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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기타
대망 : 아마쿠사의 신
작가 : 한연화
작품등록일 : 2019.9.20

"제가 원하는 것은 전국을 일통하고 강한 군주가 되어 백성들을 덕으로 교화하는 것입니다. 그 길에는 지독한 피비린내와 가시밭길만이 있겠지요. 이런 저라도 받아주실 수 있겠습니까?" 끝없는 전란이 이어지는 전국시대의 일본. 천하를 무로 덮는 운명을 타고났으나 누나에 의해 사람이되 사람이 아닌 자, 히닌이 되어 쫓겨난 오와리국의 후계 유죠와 인간들의 전장에서 태어난 전쟁의 여신 아마쿠사미코토의 전국일통을 향한 일대기가 시작된다. 격랑의 역사 속, 그들의 삶과 사랑은 과연 어찌 될 것인가?

 
아마쿠사로(2)
작성일 : 19-10-10 07:17     조회 : 267     추천 : 0     분량 : 7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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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날 아마쿠사미코토는 자신의 선대를 베지 못했다. 그날, 그녀는 처음으로 패배라는 것을 겪었고, 패배라는 것이 무엇인지, 어떤 결과를 불러오는지 뼈저리게 느껴야만 했다. 그리고 그날, 그녀는 자신의 짧았던 행복을, 자신이 사랑했던 사람을, 그리고 자신의 삶의 의미를, 자신의 모든 것이었던 하루후사를 잃었다.

 

  “학익진.”

 

  아마쿠사미코토의 옆에 선 하루후사가 성 앞에 진을 친 이시다가의 군대를 내려다보며 한숨을 쉬었다. 그간 하루후사와 함께 병법을 공부해온 터라 이제는 진법에 대해서도 제법 알게 되었기에 아마쿠사미코토는 마사토부가 굳이 학익진을 펼친 이유에 대해서 하루후사와 같은 생각을 할 수 있었다.

 

  “그만큼 자신 있다는 것인가.”

 

  동시에 같은 말을 입에 올린 아마쿠사미코토와 하루후사가 서로를 돌아보았다. 총대장을 중심으로 원형의 진을 만들어 양 측면을 이용해 적을 공격하는 모습이 마치 학이 날개를 펼친 것 같다 하여 학익진이라 불리는 저 진법은 주로 많은 수의 아군으로 적은 수의 적을 상대할 때 사용하는 진법이었다. 그러한 특성 상, 학익진은 주로 탁 트인 평야냐 해상에서의 회전(會 戰)에서 쓰였고 이런 공성전에서 사용되는 일은 극히 드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천혜의 요새인 이곳 나고야 성을 상대로 학익진을 펼친다는 것은 그만큼 마사토부가 이번 전쟁에 자신이 있다는 뜻이 아닐 수 없었다.

 

  “모두 대열을 정비하고 자리를 지켜라!”

  “자리를 지켜라!”

 

  성벽 위의 망루에서 성 아래까지 군령(軍 令)이 전달되었다. 아마쿠사미코토는 다시 우마지루시 뒤에 있는 신을 노려보았다. 그러고 보니 자신이 여태 만난 신들 중 저렇게 나이든 신이 있었던가? 멀리에서도 주름진 눈가와 입가가 훤히 보여 아마쿠사미코토는 잠시 고개를 갸웃거렸다.

 

  “보통 신은 나이가 들지 않는데. 저렇게 늙은 신은 처음 보는군.”

 

  아마쿠사미코토는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리며 허리에 찬 전동에서 화살을 여러 개 꺼내 입에 물었다. 곧 이시다군 측에서 공격을 알리는 군령이 내려졌는지 원의 가장 바깥쪽, 학의 몸통에 해당하는 부분에 속하는 선봉대가 성문과 성벽을 향해 다가오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해자에 도개교를 내리고 성벽을 기어오르는 이들에게 불 붙은 나뭇단과 폭약이 든 대나무통이 쏟아졌고, 화살이 비처럼 쏘아져 내렸다.

 

  “도개교를 태워라!”

