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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기타
대망 : 아마쿠사의 신
작가 : 한연화
작품등록일 : 2019.9.20

"제가 원하는 것은 전국을 일통하고 강한 군주가 되어 백성들을 덕으로 교화하는 것입니다. 그 길에는 지독한 피비린내와 가시밭길만이 있겠지요. 이런 저라도 받아주실 수 있겠습니까?" 끝없는 전란이 이어지는 전국시대의 일본. 천하를 무로 덮는 운명을 타고났으나 누나에 의해 사람이되 사람이 아닌 자, 히닌이 되어 쫓겨난 오와리국의 후계 유죠와 인간들의 전장에서 태어난 전쟁의 여신 아마쿠사미코토의 전국일통을 향한 일대기가 시작된다. 격랑의 역사 속, 그들의 삶과 사랑은 과연 어찌 될 것인가?

 
아마쿠사로(1)
작성일 : 19-10-03 07:20     조회 : 267     추천 : 0     분량 : 7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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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굴에 낙인이 찍히고, 유죠는 하루를 더 쇼비타 성에 머물 수 있었다. 본래 얼굴에 낙인이 찍힌 죄인은 그 즉시 아무것도 가지지 못하고 성 밖으로 추방당해야 했지만 유죠를 동정한 봉행 유미즈 제쿠의 청원으로 유죠는 하루를 더 쇼비타 성에 머물 수 있었다.

 

  “아무리 죄인이라 하나 전하의 동생입니다. 그런 이를 곧바로 성에서 쫓아낸다면 그것은 전하의 은덕에 큰 흠이 되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오늘 하루만 더 성 안에 머물며 얼굴의 화상을 치료하고 필요한 물건을 챙길 수 있도록 허하심은 어떠할는지요?”

 

  제쿠의 청원에 카이히메는 못 이기는 척 유죠가 하루 더 머무는 것을 허락했다. 이제 죄인의 낙인이 찍히고 히닌이 된 유죠는 그녀에게 조금의 위협도 되지 않았다. 카이히메는 자신이 인륜을 아는 관대한 군주라는 사실을 드러내 보이기 위해 유죠를 감옥에서 원래 쓰던 처소로 옮겨주었고, 화상을 치료할 의사도 불러오게 했다.

 

  “미천한 의사 기요치카 타다테루가 감히 전하의 존안을 뵙습니다.”

 

  유죠의 화상을 치료할 의사가 불려오자 커다란 발을 드리우고 앉아 쥘부채로 얼굴을 가리고 있던 카이히메는 손을 내밀어 시녀에게 담뱃대를 가져오게 했다. 시녀가 담뱃잎을 채우고 불을 붙여 건네자 카이히메는 연기를 후, 하고 내뱉었다.

 

  “내일이면 떠나는 아이다. 잘 돌봐주도록.”

  “성심을 다하겠습니다, 전하.”

 

  같은 시각, 유죠는 처소에 가만히 앉아 앞으로의 일을 생각하고 있었다. 이제 히닌이 되어버린 이상, 자신이 인간으로 살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한 일이었다. 하지만 인간으로 살 수 없다 해서 죽을 수는 없다는 것 또한 분명한 일이지 않은가. 자신이 지금 죽는다면 그것이야말로 누나 카이히메가 가장 바라는 것일 터였고, 무엇보다 자신 때문에 죄인이 되어 죽어간 스승의 억울함도 풀어줄 수 없을 터였다. 그러니 자신은 무슨 일이 있어도 살아야 했고, 살아서 자신의 자리를 되찾아야 했다. 하지만 살아가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먹을 것과 입을 것, 그리고 살 곳을 마련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아.”

 

  유죠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 보니 자신은 성 안에서 이시다가의 차기 당주로, 오와리국의 차기 다이묘로 받들어지며 귀하게만 살다보니 어떻게 돈을 버는지조차 모르고 있었다. 유죠는 그대로 다다미바닥 위에 누워버렸다. 내일 당장 이곳을 떠난다면 굶어죽지 않을 수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누구냐?”

 

  그대로 등을 돌리고 누워 웅크리고 있던 유죠는 방문이 열리는 소리에 심드렁한 목소리로 물었다. 카이히메가 그새 마음이 바뀌어 지금 당장 성을 나가라고 사람을 보내기라도 한 것인가. 유죠는 말했다.

