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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라이트노벨
잭 앤 블랑 Jack & Blanc
작가 : 힛쥐
작품등록일 : 2019.9.6

갈수록 부패해져만 가는 귀족사회. 상류층은 하류층을 억압하고 그들을 그저 자신들의 재산이라고만 생각한다.
이런 세상속에서 태어난 두 명의 살인귀. 그들의 이름은 잭과 블랑이라고 한다.

 
10. 휴일
작성일 : 19-09-26 18:46     조회 : 300     추천 : 0     분량 : 46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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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엘렌의 암살 후, 며칠이 지났다.

 

  웬만해서는 다른 사람들과의 왕래가 없던 엘렌이라 그런지 아직까지 그의 죽음이 알려지지 않은 듯 하였다. 언젠가는 결국 알려지게 되겠지만, 지금 당장 맞이할 미래가 아니란 것은 확실했다.

 

  저택이 도시에 있으며 크지는 않지만 어느정도 힘을 행사할 수 있는 일반 귀족과는 다르게, '대귀족'은 영지를 가지고 있고 그 땅에 한해서 그들은 왕과 비슷한 힘을 가진다. 또한 정치에 참여할 수도 있는 엄청난 힘을 가진 자들이다.

 

  그런 자를 죽였음에도 잭과 블랑의 생활은 예전과 별 차이를 느낄 수가 없을 정도로 한결같았다.

 

  평일에는 커피숍에 출근해 밤까지 일을 한다. 주말에는 '타겟'이 없을 경우, 집에서 블랑과 함께 놀거나 휴식을 취한다.

 

  블랑이 평일에 뭐하는지는 전혀 알 수 없지만 말이다.

 

  오늘은 주말이 되기 하루 전날의 밤이다. 잭은 여느때와 다름없이 일을 마친 후 곧바로 집으로 복귀하였고 그러한 잭을 블랑이 반갑게 맞이해주었다. 잭은 마치 강아지처럼 블랑에게 매달려 피로를 씻어냈다. 블랑은 잭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어리광을 받아준다.

 

  소파에 함께 앉은 잭과 블랑은 오늘 하루 어땠는지에 대해 서로 얘기하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엘렌이 했던 말들이 아직까지 머릿속에서 맴돌아."

 

  잭이 느닷없이 엘렌에 관한 얘기를 꺼냈다. 하지만 블랑은 무덤덤하게 잭의 얘기를 들어주기 시작했다.

 

  "그동안 많은 귀족들을 죽여왔지만, 엘렌같은 경우는 처음이었어. 자신이 하는 일이 잘못됐다는 것도 모르고 오히려 그게 옳은 일이라 굳게 믿고 있었어. 노예시장이랑 마약시장 그리고 투기장이 자신이 가꿔낸 정원이라고 말하다니……."

 

  블랑은 말없이 잭의 얘기를 들어주었다. 얘기를 마친 잭이 고개를 떨구고 손에 얼굴을 묻자 블랑이 자상한 손길로 잭의 어깨를 토닥여줬다.

  그녀 또한 피곤한 눈빛으로 앞의 시계를 멍하니 쳐다보았다. 하루가 피곤하다던지, 잭의 얘기를 들어주는게 피곤하다는 게 아니라 바뀌지 않는 귀족들에게 질려 피곤한 것이었다.

 

  "귀족들은 자신들이 이 세상의 정점……까지는 아니고, 그 언저리에 있다고 믿는 놈들이야. 아쉽지만 엘렌같이 미친 녀석들이 이 세상에는 수두룩할걸?"

 

  뒤에 한 말은 농담이 조금 섞여있기는 했지만, 진지하게 받아들인 잭이 곧바로 얼굴을 들어 놀란 듯한 표정으로 블랑을 보았다. 그 반응에 블랑은 최대한 웃음을 참아보았으나─

 

  "그럼 다 죽일때쯤에는 우리 둘 노인이 되어있지 않을까?!"

 

  ─잭의 말에 그만 웃음이 터져나왔다. 잭은 블랑이 왜 웃는지 모르는 눈치였지만.

 

  "뭐, 그때까지 힘이 있다면 말이야."

 

  그 뒤로 충분히 휴식을 취한 둘은 각자 방으로 돌아가 잠을 청하려 하였다. 잭이 자신의 방문을 닫으려는 순간, 블랑이 잭의 이름을 불러 그를 멈춰세웠다. 잭은 눈을 둥그렇게 뜬 채로 멀뚱멀뚱 블랑만을 바라보았다.

 

  블랑은 웃음을 지어 보이며 잭이 생각지도 못할 말을 꺼냈다.

