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1일간 안보이기 닫기
모바일페이지 바로가기 > 로그인  |  ID / PW찾기  |  회원가입  |  소셜로그인 
스토리야 로고
작품명 작가명
이미지로보기 한줄로보기
 1  2  3  4  5  6  >>
 1  2  3  4  5  6  >>
 
자유연재 > 라이트노벨
잭 앤 블랑 Jack & Blanc
작가 : 힛쥐
작품등록일 : 2019.9.6

갈수록 부패해져만 가는 귀족사회. 상류층은 하류층을 억압하고 그들을 그저 자신들의 재산이라고만 생각한다.
이런 세상속에서 태어난 두 명의 살인귀. 그들의 이름은 잭과 블랑이라고 한다.

 
9. 엘렌의 정원 (6)
작성일 : 19-09-22 13:41     조회 : 312     추천 : 0     분량 : 10344
뷰어설정 열기
뷰어 기본값으로 현재 설정 저장 (로그인시에만 가능)
글자체
글자크기
배경색
글자색
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밝은 달빛이 내려와 어두운 밤을 밝게 비추고 있었다.

 

  하지만 달빛도 밝히지 못하고 있는 곳이 있었으니, 나무들이 무성하게 자란 우거진 숲이었다.

 

  그러한 숲속에서 풀을 밟는 소리가 잔잔하게 울려퍼졌다. 여러 야생 동물들이 숲을 걷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보였지만 이내 관심을 끄고 더욱 어두운, 깊숙한 숲 안으로 들어가버렸다.

 

  "보인다."

 

  흰색의 트윈테일 머리를 한 여성이 숲의 끝쪽을 응시하며 말하였다. 옆에서 따라걷고 있던 검은 머리의 남성도 같은 곳을 바라보며 그곳을 향해 걸었다.

 

  이윽고, 숲의 끝에 도달했을 때 가까운 곳에는 자그마한 마을이 있었고 먼 곳에는 거대한 저택 하나가 빛을 발하며 홀로 서있었다.

 

  "저곳이… 엘렌의 저택."

 

  잭과 블랑은 아직 가면을 쓰지 않은 상태였다. 불어오는 바람에 휘날리는 머리를 신경도 쓰지 않으며 엘렌의 저택을 노려보았다. 잭이 먼저 발걸음을 떼자 그에 맞춰 블랑이 함께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우선 마을을 향해 걸어가며 바닥의 흙과 풀의 상태를 확인했다. 잭은 아까부터 느껴왔던 의문을 블랑에게 물었다.

 

  "풀이 이상해. 다 죽어있어."

  "너도 느꼈구나, 잭."

 

  잭은 중간에 멈춰서서 아래에 있는 풀을 만져보았다. 그러자 풀이 힘없이 바스러져 흙바닥으로 떨어졌다. 잭은 사뭇 진지한 얼굴로 블랑을 보며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것을 말하였다.

 

  "이것도 다 '엘렌의 계획'인건가?"

  "그래. 이 마을의 주 수입원은 농작물과 약초. 엘렌은 몰래 마을에 어떠한 약을 뿌려서 모두 말라 죽여버린거야. 마을은 결국 엘렌에게 의지할 수 밖에 없었고, 엘렌은 그들에게 금화를 나눠주어 자신의 평판을 올린거지."

 

  둘은 조그마한 냇가에 놓여진 다리를 건너며 흐르는 물의 상태를 확인하였다. 겉보기에는 별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자세히 보니 물에 불순물이 섞여있음을 눈치챌 수 있었다.

 

  "아마 이 물을 이용해서 농사를 지은거겠지."

 

  엘렌의 저택을 향해 계속 걸어가자, 먼저 엘렌의 영지에 속한 마을인 슬레바 마을에 도달했다. 마을의 거리에 나와있는 사람은 없었지만 집들에는 모두 불이 켜져있었다.

 

  집 안에서 가족들이 단란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보는 사람도 괜히 기분이 좋아지는 정겨운 시골 마을의 풍경이 잭과 블랑의 마음을 더욱 안타깝게 하였다. 엘렌에게 있어 이 마을은 그저 자신의 평판을 올리기 위한 도구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 마을 사람들에게 있어 엘렌은 위기에 처한 자신들의 마을을 구해준 구세주이다.

