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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기타
대망 : 아마쿠사의 신
작가 : 한연화
작품등록일 : 2019.9.20

"제가 원하는 것은 전국을 일통하고 강한 군주가 되어 백성들을 덕으로 교화하는 것입니다. 그 길에는 지독한 피비린내와 가시밭길만이 있겠지요. 이런 저라도 받아주실 수 있겠습니까?" 끝없는 전란이 이어지는 전국시대의 일본. 천하를 무로 덮는 운명을 타고났으나 누나에 의해 사람이되 사람이 아닌 자, 히닌이 되어 쫓겨난 오와리국의 후계 유죠와 인간들의 전장에서 태어난 전쟁의 여신 아마쿠사미코토의 전국일통을 향한 일대기가 시작된다. 격랑의 역사 속, 그들의 삶과 사랑은 과연 어찌 될 것인가?

 
쇼비타 성의 도련님(1)
작성일 : 19-09-20 06:12     조회 : 453     추천 : 0     분량 : 7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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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냄새. 그것이 태어나서의 첫 기억인 것은 전란의 시대를 살아가는 이라면 누구나 그럴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유독 강하게 영향을 미치는 것은 누군가의 피냄새를 일평생 직접 맡으며, 뒤집어쓰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사람들, 다시 말해 누군가를 죽이고 끝내는 자기 자신도 누군가의 손에 의해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난 사람들일지니 그들을 일컬어 그 어찌 기구한 운명이라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세간에서는 그들을 일컬어 사무라이라고 부르지요. 평생을 칼 한 자루에 기대어 오로지 누군가를 죽이고 끝내는 자기 자신도 누군가의 손에 죽어야만 온전히 살아갈 수 있는 존재. 그리하여 그들을 싸우는 자들, 사무라이(武 士)라 부른다니 이 얼마나 기구한 운명입니까.”

 

  그리고 그러한 존재 중 하나로는 오와리국의 다이묘였던 이시다 단조노추 사이조노스케 마사토부를 들 수 있을 것이었다. 그러나 그가 다른 사무라이들과 다른 것은 일평생 수많은 싸움을 거쳐 왔으나 단 한 번도 다른 이의 칼이 자신을 죽이게 내버려두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압도적인 강함으로 작금의 전국을 쥐락펴락하던 그조차도 세월이 가져다준 병마를 이길 수는 없는 일. 그는 지금 누군가의 손이 아니라 병마에 의해 죽음을 앞두고 있었고, 그것은 이시다 가문 내의 후계다툼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아버지.”

 

  임종을 눈앞에 둔 마사토부의 곁에 있는 것은 그가 일전에 후계자로 지명한 그의 유일한 아들 유죠가 아닌, 딸 카이히메였다. 한때 혼인하여 이시다가를 떠났으나 남편의 죽음으로 다시 친정으로 돌아온 지 오래인 그녀는 겐오니라는 법명이 말해주듯 귀한 가문의 미망인답게 라쿠쇼쿠(귀인이 머리를 자르고 불가에 귀의하는 의식)를 치른 이래로 줄곧 쓰고 있던 머리쓰개를 걷고 종아리까지 이어지는 긴 머리를 허리에서 한 번 묶고 있었다.

 

  “카이.”

 

  마사토부가 쿨럭거리는 기침을 뱉어내며 딸의 이름을 불렀다. 곁에 시립해 있던 시녀가 얼른 손수건을 입에 대주자 금세 붉은 피가 뿜어져 나와 흰 손수건을 붉게 물들였다.

 

  “그런데 아버지께서는 누군가의 손에 죽지 않고 병마로 인해 쓰러지셨으니 이 어찌 홍복(洪 福)이라 아니 할 수 있겠습니까. 아니, 너무 큰 행복은 곧 불행을 가져온다 하니 큰 불행이라 할까요.”

  “…….”

