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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용非어천가 - 하늘에 오르지 않는 노래 -
작가 : Namwoo
작품등록일 : 2019.9.3

먼 옛날 사람과 어울려 살았던 이무기, ‘치우’는 어떤 사건을 계기로 감정을 봉인하고 깊은 물로 들어가 여의주가 생길 천 번째 해만 기다리게 된다.
인연을 만들지 않기 위해서 어두운 물속에서만 지냈건만, 여의주를 얻은 날 마지막으로 옛 마을의 터를 찾았다가 ‘문종’과 마주치고 만다.
‘문종’과의 대화로 얼어붙었던 ‘치우’의 마음이 녹게 되고, 높은 산에 오른 ‘치우’는 승천하려던 순간에 들려온 한 소녀의 비명을 외면하지 못하고 마는데...
‘치우’를 하늘에 오르지 못하게 할 새로운 인연, ‘해랑’과 모종의 사건들이 그를 둘러싼다! <매주 화, 금 업로드>

 
9화. 질투가 품는 소망
작성일 : 19-10-01 03:14     조회 : 231     추천 : 0     분량 : 8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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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쪽빛...이라니?”

 

 - 끼이익

 

 

 해랑은 소리가 난 곳을 보았다. 문이 열린 곳엔 초아가 서 있었다.

 

 치우는 서둘러 평상에서 일어서며 옷매무새를 다듬는 척 얼굴을 덮어 가렸다.

 

 초아는 미심쩍은 표정으로 그들의 집으로 걸어 들어왔다.

 

 ‘이렇게 가까이에 있었다고...?’

 

 도대체 얼마나 치우에게 정신이 팔려있던 것 인가. 촌장님은 당연히 걱정이 될 것이라 말씀하셨지만, 도대체가 이 익숙하지 않은 감정은 무어란 말이냐.

 

 치우 또한 초아의 기척을 느끼지 못했다는 생각은 하지도 못한 채, 해랑은 입 안을 까득 깨물며 정신을 차렸다.

 

 “언니! 아... 오라버니 오셨다는 얘기 듣고 왔어요? 어... ”

 

 “응? 응. 그런데 방금 무슨..얘기야?”

 

 큰일이다. 어디서부터 들은 것일까? 뒤늦게 당황한 해랑의 귓가엔 쿵쿵 뛰는 심장 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초아, 마침 잘 왔다.”

 

 해랑의 눈앞이 캄캄한 그때, 치우가 나섰다.

 

 “오라버니께서 돌아오셨다길래 얼굴 좀 뵈러...왔습니다.”

 

 초아의 얼굴에 반짝 반가운 기색이 비쳤지만, 의뭉스러운 마음 때문인지 말끝을 흐렸다.

 

 “이렇게 오자마자 환영해 주는 누이가 해랑이 말고 또 있을 줄이야.”

 

 치우의 말은 그의 감미로운 목소리에 싸여, 더욱 다정하게 느껴졌다.

 초아는 얼굴이 화끈 붉어져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부끄러워하는 것도 한 순간이었을 뿐.

 다른 모든 여인이 그러하듯 초아도 마음에 드는 사내에게 적극적인 여인이었다.

 먼저 말을 거는 건 늘 자신의 몫이었던 초아에게, 지금은 치우와 좀 더 가까워 질 수 있을지도 모르는 몇 번 없을 기회였다.

 

 “헌데, 오라버니. 마침 잘 왔다고 하신 말씀은... 무슨 뜻입니까?”

 

 ‘오라버니도 예전과 다르게 처세가 많이 느셨구나.’

 

 그런 초아를 좋아하며 잘 따르는 해랑은, 이런 광경을 볼 때마다 그녀의 마음이 이루어질 수 없음을 알기에 안타까웠다.

 

 해랑이 무슨 생각을 하든 말든 치우는 태연하다 못해 조금은 뻔뻔한 태도로 초아를 대하고 있었다.

 

 “아아, 그래. 여기에 잠시 앉아 보거라.”

 

 입가에 잔잔한 미소를 머금은 치우는 평상을 탁탁 쳤다.