 

  "아이러니하네."

 

  잭과 블랑은 집들 사이에 생겨난 어둠에 뭄을 숨긴 채 조심스럽게 이동했다. 괜히 마을사람들에게 모습을 보였다간, 엘렌을 암살한 범인으로 바로 지목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별 문제 없이 마을을 통과한 잭과 블랑은 쉬지 않고 곧바로 엘렌의 저택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숲 사이에 만들어진 길을 따라, 언덕을 오르내리며 저택을 향해 걸어가던 그들은 불어오는 바람과 함께 무언가를 느꼈는지 어느 한곳으로 고개를 돌려 그곳을 노려보았다.

 

  "─숲소리가 아니야. 이건……"

  "풀소리?"

 

  저택을 향하던 발의 방향이 바뀌어, 바람에 날리는 풀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길은 만들어져 있지 않았지만 이동하는데 불편함을 느낄 정도는 아니었다.

 

  어째서, 마을 주변은 엘렌때문에 농작물이라던지, 약초라던지 모두 죽어있을텐데 멀리서 들려오는 밀밭소리는 대체 무엇일까 하는 의문에 잭과 블랑은 그곳으로 발걸음을 옮기지 않을 수 없었다.

 

  어느정도 걸었을까, 저택을 향해 계속 걸어갔다면 저택과 조금 더 가까워졌겠지만 경로를 바꾼 탓에 목적지와 가까워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들은 이것이 의미없는 발걸음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럴만도 한 것이 잠시 후 그들의 눈 앞에 펼쳐진 것은 '무성하게 자란 녹색의 풀밭'이었다.

 

  잭은 마치 이끌리듯, 풀밭으로 다가갔다.

 

  풀밭 앞에 먼저 도착한 잭은 그곳에 자란 식물들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조그마한 크기의 푸르스름한 열매가 여럿 맺힌 식물들이었다. 다른 식물들도 마찬가지로 똑같은 열매가 나있어 언뜻 보기에는 과일이 아닌가 싶었지만─

 

  "이건……"

 

  뒤늦게 온 블랑이 열매들을 보고 작게 소리내었다. 잭은 뒤를 돌아봐 블랑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무언가 아는 듯한 눈치였기 때문에.

 

  "으음. 이건 녀석들이 만들었던 '마약의 원재료'네."

  "뭔지 알고있어?"

 

  블랑은 말 대신 고개를 끄덕여 잭의 질문에 긍정의 대답을 보였다. 블랑은 열매를 조심스럽게 따 자신의 손바닥 위에 올려보았다. 잭이 한순간 걱정했지만 블랑은 미소를 지어보이며 별 문제 없다는 의사를 나타냈다.

 

  "여기있는 식물들 전부 마약 원재료들이야. 대담한걸. 이렇게 대놓고 재료들을 재배하고 있었다니."

  "……블랑은 본 적이 있는거야?"

  "뭐, 그렇지. 이런 것들은 어떤식으로 사용하냐에 따라 용도가 완전히 달라지거든."

 

  그녀는 자신의 손바닥 위에 있던 열매를 바닥에 대충 뿌리고는 오른발로 그 열매를 그대로 짓밟아버렸다. 그리고는 주변에 광활하게 펼쳐진 마약 원재료들의 숲을 보았다. 방금 전 통과했던 슬레바 마을보다 조금 더 큰 규모를 가진 듯 하였다.

 

  블랑의 분위기가 방금 전과는 달라졌다. 그것을 바로 알아차린 잭이 블랑의 옆모습을 보며 말했다.

 

  "없애버리고 싶은거지?"

 

  블랑은 소매에서 자신의 가면을 꺼내더니 그대로 얼굴에 갖다대었다.

 

  "먼저 가있어. 뒤따라갈게."

  "응."

 

  잭도 마찬가지로 소매에서 가면을 꺼내 쓰고는 저택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능력을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꽤나 빠른 속도로 달리기 시작한 잭은 곧바로 블랑의 시선에서 사라졌다.