  “어찌 되었든 우리 이시다가의 앞날이 걸린 이 시기에 아버지께서 병마로 쓰러지시니 세상천지에 만세를 부를 이들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호시탐탐 아버지의 자리를 노리고 있던 숙부님들이며, 우리 이시다가를 멸망시키기 위해 호시탐탐 기회만 엿보고 있는 다케다가며 우에스기가가 만세를 부르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마사토부의 눈이 불안한 기색을 띠고 데굴데굴 굴렀다. 마사토부가 아는 딸 카이히메는 야망이 크고 권력욕이 끝이 없는 인물이었다. 어릴 때부터 시를 지을 때마다 저승이니 지옥이니 하는 말을 서슴없이 써서 스승들이 모두 놀라 달아나기 일쑤였을 정도로 사나운 여걸이라 그 기백을 누르기 위해 일찍 시집을 보냈건만. 마사토부는 오래전 자신의 가독승계에 반발해 서로 다른 지파를 세운 두 동생들을 떠올리고 고개를 저었다.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을 굳이 딸 카이히메가 거론한다는 것은 결코 좋은 일이 아니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이냐.”

 

  그러나 이미 병마가 깊어 죽음을 목전에 둔 그에게 딸이 무엇을 하든 막을 수 있는 여력이 남아 있을 리가 없었다. 지금의 마사토부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딸의 말을 잠자코 듣고 있는 것뿐. 마사토부는 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러니 이제 그만 저에게 가독을 넘기시지요.”

  “…….”

  “우리 이시다 단조노추가의 가독을, 그리고 이시다가 전체의 가독을 저에게 물려달라는 말씀입니다, 아버지.”

 

  말을 마치는 카이히메의 입 속에서 검게 칠한 잇몸이 번뜩였다. 마사토부가 또다시 쿨럭거리는 기침을 토해냈다. 이번에는 시녀가 미처 손수건을 대주기도 전에 붉은 피가 뿜어져 나와 하얀 비단이불을 온통 붉게 수놓았다.

 

  “카이.”

 

  마사토부는 한동안 카이히메를 노려보았다. 그러나 이제 마사토부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시집을 보내는 것으로 딸의 야망과 권력욕을 제어할 수 있으리라 믿었던 지난날을 마음속으로 한탄하며 마사토부는 말했다.

 

  “유죠를, 네 동생 유죠를 너에게 부탁한다.”

 

 ※

 

  같은 시각, 마사토부의 하나뿐인 아들 유죠는 자신의 학문을 맡은 스승에게 장자(莊 子)수업을 듣고 있었다. 열 살 어린 아이가 듣기에는 어려운 수업이었지만 다이묘가의 유일한 후계였기에 조금 이른 시기에 수업을 들을 수밖에 없다는 것은 유죠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는 일이었다.

 

  나 한 번 날개를 펼쳐

  구만 리 상공을 날아오르려

  석 삼 년을 물 속에 웅크려 있는데

  매미와 뱁새가 비웃는다오

  아서라

  이 나무에서 저 나무로 건너뛰기만 하는

  매미와 뱁새가

  내 깊은 뜻을 어찌 알리오

 

  스승은 언제나처럼 자신이 직접 지은 시로 수업을 시작했다. 이번에 공부할 편은 장자 ‘소요유’편의 대붕이야기라며 운을 떼는 스승의 말을 듣다 말고 유죠는 잠시 미닫이문을 바라보았다. 대낮임에도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지는 것이 어딘가 모르게 스산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어 유죠는 자신도 모르게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곤이라는 물고기가 있습니다. 석 삼 년을 물 속에 웅크려 견디면 대붕이라는 새가 되어 상공을 날게 되지요. 이 대붕이라는 새는 날개가 석 장(丈) 길이로, 한 번 그 거대한 날개를 펼치면 하룻밤 사이에 무려 구만 리를 날아간다고 합니다. 제 말 듣고 계십니까?”

 

  그러나 유죠는 수업에 집중할 수 없었다. 아버지가 많이 편찮으시다고 들었는데 이 쇼비타 성 안에서는 그 누구도 유죠와 아버지를 만나게 해주지 않고 있었다. 겉으로는 아버지의 병이 어린 유죠에게 전염되는 것이 저어되어서라고 하지만 누나인 카이히메만은 아무렇지 않게 아버지의 침실에 들어가는 것을 보면 분명 아버지께 무슨 일이 생긴 것이 분명했다.

 

  “오늘 수업은 이것으로 마치도록 하지요. 아무래도 유죠님께서 많이 피곤하신 모양입니다.”