 초아는 낯선 치우의 태도에도 기쁜 얼굴로 다가가 앉았다.

 

 “잠깐만 있어 봐.”

 

 치우는 보따리 안에 다른 천으로 싸인 작은 보따리를 내밀었다.

 

 “이게 무엇입니까?”

 

 초아는 눈을 크게 뜬 채 얼떨떨한 얼굴로 치우를 바라보았다.

 

 “네 것이다. 네 마음에 들지는 모르겠구나.”

 

 초아는 멍하니 보따리를 바라보다가 떨리는 손으로 매듭을 풀었다.

 보자기 안에는 코가 붉은 흰색 당혜가 들어있었다.

 

 “이...이런걸 제가 신어도 괜찮습니까?”

 

 치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것이라니? 혹 신분 때문이라면 그런 얘기는 말아라. 이 마을에선 그런 것은 상관없으니까.”

 

 “그..런 뜻이 아니라, 어찌 이리 귀한 것을 오라버니께서 제게 주시는지 궁금해서...”

 

 초아는 얼굴이 빨개지며 정신이 없어서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하지만 그녀의 물음엔 분명히 자신이 원하는, 정해진 답이 있었다.

 그리고 그의 입에서 그 답을 나올 리 없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런 초아를 바라보는 치우의 얼굴은 입 주변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분명히 진심이 담긴 미소가 번져 있었다.

 

 ‘촌장님, 제 오라비는 꽃신도 살 줄 아는 사내였습니다. 참 다행이죠?...다행 인 거죠? ’

 

 자신은 여태껏 왜 초아를 안타까워했을까, 뭘 보고 초아의 사랑이 당연히 이루어질 리 없다고 판단했던 것일까?

 

 해랑은 마음 한구석이 욱신거려 잠시 방으로 자리를 피했다.

 

 ‘아직 내 것을 보지 못해서, 서운해서 이러는 거다. 그런 거야 신해랑.”

 

 그 욱신거림의 이유를 알기엔 해랑은 아직 어리고 마음도 연약했다.

 하지만 자리를 피한다고 한들, 그 둘이 나누는 대화가 해랑의 귀에 들리지 않을 턱이 없었다.

 해랑은 처음으로 귀가 밝아진 능력이 쓸모없다고 생각했다.

 

 “마음에 드니? 쪽빛을 샀어야 했는지 붉은색을 잘 산 것인지, 해랑이와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참이었다.”

 

 “아아...그렇게까지 고민하셨다니. 오라버니를 닮은 쪽빛도 좋지만, 저는 이 붉은 색도 아주 마음에 듭니다.”

 

 초아의 목소리에 들뜬 감정이 묻어났다.

 치우는 초아의 말에 약간의 죄책감을 느끼며, 지금 눈을 가리고 있는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붉은색은 뭐든 열심히 하려 들 때의 초아, 네 얼굴빛과 닮았어.”

 

 치우의 다정한 목소리를 들은 해랑은 초아의 얼굴을 보지 않아도 어떤 표정인지 알 것 같았다.

 

 “그 말씀은, 이 고운 당혜처럼 저도 어여쁘다는 뜻이지요?”

 

 치우의 어깨를 살짝 치며 말꼬리를 잡는 초아의 행동에 치우는 당황하는 척하며 장난스럽게 말을 돌렸다.

 

 “어……. 샘찬이와 열심히 다툴 때에도 붉은 빛이었던 것 같은데?”

 

 “아이, 말 돌리지 마시구요~!”

 

 

 초아는 그런 치우를 보며 해맑게 웃었다.

 

 “초아야, 나는 네게 늘 고마웠다. 오라비로서는 여동생에게 해줄 수 없는 일도 있는데, 늘 잘 데리고 다니며 해랑이를 가르쳐주는 네가 있어서 어찌나 마음이 놓이고 기뻤는지.... 내가 그간 너에게 표현이 부족했구나. 이런 선물에도 그렇게 기뻐해 주니 내가 더 기쁘구나.”

