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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추리/스릴러
몬스터클럽
작가 : 쇼센
작품등록일 : 2019.9.5

대선을 앞두고 전국에서 끔찍한 연쇄살인 사건이 벌어지고, 뇌신경정신과학자 데이빗 한 박사는 연구소 소장으로부터 뇌스캔을 통한 잠정적 사이코패스 범죄용의자 테스트(몬스터 테스트)의 개발을 종용받는다. 마침 그때 한 프로파일러가 사이코패스테스트의 의무실시를 주장해 대중의 큰 호응을 불러일으키자, 야당 대선후보 이중필은 이러한 분위기를 활용해 ‘몬스터 감별법’을 추진하겠다고 나서 표심을 얻기 시작한다.

한 편 데이빗 한의 장남이자 천재 사이코패스 고등학생인 한명석은 여당 대선후보와 결탁해 전략적으로 소년범죄를 저지르는 <몬스터 클럽>을 비밀리에 조직하고, 군중의 세뇌에 효과가 있는 약물 ‘마리오네트’를 은밀히 유포하는데, 사건성을 의심한 한수형 경위가 그의 뒤를 쫓기 시작하고….

 
#11. 밀담, 음험한 계략
작성일 : 19-10-08 23:08     조회 : 248     추천 : 3     분량 : 102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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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

 “뭘 그렇게 놀라. 못 들었어? 오 전무가 한 박사를 보고 싶어 한다고.”

 갑자기 연구소에서 길 소장이 불러세워 대뜸 한 말에 한 박사는 난감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가 말하는 오 전무란 M테스트의 존재를 이중필 후보에게 알려 자신을 끌어들이게 한 장본인인 유명 제약회사의 간부였다. 이 후보의 전략적 오른팔인 셈이었다.

 “오 전무님이 왜 저를?”

 “그거야 당연한 거 아니야? 오 전무는 이 후보의 숨겨진 오른팔이나 다름없는데. 나는 왜 이제야 부르나 싶을 정도야. M테스트 주역은 자네 아닌가. 역시 당사자를 만나서 격려 좀 해주고 해야지. 이 후보님 당선 여부가 한 박사한테 달렸는데. 안 그래?”

 “제가 무슨!”

 “사실 아닌가. 자네도 신문이나 TV에 온통 M테스트 합법화 논란으로 뜨거운 거 알지 않나. 이 법안의 통과 유무가 아니, 이 법안에 대한 지지율 그 자체가 이 후보의 지지율을 견인하고 있어.”

 “하지만 저는 오 전무님과 만나 할 말이 없습니다.”

 “자네야 할 말이 뭐 있겠나. 묻고 싶은 게 많은 건 오 전무 쪽이겠지. 이 후보께서 직접 챙겨주면 좋겠지만 때가 때이니까 높은 분께선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하실 테고 말이야.”

 “하지만 소장님, 전!”

 한 박사는 선거를 코앞에 둔 예민한 시기에 이 후보의 사람으로 접대 비슷한 것을 받는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잘 알고 있었다. 이 후보와 독대를 한 적도 있고, 그의 핵심 공약인 M테스트의 개발자이니 이중필의 사람으로 여겨진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용건도 없는 제약회사 전무에게 의약품 개발자인 자신이 접대를 받아야 한단 말인가. 이중필, 길 소장, 오 전무까지 똘똘 뭉친 이 거대한 집단이 자신에게 제대로 낙인을 찍으려고 간교한 술책을 부리는 것만 같았다.

 “한 박사, 이제 와서 발 뺄 수 없는 거 알지? 깨끗한 연구자인척 결벽 떠는 건 그쯤 해 둬. 자넨 이제 확실한 이 후보 사람이라고. 이참에 제대로 라인 타서 유망한 아들 미래도 생각해야 하지 않겠나.”

 길명섭 소장은 특유의 기분 나쁜 웃음을 입꼬리에 달고 한 박사의 어깨를 두어 번 두드렸다. 한 박사가 말없이 입술을 깨물었다. 이렇게 될 줄 몰랐던 것은 아니지만 그야말로 정치에 깊숙이 개입하게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 했다. 자신이 개발한 M테스트가 선거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것도 되도록 인식하지 않으려 노력했었다. 그러나 길명섭 소장의 말대로다. 자신은 이미 M테스트 개발자로 이름을 올린 순간부터 이 후보의 사람인 것이다. 순간 훤칠한 장남 명석의 실루엣이 눈앞을 스쳤다.

