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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나의 자카르타
작가 : 히타히타
작품등록일 : 2019.9.2

도망치듯 떠나온 그곳에서 마법이 시작된다.

 
맛있어요, 에낙
작성일 : 19-09-16 18:51     조회 : 304     추천 : 0     분량 : 42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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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식당에 도착하니 불평꾼 줄리가 먼저 출근했다.

 줄리는 가게 문설주에 압정을 꽂고 그 위에 색색의 풍선을 실로 묶고 있었다,

 돌담의 현관은 점점 무지개다리로 변해갔다.

 나는 흑단 같은 머리를 한 갈래로 딴 줄리의 뒷모습을 한참 바라보다 말했다.

 

 “줄리, 뭐 하는 거야?”

 

 줄리가 뒤돌아보았다.

 아침부터 그녀는 이마에 땀을 흘리고 있었다.

 

 “개업일인데 사장님은 아무 것도 안 하잖아요. 이거라도 해야죠.”

 “나는 시장에 갔다 왔어.”

 “그거 말고요. 이벤트요, 이벤트.”

 

 나는 개업일이라고 특별한 마케팅을 하지 않았다.

 가게 앞에 문을 연다는 팻말만 세워 놨을 뿐이다.

 처음 한 달간은 하루에 한 명을 받든 10명을 받든 메뉴를 테스트하기만 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줄리의 생각은 달랐다.

 

 “미스뜨르는 왜 청바지를 입고 있어요?”

 “그럼 안 돼?”

 “사장이잖아요. 개업일인데 다른 바지 입어요.”

 “너도 청바지 입었잖아.”

 “저는 유니폼 입고 앞치마 두를 거니까 상관없어요. 하지만 사장님은 다르죠. 우리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예의를 중요하게 생각해요. 그러니까 갈아입으세요.”

 

 나는 줄리에게 미소 지었다.

 줄리는 어젯밤 얼마 안 되는 용돈으로 풍선을 사서 잠들기 전까지 불어댔을 것이다.

 그때도 미간을 저렇게 잔뜩 찌푸리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 줄리의 말을 거부할 수 없었다.

 

 2층에서 옷을 갈아입고 나왔다.

 직원들이 모두 출근한 돌담은 개업일의 흥분과 술렁거림에 휩싸여 있었다.

 나는 주방장 마흐무드에게 조리복을 입히고 에펠탑처럼 높게 솟은 조리모까지 씌웠다.

 

 “미쓰드르, 모자는 너무 답답해요.”

 “벗으면 본드로 붙여 놓을 거야.”

 

 마흐무드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마흐무드의 머리 위에 솟은 에펠탑이 기울어지는 모습을 보며 웃음을 터뜨렸다.

 마흐무드가 그렇게 완전무장 하니 지저분한 수염만 빼면 깔끔해 보였다.

 

 전투를 시작해야 할 시간이 다가왔다.

 홀서빙 팀은 포스기를 점검했고 주방팀은 식재료를 다듬었다.

 심장이 조금씩 고동치기 시작했다.

 나는 심호흡을 하면서 오늘 올 손님이래야 호기심이 유별난 한두 명뿐일 거라고 스스로를 달랬다.

 

 “미스뜨르! 문제가 있어요!”

 

 마흐무드가 주방을 벌컥 열고 나왔다.

 아다 마살라. 문제가 있어요.

 마흐무드가 그 말을 외치면서부터 오늘의 고난이 시작됐다.

 

 “미스뜨르, 가스렌지 기사 안 왔어요?”

 “어제 안 왔나?”

 “안 왔어요. 어제도 안 왔고 그제도 안 왔고 오늘도 안 왔어요.”

 

 인도네시아는 LNG를 쓴다.

 내가 구입한 가스렌지는 한국산 중고라서 LPG용이었다.

 그래서 시식 때는 휴대용 가스버너를 썼다.

 

 나는 열흘 전부터 가스렌지 수리업체에 전화를 넣었다.

 기사는 전화를 받을 때마다 방문을 내일로 미뤘다.

 

 “문제없어요. 내일 할 수 있어요.”

