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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황제의 마음을 훔친 소녀
작가 : 맛있는코코아
작품등록일 : 2019.9.12

제국에서 멀리 떨어진 변방, 이름조차 알려져 있지 않은 소국에서 인질로 잡혀온 공주 리안나. 리안나의 지상 최대 목표는 심기를 거스르는 자는 가차없이 베어 버리는 잔혹한 황제의 궁에서 목숨을 부지하는 것, 나아가 궁을 탈출해서 자유롭게 살아가는 것.
그런데 온갖 멸시와 모욕을 건뎌내며 무사히 탈출할 날만 손꼽아 기다리던 리안나에게 청천벽력같은 황제의 명령이 떨어진다. “발크 국의 왕녀를 황비로 맞겠다.”는. “대체 왜...?”
벗어나려 할수록 황제 카이엘은 리안나를 집요하게 감시하는 한편, 리안나를 유혹하려 하는데... 엎친데 덮친 격으로 평온했던 제국은 마물의 침략으로 혼란에 빠진다.
“나... 여기서 무사히 나갈 수 있을까?”
황비이길 거부하는 공주 리안나와 폭군 황제의 아찔한 황궁 로맨스가 지금 펼쳐진다.

 
11. 사랑보다는 질투가 먼저 온다
작성일 : 19-09-29 23:00     조회 : 270     추천 : 0     분량 : 7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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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뭐...?”

 

 내 입에서 신음 비슷한 게 흘러나왔다.

 내가 지금... 잘못 들었나...?

 

 “어젯 밤.. 이안이랑 단 둘이서 뭐..”

 

 잠깐. 그 상처받은 표정은 또 뭔데?

 

 “야!”

 

 “흐악!”

 

 난 결국 이성을 잃고 구둣발로 케인의 정강이를 걷어차고 말았다. 나보다 머리 하나 반은 더 큰 케인의 길쭉한 몸이 반으로 접히며.. 끙끙대는 신음소리가 한참 이어졌다.

 

 난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아 펄펄 뛰었다.

 

 “지금 너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이안이 누군지 몰라서 그래? 내가 미쳤냐? 이안같은 마..”

 

 “잠깐만.”

 

 케인이 별안간 내 입을 확 틀어막았다. 이건 또 뭐지? 싶어서 눈에 힘을 주는데 뒤에서 풀잎이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났다.

 

 “거기 누구냐!”

 

 케인이 검을 빼들고 테라스 밑으로 뛰어내렸지만 이미 거기에는 아무도 없었다.

 

 나는 하마터면 ‘마족’이라는 말을 입밖으로 낼 뻔했다는 걸 생각하고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누군가 들었다면 이안 녀석이 반드시 찾아내서 숨을 끊어놨을 거야...’

 

 가슴이 서늘해지는 것을 애써 모른척 하며, 나는 어느새 평소의 표정으로 돌아온 케인을 째려보았다.

 

 “무슨 생각하는 지 알겠는데, 네가 생각하는 그런 일 절.대 없었으니 헛소리 마.”

 

 “...그럼 뭐 했는데.”

 

 “뭐?”

 

 내가 눈에 불을 켜자 케인은 흠, 흠, 하며 애꿎은 바닥을 바라보았다.

 

 자세히 보니 귀가 좀 빨갛다...?

 

 “뭐 했는지 왜 안 말해 주냐구.”

 

 ...얼씨구.

 

 “지금은 말할 수 없어. 그 녀석이랑 약속했으니까.”

 

 나는 딱 잘라 말했다.

 케인은 뭔가 더 말하려다 내 표정을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

 

 나도 케인을 묵묵히 바라보았다.

 잠시 간의 침묵이 흐른 뒤, 우리는 약속이나 한 듯 방 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그래, 이거다.

 

 말 하지 않아도 나를 믿어주는 신뢰.

 

 그게 우리를 이어주는 거니까.

 

 ‘너라면 내가 어떤 선택을 해도 이해해주겠지.’

 

 나는 앞서 걷는 케인의 등을 보면서 생각했다.

 

 

 

 

 

 

 ***

 

 

 

 “호위기사와 단 둘이 방 근처에서 밀회... 아니, 폭언 및 폭행? 이안 트리스탄 왕자와 단둘이 밤을 보내... 내연 관계 의심...”