 “오늘 7시. 여의도 oo회관으로 가. 나는 오늘 불리지 않았으니까, 자네 혼자 가서 잘 대접받고 오게.”

 “네.... 알겠습니다.”

 힘없이 대답하며 고개를 떨군 한 박사의 등 뒤로 어두운 그림자가 악마의 혀처럼 길게 드리워지고 있었다.

 

 여의도 oo회관. 직장인들의 퇴근길 저녁 시간이라 붐빌 듯 싶었지만 실내는 조용했다. 한 박사는 데스크에 다가서서 뚜렷이 써 있는 안내판으로 그 이유를 깨달았다.

 ‘저희 가게는 예약제로만 운영됩니다. 예약자와 예약여부를 확인한 후 입장부탁드립니다.’

 친절하지만 도도한 문구였다. 과연 데스크에서 안쪽을 둘러봐도 테이블은 전혀 보이지 않고 내부로 들어가는 긴 복도만 보일 뿐이었다. 전 좌석 룸인 고급식당이군. 물론 오 전무씩이나 되는 사람이 오픈된 서민식당에서 자신을 부를 리는 없었지만 한 박사는 한층 더 목을 옥죄는 긴장감에 크게 심호흡을 했다. 자신의 기척에 어느새 다가온 직원이 말을 건넸다.

 “예약자 분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

 “예약자가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오 전무님을 뵈러 왔습니다.”

 “네. 안내하겠습니다.”

 재빠르게 데스크에서 빠져나와 복도를 향해 걸음을 옮기는 직원을 따라 한 박사도 식당 안쪽으로 들어갔다. 복도는 창문 하나 없이 어두웠지만 은은한 조명으로 중후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그리고 직원이 안내한 룸은 복도의 가장 안쪽이었다. 문이 열리자 한층 환한 실내가 눈에 들어왔다. 오 전무는 이미 와 앉아 있었다.

 “어, 오셨군.”

 한 박사는 다부진 몸집에 이웃 아저씨처럼 서글서글한 눈매를 한 오 전무를 마주하고는 살짝 고개를 숙였다. 국내 굴지의 제약회사인 ㄱ제약회사가 병원과 약국 영업은 물론 대중 상대로 한 홍보마케팅도 독보적이라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었다. 그러나 오 전무는 그것으로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뼛속까지 장사꾼이었고, 돈 냄새를 기가 막히게 잘 맡았다. 지금 가장 큰 돈줄은 M테스트와 그와 세트로 팔릴 골든 구스였다. 친절해 보이는 미소를 짓고는 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눈은 조금도 웃고 있지 않았다.

 “처음 뵙겠습니다. 데이빗 한입니다.”

 오 전무는 악수를 하고는 비서인 듯 동행한 한 젊은 남자에게 귓속말로 뭐라고 일렀다. 한 박사가 조용히 오 전무의 맞은편 자리에 앉자 곧이어 식사가 날라져왔다. 식사가 시작됐는데도 비서로 보이는 남자와의 대화는 좀처럼 끝나지 않았다. 한 박사는 오 전무가 매우 바쁜 와중에 자신과의 자리를 무리해서 만들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미안합니다. 시기가 시기라서 급한 일이 많아서요. 모셔놓고 실례를 했습니다.”

 “아닙니다.”

 “난 이제 한 박사와 식사하며 긴히 할 말이 있으니 김 비서는 이만 나가봐요. 제가 아까 강조한 내용은 절대 잊지 마세요.”

 온화한 표정과 부드러운 목소리와는 다르게 그의 말에는 힘이 느껴졌다. 젊은 남자는 대답도 없이 단정히 목례를 하고는 유령처럼 재빠르게 자리를 떴다.

 “저 사람은 믿고 있는 사람이지만요. 만일이라는 게 있으니까요. 일처리가 빠르고 확실한 사람을 좋아해서 젊은 사람들을 주로 곁에 두지만 그런 사람들은 또 그만큼 위험부담이 있으니까요. 듣는 귀는 줄이는 것이 좋지요.”

