 어차피 여자 둘 중 하나는 죽은 것 같고 또 다른 하나는 그 여자를 돌보느라 어찌할 바를 모른다. 실질적인 전력은 저 남자 둘. 할 수 있다.

 

  그러나 설전은 혹시나 싶어 여자 쪽을 잠시 힐끗 쳐다봤다. 그리고 설전의 동공이 커진다.

 

  “시X! 모두 튀어!”

 

  설전의 외침에 남자 두 명이 놀라면서 식당 안을 바라본다. 지희도 몸을 떨며 이상을 호소하는 단비를 안고 있다 깜짝 놀라며 고개를 목소리가 나는 쪽으로 돌렸다. 남자 하나가 뭐하는 새끼냐며 총구를 들이댔지만 설전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지희 쪽을 바라보며 계속해서 목소리를 높였다.

 

  “튀라고 미친X아! 그건 이제 인간이 아냐!”

 

  지희가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설전을 바라보았다. 남자가 무슨 소리야! 너 뭐하는 새끼야! 총 안내려놔! 라며 언성을 높인다. 설전의 말에 지희는 문득 단비를 바라보았다. 단비의 떨림이 멈췄다.

 

  “언....니....”

 

  정신을 차린 듯 단비가 지희를 바라보며 말하자 지희가 단비를 안으며 괜찮냐고 묻는다. 그런데 상태가 이상했다. 어쩐지 체격이 좀 커진 느낌에 피부도 색이 변하고 까칠해지고 있었다. 지희가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더니 다시 연신 괜찮냐며 묻는다. 단비는 아무 말 하지 않고 지희를 안았다. 그리고 기다란 혀를 내밀어 지희의 목에 쑤셔 넣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고 설전이 이를 갈며 말했다.

 

  “나 말고 저기를 쏴 새끼들아! 지금 죽고 싶어?!”

 

  설전의 다급한 외침에 남자의 시선이 그제야 단비와 지희로 향했다. 그러나 거기엔 단비는 없었다. 단발머리의 여자아이는 어느새 체격이 성인 남자의 두 배 가까이 부풀어 올랐으며 피부는 마치 뱀이나 악어와 같은 파충류의 비늘처럼 변해가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어깨가 지나치게 넓어졌으며 팔이 비정상적으로 길어졌고 손가락과 손도 웬만한 대형 선풍기만큼 거대해졌다. 그건 더 이상 사람의 모습이 아니었다. 그녀가 사람이었다는 것을 증명해 주는 것은 거대화해서 찢어진 옷도 아닌 아직 그녀의 머리에 붙어있는 머리카락 뿐 이었다.

 

  단비의 입에서 나온 기다란 혀가 지희의 목에서 꿈틀대고 있었으며 지희의 눈동자엔 흰자위만 보이고 점차 괴물처럼 변해가는, 찢어져가는 입에선 침으로 보이는 타액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 모습은 아까 괴물에게 깔려 혀에 찔려있던 단비가 보여준 끔찍한 몰골과 똑같았다.

 

  이윽고 서로를 아끼던 두 명은 서로 사이좋게 인간의 모습이 아니게 되었다. 거기에는 사람 키보다 더 큰 괴물 두 마리가 이상한 소리를 내며 그르르- 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남자 하나가 총을 들어 단비를 향했다. 그러나 그가 방아쇠를 당기기도 전에 단비는 남자의 상체를 휘어잡아 들었다.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린다. 다른 남자 일행이 단비에게 총을 갈겼지만 허사였다. 쏜 총알은 바위에 맞은 듯 그녀의 피부를 꿰뚫지 못하고 그녀의 피부에 박히거나 튕겨져 나갔다.

 

  단비는 들고 있던 남자의 하체를 다른 손으로 잡더니 자기 머리 위로 들어 그대로 남자를 잡아당겼다. 소름 끼치는 소리가 들리더니 남자의 상체와 하체가 끊어지면서 척추가 튀어나왔다. 그러나 이내 곧 척추가 끊어지고 내장이 튀어나오면서 남자의 붉은 피가 비 오듯 단비에게 쏟아졌다.

