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1일간 안보이기 닫기
모바일페이지 바로가기 > 로그인  |  ID / PW찾기  |  회원가입  |  소셜로그인 
스토리야 로고
작품명 작가명
이미지로보기 한줄로보기
 1  2  3  4  5  6  7  8  9  10  >  >>
 1  2  3  4  5  6  7  8  9  10  >  >>
 
자유연재 > 현대물
나는 죽지 않는다
작가 : 자료창고
작품등록일 : 2019.9.10

사신도가 있었다.
왕과 화원의 손길만 허용하는 사신도.
그들은 그것이 나라와 생명을 영생케 하리라 믿었다.
하지만 세상은 사신도를 가만히 놓아두지 않았다.
잃어버린 사신도를 찾아 600년 세월을 떠도는 자.
사신도를 손에 넣어 영생을 꿈꾸는 자.
그들의 싸움은 계속된다.

 
11. 이상한 유언장
작성일 : 19-09-21 21:45     조회 : 187     추천 : 0     분량 : 5138
뷰어설정 열기
뷰어 기본값으로 현재 설정 저장 (로그인시에만 가능)
글자체
글자크기
배경색
글자색
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11. 이상한 유언장

 

  장례식장 입구.

 

 안내요원이 안으로 들어서는 이현민을 부축하자 그가 손을 뿌리쳤다. 이현민은 제자리에서 크게 심호흡을 하고 꼿꼿한 자세로 복도를 걸어갔다. 그의 등장에 주변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그룹 관계자들이 앞 다투어 달려와 고개 숙여 인사했고 이현민의 누나는 멀리서 한심하다는 듯 그 광경을 지켜봤다.

 

 “왔어요?”

 

 이필만회장의 세 번째 부인이었던 조선희가 인사를 건넸다. 두 번째 부인이 젊은 연예인이었던 것과 달리 세 번째 부인은 고고미술을 전공한 교수였다. 외모도 집안도 특별할 게 없는 싱글맘에 정년퇴직을 앞둔 사람이었는데 이필만이 그의 아이들에게도 꽤 많은 주식과 돈을 증여했다는 소문이다. 하지만 무슨 이유인지 두 사람은 몇 달 전 이혼했다. 것도 위자료 한 푼 오가지 않은 쿨한 이별에 세간의 관심이 쏠렸지만 정작 당사자들은 아무 언급이 없었다.

 

 이현민은 조선희의 얼굴만 한번 스윽 보고는 그대로 지나쳤다. 계모가 대학교수라고 해서 남들 앞에 아버지의 재혼을 당당하게 말할 수는 없었다. 이현민은 어머니 자리에 앉아있는 그 누구도 어머니로 인정하거나 아버지의 부인으로 대접하고 싶지 않았다. 조선희 역시 전 부인으로서 예우를 기대하고 인사를 한건 아니다. 그저 상주에 대한 의례다. 하지만 그것마저도 거부하는 듯한 이현민의 태도에 살짝 낯빛이 어두워졌다.

 

 “너 뭐하다 이제와? 술 먹었어?”

 

 누나 이현이가 소리를 버럭 질렀다. 누굴 닮았는지 드센건 여전해서 상복 입은 동생을 한 대 칠 것처럼 나서는걸 그의 남편이 말렸다.

 

 “아버지가 널 어떻게 키우셨는데..니가 지금 술 처먹고 다닐 때야?”

 

 이현이가 분에 못 이겨 막말을 쏟아내자 이현민도 인상을 썼다.

 

 “왜 그래, 당신. 가만있어. 처남은 지금 최선을 다하고 있어.”

 “무슨 최선? 저꼴로 들어온게 최선이야? 야! 너 진짜!!”

 

 결국 남편이 이현이를 질질 끌고 내실로 데려갔다.

 

 “아오, 저걸 상주라고. 도대체 아버지는 어쩌자고 저걸...”

 

 여기서 한마디 해봤자 구경거리밖에 안 된다. 조선희도 사태를 예감한 듯 일찌감치 내실로 사라졌고 불같은 성격의 누나도 조금 후면 언제 소릴 질렀냐는 듯이 교양있는 표정으로 문상객들을 맞이할 것이다.

 

 “미국 가족들은 내일 새벽 도착하실 예정입니다.”

 

 비서실장이 묻지도 않은 얘기를 꺼냈다. 미국에서 MBA 준비중인 남동생 가족에 대한 얘기였다. 말이 좋아 MBA지 돈 쓰는 재미에 미국생활을 7년째 하고 있는 녀석. 이현민은 문득 아버지에게 없는 것이 자식복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비서실장이 상조회사 직원에게 눈짓하자 그가 가슴에 달 검은 꽃과 장갑을 가지고 왔다.