 오 전무는 그렇게 묻지도 않은 말을 줄줄 늘어놓으며 게걸스럽게 식사를 시작했다. 그가 먹는 모습을 보니 입맛이 뚝 떨어져 한 박사의 젓가락질이 느려졌다. 그에 비해 많은 양의 음식을 몇 분만에 금세 뚝딱 해치운 그가 번들거리는 입가를 냅킨으로 닦으며 말했다.

 “그런 의미에서 말입니다. 한 박사님이 우리의 든든한 편이 되어주셔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우리’라는 그의 말에 한 박사는 등줄기를 흠칫 떨었다. 역시 그는 우아한 고급 수트를 입고, 온화한 미소를 짓고 있어도 자신의 속내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특유의 장사꾼 기질만은 숨기지 못하는 듯 했다. 같은 목적을 하고 있더라도 이중필 후보와는 기품과 박력이 달랐다. 그래서 한박사는 그의 말을 듣는 것이 한층 더 불쾌하다고 느꼈다.

 “오늘 이렇게 뵙자고 한 것은 한 번 꼭 뵙고 싶었던 게 첫 번째 이윱니다만, 부탁드릴 것도 있어서요.”

 “네, 말씀하세요. 제가 도울 수 있는 일이라면요.”

 “하하… 아직 일 하는 방식을 잘 모르시군요. 그럴 때 저희같이 큰일을 하는 사람들은 그렇게 말하지 않거든요.”

 “네?”

 “제 사람들은 조건을 달지 않습니다. 저와 고작 거래를 하자고 제 편에 붙은 사람들이 아니니까요. 저는 조건이 달린 거래 같은 걸 하자는 게 아니에요. 일일이 재고 몸 사릴 필요 없습니다. 선거판은 목숨을 걸고 하는 전쟁터 아닙니까.”

 “… ….”

 “그렇게 몸을 사리셔서야…. 애초에 저는 할 수 없는 일은 부탁하지 않습니다. 그건 염려마세요.”

 하지만 한 박사는 오 전무의 말이 마치 선택권이 자신에게는 없다는 말처럼 들렸다. 갑을 관계를 확실히 하려는 건가. 굳이 그러지 않아도 아들 명석이 걸려있는 만큼 자신의 선택권이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오 전무는 아직 그 사실을 모르는 것일까.

 “말씀하십시오. 듣겠습니다.”

 아들 명석을 떠올린 한 박사가 정수리가 보일 만큼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이 후보는 한 박사의 말에 곧바로 말을 잇지 않고 나이프를 들었다. 아직 스테이크가 남아있던 모양인지 날렵하고 빠르게 스테이크를 잘라 입에 넣은 그가 미간을 찌푸렸다. 음식이 입맛에 안 맞는 걸까 싶었을 때, 오 전무의 한층 낮아진 목소리가 들려왔다.

 “요즘 돌아가는 정세가 통 마음에 들지 않아서요. 한 박사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마치 오 전무는 마치 자신이 정치인이라도 된 양 갑자기 정세를 들먹였다. 한 박사는 무엇을 말하는 건지 알 리 없었다.

 “저야 연구소 안에만 있으니 정치에는 문외한입니다. 죄송합니다.”

 “우리 한 박사님께서 정치를 모르신다 하니 게임이나 스포츠에 비유해 봅시다. 이를테면 이런 겁니다. 아무도 뻔히 질 팀을 응원하고 싶지 않은 법이 아닙니까. 그래서 청중의 응원 열기가 뜨거울 때는 누구도 결과를 예측하지 못할 만큼 전력이 비등할 때입니다. 경기는 재미있겠지만요, 그럴 때 각 팀 대표선수들은 가장 큰 압박감을 느끼는 거 아니겠습니까.”

 “네, 그렇지요. 스포츠로 비유하시니 충분히 알만 합니다.”

 “그럼 이제 선수 입장에서 보자는 말입니다. 선수 입장에서 가장 신나는 상황은 뭐겠습니까. 당연히 누가 봐도 이길 게 뻔한 경기를 청중의 응원까지 받으며 확실하게 이기는 결과를 내는 것, 그게 가장 부담 없고 신이 나겠죠. 아시겠습니까.”