 

  마지막으로 남은 남자는 멍한 표정으로 총을 떨어뜨렸다. 바짓가랑이엔 방뇨자국이 축축하게 남아있었다. 남자는 그 자리에서 털썩 주저앉았다. 실소를 터트리고 있는 남자 앞에 지희가 다가왔다.

 

  지희가 기다란 혀를 내밀며 남자의 머리를 노리자 남자는 큰 소리로 미친 듯이 웃기 시작했다. 지희의 혀가 바늘처럼 변하며 남자의 머리에 박힌다. 남자는 눈물과 콧물, 침을 흘려대며 미친 듯이 웃더니 떨어뜨린 총을 주워 자신의 턱에 총구를 갖다 댄다.

 

  “시X.”

 

  총성이 울리고 남자의 머리 위로 아름다운 선 분홍빛 무지개와 말랑한 뇌 파편이 분사되었다.

 

 

 

  단비가 자신이 분리시킨 남자의 시체를 머리부터 씹기 시작했다. 단비와 똑같은 모습으로 변한 지희도 총으로 박살난 남자의 머리를 혀로 핥아대고 있었다. 끔찍한 광경이었다. 마치 사냥을 마친 육식동물이 초식동물의 시체를 탐하는 모습. 그것은 도시의 풍경과 너무나 이질적인 광경이었다.

 

  도로 곳곳이 새빨간 피로 흥건하게 젖어있었다. 아스팔트에 스며드는 붉고 검은 핏물은 시체를 떠나 점점 그 자리를 벗어나려 했다. 그녀들의 식사흔적을 보며 설전은 그녀들을 향해 총을 조준하였다.

 

  “하필 둘 다 자미라로 변하다니. 차라리 감염이 되어 갈 때 변이되기 전에 확실히 죽일 수 있었을 텐데. 괜히 남자 둘을 먼저 없애려다... 젠장할.”

 

  구시렁거리던 설전이 방아쇠를 당기자 총구에서 빛이 번쩍였다. 연발로 쏘아진 총알들은 남자의 머리를 핥고 있는 지희의 관자놀이를 뚫고 나갔다. 일순간 지희가 비틀거리더니 이내 중심을 되찾았다. 지희와 단비가 설전이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아니, 정확히는 설전과 시선이 마주쳤다.

 

  이를 가는 설전을 향해 단비와 지희가 식당으로 달려들었다. 식당의 뒷문으로 도망친 설전은 건물 밖으로 나온 뒤 건물을 향해 사격 자세를 취했다. 순간 건물 벽이 무너지면서 징그러울 정도로 거대한 손이 모습을 드러냈다.

 

  “역시 이 정도 가지곤 택도 없어! 완전히 머리의 기능을 정지시키지 않으면...”

 

  말이 끝나기도 전에 건물 벽이 완전히 무너지고 지희와 단비의 모습이 나타났다. 설전은 일순 동요 없이 곧 바로 지희의 머리를 저격했고 그대로 방아쇠를 당겨 지희의 머리를 맞추었다.

 

  총알들은 지희의 왼쪽 눈을 중심으로 눈과 그 주변을 뚫고 뒤통수를 통해 빠져나갔다. 단단해진 피부 탓인지 뒤통수에 발생한 탄흔 면적은 그리 넓지 않았다. 그러나 설전을 더욱 심란하게 만든 것은 그럼에도 지희가 바로 쓰러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설전이 이렇게 머리에 집착하는 것에는 이유가 있다. 괴물의 대부분은 머리를 날려버리면 그대로 죽어버린다. 설령 머리에 상해를 입었다 하더라도 간혹 움직이는 놈들이 있지만 머리 자체가 사라지면 대체로 모두 전투불능상태가 되어 죽어간다.