 

  "내일은 나랑 같이 놀러나갈까?"

 

 

 * * *

 

 

  다음 날 아침.

 

  주말 아침의 문 라이트는 평일때와는 다르게 꽤나 한적한 편이다. 평일 아침에는 출근하는 사람들이 한가득이라 어쩔 수 없지만, 다른 도시들은 주말 아침에도 꽤나 사람이 많은 편이다.

 

  문 라이트의 아침에 이렇게 사람이 없는 것은 역시나 도시의 특색 때문이다.

 

  달빛의 도시라 불리는 문 라이트는 낮과 밤의 차이가 너무나도 다르단 것은 왕국 사람 대부분들이 아는 사실이다. 별 볼일 없는 낮에 나와서 놀기보다는 달빛을 받아 아름답게 빛나는 밤에 노는 것이 훨씬 재밌고 볼거리가 많기 때문에 문 라이트의 사람들은 낮에 대부분 휴식을 취한다.

 

  하지만 문 라이트의 거리를 걷고있는 한쌍의 남녀가 있었으니, 잭과 블랑이었다.

 

  "확실히 밤의 거리가 이쁘기는 하지만 낮의 거리도 나름대로 볼만한걸?"

  "난 맨날 봐오던 거라 그런지 잘 모르겠어."

 

  무더웠던 여름이 지나고, 시원한 가을이 찾아오고 있었다. 둘은 빵집에 들러 각자 먹을 샌드위치를 사고, 잭이 일하는 커피숍에 들러 커피를 주문했다.

 

  주말에잭이 찾아오자 점장은 놀란 듯한 얼굴을 하였지만 옆에 서있는 블랑의 모습을 보더니 이내 흐뭇한 미소로 직접 커피를 타주기 시작했다. 평소에는 단골에게도 안주던 서비스 쿠키를 넣은 봉투를 잭에게 건네주었다.

 

  "여자친구와 데이트인가?"

  "네? 여자친구 아니에요."

 

  점장이 의외라는 듯한 반응을 보였고 잭은 그런 반응을 무시한 채 커피와 쿠키봉투를 받아들었다.

 

  "점장님이 나보고 여자친구랑 데이트 하냐던데."

  "뭐, 모르는 사람이 보면 그렇게 보이지않을까."

 

  블랑은 유쾌하게 웃었지만 잭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곰곰이 생각했다. '남녀가 함께 다니면 데이트야?'라는 의문점이 생겼지만 굳이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이런 걸 블랑에게 몰어보면 모두 블랑이 잭을 놀릴때 사용하는 말로 바뀌어버리기 때문에 잭은 이 궁금증을 그냥 묻기로 하였다.

 

  그들이 샌드위치와 커피 그리고 쿠키를 들고 찾아간 곳은 문 라이트의 중앙공원이었다. 거리에는 사람이 별로 없었지만 공원에는 그럭저럭 사람이 있는 편이었다. 자신의 반려동물을 산책시키는 사람들, 여유를 즐기는 사람 등등 다양한 유형의 사람들이 있었다.

 

  잭과 블랑은 공원의 주변에 있는 풀숲에 돗자리를 깔고 앉은 후 자신들이 가져온 먹거리를 열었다. 시간은 벌써 점심이 다 되어가고 있었다.

 

  둘은 이 평온을 마음껏 누리며 샌드위치를 한 입씩 베어물었다.

 

  "으음. 이 집, 샌드위치는 뭔가 좀 별로네."

  "그래도 맛있지않아?"

  "뭐, 먹을만 하기는 해."

 

  샌드위치를 먹는 도중 목이 메였는지 블랑이 급하게 커피를 찾았다. 잭이 자신의 옆에 있는 커피를 건네주자 잽싸게 받아들고는 마구 들이켜마셨다. 잭은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그녀를 걱정했지만 블랑은 고맙다라며 웃음을 지어보였다.

 

  "참 좋은 도시야."

  "그러게."

 

  블랑은 잠시 눈을 감아 이 도시에 오기 전 과거의 일을 회상하는 듯 하였다. 잭도 함께 겪었던 그 과거는 좋은일도 있었겠지만 아쉽게도 힘들었던 일이 좀 더 많은 편이었다.

 

  그래도 둘은 서로를 지탱해주며 무사히 이 도시에 정착해 살아가고 있다.

 

  "그나저나, 블랑.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귀족을 죽여야만 할까?"

  "……너는 놀러 나와서까지 그 얘기를 하고싶어?"

  "그치만……."