 

  곧, 도개교에 기름이 부어지고 불 붙은 나뭇단이 떨어졌다. 그러나 나무로 된 도개교가 타오르는 동안에도 이시다군의 선봉대는 긴 대나무사다리를 성벽에 걸쳐놓았고, 성벽 위에서는 불 붙은 나뭇단과 폭약이 든 대나무통, 그리고 큰 돌을 던지는 것과 동시에 장창 아시가루들이 창날로 사다리를 밀어 떨어뜨렸다.

 

  “당황하지 마라!”

 

  이시다군 측의 후미에서 엄호사격을 하는 것인지 화살이 성벽 위로 쏟아져 내렸다. 아마쿠사미코토는 까득, 하고 이를 갈며 화살을 쏘았다. 아마쿠사미코토의 화살이 깃대를 들고 신호를 보내는 이들을 말에서 떨어뜨리고 각 조의 조장으로 보이는 이들의 갑옷과 투구 사이의 틈을 꿰뚫었다.

 

  “하아앗!”

 

  그와 동시에 학의 몸통이 갈라지고, 우마지루시의 양옆에서 마사토부를 지키는 이시다가의 직속 사무라이들을 엄호하듯이 도열해 있던 유격대가 성벽을 향해 돌진해왔다. 그들은 불타는 해자를 건너 성벽을 기어오르기 시작했고, 이시다가의 유격대의 출현에 당황한 이쪽 군사들은 서로 얼굴만 쳐다보며 대응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미친!”

 

  그 모습을 바라보다 말고 아마쿠사미코토는 욕지기를 내뱉으며 까득, 소리가 나게 이를 갈았다. 저 정도에 겁을 먹는 것이 무슨 아시가루이고 사무라이란 말인가. 장창을 들고도 대응 한 번 제대로 하지 못하고 베어져가는 아시가루들을 보던 아마쿠사미코토가 그 중 제 목숨만은 악착같이 지키려는 어떤 이를 향해 화살을 쏘았다.

 

  “내가 여기서 움직이지 못하니 화살로 경고한다! 내 손에, 신의 손에 죽기 싫으면 네 동료들을 독려해서 최선을 다해 싸워라!”

 

  곧 아마쿠사미코토와 하루후사가 함께 있는 망루에도 이시다가의 군사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아마쿠사미코토는 검을 빼들고 제게 달려드는 적들을 베어내기 시작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칼을 휘둘러 몇 사람이고 그 목을 베어내며 허공에 혈화(血 花)를 피워내는 아마쿠사미코토의 모습은 무척 아름다웠다.

 

  “하루후사!”

 

  아마쿠사미코토는 하루후사를 찾았다. 제 앞을 막아서고, 뒤를 노리며 달려드는 적들을 베어내는 내내 아마쿠사미코토는 연신 눈으로 하루후사를 찾았다.

 

  “하루후사!”

 

  아마쿠사미코토는 연신 하루후사를 불렀다. 곧, 유격대에 이어 원의 측면, 학의 날개를 이루고 있던 이진과, 그 뒤에 있던 삼진의 일부가 차례로 성벽에 사다리를 대고 넘어왔다.

 

  “아마쿠사.”

 

  혼전의 한가운데에서 아마쿠사미코토를 돌아본 하루후사가 앞을 막아서는 적들을 베어내며 다가왔다. 서로의 등을 마주 대고 선 두 존재는 서로의 등을 통해 전해져오는 온기를 느낄 수 있었다. 하루하사가 말했다.

 

  “이제 정말 틀린 것인가?”

  “틀리기는 뭐가 틀렸다는 것이냐! 내가 있지 않으냐.”

 

  사실, 전세를 뒤집을 수 없음은 아마쿠사미코토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 이 상황에서는 어떻게든 하루후사를 지켜야 하기에 아마쿠사미코토는 틀렸다는 말을 할 수 없었다.

 

  “내가 지켜주마, 하루후사. 그러니 틀렸다는 말은 하지 마라.”

 

  문득, 아마쿠사미코토는 화살을 들어 우마지루시를 향해 겨눴다. 그러나 화살이 미처 마사토부를 향해 날아가기도 전에 칼날 모양을 한 신의 힘이 화살을 내리쳐 반 토막을 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그 힘이 아마쿠사미코토를 향해 쇄도해 들어오기 시작했다.