 

  블랑은 뒤로 살짝 물러나며 고개를 들어 밤하늘에 밝게 떠있는 달을 보았다.

 

  "오늘도, 밝은 날이네."

 

  그녀의 그림자가 평소보다는 커다란 크기의 그림자칼날로 변하였다.

 

 

 * * *

 

 

  저택의 입구에 다다른 잭은 쉬지않고 곧바로 정원 안으로 진입했다. 아름다운 정원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지만 지금은 그것을 신경쓸 때가 아니었다. 잭은 올곧게 뻗어있는 길을 따라 달렸다.

 

  짧은 시간에 저택의 정문에 도착한 잭은 어느새 양손에 칼과 나이프를 쥐고있었다.

 

  포트리아에서는 곳곳에 배치된 경비병과 주변의 눈 때문에 조용하고, 조심스럽게 행동하였지만 이 저택은 마을과 어느정도 거리가 있으며 이상하게 귀족의 저택 치고는 배치된 경비병이 전혀 없었다.

 

  때문에 잭은 이렇게, 곧바로 정문까지 뛰어온 것이었다. 괜히 몰래 잠입할 필요도 없다. 만약 타겟이 도주한다 해도 잭의 스피드 앞에서 도망치긴 어려울 것이고, 또한 바깥에는 블랑이 있다.

 

  잭은 아무런 망설임 없이 거대한 저택의 정문을 열었다.

 

  "어서 오십시오."

 

  그러자 자신을 반겨준 것은 집사복을 입은 한 흰색 머리의 노인이었다.

 

  노인은 잭을 향해 몸을 숙여 정중하게 인사한 후 천천히 몸을 일으켜세웠다. 잭은 뜻밖의 상황에 의아한 표정을 지었지만 가면 덕분에 앞에 서있는 노인에게 잭의 표정이 드러나지는 않았다. 다만, 분위기는 읽었는지 노인이 먼저 입을 열었다.

 

  "저는 이 저택의 집사장인 알프레드라고 합니다."

  "…뭐하자는거지?"

 

  비록 생각지도 못한 상황이었지만 잭이 방심하는 일은 없다. 오히려 자세를 바로잡은 잭이지만 알프레드는 긴장한 기색 없이 계속 처음과 같은 자세와 분위기를 유지했다.

 

  우는 얼굴의 가면과 사신같은 검은색 복장, 양손에는 날붙이를 들고있는 기괴한 모습을 겁없이 마주하고있는 알프레드는 몸을 옆으로 비키더니 계단을 가리켰다.

 

  "엘렌 주인님을 만나러 오신거죠.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알프레드는 말을 마치고는 잭의 대답을 듣지도 않은 채 계단을 올라가기 시작했다. 잭은 알프레드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뒤를 돌아 자신을 보는 알프레드의 모습에 발을 움직였다.

 

  잭은 그의 뒤를 따르며 양손에 주고있는 힘을 풀거나 하는 일은 절대로 하지 않았다. 하지만 상대는 자신의 등을 이 저택의 침입자에게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다.

 

  "당신이 베일 웨리노를 죽인 그 사람이군요."

  "……."

 

  이번에도 먼저 입을 연 것은 알프레드였다. 잭은 대답 대신에 침묵을 지켰지만 알프레드는 그것이 긍정의 대답이라고 받아들였는지 계속해서 말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베일의 저택에 침입해서, 그를 죽이고는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은 채 사라진 범인이 이런 어린 남자라니. 꽤나 놀랐습니다."

 

  알프레드는 인자한 웃음소리를 내었다. 그의 목소리에 떨림이 없는 것으로 보아 이 모든 행동이 허세일리는 없을거라고 잭은 판단했다. 2층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다음 계단을 올라 3층을 향했다.

 

  여러 의문점이 잭의 머리속을 떠돌았지만 새롭게 생겨난 의문점에 잭이 처음으로 먼저 입을 열었다.

 

  "다른 집사들은? 경호원도 없나?"