 

 ‘너를 마음에 품었다’같은 초아가 원하던 대답이 아니었지만, 치우의 말은 초아에게 훨씬 더 특별하게 다가왔다.

 

 치우에게 함께 살며 더 잘 해줄 수 있다고 외치고 싶은 주책스런 마음이 초아의 마음을 범람했지만, 그녀는 마음을 꾹 누르고 해맑게 웃었다.

 

 “그렇게 말씀하시면 저 서운합니다~? 꼭 오라버니께 잘 보이려고 해랑이와 잘 지낸 것 같잖아요?”

 

 “물론 아닌 것 알지. 네 마음씨가 누구보다도 따뜻하고 곱다는 걸 이 마을에 모르는 이가 어디 있다고.”

 

 치우는 처음 맞닥뜨린 익숙하지 않은 상황과 분위기 속에서 자신이 나누고 있는 대화에 어색함을 느껴 자꾸 웃음이 나왔다.

 

 ‘내가 이런 말도 할 수 있었던가...’

 

 하지만 초아는 처음으로 치우에게 보답을 받은 것에 기쁘면서도, 한편으론 치우의 미소만 바라보고 있는 상황에 섭섭한 마음이 들었다.

 얼굴 대부분을 가린 채 자신을 대하는 치우의 모습은 여전히 초아에게 너무나 먼 존재 같았기 때문이다.

 

 “저…그런데 오라버니.”

 “그래.”

 

 더 욕심을 부리다간 지금의 좋은 분위기를 망칠 수 있다는 걸 잘 알면서도, 초아는 이번엔 목 끝까지 차오른 말을 삼키지 못하고 내뱉고 말았다.

 

 “어찌 제게 얼굴 한번 보여주질 않으십니까…?”

 

 

 해는 산에 걸쳐 붉게 빛나고 있고 주변은 아직 밝았다.

 

 “아, 지금은 남에게 내비칠 모습이 못 되어서...”

 

 “급히 돌아오셨을테니, 몸단장을 못하신 것 압니다. 그치만,”

 

 “초아야. 곧 해가 질텐데 너무 오래 나와 있는 것 아니냐. 아버지도 오랜만에 집에 오셨을텐데?”

 

 초아는 왠지 이대로 물러서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저희 집에서 함께 식사하시는 건 어떠세요? 제가 이렇게 꽃신도 받았으니...”

 

 “고맙지만, 오늘은 나도 해랑이와 시간을 보내야겠구나. 식사는 다음에 하자.”

 

 치우는 상냥한 목소리로 말했지만, 초아는 상처받은 표정을 숨길 수 없어서 당혹감에 홱 돌아섰다.

 

 “아….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예. 그러면 이만 가볼게요.”

 

 

 *

 빠른 걸음으로 달리던 초아는 집 근처에 이르러 발을 멈췄다.

 

 ‘바보! 그런 말을 왜 한 거람... 모처럼 오라버니께서 신경 써 주셨는데...!’

 

 치우에게서 받은 신발을 안고 있는 초아의 눈에서 눈물이 뚝 하고 떨어졌다.

 

 “날 뭐라 생각하셨겠어....”

 

 

 -저벅저벅

 

 

 다가오는 발소리에 초아는 서둘러 눈물을 훔쳤다.

 

 “초아야.”

 

 치우와는 다른 좀 더 묵직하고 걸걸한 목소리가 들렸다.

 뒤를 돌아본 초아의 앞엔 사냥꾼 장산의 둘째 아들 샘찬이 서 있었다.

 

 “뭐야?”

 

 치우가 쫓아왔기를 내심 기대했던 초아는 약간의 실망이 섞인 목소리로 대답했다.

 

 “저. 저, 그게. 이거! 너 가져!“

 

 커다란 풍채에 어울리지 않게 수줍음이 많았던 샘찬은 초아를 똑바로 바라보지도 못한 채로 손에 들고 있던 보따리를 그녀를 향해 뻗었다.

 그 바람에 초아가 안고 있던 신발이 바닥으로 떨어졌고, 초아는 서둘러 쭈그려 앉아 신발을 털었다.

