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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추리/스릴러
몬스터클럽
작가 : 쇼센
작품등록일 : 2019.9.5

대선을 앞두고 전국에서 끔찍한 연쇄살인 사건이 벌어지고, 뇌신경정신과학자 데이빗 한 박사는 연구소 소장으로부터 뇌스캔을 통한 잠정적 사이코패스 범죄용의자 테스트(몬스터 테스트)의 개발을 종용받는다. 마침 그때 한 프로파일러가 사이코패스테스트의 의무실시를 주장해 대중의 큰 호응을 불러일으키자, 야당 대선후보 이중필은 이러한 분위기를 활용해 ‘몬스터 감별법’을 추진하겠다고 나서 표심을 얻기 시작한다.

한 편 데이빗 한의 장남이자 천재 사이코패스 고등학생인 한명석은 여당 대선후보와 결탁해 전략적으로 소년범죄를 저지르는 <몬스터 클럽>을 비밀리에 조직하고, 군중의 세뇌에 효과가 있는 약물 ‘마리오네트’를 은밀히 유포하는데, 사건성을 의심한 한수형 경위가 그의 뒤를 쫓기 시작하고….

 
#10. 록밴드 샐러맨더
작성일 : 19-10-04 01:00     조회 : 280     추천 : 3     분량 : 9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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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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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헛짚은 건가. 분명 단순한 교통사고가 아닐 거라고 생각하고 뒤를 캤지만, 알게 된 것은 희진이 죽기 직전 꽤 악질적인 패거리들에게 괴롭힘을 당했다는 사실뿐이었다.‘악마들’이라고 불렸던 그 질 나쁜 패거리의 아이들조차 희진이 죽던 그 순간에는 그 현장 근처에 없었다. 희진은 아마도 녀석들의 괴롭힘을 피해 이른 시간에 등교를 했던 것으로 보였다. 희진의 사인이 표면적으로는 평범한 교통사고인 이상 알리바이마저 입증된 ‘악마들’의 멤버들을 더 이상 근거 없이 붙잡아 둘 수는 없었다. 게다가 붙잡아 몇 마디 걸었더니, 치기어린 허세 따위 자취를 감추고 돌연 유순해지는 뻔뻔한 놈들이었다. 경찰서에 온 것이 처음이 아니었다. 부모들까지 줄줄이 소환시킨 주제에 의기양양하게 서를 빠져나가는 녀석들의 뒷모습을 볼 때는 수형도 참지 못하고 혀를 츳츳, 하고 차고 말았다.

  이제 남은 것은 희진이의 죽기 전 마지막 행적을 되감아 의심의 흔적을 찾아보는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그 마지막 말. 희진이 열렬한 팬이었다는 록밴드 샐러맨더가 신경쓰여 그들의 음악을 수형도 몇 곡쯤 들어보았다. 광광 머리가 울리는 시끄러운 메탈기타음과 기계음이 뒤섞인 하드코어 록이었다. 특히 절규에 가까운 보컬의 노래는 어둡고 극단적인 감정을 직설적인 가사로 내뱉고 있었다. 특히 죽음을 숭배하는 듯한 염세적인 가사들이 수형을 섬뜩하게 했다.

 ‘악마들’에게 끔찍한 괴롭힘을 당하고 있던 상황에서 희진이 샐러맨더의 극단적인 가사의 영향을 받았다면, 혹시 갑자기 차도에 뛰어들었다는 그 날의 사고는 스스로 택한 자살이었는지도 모른다. 학교에서 일어나는 또래에 의한 괴롭힘은 의외로 구원받을 길이 없다. 교사나 같은 반 친구들이 어설픈 도움을 주었다가 더 끔찍한 지옥이 되는 경우도 숱하게 보았다. 수형은 잠시지만 학교폭력 관련 상해사건을 몇 건 맡은 적이 있었다. 피해자가 되는 아이들은 하나같이 학급에서나 가정에서 소외되고 무력한 아이들이었고, 악마같은 녀석들은 약자의 냄새를 본능적으로 잘 맡았다.

  수형은 조금 무거운 마음으로 몸을 일으켰다. 샐러맨더의 공연장에 직접 가서 희진이를 알거나 기억하는 이가 있는지 마지막으로 찾아보기로 했다. 운이 좋으면 뭔가 새로운 단서가 나올 지도 몰랐다. 수형의 직감 상 이대로 사건을 종결하기엔 뭔가 뒷맛이 개운치가 않았다.

