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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뱀파이어 로망스
작가 : 꽃님발
작품등록일 : 2019.9.3

내가 왔어. 너 찾으러 내가 여기까지 왔다고. 네가 발이 묶여 나한테 못 온다고 해도 어쩔 수 없어. 그 발목을 잘라내서라도 널 다시 내 옆에 둘 거야.

자신의 가장 친한 친구에게 사랑하는 사람을 빼앗겨 버린 뱀파이어 희선. 마지막 순간 돌아온다는 말을 남기고 홀연히 사라진 그를 찾으러 다시 한국을 찾아온다. 뱀파이어계 모든 사건 사고에 관여하는 그가 제발로 찾아오기를 바라며 인간 흡혈을 저지르는데….

영원을 살아가는 저주받은 존재, 뱀파이어와 인간 그리고 뱀파이어 헌터들 간의 엉켜버린 운명과 사랑이야기 옴니버스 형식으로 펼쳐집니다.

 
16화. 좀 쉬고 있어, 시체는 내가 볼테니까
작성일 : 19-09-19 08:49     조회 : 231     추천 : 0     분량 : 4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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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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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어나자 마자 정수의 침대를 확인하는 것은 이제 예지의 버릇이 되어버렸다. 헤집어진 이불과 식어버린 온기는 그녀가 오래 전에 나갔음을 알려주었고 그녀가 일찍 나갔다는 것은 무슨 사건이 터졌음을 알려주는 것이었다.

 

 째깍째깍 대는 시계를 보고 자신이 늦었음을 깨달은 예지가 느릿느릿 머리를 빗는다. 주섬주섬 널어놓은 교복을 입고서 현관문을 나선다. 둘이 살지만 일상처럼 되어버린 혼자만의 아침이 오늘따라 외로움을 인식시켜준다. 문을 열자마자 조금 더워진 듯한 바람이 그녀를 감싼다. 학교에는 늦었지만 남들에겐 아직 이른 아침인 시간에 맑은 공기가 숨을 트이게 해준다.

 

 지금 빨리 달려가나, 느릿느릿 기어가나. 어차피 늦었다는 것은 벗어 날 수 없는 현실이기에 서두를 필요는 없었다. 늘 항상 지나가던 대로변가로 걸음을 옮기던 예지가 잠시 멈칫한다. 그러더니 곧 뒤를 돌아 외진 길 쪽으로 다시 걸어가기 시작한다.

 

 예지의 집으로 부터 학교로 가는 길은 두 가지가 있었다. 시내를 따라가는 곳과 뒷산을 넘어 힘들게 가는 곳. 후자는 시간도 많이 걸리고 길이 외져 사서 고생할 필요가 없는 이상 항상 시내를 따라 갔다. 하지만 오늘은 왠지- 란 기분과 함께 새로운 길을 향해 걷는다. 시간이 있었기에 여기저기 둘러보고 싶었 달까,

 

 외진 길이라 그런지 뒷산은 조용하다 못해 고요하다. 숲이 우거진 언덕을 바라보다가 이내 한걸음을 내딛는다.

 

 그때,

 

 " 잠시. "

 

 휙 하니 누군가가 보이지 않는 스피드로 예지가 휘청거릴 만큼 빠르게 스치고 갔다. 말소리로 들어서는 분명 사람인 것 같았는데 그 사람이 지나간 후 어리둥절한 채 뒤를 돌아보니 아무도 없었다. 그렇다고 앞을 봐도 그 사람은 보이지 않는 거다. 마치 바람처럼 자신을 스치고 그대로 사라져 버렸다.

 

 예지의 뒤로는 늘어진 주택가의 길이 있었다. 차 한대가 일방통행으로 지나다닐 수 있을 만한 넓이의 콘크리트 길. 하지만 그 짧은 시간 내에 그 사람이 오직 뛰어서 지나갔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말이 안되는 게 확실했다.

 

 귀신한테 홀린 건가? 잠시 갸웃 한 예지가 왠지 몸이 허전해 진 것 같음을 느낀다. 뭔가 빠졌을까 싶어 몸을 아무리 내려다 보고 쓸어 봐도 교복도 제대로, 가방도 제대로 변한 건 없었다. 자신의 목에 걸려있던 목걸이가 사라졌다는 것을 그 땐 꿈에도 몰랐지만 말이다.

 

 그 때 목걸이가 사라졌더라는 것을 알았더라면 상황이 조금 더 나아졌을까?