 

 나는 인도네시아인들의 말버릇에 또 속았다.

 인도네시아인들이 내일 하겠다고 말할 때, 그 ‘내일’을 사전의 뜻 그대로 믿어서는 안 된다.

 그 내일은 한 달이 될 수도 있고 1년이 될 수도 있다.

 나는 식당 개업 준비에 들떠 가스렌지 문제를 까맣게 잊고 있었다.

 

 나는 주방에 들어가 가스렌지를 점검했다.

 가스 배관은 연결됐지만 여전히 불이 켜지지 않았다.

 노즐을 교체하지 않으면 사용할 수 없었다.

 

 나는 때마침 도착한 캐서린에게 물었다.

 

 “캐서린. 렌지가 안 켜져.”

 “네? 점검 안 했어요?”

 

 캐서린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화교들에게는 있을 수도 없는 일이라는 듯 얼굴까지 허옇게 질렸다.

 

 “기사가 온 줄 알았는데 안 왔어.”

 “그럼 어떻게 해요?”

 “내가 묻고 싶은 말이야.”“아두(인도네시아식 감탄사)...”

 

 캐서린이 이마에 손을 대고 생각에 잠겼다.

 

 “지금 급하게 수리할 수 있는 사람 찾을 수 있어?”

 “그런 사람은 없어요.”

 

 그렇다.

 인도네시아에서 ‘지금’ ‘당장’ ‘급하게’ 뭔가를 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알라가 명령을 내려도 문제없다고 대답한 뒤 다음 주쯤 일정을 짤 것이다.

 

 “개업을 미룰까?”

 “그 수밖에 없겠어요.”

 

 그때였다.

 우리 등 뒤에서 벼락같은 외침이 들려왔다.

 

 “안 돼요!”

 

 우리는 뒤를 돌아보았다.

 줄리가 입술을 깨물고 서 있었다.

 

 나는 줄리의 노란색 유니폼 밑에서 꽉 쥐어진 작은 주먹을 보았다.

 손등에 푸른 힘줄이 불거져 있었다.

 그녀는 사람들의 시선이 부담스러워 고개를 숙이면서도 해야 할 말을 했다.

 

 “개업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어요. 아까도 한 이부(부인)가 문 여냐고 물어봤다고요. 그 사람들은 개업을 미루면 다신 안 와요.”

 “어쩔 수 없잖아, 줄리.”

 “가스버너를 하나 더 사면 돼요. 손님이 많이 오진 않을 테니까요.”

 “그걸로 될까?”

 

 나는 캐서린과 마흐무드의 얼굴을 번갈아 보았다.

 마흐무드는 화력이 부족해 고기 익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고 손사래를 쳤다.

 그러나 캐서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손님이 적을 테니까.”

 

 시간이 없었다.

 나는 노빨을 불러 쇼핑몰로 달려갔다.

 주방용품 코너로 가는 내내 나는 머리를 쥐어뜯었다.

 

 “노빨, 나는 보스 자격이 없어.”

 “기운 내세요.”

 “난 바보야.”

 “그건 맞아요.”

 “그래?”

 “여기 와서 식당을 하는 사람은 바보에요.”

 

 나는 야외에서 고기 구울 때 쓰는 흔한 버너를 샀다.

 그걸 주방에 가져다주니 마흐무드는 십자가를 진 예수의 표정을 지었다.

 

 “버너 두 개로 고기 구우라고요?”

 “손님 별로 없다니까. 시식 때처럼 하면 돼.”

 

 나는 마흐무드를 달래고 홀로 나왔다.

 점심때가 가까워졌으나 예상대로 손님이 없었다.

 휴대용 버너로 감당이 될까 걱정한 것은 김칫국부터 마신 격이었다.

 나는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돌담은 아침의 소동을 털어내고 평온을 되찾았다.

 아침부터 궁시렁 대던 마흐무드는 오히려 배식구를 흘깃거리며 손님을 찾게 됐다.

 한류팬 리리는 휴대폰으로 케이팝을 틀어놓고 흥얼거렸다.