 홍대 앞 번화가 골목.

 라이브클럽이 몰려있는 골목 근처에는 일찍부터 입장을 기다리고 있는 20대 초반의 젊은 여자들이 서성거리고 있었다. 그들에게 일일이 희진의 사진을 들이밀며 묻자, 요란한 화장을 한 깡마른 여자애 하나가 희진을 기억하며 아는 체를 했다.

 “아, 이 여자애 자주 봤어요. 샐러맨더 공연장에서요. 평일에는 교복 차림으로 오니까 눈에 띄었어요. 늘 혼자 오는 것도 그렇고.”

 “혹시 그 애한테 공연장에서 말을 걸거나 친하게 보이는 사람은 없었어?”

 “아뇨. 걔는 멤버들 보러 오는 거예요. 늘 혼자였어요. 퇴근길까지도 늘 남으니까 멤버들도 이젠 아는 체 해주더라구요. 멤버들이 꽤 좋아하는 눈치였어요. 여고생 팬은 드무니까요. 샐러맨더 음악이 좀… 그렇잖아요.”

 무대를 마치고 공연장을 나와 귀가하는 때를 ‘퇴근길’이라고 부르는 것 같았다. 수형도 샐러맨더의 곡을 몇 번 들어봤지만 확실히 요즘 여고생이 좋아할 만한 취향은 아니었다. 여고생 팬이라면 눈에 띄었을 거란 여자의 말에 동감했다.

 “최근에 샐러맨더 공연장에서 별다른 일은 없었고?”

 “뭐 늘 샐러맨더 공연이야 난리나죠. 그래서 좀 데이기도 하는 건데 그게 또 재미니까.”

 여자가 말을 마치고는 껌을 요란하게 씹어댔다. 그 소리가 꽤 거슬렸지만 수형은 친절한 얼굴을 유지했다. 귀한 증인이 될 지도 몰랐다.

 “데이다니? 그게 무슨 말이야?”

 “종종 팬들이나 멤버들이 흥분을 주체 못해서 과격하게 놀다가 몸싸움이 있다든지 무대로 갑자기 뛰쳐나간다든지 뭐 그런 거요. 그런 일은 종종 있어요. 그런데 걔가 그러는 건 못 봤어요. 늘 맨 앞줄에서 얌전히 노래만 따라 불러요.”

 “얌전한 열혈팬이라.”

 수형은 뭔가 그 말이 모순적이라고 생각했다. 그 때 튀는 옷차림을 한 남자가 공연장에 들어가는 것을 보고 수형이 뒤를 따랐다. 혹시 샐러맨더 멤버인가 하고 따라간 것이었지만 말을 걸어보니, 공연 관계자였다. 입에 커다란 피어싱을 두 개나 해서 좀 험악한 인상인 데 비해 무척 소심했다. 경찰이라고 신분을 밝히니 괜히 겁에 질려서 순순히 샐러맨더 멤버들이 있는 곳을 알려주었다. 수형은 연습을 마치고 무대 뒤에서 대기 중이라는 밴드 멤버들을 만나기 위해 대기실로 향했다. 대기실이라고는 하지만 말만 거창하지, 창고나 다름이 없었다. 더러운 4인용 가죽소파와 그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철제 테이블과 간이 의자 서너 개가 비좁은 공간에 뒹굴고 있을 뿐이었다. 그 안에서 얼마나 담배를 피워댔는지 문을 열자마자 연기가 자욱했다. 요란한 차림을 한 남자 셋이 구겨지듯 소파에 앉거나 누워있었다. 다행히 뭔가를 묻기도 전에 경찰뱃지를 보여주자, 기타를 안은 채로 비스듬히 앉아 있던 금발의 커다란 녀석 하나가 웃으며 다가왔다. 안고 있던 기타를 얌전히 올려놓는 것으로 보아 기타리스트인 모양인데, 얼굴이 어딘가 멍청해 보였다.

 “오, 형사님! 정말 형사님이세요? 들어오세요!”

 코와 입술 여기저기에 피어싱을 해서 말할 때마다 짤그랑 소리가 날 것만 같았다.

 “잠시 여쭤볼 게 있어서요. 이 아이를 혹시 압니까?”

 수형이 희진의 사진을 내밀자 금발이 대번에 고개를 끄덕거리더니 이렇게 말했다.