 

  알프레드는 씁쓸한 표정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옛날에는 집사가 꽤 있었지만, 지금은 저 혼자 뿐입니다. 경호원도 가주가 해리엇 님으로 바뀌면서 모두 필요가 없어졌죠."

  "필요가, 없어져?"

 

  잭이 고개를 갸웃했지만 알프레드는 그 이상 대답해주지 않았다.

 

  복도 끝쪽에 있는 문에 도착한 알프레드는 옆으로 비켜서더니 잭에게 몸을 숙이며 안내원으로서의 예를 갖추었다.

 

  "이곳이 엘렌 주인님의 개인실입니다."

 

  잭은 오른손의 나이프를 주머니에 넣고 문고리를 잡았다. 그와 동시에 알프레드에 대한 경계심을 줄이지는 않았지만 알프레드는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으며 그저 묵묵히 허리를 숙인 채 잭에게 인사를 건네고 있었다.

 

  천천히 엘렌의 방의 문이 열리기 시작했고, 그 앞에 있는 책상 뒤쪽에 앉아있는 엘렌의 모습이 잭의 눈에 들어왔다.

 

  "어서오게."

 

  엘렌은 여유로운 웃음을 지어보이며 먼저 잭에게 인사를 건넸다. 잭은 아무런 말 없이 문을 닫고는 엘렌을 노려보았다.

 

  "당신이 해리엇 엘렌인가?"

  "그렇다만."

  "노예시장과 마약시장, 투기장을 만들어낸 장본인이고?"

  "내 '정원'에 대해도 알고있군. 대단해."

  "……정원, 이라니. 무슨 말이야."

 

  잭의 물음에 엘렌은 어깨를 으쓱하였다. 여전히 여유로운 태도에 잭의 기분이 한층 더 나빠졌다.

 

  "말 그대로. 내가 가꾼 정원이라네. 가주가 되기 전부터 말이지."

  "지금 너가 만들어 낸 그 끔찍한 것들을, 정원이라고 하고 있는거야?"

 

  순간 엘렌의 얼굴에서 여유로움이 사라지더니 마치 벌레를 보는 듯한 눈으로, 이번에는 엘렌이 잭을 노려보았다. 방의 공기가 달라진듯한 느낌은 아마 기분탓이 아닐 것이다.

 

  엘렌은 천천히 의자를 뒤로 민 후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두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부여잡더니 미친듯이 웃으며 이리저리 움직였다. 마치 화가 머리 끝까지 치밀어 올라 어쩔 줄 몰라하는 어린아이 같았다.

 

  잭이 아무런 말 없이 엘렌의 행동을 보고있자니, 잠시 후 엘렌이 과장된 몸짓으로 팔을 아래로 내리더니 잭을 향해 소리쳤다.

 

  "─끔찍하다고? 내 정원이?! 그래, 너같은 우민은 모르겠지!"

 

  완전히 다른 사람을 보는 것 같았다. 하지만 잭은 무기를 쥐고 있는 손에 힘을 좀 더 주었을 뿐, 별 다른 움직임을 보이지는 않았다. 아마 엘렌이 하고싶은 말을, 그의 미쳐버린 생각을 듣고싶은 듯한 눈치였다.

 

  엘렌도 그에 응해, 자신의 생각을 내뱉었다.

 

  "귀족이 아닌 그들이 세상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농사? 약초 채집? 그런 걸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잘 듣거라. 세상을 바꿀 수 있는것은 '귀족'이다. 멍청한 그 녀석들이 할 수 있는거라곤 귀족들을 돕는 것이고. 나는 이 자리에 오르기 위해 나의 정원을 가꾸었다. 이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바로, 내가!"

 

  오른손으로 자신의 가슴을 때리며 엘렌이 열띤 연설을 하였다. 하지만 그것으로는 성이 차지 않았는지 한 번 숨을 고르고는 다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던 녀석들은 내 정원을 이용해 나의 힘이 되어줬다. 자, 이래도 내 정원이 끔찍한가? 오히려 내 정원은! 쓰레기들을 갱생시키는! 아름다운 정원이야─!!"

