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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나의 자카르타
작가 : 히타히타
작품등록일 : 2019.9.2

도망치듯 떠나온 그곳에서 마법이 시작된다.

 
도망치지 마
작성일 : 19-09-17 11:59     조회 : 300     추천 : 0     분량 : 4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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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법 같은 순간은 짧게 지나갔다.

 첫 손님이 나간 뒤의 상황은 지금도 꿈에 자주 나온다.

 그럴 때마다 나는 식은땀에 젖어 잠에서 깬다.

 

 몇 분 뒤 네 명의 회사원이 들어왔다.

 디디가 그들을 테이블로 안내했다.

 그들 뒤로 손님들이 폭풍처럼 밀어닥쳤다.

 순식간에 20석의 테이블이 모두 차고, 식당문 밖에 긴 줄이 늘어섰다.

 

 줄리, 리리, 디디가 주문을 받으려고 테이블을 뛰어다녔다.

 나는 말 그대로 다리가 후들거렸다.

 다리 힘이 풀려 포스기 모서리를 잡고 간신히 서 있을 정도였다.

 

 우리에게는 휴대용 가스버너 두 개밖에 없었다.

 그 두 개로 갈비를 굽고, 비빔밥용 고기를 볶고, 채소를 볶고, 돌솥을 데우고, 달걀 프라이까지 해야 했다.

 게다가 그 많은 손님을 받기엔 홀 직원도, 주방 직원도 부족했다.

 

 손님들이 주문을 받으라고 소리쳤다.

 문밖에 줄지은 사람들은 언제 들어갈 수 있느냐고 소리쳤다.

 돌담은 사람들의 외침으로 귀가 먹먹할 만큼 시끄러워졌다.

 

 나는 홀 직원들을 도와 보리차를 따랐다.

 차를 따르다 흘려서 팔뚝과 허벅지가 축축해졌지만 그런 것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리리가 소리쳤다.

 

 “미스뜨르! 도와줘요!”

 

 나는 리리를 도와 유자차를 만들었다.

 위자야에 있는 케이마트에서 사온 유자청을 컵에 넣고 미지근한 물을 넣어 살살 저은 다음 얼음을 넣었다.

 손가락 사이사이마다 유자청이 묻어 끈적거렸지만 그런 것에도 신경 쓸 틈이 없었다.

 

 줄리와 디디는 주문을 받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디디의 안경에 김이 서려 있었는데, 눈에 습기가 차 있는 것인지도 몰랐다.

 갑자기 배식구에서 마흐무드의 얼굴이 불쑥 튀어나왔다.

 

 “미스뜨르! 미스뜨르!”

 

 나는 주방 안으로 들어갔다.

 배식구 위에 손님들의 주문지가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마흐무드의 아내가 뜻을 알 수 없는 욕설을 내뱉으며 채소를 썰었다.

 

 마흐무드는 석쇠 위에 고기를 산더미처럼 올려놓았다.

 주문이 몰려드는데 화력은 부족하니 한꺼번에 많이 구워보려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사태를 더 악화시켰다.

 마흐무드는 익을 생각조차 하지 않는 고기를 뒤집지도 못하고 쩔쩔맸다.

 

 나는 마흐무드의 목덜미에 줄줄 흘러내리는 땀을 보았다.

 답답한 모자는 한참 전에 벗어버렸다.

 마흐무드는 배식구를 통해 몰려드는 손님들을 노려보며 미친 듯이 집게를 놀렸다.

 

 “미스뜨르! 손님들 다 내보내요. 우린 못해요!”

 “주문한 것만 만들자.”

 “못해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고요!”

 “오래 걸려도 좋으니까 해 봐.”

 

 마흐무드가 말 없이 등을 돌렸다.

 나는 다시 홀로 나왔다.

 홀에 펼쳐진 광경은 어느 절간에서 본 지옥도 같았다.

 

 홀 직원들이 어쩔 줄 모르고 뛰어다녔다.

 경험 있는 직원이 있었다면 좀 더 침착하게 대응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들은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초짜들이었고, 사장인 나도 초짜였다.

 게다가 캐서린은 직장에 출근해야 했다.

