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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연재 > 로맨스판타지
조잡한 신과 시간의 파수꾼
작가 : 소테
작품등록일 : 2019.9.10

이육사 시인을 좋아하는 조잡한 신 김말순,
복수에 눈이 먼 조잡한 신의 창조물 엠마,
조선 연산조부터 살아온 시간의 파수꾼 도시직,
파수꾼의 기억을 가진 위탁가정 출신의 비서 차원,
네 사람의 얽히고설킨 인연

 
5. 신의 체념
작성일 : 19-09-17 17:59     조회 : 328     추천 : 0     분량 : 3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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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신의 체념

 

 

  시간이 다시 움직였다. 와인잔에 와인이 흘러 담겼다.

  "Here."

  "Thank you."

  바에 주문해둔 맥주를 받아들고 자리에 기댔다. 한 모금이 아니라 한 병을 마셨다. 나는 바텐더에게 one more please, 한 병을 더 요청했다. 차가운 맥주를 들고 제자리에 다시 앉았다.

  "술주정이라도 부리고 싶은 거니?"

  "맥주 몇 병 마신다고 안 취해요. 답답해서 마시는 거지."

  나는 꽤 술을 잘 마시는 편이었다. 예전에 미국에 작은 바에서 바텐더를 하기도 했다. 바텐더란 그냥 단어였지, 술 몇 잔 따라주고 맥주 건네는 게 전부였던 직업이었다. 두 번째 병도 거의 비웠다.

  "다 잘됐는데 뭐가 문제야?"

  시선은 머리 아픈 경제 성장 그래프에 둔 채 물었다. 뾰로통한 나를 전혀 신경쓰지 않는 척 굴었지만 목소리에는 성가심이 돋아 있었다. 나는 건방지게 잡지를 그녀의 손에서 치우고 싶었지만 참았다. 참을 인 세 번면 살인도 면한다고 하니까. 그보다 우리는 죽을 수 없는 존재들이었다. 또 내가 그녀한테 개긴다고 해봐야 내 손해였다. 내 회복속도보다 나를 만든 신의 회복력이 훨씬 뛰어났다. 나는 게임이 안됐다.

  "문제 없어요. 너무 싱겁네."

  나는 까칠하게 병을 내려놓았다. 맥주 얘기가 아니라 싱겁게 끝난 말순의 소원이 마음에 안들었다. 영화관에서 영화 한 편 보겠다고, 내가 능력을 얼마나 쓴 건지. 이럴 줄 알았으면 혼자 복수를 하는 건데.

  "내가 시간의 파수꾼을 어떻게든 설득시켜 시간의 법칙을 깨부수길 원한 것 같구나."

  뜨끔했다. 기어 들어가는 소리로 아니라고 거짓말을 했다. 이상하게 배에 힘이 들어가질 않았다. 내가 그녀의 눈치를 살피고 있다는 걸 아는 눈치였다. 부드러운 음성이 이어졌다.

  "그럴 수 있었다면 그랬겠지. 그런데 이미 일어난 일을 조잡한 신이라도 바꿀 수가 없더라고."

  "그래요?"

  "너를 만나기 전에 그 사람을 살리려고 별짓 다했어. 나도 너만큼 생각해보고 해볼 거 다해봤어. 결국 소용없다는 걸 증명만 하는 꼴이 됐지만."

  먹먹한 체념이었다. 이렇게 일찍 말순을 이해하게 될 줄이야. 세대 차이가 아니라 이해의 차이였다. 그런데 한 가지 이상한 점이 있었다. 신은 나를 죽음에서 구해냈다. 그런데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을 왜 살리지 못한 걸까?

  "저는 살리셨잖아요. 왜 살리지 못하신 거예요?"

  말순은 아무 양주 한 잔을 주문해 잔을 두 모금 비웠다. 힘든 얘기라 별로 입 밖에 내고 싶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래도 이유는 들려줬다. 벽 뒤에 숨겨둔 소리를 들었다.

  '네 말대로 조잡한 신이었던 게지. 그 순간 내 피 안에 누군가를 살려낼 힘을 다 써버린 거야.'

  말그대로 말순이 조잡한 신이었다는 걸 시인했다. 나는 그녀를 나름 완벽에 가까운 신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렇다고 그녀의 능력에 실망한 건 아니었다. 그저 안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 할머니가 얼마나 오래 옛사랑을 간직하고 있는 건지 문득 궁금해졌다.

  "그럼, 사별한 지 꽤 됐겠네요?"

  신은 남아 있는 잔을 더는 비우지 않았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자기 얘기를 들려줄 모양이었다. 몇 분 뒤면 그리운 고국을 밟는구나. 이게 몇 년 만이야. 횟수로 3년 만인가?