 

  하아, 하아. 거친 숨을 몰아내쉬는 엘렌이 허리를 살짝 숙이고 책상에 자신의 양 손을 올렸다. 그의 얼굴에 땀이 맺힌 것으로 그가 얼마나 열기를 가지고, 흥분한 상태로 이야기를 하였는지 알 수 있었다.

 

  엘렌은 고개를 들어 잭의 모습을 살폈다. 자신의 연설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잭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엘렌이 입술을 꽉 깨물었다. 한 번 더, 소리를 지르려고 할 때, 잭이 먼저 말을 꺼냈다.

 

  "─슬레바 마을 사람들은 뭐지?"

  "아아, 그 멍청한 녀석들 말인가? 그 녀석들은 나에 대한 평가를 올려주는 것에 지나지 않아. 귀족들은 항상 서로가 서로를 견제하고, 공격하며 자신의 자리를 지키거나 그 위로 올라가려 한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공격하기 애매한 녀석들이 있는데 바로 나같이 평가가 좋은 귀족들이지. 평가가 좋은 귀족을 공격하면 오히려 역효과가 난다는 것은 귀족들 사이에서는 상식이다."

 

  잭은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그런 반응이 마음에 들었는지 엘렌의 얼굴이 아까와 같은 여유로운 표정으로 돌아왔다. 그는 자신의 머리를 쓸어 넘긴 후 양 팔을 넓게 벌려 누군가를 반기는 듯한 자세를 하였다.

 

  "자, 나와 함께할 생각은 없나 살인귀? 너가 다른 귀족들을 제거하고, 정원에 줄 거름을 가져와만 준다면 나는 여기서 더 올라갈 수 있어. 너 또한 막대한 부와 권력을 얻게 되겠지. 남들 위에 선다는 것이 어떤 기분인지, 바로 내가 알려주도록 하겠다."

 

  엘렌이 잭을 향해 오른손을 뻗었다. 잭은 다시 천천히 고개를 들어 엘렌의 오른손을 보았다. 그리고─

 

  "개소리."

  "……어?"

 

  잭이 내뱉은 말에 엘린이 쉰 소리를 내었다. 눈은 크게 뜨이고 동공은 작아졌다. 그 상태로 몸을 조금씩 떨며 조심스럽게 잭을 향해 질문을 하였다.

 

  "너, 너, 너… 나와 같은, 남들 위에 올라서기 위한게… 그래서, 베일을 죽인……"

  "내 목표는 오직 하나. 너 같이 쓰레기같은 귀족들의 몰살이다."

 

  잭이 왼손을 들어 칼로 엘렌의 머리를 가리켰다. 그러자 엘렌은 뒤로 주춤 물러서더니 믿을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이럴리가 없다고 중얼거리며 자신의 머리를 움켜잡은 채 고개를 아래로 떨구었다. 그의 중얼거림은 연설을 할 때보다 더 빨라졌지만 목소리를 훨씬 더 작아졌다.

 

  방금 전의 그가 마치 힘차게 타오르는 불꽃이었다면, 지금 그의 모습은 마치 다 타고 남은 재 같았다.

 

  잭은 왼팔을 내리더니 그대로 다리에 힘을 주어 엘렌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리고 힘차게 휘두른 왼손이 엘렌의 목을 향해 날아들었고─

 

  "─!!"

 

  금속이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잭의 왼손이 뒤로 크게 튕겨나갔다. 아까보다 다리에 힘을 더 주어 간신히 멈춰선 잭은 뒤로 크게 뛰어 물러나 엘렌의 모습을 살폈다.

 

  그의 오른손의 손가락이, 마치 귀신처럼 길어져있었고 피부는 인간의 피부가 아닌 마치 강철같은 느낌이었다.

 

  엘렌은 고개를 들더니 뒤로 물러난 잭의 모습을 내려다 보고 있었다. 그의 눈에는 혐오감이 가득 담겨있었다. 자신과 똑같을 거라 생각하고 맞이했던 살인귀가, 오히려 자신과는 완전히 다른 곳을 바라보며 걷고 있었다는 것이 그에게 엄청난 혐오로 다가온 것이다.