 

  스승이 처소를 나서자마자 유죠는 다다미바닥에 누워버렸다. 그러나 유죠는 곧 무언가가 이상함을 눈치 채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보통 때 같으면 귀인은 함부로 누워서는 안 된다며 자신을 억지로 일으켜 앉혔을 시종들이 오늘따라 방문 안으로 고개조차 내밀지 않고 있었다. 유죠는 자리에서 일어나 시종들을 불러보았다. 그러나 방문 밖에 있을 시종들은 그 누구도 소리를 내어 대답하지 않았고, 유죠는 그제야 방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았다. 넓은 복도에는 시종들이라고는 아무도 없이 그저 휑한 마룻바닥과 문짝들뿐이었다.

 

  어찌해서 불길한 예감은 항상 맞는 것일까. 그날 저녁 늦게 아버지 마사토부가 사망했다는 소식이 누나 카이히메의 시녀장 츠키코를 통해 전해졌다. 이시다가의 후계에게 선대 당주의 임종조차 지키지 못하게 했다는 것은 중대한 불충이며 반역이요, 역모가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유죠가 그에 대해 입을 열려 하는 순간이었다. 누나 카이히메가 보낸 무사들이 유죠의 처소를 에워싸기 시작한 것은.

 

  “무슨 짓이냐!”

 

  유죠가 아무리 소리쳐도 소용없는 일이었다. 카이히메가 보낸 무사들은 이제 유죠는 더 이상 이시다가의 후계가 아니며, 그저 선대 당주이셨던 마사토부님이 측실과의 사이에서 낳은 서자일 뿐이라 못을 박고는 카이히메가 새로 가독을 이어받았다는 사실을 알렸다. 유죠가 무어라 반박하려 다시 입을 열었으나 그들은 유죠의 팔을 붙잡아 침실에 집어넣고 방문에 못질을 하기 시작했다. 나무판자를 잘라 나무못과 나무망치로 박아 문을 막은 그들은 마치 유죠더러 들으라는 듯이 낄낄대기 시작했다.

 

  “지체 높은 도련님도 소용없구나.”

  “그러게. 세상에 여자에게 가독을 뺏길 줄은 누가 알았겠어.”

  “카이히메님께서 참 대단한 분이시기는 하지. 하지만 그렇다고 어떻게 여자에게 가독을 뺏기냐.”

  “아무리 나이가 어리다지만. 저거 진짜 바보인가.”

 

  유죠는 두 손으로 귀를 틀어막았다. 지금 상황을 파악해보면 누나가 아버지의 병환을 이용해 농간을 부려 아버지가 돌아가심과 동시에 가독을 상속받고 혹시 모를 후환을 제거하기 위해 자신을 죽이려 하는 것이 틀림없었다. 유죠는 두 손으로 귀를 틀어막고 눈을 감았다. 지금은 어떻게 하면 살아남을 수 있을지를 생각하는 것이 중요했다.

 

  그 후 며칠 동안 유죠의 방 안에는 매일 하루 세 끼의 음식과 물이 들어왔다. 그마저도 문을 작게 뚫어 만든 구멍을 통해 들어왔고 유죠의 방 안에 있는 요강을 비워주는 사람도 없어 방 안에는 참을 수 없는 악취가 가득했다.

 

  ‘그래서 누님은 언제 나를 죽일 셈이지.’

 

  이제는 어떻게 하면 살아남을 수 있을지를 생각하는 것도 포기한 유죠였다. 유죠는 그저 방 안에서 자신의 배설물냄새를 맡으며 멍하니 앉아 음식에는 손도 대지 않고 물만 마실 뿐이었다. 한동안 그렇게 사람 같지 않은 몰골로 있던 유죠를 신불들이 불쌍히 여긴 것일까. 며칠이 지나 방문이 열리고 낯익은 얼굴이 문턱을 넘어 들어왔다. 유죠는 자신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방문을 넘어 들어온 사람은 다름 아닌 누나 카이히메였다.

 

  “누님!”

 

  자리에서 일어난 유죠는 누나의 옷을 보고 다시 자리에 주저앉았다. 지금은 아버지의 상중일 텐데 누나는 상복조차 입지 않고 있었다. 평소와 다름없이 여러 벌의 빛깔 고운 고소데를 입고 허리에 화려한 우치기를 만 차림을 하고 있는 누나의 얼굴에는 아버지를 잃은 슬픔 따위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반역자 이시다 단조노추 유죠를 당장 끌어내라. 어서!”