 

 

 " 나이스. "

 

 방금 그녀를 스쳐지나간건 다름 아닌 기환이였다. 그녀의 집 지붕에서 그녀가 나오기 만을 기다렸다가 그대로 급습한 것이다. 급습이라기에는 그저 목걸이만 빼앗았을 뿐이지만 그것이 가지고 올 파장은 실로 대단할 터. 햇빛에 반짝이는 목걸이를 발견하자마자 하은이 말한 '무언가'로 정하기 참 좋다는 생각을 했다.

 

 일이 술술 잘 풀리는 느낌이 들었다. 언제 나오나, 학교라도 찾아가야하나 하는 번거로움 없이 이렇게 쉽게도 일이 해결되니. 이대로 사건 현장이나 가서 아직 있을 시체에게 이걸 선물해 주기만 하면 되는 거였다.

 

 

 

 

 

 

 

 * * *

 

 

 

 

 

 

 

 든든한 지원군 뱀파이어 헌터와 손도 잡았겠다, 뭐 하나가 풀리는 느낌이 들었지만 그들은 현장출동 중이던 참이였다. 이제 공조 수사를 시작한 김에 같이 조사를 하러 갔으면 더 좋겠지만 이들은 그의 공조를 비밀리에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그의 신분 노출이 신상에 치명적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선 그를 꼭대기 층에 숨겨놓기로 했다. 빠르게 현장만 갔다 와서 자세한 이야기를 듣기로 협의한 상태인 것이다. 그에게서 들을 이야기가 얼마나 대단하고 쇼킹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지만 지금 가는 사건 현장 또한 마찬가지일 터였다.

 

 저번 사건이 일어났던 그 현장이 다시 한 번 망막에 들어온다. 지난 추억을 재생시키는 것처럼 다를 게 하나 없어 보이는 곳이다. 아무렇게나 차를 대고서는 빠르게 내린 종인이 시체의 상태를 보곤 미간을 찌푸린다. 저번과 같은 시체 다섯구이다. 바쁘게 돌아다니던 경찰들이 종인을 발견하곤 경례를 해보인다.

 

 " 형, 왔어? "

 

 한 시체에게 다가가 그 옆에 한쪽 무릎을 꿇으며 몸을 낮추는데 익숙한 목소리가 들린다. 뒤를 돌아보니 기환이 한손에 파일을 쥔 채 다가오고 있었다. 저건 또 언제 기어나온거야? 분명 출발대에 자신과 정수만 넣어놓은 걸 기억한 종인이 고개를 갸웃한다.

 

 " 뭐야, 내가 여기 있어서 이상하단 그 표정은? "

 " 왜 왔냐? "

 " 와아- 나도 첫발 형사야. "

 

 방금 전 무사히 목걸이를 낚아채 현장에 도착한 기환은 자신이 도착하기 무섭게 종인의 차가 진입하는 것을 깨닫고는 여태 있었던 척을 한다. 당연히 그 사실을 알리 없는 종인이 기환의 손에 들린 파일을 뺏어간다.

 

 

 검시조서는 현장에 나간 형사들이 가장 처음 시체와 사건현장을 보며 바로 기록하는 것이었다. 원인 규명과 살해방법, 온도추정시간과 경직 후 경과 시간 등을 처음 기록하는 조서. 사건이 진행되며 수정되는 것이였지만 처음 큰 줄기를 잡는데 많은 도움을 준다.

 

 기환은 시체머리 맡에 고개를 숙인다. 두 번째 사건의 시체를 보자 더 확실하고 정확하게 로메니족 뱀파이어의 짓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얼굴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뭉게 버리고 목에 스템플러로 찍은 듯 한 두개의 자국하나. 거기다가 다섯구의 시체 중 한 사람에 왼쪽 팔은 떨어져 나가 있는 상태. 이는 로메니족의 전통적인 살해 방법이었다.

 

 로메니족은 인간을 오직'먹이'의 개념으로 밖에 보지 않기 때문에 그들이 퍼덕이는 것을 싫어한다. 그래서 잡아먹는 인간 중 가장 방해를 준다거나 제일 반항한 인간은 이렇게 왼쪽 팔을 잘라놓는 습관이 있었다. 그렇게 왼쪽 팔이 잘려있다거나 얼굴이 무참히 짓밟아져있는 시체는 로메니족의 작품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것이다. 얼굴을 뭉개져 놓는 이유는 단 하나. 우연히 아름다운 먹이를 먹다가 반하는 불상사를 막기 위해 얼굴 먼저 짓뭉개 놓는 것이다.