 자신을 선수에 비유하려는 걸까. 아니면 이중필 후보를 염두에 둔 말일까. 한 박사는 속으로 현재 여당 강민국 후보와 지지율 면에서 큰 차이가 없어진 이 후보의 지지율을 떠올렸다. 조바심을 느끼고 예민해진 걸까. 한 박사는 오 전무의 말을 그렇게 해석하며 그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선수가 가장 압박감을 느끼는 상황에서는 아주 작은 실수가 결과를 뒤바꾸게 됩니다. 그리고 선거에서는 스포츠와 달리 그 실수가 더욱 치명적이죠. 그 미묘한 변화가 민심을 크게 바꾸어 버리니까요. 후보 간 지지율이 비등비등하면 국민은 더욱 불안을 느껴서 사소한 실수도 용서치 않고 한 편 몰아주기를 하게 됩니다. 생각해보세요. 국민 입장에서 자신의 한 표가 무의미한 사표가 되는 것에 누가 재미있어 하겠습니까.”

 “네. 그렇지요.”

 “저는 그래서 불안해하는 국민들의 오락가락한 표심을 모조리 확실하게 우리 쪽 표로 바꾸고 싶다는 겁니다.”

 “네...?”

 “민심을 크게 바꿀 계기가 필요합니다. 정확히 말하면 저쪽의 표심을 흔들어서 이쪽에 붙게 만들 만한 사건을 터뜨려야겠지요. 아시겠습니까.”

 저렇게 말끝에 종종 고압적으로‘아시겠습니까’를 붙이는 건 오 전무의 말버릇인 듯 했다. 평소 연구소에서 지나치면서 봤던 그의 겉인상과는 다르게 실제로 대화를 나눠보니 그는 매우 노골적인 동시에 자신의 의견대로 상대를 눌러버리는 상당히 고압적인 인물이었다. 물론 인상처럼 온화하기만 하다면 이 혼돈의 정치판에서 야당 대선 후보의 숨겨진 오른팔이 되지도 못했겠지. 한 박사는 식욕이 없는 대신 갈증만 느껴서 거의 바닥난 물컵의 마지막 한 모금을 핥듯이 들이켰다. 이건 대화가 아니었다. 일방적인 압박일 뿐. 어차피 오 전무는 자신의 의견 따위는 바라고 있지 않았다.

 “박사님, 제가 길명섭 소장한테 M테스트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아십니까.”

 “… ….”

 “저는 그때 신이 제 편이라는 것을 확신했습니다.”

 야심 있는 족속은 원래 하나같이 저렇게 뻔뻔한 나르시시스트인 건가. 한 박사는 마치 무대 위에서 조명을 받고 서 있는 배우같이 자신에 찬 표정을 한 그를 꽤나 불편해진 마음으로 응시했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길명섭 소장이 먼저 그를 찾아갔다는 말이다. 둘이 어떻게 M테스트 개발로 뜻을 모으게 됐는지는 한 박사도 그간 알지 못했던 부분이었다.

 “M테스트는 민심을 하나로 빨아들일 수 있는 거대한 블랙홀입니다. 이만한 힘을 가진 이슈는 좀처럼 없어요. 중요한 것은 M테스트가 성별도 연령도 정치적 이념도 초월하는 인간 공통의 욕망을 건드린다는 겁니다. 좌파? 우파? 남자와 여자? 그 누가 아무 근거 없이 다가오는 사이코패스의 위험으로부터 자신이 안전하다고 확신하겠습니까. 어찌 보면 사이코패스들에게 감사해야 해요. 대국민 단합을 이뤄내질 않았습니까.”

 그의 양팔이 테이블 위에서 화려하게 과장된 몸짓을 하다 하나로 만나 요란한 깍지를 끼었다. 사이코패스 덕분에 대국민 단합을 했다니. 이게 과연 할 말인가, 한 박사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그러니 M테스트 의무화는 더욱 위험한 것입니다. 대다수가 바란다고 해서 반드시 옳은 것은 아닙니다.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이 될 수도 있어요.”

 “사이코패스는 공공의 적 아닙니까. 살고 싶은 욕망, 자신과 자신의 가족을 안전하게 지키고 싶은 국민의 욕망은 당연한 권리고, 그걸 이뤄주는 것이 정부의 의무입니다. 전 그걸 이뤄줄 M테스트에서 큰 희망을 보았습니다.”

 “M테스트가 모든 사이코패스를 판별해낼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M테스트에서 의심판정을 받았다고 해서 모두 범죄를 일으킬 거라 확정할 수도 없습니다. 무엇보다 테스트는 아직 실험단계일 뿐입니다.”