 

 하녀가 가져온 쪽지를 읽던 프리아나의 인상이 확 구겨졌다.

 

 “지금 장난해? 이딴 걸로 어떻게 그 까만머리 계집애를 끌어내려? 어휴, 이 쓸모 없는...”

 

 가엾은 하녀는 소리소리를 지르는 프리아나의 앞에서 아무 말도 못 하고 오들오들 떨고만 있었다. 보다 못한 프리아나의 시녀가 나서 “이제 그만 돌아가도 좋다.”라고 일러주었다.

 

 완전히 겁에 질린 하녀는 몇 번이나 꾸벅 인사를 하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프리아나의 방을 빠져 나갔다.

 

 “저딴 것을 매수하겠다고 돈을 일천 아덴이나 쓰다니. 내가 미쳤지...”

 

 프리아나는 어지간히 화가 나는지 종이를 구겨 던져버리고는 등받이 위로 고개를 젖혔다.

 

 “누가 보고 들을지 모릅니다. 행동을 조심하세요.”

 

 “노라, 너까지... 제발, 지금은 잔소리나 듣고 있을 때가 아냐.”

 

 나이가 중년으로 접어든 노라는 프리아나가 로젠에서 왕세자비일 때부터 시녀 역할을 해 온 충복이자 멘토였다.

 

 그녀는 기품있는 걸음걸이로 다가와 프리아나의 옆에 앉았다.

 

 “호위기사와 단 둘이 있는 건 몰라도 이안 왕자님과 단 둘이 밤을 보낸 것은 그 왕녀의 명예를 실추시키기에 좋은 얘깃거리에요.”

 

 “무슨.. 이안 왕자랑 같이 잔 여자가 몇인 줄이나 알아?”

 

 물론 그 많은 여자 중에는 프리아나도 포함되어 있었고.

 

 “하지만 제피리움은 결혼하지 않은 남녀의 정숙을 중요시하니까요. 특히 여자를 억압하는 문화도... 마음만 먹으면 충분히 문제삼을 수 있어요.”

 

 하지만 그러다 내가 역공당하면?

 

 프리아나는 얼굴을 찡그렸다. 어렸을 때부터 타고난 요염함을 자랑하던 그녀였다. 본국에 있었을 때는 물론 이 곳에 와서도 순진한 공자건 사교계를 주름잡는 귀족이던 한 미모 하는 남자들은 모두 치마폭에 안아보았다.

 

 “발크 왕녀를 깎아내리던 사람들은 다음에는 나를 욕할 거야.”

 

 프리아나는 한숨을 쉬었다.

 

 그녀라고 처음부터 이랬던 것은 아니었다.

 

 내로라하는 가문에서 태어나 처음 데뷔한 사교계에서 단숨에 왕세자의 마음을 사로잡아 열여섯의 나이에 왕세자비 자리를 꿰찼었다.

 

 모두의 부러움을 받으며 왕비가 될 날만 꿈꾸고 있었는데...

 

 “아드리안이 그렇게 죽지만 않았어도...”

 

 프리아나가 혼잣말처럼 탄식하자 노라가 바로 정색했다.

 

 “언제까지 과거에 묶여 있으려고요?”

 

 “......”

 

 노라는 엄한 얼굴로 말을 이어나갔다.

 

 “그 문제라면 걱정 마세요. 발크 왕녀는 이 곳에 그녀를 두둔해 줄 수 있는 사람도, 세력도 없지만...”

 

 “로젠 왕국의 아르헨 가문에서 온 프리아나라면 얘기가 다르죠. 누가 감히 그깟 이유로 당신을 헐뜯겠어요?”

 

 “!”

 

 “...고귀하신 황녀님을 뵈옵니다.”

 

 노라가 먼저 황급히 무릎을 꿇었다. 자존심 강한 프리아나도 일어나 신시아에게 고개를 숙였다.

 

 측근 시녀와 함께 들어온 신시아는 생긋 웃으며 문을 열어준 하녀에게 눈짓을 주었다. 그러자 곧 문이 닫혔다.

 

 “기별도 없이 어쩐 일로..”

 

 자리를 권하면서 프리아나는 신시아를 무섭게 노려보았다.

 

 신시아는 방 밖에서 자신과 노라의 대화를 듣고 있었던 것이다. 문 밖의 하녀는 그걸 알면서도 자신에게 알리지 않았고.