 

  “참으로 변덕이 죽 끓듯 하는 여인이로다. 오늘까지는 성 안에 머물 수 있다 하지 않았더냐. 한데, 그새를 못 참고 나가라 하다니. 그리도 내가 두렵단 말이더냐.”

  “의사 기요치카 타다테루입니다.”

 

  유죠는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의 앞에 쌍수례를 올리고 있는 남자를 바라보았다. 남자의 뒤에는 카이히메의 유모 아라츠보네가 팔짱을 끼고 서 있었다. 유죠는 아라츠보네를 노려보다 자신의 앞에 엎드린 타다테루에게 시선을 옮겼다.

 

  “의사? 의사가 무슨 일이지?”

  “전하의 명으로 유죠님의 화상을 치료하러 왔습니다. 부디 치료를 윤허하여주시옵소서.”

  “윤허라. 하, 타다테루.”

  “예, 유죠님.”

  “내가 아직도 이시다가의 후계이던가? 나는 이제 일개 히닌에 불과할 뿐이다. 그러니 내게 윤허라는 말은 가당치도 않다.”

  “…….”

  “하지만 이대로 돌아간다면 그대가 그 여인에게 벌을 받을 터. 그러니 그대는 얼굴을 들고 나를 진찰하라.”

 

  타다테루가 얼굴을 들고 무릎걸음으로 유죠에게 다가왔다. 낙인이 찍힌 유죠의 환부에는 피와 진물이 굳어져 있었다. 상태를 보아하니 이미 타들어간 피부 속을 어찌할 수는 없었지만 더 이상 상처가 깊어져 피부조직이 괴사되는 것을 막을 수는 있을 듯했다. 타다테루는 찬물로 유죠의 상처를 씻고 굳어진 피와, 진물 위로 흘러나오기 시작하는 노란 고름들을 긁어냈다. 피부 속이 단단히 상했는지 살을 날카로운 쇠붙이로 긁어내는데도 유죠는 전혀 아픔을 느끼지 못했다.

 

  “아프지 않으십니까?”

 

  타다테루가 물었다. 유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타다테루가 안타까움이 가득 담긴 눈으로 유죠를 바라보았다.

 

  “다 되었습니다.”

 

  타다테루가 약초를 짓찧어 살을 긁어낸 자리에 붙이고 얼굴에 붕대를 감아주었다. 유죠는 뒷걸음질로 물러나며 허리를 깊이 숙이는 타다테루를 바라보았다. 곧 아라츠보네가 경멸이 담긴 눈으로 유죠를 바라보고 방문을 나서고 그대로 방문이 쾅, 소리를 내며 닫혔다.

 

  봄꽃은 가지 아래로 지고, 가을 안개는 잎사귀에 잠기네

  흐르는 물 머물지 않고 지나는 바람 한동안 소리를 토하네

  육진(六 塵)은 자주 빠지는 바다, 사덕(四 德)은 돌아가야 할 봉우리

  이미 삼계(三 界)의 속박을 모르니 어찌 영잠을 벗겠는가

 

  유죠는 문득 시를 읊었다. 봄꽃이 가지 아래로 지고, 가을 안개가 잎사귀에 잠기는 것처럼, 흐르는 물이 머물지 않고, 지나는 바람이 한동안 소리를 토하는 것처럼 이 세상에 변치 않는 것은 없다지만 자신의 처지가 하루아침에 이리 달라질 줄이야. 그러나 유죠는 울 수 없었다. 무가의 자식에게 있어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며 우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유죠는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왈칵 밀려드는 설움을 애써 참아냈다.

 

  “나는 절대 봄꽃처럼 지지 않아. 가을 안개처럼 잠기지 않아.”

 

  유죠는 절대 지지 않겠다고, 잠기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하며 눈을 감았다. 내일이면 이 쇼비타 성을 나가 오와리국의 영토를 떠나야 했다.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

 

  문득 드는 생각에 유죠는 고개를 저었다. 일단은 어떻게든 살아남아 지지 않고, 잠기지 않는 것을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이었다.

 

  “이시다 단조노추 유죠는 지금 즉시 나와 전하의 명을 받들라!”