 

  아까의 저글링들도 머리에 심한 데미지를 받자 그대로 죽어버린 것이 그 증거다. 하지만 이것뿐이라면 설전이 이리 조급하게 움직이지 않을 것이다. 그가 이리 머리에 집착하는 큰 이유는 아직 그녀들이 완벽하게 괴물로 변이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설전이 자미라라고 부르는 이 괴물은 어깨와 팔이 비정상적으로 커지고 피부가 바위마냥 단단해진다. 특히 머리 부분은 어깨와 머리가 일체화 되서 마치 울트라맨에 나오는 괴수 자미라와 비슷하게 변하기 때문이었다. 그가 이 괴물을 자미라라고 부르는 이유도 거기에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그녀들의 피부는 파충류 비늘처럼 딱딱해지기 시작했지만 어깨는 아직 머리에 붙지 않았다. 그 말은 아직 머리는 변이가 덜 되어 몸통과 달리 피부가 완벽하게 방어가 되지 않고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렇기에 설전이 쏜 총알이 지희의 관자놀이를 관통하고 눈을 노리고 쏜 총알이 그녀의 뒤통수를 뚫을 수 있었던 것이다.

 

  만약 어깨와 머리의 변이가 완료되어 일체화가 되었다면 지금의 설전에겐 절망적인 상황이 만들어진다. 그전에 해치워야 한다. 지금 설전에겐 그저 이 계획만이 머릿속을 헤집고 다닐 뿐이었다.

 

  어떻게 하지? 라는 생각을 마치기도 전에 단비가 달려든다. 단비의 거대한 손이 크레인에 매달린 철구마냥 설전에게 떨어진다. 단비가 내려친 자리에 거대한 소리가 나면서 조그마한 흙먼지가 일어났다.

 

  시멘트길이 금을 내며 갈라졌으나 단비가 휘두른 손 위에는 흙먼지가 조금 묻었을 뿐 아무런 이상도 없었다. 다행스럽게도 거기엔 설전의 짓눌린 시체 따윈 없었다. 내려치는 순간 설전은 옆으로 구르며 간신히 몸을 피했기 때문이다.

 

  그 뿐만 아니라 앉은 자세로 착지하면서 그는 단비의 오른쪽 눈을 정확하게 조준하고 있었다. 설전의 총알들이 단비의 오른쪽 눈을 뚫는다. 단비가 오른 손을 설전을 향해 휘두르지만 그는 뒤로 점프하면서 아슬아슬하게 그 공격을 피해낸다.

 

  그러나 이내 다시 앞으로 점프한다. 1초도 지나지 않은 시간, 설전이 뒤로 점프해 있었던 그곳에 지희의 손이 그 자리를 짓눌렀다. 숨 고를 틈도 없이 단비의 거대한 입이 쩍 하고 벌어지면서 설전의 머리를 노리며 달려든다. 고개를 숙이며 아슬아슬하게 회피, 이후 단비의 가랑이 사이로 재빠르게 굴러가며 그 자리를 탈출한다.

 

  여자 가랑이를 이런 식으로 기게 될 줄이야. 가벼운 농담을 내뱉으려 했지만 가쁜 숨소리에 그냥 들어가고 만다. 어느새 지희가 단비의 뒤 쪽으로 돌아가서 설전에게 손을 내리친다. 완전 파리 취급이군. 공격해오는 지희의 옆 쪽으로 몸을 날리며 첫 번째 공격을 피한 설전이 느낀 감상이었다.

 

  두 번째 공격을 하려는 지희의 어깨를 조준해 총을 쏟아 붓는다. 거대한 어깨와 팔이 맞닿아있는 부분을 총알들이 뚫고 지나가자 지희의 공격은 그 자리에서 멈췄다. 역시 머리와 붙지 않은 어깨부분도 완벽히 변이가 되지 않은 것이다.

 

  기회다. 설전은 공격을 멈춘 지희의 머리를 향해 총을 조준했다. 방아쇠를 당기자 소총에서 불을 뿜었다. 여러 번 울리는 총성과 함께 지희의 눈에서부터 머리가 서서히 벌집이 되어간다. 포니테일의 머리가 붉게 물든다.