 “아, 근데 그 애 요새 안 보이던데요. 그 애한테 무슨 일 있어요?”

 “이 아이 이름이 정희진이예요. 희진이를 확실히 기억해요?”

 “그럼요. 우리 멤버들 다 알아요. 공연 때마다 매번 맨 앞줄에 서있고, 퇴근할 때는 기다렸다가 선물도 주니까요.”

 “그럴 때 특별히 남들 눈에 띄게 친한 티를 내거나 했나요?”

 “아뇨. 그런 건 없었어요. 그래도 팬들 사이에서 꽤 유명할걸요. 교복차림이 눈에 띄기도 했고.”

 “그럼 팬들 중 하나가 그런 모습을 멋대로 못 마땅하게 생각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글쎄요. 그런데 진짜 무슨 일인데요. 그 애 실종이라도 됐어요?”

 “정희진 학생은 사망했습니다.”

 “주... 죽었다구요?”

 금발이 적잖이 놀라는 것을 보니 정말 아무 것도 몰랐던 것 같았다.

 “네. 등굣길 횡단보도에서요. 빨간불인데 차도에 뛰어들어서 트럭에 치였어요.”

 “헐, 그것참 안 됐네요……. 그런데 왜 여기서 조사를 하세요? 교통사고라면서요?”

 “네. 그냥 사건을 확실히 마무리짓고 싶어서 하는 형식적인 절차 같은 거예요. 사망하기 전날에도 여기 공연장에 왔다고 하고.”

 “그래요? 불쌍하고 안 됐지만 이런 게 처음이라 왠지 두근두근하네요. 형사님의 취조 받는 거도 처음이거든요. 그 아이가 죽었을 줄이야. 아, 저 드라마도 형사물 진짜 좋아해요.”

 형식적인 절차라고 했지 장난이라고는 안 했는데. 수형이는 해맑지만 한없이 가벼워보이는 이 기타리스트에게 더 이상 건질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다른 두 멤버는 어느새 널브러져 자고 있었고, 별 수가 없었다.

 “그런데 멤버가 넷인 걸로 아는데, 한 분이 안 보이네요?”

 “보컬 형은 아직이에요. 그 형은 마이페이스라 오고 싶을 때 와요.”

 “그 분이 리더인가요?”

 “리더랄까, 정신적 지주죠. 우리 멤버들 중에 인기도 가장 많고.”

 “희진이도 그 분을 가장 좋아했나요?”

 “그렇지 않을까요? 늘 퇴근길에 기다렸다 선물을 줬지만 사진은 화타형이랑만 찍었으니까.”

 “화타형?”

 “닉네임 같은 거예요. 본명이 백호라서 화이트 타이거. 줄여서 화타. 흐흐흐.”

 자신이 말하고 뭐가 웃긴지 기타리스트는 말끝에 실없는 웃음을 풀풀 날렸다.

 “뭐가 웃기죠?”

 “아무리 폼을 잡아도 화이트 타이거면… … 좀 그렇잖아요, 우히히. 본인은 싫어하지만 어쩔 수 없죠. 팬들도 이젠 다 화타로 부르니까요.”

 그렇게 혼자 바보처럼 웃고 있는 기타리스트를 수형이 어이없게 바라보는데 대기실 문이 벌컥 열렸다. 키가 훌쩍 크고 긴 흑발을 뒤로 묶은 젊은 사내가 들어왔다. 180? 아니 190센티 가까이 될 듯한 키였다. 좀 사나운 인상이었지만 남자답게 또렷한 이목구비에 팔 다리가 긴 모델 같은 체형이 첫눈에 시선을 사로잡았다.

 “왔어, 화타형?”

 화타라고 불린 사내는 대답대신 눈짓으로 대기실에 들어와 있는 수형의 존재를 물었다. 금발 기타리스트와는 다르게 화타라는 멤버는 꽤 과묵하고 무뚝뚝한 성격인 듯 했다. 금발이 나서기 전에 수형이 화타의 앞에 다가서며 씩씩하게 말했다.

 “안녕하세요. 서울 G구 경찰서 소속 박수형 형삽니다. 밴드 멤버들에게 여쭤볼 것이 있어서 찾아왔습니다.”

 “뭐가 궁금한지 모르겠지만 이 녀석한테 물으세요.”

