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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용非어천가 - 하늘에 오르지 않는 노래 -
작가 : Namwoo
작품등록일 : 2019.9.3

먼 옛날 사람과 어울려 살았던 이무기, ‘치우’는 어떤 사건을 계기로 감정을 봉인하고 깊은 물로 들어가 여의주가 생길 천 번째 해만 기다리게 된다.
인연을 만들지 않기 위해서 어두운 물속에서만 지냈건만, 여의주를 얻은 날 마지막으로 옛 마을의 터를 찾았다가 ‘문종’과 마주치고 만다.
‘문종’과의 대화로 얼어붙었던 ‘치우’의 마음이 녹게 되고, 높은 산에 오른 ‘치우’는 승천하려던 순간에 들려온 한 소녀의 비명을 외면하지 못하고 마는데...
‘치우’를 하늘에 오르지 못하게 할 새로운 인연, ‘해랑’과 모종의 사건들이 그를 둘러싼다! <매주 화, 금 업로드>

 
4화. 어디선가 들려오는 목소리
작성일 : 19-09-13 17:04     조회 : 237     추천 : 1     분량 : 75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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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해랑아?”

 

 그는 곧바로 등을 돌려 마당으로 나왔다.

 

 “문을 열고 나오지 말라고 그리 일렀건만...해랑아! 어디 있는 게냐!”

 

 정신없이 사람들을 확인하고 다니며 큰소리를 치는 치우에게 해랑의 방에서 상을 치웠던 여인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다가왔다.

 

 “나으리, 무슨 일이십니까?”

 

 그는 침착하려 애쓰며 해랑이 있던 방을 손으로 가리켰다.

 

 “저기, 저 방에 있던 소녀가 어디 갔는지 보았는가?”

 

 주모는 그의 손이 가리키는 방향을 보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손바닥을 짝 쳤다.

 

 “아! 상을 치우러 들어갔을 땐 아씨께서 주무시고 계셨는데...”

 

 “문을... 열었다고? 아이가 몸이 아프니 상도 치우지 말라 하지 않았느냐...!”

 

 주모는 겁을 집어먹어 말을 더듬었다.

 

 “아..아씨께서 안에 안 계십니까?”

 

 “없어...”

 

 치우는 눈을 감고 한 손으로 이마를 누르며 주변의 소리에 집중하려 했다.

 하지만 귓가에 들려오는 것은 자신의 쿵쿵 뛰는 심장 소리뿐, 치우는 초조함에 입술을 깨물었다.

 

 “이런...!”

 

 그런 그를 보던 주모는 일하고 있는 소녀에게 다급하게 소리쳤다.

 

 “옥아! 방에 계시던 어린 아씨께서 나오시는 거 못 봤니?!”

 

 인상을 쓴 채 생각을 되짚어보던 치우는 불현듯 시장에서의 일이 떠올랐다.

 

 ‘아까 그 느낌. 누군가 결계를 깼구나...! 문이 열렸을 때 해랑이가 잠든 것을 보고 결계가 약해질 것을 알아챈 건가... 어리석게 어찌 바로 알아차리지 못했을까?!’

 

 그는 양손으로 주모의 어깨를 잡았다.

 

 “그럼, 혹 수상한 자를 보지 못했는가?! 평소 이곳에 보이지 않던 사람이나...!”

 

 “그..그것이 이 마을은 한양으로 가는 길목에 있어서 워낙에 많은 사람이 머무는지라...”

 

 주모는 곧 자신에게 떨어질 불호령을 예상하며 눈을 질끈 감고 대답했으나, 치우는 그대로 뒤로 돌아 달려 나갔다.

 

 

 

 *

 

 한편 그 시각, 해랑은 주변의 시끄러운 소리에 잠에서 깼다.

 

 “...가 살게!”

 

 ‘으…. 밖이 시끄럽네.’