 

  다음날 아침이 되어 유죠는 자리에서 일어나 보자기에 옷가지 몇 벌을 챙겨 넣고, 우치카타나 한 자루와 와키자시 한 자루를 허리에 찼다. 필요한 것은 무엇이든 가지고 나갈 수 있었지만 이곳에서 썼던 물건 중 지금 유죠에게 필요한 것은 옷가지와 칼뿐이었다.

 

  “그러고 보니 히닌이 쌍도를 지니고 있다는 것도 웃기는 일이군.”

 

  쌍도를 지닐 수 있는 것은 오직 사무라이뿐이거늘. 이제는 사무라이조차 아니게 된 히닌이 쌍도를 지니고 있다는 것 자체가 언제 목이 달아나도 이상하지 않을 일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유죠는 쌍도를 다시 풀어놓을 수 없었다. 지금 이 쌍도를 풀어놓는다면 유죠라는 한 인간 자체가 사라질 것 같았다.

 

  “어서 나오시오, 이시다 단조노추 유죠!”

  “그리 재촉하지 않아도 지금 나갈 것이다.”

 

  처소 밖으로 나온 유죠는 댓돌 위에 놓인 짚신에 발가락을 끼워 넣었다. 벌써 자신의 처소에 소거령이 내려졌는지 시종들이며 시녀들이 처소 안의 가구들을 밖으로 꺼내기 시작했다. 유죠는 그 모습을 바라보다 고개를 돌려 앞을 바라보았다. 이제 자신은 이시다 단조노추도, 유죠도 아니었다. 자신은 이제부터 사람이되 사람이 아닌 히닌이었다.

 

  “모두 내 꼴을 구경하려고 나온 것인가.”

 

  유죠는 카이히메에게 하직인사조차 하지 않고 쇼비타 성을 나섰다. 성 밖에서는 소식을 들은 농민들이며 상공업자들이 길거리에 나와 일렬로 늘어서서 유죠가 지나가는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 중 어떤 이들은 유죠가 가엾다며 혀를 찼고, 또 어떤 이들은 염주를 꺼내 기도를 올려주었다. 그러나 유죠는 그들 중 어떤 이들에게도 눈길을 주지 않고 묵묵히 앞만 보고 걸었다. 그때였다.

 

  “저의 주인 되시는 분께서 이것을 전해주시랍니다.”

 

  싸구려비단으로 만든 여러 겹의 고소데를 입은 여자가 사람들 틈에서 나와 유죠에게 작은 주머니 하나와 보퉁이 하나를 건네주었다. 유죠는 자신에게 주머니와 보퉁이만 전하고 다시 사람들 틈으로 사라져가는 여자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긴 머리를 목덜미 아래에서 하나로 묶은 여자가 누군가에게 고개를 숙이는 모습이 보였다.

 

  ‘유미즈 제쿠?’

 

  유죠는 여자의 주인으로 보이는 남자의 모습을 알아볼 수 있었다. 커다란 삿갓을 코끝까지 눌러쓰고 있었지만 그는 분명, 유미즈 제쿠가 맞았다.

 

  “대체 그대가 왜?”

 

  유죠가 제쿠의 앞을 지날 때, 그가 고개를 숙여 예를 올렸다. 유죠는 잠시 멈춰 서서 그를 바라보았다. 삿갓으로 덮인 머리통을 잠시 동안 바라보다 말고 유죠는 고개를 홱 돌렸다. 그가 지금껏 자신에게 보인 태도로 미루어 보아 그는 자신을 동정하는 것이 맞았다. 그러나 그가 왜, 무슨 이유로 자신을 동정한단 말인가.

 

  “그대가 왜 나를 동정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유죠는 말했다. 단순히 옛 주군에 대한 충성심이라든가, 옛 주군의 아들에 대한 의리라고 볼 수도 있었으나 이 시대는 그런 것을 허락하지 않는 시대였다. 기름장수 출신이 제가 모시던 주군들을 모두 죽이고 다이묘의 자리에 오르고, 천한 농사꾼이 자신을 총애한 주군의 가문을 무너뜨리고 천하지배에 대한 야욕을 드러내는 그런 시대가 바로 지금의 이 시대였다. 그런데 그 누가 단순히 충과 의리로 히닌이 된 옛 주군의 아들을 동정한단 말인가.

 

  “나를 동정해 그대에게 무슨 이득이 있다고 이러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그것 또한 중요하지 않다.”

