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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나의 자카르타
작가 : 히타히타
작품등록일 : 2019.9.2

도망치듯 떠나온 그곳에서 마법이 시작된다.

 
찐따는 사랑이야
작성일 : 19-09-20 10:03     조회 : 294     추천 : 0     분량 : 4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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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주방에서 콜라 캔을 꺼냈다.

 테이블마다 돌아다니며 기다리게 해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콜라를 돌렸다.

 손님들은 사과하는 내가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미안할 거 없다고 어깨를 으쓱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나는 자카르타에 온 첫 날을 떠올렸다.

 그날, 불이 자꾸 나가는 식당에서 사람들은 노래를 불렀다.

 그런 사람들이었다.

 일을 시키면 한 없이 기다려야 하지만, 그만큼 시킨 일을 한 없이 기다릴 줄도 아는 사람들이었다.

 안달하고 걱정하고 불안해하는 건 나뿐이었다.

 

 손님들은 음식을 주문해 놓고 그 긴 대기시간 동안 웃고 떠들었다.

 주문한 걸 잊은 건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였다.

 

 잔돈이 떨어졌다.

 물론 그것 역시 내 잘못이었다.

 

 한 가족이 계산을 하러 포스기 앞으로 왔다.

 가장이 10만 루피(1만원)짜리 지폐들을 내밀었다.

 그때 포스기 안에는 5만루피(5천원) 이하 잔돈이 하나도 없었다.

 

 나는 잠시 기다려 달라고 말하고 근처 가게와 편의점을 돌아다녔다.

 웃돈을 주겠다고 해도 잔돈을 바꿔주는 곳이 없었다.

 나는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가게로 돌아왔다.

 잔돈이 없는 건 가게 잘못이니, 돈을 받지 않고 보낼 생각이었다.

 

 “죄송합니다. 잔돈이 없습니다. 그냥 가십시오.”

 

 손님들은 그 말을 듣고 하하 웃음을 터뜨렸다.

 가장이 가족들에게 지갑을 털어보라고 했다.

 다섯 가족이 지갑을 탈탈 털어 잔돈을 테이블 위에 쏟아내자, 가장이 그것들을 모아 값을 치르고 식당을 나갔다.

 

 나는 유리문 뒤로 사라지는 그들의 뒷모습을 멍하니 보았다.

 악몽 같았던 오늘 하루가 그들과 함께 사라지는 느낌이 들었다.

 

 손님은 주로 점심과 오후시간에 한꺼번에 몰렸다.

 주변에 한식당이 별로 없는데, 한국인이 직접 식당을 연다는 소문이 퍼진 것 같았다.

 다행히 저녁에는 손님이 드문드문 왔다.

 

 나는 식당을 일찍 닫고 직원들을 퇴근시켰다.

 주방에는 그을음이 끼다 못해 시꺼멓게 타버린 버너 두 개가 덩그러니 놓였다.

 나는 그 버너들에 절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결산을 도와주러 온 캐서린이 물었다.

 

 “미스뜨르, 재료값이 왜 이렇게 많이 들었어요?”

 “급해서 쇼핑몰에서 샀어.”

 “그걸 쇼핑몰에서요?”

 

 캐서린이 용납할 수 없다는 화교 특유의 표정을 지었다.

 엄마가 떼쓰는 아이를 때릴 때 짓는, 그런 표정이었다.

 

 “앞으론 안 그럴게.”

 “렌지수리업체에 전화했어요.”

 “고마워. 온대?”

 “내일 온데요.”

 “또 내일이야?”

 

 나는 화를 벌컥 내려다 멈추었다.

 비빔밥을 먹으려고 40분을 기다린 손님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나는 이제 자카르타의 리듬에 적응해야 한다.

 화내지 말고, 걱정하지 말고, 안달하거나 불안해하지도 말아야 한다.

 세상은 내가 아는 것보다 훨씬 더 크다.

 

 나는 다시 식당에 혼자 남았다.

 홀을 열심히 쓸고 닦았지만 사투의 흔적이 곳곳에 배어 지워지지 않았다.

 나는 전등 스위치를 내린 뒤에야 오늘 한 끼도 먹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

 잠이 오지 않는다.