 

 ‘등잔 밑이 어둡다더니...’

 

 황궁의 모든 눈과 귀는 신시아 황녀가 쥐고 있다더니, 그 말이 허언이 아니었나 보다.

 

 프리아나는 입술을 깨물면서 억지 웃음을 지어냈다.

 

 “남의 대화를 엿듣는 것은 교양있는 숙녀가 할 일이 아니랍니다.”

 

 “아하하. 미안, 미안. 들으려고 한 건 아닌데 생각보다 재미 있어서... 마침 안 그래도 나도 그 왕녀문제를 상의하러 왔거든요.”

 

 “‘그 왕녀’요...?”

 

 프리아나의 눈꼬리가 치켜 올라갔다.

 신시아는 그린 듯 똑같은 웃음을 유지하고 있었다.

 

 “발크 국의 리안나 왕녀 말이에요.”

 

 “...그런 소국에서 온 공주가 왜요?”

 

 프리아나는 짐짓 모른 채 하며 신시아를 떠 보았다. 신시아는 입을 가리고 호호, 웃었다.

 

 “우리 제피리움의 황비 자리를 노리고 있는 줄 알았는데. 아닌가요?”

 

 “!”

 

 그 말에 노라와 프리아나 모두 움찔, 했다. 둘이 경계하는 눈빛으로 신시아를 노려보자 신시아의 측근 시녀인 이제닌도 지지 않고 날카로운 눈빛으로 둘을 쏘아 보았다.

 

 칼만 없었지, 그야말로 어깨를 맞댄 강대국을 대표하는 레이디들의 무서운 신경전이 펼쳐지고 있었다.

 

 “..그렇게 날 세울 거 없어요. 난 그대 편이니까.”

 

 신시아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왜요?”

 

 프리아나는 공격적인 태도를 유지했다. 이 여우같은 여자가 자신이 인간적으로 마음에 들어서 친구하자고 할 리는 없고. 무슨 이해관계가 있으니까 온 게 아니겠는가?

 

 “뭐 거창한 이유가 있어서는 아니에요... 난 그저 우리 오라버니에게 충고할 수 있는 유일한 가족이자 폐하의 충신으로서... 제피리움을 위해 황비 자리는 로젠 출신에게 돌아갔으면 하는 거죠.”

 

 신시아는 뭐 그리 당연한 걸 묻느냐는 식으로 말했다. 탐스러운 그녀의 머리카락이 그녀의 우아한 제스처에 따라 흔들리며 시선을 흩뜨렸다.

 

 “...폐하께서 정말 그 왕녀를 맘에 두고 계신 건가요?”

 

 이렇게 된 이상 시치미를 떼고 말 것도 없었다. 프리아나도 솔직하게 나가기로 했다.

 

 “불행히도... 그런 것 같아요. 오라버니께서는 외모는 천하일색이셔도 평생을 전쟁터와 집무실에서만 보내셔서 그런지, 여자 보는 눈이 영 아니더라구요?”

 

 저도 최근들어 알았지만.

 

 신시아는 농담까지 하며 생글생글 웃는 것과 반대로, 프리아나는 내내 심각했다.

 

 “...폐하께서 정말 그 왕녀를 황비로 맞는다고 하시면 어쩌죠? 아니, 황비를 맞기 전에 후궁으로라도 들이면...”

 

 정비보다 후궁이 먼저 들어앉게 되면 권력을 잡기가 곤란해진다. 그것도 정략혼이 아니라 황제의 사랑을 받는 여인이면 더더욱..

 

 “그런 일이 없도록 해야죠.”

 

 신시아가 단호하게 말했다.

 

 “나는 후궁이나 정부가 득실거리는 황궁은 딱 질색이에요. 후궁이 서넛만 되도 애들이 열명이 넘는데... 그런 식으로 계속 황족이 계속 늘어나다 보면 누구 하나 죽어나가도 모르게 된다니까요?”

 

 “......”

 

 수년 전, 제피리움 황족의 숙청 일을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신시아를 보며 프리아나는 마른 침을 삼켰다.

 

 “하지만 어떻게...? 이안 왕자와 엮어서 가십거리를 만들자는 건가요? 그런걸로 될까요?”

 

 “그런 걸로는 그저 지나가는 웃음거리밖에 안 되겠죠.. 리안나 왕녀를 공개적으로 망신 줄 필요는 없어요.”

