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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나의 자카르타
작가 : 히타히타
작품등록일 : 2019.9.2

도망치듯 떠나온 그곳에서 마법이 시작된다.

 
후회를 남기지 마
작성일 : 19-10-04 09:07     조회 : 292     추천 : 0     분량 : 4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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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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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게 셔터를 내릴 때 박기성 사장이 찾아왔다.

 술에 잔뜩 취해 다리가 풀린 모습이었다.

 나는 그를 아무도 없는 홀 테이블에 앉혔다.

 

 “술 좀 줘.”

 

 식당 냉장고에 술은 없었다.

 인도네시아에서 술을 팔려면 주류취급 허가를 받아야 하는데 나는 아직 신청하지 않았다.

 나는 식당 옆 편의점에서 빈땅 캔을 사왔다.

 

 “하이네켄은 없어?”

 “입이 참 고급이십니다.”

 

 우리는 맥주를 홀짝댔다.

 알콜이 조금만 들어가도 하루의 피로가 쏟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만큼 나는 육체의 한계를 버텨내고 있었다.

 

 “안주는 없어?”

 “왜 없겠습니까?”

 

 나는 주방에서 그날 오후에 실험했던 핫바를 들고 나왔다.

 그것은 겉만 핫바 모양이지, 속은 마른 생선빵 같은 느낌이었다.

 인터넷에 나온 레시피를 그대로 따라 배합해도 한국 핫바의 맛이 나오지 않았다.

 

 “이게 뭐야?”

 “핫바요.”

 “아이쿠.”

 “암만 시도해도 잘 안 돼요. 무슨 비결 없습니까?”

 “에어컨에서 나온 물로 반죽하면 잘 된다던데.”

 “형님이 식당 실패한 이유를 알겠습니다.”

 

 에어컨에서 나온 물이라니.

 박 사장다운 발상이었다.

 

 “견딜만 해?”

 “그럭저럭요.”

 “진짜 위기는 1년 뒤에 올 거야. 그때를 대비해야 돼.”

 “알고 있습니다.”

 “마흐무드는 열심히 하지?”

 “처음엔 호박이 넝쿨째 굴러온 줄 알았죠. 근데 그게 상한 호박일지도 모르겠어요.”

 “무슨 소리야?”

 

 나는 마흐무드와 디디의 갈등에 대해 설명했다.

 잠자코 이야기를 듣던 박 사장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상하다. 우리 집에 있을 땐 그런 문제없었는데.”

 “거기엔 브따위족 삼총사가 없었으니까요.”

 “둘 중 하나를 내보내야 돼.”

 “그 수밖에 없을까요?”

 “자네는 이제 리더야. 리더는 단호해져야 돼.”

 

 박 사장의 말에 일리가 있었다.

 언젠가는 단호해져야 할 때가 올 거라고 나는 생각했다.

 

 “우울한 밤이야.”

 “뭔 일 있습니까?”

 

 박 사장이 한숨을 푹 쉬었다.

 그의 입김이 테이블에 떨어지며 뿌옇게 수증기가 덮였다.

 

 “또 아들하고 싸우셨군요.”

 “어떻게 알았어?”

 “아들 말고는 박 사장님을 괴롭힐 사람이 없잖습니까. 양자역학만 읽으면 행복한 분이니까.”

 

 박 사장이 핫바를 씹었다.

 아삭 아삭, 비스킷 씹는 소리가 났다.

 술김이 아니라면 누구도 못 먹을 음식이었다.

 

 “이거, 에어컨 물로 해봐.”

 “아들 얘기나 해보세요.”

 “자네... 내가 왜 아들 앞길에 감 놔라 대추 놔라 하는 줄 아나?”

 “왜죠?”

 “나처럼 살까봐.”

 

 그 얘기를 할 때 박 사장은 지쳐보였다.

 그때 박 사장은 내가 자카르타에 처음 올 때의 그런 표정이었다.

 하나 있던 식당마저 때려치우고 허브 사업가를 쫓아다니는 일이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들은 나처럼 살면 안 돼. 난 허황된 사람이잖아. 뭐 하나 똑 부러진 구석 없고 엉뚱한 생각만 하면서 살아 왔어. 난 아들한테 내 모습을 봐.”

 “형님.”

 “왜?”

 

 나는 잠시 숨을 고르며 뜸을 들였다.

 해야 할 이야기가 있었다.