 “허어. 학자가 자기 연구에 이렇게 확신이 없어서야 되겠습니까. 역시 직접 뵙자고 한 건 잘 한 일이군요. 이런 지지부진한 논쟁은 여기서 딱 매듭을 지읍시다.”

 아마도 오 전무는 이중필 후보에게서 어떤 언질을 듣고 불안요소를 없애기 위해 자신을 부른 것 같았다. 한 박사도 이중필 후보의 박력에 미처 못 했던 말을 이번엔 좀 더 확실히 해둬야겠다고 생각했다.

 “네. 저도 바라는 바입니다.”

 “테스트의 불완전성이나 단점은 지금 시점에서는 덮어둡시다. 앞으로의 가능성과 희망에 주목하면서 테스트의 완성도를 높여보자는 겁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가능성을 입증할 만한 사건이 필요하지요. 그 드라마틱한 사건을 제가 만들어 드리겠다는 겁니다.”

 “대체 무슨… 말씀이신지.”

 “지금 전국을 시끄럽게 하는 연쇄살인범 아시지요?”

 “네. 물론입니다.”

 “그 놈이 곧 잡힐 겁니다.”

 “범인이요? 드디어 잡혔나요?”

 “아직 잡혔다고는 안 했습니다. 곧 잡힐 거니, 그 날이 머지않았다는 겁니다. 경찰은 이미 그놈의 소재파악을 마친 상태입니다. 이 후보께서 전화 한 통하시면 그날로 뉴스메인을 장식하게 되겠지요.”

 이건 또 무슨 말인가. 범인의 소재지를 파악하고도 잡지 않고 있다는 말인가. 그리고 경찰이 수사하는 내용을 어떻게 이렇게 제 손바닥 들여다보듯 알고 있다는 건가. 한 박사는 쉽사리 이해되지 않았다. 다만 뭔가 크게 잘못되었다는 것만 강하게 느낄 뿐이었다.

 “무슨 계획이 있으신지 몰라도… 연쇄살인범 검거와 M테스트가 무슨 관련이 있습니까?”

 “말씀드리지요. 그 전에 한 박사님께 꼭 부탁을 드려야 할 일이 있습니다.”

 오 전무는 서류 봉투 하나를 내밀었다. 겉에 아무것도 쓰인 것이 없었고 입구는 꼼꼼히 봉해져 있었다.

 “그게 뭡니까.”

 “열어보시지요.”

 한 박사가 봉투를 뜯자 거기서 쏟아져 나온 것은 누군가의 병원진료 기록과 몇 장의 뇌스캔 사진이었다.

 “이게 뭡니까?”

 “그놈이 운 좋게도 5년 전에 교통사고를 당해준 덕분에 진료기록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그놈이 이렇게 괴물이 되기 이전의 뇌스캔 사진이지요.”

 “네? 그놈이라면… 혹시….”

 “조동식. 현재 전국을 들쑤시고 있는 연쇄살인마 사이코패스의 이름입니다.”

 “대체 이걸 어떻게 당신이!”

 “M테스트를 시험할 아주 좋은 샘플이 될 것 같아서 열심히 준비했지요. 이 후보님이 열심히 지원해주셨구요. 이놈의 과거 뇌스캔 자료로 M테스트 의심판정이 나오기만 하면 국민의 분노에 기름을 끼얹는 효과가 될 게 아닙니까. 그 분노가 모여 전부 이 후보의 표심이 될 거구요.”

 “그런 말도 안 되는! 그런 짓을 저질렀다고 해서 무조건 뇌에 문제가 있다고 볼 수는 없어요! 그렇게 결과를 만들어놓고 테스트에 끼워 맞추는 것은 전혀 합리적이지 않습니다!”

 “한 박사님! 현재 M테스트의 유효성에 대한 논란이 많습니다. 개발자로서 전혀 책임감을 못 느끼십니까?”

 갑자기 오 전무가 아이를 나무라듯 그렇게 호된 질책을 했다. 한 박사는 어불성설이라고 느끼면서도 마땅한 반박을 찾지 못해 입을 다물어야 했다. 그런 논란 있는 테스트를 전면에 내세우려는 당신들이 문제라고 지적하기엔 자신도 이미 한배를 탄 채 멀리 와버린 것이다.