 

  비틀거리던 거대한 몸뚱이는 결국 큰 소리를 내며 길바닥으로 쓰러졌다. 머리에 피를 내뿜는 지희의 모습을 보고나서 설전은 그제야 참아왔던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지희와 단비가 벽을 뚫고나와 지희가 쓰러지기까지 걸린 시간은 고작 2분 내외. 긴 시간이 지난 것 같지만 고작 2분이 약간 지난 시간이었다.

 

  하지만 마냥 안심할 때가 아니다. 바로 단비의 공격에 대처해야 한다. 설전은 총구를 옮겨 단비를 찾으려 움직였다. 그러나 너무 늦었다. 지희가 쓰러진 다음 설전의 눈앞에 보이는 건 이미 자신을 향해 손을 휘두르는 단비의 모습이었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설전이 서있던 자리에서 튕겨져 나갔다. 마치 가만히 있던 공을 쳐낸 듯 단비의 손 짓 한 방에 설전의 몸은 너무나 쉽게 식당 안으로 다시 들여보내졌다. 설전의 몸이 식당의 식기와 식탁들을 부수며 쓰러졌다.

 

  단비가 천천히 자신이 날려 보낸 먹잇감을 향해 다가간다. 그 먹잇감은 머리에 피를 흘리며 식당 안에 널브러져있었다. 먹잇감은 자리에서 꿈틀대며 천천히 식당 밖으로 기어나가려 했다. 단비는 그를 잡으려 손을 뻗는다. 저승사자의 손 길. 그 손에 닿는 순간 죽음은 확정 된다.

 

  순간 무엇인가가 설전의 품에서 벗어나 단비의 바로 아래까지 굴러온다.

 

  “엿이나 먹어 10새야.”

 

  그 후 그의 움직임은 신속했다.

  식당 카운터를 넘는데 1초

  식당 밖까지 나가는데 1초

  그리고 옆 건물 안으로 숨어드는데 1초.

 

  약 3초 후 뒤늦게 단비가 설전을 쫓으러 가려는 순간 그녀의 아래로 굴러간 수류탄이 터지며 단비의 다리와 몸통을 모조리 찢어놓았다.

 

 

 

  흙먼지가 식당 안을 가득 메웠다. 건물 벽에 등과 머리를 기대며 앉아 있던 설전은 멍하니 하늘을 쳐다보고 있었다. 흙먼지가 섞인 공기가 설전의 입으로 들어갔다가 나온다. 가벼운 기침이 그의 간지러운 목을 해소한다.

 

  몇 번의 기침이 끝나고 설전은 머리를 만져보았다. 끈적하고 기분 나쁜 감촉이 느껴졌다. 그는 그 감촉의 근원지를 찾아 머리를 더듬거렸다. 머리에서 뜨거운 느낌과 함께 손에서 따뜻하고 촉촉한 감각이 전해졌다. 설전은 주머니에서 손수건 하나를 꺼내 시야를 가리지 않게 눈 주위의 피를 닦은 다음 찾아낸 상처 부위를 지혈하기 위해 손수건을 머리에 묶었다.

 

  깊은 한숨을 내쉰 그는 다시 기침을 몇 번하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나 일어 선 순간 온 몸에서 금이 가는 듯한 통증이 그를 습격했다. 아까의 날려진 충격 때문인가, 아니면 무리해서 뛰쳐나온 영향인가. 설전은 이를 악 물더니 그 격통이 진정되길, 아니 적응되길 기다렸다.

 

  신경조각들이 하나하나 끊어져 제각기 노는 기분이 드는 그런 고통. 온 몸이 유리조각이 되어 부서지는 느낌과 동시에 몸이 엄청나게 무거워져 자칫 잘못하면 다시 쓰러질 것만 같았다. 그럼에도 설전은 이를 악물며 버텼다. 그는 천천히 한 발을 내딛었다. 발이 지면에 닿자 발에서부터 시작된 격통이 머리까지 이어졌다.