  “전하의 명을 받들겠나이다!”

 

  곧 무사들이 유죠의 양팔을 잡고 방 안에서 억지로 끌어내기 시작했다. 게타에 발을 끼워 넣지 조차 못하고 타비만 신은 채로 흙바닥을 질질 끌려가는 유죠의 발바닥에는 진흙이 군데군데 묻어 보는 이의 마음을 안타깝게 했다. 그러나 지금은 카이히메의 시대가 아니던가. 끌려가는 유죠를 보며 시녀들이며 시종들은 저마다 혀를 차며 안타깝다 중얼거리거나 염주를 쥐고 기도를 올려줄 뿐 아무도 유죠를 위해 나서려 하지 않았다. 유죠가 한참을 끌려간 곳은 성 내에 있는 지하감옥이었다.

 

  “들어가시지요.”

 

  유죠를 끌고 온 무사들이 열린 옥사의 방 안으로 유죠를 밀어 넣고 밖에서 문을 잠갔다. 굵은 나무를 여러 갈래로 가로질러 만든 창살로 된 문이 닫히자 유죠는 눈을 들어 주위를 둘러보았다. 대낮임에도 불구하고 사위가 깜깜한 이곳은 곳곳에 관솔과 송진으로 횃불을 밝혀 낮에도 밤 같고, 밤에도 낮 같아 지금이 언제인지조차 알 수 없을 듯했다. 유죠는 다른 방에 갇힌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쇼비타 성 내의 범죄자는 아무리 중범죄자라 해도 대부분 봉행(다이묘를 보필하는 직책 중 가장 높은 직책) 이하의 이들이 관리하는 터라 유죠는 이런 곳에 와볼 일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래도 이곳은 형편이 좀 나아. 소매치기며 좀도둑이며 온갖 잡범들을 수용하는 옥사에 가봐. 여름이면 전염병이 돌아 하루에도 수없는 목숨이 죽어나가고, 겨울이면 추위 때문에 역시 하루에도 수없는 목숨이 죽어나가지.”

  “…….”

  “그뿐인 줄 아나. 각 방마다 두목이라는 놈이 있어서 제 수하들을 거느리고 신참죄수들을 상대로 온갖 행패를 부린다고. 돈을 내놓아라, 집에서 넣어주는 사식을 내놓아라, 그리고 심하면 몸을 내놓아라.”

  “…….”

  “아, 이 말은 아직 잘 모르려나. 하긴, 보아하니 곱게 자란 어린 도련님인 것 같은데 모를 수밖에 없겠지.”

  “…….”

  “더구나 여죄수들은 수시로 간수들에게 희롱당한다고. 간수들은 심심하면 여죄수들을 상대로 음담패설을 일삼고 옷을 벗으라 명령하지. 워낙에 쉬쉬해서 그렇지 간수들에게 겁탈당해 애를 밴 여죄수들도 왕왕 있을 정도야.”

  “…….”

  “그에 비하면 이 옥사는 천국이나 다름없어. 하루 세끼 꼬박꼬박 나오지, 그마저도 생선구이에 두부조림에 맛있는 것들만 골라서 나온다고. 거기에 잡범들 중 그나마 선량한 죄수 두 명이 시중도 들어주고. 이 얼마나 좋아.”

 

  흙으로 된 벽을 통해 옆방에 있는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유죠는 가만히 벽에 머리를 대고 앉아 그가 하는 말을 귀 기울여 들었다. 누나가 자신을 반역자로 모는 상황에서 어떻게 하면 자신이 살아남을 수 있을지를 생각하려면 무엇보다 정보가 중요하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열 살이라는 짧은 생을 살면서 지금보다 편안한 목소리는 들어본 적이 없기 때문이기도 했다.

 

  “내가 올 줄 알고 있었던 것인가?”

 

  유죠는 문득 혼잣말로 중얼거리듯이 물었다. 또다시 옆방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감옥에 누가 올지, 도련님이 누구인지 내가 어떻게 알아. 그냥 이 옥사는 모든 방이 독방이라 좀 심심하거든.”

  “…….”