 몸이 해초처럼 풀어지고 오한까지 이는데 정신만은 또렷하다.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앉았다.

 피곤해 죽을 것만 같았다.

 너무 피곤하면 잠이 안 올 수도 있다는 말을 언젠가 들은 적 있다.

 이유가 무엇이든 새벽에 시장에 가야 하는데 잠을 못 이루면 큰일이었다.

 

 덜그럭.

 

 아래층에서 소리가 들렸다.

 누군가 빈 식당을 돌아다니는 것 같은 소리였다.

 그 소리는 가뜩이나 예민한 내 신경을 긁어댔다.

 아무도 없는 건물에 혼자 있으면 작은 소음에도 긴장하게 된다.

 

 나는 1층으로 내려갔다.

 또 비가 오는 모양이었다.

 바람이 창틀을 흔들고 빗방울이 창문을 토독토독, 가볍게 두드리고 있었다.

 

 저 소리를 잘못 들은 걸까.

 나는 스위치를 켰다.

 빈 테이블들이 전등 빛을 반사해 반짝거렸다.

 나는 눈이 부셔 눈꺼풀을 몇 번 껌벅거렸다.

 

 “미스뜨르.”

 

 식당 구석에서 남자의 목소리가 나를 불렀다.

 

 “미스뜨르. 미스뜨르.”

 

 그 소리는 오래 그리워한 사람을 발견한 듯 다급하고 톤이 높았다.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인도네시아 노인이 거기 서 있었다.

 백발에 키가 작은 노인이었다.

 주름에 덮여있지만 이목구비가 단정하여, 젊은 시절엔 미남이었을 얼굴이었다.

 

 식당문은 셔터가 내려가 있었다.

 창문도 모조리 잠겨 있었다.

 노인이 몰래 들어올 만 한 틈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때까지 나는 이따금 밤에 찾아오는 존재들에 익숙해지지 못했다.

 그래서 박 사장의 유령을 만났을 때와 똑같이 등골이 서늘해졌다.

 

 노인이 천천히 내게 다가왔다.

 나는 무기로 쓸 만한 것이 있는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노인은 미소를 지으며 내 코앞에 이르렀다.

 

 “미스뜨르. 저예요. 인드라.”

 

 노인이 느리고 또박또박한 인도네시아어로 말했다.

 외국인인 나를 배려하는 말투였다.

 그러나 나는 인드라라는 이름의 인도네시아인을 몰랐다.

 노인의 얼굴 역시 본 적 없었다.

 나는 반색하는 노인 앞에서 인상을 쓰며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누, 누구세요?”

 

 노인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노인도 나처럼 고개를 갸우뚱거리기 시작했다.

 

 “미스뜨르. 절 모르신다고요?”

 “처음 보는데요.”“아, 아하.”

 

 노인이 다시 미소를 지었다.

 단정한 얼굴만큼이나 매력적인 미소였다.

 웃을 때 양 볼에 동그란 보조개가 패었다.

 

 “절 만나기 전이로군요. 맞아요. 그래요.”

 

 뭐가 맞고 뭐가 그런 건지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노인은 연신 고개를 갸우뚱하는 나를 외면한 채 식당을 둘러보았다.

 

 “테이블이 완전 새 거네요. 돌담이 막 문을 연 때죠. 그렇죠?”

 “맞아요. 좀 앉으세요.”

 

 노인에게 적의가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나는 자리를 권했다.

 인드라라는 노인은 몸가짐도 단정했다.

 소리가 안 나도록 의자를 조심스럽게 빼고 무릎을 모아 조신하게 앉았다.

 

 “바빡(나이 든 남자에 대한 존칭). 누구십니까?”

 “인드라에요.”

 “이름 말고 누구시냐고요.”

 “저는 이 식당의 셰프에요.”“셰프라고요?”

 

 나는 인드라의 맞은편에 앉았다.

 노인의 이야기를 좀 더 자세히 듣고 싶었다.

 지금 돌담의 셰프는 마흐무드다.

 그런데 왜 노인은 자신이 셰프라고 주장하는 걸까.

 

 “저한테는 이미 셰프가 있는데요.”

 “오늘이 며칠이죠?”

 “12월20일이요.”

 “아하.”