 

  용케도 잘 도망쳤네. 이런 몸이었는데 어떻게 움직인 거지. 설전은 스스로를 대견해하면서도 온 몸이 부서지는 격통을 이겨내며 한 발 한 발 내딛고 있었다. 그도 알고 있었다. 단비가 자신을 손으로 쳐낸 그 순간 몸은 이미 정상이 아니었다는 것을. 식당 안에서 쓰러져 있을 때 그는 순간이지만 잠시 정신을 잃고 있었다.

 

  눈을 떴을 때는 이미 단비가 코앞까지 다가온 상황. 총으로 반격하기에는 시간도, 자세도 불가능 했었다. 그렇다면 방법이 있는가. 참으로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상황에 까지 놓인 설전은 눈앞에 닥친 자신의 죽음을 실감하지 못하고 있었다. 날려진 충격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었을까. 어떤 이유에서든 그가 죽음을 실감하지 않은 덕분에 그는 냉정해 질 수 있었다.

 

  몸은 아직 움직일 수 있다. 고통이 온 몸에 퍼지지는 않았다. 그러나 여기서 도망친다 한들 이미 몸은 한계다. 도망쳐봤자 더 이상 총질은 불가능 하다.

 

  그렇다면? 단비가 손을 뻗는 찰나의 순간. 수류탄의 안전핀은 제거 되고 설전의 품을 떠났다. 그리고 설전은 죽음을 놔두고 도망친다. 죽음을 향해 손짓하던 단비는 설전이 떠나보낸 죽음에 의해 죽었을지 모른다. 그 결과를 확인하기 위해 설전은 고통을 참아내며 식당 안으로 향했다.

 

  설전은 식당 앞에 다다랐다. 흙먼지가 차츰 잠잠해지더니 이윽고 격전의 처참한 모습을 과감 없이 보여주기 시작했다. 식당은 천장이 내려앉았고 주변 벽은 수류탄의 폭발과 파편으로 인해 허물어졌다. 기둥은 무너지지 않아 다행히 건물 자체가 폭삭 주저앉는 일은 없었다. 바닥에는 단비의 살덩어리들이 흙먼지를 맞으며 핏물 속에서 징그럽게 꿈틀거리고 있었다.

 

  살덩어리들을 발로 짓이기며 설전은 앞으로 향했다. 그가 멈춘 곳엔 내려앉은 천장에 깔린 단비의 모습이 있었다. 그녀의 하반신은 형체조차 없어졌으며 상반신도 너덜너덜해서 제대로 움직일 수조차 없어보였다. 그나마 멀쩡한 건 끔찍하게 변해버린 그녀의 얼굴뿐이었다.

 

  “피부가 존나 바위같이 단단해도, 바위마저도 쳐부수는 인간병기 앞에선 무용지물이지.”

 

  냉정하게 독설을 내뱉는 설전을 향해 단비가 가냘픈 울음소리를 내었다. 꽤나 작고 옅었지만, 무겁고 깊은 소리였다. 그녀는 손을 들어 보이려 했으나 너덜너덜한 어깨가 조금 움찔했을 뿐 손은 움직여지지 않았다. 다시 한 번 그녀의 울음소리가 설전의 귀에 울렸다. 그 울음소리가대형 마트 앞에서 죽어가던 한 괴물의 단말마와 오버랩 된다.

 

  설전은 아무 말 없이 깊은 숨을 내쉬더니 총을 들었다. 그는 그녀의 눈을 향해 총구를 들이밀었다. 괴물의 눈이 자신을 조준하고 있던 설전과 마주쳤다. 몇 초 간 정적이 이어졌다. 그리고 그 정적을 깬 건 설전의 총이 낸 파열음.

 

  그리고 그 소리를 끝으로 단비는 더 이상 움직이지 않게 되었다.