 

 “이…! 장샘찬! 뭐 하는 거야?! 이걸 어찌해…!”

 

 샘찬은 서둘러 함께 주저앉아 신발을 집어주려고 했다.

 

 “이거...신이 녀석이 준 거야?”

 

 “뭐? 신이 형님이라 해야지! 너 이번에도 오라버니와 다툰 거 아니겠지?!”

 

 “제 이름도 모르는 놈이 말하는 나이를 어떻게 믿고 형님이라고 불러? 성이 신 씨인 건 맞대? 아, 그거 그 자식이 준 거 맞냐고.”

 

 “그래! 신이 오라버니께서 주셨어!”

 

 초아는 다시 얼굴이 달아오르는 것을 느끼자, 소리를 빽 지르고 집으로 들어갔다.

 

 “해랑이 선물을 고른다고 나가더니. 초아가 자기에게 맘 있는 것도 알고 내가 초아를 좋아하는 걸 뻔히 알면서! 그 여우 같은 새끼가...!”

 

 샘찬은 자신의 손에 든 보따리를 바닥에 내팽개치곤 이를 바득 갈더니 씩씩거리며 자신의 집으로 갔다.

 

 

 *

 해랑은 어두운색의 옷으로 갈아입은 차림으로 방에서 나오며 치우에게 투덜댔다.

 

 “그러게, 바로 가자니까... 그렇게 얼굴 가리고 있으면 수상해 보일 것 아녜요? 괜히 그런 소문이나 나고...”

 

 마을의 외부 사람들 사이에서는 그가 흉측할 정도로 못생긴 얼굴을 가리기 위해서 그런 차림새를 고집한다는 소문이 돌고 있었다.

 하지만 사실은 그가 굉장한 미남이며, 얼굴이 아닌 푸른빛이 살짝 도는 머리카락을 가리기 위해 그런 차림을 하는 것임을 거북마을 사람들은 잘 알고 있었다.

 

 “그러게. 나도 답답하다.”

 

 겉옷을 벗은 치우는 앞선 해랑의 말대로 머리카락뿐 아니라 눈동자까지 푸른색으로 변해 있었다.

 이런 사실까지 아는 것은 촌장과 해랑이 유일했기에 해랑이 서둘렀던 것이었다.

 해랑은 허리춤에 단검을 차고 배낭을 하나 둘러맸다.

 

 “갑시다요~가~.”

 

 해랑이 맥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도 산으로 나가?”

 

 “촌장님이 오라버니가 돌아오지 않으면 마을에 있으라 하셨는데, 왔으니 뭐...”

 

 치우는 자신이 가져온 보따리에서 눈을 떼지 못하며 뭉그적거렸다.

 

 “아, 얼른. 며칠이나 맘 놓고 쉬지도 못했을 거면서. 보나 마나 물건 지킨다고 반강제로 온종일 그 곁에만 붙어있었을 거 아녜요.”

 

 말끝을 흐리며 볼멘소리를 하는 해랑을 빤히 보던 치우는 양손으로 그녀의 볼을 살짝 잡아당겼다.

 

 “그 어리던 것이 언제 이렇게 커서 이제 나를 걱정하고 있을까?”

 

 “걱뎡에 나이가 므슨샹과닌니까?”

 

 “헌데, 어찌 오라버니를 ‘꽝철이’라고 부르며 놀릴까아? 가람이가 왜 나를 꽝철이 형이라고 부르지? 응?”

 

 해랑은 그대로 눈알만 도르륵 굴려 시선을 피했다.

 

 “애기드른 솔찌카니까여”

 

 “응? 뭐라구? 잘 안 들리네?”

 

 치우는 해랑의 볼을 마구 잡아 늘이며 놀려댔다.

 해랑은 치우의 팔을 팍 쳐내며 놀림조로 말했다.

 

 “아, 용이 못 되었으니 ‘꽝철이’라고 부르는 것 아닙니까.”

 

 치우는 상처받은 표정으로 평상 위에 올라가 신발을 벗고 무릎을 끌어안고 앉았다.