 

 노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새해가 되면 미쓰뜨르는 절 만날 겁니다. 그때 미스뜨르는 많이 상심한 표정이었어요.”

 “제가 상심했다고요?”

 “예. 주방에 일할 사람이 아무도 없었거든요.”

 

 들을수록 영문 모를 말이었다.

 마흐무드를 채용해 레시피 전수까지 해줬는데 열흘 새 주방이 빌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럴 일은 없어요.”

 “그렇게 될 겁니다.”

 

 노인은 내 말을 무시하고 이야기를 계속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노인의 얼굴은 상념에 젖어, 아득한 표정으로 허공을 바라봤다.

 

 “그때 저는 다른 면접에서 퇴짜 맞고 돌아가는 길이었어요. 스물다섯에 겨우 주방보조로만 일했죠. 미스뜨르가 절 한참 바라보더니 불렀어요.”

 “불러서 뭐라고 하던가요?”

 “대뜸 셰프로 일하라고 하셨어요. 저는 겁이 나서 셰프는 못 한다고 했죠. 하지만 미스뜨르가 절 붙잡으셨어요. 그땐 왜 경험도 없는 저를 채용했는지 몰랐어요. 알고 보니 제가 이렇게 먼저 찾아온 거군요.”

 

 달리 할 말이 없었다.

 나는 박 사장의 유령을 만났을 때와 똑같은 막막함을 느꼈다.

 그래서 뜬금없는 질문을 던졌다.

 

 “우리는 행복했나요?”

 “예. 우리는 잘 맞았어요. 오랜 세월 행복하게 일했고 성공을 거뒀죠. 전 경험도 기술도 없었지만 남들에게 없는 걸 갖고 있었어요.”

 “그게 뭔데요?”

 “정직이요. 저는 정직하게 요리를 사랑했어요. 미스뜨르도 그랬죠.”

 

 여기까지 듣고 나는 노인이 유령이라고 믿었다.

 이제는 내가 미쳤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나는 노인을 다시 보았다.

 노인의 눈, 코, 입 하나하나를 내 기억에 새겨두고 싶었다.

 이 마법 같은 시간이 지나면 노인을 다시 만날 수 없을 것이다.

 

 “어떻게 돌아가셨습니까?”

 “오토바이 사고였어요.”

 “제게 부탁하실 게 있습니까?”

 “흐음...”

 

 노인은 숨을 길게 쉬며 눈을 감았다.

 머릿속에 여러 가지 상념이 떠오르는 모양이었다.

 

 “저를 보시면 꼭 잡아 주세요. 그게 우리 모두가, 돌담이 사는 길입니다. 그리고...”

 “그리고?”

 “한참 뒤에 절망할 일이 생길 겁니다. 그때 미스뜨르는 모든 걸 다 포기하려고 했어요. 하지만 미스뜨르는 다시 일어설 겁니다. 그걸 꼭 기억해주세요.”

 “주방에 일할 사람이 없어서요?”

 “아뇨. 저와 만나고도 한참 뒤에 벌어질 일입니다.”

 “바빡. 자신을 위해 부탁할 일은 없습니까?”

 “없습니다. 저는 미스뜨르를 만나서 행복했습니다. 덕분에 돈을 벌고 아이들도 잘 키웠죠. 그거면 된 겁니다.”

 

 노인이 눈을 떴다.

 그의 눈이 왠지 슬퍼 보였다.

 

 “당신을 믿으세요. 사랑을 버리지 마세요.”

 “사랑?”

 “예. 사랑이요.”

 

 ‘찐따’는 인도네시아어로 사랑이라는 뜻이다.

 같은 발음의 한국어와 반대의 뜻을 갖고 있다.

 노인의 말을 듣고 나는 픽 웃으며 찐따에게는 ‘찐따’가 필요 없다고 혼자 중얼거렸다.

 

 노인이 어떻게 사라졌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나는 아침에 손가락 뼈끝까지 쑤시는 몸을 일으켰다.

 시간을 확인해보니 5시40분이었다.

 나는 노인의 이름을 계속 되뇌었다.

 

 “인드라, 인드라, 인드라.”

 

 갑자기 불길한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몰려오는 졸음과 피로가 순식간에 달아났다.

 

 “주방에 무슨 일이 생길 거야. 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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