 

  그러니 제쿠가 자신을 동정하는 것은 그것이 그에게 큰 이득이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유죠는 그가 자신을 통해 무슨 이득을 얻고자 하는 것인지 잠시 생각해보았다. 그러나 유죠는 곧 고개를 저었다. 자신을 통해 이득을 얻고자 하는 자에게는 이득을 주면 된다. 그리고 이렇게 두 주군을 섬기며 이득을 취하지 못하도록 철저히 자신의 개로 만들어 길들이면 된다. 물론, 그 모든 것은 자신인 돌아온 다음의 일이지만. 유죠는 마지막으로 말했다.

 

  “언젠가는 나를 동정한 것을 후회하게 될 것이다. 내 발 밑에서 네 발로 기며 개처럼 짖게 될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대가 내 발 밑에서 개가 되어 꼬리를 흔들고 짖는 것을 보러 반드시 돌아올 것이다.”

 

  유죠는 잠시 멈춰 서서 생각했다. 어디로 가야 할 것인가. 쇼비타 성을 나왔으니 어디로든 가야 할 것인데 태어나서 단 한 번도 오와리국 밖을 벗어나본 적이 없는 유죠로서는 어디로 가야할 지조차 알 수 없었다. 문득, 유죠는 옥사에서 만난 사내를 떠올렸다. 그러고 보니 그 사내가 아마쿠사에서 왔다고 했던가.

 

  ‘가만, 아마쿠사?’

 

  그러고 보니 신관이었던 그 사내는 아마쿠사의 작은 신사에 있었다고 했다. 그 신사에는 아름답고 잔혹한 신이 살고 있다고,

 

  “아마쿠사…….”

 

  유죠는 북서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오와리국에서 아마쿠사로 가기 위해서는 북서쪽으로 걸어가 사츠마에서 배를 타고 다시 서쪽으로 가야 했다. 유죠는 북서쪽을 향해 걸으며 중얼거렸다.

 

  “그래, 일단은 아마쿠사로 가자. 아마쿠사로 가서…… 가서…….”

 

  그러나 가서 무엇을 해야 하지? 아니, 무엇을 할 수는 있을까? 유죠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우선은 어디로 가야 할지를 정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뭐, 산 입에 거미줄 치겠어. 일단은 아마쿠사로 가자. 가서 어떻게든 살아보자. 그렇게…… 살다보면 언젠가는 다시 돌아올 수 있겠지.”

 

 ※

 

  제쿠가 몰래 건네준 보퉁이와 주머니에는 얼마간 먹을 식량과 당분간 쓸 노잣돈이 들어 있었다. 출출할 때나 오래 걸을 때 먹으라고 넣어준 것인지 보퉁이에는 주먹밥과 장아찌가 들어 있었고, 당분간 노잣돈으로 쓰거나 필요한 데에 쓰라고 준 것인지 주머니에는 금화와 은화가 들어 있었다.

 

  “대체 이게…….”

 

  사람들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에서 보퉁이와 주머니를 풀어본 유죠는 문득, 자신의 옷을 내려다보았다. 제쿠의 동정이 순수한 호의가 아니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먼 길을 가는 데에 스오이는 불편하고 눈에 띌 것이었다. 더구나 얼굴에 죄인의 낙인이 찍힌 히닌이 입고 다니기에는 더더욱. 유죠는 입고 있는 진홍색 도우부쿠(무로마치 중기 이후에 입기 시작한 길이가 짧은 상의. 훗날 하오리의 원형이 되었다.)를 덮어써 얼굴을 가리고 어느 민가의 빨랫줄에 걸린 마른 빨래를 샀다. 은화를 주고 고소데 두 벌과 하카마를 산 유죠는 옷을 빼앗듯이 집어 들고 그 집을 도망쳐 나왔다. 한참을 달려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옷을 갈아입은 유죠는 다시 북서쪽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하. 되는 일이 하나도 없군.”

 

  그러나 유죠의 여행은 험난하기만 했다. 거듭되는 전란과 함께 마음이 피폐해진 사람들은 부모 없이 혼자 다니는 어린아이의 여행을 내버려두지 않았다. 그들은 유죠를 덮쳐 금화와 은화를 빼앗아갔고, 유죠는 칼을 빼들고 저항해보았으나 어린아이의 힘으로는 성인들을 이길 수 없었다. 그들은 그런 유죠를 비웃으며 주먹으로, 발로, 몽둥이로 모진 매질을 가했고, 얼굴에 찍힌 낙인에 침을 뱉으며 “재수 없는 히닌새끼”라고 불렀다.