 

 “씨잉...너어! 나는 너 강하고 아름답게 자라라고 이름도 멋있게 지어줬더니. 키워준 은혜도 모르고... 신해랑 변했어!”

 

 해랑은 그런 치우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웃음을 터뜨렸다.

 

 “변한 건 오라버니죠! 그건 또 어느 마을 아이한테 배워 온 행동이이에요? 5년 전에 세상 근엄하던 분은 어디가시구... 아, 빨리 좀 갑시다!”

 

 해랑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치우는 삐죽거리다가 벌떡 일어나서 해랑에게 다가왔다.

 

 “그래, 가자.”

 

 “이게 무엇입니까?”

 

 해랑은 치우가 자신에게 내민 작은 보따리를 건네받곤 입꼬리를 씰룩였다.

 

 “으흠! 풀어~보아라.”

 

 보자기 안에는 떡이 들어있었다.

 

 “이게 뭡니까...”

 

 해랑은 자신도 모르게 실망한 기색을 보였고 치우는 그런 해랑의 모습이 마냥 귀여웠다.

 

 “세상에, 우리 해랑이 떡이 뭔지 모르는 게야?”

 

 “아니이..!”

 

 해랑은 발끈했고 싱글벙글 웃고 있는 치우에게 볼멘소리로 투덜거렸다.

 

 “제 것은 이게 답니까...? 내 것이 이게 다냐구...”

 

 입이 댓 발 나온 해랑을 내려다보며 치우는 웃음을 참았다.

 

 “아니지.”

 

 해랑은 아까 보았던 초아의 신발을 떠올리고는 금세 표정이 밝아졌다.

 

 “저기 보따리에 엿도 있고, 다른 주전부리도. 흡…. 큭큭크하하하하!”

 

 치우는 결국 참던 웃음을 터뜨렸다.

 

 “가자. 꽝철아.”

 

 “뭐?”

 

 해랑은 치우를 째려보며 아랑곳하지 않고 대꾸했다.

 

 “‘네가 부르는 것이 내 이름이 되지 않겠느냐.’ 똑똑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갑시다. 꽝철이 오라버니! 혹여 압니까? 저를 따라잡으면 제대로 된 용이 될지?”

 

 해랑은 말을 마치고 ‘거북머리 길’ 쪽으로 재빠르게 달려가 순식간에 눈앞에서 사라졌다.

 

 “허. 허허....내가 호랑이 새끼를 키웠구나. 신해랑 너 거기 못 서?!”

 

 치우는 해랑이 보다는 느린 걸음으로 그녀를 쫓아 달려갔다.

 

 

 *

 큰 나무가 우거진 사이로 그들은 한참을 달렸다.

 ‘거북머리 길’을 빠져나와 걷다 보면 큰 계곡이 나오는데 마을 사람들은 날이 더울 때 종종 계곡에 가 몸을 담그곤 했다.

 그 폭포수 같이 떨어지는 계곡의 상류로 올라가면 사람이 다닐 수 없을 정도로 우거진 숲이 나왔는데, 그 사이엔 산에 있을 법하지 않은 커다란 연못이 나타났다.

 이 연못은 길을 알아도 찾아가기 힘들 뿐 아니라, 연못의 안쪽이 시커먼 것이 매우 깊어 위험해 보였기에 사람은 물론 동물의 발길이 닿는 일도 일절 없었다.

 특히나 촌장이 지어낸 ‘양반 이야기’ 때문에, 오직 그곳에 닿는 사람의 발길은 치우와 해랑의 것이 유일했다.

 

 

 *

 달이 동그마니 떠 있는 연못에 다다르자 앞서가던 해랑은 천천히 걸음을 늦추다가 멈춰 섰고, 치우도 해랑을 뒤따라 멈추었다.

 

 해랑은 익숙한 듯 넓적한 돌이 있는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아 옆에 배낭을 내려놓았다.

 

 “흐음, 보름달이네?”

 

 치우는 해랑이 마주 보이는 땅에 털썩 앉아 양손으로는 바삐 보따리를 풀며, 시선은 하늘에 둔 채 큰 소리로 이야기했다.