 

  "이능력……. 경호원이 한 명도 없던 이유는 이것 때문이었나."

 

  잭은 그의 오른손을 경계하며 한편으로는 반대쪽 손을 힐끔 쳐다보았다. 그의 왼손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아마 오른쪽만 이능력을 통해 날카로운 가시로 바꿀 수 있는 모양이었다.

 

  "귀족들의 몰살. 나를 죽이겠다……? 할 수 있다면 해보시지, 우민."

 

  엘렌이 오른팔을 왼쪽으로 접더니 검지를 세운 채 잭을 향해 크게 휘둘렀다. 잭은 몸을 숙여 엘렌의 공격을 피하였다. 엘렌의 검지손가락이 책장을 가르며 무수한 파편을 만들어냈다.

 

  몸을 숙이고 있던 잭은 자세를 낮춘 상태 그대로 엘렌에게 뛰어들었다. 엘렌은 길게 늘어난 손가락이 전혀 불편하지 않은지 능숙한 움직임으로 잭의 움직임을 막기 위해, 이번에는 오른팔을 아래로 휘둘렀다.

 

  남들보다 몸이 빠른 잭은 오른쪽으로 뛰어 엘렌의 공격을 피한 후 무방비한 그의 왼팔쪽을 노렸다. 이번에는 오른손에 들려있는 나이프를 휘둘렀지만, 엘렌의 섬짓한 웃음에 마치 반사적으로 잭이 숨을 삼켰다.

 

  엘렌이 왼팔을 뒤로 뻗더니 오른손과 마찬가지로 날카로운 가시의 형태로 변화하였다. 그리고 그대로 왼손을 앞으로 내질러 잭을 향해 공격을 하였다.

 

  잭은 휘두르고 있던 역수로 잡은 나이프를 곧바로 손가락을 튕겨 바로잡더니 엘렌의 손가락을 향해 그대로 휘둘렀다.

 

  다시 넓은방에 울려퍼진 날카로운 금속들의 부딪히는 소리. 잭은 재빠르게 몸을 돌리며 왼손의 칼을 이용해 숨막히게 들어오는 엘렌의 다른 손가락들을 튕겨내고 다시 뒤로 물러섰다.

 

  잭이 다시 미친듯이 웃으며 자신의 양손가락, 열개의 가시를 뽐내듯이 잭에게 보여주었다.

 

  "유도한거였나?"

  "그래. 꽤나 반응이 좋구나, 살인귀. 하지만 그런 짧은 무기로 내 이능력을 피해 들어올 수 있을까? 이렇게 압도적인 길이차이를 뚫고?"

 

  광기에 젖은 기분나쁜 웃음이 그의 방을 가득 채웠다.

 

  그리고, 그 사이에 자그마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를 들은 엘렌은 웃음을 멈추고는 그 소리를 내는 것이 무엇인지, 금방 찾아내었다. 자신의 앞에 서있는, 우는 얼굴의 가면을 쓰고있는 자그마한 몸짓의 소년이었다.

 

  "왜 그렇게 웃지?"

 

  잭의 웃음에 의아함을 가진 엘렌이 그에게 물었다. 잭은 웃음을 멈춘 후, 엘렌의 질문에 대답해주었다.

 

  "내가, 그런 허접한 이능력 하나 못 뚫을 줄 아나?"

  "무슨 소리를─"

 

  엘렌이 갑자기 말을 멈추었다. 방금까지 자신의 앞에 있던 소년의 모습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엘렌은 잭을 찾기 위해 고개를 이리저리 돌렸고, 자신의 양쪽 팔이 사라졌다는 것을 뒤늦게 눈치챌 수 있었다.

 

  "어, 어… 어?"

 

  바닥을 보니 자신의 양팔이 떨어져있었다. 자신의 팔이 있어야 할 곳에서는 진홍빛의 피가 바닥으로 마구 떨어지고 있었다. 그제서야 자신의 팔이 잘렸다는 것을 인식한 엘렌이 밀려오는 고통에 마구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그 옆에 서있는 잭은 그를 한심하게 내려다보며 자신의 발옆에 있는 엘렌의 팔을 발로 걷어찼다. 엘렌의 이능력은 이미 해제된지 오래였다.