 

  “재수 없는 히닌새끼. 으으. 오늘은 재수가 없으려나.”

  “으으. 더러워. 피냄새가 내 몸에까지 옮는 것 같아.”

  “가자. 가서 목욕이나 해야겠다.”

 

  히닌과 닿았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더럽다며 치를 떠는 그들을 바라보다 말고 유죠는 하하, 소리 내어 웃었다. 그렇게 불결한 히닌을 덮쳐 돈을 빼앗으면서 히닌이 더럽다 말하는 저 치들을 어찌 봐야 할까. 한동안 웃던 유죠는 마을로 내려가는 그들의 뒤를 따라갔다. 어려서부터 훈련해왔던 대로 발소리를 죽여 기척조차 내지 않고 그들을 따라가며 유죠는 우치카타나의 칼집에 손을 올렸다. 먼저 치지 않으면 죽는다. 먼저 죽이지 않으면 죽는다. 그러니 먼저 치고, 먼저 죽여야 한다. 일순간, 사무라이로서의 본능이 살아나 유죠를 덮쳐오기 시작했다. 사무라이. 전장의 피냄새를, 사람들의 피냄새를 두르고 사는 그 특유의 본능이 깨어나 꿈틀거리기 시작하는 유죠의 눈에는 두려움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내 것을 빼앗아갔으니 죽어야해.’

 

  그저 빼앗긴 것을 되찾기 위해 죽일 뿐 다른 이유는 없었다. 유죠는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밤하늘의 달빛에 칼날이 은색으로 빛나며 반짝였다.

 

  “오늘도 재수가 좋았어.”

  “그러게. 그 히닌 애새끼가 이런 금화며 은화를 가지고 있을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어.”

 

  그들은 유죠의 주머니를 열어 저희들 멋대로 돈을 나누고 저마다 술집으로, 유곽으로 흩어졌다. 유죠는 그들을 향해 달려갔다. 탁탁탁, 하는 둔탁한 발소리를 들은 그들이 유죠를 돌아보았다.

 

  “뭐야, 저건?”

  “아까 그 히닌 애새끼 아냐?”

 

  유죠는 그대로 그들의 앞으로 짓쳐 들어가 칼을 빼들고 한 명의 가슴에서 배꼽까지를 길게 올려 그었다. 몸의 큰 혈맥이 끊어졌으니 반 시진(한 시간) 이내에 죽을 것이리라. 유죠는 공포에 질린 표정으로 자신을 돌아보는 사내들 한 사람 한 사람을 같은 방법으로 베었다.

 

  “참으로 덧없구나.”

 

  달빛 아래에 흩뿌려지는 피를 보다 말고 유죠는 마치 홀린 듯이 중얼거렸다. 이리 쉽게 스러지는 것이 인간의 숨이거늘. 더구나 이러한 전란의 시대에는 더 쉽게 스러지는 것이 인간의 숨이거늘. 그것을 알 만큼 알 사람들이 어찌하여 남의 것을 탐내다 이리 허망하게 목숨을 잃는지 유죠는 알 수 없었다.

 

  “그래도 카이히메는 그럴 만한 자격이 있어. 그녀에게는 권력욕도, 야망도, 능력도, 배포도 있으니까. 하지만 너희에게는 그런 것이 없잖아. 그저 남의 것을 탐내고 빼앗을 줄 아는 탐욕만 있을 뿐.”

 

  깊은 밤 마을 어귀, 달빛 아래에 살아 숨 쉬는 것은 오직 유죠뿐이었다. 유죠는 자신의 금화와 은화를 챙기다 말고 달을 바라보았다. 첫 살인을 저지른 이상 당분간은 누군가에게 자신의 것을 빼앗기는 일은 없을 것이리라 생각하며 유죠는 자신의 발밑에 널브러진 시체들을 차가운 눈으로 내려다보았다.

 

 

 

 
작가의 말
 

 아마쿠사로 가는 길에 첫 살인을 저지른 유죠... 그의 운명은 어찌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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