  우리는 양손에 짐이 없었다. 그 흔한 캐리어도 없이 배낭만 메고 왔다. 필요한 물건들은 여기서 사면 된다는 말순의 철학에 따라 움직였다. 어차피 금전적인 서포트는 그녀 담당이었다. 그녀와 함께 산 지가 1년이 넘어가는데 개인사는 그렇다 치고, 기호식품, 가족관계, 자산 등은 디테일하게 파악도 안 됐다. 이름도 이제야 알게 된 사이니까. 해킹으로도 알아낼 수 있는 건 이미 몇 번 작업해둔 가짜 신분이었다. 80 먹은 할매가 20대 초반의 얼굴로 사는데 오죽 철저히 신분세탁을 했을지 안봐도 비디오였다. 그녀는 자기관리가 철저한 사람이었다. 다이어트를 비롯해 신분이 노출될 일은 아예 나서지 않았다. 대신 대타가 필요했다. 바로 그 대타가 나였다. 탐정 스미스의 얼굴. 엠마 스미스.

  "J그룹 총수 죽었다네."

  택시를 타기 전에 말순은 휴대폰으로 기사를 확인하고는 내게 건네줬다. 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주가가 요동치고, 본격적인 차기 후계 싸움이 벌어질 조짐이 보였다.

  "그 사람 죽은 지 오래되지 않았어. 그 때문에 희망을 품었지. 어리석게도. 그 사람을 살릴 수 없다는 걸 알았을 때 수백 번 내 자신을 포기했어. 죽지 못해 살고, 또 살더라."

  생뚱맞게 또 지나간 답변이었다. 오늘 날씨가 영 별로네. 하늘에 먹구름도 좀 있고, 금방이라도 소나기가 내려도 이상할 것 같지 않았다. 내가 좌석 문을 열자 말순은 땡큐, 그러면서 택시를 탔다. 나는 그녀 옆에 좀 거리를 두고 앉았다. 택시기사님은 짐이 적다면서 편해했다. 서울날씨가 이 지경이 된 거는 중국에서 날아오는 미세먼지 때문이라 중국 욕을 몇 마디했다. 2, 3년 사이에 날씨까지 변할 정도면 참 많이 변했네. 대한민국.

  "마스크 꼭 착용하세요. 어디 멀리서 오시나 봐요?"

  기사님이 우리에게 말을 걸었다. 말순은 상대하고 싶지 않은 모양인지 무선이어폰을 끼고 눈을 감았다. 그가 난감하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 미국에서 비즈니스로 잠시 들른 거라고 대답했다. 손님들 중에 예전에는 미국인 비중이 많았는데 요즘은 중국인이 너무 많다며 불만조로 말했다. 나는 그러냐며 택시기사님과 거의 4, 50분을 떠들고 목적지에 도착했다. 그는 좋은집에 사시네요, 너스레를 떨었다. 그가 트렁크에서 꺼내 주는 짐을 받아들고 오만 원짜리 몇 장을 말순이 건넸다. 그가 거스름돈을 꺼내려자 그녀가 말렸다. 짧게 안녕히 가시라는 말이 전부였지만 그는 두둑한 팁을 받아 표정이 무척 밝아졌다. 역시 몇 마디 말보다 돈이 우위에 있는 자본주의 세상이었다.

  "들어가지."

  나는 말순의 손에서 내 배낭을 받아들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단독주택이었다. 저택까지는 아니고, 앞마당이 있는 3층짜리 집이었다. 서울 교외에 이런 집이 있는지 처음 알았다.

  "컴퓨터 및 다른 전자기기들은 네 방에 설치해뒀어. 아, 네 뜻대로 이제 이 아이도 여기 살겠구나. 복수는 네 몫이야. 괜한 아이는 더 이상 끌어들이지 말고."

  그녀는 웃옷에서 사진-시파의 과거 속 마마-을 건넸다. 사진을 받아든 채 우두커니 별채를 응시했다. 아직 퇴근시간은 아닐 테지. 서둘러 내 방으로 올라가 노트북을 켰다. 미국에서 셋팅을 해놔서 따로 작업할 게 없었다. 엔터를 몇 번 치고, JJ 푸드(정식명칭 JJ 푸드&유통) 부사장실을 클릭했다. 마침 부사장과 나란히 제이미-사진 속 여자의 이름-가 앉아 있었다. 그녀는 술잔을 부드럽게 시계방향으로 돌리던 손목을 멈추고, 차원의 손목을 쥐었다.

  "처음 보는데."

  "신입입니다. 비서 차원입니다. 부사장님."

  부사장은 차원-제이미의 한국 이름-의 손목을 잡아 당겼다. 무심코 내린 시선에 눈살을 찌푸렸다. 눈빛에 문신이 비쳤다. 그녀는 손목을 놓고 제 손목을 감쌌다.

  "...J."

  알파벳 문신이었다.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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