 “국민들은 M테스트의 취지에 지지를 하면서도 정말 효과가 있을지에 대한 의심이 있어요. 저는 그 의심을 없애자는 겁니다. 그 연쇄살인범이 M테스트 의무화를 했다면 진작 관리대상이 됐을 놈이라는 걸 만천하에 공표할 수 있다면, 그것만큼 확실한 증거가 어딨겠습니까. 어때요, 한 박사님. M테스트 의무화를 확신 있게 외치는 국민의 목소리가 귓가에 들리는 것 같지 않습니까.”

 “앞서가지 마십시오. 설사 그 사람의 과거 뇌스캔 자료가 있다고 해도 그가 뇌에 문제가 있는 사이코패스인지는 테스트를 해봐야만 아는 일입니다. 그가 M테스트에서 의심판정을 받을지 정상 판정을 받을지는 지금으로선 알 수 없는 일입니다.”

 “박사님! 제가 또 같은 말을 반복해야겠습니까! 알 수 있다 없다가 아닙니다, 그냥 그렇게 아는 겁니다!”

 오 전무가 위압적으로 테이블을 탕탕 주먹으로 두드렸다. 강자에겐 약자의 얼굴로, 약자에겐 강자의 얼굴로 돌변하는 전형적인 권력지향형의 얼굴이었다.

 “오 전무님, 저는 학자이지 정치가가 아닙니다. 학자로서 거짓으로 국민을 선동하는 짓은 할 수 없습니다.”

 “하! 이제 와 굉장히 양심적인 학자인양 말씀하십니다. 제가 설마 모른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드님 한명석군 말입니다.”

 순간 한 박사의 몸이 얼어붙은 것처럼 굳어버렸다. 역시 이 후보가 아는 사실을 그가 모를 리 없었다. 그렇다면 자신이 그 앞에서 주장해 온 지금까지의 그럴듯한 말들은 다 허울 좋은 핑계가 될 뿐이다. M테스트 개발자로서 의심판정자를 아들로 두고 있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일이다. 정직한 학자라면 아들의 테스트 결과를 공개해도 괜찮다며 양심에 어긋나는 행위에는 선을 그어야했는지도 모른다. 자신의 아들을 볼모로 협박하는 식으로 자신을 움직이려는 이 후보나 길 소장은 비열하고 더러웠다. 그러나 자신이 그들의 비열한 배에 스스로 승선한 이상 자신만 깨끗한 척을 할 수는 없었다. 이런 더러운 싸움판에서 한 박사의 정론은 도저히 이길 방도가 없었다.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결국 이 후보님께서는 M테스트 결과에 상관없이 그 사람에게 의심판정을 내리라는 말씀이군요.”

 한 박사는 일부러 이 후보를 들먹이며 그렇게 말했다. 오 전무 역시 이 후보가 움직이는 말에 불과할 뿐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오 전무는 그 의도를 안다는 듯이 양 손바닥을 내보이며 비죽이 웃어보였다.

 “그렇게 노려보실 것 없습니다. 아드님 건은 물론 박사님 뿐아니라 이 후보님에게도 약점입니다. 결국 우리는 한배를 탔으니 저도 아드님이 몬스터란 사실은 알리고 싶지 않습니다.”

 “몬스터라니요!! 그런 모욕적인 말은 삼가세요!!”

 한 박사는 몬스터라고 부러 단어 선택을 한 오 전무의 말에 순간 발끈했다. 그러나 이내 그것이 오 전무의 전략이라는 것을 알고 억지로 화를 억눌렀다. 침착해야 했다. 개발자의 친아들인 명석의 테스트 결과가 알려지면 M테스트의 신뢰성 자체가 흔들릴 것이고, 그것은 이 후보나 오 전무가 결코 원하는 바가 아닐 터였다. 그의 말투는 몹시 거슬렸지만 한 박사 입장에서 그것은 분명 다행스런 사실이었다.

 “한 박사님, 물론 저는 그 연쇄살인마 놈이 M테스트를 통과하리라 믿지 않습니다만. 만의 하나라는 겁니다. 혹시나 M테스트 상 정상으로 나오더라도 의심판정을 꼭 내려주셔야겠습니다.”

 “… ….”

 “이 바닥이 워낙 조심한다고 해도 물샐 틈이 많아서 하나하나 만전을 기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래서 정치가 힘든 거지요. 선거판에서는 못 하나만 잘못 빠져도 배가 가라앉습니다.”