 그 얘기를 하지 않으면 평생 죄책감을 느낄 것 같았다.

 

 “만약에... 제가 만약에 형님의 미래를 알고 있다 칩시다. 알고는 있지만 바꿀 수 없다고요.”

 “뭔 소리야?”

 “형님은 허브 사업에 실패할 겁니다. 나중에 상가 건물에 투자했어야 한다고 후회하실 겁니다. 형님이 그렇게 헤매는 동안에도 아들은 꿋꿋이 자기 길을 갈 겁니다. 결국 자기가 원하는 훌륭하게 해낼 거예요.”

 “점쟁이야?”

 “잘 들으세요. 여기서부터가 중요해요. 형님은 아들과 싸운 게 평생 한이 될 겁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박 사장이 손사래를 치며 맥주를 들이켰다.

 나는 나도 모르게 언성을 높였다.

 

 “아뇨! 제 말이 맞아요!”

 “왜 이렇게 열을 내?”

 “아들을 믿으세요.”

 “내가 아들을 못 믿는 게 아니야. 자넨 아직 몰라. 남의 나라에서 눈치 보며 사는 삶 말이야. 당장 내일 누가 날 죽이려고 달려들어도 한국처럼 보호받을 수 없어. 늘 불안하지. 늘 걱정돼. 이렇게 살려면 강해져야 돼.”

 “형님...”

 “왜?”

 

 나는 박 사장의 삶을 모른다.

 남의 가정사에 끼어들어 시시비비를 따질 생각도 없다.

 그러나 이 말만은 해야 했다.

 

 “형님이 마지막으로 눈 감는 순간, 어떤 일이 가장 마음에 걸릴 것 같아요? 바로 지금입니다. 지금 아들에게 상처 준 순간이 가장 후회될 거예요.”

 “그 반대일수도 있지.”

 “제 말을 새겨 들어주세요.”

 

 박 사장이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두드렸다.

 나는 참아온 말을 한 것 같아 후련해졌다.

 

 “나 갈게.”

 “삐치신 거 아니죠?”

 “자네 말도 일리가 있어.”

 

 나는 박 사장을 문밖까지 배웅했다.

 

 “나가다 아이스크림 사 먹지 마세요.”

 “바로 그럴 생각이었어.”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요.”

 “1월1일에 우리 집에 와. 자네 갈 데도 없잖아.”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

 탕, 탕.

 

 아래층에서 소리가 들렸다.

 그때 나는 꿈에 잠겨 있었다.

 기억나지는 않지만 아주 달콤하고 잔잔한 꿈이었다.

 

 탕, 탕, 탕.

 

 또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는 정적을 찢는 총성처럼 나를 뒤흔들었다.

 나는 조금씩 꿈의 바다에서 밀려나와 뭍으로 올라갔다.

 

 나는 눈을 떴다.

 잠에서 깸과 동시에 통증이 살아났다.

 어깨가 쑤시고 오한이 일었다.

 핸드폰을 켜보니 밤 12시였다.

 박 사장을 보내고 잠든 게 11시였으니 딱 한 시간을 잔셈이다.

 

 탕, 탕, 탕.

 

 1층에서 나는 소리가 이번에는 좀 더 분명하게 들렸다.

 그 순간 나는 아무도 없는 밤에 찾아오는 낯선 존재들을 떠올렸다.

 박 사장이나 인드라의 유령보다 조금 일찍, 그런 존재 중 하나가 나를 방문한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1층 식당으로 내려갔다.

 스위치를 켜고 주변을 살폈지만 아무도 없었다.

 

 탕, 탕, 탕.

 

 소리와 함께 셔터 문이 흔들렸다.

 누군가 셔터를 계속 두드리고 있었다.

 조금 뒤 나를 부르는 나직한 소리가 들렸다.

 

 “미스뜨르, 미스뜨르.”

 

 그제야 나는 유령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식당에 들어오지 못해 셔터를 두드리고 있다면 육체를 가진 사람일 것이다.

 

 “미스뜨르. 문 좀 열어주세요.”

 

 나는 현관문을 열고 셔터를 올렸다.

 마흐무드 가족이 가랑비를 맞고 있었다.

 세 사람 모두 묵직한 백팩을 메고 낡은 오토바이 앞에 서 있었다.

 

 “무슨 일이야?”

 “들어가서 얘기할 게요.”