 

 " 정수 누나는? "

 " 글쎄? 어 저기있네. 먹은 것도 없으면서 왜 저런다냐. "

 

 정수는 가로등 하나를 붙잡고 속을 게워내고 있었다. 저번보다 시체의 훼손정도나 손상이 심하지 않았지만 오늘 따라 속이 좋지 않은 모양이었다. 종인은 말은 틱틱 뱉었지만 안쓰럽게 바라본다. 그들이 서로를 가장 친하고, 아끼는 친구임은 확실했다.

 

 몸을 가누기도 힘는지 휘청하는 정수에게 다가간 기환이 그녀를 부축해 든다. 입가에 묻은 토사물을 보고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하나하나 닦아준다. 슥, 손수건으로 입을 닦아주는 사람이 기환임을 알아본 정수가 활짝 웃는다.

 

 " 언제 왔어? "

 " 아까. "

 " 그래? 우욱. 아우, 왜 자꾸 구역질이 다 나냐. "

 " 좀 쉬고 있어. 시체는 내가 볼테니까. "

 

 첫 발 형사들이 현장 상태를 보았으니 이제 시체는 치워져야했다. 커다락 은색 트럭이 다섯 구의 시체를 기다리고 있었다. 종인은 현장 경찰들에게 무언가를 묻고 있었고 제복을 입은 순경들은 사람들을 통솔하기에 바쁘다. 주변의 눈치를 보며 가장 마지막에 싣릴 시체에 다가간다.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 중에서 아무도 자신에게 신경을 쓰지 않는 상태였다. 그야 말로 무슨 일을 꾸미기에 더 없이 좋은 나이스 찬스.

 

 " 바로 부검실로 가는 거죠? "

  " 네! "

 

 실험실에서 입을 법한 하얀 점프수트를 입은 사람들이 한 구, 한 구 하얀 천으로 뒤덮어 끈으로 묶는다. 그 주변을 서성이며 자연스레 말을 시키는 기환은 팔 한쪽이 없던 시체를 타깃으로 삼았다.

 

 " 국과수로는 언제 보낸대요? "

 " 우선 1차 부검을 끝내고 내일 새벽에 보낸다고 했습니다. "

 

 고맙기도 해라. 궁금했던 한 점을 잘도 대답해주는 그 사람을 뒤로한 기범은 마지막으로 정수를 쳐다보았다. 아직도 속이 진정되지 않았는지 그녀는 눈을 감고 고개를 든 채 하늘을 보고 있었다.

 

 그녀의 동태까지 확인을 하자 다시 시체로 고개를 돌린 기환이 자켓 안주머니에서 빛나는 무언가를 꺼내든다. 은빛 십자가 목걸이였다. 기환이 재빠른 행동으로 한 구의 시체에 잘린 팔, 교접부분에 목걸이를 쏙 집어넣는다. 느껴지는 감촉이 그닥 좋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였다.

 

 정신없이 포장하는 사이 워낙 눈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일이라 아무도 눈치 채지 못했다. 그리고 기환의 행동이 끝나자마자 마지막 시체가 흰천에 쌓여 트럭에 싣어진다.

 

 " 수고하셨습니다. "

 

 기환은 마치 아무 일 없다는 듯 정수에게 다가간다.

 

 " 시체 내일 아침에 국과수로 간다니까 이따 부검실에 가서 좀 봐. "

 " 응...으응. "

 " 이번에는 저번과 좀 다르니까. 알았지? "

 

 자신이 할일은 다 끝냈기에 이제부터는 생각한 대로 흐르게 놔두면 되었지만 좀 더 흥미진진해 지려면 정수가 그 목걸이를 직접 발견해야했다. 그 목걸이만 봐도 한번에 이 상황을 알 수 있는 그녀에게 그게 발견되었을 때, 가장 재밌는 상황이 펼쳐질 터. 그러면서 후훗하고 웃는 기환은 하은과 같으면 같았지 다르진 않았다.

 

 정수도 참 안됐다. 하필 하은의 눈에 띄여서 비극의 주인공이 되게 생겼잖아. 그는 그녀가 들리지 않게 혀를 쯧쯧찬다. 그 은빛 십자가 목걸이로 인해서 빚어질 갈등을 상상조차 하지 못할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한 번 속을 게워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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