 

  잭이 우물쭈물하는 모습을 보며 블랑은 못말리겠다는 듯 어깨를 으쓱하더니 자신의 가방에 손을 넣더니 체스판을 꺼냈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물건이 나오자 잭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웬 체스판이야?"

  "너 나한테 이겨본 적 한 번도 없지?"

  "그렇긴한데…… 놀러 나와서까지 체스를 해야돼?"

  "그러는 너도 놀러 나와서 전혀 안어울리는 얘기 했잖아?"

  "으으……."

 

  잭이 뒷머리를 긁으며 체스말을 두기 시작했다. 블랑도 함께 자신이 쓸 체스말을 두었다. 모든 기물이 셋팅된 후 본격적인 게임을 하기 시작했다.

 

  서로의 기물들이 움직이고, 상대의 기물에 자신의 기물이 사라진다. 이것들 계속 반복하며 몇분이 지났을까. 어느새 게임은 끝나가는 분위기였다. 잭의 진영은 볼품없었지만 블랑의 진영은 기세등등하여 금방이라도 잭의 킹을 쓰러트릴 것만 같았다.

 

  잭이 최대한 머리를 굴리고 있을 때 블랑이 입을 열었다.

 

  "잭, 아까 얼마나 더 많은 귀족을 죽여야만 하냐고 물었지?"

  "응? 아, 응."

 

  잭은 고심끝에 드디어 자신의 기물을 움직였다. 블랑은 잠시 생각하더니 잭의 움직임에 맞춰 기물을 움직여 잭에게 체크를 걸었다.

 

  "체크야."

  "으윽."

 

  잭은 체크를 풀기 위해 킹을 옆으로 움직였다. 그러자 블랑이 곧바로 다른 기물을 움직여 다시 잭에게 체크를 걸었다. 잭이 블랑을 째려보았지만 블랑은 그 눈초리를 무시하고 잭에게 빨리 움직이라고 재촉했다.

 

  잭이 한숨을 내쉬고는 다시 킹을 옆으로 움직였다. 블랑은 다른 기물이긴 하지만 아까와 같은 체크 상황을 만들었다.

 

  "블라앙~."

  "어때, 항복할래?"

  "아, 아직…. 혹시 모르니까."

 

  하지만 잭의 기대를 저버리듯 블랑 차례가 되자 체크메이트가 되어버렸다. 잭이 허망한 눈으로 치워지는 체스판을 보고있을 때 블랑이 아무것도 없는 빈 체스판을 가리켰다.

 

  "자. 계속해서 체크가 걸리다가 결국 게임이 끝나버렸지?"

  "으응…."

  "마찬가지야. 우리가 계속 이 일을 하다보면, 언젠가 체스처럼 끝이 보일거라고."

 

  천천히 몸을 일으킨 블랑이 잭에게 손을 건넸다. 잭은 그 손을 잡고 힘차게 일어났다. 방금전의 허망한 표정은 온데간데 없었다.

 

  블랑의 말이 깊이 와닿았는지 잭이 기분좋은듯한 웃음을 지어보이며 돗자리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블랑."

  "응?"

  "그날이 올 때까지, 우린 계속 함께야."

  "그래그래."

 

  잭은 자신의 가방에 돗자리를 잘 접어 넣은 후 다음 목적지로 출발했다. 오늘이 끝나려면 아직 멀었기에.

 

 

 * * *

 

 

  밤이 되자 달빛의 도시가 환하고, 아름답게 빛나기 시작했다.

 

  거리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즐비해있었다. 공연을 하는 사람, 테이블에서 술을 마시는 사람 등등 그야말로 정신이 혼미해질 지경이었다.

 

  잭과 블랑은 공연하는 사람이 선보이는 마술에 놀라기도 하였고, 감미로운 음악에 취하거나 박수를 보내기도 하였다.

 

  즐거운 주말을 보낸 둘은 마지막으로 술집에 들러 하루를 마무리하기로 하였다. 겉모습은 소년소녀같지만 이래 봬도 둘은 술을 먹을 수 있는 나이였다. 이 나이가 된지는 얼마 안 됐지만.

 

  "아, 재밌었다. 그렇지, 잭?"

  "응. 이런 여유도 나쁘지 않은 것 같아."

 

  둘은 서로의 잔을 맞부딪힌 후 곧바로 한모금 마셨다. 술이 몸에 들어오자 붕 뜬듯한 감각이 찾아왔고 이 기분좋은 감각에 몸을 맡겼다.

 

  이렇게 뭔가 오래간만인 듯한 편한 휴일이 마무리되었다.

 

  그리고, 다음 타겟이 지정되는것은 휴일로부터 조금의 시간이 지난 뒤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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