 

  “큭.”

 

  아마쿠사미코토는 신의 힘을 막아내지 못하고 가슴팍에 상처를 입었다. 피하려면 얼마든지 피할 수 있었으나 행여 하루후사를 노리는 것일까봐 자신의 몸을 최대한으로 펼쳐 신의 힘을 그대로 받아내버린 까닭이었다.

 

  “하, 하아, 쿨럭.”

 

  아마쿠사미코토는 가슴팍을 부여잡고 검은 피를 뱉어냈다. 하루후사가 깜짝 놀라 아마쿠사미코토를 부축하려 들었으나 그녀는 손을 내저어 괜찮다는 말을 대신했다.

 

  “꽤 아프네.”

 

  아마쿠사미코토는 비틀거리는 몸의 중심을 애써 바로잡으며 검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그와 동시에 머릿속이 웅웅 울리며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확실히 약해지기는 약해졌나보다. 어린 신조차 일격에 죽이지 못하다니.”

  “뭐?”

 

  아마쿠사미코토는 이 목소리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이것은 분명히 이시다가의 조상신 행세를 하고 있는 저 신이 보낸 전언일 터였다. 아마쿠사미코토는 신의 머릿속으로 목소리를 흘려보냈다.

 

  “그렇게 약하디 약한 분께서 왜 이런 짓을 하셨대?”

  “나이도 어린 녀석이 참으로 깜찍하구나. 너, 내가 누구인 줄은 알고 있는 것이냐?”

  “그야 이시다가의 조상신 행세나 하는 잡신이겠지. 그런데 그전에 하나만 묻자. 이렇게 해서 너에게 떨어지는 이득이 도대체 뭐냐?”

  “이득이라…….”

 

  신이 잠시 말을 멈췄다. 아마쿠사미코토는 눈앞으로 달려드는 서너 명의 적들을 베어내며 신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그야, 내 자리를 지킬 수 있지 않겠느냐.”

  “네 자리? 네 자리라고?”

  “그래, 그리고 내 젊음도 다시 찾을 수 있고 말이다.”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이냐. 이미 늙어빠진 주제에 어떻게 절음을 찾는다고. 아, 혹시 신도 노망이 나는 것이냐? 내가 신이 노망났다는 소리는 들어본 적이 없어서 말이다.”

 

  아마쿠사미코토는 신의 말에 별 미친놈 다 보겠다는 듯이 코웃음을 쳤다. 상식적으로 이미 한 번 늙어버린 존재가 어떻게 젊음을 되찾을 수 있단 말인가. 아마쿠사미코토는 손가락으로 머리 주위에 원을 그려보였다.

 

  “뭐, 신이 노망났다는 소리를 들은 적이 없으니 노망이 난 게 아니라 미쳤다고 해야 맞는 것인가. 하, 정신 좀 차려라. 아니, 상식적으로 생각을 해보면 알 수 있는 일이 아니냐. 이미 한 번 늙어버린 존재가 어떻게 다시 젊어진다고.”

  “그러하냐.”

  “당연히 그렇지 않으냐. 너는 그 옛날 중원의 진시황 얘기도 들어보지 못한 것이냐? 수은을 갖다가 얼굴에 바르면 일시적으로 주름이 사라지고 피부가 팽팽해지는 느낌이 든다 하더구나. 그래서 수은 바르면 젊어지는 줄 알고 계속 바르다 죽었다고.”

 

  하루후사의 서재에서 하루후사와 함께 책을 읽은 것이 이럴 때 도움이 될 줄이야. 그대가 무엇에 관심이 있는지 몰라 함부로 책을 추천할 수 없다며 이것저것 읽어보라 권했던 하루후사 덕분에 아마쿠사미코토는 꽤 다양한 분야의 책을 접할 수 있었고, 그만큼 여러 방면의 지식을 습득할 수 있었다.

 

  “참으로 건방지구나. 사무라이의 측실로 있으면서 기본적인 예법 하나 배우지 못했단 말이냐.”

 

  저게 뭐라는 거야. 아마쿠사미코토는 눈앞에 다가드는 적 하나를 베어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허공에 검을 휘둘러 검날에 묻은 피와 기름을 털어내며 아마쿠사미코토는 하루후사를 향해 눈길을 돌렸다.