 그는 그제야 식사를 만족할 만큼 마쳤는지 물로 입을 행구듯 우물거리고는 먹었던 컵에 퉤 하고 뱉었다. 저속한 그 행위에 한 박사는 절로 고개가 돌아갔다. 한 박사 앞의 고기는 몇 조각 잘려 있을 뿐 절반도 먹지 않은 채였다. 당연한 듯 레어로 주문돼 눈앞에 놓였던 고기의 생생한 핏기는 열기가 식자 더욱 손대기가 꺼림칙했다.

 “그럼 수락하신 걸로 알고 그대로 진행하겠습니다. 괜찮지요?”

 “원하시는 바는… …잘 알겠습니다. 대신 명석이는… … 끝까지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한 박사는 그렇게 또 한 번 고개를 숙였다. 수치심이나 모멸감보다는 참담함에 다시 고개를 들기가 힘들었다. 그의 그런 심정을 알 리 없는 오 전무의 명랑한 목소리가 머리 위로 신나게 퍼부어졌다.

 “그러믄요. 염려마세요. 염려 마! 박사님이 이렇게 제 입장도 이해해주시고 흔쾌히 저희 전략에 동참해주시니 저는 더 바랄 게 없습니다. 오늘 마무리가 좋아요. 바쁜데 온 보람이 있어요. 차암 기분이 좋습니다.”

 한 박사는 진심으로 기분이 좋아 보이는 오 전무의 얼굴을 겨우 무기력하게 응시할 뿐이었다.

 “박사님, 국민들이 그동안 얼마나 불안에 떨었습니까. 그 짐승만도 못한 놈을 이제 세상에 다시는 못 나오게 해야지요. 그리고 앞으로 이 M테스트는 그야말로 국민영웅이 될 겁니다. 아니죠, 박사님이야말로 국민영웅이 되셔야지요. 안 그렇습니까. 암요 암요. 하하… …”

 국민영웅. 입가가 분노로 비틀리는 것을 어쩔 수가 없었다. 한 박사는 오 전무의 말에 대꾸조차 하고 싶지 않아 대신 한 조각의 스테이크를 집어 억지로 입을 막았다. 차갑고 물컹한 그 느낌이 불쾌했지만 한 박사는 묵묵히 고기를 씹었다. 씹을 때마다 핏물과 섞인 육즙이 넘쳐 흐르며 비릿한 육향이 확하고 풍겼다. 한 박사는 구역질이 날 것 같았다. 하지만 이미 씹은 고기를 뱉을 수도 없었다. 그에게 선택의 여지는 더 이상 없었다.

 
작가의 말
 

 읽어주시는 분들, 댓글, 추천 모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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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15. 노량진 강사의 죽음-2 2019 / 10 / 31 242 2 4419   
15 #14. 노량진 강사의 죽음-1 2019 / 10 / 31 249 2 5827   
14 #13. 한명석의 비책 2019 / 10 / 31 248 2 2632   
13 #12. 뉴스보도 (2) 2019 / 10 / 14 260 2 7947   
12 #11. 밀담, 음험한 계략 2019 / 10 / 8 249 3 10293   
11 #10. 록밴드 샐러맨더 2019 / 10 / 4 280 3 9808   
10 #9. 마리오네트 실험 2019 / 10 / 3 255 4 5261   
9 #8. 데이빗 한 vs 이중필 2019 / 10 / 1 250 2 4048   
8 #7. TV토론회, 강민국의 반격 2019 / 9 / 25 263 4 7154   
7 #6. 소년, 용이 (2) 2019 / 9 / 24 287 4 7362   
6 #5. 악마의 냄새를 맡다 (4) 2019 / 9 / 24 270 4 6371   
5 #4. 레퀴엠, 죽음을 부르는 노래 (4) 2019 / 9 / 10 280 4 4855   
4 #3. 어린 몬스터들의 아지트-2 2019 / 9 / 9 261 4 5032   
3 #2. 어린 몬스터들의 아지트-1 (2) 2019 / 9 / 9 270 3 7883   
2 #1. 마트료시카 (2) 2019 / 9 / 6 311 5 6366   
1 #프롤로그 - 어린 괴물과의 조우 (6) 2019 / 9 / 5 467 4 4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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