 

  "어느, 새……?"

  "방금."

 

  엘렌은 눈과 몸을 떨며 잭을 올려다 보는 상태로 물어보았지만 잭은 어깨를 으쓱하며 의연한 태도로 그에게 대답해주었다. 그리고는 사정없이 오른팔의 나이프를 그의 어깨에 내리꽂았다. 또다시, 기분나쁜 비명소리가 울려퍼졌다.

 

  하지만 그 커다란 비명소리에도 잭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분노를 담아 그의 온몸에 나이프를 꽂아넣었다.

 

  "그, 그만……!"

  "그만?"

 

  잭이 헛웃음을 치며 엘렌의 몸에 꽂혀있는 나이프를 뽑아냈다. 피가 뚝뚝 떨어지는 것을 보며 잭이 다시 입을 열었다.

 

  "─개소리."

 

  작은 목소리로 내뱉은 잭은 몸을 왼손을 들어올리며 몸을 일으켰다. 그대로 그의 목을 향해 날카로운 칼을 휘둘렀고,

 

  이번에야말로 엘렌의 목으로 파고든 잭의 칼이 그의 목을 잘라냈다.

 

 

 

  "후우."

 

  가면을 벗은 잭이 숨을 내쉰 후 엘렌의 방을 둘러보았다. 전투의 흔적으로 책장은 부서졌고, 그로 인해 생겨난 파편이 바닥을 덮고 있었으며 또한 바닥이 움푹 파여있었다.

 

  다음으로는 잭의 시선이 아래를 향했고, 그곳에는 싸늘해져 가고 있는 엘렌의 시체가 있었다.

 

  "너 나름대로 큰 야망을 품고 있었겠지만… 허무하지? 괴물아."

 

  잭은 그의 머리를 걷어찬 후 엘렌의 방을 나섰다.

 

 

 * * *

 

 

  잭이 방에서 나오자 저택에 들어왔을때와 마찬가지로 알프레드가 자신을 향한 채로 서있었다. 하지만 처음때와는 달리 알프레드는 아무런 말이 없었고 얼굴 또한 씁쓸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결국, 이렇게 됐군요."

  "……영감도 덤빌건가?"

 

  잭의 말에 알프레드가 웃음을 지어보이더니 고개를 천천히 양옆으로 저었다.

 

  "엘렌 주인님도 소년 시절에는 사람들을 굽어살피는 훌륭한 귀족이 될거라고 하셨지만……"

 

  알프레드는 천장을 보며 먼 옛날의 추억을 회상했다. 그리움이 담긴 그의 눈에 눈물 한 방울이 맺히더니 그의 얼굴을 타고 내려와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리고는 오른쪽 주머니에서 칼 하나를 꺼내더니 그대로 들어올렸다.

 

  상대가 칼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잭은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 칼의 날은 알프레드를 향해 있었기 때문이다.

 

  "모든것은, 정원에 그 나무가 생기고 난 뒤인가……."

 

  알프레드가 양손으로 자신의 칼을 쥐어잡은 후, 천천히 눈을 감았다.

 

  "뒤따라가겠습니다, 엘렌 주인님."

 

  그리고 그대로, 자신의 심장을 향해─

 

 

 * * *

 

 

  저택에서 나오자 불어오는 기분좋은 밤바람이 잭을 반겨주었다. 정원 한 편에는 블랑이 가면을 벗은 채 서 있었다.

 

  바람에 휘날리는 아름다운 흰색 머리카락. 블랑의 모습이 달빛을 받아 한층 더 아름다워 보였다. 잭은 조용히 블랑에게 다가갔다. 블랑은 천천히 고개를 돌려 잭을 마주보았다.

 

  "끝났어?"

  "응, 끝났어."

  "어땠어?"

  "……별 거 없었어."

  "그래. 수고했어, 잭."

 

  잭이 고개를 숙이자 블랑은 그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노예시장이랑 마약시장의 위치, 못 들었어."