 

 싱글벙글이던 리리마저 웃음기가 사라졌다.

 웃고 있는 사람은 오직 포스기 앞에 붙어 있는 이민호뿐이었다.

 직원들은 냅킨을 나르다 젓가락과 포크를 날랐고, 보리차를 두 손 가득 든 채 주문을 받았고, 그러다가 보리차 갖다 줄 테이블을 잊은 채 카운터로 돌아왔다.

 

 주문이 헷갈리기 시작했다.

 돌솥비빔밥이 엉뚱한 테이블에 배달됐다가 카운터로 돌아오고, 다 식을 무렵에야 주문한 손님의 테이블에 놓였다.

 늦게 주문한 손님에게 먼저 음식을 갖다 줬다가 뺏어오기도 했다.

 이제는 각 테이블에 어떤 음식이 나갔고 안 나갔는지 파악하기도 힘들어졌다.

 

 홀 직원들은 테이블 사이에서 길을 잃었다.

 주방에서 가까스로 만든 음식을 들고 홀 저쪽 끝으로 갔다가, 한참을 헤맨 뒤 이쪽 끝으로 돌아왔다.

 나는 그제야 나온 음식을 체크하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게 내가 했어야 할 일이었다.

 

 나는 도망가고 싶었다.

 자주 가는 쇼핑몰 근처 맥주집에 앉아서 빈땅을 열다섯 병쯤 들이키고 비틑비틀 돌아오면 폐허가 된 식당이 날 맞아줄 것 같았다.

 그게 안 된다면 포스기 밑에 있는 선반에라도 숨고 싶었다.

 

 “미스뜨르, 고기가 안 익어요.”

 “조금씩 해.”

 “그러면 주문이 늦어요.”

 “나도 몰라.”

 

 나는 함부로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그때의 기억은 뒤죽박죽 얽혀 시간 순으로 떠오르지 않는다.

 그때를 더듬으면 파편처럼 깨진 장면들만 떠오른다.

 그 장면들 사이사이에서 비명 같은 외침이 들려온다.

 

 “미스뜨르 도와줘요! 미스뜨르 어떡해요? 미스뜨르! 미스뜨르!”

 

 손님의 줄은 점심때를 넘겨서도 끊이지 않았다.

 두 시간 만에 재료가 바닥나기 시작했다.

 마흐무드가 주방문을 열고 소리쳤다.

 

 “미스뜨르, 나시(밥) 하비스(떨어졌다)!”

 

 전기밥솥이 바닥을 드러냈다.

 주방팀은 고기를 구워대느라 밥이 떨어지는 것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밥을 새로 안치면 30분은 기다려야 했다.

 우리에겐 이런 위급 상황에 활용할 만한 햇반도 없었다.

 

 “마흐무드, 미리 만들어놨어야지.”

 “몰랐어요.”

 “나더러 어쩌라고?”

 “밥을 어디서 구해와야돼요.”

 “어디서?”

 “몰라요.”

 

 리리가 다가와 어깨를 두드렸다.

 웃음기가 사라진 리리의 얼굴은 화장기를 지운 모델처럼 어색했다.

 

 “미스뜨르. 이모가 근처에서 식당 해요. 밥을 빌려올 게요.”

 “그래? 당장 가 봐.”

 

 리리가 앞치마도 벗지 않고 달려 나갔다.

 영원 같은 시간이 지난 뒤, 리리는 우리의 간절함을 담은 밥통을 안고 들어왔다.

 리리의 얼굴에 웃음꽃이 다시 피었다.

 나는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는 그녀를 개선장군처럼 두 팔로 맞았다.

 리리가 빌려온 밥은 인도네시아산 장립종이었으나 그런 걸 따질 계제가 아니었다.

 

 “미스뜨르, 고기랑 채소 하비스!”

 

 나는 또 주방으로 들어갔다.

 버너 두 개가 감당하지 못할 고기들을 올려놓고 불꽃을 날름거렸다.

 

 “마흐무드! 고기 이렇게 많이 올려 놓지 말라고 했잖아!”

 “그럼 어떡해요? 주문이 많은데.”