 

 “그럼요?”

 

 “폐하께서 리안나 왕녀를 좋아하니.. 폐하만 그 왕녀에게 등 돌리면 되는 거 아니겠어요?”

 

 “아!”

 

 프리아나가 무릎을 탁, 쳤다.

 

 정략적으로만 접근하니 못 했던 생각이었다. 사랑만큼 쉽게 깨지는 게 이 세상에 있던가. 결국 오래 가는 것은 가문과 이해관계, 그리고 권력이다.

 

 “순진해 보이는 그 왕녀가 이안 왕자와 뒤에서 몰래 만나고 다닌다는 걸 알면... “

 

 “자존심 강한 폐하께서 어찌 나오실지...”

 

 신시아는 입을 가리고 소리높여 웃었다.

 

 “다행히 그 정도 정보는 내가 오라버니께 적절한 때에 흘려줄 수 있어요. 뜸들이지 않고 바로 찾아온 보람이 있네요.”

 

 “네에...”

 

 프리아나는 애매한 태도로 웃었다. 신시아 황녀 정도 되는 거물이 선뜻 자기 편이 되어 준다니 좋기는 했지만... 결국 그녀의 장기말이 되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도 들었다.

 

 신시아는 그런 프리아나의 마음을 읽었는지, 가기 전 그녀에게 쐐기를 박는 한마디를 남겼다.

 

 “그럼 프리아나, 어떻게 될지 지켜보자구요. 깜찍한 정보수집활동도 열심히 하시고.”

 

 “!”

 

 “이 황궁에서 살아 남으려면, 그걸 게을리해서는 안되거든요.”

 

 

 

 

 

 ***

 

 -출신에 대해서는 아무도 정확히 아는 사람이 없으나, 서쪽 지역 출신인 것으로 추정.

 -지금은 제국에 복속되어버린 페르잔 공국의 왕자라는 소문도. 황제가 타투로스 정벌에 파견되었을 때, 골든 로드의 노예 시장에서 황제와 만났다는 얘기가 있음.

 -16년 전, 황제(당시에는 황자) 타투로스 정벌에서 돌아올 때 함께 입궁. 1년 뒤 테오 3세가 즉위하자 수석집행관이 되어 지금까지 그 자리를 유지.

 

 “원래 재상이 해야 하는 정무를 다 도맡아 하는 건 물론, 황제의 어떤 은밀한 지령도 수행한다고 한다.... 그러니까 지금 황제의 브레인이란 말인데.... 나이도 그렇게 안 많아 보이는데, 대단하단 말야?”

 

 나는 침대에 누워 케인이 제라드에 대해 요약정리한 내용을 읽다가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국적도 불명. 나이도 불명. 알고 있는 것은 오직 이름와 직책 뿐. 그나마 성도 제피리움 식으로 와서 지은 것 같고...”

 

 어쨌든 서쪽 출신이라면 고대어를 아는 게 어느 정도 이해는 된다. 단, 길고 긴 타투로스 사막을 넘어 아르카디아 해와 가까운 나라에서 태어났을 것이다.

 

 ‘혹시 그 자신이 마법사일 수도...’

 

 서쪽 지역에서 공부를 많이 한 사람들 중에는 고대어를 익힌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아르카디아 해와 바로 접한 나라, 예를 들면 아나키아 공국에서 나고 자랐다면... 마법을 배웠을 수도 있다.

 

 ‘그런 자가 왜 여기까지 왔을까...’

 

 꼬리를 물던 질문은 밖에서 들리는 소란에 의해 끊어졌다.

 

 

 “리안나 왕녀님을 뵙고 싶습니다. 열어 주십시오.”

 

 “자, 잠시만 기다리세요! 왕녀님께서는 지금 오수 중이십니다.”

 

 “황제 폐하의 명입니다.”

 

 “기다리시라니까요? 제가 들어가서 모시고 나올게요.”

 

 마리의 쩔쩔매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려왔다. 나는 일어나서 대충 옷매무새를 만졌다.

 

 어차피 낮잠 잔다는 것은 혼자 있을 구실을 만들기 위해서였기 때문에 잠옷을 입고 있지는 않았다.

 

 대신 제라드에 대해 쓰여있던 종이는 창문 가까이 타고 있던 촛불에 태워버렸다.