  "어차피 물어봤어도 안알려줬을거야."

  "하지만, 그 안에서 계속 고통받는 사람이……."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했어."

 

  잭이 고개를 들어올려 블랑의 얼굴을 보았다. 블랑은 자신의 표정을 감추기 위해 최대한 노력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한 듯한 표정이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돌아가자, 잭."

  "……응."

 

  둘은 기분좋은 바람을 받으면서도, 마음 한 편에 아쉬움이 비수로 바뀌어 꽂혀있었다.

 

 

 §

 

 

 【 엘렌의 정원 完 】

 
 

NO 제목 날짜 조회 추천 글자
31 30. 겨울밤의 비 (1) 2019 / 11 / 24 324 0 5442   
30 29. 움직임 2019 / 11 / 16 312 0 5205   
29 28. 살인귀와 기사단 (2) 2019 / 11 / 8 314 0 5207   
28 27. 살인귀와 기사단 (1) 2019 / 11 / 6 309 0 6258   
27 26. 로얄 가드 2019 / 11 / 2 316 0 5858   
26 25. 겨울을 맞이하는 밤 (5) 2019 / 11 / 1 306 0 6688   
25 24. 겨울을 맞이하는 밤 (4) 2019 / 10 / 31 321 0 4429   
24 23. 겨울을 맞이하는 밤 (3) 2019 / 10 / 30 322 0 5324   
23 22. 겨울을 맞이하는 밤 (2) 2019 / 10 / 29 318 0 6197   
22 21. 겨울을 맞이하는 밤 (1) 2019 / 10 / 28 306 0 5035   
21 20. 레 미제라블 (7) 2019 / 10 / 27 314 0 5614   
20 19. 레 미제라블 (6) 2019 / 10 / 26 314 0 5051   
19 18. 레 미제라블 (5) 2019 / 10 / 24 315 0 5395   
18 17. 레 미제라블 (4) 2019 / 10 / 16 319 0 5295   
17 16. 레 미제라블 (3) 2019 / 10 / 13 313 0 4742   
16 15. 레 미제라블 (2) 2019 / 10 / 12 331 0 5709   
15 14. 레 미제라블 (1) 2019 / 10 / 9 304 0 6041   
14 13. 황금과 선혈의 도박장 (下) 2019 / 10 / 1 294 0 6675   
13 12. 황금과 선혈의 도박장 (中) 2019 / 9 / 29 326 0 6756   
12 11. 황금과 선혈의 도박장 (上) 2019 / 9 / 27 316 0 5006   
11 10. 휴일 2019 / 9 / 26 301 0 4680   
10 9. 엘렌의 정원 (6) 2019 / 9 / 22 313 0 10344   
9 8. 엘렌의 정원 (5) 2019 / 9 / 21 310 0 4682   
8 7. 엘렌의 정원 (4) 2019 / 9 / 18 306 0 7061   
7 6. 엘렌의 정원 (3) 2019 / 9 / 13 317 0 4693   
6 5. 엘렌의 정원 (2) 2019 / 9 / 12 305 0 5075   
5 4. 엘렌의 정원 (1) 2019 / 9 / 11 319 0 5745   
4 3. 달빛의 도시의 하루 2019 / 9 / 9 304 0 7448   
3 2. 두 명의 살인귀 (下) 2019 / 9 / 7 288 0 7968   
2 1. 두 명의 살인귀(上) 2019 / 9 / 6 331 0 9856   
 1  2  
이 작가의 다른 연재 작품
등록된 다른 작품이 없습니다.

    이용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메일주소 무단수집거부   |   신고/의견    
※ 스토리야에 등록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 본사이트는 구글 크롬 / 익스플로러 10이상에 최적화 되어 있습니다.
(주)스토리야 | 대표이사: 성인규 | 사업자번호: 304-87-00261 | 대표전화 : 02-2615-0406 | FAX : 02-2615-0066
주소 : 서울 구로구 부일로 1길 26-13 (온수동) 2F
Copyright 2016. (사)한국창작스토리작가협회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