 

 해랑은 인상을 찡그리며 다시 잠을 청하다가 바람에 머리카락이 휘날리는 느낌에 정신을 차렸다.

 

 ‘여기가...밖인가? 왜 이렇게 어두워...’

 

 해랑은 자신에게 이불이라도 씌워진 건 아닌지, 머리 위쪽으로 팔을 휘적이다가 얼굴과 눈을 만지작거렸지만, 아무것도 잡히지 않았다.

 

 “주막...이 아닌가?”

 

 허공을 휘젓던 손을 내려 바닥을 더듬자 모래와 흙의 느낌이 났다.

 그때 조금 멀리서 한 남자의 우렁찬 목소리가 울려 퍼지고 해랑은 화들짝 놀라 몸을 움츠렸다.

 

 “자, 이제 곧 이 녀석의 머리를 내려치겠습니다~!”

 

 남자의 말에 주변을 둘러싸고 웅성거리던 무리는 각기 다른 반응을 보였다.

 

 “얼른 잡는 거나 보자.”

 

 “어휴, 난 끝나면 다시 와야겠어.”

 

 주변에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있는 것이 분명한데도 눈앞이 어두워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해랑은 이곳이 어디인지 무엇을 하는 곳인지 알 길이 없었다.

 

 ‘누..누굴 내려친다는 거야? 눈이 안 보여...어째서?’

 

 마음이 다급해지기 시작한 해랑은 기대어 앉아있던 곳에서 손으로 바닥을 짚으며 조심조심 몸을 일으켜 세웠다.

 

 “저. 저 좀 도와주세요. 앞이...눈이 보이지 않아요.”

 

 해랑은 팔을 휘저으며 손에 잡히는 옷을 붙잡고 애원하며 울먹였지만 작은 목소리는 웅성거림에 묻혀 잘 들리지 않았다.

 

 “어억?!”

 

 대신 그녀에겐 당황한 목소리를 내며 자신의 손길을 무참히 쳐내는 사람들의 행동만이 연달아 느껴질 뿐이었다.

 

 “이곳이 어디입니까? 누가…누가 저를 주막으로 좀 데려가 주세요!”

 

 해랑은 평정심을 잃고 손에 잡힌 것을 닥치는 대로 잡아끌었다. 그때 그녀의 손을 마주 잡아 주는 온기가 느껴졌다.

 

 “혹시 앞이 안 보이느냐?”

 

 해랑은 점잖은 사내의 목소리가 들리는 곳을 돌아보며 반가운 마음에 미친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눈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 저를 주막으로 데려다주시면 제 오라버니께서...”

 

 해랑은 떨리는 목소리로 사정을 말하며 처음으로 자신의 손을 마주 잡아준 사람을 놓치지 않으려고 손에 힘을 꽉 주었다.

 

 “낄낄. 야, 이것 봐라? 나한테 존대를 하네? 못 알아봐. 정말 눈뜬장님 인가본데?.”

 

 “이렇게 곱게 차려입으신 양반 아가씨께서...눈도 보이지 않는데 돌아다니면 위험하지~”

 

 이들의 말처럼 해랑은 눈을 뜨고 있었으나, 그녀의 눈엔 다른 이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검은 안개가 서려 있었다.

 

 “장옷은 어디에 두고 이리도 예쁜 얼굴을 드러내놓고 다니시나?”

 

 “에이, 너무 어린데?”

 

 해랑은 자신의 얼굴에 거친 손이 닿는 것을 느꼈다.

 

 

 

 *

 점잖은 척했던 사내와 그 일행은 여러 마을을 떠도는 사냥꾼이었다.

 짐승 가죽을 몸에 두른 우락부락한 사내 셋이 어린 소녀를 둘러싸자 몇몇 사람이 쳐다보며 웅성거렸다.

 

 “저자들이 이곳엔 무얼 하러 온 거야?.”

 

 “그러게 말이야. 여기 와서 자기들이 할 게 뭐 있다구.”