 

 “나중에.”

 

 이현민은 거절의 제스처를 내보였다. 그리고는 혼자 천천히 영정 앞으로 다가와 섰다.

 

 낯설다.

 

 허연 두루마기를 입고 굳은 표정으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아버지의 얼굴은 지금껏 한 번도 본적 없는 모습이다. 자식들에게 살가운 아버지는 아니었지만 저렇게 고압적인 얼굴로 바라본 적도 없다. 흑백사진 속 그의 표정은 다른 사람 같다. 수백송이 흰 국화에 둘러쌓여 있으면서도 장례식장을 더 무겁게 만들어 버리는 음습한 영정사진.

 

 ‘저것도 생전에 다 준비했던 것일까? 아버지가 기획하고 마무리한 장례절차의 일부인가?’

 

 이현민이 영정과 주변에 진열해 놓은 소장품을 살폈다.

 

 “유언장에 쓰신 대로 준비한겁니다.”

 “누가요?”

 “장례위원장, 권오형대표가 수장고에서 가져왔습니다.”

 “언제요?”

 “장례식장 마련되고 바로 준비했습니다.”

 

 그렇다면 이미 자신을 만나기전 사전준비를 다 해놓은 것이다.

 

 불쾌하다.

 

 의도적이든 아니든 자신이 모르는 사이에 아버지의 장례식장이 이렇게 준비됐다는 것이.

 

 이현민은 한참 둘러보다가 영정 옆에 놓여있던 상자를 열었다. 곽노수가 놓고 간 그림이 담겨 있었다. 이현민이 조심스레 그림을 펼쳤다. 전문가가 아니라면 진품이라고 생각할 만큼 잘 그린 작품이었는데 일부러 오래되어 보이도록 종이 여기저기가 변색돼있었다.

 

 “뭡니까, 이건?“

 “곽노수가 놓고 갔습니다.”

 “그게 누굽니까?”

 “그사람은 저...”

 

 비서실장은 차마 회장님이 총애하던 도굴꾼이라는 말을 하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이것도 회장님 지시라던가요?”

 “아니요, 회장님이 생전에 좋아하시던 작품이랍니다. 그런데 모사화라고...”

 “치우세요.”

 “네?”

 “누군지 말 못 하는거 보니 내놓고 자랑할만한 사람 아닌 것 같은데.”

 “아, 예.”

 “가짜는 다 치우세요. 앞으로 여긴 물건도 사람도 진짜만 받겠습니다.”

 

 술 냄새가 풍겨오긴 해도 이현민의 목소리와 말투는 흐트러짐이 없었다. 이현민이 접견실 쪽으로 자리를 옮기자 비서실장이 직원에게 눈짓했다. 그들은 서둘러 상자를 내갔고 남은 일행은 사고없이 이현민의 방문이 끝난 것에 안도하며 자리를 정리했다.

 

 *****

 

 “얘기 좀 하자.”

 

 내실에서 잠시 쉬고 있는데 이현이가 들어왔다. 이현민은 예의상 자리를 고쳐 앉았다.

 

 “어떻게 할거야?”

 “뭘?”

 “유언장 봤지? 그대로 해?”

 

 아까 권오형은 장례식에 대한 유언장은 아직 본 사람이 없다고 했는데 그새 다 공개된 모양이다.

 

 “그거 봤으면 내가 그대로 할 수밖에 없는 것도 봤을텐데.”

 “휴...왜 그러신다니 진짜. 갑자기 돌아가셔서 정신이 하나도 없는데 축제를 준비하라니. 어이가 없다, 진짜.”

 “나 잠깐 눈 좀 붙이고.”

 

 이현이는 동생의 피로는 안중에도 없는듯 말을 이어갔다

 

 “남들 손가락질은 좀 받을 것 같은데 어떡하니, 돌아가신 분 소원이라는데..”

 “이따 얘기해.”

 “니가 걱정이다 얘. 아버지도 진짜, 왜 너한테 이 일들을 다 맡기셨다니...

 

 마음에도 없는 소리.

 이현이는 장례식을 어떻게 치르건 간에 잃을게 없는 사람이다.

 

 “며칠 들썩거리다 끝나겠지. 불편해도 그 며칠만 참자.”

 

 이현민이 돌아눕자 이현이가 마지못해 나갔다.

 

 좋다.

 장례식은 걱정할게 없다.

 아버지가 준비한대로 시행하기만 하면 된다. 자신이 아니더라도 이미 전문가들을 다 동원해 놓았기 때문에 막말로 사인만 하면 이 정신없는 축제가 끝날 것이다.