 “이 분한테는 이미 충분히 질문했구요. 리더이신 화타 씨께 묻고 싶은데요.”

 “뭐가 궁금하신데요.”

 “정희진 학생 아시죠?”

 “글쎄…요.”

 “왜 있잖아, 형! 우리 공연 맨 앞줄에서 보는 여고생. 화타형 팬이라고 사진도 찍고 그랬잖아.”

 “그 아이가… 왜요.”

 “그 애, 죽었대. 교통사고로. 형도 몰랐지?”

 “죽었… …다고?”

 화타라는 사내의 눈이 놀라움에 커지며 검은 눙동자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그리고 처음으로 수형과 똑바로 시선이 마주쳤다. 뭔가를 떠올린 듯한 표정. 뭘까, 저 남자 뭔가 있군. 수형의 형사적 직감이 격렬히 떨리는 나침반 바늘처럼 그를 향하고 있었다.

 “네. 죽었어요. 교문 앞 횡단보도에서 트럭에 부딪혀서.”

 수형이 강렬한 눈빛을 보란 듯이 눈앞의 남자에게 보내며 말하자 화타는 눈썹을 한 번 들썩하며 ‘그게 어쨌는데’하는 표정을 지었다. 아까 보았던 놀람과 당혹감은 빠르게 지워져 있었다.

 “그거, 안됐군요.”

 “그것뿐… 인가요?”

 “네. 그런데 형사님은 여기에 왜 찾아오신 거죠?”

 이 때다 싶은 수형이 드디어 준비했던 미끼를 던졌다.

 “그게요, 화타 씨. 죽기 직전 그 애가 ‘샐러맨더’ 이야기를 했더랍니다. ‘목격자’가 똑똑히 들었구요.”

 “네? 형사님 그게 진짜에요? 우와, 아까 그 얘긴 없었잖아요!!”

 금발이 갑자기 흥분하며 소리를 쳤다. 하지만 수형의 시선은 오직 화타라는 사내의 얼굴에 꽂혀 있었다. 입이 가벼운 녀석에게 홀려 이 중요한 순간을 빼앗길 수는 없었다.‘목격자’라는 말에 화타의 얼굴이 다시 무섭게 굳는 것을 수형은 놓치지 않았다.

 “사고라기엔… 아무대로 좀 이상하다 싶어서요.”

 “열혈팬이니 우연히 저희 밴드 이름을 중얼거린 거겠죠. 뭐가 이상합니까.”

 “아니죠, 아닙니다. 제가 언제 밴드 이름‘만’ 말했다고 했습니까.”

 “… ….”

 걸려들었다. 화타는 짐짓 여유 있는 체 하려다가 본능적으로 위기를 느꼈는지 그대로 입을 꾹 다물었다. 조금 더 기다려야 했다. 수형은 일부터 뜸을 들여 침묵을 길게 이어갔다. 급한 티를 내면 안 된다. 결정적 단서가 없다는 것을 들켜서는 안 된다. 화타라는 사내는 뭔가를 알고 있는 게 분명하다. 입이 근질거리는지 기타리스트가 수형에게 몸을 기울이며 뭔가를 말하려는 것을 화타가 강하게 제지했다.

 “넌 가만히 있어! 형사님, 그래서 그 애가 뭘 더 말했습니까.”

 “혹시 강민국 후보를 아십니까.”

 “강...민국? 대통령 후보 강민국 씨 말입니까?”

 “잘 아시는군요. 혹시 강민국 씨와 샐러맨더가 어떤 관련성이 있습니까?”

 “아뇨. 전혀요. TV에서나 봤을 뿐 저는 그 사람 만난 적도 없습니다.”

 반응이 묘했다. 샐러맨더 얘기를 하다가 돌연 강민국의 이름을 꺼냈는데 의아해하는 구석이 없었다. 남자는 왜 그 이름이 이 시점에서 거론되는지 묻질 않았다. 다만 즉답으로 자신과의 관련성을 강하게 부정했을 뿐이다. 결벽적인 그 반응이 마음에 걸렸다. 이 묘한 반응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흠... 그렇군요. 혹시 그럼 주변분들 중에서 강민국 씨와 샐러맨더를 모두 알 만한 사람이 있습니까. 접점이 될 인물이라든지요.”

 “아뇨. 저는 그런 사람은 모릅니다.”