 

 그들의 주변엔 양반을 제외한 양인들의 무리가 모여있었다.

 해랑의 손을 뿌리쳤던 것은 다름이 아니라 양반가 규수와 몸이 닿았다간 경을 칠 테니 깜짝 놀라서였으리라.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에이씨, 구경났어? 네놈들 하던 거나 해!”

 

 이 마을에서 사냥꾼으로서 보다는 건달로 유명한 세 명의 사내에게 겁을 먹은 사람들은 누구 하나 선뜻 나서지 못하고 있었다.

 

 “이것 놓으시오!”

 

 해랑은 자신을 잡고 있는 손을 뿌리치고 자신의 얼굴에 닿은 손을 쳐냈다.

 

 “어허, 눈에 뵈는 게 없으셔서 그런가~? 몸종도 없는 아가씨 주제에 아주 용감해…? 눈이 안 보여서 버림받은 것 아냐?”

 

 사냥꾼은 다시 위협적으로 다가서서 해랑의 팔을 잡아끌었다.

 

 

 해랑의 눈을 가린 검은 안개를 다루는 자는 검은 옷을 두른 채 조금 떨어진 곳에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당돌한 계집이네. 눈도 보이지 않으면서 어찌 하려구...? 신치우. 서둘러 찾아오지 못하면...저 아이가 어떤 일을 겪게 될까?’

 

 

 

 *

 

 거리를 달리는 치우의 머릿속에 자꾸만 산속에서 자신과 눈이 마주쳤던 소년과 해랑의 벗이라던 단미의 모습이 떠올랐다.

 

 ‘같은 놈들일까? 아냐.. 이번엔 보통 녀석이 아니다. 내가 찾을 수 없도록 해랑이에게서 내 여의주의 기운을 완전히 지웠어.’

 

 치우는 돌연 달리던 발길을 멈춰서서 헛웃음을 터뜨렸다. 서늘한 공기가 그의 주변에서부터 퍼져 나왔다.

 

 “해랑이가 아니라, 나를 잡으려는 거였군.”

 

 치우는 귀를 기울여서 여러 소리를 받아들였다.

 

 “그래…. 숨어있기 딱 좋은 곳일 테지.”

 

 그는 가장 소란스럽고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발걸음 옮겼다.

 

 

 *

 

 “누가...좀 도와줘요.”

 

 앞이 보이지 않는 해랑은 겁에 질려 소리쳤다.

 

 “눈이 안 보여서 모르겠지만, 아씨를 도와줄 사람은 하나도 없어. 우리랑 저-기 가서 놀자구.”

 

 사냥꾼은 해랑의 팔을 잡아끌었고 다들 쩔쩔매며 바라만 보고 있었다.

 

 “치우님! 악! 이거 놔! ”

 

 해랑은 끌려가지 않기 위해 발버둥 쳤다.

 

 “낭자에게서 그 손을 치워라! 무례한 놈!”

 

 “뭐야?”

 

 싸늘하고 단호한 외침에 사냥꾼은 가던 길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당장 그 손 치우라고 하였다!”

 

 은오는 우락부락한 세 명의 사내의 위협적인 태도에도 굴하지 않고 빠른 걸음으로 해랑 쪽으로 다가갔다.

 

 “어이구, 저거 이씨 부인댁 도련님 아니야?”

 

 “에이~ 툭 하며 쓰러진다고 하던데? 어찌 혼자 바깥출입을 하겠어?”

 

 “이 마을에서 옷에 금장을 두른 양반댁 자제가 거기 말고 어디 있어?”

 

 둘러싼 무리가 술렁이자 사냥꾼 둘은 난감한 기색을 비쳤다. 마을 밖에서도 이씨 부인의 막강함을 모르는 이는 없었기 때문이다.

 

 “뭐! 이씨 마님 댁이 뭐 대단하다고? 누이랑 쌍으로 병신인가 보구만.”