 

  “내가 측실이라고?”

 

  아마쿠사미코토는 다시 한 번 자신의 기운을 손끝에 모아 검날 위를 한 번 쓸었다. 곧 아마쿠사미코토의 기운이 붉은 꽃잎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그거 아는지 모르겠구나. 인간들 사이에서는 말이다, 아주 재미있는 이야기가 하나 있다.”

  “그러하냐.”

  “세상에서 가장 못 믿을 게 측실 치마폭이라고.”

  “…….”

  “하지만 나는 아니다. 나는 하루후사의 전부이고, 하루후사는 나의 전부다. 그러니 하루후사는 나를, 나는 하루후사를 믿을 수 있다. 한데 내가 어찌 하루후사의 측실이란 말이냐. 그저 하루후사의 전부일 뿐이지.”

  “…….”

  “기억해둬라. 나는 하루후사의 전부인 존재, 아마쿠사미코토다.”

 

  아마쿠사미코토의 기운이 신을 향해 한데 모여 쏘아져 나가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꽃잎을 마치 표창처럼 쏘아져나가게 한 탓에 그 중 하나가 신이 친 간격을 뚫고 그의 얼굴에 상처를 입혔다.

 

  “역시 다음 대 전쟁신으로 정해진 년이라 그런가. 아직 제대로 자라지도 못한 어린년 주제에 제법이구나.”

  “무슨 소리냐, 그건.”

  “너 설마 신의 세계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는 것이냐?”

 

  자신이 다음 대 전쟁신이라니. 신의 입에서 나온 말에 고개를 갸웃거리다 말고 아마쿠사미코토는 하루후사를 향해 달려들던 서너 명의 적을 베어버렸다. 하루후사가 고맙다는 듯이 미소를 지어보였다.

 

  “신으로 태어난 존재가 신의 세계에 대해 전혀 모른다라. 하긴, 다른 신들과의 교류가 없었다면 그럴 수도 있겠지. 너 정말 다른 신들과의 교류가 없었던 것이냐?”

  “그래.”

  “그렇다면 특별히 알려주마. 나는 너의 선대인 전쟁신 센조노켄노누시미코토라고 한다.”

 

  자신을 센조노켄노누시미코토라고 밝힌 신이 들려준 이야기는 놀라웠다. 신들의 체계는 하급신과 중급신, 상급신으로 나뉘며 그중 상급신들을 제외한 모든 하급신과 중급신들은 후대가 태어나면 선대를 죽이고 그 자리를 차지하는 방식으로 세대교체를 이룬다고 했다. 그렇기 때문에 후대가 태어나 성장하면 선대는 노화가 시작됨으로써 소멸이 가까워 옴을 모든 신들에게 알리게 되는데, 그때 선대가 후대를 죽이면 노화가 멈추고 자신의 자리를 지킬 수 있으나 그렇지 못하면 후대의 손에 죽을 날만을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지금 선대의 전쟁신 센조노켄노누시미코토와 후대의 전쟁신 아마쿠사미코토는 서로가 서로를 죽여야 하는 세대교체의 과정에 접어든 상황이었다. 아마쿠사미코토는 말했다.

 

  “그러냐? 그런데 이걸 어쩌냐. 내게는 그딴 건 아무래도 상관없다.”

  “……?”

  “신의 지위? 그딴 건 그냥 네가 다 가지거라. 젊음? 그것도 그냥 네가 다 가지거라. 대신, 내게서 하루후사를 앗아갈 생각은 하지 마라. 만약 그렇다면 나는 너는 물론이고 세상의 모든 신들을 죽여 버릴 테니까. 그리고 그런 다음에는 나도 자살해버릴 테니까.”

 

  아마쿠사미코토는 마지막 말을 자신도 모르게 입 밖에 내고 말았다. 그 말을 하루후사가 듣고 있다는 것은 생각도 하지 못한 채. 그리고 그 말을 절대로 해서는 안 된다는 것도 모른 채. 그러는 사이에도 적들은 끊임없이 성벽을 넘어 들어왔다. 어느새 삼진의 남은 군사들이 운재를 가져와 성문을 부수기 시작했다. 아마쿠사미코토는 성벽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이미 도개교는 내려져 있었고 이시다가쪽으로 승기가 기울기 시작하고 있었다.