 그런 사람. 오히려 마치 누군가를 염두에 두는 듯한 묘한 그의 단어선택에 수형은 뭔가가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분명 뭔가 있다. 허탕이 되더라도 이젠 남은 미끼를 마구 던져봐야 했다.

 “다른 멤버들은요? 여러분, 그런 사람 아는 사람 없어요? 리더 분은 기억을 못 하시는 것 같은데요. 잘 생각해 보세요. 요즘 선거 시즌이라 선거운동하는 사람들이 여기저기 다니잖아요. 그런 분들과 얽히신 적 없으세요? 한 번도요?”

 그때 역시 입 가벼운 금발이 대번에 반응을 하고 나섰다.

 “아, 맞다. 화타형! 그 남자애 있잖아. 왜 라이브 앞두고 형 팬이라고 찾아왔던. 걔가 전에 선거운동 알바한다고 하지 않았어?”

 “뭔 소리야 그게… ….”

 “걔가 무슨 책자 같은 거 들고 있는 거 봤는데. 그게 선거운동 자료 아니었나?”

 남자애? 선거 운동 알바? 수형은 미끼에 뭔가 의미 있는 것이 걸려들었다는 것을 감으로 알았다.

 “남자애요? 말씀하시는 그 아이가 누굽니까?”

 “저는 잘 몰라요. 형 팬이라면서 오면 형부터 찾았으니까. 형, 걔가 혹시 강민국 쪽 관련 있나?”

 “글쎄. 난 네가 누구를 말하는지 전혀 모르겠는데.”

 “모르긴! 형, 그 애 두 번이나 형을 보겠다고 대기실까지 와서…….”

 화타가 모른 척을 하자, 억울한 듯 금발의 음성이 커졌다. 수형은 화타가 이대로 줄을 끊고 도망치려는 것을 알았다.

 “잠깐만요.”

 “왜요 형사님? 제 말 진짜에요!”

 금발이 형사님도 자기를 못 믿냐는 듯 억울한 표정으로 이쪽을 바라보았다. 수형은 금발의 억울함 따위야 알 바 아니었지만 꼭 집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었다. 시선은 화타쪽을 보면서 수형은 금발을 향해 말을 이어갔다.

 “그거 참 이상하네요. 미성년자는 선거운동을 할 수 없을 텐데요. 학생이 선거 알바라니요. 혹시 그 남자애 이름은 몰라요?”

 “이름까진 몰라요. 형한테 선물을 주겠다고 해서, 제가 형 대신 두 번인가 선물 받아준 게 다에요.”

 “어쩌면 그 애가 중요한 증인이 될지도 모릅니다. 뭐든 좋으니 아는 대로 말해 주세요. 인상착의라든가.”

 “이 녀석 말은 귀담아 들을 필요 없어요. 그냥 되는 대로 지껄이는 거니까.”

 갑자기 말이 없던 화타가 그렇게 금발과의 대화를 차단하고 나서다니, 더욱 더 수상했다.

 “형! 되는 대로라니, 내가 없는 얘길 지어냈단 말이야?”

 “쓸데없는 소리 그만 하고 넌 가서 무대 점검이나 해. 저희 이제 리허설 시간이라서요. 죄송하지만 이만 돌아가시죠. 더 이상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화타가 대화를 억지로 끊어냈다. 정말로 아무것도 모른다면 무관심해야 정상이다. 그런데 저 예민한 반응은 뭔가를 감추고 있다는 증거였다. 어쩌면 중요한 단서와의 연결고리를 찾았는지도 모른다고 수형은 생각했다. 하지만 낚시는 늘 타이밍이 중요했다. 지금 찌에 반응이 있었다고, 성급히 낚아채서는 안 된다. 수형은 한 발 물러서기로 했다.

 “네. 그럼 바쁘신 것 같으니 나중에라도 뭐든 생각나시면 연락주세요. 다음에 또 들리죠.”

 “아뇨, 뭔가 알게 되면 제 쪽에서 연락드리겠습니다.”

 그렇게 말한 화타의 표정에서 뭔가 알더라도 말해주지 않겠다는 의지가 읽혔다. 그렇다면 역시 저 기타리스트 쪽으로 다시 한 번 공략해보는 수밖에 없었다. 수형은 입맛을 다시며 일단은 후퇴하는 척 얌전히 대기실을 빠져나왔다.

 “강민국 후보와 샐러맨더라. 분명 뭔가가 있군.”