 

 해랑의 팔을 잡은 사냥꾼은 술렁이는 무리를 향해 허세를 부리며 거친 말을 내뱉었지만, 다가와서 손을 뻗는 은오를 보고 주춤 뒤로 물러섰다.

 

 “썩 꺼져라.”

 

 자신의 손에서 해랑의 팔을 낚아챈 은오의 단호하고 냉정한 눈빛에 압도된 사냥꾼은 나머지 둘을 이끌고 도망치듯 그 자리를 떠났다.

 

 해랑은 두 손을 앞으로 들어 은오가 있는 곳을 찾으려 더듬거렸다.

 은오는 그런 해랑의 모습이 측은하여 마음 한켠이 시려왔다.

 

 “가족이 있다 했지? 내가 데려다줄게.”

 

 은오는 자신의 반비겉옷(짧은 소매)을 벗어 장옷을 대신하여 해랑의 머리에 둘러주었다.

 

 “네 장옷이 보이질 않으니 이거라도 두르고 있자.”

 

 “..고맙습니다.”

 

 해랑이 울먹이며 대답하자 은오는 자신의 팔을 뻗고 그 위에 해랑의 손을 얹었다.

 

 “저기, 네가 앞이 보이질 않고...내가 너의 몸을 잡을 수는 없으니, 니가 내 팔을 잡아.”

 

 은오는 아까와는 다르게 살짝 긴장한 목소리로 해랑에게 말했다.

 해랑은 긴장하여 두근거리는 은오의 심장 소리가 점점 크게 들리자 안심이 되며 피식 웃음이 나왔다.

 

 ‘이분은 좋은 사람이다.’

 

 한 손으로는 씌워진 겉옷을 잡고 한 손으로는 은오의 팔목을 잡고 걸어가던 그때, 해랑의 귀에 미세한 목소리가 들렸다.

 

 - 엄마...엄마아......정신차려. 죽지 마...

 

 “선비님...! 저 아이도 데려가야 합니다!”

 

 “아이라니... 누군가가 더 있는 거야?”

 

 “지금 자신의 어미를 살려달라고 소리치는 아이 말입니다! 아까, 저자들이…. 저자들이 누군가를 내려치려고 했습니다!”

 

 은오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어딜 보아도 은오의 눈엔 소리치는 어린아이가 보이지 않았다.

 

 “저기, 이곳에 아이는 없으니 안심해. 많이 놀라서 그런 것 같으니 일단 나와 함께 의원에게 가자.”

 

 - 엄마.. 눈을 떠. 일어나. 같이 도망치자....!

 

 “이렇게 분명하게 들리는데 무슨...! 당신도 믿을 수 없는 사람인가요...? 저라도 데리고 가겠습니다.”

 

 “아니, 여기는...! 잠깐만!”

 

 은오는 자신을 뿌리치고 가는 해랑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해랑은 소리가 들려오는 쪽으로 팔을 뻗으며 한 걸음 한 걸음 속도를 냈고 다른 사람들은 그녀를 피해 길을 터주며 한 걸음씩 뒤로 물러났다.

 

 “저곳은...”

 

 은오는 미심쩍은 표정으로 천천히 해랑의 뒤를 쫓았다.

 

 - 엄마. 엄마....

 

 “왜…. 왜 내게 오는 것이오! 난 아이 같은 거 숨긴 적이 없소..!”

 

 해랑이가 사람들을 지나쳐 자신에게 다가오자 목소리가 우렁찼던 사내는 당황하며 뒷걸음치기 시작했다.

 해랑은 그런 사내를 지나쳐서 걸어가다가 발을 멈췄다.

 

 - 내 말이 들려? 이 사람이 죽였어…. 내 엄마를...

 

 울음 섞인 아이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해랑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해랑은 우렁찼던 사내의 목소리를 기억하고 있었다.