 

 

 

  식당 밖으로 나온 설전은 다시 건물 벽에 서서 기댄 채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고통은 익숙해졌는지, 아니면 진정이 되었는지 더 이상 몸이 부서질 듯한 아픔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나 몸이 무거운 건 여전해서 전투 조끼와 K-2 소총이 몸을 짓누르는 것 같은 느낌은 가시지 않았다. 다시 깊은 한숨을 내쉰다. 설전은 머리를 만져본다. 꾸덕하다고 표현해야 할까. 손수건의 굳은 피가 그런 느낌을 주며 피가 멎고 있음을 알렸다.

 

  앉아서 쉴까, 라고 생각한 설전이지만 이번에 앉으면 다시는 못 일어날 것 같아서 그만두었다. 집을 향해 가려는 순간 그의 머리에 한 가지 생각이 스쳤다.

 

  만화책을 가지고 갈까?

 

  헛웃음이 나왔다. 이런 상황에서 만화책이라니. 괴물들이 더 있을지도 모르는 상황인데. 빨리 집으로 복귀하기에도 빠듯한데, 내 머리가 진짜 어떻게 된 거 아닌가? 설전은 고개를 흔들었다. 지금 들고 있는 총조차도 무겁다고 느껴질 정도인데 만화책을 가져간다고?

 

  다시 헛웃음이 나온다. 그러면서도 설전은 만화책을 두고 온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한 권 정도는 괜찮겠지.

 

  천천히 걸음을 옮기던 중 인기척을 느낀다. 위기를 느낀 설전의 머리가 재빨리 몸 전체에 경고신호를 보낸다. 머리론 이미 자세를 취한 채 경계태세를 갖췄지만 몸은 요지부동이다.

 

  몸은 인기척이 느껴진 순간 그 자세에서 멈춘 채로 미동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젠장, 뭐지? 설전은 당혹스러웠다. 괴물인가? 설마 다른 무리가 존재했던 것? 설전은 절망에 빠졌다. 몸이 움직이지 않는 것보다 인기척이 나는 쪽으로 고개조차 못 돌릴 정도로 몸이 망가져 있었다는 점이 그를 힘들게 했다.

 

  설전은 이를 갈았다. 억지로 고개를 인기척이 있는 방향으로 돌리려 했다. 꽉 틀어 막힌 뚜껑을 따 듯 설전의 머리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설전은 녹 슨 태엽을 억지로 감을 때 나는 삐걱 소리가 그의 목에서 들리는 듯 했다. 그렇게 힘겹게 그의 시선이 향한 곳은 아까 그가 봤던 승합차였다. 순간 그의 머릿속에서 지나쳤던 한 사람이 생각났다.

 

  “여자는 어떻게 되었지?”

 

  경직되었던 몸이 점차 풀리는 기분이 든다. 설전의 걸음이 조심스레 승합차로 향한다. 그러나 묵직한 몸이 말을 제대로 들을 리 없었다. 저벅거리는 소리가 고요한 도로 위에 울렸다. 허나 그럼에도 승합차 쪽에선 아까와는 달리 어떠한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총을 들었다. 만약을 위해서다. 만약 이미 감염된 괴물이라면 조준까지는 무리더라도 그냥 차를 향해 연발로 갈겨버릴 생각이었다. 드디어 승합차의 내부 가까이에 다다랐다.

 

  깨진 창 안으로 상태를 살펴본다. 그 안에는 실오라기 한 올 걸치지 않은 한 여자가 엎드려 고개를 숙인 채 머리를 붙잡으며 떨고 있었다. 추워서인지, 아니면 무서워서인지 모르겠지만 마치 공포에 질린 새끼 강아지처럼 그녀가 떠는 모습은 묘하게 애잔한 느낌을 주었다.

 

  설전이 깨진 승합차 창문 너머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엉덩이 쪽이 설전을 향해 있어서 설전은 야릇하면서도 쑥스러운 감정이 그의 시선을 어지럽혔다.

 

  순간 몸을 떨고 있던 그녀도 무엇인가를 느꼈는지 고개를 들어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어지럽게 돌아다니던 남자의 시선과 붉게 충혈 된 여자의 눈이 마주쳤다.

 

  이것이 영혜와 설전의 첫 만남이었다.

 
작가의 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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