 

 수형은 다음날, 서에 출근하자마자 이중필이 속해 있는 야당 쪽에 전화 문의를 해봤다. 하지만 생전의 희진이나 밴드 샐러맨더와 연관성이 있어 보이는 그 어떤 단서도 알아내지 못했다. 선거운동을 하는 알바생 목록을 아무 근거 없이 내줄 리도 없고 혹시라도 고등학생을 썼다면 선거법에 저촉되는 일이었다. 예민한 시기이니 만큼 경찰의 전화 자체를 반가워할 리도 없으니, 여기저기 전화를 걸었지만 허탕이었다. 수형은 오전 내 그렇게 헛발질만 실컷 하고 나서는 그제야 뒤늦은 허기가 밀려오는 것을 느꼈다. 아침도 거른 채 벌써 점심때가 되어 있었다. 아쉬운 대로 서 근처의 콩나물국밥집에서 때워야지 하고 몸을 일으켰다. 순돌이는 어디 갔는지 자리에 없었다. 5분 거리의 국밥집에 들어가 자리를 잡으니, 금세 펄펄 끓는 뚝배기가 눈앞에 놓여졌다. 수형이 막 수저를 넣으려는 순간 테이블 위에 올려둔 휴대폰이 드르륵하고 요란하게 진동했다.

 “여보세요.”

 - 저에요, 형사님.

 “실례지만 누구시죠?”

 - 샐러맨더 기타리스트요. 금발머리. 어제 오후에 찾아오셨잖아요.

 “아, 샐러맨더 분?”

 - 생각나는 게 있으면 연락 달라고 하셨잖아요? 제가 갑자기 기억난 게 있어서요.”

 “아 네. 그게 뭐죠?”

 - 그 녀석 이름은 모르겠지만 딱 한 번 교복을 입고 왔었던 게 기억나서요.”

 “어떤 교복이었죠? 혹시 학교를 아시나요?”

 - 그것까지는 모르겠어요. 그냥 짙은 감색교복인데 조끼가 녹색이었고, 교복 타이가 좀 특이했어요. 빗금처럼 사선으로 무늬 같은 게 들어가 있었는데 그게 금색… …같아서 눈에 띄었거든요. 모자를 쓰고 있었지만 키가 커서 말할 때 얼굴이 잠깐 보였어요. 제가 175인데요, 더 컸으니까 180은 훨씬 넘을 거예요. 그리고 뭐랄까 어젠 말을 못 했는데 그 녀석 분위기가 좀 묘했어요.”

 “분위기요?”

 - 네. 학생이라기엔 너무 차분하달까. 지나치게 어른스러워서 좀 섬뜩하다고 할까. 친절한 말투인데 왜 어린애같지 않은 말투 있잖아요. 그리고 말투만 친절하지 얼굴에는 웃음기가 전혀 없었어요. 시선이 마주쳤는데 좀 무섭더라구요. 팬이라는데 좋아하는 느낌도 전혀 없고, 절 봐도 아무런 감흥이 없어 보이고. 여튼 좀 느낌이 묘했어요. 보통 팬이라고 찾아오면 남자애라도 좋아서 난리치면서 흥분하거든요. 그리고 화타형 팬이라면서 화타형을 기다리지도 않고 저한테 선물만 전하면 된다고 선물을 덜렁 주고 간 것도 좀 이상하구요.

 금발의 말은 일리가 있었다. 그가 본 것이 사실이라면, 단순한 팬이라기엔 좀 이상한 녀석이었다.

 “공연 중에도 그 앨 본 적이 있나요?”

 - 라이브 때는 저도 제 정신이 아니라 객석을 볼 여유가 없어서요. 앞쪽이 아니면 잘 보이지도 않구요.

 “그렇군요. 그럼 혹시 그 애가 화타 씨한테 준 선물이 뭐였는지 알아요?”

 -아뇨. 궁금해서 형한테 물어봤는데 대답 안 해주더라구요. 그땐 화타형이 쑥스러운가보다 했죠.

 “그렇군요.”

 - 제가 생각난 건 이게 다예요. 이런 사소한 것도 도움이 될지 모르겠네요.

 “그럼요. 큰 도움이 됐습니다. 전화해줘서 고마워요.”

 - 그런데 형사님, 제가 전화했다는 건 비밀이에요. 화타형도 그 이후로 좀 이상해서요.