 

 나는 그들을 안으로 들였다.

 그들이 멘 묵직한 가방들이 계속 신경 쓰였다.

 저런 가방은 먼 여행을 떠나는 사람에게나 필요한 것이다.

 

 마흐무드는 수염을 신경질적으로 매만졌다.

 긴장했을 때 나오는 버릇이었다.

 

 “디디 애인과 친구들이 우릴 때렸어요.”

 “뭐라고?”

 “여긴 브따위족 동네잖아요. 오토바이 묶어놓은 데에 한 서른 명쯤 몰려 왔어요. 우릴 기다리고 있었던 거예요.”

 “왜 기다려?”

 “디디가 복수해 달라고 한 거죠. 우릴 때리면서 다시 이 동네에서 보이면 죽이겠다고 협박했어요.”

 

 나는 믿기지 않았다.

 독실한 무슬림 디디에게 애인이 있다는 것도 신기했지만, 30명이나 떼로 몰려와 마흐무드를 협박했다는 건 더욱 뜬금없었다.

 

 “정말이야?”

 “여길 보세요.”

 

 마흐무드가 자기 팔뚝을 내밀었다.

 팔뚝 여기저기에 긁힌 자국이 있고 피딱지가 앉은 곳도 있었다.

 

 “내일 애들이 출근하면 얘기를 들어보자.”

 “안 돼요. 지금 위험해요.”

 “집까지 갈 수 없으면 여기서 자. 여긴 안전할 거야.”

 “아뇨 아뇨. 우린 불안해요.”

 “걔들이 잘못 했으면 내가 사과하라고 시킬 게. 다시는 이런 일 없을 거야.”

 

 마흐무드가 계속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아니에요.

 그를 붙들고 있으면 밤새도록 고개를 저으며 같은 말만 되풀이 할 것 같았다.

 

 “그럼 어떡할 거야?”

 “우린 반둥으로 내려가요.”

 “뭐라고?”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돌담이 간신히 제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주방팀이 사라지면 누굴 불러서 또 어떻게 레시피를 교육한단 말인가.

 하지만 마흐무드의 머릿속에선 이미 돌담 따위 지워진 것 같았다.

 

 “식당은 어떻게 하고?”

 “당분간 쉬세요.”

 

 마흐무드가 어색하게 웃었다.

 그게 말이 안 된다는 건 마흐무드 자신이 더 잘 알고 있었다.

 

 “월급 더 올려줄게.”

 

 마흐무드는 이미 박 사장네 가게에서 일할 때보다 높은 급여를 받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당장 마흐무드가 물 만한 탐스런 낚싯밥을 던져야 했다.

 마흐무드는 조금 생각하다가 다시 미소를 지었다.

 

 “그래도 안 돼요. 미안해요.”

 

 나는 마흐무드가 이렇게까지 완강한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디디의 어린 친구들이 협박 좀 했다고 해서, 산전수전 다 겪은 마흐무드가 야반도주할 필요는 없었다.

 마흐무드가 다른 이유를 숨기고 있는 건 아닌지 의심스러웠다.

 

 “내가 보호해줄게.”

 

 마흐무드가 일어섰다.

 나는 너무 당황해 그를 잡을 생각도 하지 못했다.

 말없이 현관문을 나서는 마흐무드를 아내와 처남이 뒤따랐다.

 

 마흐무드가 오토바이의 시동을 걸었다.

 아내와 처남이 비좁은 뒷자리에 끼어 앉았다.

 

 세 명을 태운 오토바이가 위태롭게 나아갔다.

 나는 그들의 물 빠진 청바지를 멍하니 보았다.

 하나 같이 무릎 부분이 헤진 청바지들이 가랑비에 젖어 검은색으로 보였다.

 

 오토바이가 사라졌을 때 나는 반둥을 떠올렸다.

 고원에 위치해 1년 내내 서늘하고 밤중에는 담요를 덮어야 한다는 도시.

 마흐무드 가족은 저 털털거리는 오토바이로 반둥의 차가운 거리를 헤맬 것이다.

 

 “뜨르스라. 맘대로 해.”

 

 나는 2층으로 올라갔다.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침대에 누웠으나, 달아난 잠은 돌아오지 않았다.

 온갖 걱정들이 구더기처럼 뇌를 기어 다녔다.

 새벽에 설핏 잠 들었을 때 나는 아직도 한국에 있는 꿈을 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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