 

 “당신이 내려치겠다고 했잖아! 이 아이의 엄마를 죽였잖아...!”

 

 해랑의 말에 사람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나...나는 하늘에 맹세코 아이 엄마를 죽인 적이 없소이다!”

 

 해랑은 사내의 목소리가 나는 곳을 돌아보며 외쳤다.

 

 “지금 여기서 이 아이가 말하는데도 말입니까?!”

 

 해랑이 아이의 목소리가 난 곳을 가리키며 분노에 차서 소리치자, 그녀로부터 푸른 바람이 일어나며 눈을 덮었던 검은 안개가 흩어졌다.

 

 “눈이 안 보인다더니 이 아가씨가 실성하셨나...! 멀쩡한 사람을 살인자로 만들다니...!”

 

 우렁찬 사내의 목소리와 함께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심해지고 해랑은 순간 눈이 부셔와서 눈을 찡그렸다.

 

 “그만하거라. 내가 데려다주겠다 했잖아, 돌아가자.”

 

 해랑은 어느새 다가와서 자신을 붙잡은 은오를 돌아보았다.

 안색이 많이 창백하지만 훤칠하게 생긴 도령이 당혹스러움과 걱정이 가득 담긴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윽. 됐습니다. 이제 잘 보이니까....”

 

 해랑은 자신을 붙잡은 은오의 손을 걷어내곤 아이의 소리가 들려오던 곳으로 시선을 돌리며 말을 이었다.

 

 “아가야. 이제 괜찮으니 크게 말을...해...”

 

 해랑의 표정이 굳어졌다.

 

 “이게 무슨...?”

 

 해랑이 바라본 곳에는 새끼 돼지 한 마리가 꿀꿀거리고 있었다. 해랑은 서둘러 주변을 살폈다. 커다란 돼지 한 마리가 기절한 채 누워있었고 목소리가 우렁찬 사내가 있던 곳엔 백정으로 보이는 남자가 서 있었다.

 해랑은 단번에 상황을 이해했다.

 돼지고기와 그 부속을 사기 위해 주변을 둘러쌌던 사람들은 해랑을 이상한 눈으로 흘끗거렸다.

 

 “이게 무슨…. 욱.”

 

 해랑은 속이 울렁거려 제대로 서 있을 수 없었다. 은오는 한숨을 내쉬고 사람들에게서 해랑을 가리고 섰다.

 

 “이런 현장을 처음 보니 마음이 여려 그대들에게 역정을 낸 것 같다. 내가 대신 사과하리다.”

 

 양반인 은오의 입에서 사과한다는 말이 나오자 사람들은 서로를 쳐다보며 술렁였다.

 

 “허나 이렇게 둘러싸고 도살하는 걸 보여주는 것은 보기에 좋지 않으니 그만하는 게 어떻겠는가? 아무리 말 못 하는 짐승이라 하여도, 새끼 앞에서 어미를 죽이다니.“

 

 은오는 차분하게 주변을 둘러보며 이야기하다가 백정을 쳐다보았다.

 여리여리한 몸집과는 다르게 사람을 압도하는 은오의 눈빛에 둘러싼 사람들 모두 고개를 끄덕이고 백정도 시선을 내리며 뒷머리를 긁었다.

 

 “예에…. 그리합죠.”

 

 은오는 넋이 나간 해랑을 보다가 백정에게 작은 소리로 속닥이곤 웃으며 동전 한 꾸러미를 백정의 손에 쥐여주었다.

 

 “저기, 나랑 잠시 가자.”

 

 은오는 다시 해랑을 부축해서 자리를 벗어났다.

 

 

 

 *

 

 ‘나의 바람이 분 흔적이다...’

 

 돼지 장터에서 사람들이 대부분 흩어진 후에야 해랑이 있던 곳에 도착한 치우는 자리를 정리 중이던 백정에게 다가가 물었다.