 

 주방팀 조리복은 온갖 소스와 기름이 묻어 얼룩덜룩했다.

 내게는 그것이 전사자의 군복처럼 보였다.

 

 “뭐가 떨어졌어?”

 “다요?”

 “다라고?”

 

 마흐무드가 냉장고를 보여주었다.

 재 놓은 갈비와 빚어놓은 떡갈비는 몇 인분 남지 않았고 돌솥비빔밥용 채소는 바닥을 드러냈다.

 손님이 얼마 없을 거라고 지레짐작한 채 재료를 충분히 준비하지 않은 내 잘못이었다.

 

 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내 반팔 남방과 면바지는 이미 흠뻑 젖어 살갗에 들러붙었다.

 

 “미스뜨르. 식당 문 닫아요!”

 “받아놓은 주문이 있잖아. 고기는 어쩔 수 없고 채소는 마트 가서 사 올게.”

 

 시간이 없었다.

 뿌리인다 쇼핑몰 지하에 있는 식품코너로 달려가서 비싼 채소라도 사와야 했다.

 그렇게 팔면 밑지는 장사가 되겠지만 주문한 손님이 못 먹고 돌아가는 것보다는 나았다.

 나는 주방에서 나와 리리에게 소리쳤다.

 

 “이제 갈비와 떡갈비는 주문 받지 마!”

 “미스뜨르! 얼음 하비스!”

 “뭐? 얼음이 벌써?”

 

 리리가 포스기 옆에 있는 얼음냉장고를 열었다.

 얼음자루 안에 네모난 얼음이 대여섯 개 정도만 남아 있었다.

 나는 아침에 얼음을 두 자루 이상 주문했어야 했다.

 

 “리리, 그냥 가자.”

 “뜨거운 보리차랑 뜨거운 유자차를 어떻게 그냥 줘요?”

 “얼음 사올 테니까 그때까지만 버텨.”

 “아두...”

 

 건너편에서 접시를 치우던 줄리가 달려왔다.

 줄리의 곱게 딴 머리는 이제 보풀이 인 듯 헝클어져 있었다.

 

 “미스뜨르. 얼음은 주방 냉장고에 있어요.”

 “마흐무드가 없다던데?”

 “내가 부족할 거 같아서 조금 얼려 놨어요.”

 

 그나마 다행이었다.

 아침에 줄리는 생수를 부은 비닐봉투를 주방 냉동고에 넣어두었다.

 내가 꽝꽝 언 비닐봉투들을 들고 나오자 줄리가 비닐을 벗겨 얼음을 송곳으로 깼다.

 

 “줄리, 그런 건 어디서 배웠어?”

 “옛날에 집에서 이렇게 얼려서 아저씨들한테 팔았어요.”

 

 나는 노빨과 함께 쇼핑몰로 갔다.

 노빨이 엑셀을 힘껏 밟아 지하 주차장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나는 차문을 열고 뛰쳐나가며 말했다.

 

 “노빨. 나는 정말 바보야.”

 “착한 바보니까 괜찮아요.”

 “사실은 말이야, 내가 조금 겁이 나.”

 “입 다물고 빨리 사 와요.”

 

 돌아와 보니 식당은 여전히 북새통이었다.

 내가 채소를 주방에 넘기자 마흐무드의 아내가 온갖 욕설을 쉬지 않으며 그것들을 다듬었다.

 

 나는 홀을 둘러보았다.

 줄리와 리리와 디디가 자유의 여신처럼 돌솥을 높이 쳐들고 테이블 사이를 항해하고 있었다.

 바닥에는 그들이 흘린 보리차와 소스가 점점이 떨어져 있었다.

 나는 땀을 닦으며 문득 깨달았다.

 

 없다.

 단 한 명도 없다.

 

 불평하는 손님이 없었다.

 돌솥비빔밥 하나 먹는 데 30분 넘게 기다려야 하는 상황에서 따지고 삿대질 하는 사람이 없었다.

 가끔 음식이 언제 나오느냐고 묻는 손님이 있었지만, 그들도 최대한 예의를 갖춰 물었다.

 기다려 달라고 하면 미안하다는 표정으로 머리를 긁으며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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