 

  “하루후사.”

 

  아마쿠사미코토는 까득, 이를 갈았다. 하루후사가 아마쿠사미코토를 돌아보며 마치 우는 듯 슬프게 웃어보였다.

 

  “아름답구나.”

  “…….”

  “전장에서의 그대는 무척 아름답다.”

  “하루후사……?”

  “우리가 처음 만난 전장에서도 그러하였고,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이 전장에서도 그러하다. 그대는 전장에 있을 때 가장 아름답다”

  “하루후사…….”

  “대답해라. 혹시 이 전쟁이 그대가 온전히 신의 지위를 얻는 것과 관련이 있는가? 그래서 다른 신이 그대를 노리고 이 전쟁을 일으킨 것인가?”

 

  아마쿠사미코토는 씁쓸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성벽 아래를 한 번 내려다본 하루후사가 두 존재 사이를 가로막는 적들을 베어내며 아마쿠사미코토의 앞에 다가섰다. 어느덧 하루후사의 충복인 키요다 켄조가 피 묻은 검을 들고 두 존재의 주위로 다가왔다.

 

  “아마쿠사.”

  “응, 하루후사.”

  “이런 시를 아는가. ‘저물어가는 하늘 밀려오는 파도 가만히 속삭이네 “이건 운명이에요.”“

  “하루후사……?”

  “그래, 아마쿠사. 이건 운명이다. 이것이 우리의 운명이다.”

 

  하루후사의 표정에 슬픔과 애틋함이 떠올랐다. 하루후사의 눈에서 한 방울 눈물이 툭, 하고 떨어졌다.

 

  “아마쿠사.”

  “…….”

  “부디 죽지 말아라.”

  “하루후사?”

  “죽지 말고 살아남아라. 반드시 내 몫까지 더해 살아남아라. 그를 위해 신이든, 인간이든 죽여야 할 대상이 있다면 그게 누구든지 죽여라.”

  “하루후사!”

  “그리고 나를 기억해주어라. 그대의 전부였던, 그대가 전부였던 나를. 그대가 사랑했던, 그대를 사랑했던 나를. 이 이마다 하루후사를.”

 

  곧 하루후사의 검이 아마쿠사미코토의 가슴을 깊게 그었다. 날카로운 칼날이 몸 안으로 깊게 파고들어왔다 빠져나갔다. 아마쿠사미코토는 가슴에서 불컥불컥 솟구치는 피를 손으로 막으며 무릎을 꿇고 주저앉았다. 그와 함께 하루후사의 칼등이 아마쿠사미코토의 숙인 뒷목을 내리쳤다.

 

  “하루후사…….”

  “켄조, 어서 아마쿠사를 데리고 이 성을 빠져나가라. 너라면 충분히 이 성을 빠져나갈 수 있을 것이다. 어서 가거라. 이것은 너의 주군으로서 내리는 마지막 명이다.”

 

  의식이 점점 희미해져가는 가운데 하루후사의 침중한 목소리가 귓속을 파고들었다. 의식을 완전히 잃기 전, 아마쿠사미코토는 하루후사의 마지막 말을 또렷이 들을 수 있었다.

 

  “그대에게 이런 흉터를 남기는 나를 용서하여라. 하지만 그대를 살리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 신은 쉽게 의식을 잃지 않을 테고, 의식을 잃지 않는 한 그대는 끝까지 나와 함께 싸울 테니까.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 흉터를 보며 늘 나를 기억해줬으면 한다. 그러니…… 내 몫까지 살아남아라. 잘 가라, 아마쿠사. 나의 신, 나의 사랑, 나의 전부. 이 이마다 하루후사가 죽어서도 그대를 사랑할 테니.”

 

 
작가의 말
 

 이번 화는 안예은님의 '달그림자'를 들으며 감상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아참, '저물어가는 하늘 밀려오는 파도 가만히 속삭이네 "이건 내 운명이에요"' 이 시는 제가 쓴 자작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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