 슬프지도 않은 장례식을 슬픈 척 치를 필요 없으니 다행일수도 있다.

 

 아니다.

 장례식을 성대하게 치르라는 유언을 남기거나 내로라하는 풍수쟁이를 데려다 묘자리를 미리 봐 두는 것까지는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장례식을 무슨 공연하듯 준비해놓은 것에 이현민은 머리가 지끈거린다. 기록으로 남겨야할 유명인사의 죽음이 아닌, 대한민국이 들썩일만한 재벌회장님도 아닌 기업가의 죽음을 그토록 성대하게 치러야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이대로 진행한다면 그간 아버지가 받아온 존경과 신뢰가 원성으로 뒤바뀔 수 있다. 아버지와 타협하지 못한 아들이지만 그의 인생이 세상 사람들한테 손가락질 받는 것은 달갑지 않았다.

 

 유언장은 A4용지 수십 장에 이르렀다. 그중 대부분은 장례식에 사용될 골동품 목록과 필요한 소품, 절차에 대한 그림과 문서였는데 구체적으로 정리해 놓은 걸로 봐서 하루 이틀 걸린 작업이 아니다. 누군가의 도움이나 조언이 없다면 이 어마어마한 장례식준비는 불가능해 보였다.

 

 권오형.

 유언장에 적힌 대로 ‘현광 이필만 장례식준비위원회장’인 그가 아버지를 도왔을 것이다. 그는 그 대가로 무엇을, 얼마를 받아 챙겼을까. 좀전에 만났던 권오형은 장례준비에 꽤나 열성적이었다.

 

 *****

 

 “소장품 정리와 이전은 준비가 다 됐고요. 장지로 출발하기전과 장지에서 이사님이 목록을 확인하시고 사인하시면 됩니다.”

 “권대표는 지금 이 상황 이해가 되십니까?”

 “저야 뭐 회장님이 늘 말씀하시던 일이라...”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할까요?”

 “글쎄요. 그건 저도 참..”

 “옆에서 좀 말리지 그러셨어요?”

 “제가 감히 어떻게.”

 “약탈문화재 반환받아야한다고 용을 쓰는 분이 문화재사유화에 동조를 하고 계시네요. 앞뒤가 맞지 않는거 아닌가?”

 

 권오형이 움찔하는게 눈에 보였다.

 

 “회장님의 유지와 제가 몸담고 있는 단체의 목표가 배치되는 구석이 있긴 하나 저는 일단 회장님이 유언장에 지시하신대로 이행해야 할 입장이라....”

 

 권오형이 마른 침을 삼켰다.

 

 유언장 첫 장은 다음과 같이 적혀있었다.

 

 1. 이현민은 장례식에 소용되는 소장품을 확인하여 매장하도록 한다. 그 목록은 별첨1과 같다.

 2. 이현민은 장례가 끝난후 이필만이 지정한 소장품 목록을 국가에 기증하도록 한다.

 3. 이현민은 지정한 소장품외의 물품들을 처분할 권리를 가진다.

 4. 이현민은 장례식이 예정대로 진행된 후 이필만의 성진건설 주식을 모두 상속받으며 선플라워 리조트 경영권을 회복한다.

 그러나, 위의 조항을 준수하지 않을 경우 성진그룹 계열사의 경영에 참여할 수 없고 모든 유산 집행은 정지되며 유산분배와 관련된 어떤 소송도 제기할 수 없다.

 5. 모든 절차와 준비는 장례위원장 권오형의 지시를 따른다.

 

 “이 유언장 권대표하고 저, 그리고 누가 또 압니까?”

 “아직은 없습니다.”

 “가족보다 소장품 관리 고문이 먼저 안다. 권대표님 신임이 대단하셨나보네요. 작성일이 벌써 1년 전이던데 비밀 유지하느라 고생하셨겠습니다.”

 “말씀드렸다시피 저도 유언장은 오늘 처음 봤습니다.”

 “대가가 뭡니까?”

 “대가라니요?”

 “이런 일을 돈도 안 받고 하는건 아닐테고. 말해보세요. 그 돈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뭔지 찾아드리겠습니다.”

 “대표님!”

 

 권오형이 발끈하며 일어났다.

 

 “이 유언장 없었던 걸로 만들면 어떻게 되는거죠?”

 “그게 무슨..?”

 “뭘 그렇게 놀라세요? 아버지는 이미 돌아가신 분이고. 유언장 조금 바꾼다고 벼락맞을 일은 아닐텐데. 권회장님은 받을 것만 받고 끝내시면 되는거고요. 어떠세요?”