 

 “혹시 근처에서 청색 치마를 입고 코가 푸른 당혜를 신은 아이를 못 보았는가?”

 

 백정은 경계하는 눈빛으로 치우의 행색을 훑어보다가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눈이 먼 아씨 말이십니까?”

 

 “눈이 멀다니?”

 

 “거, 눈도 안 보이는 아씨가 새끼 돼지의 말이라도 알아듣는 것처럼…. 어미 돼지를 가리키며 제가 아이 엄마를 죽였다나 뭐라나... 헛소리를...”

 

 백정은 투덜대며 말하다가 치우의 눈이 커지자 헙 하고 입을 막았다.

 

 “그 아이 지금 어디 있는가?”

 

 백정은 여전히 수상쩍은 눈초리로 치우를 보며 퉁명스럽게 말했다.

 

 “아씨를 아는 듯 보이는 도령이 데려갔습니다만...”

 

 “아는 도령이라니? 내가 그 아이의 가족이고 이곳엔 아는 이라곤 없는데, 누가 데려갔다는 말이냐!”

 

 역정을 내는 그에게 백정은 인내심이 다 한 듯 몸을 돌려 하던 일을 마저 하며 짜증을 냈다.

 

 “그 처자는 처음 봤을 때부터 벽에 기대어 앉아 잠들어 있었습니다! 거기에 건달패거리에 당할 뻔한 것을 윤도령이 구해서 데려갔으니, 뭐, 더 별일 있겠습니까?! 관아에라도 데려다주었겠지.”

 

 “윤도령...?”

 

 “이씨 부인댁 장자 말이오!”

 

 치우는 백정에게서 한 발짝 떨어져서 어두운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앞도 안 보이는 처자를 그렇게 둘 거면 데리고 나오질 말았어야지. 쯧, 양반네들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백정은 그런 치우를 쓱 돌아보고 꾸짖듯이 다 들리게 혼잣말을 해댔다.

 

 “고맙소.....”

 

 

 

 그런 둘의 대화 모습을 멀찍이서 바라보던 검은 옷을 두른 사람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아이는 눈을 가리니 사람인지 돼지인지 구분을 못 하는 게…짐승의 말귀를 알아듣는다는 것인데, 여의주가 저 소녀에게로 넘어간 게 분명하구나. 말도 안 되는 일이라 생각했거늘... 내가 그날 잘못 본 게 아니었어. 확실히 힘을 잃은 듯하니 일이 수월해지겠어.’

 

 검은 옷을 두른 사람은 맑고 고운 목소리로 작게 중얼거렸다.

 

 “뼈저리게 느끼세요, 당신의 무력함을...”

 ‘그래야지만 내게 올 테니...’

 

 

 

 치우는 한쪽에서 들려온 맑고 고운 여인의 목소리를 듣고 자신에게 하는 말임을 직감했다.

 

 ‘너로구나.’

 

 치우가 관아 방향을 향해 걸어가는 것을 보고 검은 옷을 두른 사람은 뒤를 돌아 산으로 올라갔다.

 

 *

 

 전신에 검은 옷을 두르고 느린 걸음으로 산길을 걷는 자의 행색은 퍽 수상했지만, 그를 지나치는 사람들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마냥 눈길도 주지 않고 그를 지나쳐 갔다.

 

 ‘이제 내가 그 여자아이를 먼저 찾아서...흐음 어찌한다? 좀 더 때를 맞추어...적기에…. 응?’

 

 생각에 잠겨 걷던 자는 갑자기 온몸에 소름이 끼쳐서 빠르게 뒤를 돌아보았다.

 

 “하. 하아...”

 

 심장이 미친 듯이 뛰는 와중에 주변에 아무것도 없음을 확인하자 자신도 모르게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다시 갈 길을 향하여 고개를 든 검은 옷을 두른 자의 앞엔 치우가 서 있었다.

 

 “찾았다.”

 
작가의 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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