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어도 참가자로 온 것은 아니리라.
시실레아는 그렇게 생각했다.
왜냐하면 아주 잠시나마, 이런 사내가 볼카스에게 비켜달란 말을 꺼냈다는 것이 믿겨지지 않을 정도였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이내 이어진 사내의 말에 그녀는 진심으로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참가자로 왔습니다.”
‘왜?’
그녀는 의문이 들었다.
그녀의 무수한 이성들이 말해주고 있었다.
이 사내가 콜로세움에 도전하면, 하루 채 못 버티고 주검이 되어 돌아올 것이란 걸 말이다.
이대로 사내를 검투사로 받아버리면, 이 사내는 기필코 죽을 것이란 걸 말이다.
그렇기에 시실레아는 잠시 멍한 채로 사내의 얼굴을 응시했다.
초보 접수원이나 할 법한 실수를 깨닫고, 곧장 멘트를 꺼냈지만 여전히 의문이 사라지지 않았다.
‘왜 이 사내는 목숨을 버리지? 돈 때문인가?“
거지라기에는 꽤나 깊은 눈을 지녔다는 것은 알 수 있었지만 그 뿐이었다.
시실레아는 계속해서 사내와 대화하면서 사내의 이름이 ‘유정혁’이란 것을 알았지만, 그리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다.
그녀의 머릿속에는 ‘어떻게 이 사내를 말리지?’란 생각으로 가득 했으니까 말이다.
차라리, 검투사의 지위를 얻고 싶은 거지라고 한다면 다행일 정도로 그녀의 머릿속은 어지럽혀져 있었다.
“감사합니다.”
결국, 끝까지 유정혁이라는 사내에게 시실레아는 경고나 충고 같은 것을 주지 못했다.
평소처럼 검투사증을 넘겨주며, 사내가 최대한 도전하지 않고 도망가주기를 바랬다.
허나, 유정혁에게 그녀의 희망사항은 닿지 않는 모양이었다.
“바로 치겠습니다.”
그의 자신 있는 태도를 시실레아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그렇기 때문일까, 그녀는 다시금 초보 접수원 같은 실수를 반복했다.
탈의실과 대기실에 대해서 유정혁에게 말해주지 못했다는 생각에, 시실레아는 황급히 그에게 말을 꺼내려고 하지만 이미 그는 멀찍이 가버린 이후였다.
‘어……?’
굳이, 자신이 말해주지 않아도 알아서 잘 찾아가는 유정혁의 뒷모습을 보면서 그녀는 의아함을 느꼈다.
뭐랄까, 계속해서 경고를 해왔던 이성이 처음으로 본능에게 밀렸다.
시실레아의 본능은 이상하게도 그의 죽음보다는, 그가 무언가를 일으킬 것이라고 말해주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바로 대기실로 가면 되겠습니까?”
그리고 잠시 후, 유정혁은 다시금 그녀의 앞에 왔다.
어지러운 정신을 다잡으면서 서류작업을 하던 시실레아는 고개를 들어, 유정혁의 모습을 보았고 이내 조금이지만, 그의 모습이 처음과는 달라 보인다는 것을 깨달았다.
너덜너덜한 천 옷을 벗고, 검투사용으로 양산된 가죽셔츠와 바지를 갖춰 입은 그의 모습은 방금까지 봤던 거지의 모습과는 상당히 괴리감이 있었다.
허나, 여전히 갑옷을 챙겨 입지 않았다는 점에 대해서,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처음으로 인상을 찌푸렸다.
“갑옷은 입지 않으십니까?”
날카로워진 말투.
시실레아는 그녀 자신도 모르게 접수원답지 않은 말을 했다는 것을 깨닫고 자신의 실수를 탓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그녀에 대한 불평이 아닌 미소였다.
“무거운 건 싫어서…….”
머쓱한 미소를 지으면서 창을 든 오른손으로 머리를 긁적이는 유정혁.
얼마나 나태한 것일까, 그녀는 뭐라고 한 마디라도 해주고 싶었지만, 더 이상 실수를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애초에 사내가 고른 무기는 장창 한 자루와, 장검.
전투를 제대로 해본 것이 맞나 싶을 정도로, 그의 무기선택부터 그녀는 글러먹었다는 것을 알았기에 이내, 그에게 잔소리를 하는 것을 포기한 것이다.
콜로세움에서 전투를 해본 적은 없는 그녀였지만 들은 것은 많았다.
적어도 장창을 고르는 사람들 중에, 비상용으로 단검을 드는 이는 있어도, 저렇게 에매하게 긴 검을 쓰는 이는 본적이 없었다.
겉멋만 든 사내라고 생각하면서, 그녀는 지금까지 했던 걱정마저 싸그리 날아가는 기분을 느꼈다.
저 정도로 기본기도 안 되어 있는 남성이라면, 등급심사에서 떨어질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시간이 되었으니, 곧장 심사장으로 가시면 됩니다. 심사장은 대기실 기준으로 왼쪽에 문이 위치해있습니다.”