  “시중드는 죄수들은 식사 때에만 오고. 그마저도 나를 무척 어려워해서 절대 내게 함부로 말을 걸려 하지 않아. 그래서 나는 항상 심심해. 따분하다고.”

  “…….”

  “아, 그러고 보니 먼저 이 옥사가 어떤 곳인지 말해줘야 하는 것을 잊었네. 이 옥사로 말할 것 같으면 사무라이나 의사, 학자, 승려나 신관들을 가두어두는 옥사야. 그래서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말 그대로 최상급대우를 받지.”

  “…….”

  “아참, 내 소개를 하는 것도 잊었네. 나는 한때 신관이었어. 지금은 아니지만.”

 

  신관이었다고……? 신관이었던 자가 왜 이런 곳에……? 대체 무슨 죄를 지었기에……? 유죠는 자세를 바로 고쳐 앉으며 조금 전보다 훨씬 공손한 자세로 남자의 말을 경청했다.

 

  “나는 아마쿠사 출신이야.”

  “…….”

  “그리고 그곳에는 아주 잔혹한 신이 하나 살고 있어.”

 

  남자의 말은 아마쿠사의 작은 신사에 좌정한 잔혹한 신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졌다. 오직 피와 죽음만을, 인간의 비탄과 절망만을 먹고 사는 그 신이 자신의 선대마저 잔혹하게 살해한 것으로도 모자라 천상계의 수많은 신들을 베고 인간세상으로 내려와 자신의 신관들마저 잡아먹기 시작했다는 이야기에 유죠는 자신도 모르게 온몸에 전율이 이는 것을 느끼며 몸을 떨었다.

 

  “그 신을 직접 본 적은 없는 건가.”

  “본 적…… 은, 아, 그래, 없어. 없다고. 하지만 매우 아름다운 신인 건 맞아. 그렇게 잔혹한 신들은 대부분 매우 아름답거든.”

  “그런가.”

  “응.”

 

  감옥에 갇히고 며칠 동안 유죠는 옆방의 남자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들으며 시간을 보냈다. 식사 때마다 죄수 둘이 상을 들고 와 옆에 무릎을 꿇고 앉아 유죠가 식사를 다 마칠 때까지 시중을 들어주는 것을 제외하고는 누구도 유죠를 찾아오지 않았다. 문득, 유죠는 스승의 안부가 궁금해졌다. 누나가 자신을 반역자로 지명한 이상 자신의 스승 또한 자신의 죄에 연루되는 것은 피할 수 없을 것이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항상 몸에 금붙이를 지니고 있을 걸.’

 

  금붙이라도 있다면 간수들에게 뇌물을 건네고 스승의 안부를 확인할 수 있을 텐데. 자신이 이시다가의 후계자라는 것만 믿고 방심하고 있는 사이에 누나가 이런 일을 꾸미고 있었을 줄이야. 유죠는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하려 옆방의 남자를 불렀다.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하기에는 아무래도 옆방 남자가 들려주는 잔혹한 신 이야기를 듣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그 신 이야기 다시 해봐. 정말 그렇게 잔혹해?”

  “무척 잔혹하지. 오직 전장의 피냄새와 비명소리만 찾아다니는 존재니까. 애초에 신사에 좌정한 것도 인간들의 전장을 찾아다니며 피와 죽음을 살라먹기 위해서라고.”

  “언제는 본 적도 없다며.”

  “하지만 나는 신관이라 느낄 수 있어. 그 신이 얼마나 잔혹한지, 얼마나 무서운지, 얼마나 두려운지, 얼마나 소름끼치는지.”

 

  유죠는 신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동안 다다미가 깔린 바닥에 누워 천장을 멍하니 올려다보았다. 천장을 바라보면 보이는 새까만 서까래의 숫자를 세다 말고 유죠는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누나가 자신에 대해 어떤 처분을 내리든 그것이 죽음만은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부질없는 생각을 하는 유죠의 눈 위로 완연한 어둠이 내려앉았고 유죠는 곧 새근거리는 숨소리를 고르게 내며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작가의 말
 

 스토리야 연재는 처음이네요. 아직 2번 밖에 수정하지 않은 글이니 며칠 내로 수정할 것이 있으면 수정하겠습니다. 저는 적어도 완벽한 글이 쓰고 싶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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