 

 “그렇네. 해랑이는 배가 고프니, 꽝철이는 어서 물에 빠져주시는 게 어떨지...”

 

 해랑은 그저 무심하게 어깨를 한번 으쓱이곤 짤막하게 대꾸했다.

 치우는 손에 든 떡을 해랑에게 건네려다가 말고 그녀의 무심한 반응에 서운해하며 물었다.

 

 “어찌 오늘따라 수다쟁이가 말이 없을까? 떡이 마음에 들지 않은 게야?”

 

 해랑이 아무것도 모른다는 표정으로 대꾸 없이 고개만 갸웃거리자 그는 서운한 얼굴로 말했다.

 

 “시장에서 재미난 일은 없었는지, 거북마을 밖에서 여드레나 머문 이 오라비의 몸은 괜찮은 것인지, 샘찬이가 내게 또 시비를 걸지는 않았는지. 아무것도 묻지 않고...”

 

 해랑은 자신을 지긋이 보고 있는 치우에게서 시선을 피했다.

 

 “무슨 일이 있었다면 오라버니가 먼저 이야기 했을 테니까요.”

 

 그녀는 무심한 척 웃으며 대답했지만, 심장이 점점 빨리 뛰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어쩐 일로 예정보다 훨씬 늦게 온 것인지. 종전의 샘찬이의 이야기를 따져 묻고 싶었지만, 그러면 자신이 치우를 애타게 기다렸다는 게 표가 날 것 같았다.

 그리고 그런 자신의 모습이 치우에게는 혼자 있는걸 무서워하는 어린아이쯤으로 보일까 봐.

 아니, 추측이 아니라 치우는 분명 그렇게밖에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아무래도 그런 건 싫었다.

 

 “흐음.......”

 

 그가 말없이 해랑을 빤히 쳐다보자 그녀의 귓가엔 자신의 심장 소리가 쿵쿵 울렸다.

 

 ‘제발 좀 멈춰라.’

 

 귀가 밝은 그에게도 이 소리가 들릴세라 그녀는 재빨리 말을 돌렸다.

 

 “떡은 대체 언제 먹을 수 있는 건지...”

 

 “어찌 이리 새침하게 구는 것인지...다~컸다, 이거지?”

 

 치우는 떡 꾸러미를 해랑의 앞에 펼쳐놓으며 말을 이었다.

 

 “나는 이 모습이 된 이후로 하루하루가 똑같았는데, 보름만 지나도 휙휙 변하는 너를 보니... 시간이 참으로 빠르다는 게 와닿지 않을 수가 없어.”

 

 “...”

 

 해랑은 말없이 떡을 입에 밀어 넣었다.

 

 “마을 아낙들이 자식 키우며 하던 말이 ‘이런 뜻이었구나’ 싶으면서 이해가 돼. 하하... 나는 평생을 모를 뻔했던 ‘세월이 아깝다’는 말이 이해되다니....”

 

 치우는 아련하게 말을 이어나갔고 해랑은 입에 떡을 밀어 넣던 것을 멈췄다.

 

 “대체 마을 내려가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오라버니가 이런 얘길 다 하고.”

 

 치우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별로 가득 찬 하늘은 그들에게 쏟아질 것처럼 빛나고 있었다..

 

 “초아네 아버지도 그렇고, 마을 어른들이 나는 장가 안 들더라도 해랑이 시집은 보내야 하지 않겠냐 하시더라.”

 

 해랑은 순식간에 얼굴이 달아올랐다.

 

 “가..갑자기 시집이라니? 이런 몸으로 어찌 시집을 간다고!”

 

 치우는 인상을 썼다.

 

 “이런 몸이라니? 네가 어디가 어떠해서. 내가 널 얼마나 애지중지 곱게...”

 

 온몸과 표정을 다 동원해서 진심으로 반론하는 치우의 말을 끊고 해랑이 외쳤다.

 

 “아니! 여의주 말입니다!”