더 이상 유정혁이라는 사내에게 그녀의 관심은 존재하지 않았다.
애초에 등급 심사에서 떨어질 사내라면, 적어도 목숨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리라.
시실레아는 사내가 최하급 검투사의 기준조차 만족하지 못하고 떨어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멀어지는 유정혁의 뒷모습에 조금의 시선도 주지 않았다.
그렇게 20분 남짓이 흘렀다.
그녀는 여전히 서류작업을 하고 있었고, 5분 정도만 더 투자하면 오늘자 서류에 대해서도 전부 끝날 정도까지 완료했다.
“…….”
계속해서 서류작업을 하고 있던 중, 그녀의 손이 멈췄다.
마지막 서류에 신입 검투사에 대한 보고서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신입 검투사가 어디 등급으로 배정받고, 주로 쓰는 무술이 무엇인지 적는 보고서였다.
시실레아는 잠시 멈칫하고는 이내, 보고서에 내용을 적기 시작했다.
[신입 검투사, 유정혁은 등급심사에서…….]
등급심사에서 떨어져서 보고할 내용이 없다.
이렇게 적으려고 그녀가 열심히 펜을 놀리고 있을 때였다.
쾅, 하는 소리와 함께 접수처의 앞에 커다란 무언가가 날아왔다.
“쿨럭, 쿨럭!”
연신 신음을 토해내는 무언가가 등급심사의 심사원, 헥터라는 것을 그녀가 깨닫기 까지는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다.
왜냐하면 갑작스레 벌어진 상황에 그녀의 뇌가 잠시나마 정지했기 때문이다.
이윽고, 그녀가 겨우 정신을 바로 잡고 헥터에게 시선을 옮겼다.
심사원이자 중급 검투사, 헥터.
적어도 콜로세움에서 그를 거치지 않은 검투사가 없다고 할 정도로 유명한 사내였다.
흑색의 피부와, 하얀 문신을 지닌 그는 콜로세움에서 ‘흑곰’이라고 불렸고, 심사원이라는 지위 때문에 중급에 머무는 것이었지, 실상 상급 검투사에 다다랐다고 봐도 무방한 이였다.
헌데, 그런 이가 지금 그녀의 앞에서 만신창이가 된 채로 숨을 거칠게 토해내고 있었다.
“더는 양보 못한다고 했잖나! 콜록, 콜록!!”
헥터는 불만이 넘치는 듯이, 만신창이가 되어 쓰러진 몸을 겨우 일으켰다.
그러면서 입가에 묻은 피를 닦고, 떨리는 동공으로 누군가를 응시했다.
마치 두려움에 떠는 초식동물처럼 말이다.
그런 헥터의 모습은 시실레아가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상급 검투사가 두려움을 떤다니, 들어본 적도 없었다.
‘도대체 누가…….’
“규정 상 되지 않습니까. 등급심사에서 상급 검투사가 되는 거.”
낯익은 목소리.
그 목소리를 향해 시선을 돌린 시실레아는 이내, 놀란 나머지 눈을 크게 떴다.
“애초에 헥터 씨, 며칠 후면 상급 검투사가 되는 걸 알고 있는데, 이거 하나 양보 못해줍니까?”
그녀의 시선 끝에 서있는 것은 방금까지 보고서에 언급된 사내였다.
보고서에 쓰일 내용으로 말하자면, 등급심사에서 최하급 검투사조차 되지 못할 사내.
헌데, 그런 사내가 멀쩡한 모습으로 창을 어깨에 메고 서있었다.
“나는 심사원이기 전에, 중급 검투사라서 주고 싶어도 못 준다고 몇 번을 말하나!”
헥터는 자신도 답답하다는 듯이 큰소리로 소리쳤다.
“애초에 등급심사부터 최상급 검투사를 노리는 놈이 어디 있겠나!!”
“뭐라고?”
“최상급 검투사?”
주변에서 이 상황을 동그래진 눈으로 바라보던 검투사들의 입에서 놀란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물론, 그건 시실레아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당황한 나머지, 손에 든 보고서를 땅에 흘려버렸다.
차라리 이 상황이 모두 거짓말이라고 하는 편이 그녀가 이해하기 편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건 무리한 요구인 모양이었다.
“그러니, 이제 그만 좀 때리게!! 그러다 진짜 죽겠네!!”
헥터의 우는 소리가 들렸고, 그제야 그녀는 이 모든 상황이 사실임을 깨달았다.
그러자, 그녀는 자신이 해야 할 행동을 신속하게 깨달았다.
[신입 검투사, 유정혁은 등급심사에서 헥터를 압도적으로 이긴 신예로 기대치가 매우 높음.]
보고서의 마지막 내용을 기입한 시실레아의 입가에 떨림이 가시지를 않았다.
자신의 예상을 완전히 빗나갔다는 사실이, 아직까지도 그녀에게는 닿지 않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