 

 “서둘러 주십시오.”

 

 “알았다니까요. 일단 문에서 물러서 주세요. 자꾸 막무가내로 이러시면...”

 

 “무슨 일이야?”

 

 일부러 벌컥 소리가 나도록 문을 열었다. 갑옷까지 다 입고 부하를 두명이나 데리고 와서 문 밖에 있던 기사는 내가 갑자기 나올 줄은 몰랐는지 당황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다가,

 

 “무례를 용서하십시오. 폐하께서 찾으셔서 급히 왔습니다.”라고 말했다.

 

 나는 눈썹을 한쪽만 치켜올렸다.

 

 “나를?”

 

 “...정확히는 리안나 님께서 가지고 계신 케인 경의 보고서를요.”

 

 “아직 완성이 되려면 멀었는데.”

 

 “폐하의 명입니다.”

 

 “...기다려라.”

 

 “......”

 

 내 당당한 태도에 기사는 물론이고 마리도 깜짝 놀란 듯 했다. 방에 혼자 있던 레이디가 군인들을 맞아 눈 하나 깜짝 않고 하대를 하니 어안이 벙벙하겠지.

 

 ‘나도 모르게 전쟁 때 버릇이 나와 버렸네.’

 

 그 때는 전사하신 아버지를 대신해 오빠, 언니, 심지어 나까지 장군 직책을 달고 군사를 이끌었기에.

 

 나는 책상에 가서 서랍에 있던 케인의 보고서를 꺼냈다.

 

 표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피의 전쟁, 제국력 975년-983년, 아르카디아에서]

 

 “......”

 

 아직 절반도 채 못 쓴 보고서인데, 이렇게 빨리 찾을 줄이야. 자기 지시를 충실히 이행하고 있는지 확인하려는 걸까?

 

 황제의 의중을 셈하며 몸을 돌린 나는, 인상을 확 찌푸렸다.

 

 문 앞에 있던 기사가 방 안까지 들어와 있었기 때문이다. 마치 뭔가를 찾으려는 듯 두리번거리기까지 하며.

 

 “뭐 하는 거지?”

 “..! 아, 저...”

 

 아까보다 배는 날카로워진 내 태도에 기사는 이번에는 정말 당황한 듯 했다.

 

 황제의 인장이 그려진 저 갑옷. 황제의 친위대임을 상징하는 저 갑옷은 이 제피리움에서는 절대 권력을 의미하는 것과 다름없었다. 심지어 재판 없이 사람을 죽여도 황제의 뜻이었다고만 하면 면죄부를 받을 수 있는.

 

 힘 없는 황족들조차 자신들 앞에서는 기를 못 펴는데, 내가 자신들을 상대로 이렇게 나올 거라고는 꿈에도 예상 못한 듯 했다.

 

 “레이디의 침실에 허락도 없이 들어오다니. 제국의 기사들은 명예가 없나 보군.”

 

 나는 기사의 바로 앞까지 다가가 코웃음을 쳤다. 그의 얼굴이 빨개지며 입가가 씰룩였지만 훈련된 기사답게 화를 잘 참고 있었다.

 

 “여기 있다. 그만 가 봐.”

 

 그러나 기사는 보고서를 받고서도 나가지 않았다.

 

 “왜 안 가는 거지?”

 

 “...레이디께서 직접 보고하라 하셨습니다.”

 

 “내가?”

 

 “...예.”

 

 기사는 계속 내 하대를 받고 있는 상황이 껄끄러운지 대답에 뜸을 들였지만 나는 상관하지 않았다. 그보다는 이 상황이 벌어진 이유에 관심이 갔다. 정확히는... 예감이 좋지 않았다.

 

 ‘갑자기 떨어진 호위기사 소집령... 하필 그 때 보고서를 찾는 황제.’

 

 그리고 보고서를 쓴 건 케인인데 왜 내가...? 내가 케인의 보고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어찌 알고.

 

 “..폐하께서 기다리십니다.”

 

 내 표정이 점점 험악하게 변했는지 기사가 조심스럽게 재촉했다. 마리도 폐하의 명이라는 걸 듣자마자 서둘러 성장복을 들고 왔다.

 

 “...가야지. 황제 폐하의 명인데.”

 

 나는 근심가득한 표정으로 기사를 따라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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