 

 “미스뜨르, 케이팝 안 틀어요? 스피커 없어요?”

 “시끄러워서 싫어.”

 “한식당이니까 틀어야죠.”

 “생각해볼게.”

 

 12시가 되었다.

 여전히 손님은 오지 않았다.

 모처럼 날이 개어 나른한 햇살이 창가를 통해 비쳐들었다.

 

 나는 헛웃음이 나왔다.

 어차피 이렇게 될 것을 알고 있었는데 왜 그렇게 걱정했던가.

 왜 며칠 밤잠을 설치며 두려워했던가.

 나는 직원들을 너무 많은 뽑은 게 아닐까 걱정하기 시작했다.

 

 12시 10분이 됐다.

 질밥을 쓴 아주머니 두 명이 들어왔다.

 

 식당을 차려본 사람이라면 안다.

 개업 날 첫손님이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는 순간은 오래 기다린 연인이 나타났을 때보다 설렌다.

 

 나는 첫 손님의 얼굴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키가 작고 얼굴이 검고 눈이 큰 아주머니들이었다.

 그녀들은 자바족답게 나긋나긋한 억양의 인도네시아어로 돌솥비빔밥 두 개를 주문했다.

 

 직원들이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줄리가 미리 얼음을 넣어둔 보리차 두 잔을 손님에게 대접했다.

 물을 사먹는 데 익숙한 손님들은 공짜라는 말에 까르르 웃으며 잔을 비운 뒤, 무슨 맛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마흐무드가 망할 놈의 버너를 켜고 비빔밥용 고기를 볶았다.

 그의 아내가 다른 버너에 돌솥비빔밥 그릇을 데웠다.

 처남은 달궈진 그릇에 참기름을 두르고 밥과 채소들을 얹었다.

 

 우리의 첫 메뉴가 손님상에 나왔다.

 뜨거운 돌그릇이 자작자작 밥을 볶는 소리를 내며, 참기름향과 채소향과 희미한 김을 붐어내며, 탁자에 놓였다.

 손님들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소스를 넣고 비비세요.”

 

 리리가 먹는 법을 설명했다.

 우리는 매운 음식을 못 먹는 손님을 위해 고추장 소스 외에 간장 소스를 따로 준비했다.

 손님들은 간장 소스를 넣고 뜨거운 그릇에 델까 조심조심 밥을 비볐다.

 

 나는 그 모든 광경을 보았다.

 손님이 불편해하지 않도록 딴 일을 하는 척하며,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밥이 그들의 입으로 들어가는 순간을 보았다.

 손님들이 뜨거워 입을 후후 부는 모습도 보았고, 재미삼아 써보던 젓가락을 팽개치고 포크를 드는 모습도 보았다.

 내게는 그것이 아름다운 영화의 한 장면이었다.

 

 나는 그것으로 만족했다.

 더 이상 손님이 오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적도 너머 저 먼 태평양 북쪽 나라에서 나는 한 여자를 만났고, 지금 이곳에서 두 사람이 그녀가 만든 레시피를 맛보고 있다.

 정말 그거면 충분했다.

 

 “에낙!(맛있다).”

 

 손님이 넵킨을 가져다주는 디디에게 말했다.

 에낙. 에낙. 에낙.

 자바족은 에낙이라는 평범한 발음도 발라드처럼 부드럽게 말하는 재주가 있었다.

 

 손님들이 내 쪽을 쳐다보았다.

 나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오랑 꼬레아(한국 사람).”

 

 손님들이 자기들끼리 수군거렸다.

 나는 직접 손님들에게 냉유자차를 가져가 어눌한 인도네시아어로 말했다.

 

 “첫 손님이셔서 공짜로 드립니다.”

 “뜨리마 까시.”

 

 손님들이 유자차를 빨대로 마셨다.

 

 “맛이 어떠세요?”

 “화장품 맛이 나요. 이게 뭐예요?”

 “한국 과일입니다.”

 “건져 먹어도 돼요?”

 “먹어도 되지만 맛은 없습니다.”

 

 화장품 맛이라는 게 칭찬인지 비난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나는 그냥 기분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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