 “그만 하시죠. 저는 회장님의 유지를 받드는 것 뿐입니다, 어떤 댓가나 보상은 바라지도 않고요. 계속 이런 식으로 말씀하신다면 저도 장례위원장 직함을 내려놓겠습니다..”

 

 권오형은 꽤나 불쾌한 듯 돌아섰다. 그렇다고 그를 말리고 싶지 않다. 내일이면 그는 아버지의 유지 운운하며 자신에게 전화를 걸어올 것이다. 어쩌면 이쪽에서 먼저 그를 찾아오길 기다릴지도 모른다. 이현민은 지금 이 상황이 불필요한 기싸움이라는 것도 안다. 이미 모든건 아버지가 결정을 해놓은 상태기 때문에 두 사람이 하네 마네 할 입장이 아니다.

 

 권오형은 이현민이 유언장 내용을 거부할 수 없다는걸 알고 있다. 기묘한 장례식이 역겨울지 몰라도 모든 장례절차에 사인이라도 하지 않으면 빈털터리가 되고 마는데 무슨 배짱으로 거절할 수 있을까. 유언장을 파기하자는 제안 역시 자기를 떠보려는 것임을 안다. 그가 아는 이현민은 아버지의 뜻을 거스를 배짱도 없는 사람이다. 그는 이현민의 분노와 조소가 오래 가지 않을거라고 확신한다. 어쩌면 지금, 핸드폰이 울릴지도 모른다. 혹은 내일 권오형의 집앞으로 성진그룹에서 보낸 승용차가 도착할지도 모른다. 권오형은 추도사 초안을 마무리하고 노트북을 껐다.

 

 
 

NO 제목 날짜 조회 추천 글자
37 37. 현무도를 찾읍시다 2019 / 10 / 17 213 2 7286   
36 36. 8인회 해체 2019 / 10 / 16 209 0 6277   
35 35. 장민의 등장 2019 / 10 / 15 193 0 5912   
34 34. 술래잡기 2019 / 10 / 14 228 0 6023   
33 33. 시간이 없다 2019 / 10 / 13 199 0 6176   
32 32. 아들 2019 / 10 / 12 193 1 5256   
31 31. 컬쳐클럽의 실체 2019 / 10 / 11 205 0 6312   
30 30. 저주 2019 / 10 / 10 206 0 4940   
29 29. 각자의 방식 2019 / 10 / 9 191 0 5742   
28 28. 47분 32초 2019 / 10 / 8 241 0 6193   
27 27. 쓰레기들 2019 / 10 / 7 216 0 5673   
26 26. 새로운 사건 2019 / 10 / 6 218 0 5270   
25 25. 망한 장례식 2019 / 10 / 6 217 0 6702   
24 24. 老慾 2019 / 10 / 4 195 0 6041   
23 23. 멈춰버린 상여 2019 / 10 / 3 222 0 6161   
22 22. 장례식 서막 2019 / 10 / 2 209 0 6769   
21 21. 악마의 미소 2019 / 10 / 1 206 0 6261   
20 20. D-1 2019 / 9 / 30 210 0 6447   
19 19. 권오형의 비애 2019 / 9 / 29 208 0 6576   
18 18. 그가 사는 이유 2019 / 9 / 28 199 0 6118   
17 17. 나는 죽지 않는다 2019 / 9 / 27 198 1 5595   
16 16. 동전던지기 2019 / 9 / 26 193 0 5590   
15 15. 수상한 나무상자 2019 / 9 / 25 197 0 4267   
14 14. 환생 2019 / 9 / 24 205 0 5467   
13 13.8인회의 동상이몽 2019 / 9 / 23 215 0 6272   
12 12 새벽별이 있는 곳에 2019 / 9 / 22 196 0 4217   
11 11. 이상한 유언장 2019 / 9 / 21 188 0 5138   
10 10. 아버지와 아들 2019 / 9 / 20 246 0 4335   
9 9. 아르마니를 입은 도굴꾼 2019 / 9 / 19 195 0 4598   
8 8. 북촌 정가국수 2019 / 9 / 18 210 0 3877   
 1  2  
이 작가의 다른 연재 작품
등록된 다른 작품이 없습니다.

    이용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메일주소 무단수집거부   |   신고/의견    
※ 스토리야에 등록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 본사이트는 구글 크롬 / 익스플로러 10이상에 최적화 되어 있습니다.
(주)스토리야 | 대표이사: 성인규 | 사업자번호: 304-87-00261 | 대표전화 : 02-2615-0406 | FAX : 02-2615-0066
주소 : 서울 구로구 부일로 1길 26-13 (온수동) 2F
Copyright 2016. (사)한국창작스토리작가협회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