 

 고요한 산에 해랑의 목소리가 메아리치고 그녀는 황급히 손으로 입을 막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치우는 그런 해랑의 모습을 보고 귀여워 죽겠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 우리 해랑이 아직은 오라버니랑 더 살아야겠지? 키도 콩알만 한 게 힘만 세고 할 줄 아는 것도 없으니~.”

 

 안심하는 듯한 치우의 표정을 보는 것도 썩 나쁘진 않다고 생각했는지 해랑의 얼굴에 다시 장난기가 가득해졌다.

 

 “강하게 크라고 해랑이라며!”

 

 해랑은 치우를 뒤로 밀치고는 떡을 집어 던지는 시늉을 했다.

 

 “어허! 던지지 말고! 얼른 일하기 전에 끼니 제대로 챙기고 있거라. 오라버니는 들어간다!”

 

 치우는 목소리를 낮춰 근엄한 체하더니 재빠르게 해랑의 손을 피해서 호수로 뛰어들었다.

 

 “에잇. 오라버니라 부르나 봐라...! 왜 나이를 거꾸로 먹어. 알수록 유치하게...”

 

 해랑은 잔뜩 붉어진 얼굴로 다시 떡을 입에 밀어 넣으며 호수에 비친 달을 들여다보았다.

 치우가 뛰어들고 시커먼 호수와 함께 일렁이던 달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물결이 잔잔해지면서 동그란 형체를 갖추어 갔다.

 

 

 *

 떡 두 개를 천천히 꼭꼭 씹어 먹는 동안에도 호수의 달은 다시 미동이 없었다.

 치우는 도무지 수면 위로 올라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지만, 해랑은 개의치 않는 듯 열심히 식사에 열중할 뿐이었다.

 

 “끅.”

 

 식사를 마친 해랑은 배를 토닥이며 배낭을 둘러맸다.

 이윽고 호수 아래를 가득 메우는 커다랗고 시커먼 그림자가 보였다가 사라지며 잠시 후에 치우가 물 위로 얼굴을 쑥 내밀었다.

 

 “해랑아, 오늘은 조금... 시간이 걸리네.”

 

 달빛에 비친 치우의 눈은 한쪽은 푸르고 한쪽은 까맸다.

 

 “오랜 시간 마을을 떠나 있었으니.... 다녀올 테니 충분히 쉬어요. 혹 내가 오라버니보다 늦더라도 찾으러 다니지 말고, 여기 바위에 있어요!”

 

 해랑은 말을 마치기 무섭게 빠른 걸음으로 협곡으로 사라졌다.

 

 “그래. 주변 잘 둘러보고!”

 

 치우의 말은 허공에서 맴돌았고 해랑의 기척이 멀어져서 더는 느껴지지 않게 되었을 때, 그는 다시 깊은 호수 속으로 들어갔다.

 
작가의 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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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16화. 재회(2) 2019 / 10 / 25 247 0 8632   
15 15화. 재회(1) 2019 / 10 / 22 224 0 8622   
14 14화. 각자의 사정(4) 2019 / 10 / 18 217 0 7522   
13 13화. 각자의 사정(3) 2019 / 10 / 15 243 0 6368   
12 12화. 각자의 사정(2) 2019 / 10 / 11 223 0 6195   
11 11화. 각자의 사정(1) 2019 / 10 / 8 217 0 6447   
10 10화. 그들의 일 2019 / 10 / 4 219 0 7004   
9 9화. 질투가 품는 소망 2019 / 10 / 1 232 0 8856   
8 8화. 움트다 2019 / 9 / 27 215 0 6616   
7 7화. 만남 뒤에 따라오는 2019 / 9 / 24 231 0 4815   
6 6화. 마음이 기울어지는 곳 2019 / 9 / 20 229 0 5086   
5 5화. 호의와 적의 2019 / 9 / 17 217 0 6886   
4 4화. 어디선가 들려오는 목소리 2019 / 9 / 13 237 1 7584   
3 3화. 두 쌍의 오누이 2019 / 9 / 10 226 1 5870   
2 2화. 악몽의 끝, 두번째 이름 2019 / 9 / 6 245 1 6150   
1 1화. 천년, 딱 하루만 더 2019 / 9 / 3 358 1 7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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