 “뭐가… 이상하단 말입니까?”

 - 뭔가 아는 척 나서지 말라느니, 그 녀석은 아무런 상관이 없다느니. 형사님 가시고 얼마나 닦달을 하던지. 절대로 그 녀석을 알고 있는 눈친데 감싸는 것처럼 말하잖아요. 형사님 다녀가신 후로 내내 예민하게 굴어요.

 “그렇군요. 팬이 안 좋은 사건과 연관되면 아무래도 기분이 좋지는 않겠죠. 그 남학생 최근에는 안 왔습니까?”

 - 네, 본 지 꽤 됐어요. 최근엔 안 오는 것 같아요.

 “알겠습니다. 혹시 그 남자애가 다시 찾아오면 화타 씨한테는 말하지 마시고 저한테 바로 연락 좀 주시겠습니까.”

 - 아 네, 그럴게요. 형사님.

 전화를 끊은 수형은 좀 전의 허기도 잊고 눈앞의 콩나물국밥을 세 번쯤 뜨는 둥 마는 둥 하고는 얼른 식당을 나와 버렸다. 마음이 급했다. 샐러맨더와 강민국, 그리고 둘의 접점인 고등학생 남자아이. 드러난 단서들은 이 모든 일이 단순한 우연의 일치가 아니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 남자애가 뭔가 열쇠를 쥐고 있음이 분명했다.

 

 수형은 금발에게서 들은 교복의 디자인과 색깔을 대강 스케치했다. 그리고 오후가 되어 때마침 하교 중인 근처 고등학생들을 불러세워 붙잡고는 그 교복에 대해 아는지 묻기 시작했다. 감색 교복은 흔했지만 녹색조끼를 얘기하자 고개를 갸웃하며 몇 개의 학교 이름이 나왔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독특한 빗금무늬의 타이를 기억하는 학생이 있었다. 그렇게 확실해진 학교의 이름은 영성외국어고등학교. 여기서 꽤 떨어져 있었지만 명문고라 교복을 아는 학생이 있었다. 학교는 샐러맨더의 공연장으로부터 25km정도, 버스로는 30분 정도 걸리는 거리에 있었다. 실마리는 찾았지만 문제는 거기서부터였다. 학교를 찾아가더라도 이름을 모르는 이상 그 아이를 찾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키가 크고 서늘한 눈매를 한 어른스러운 분위기의 녀석이라는 것만으로는 상대를 특정지을 수가 없었다. 잡힐 것 같은 데 잡히지 않는 답답한 느낌. 수형은 손톱이 파고드는 고통도 모른 채 주먹을 불끈 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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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17. 용이의 선택-1 2019 / 11 / 8 243 2 3591   
17 #16. 괴물과의 조우 2019 / 10 / 31 233 2 9483   
16 #15. 노량진 강사의 죽음-2 2019 / 10 / 31 242 2 4419   
15 #14. 노량진 강사의 죽음-1 2019 / 10 / 31 249 2 5827   
14 #13. 한명석의 비책 2019 / 10 / 31 248 2 2632   
13 #12. 뉴스보도 (2) 2019 / 10 / 14 260 2 7947   
12 #11. 밀담, 음험한 계략 2019 / 10 / 8 249 3 10293   
11 #10. 록밴드 샐러맨더 2019 / 10 / 4 281 3 9808   
10 #9. 마리오네트 실험 2019 / 10 / 3 255 4 5261   
9 #8. 데이빗 한 vs 이중필 2019 / 10 / 1 250 2 4048   
8 #7. TV토론회, 강민국의 반격 2019 / 9 / 25 263 4 7154   
7 #6. 소년, 용이 (2) 2019 / 9 / 24 287 4 7362   
6 #5. 악마의 냄새를 맡다 (4) 2019 / 9 / 24 270 4 6371   
5 #4. 레퀴엠, 죽음을 부르는 노래 (4) 2019 / 9 / 10 280 4 4855   
4 #3. 어린 몬스터들의 아지트-2 2019 / 9 / 9 261 4 5032   
3 #2. 어린 몬스터들의 아지트-1 (2) 2019 / 9 / 9 270 3 7883   
2 #1. 마트료시카 (2) 2019 / 9 / 6 311 5 6366   
1 #프롤로그 - 어린 괴물과의 조우 (6) 2019 / 9 / 5 467 4 4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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